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5 일상수행법문

2025년 우안거입재 법문 - 수행(瞑想)을 지속하는 요령(20250705)

담마마-마까 2025. 7. 5. 18:15

https://youtu.be/pxgJ7SvN8bs?si=UWdWsmSyF3f6-B72

 

* 2025년 우안거입재 법문 - 수행(瞑想)을 지속하는 요령(20250705)

 

편하게 앉으십시오.

오늘은 안거입재 날입니다. 안거 끝나고 계 받을 분들이 몇 명이 되죠?
(수행자 대답 : 다섯 분입니다.)

안거를 끝나봐야 알지. 받을 조건이 될지 안 될지는 끝나봐야 알죠.

안거 끝나고 나서 계를 주는 이유가 있죠? 안거 때만이라도 그래도 수행을 하라고, 부지런히 와서. 혼자서 하려고 그러면 참 힘들고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나마라도 조금 수행들을 하고 선한 마음들 자꾸 익혀가지고 가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수행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여기에도 적어놨죠. 호흡 관찰하기 힘들어요? 아니죠! 그건 호흡은 관찰이 되죠. 자꾸 그게 끊어져 싸서 그렇지, 호흡을 관찰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망상이 일어난다, 아니면 다리 통증이 일어난다, 그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항상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망상은 일어날 때 일어나는 거고, 다리 아픈 것도 아프다가도 또 사라지게 돼 있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망상이나 다리 아픈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서 수행을 지속 못한다 하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뭐가 수행을 지속 못하게 할까? 뭐라고 되어있어요?

지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지속을 쭉 해야 뭔가 무상한 성품을 보든지 고를 보든지 무아를 보든지 하는데 그게 참 잘 안 됩니다.

앉아 있으면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건 관찰을 하고, 걸을 때는 왼발 오른발 들어 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그렇게는 하는데, 어떨까? 그게 계속 이어질까, 사띠가?

사띠가 잘 이어지질 않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중간에 끊어져 버립니다.

사띠가 끊어진지 조차도 모르고 그냥 끊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할 때는 사띠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그냥 자체만 하게끔 됩니다. 집중하는 힘이 없는 거죠.

 

왜 집중하는 힘이 없을까? 집중을 하려면 굉장히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것을 사띠하려는 마음이 계속적으로 일어나야 되겠죠. 근데 그렇게 하려다 보면은 1시간 좌선을 하고 있다, 그러면 엄청 마음은 힘듭니다. 그 집중력을 유지시켜 주려고 하다 보면. 마음이 금방 지쳐버립니다.

그래서 지쳐버리는 순간에 그냥 그만두려고 하는 마음이 탁 일어나버립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좀 편하게 관찰을 하면 참 좋은데, 지속하는 힘이 조금 더 생겨날 건데, 대부분 편하게 안 하거든. 대부분 의도를 가지고 ‘배가 불러온다’ 하면서 배를 불리고, ‘배가 꺼진다’ 하면서 배를 꺼뜨리거든.

발도 마찬가지로 ‘들어올린다’ 하고 들어 올리게 되고, ‘나간다’ 할 때 나아가게 되고, 대부분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힘이 엄청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현재 상태에서는.

 

한번 이번 안거 때는 힘을 한 번 빼는 훈련들을 한번 해보십시오.

그냥 놔줘 버려요. 놔줘도 호흡은 하죠.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여기서 저까지는 걸어가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사실은 배를 관찰한다든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걸 갖다가 관찰한다든지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한번 가볍게 한번 해보십시오. 힘을 빼고.

힘을 빼고 먼저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긴장 상태를 갖다가 내려놓도록 하고 나서, 배를 먼저 관찰하려 하지 말고 마음이 어디로 항하고 있는지를 한번 보라고.

그럼 설혹 배를 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쪽으로 향해 있으면 그거 그냥 사띠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배가 알아차려지면 배를 사띠를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한번 가볍게 한번 좌선을 할려고 한번 해보십시오.

걸어갈 때도 일부러 들어올리고 나아가고 내려놓고 천천히 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평상시 걷듯이 그냥 한번 걸어 보십시오. 그러면서 그냥 걷고 있다고만 알아차려 보려고 한번 해보라고. 힘을 딱 빼는 순간에 집중하는 힘은 물론 많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사띠하는 시간은 훨씬 길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대부분 처음 수행하는 사람들이 계속 수행을 지속 못하는 이유가

너무 과도하게 그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먼저 다가간다는 거라!

그렇게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놔줘 보라는 거라. 놔줘 보고 마음이 향하는 것만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단, 이렇게 할 경우에 하나 주의해야 되는 것은 지루하다는 생각을, 쉽게 말하면 게으름 부리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 그것만 잘 단속을 하면 됩니다.

 

배를 관찰하다가도 또 금방 마음이 앞에 있는 대상을 보는 데 가 있으면 그냥 보라는 거라. ‘어, 보인다’ 하고 알아만 차리고, 또 마음이 어디로 가 있는지를 마음을 한번 보라는 거라. '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 쪽으로만 계속 사띠하겠다' 그냥 그렇게 알아차리면 됩니다.

근데 단지 마음에서 ‘어, 지루해,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다 할 것 같으면 즉각 그거는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스톱을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은 거기에 그냥 빨려들어서 사띠를 놓쳐버리게 됩니다.

 

탐·진·치가 안 일어나게끔만 하고 현재 있는 대상, 느낌이 알아차려지면 느낌을 그냥 알아차리고, 움직임을 알아차려지면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그때 마음이 어떤 마음이 일어났다는 것들이 있으면 그때 그 마음을 그냥 알아차리라는 거라. 설혹 대상으로 인해가지고 ‘아, 고요하다’ 하는 마음이 들면 그 고요한 거 그냥 알아차려라는 거라.

각각은 다 대상이기 때문에 그 대상을 가볍게 알아차리려고만 하고, 지루하다든지 싫다든지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든지 하는 것들만 방어하도록 자꾸 한번 해보십시오.

그게 수행에서는 수행을 지속하기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하겠습니다. "집중하지 마라!"

어느 하나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그 대상만 집중하려고 하지 말아라.

대상은 어떤 경우든지 지속적으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놔둬버릴 것 같으면 대상은 자꾸 바뀌어집니다. 그리하더라도 그 대상을 움켜쥐려고 하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고, 그냥 대상을 사뿐하게 알아차리면서 행해 나갈 수가 있다는 거라.

일상생활 할 때는 이게 굉장히 유용합니다. 특히 경행을 한다든지 아니면 일상생활을 한다든지 할 때는 그 방법으로만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수가 있습니다.

 

단지 좌선을 할 동안에는 이 방법을 동원할 것 같으면 대부분은 보면 잠에 떨어져 버립니다. 좌선할 때는 약간 방법을 다르게 해도 괜찮습니다.

그때는 명칭을 붙여서 대상 하나만 알아차리려고 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배가 부르고 꺼지고 할 때 ‘불러온다’고 알아차리고 ‘꺼진다’고 알아차리고, 이것만 적어도 한 10분 정도는 지속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것만 쭉 지속을 해보라고.

 

그러면 집중하는 힘은 여기서 굉장히 커집니다. 물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는 못하겠죠. 그리하더라도 집중하는 힘이 커진다는 거라. 그럼 그 힘이 커지면 나중에 일상생활을 할 때 대상을 가볍게 알아차리는 데는 굉장히 크게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이번 수행 기간 동안에는 너무 지나치게 일상생활을 할 때 집중해서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대상으로서만 자꾸 알아차리려고 하는 훈련들을 하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거기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라고 하는 것이 개입되면 안 됩니다

그냥 ‘본다’고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지. ‘누구다’ 하고 알아차린다든지, ‘내가 본다’고 알아차린다든지, 이렇게 돼버리면 이미 그것은 수행을 안 하는 상태가 되는 거라. 그냥 보고·듣고·맛보고 하는 것만 하려고 자꾸 하라는 거라.

 

육근을 통해서 하는 것만 하더라도, 그것만 하는 중간중간에 망상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여름 되면 햇빛이 굉장히 강하죠. 에너지를 그래서 굉장히 많이 받게 됩니다. 그리고 땅이나 이런 것들이 뜨거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뭐가 에너지가 되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지금 살아가게 될까? 살려고 하는 '생존욕구'입니다.

 

그 생존욕구와 에너지로서 계속적으로 나를 뭔가를 하려고 하게끔 하는 거라. 그래서 마음은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그냥 보고·듣고·냄새 맡고 이렇게만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만 하도록 놔두질 못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단순하기 때문에 마음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거라. 그럼 잠에 떨어지든지, 잠에 떨어지지 않으면 망상을 하려고 하게 됩니다.

생존욕구가 있는 한에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중간중간에 보는 때도 망상이 일어나게 되는 거고, 들을 때도 망상이 일어나게 되는 거고,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과도하게 거기에 대상에 몰입을 하게 되면 망상은 더욱더 증폭돼 버립니다. ‘보인다’ 하고 알아차리고 끝나야 되는데, 그냥 그대로 그냥 ‘보인다’ 하면서 거기에 고정을 해버리는 거라. 그러면 마음은 ‘보인다’고 하는 게 아니고 ‘뭐가 보인다’고 이렇게 또 알아차리게 되는 거라. 생존욕구를 더욱더 강화시켜주는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고작용'들이 일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일상생활을 할 때는 "육근 외에는 없다" 생각을 하고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만 끊임없이 알아차릴려고, 가볍게! 그렇게 자꾸 노력을 하면 됩니다.

 

수행을 쭉 해봤으니까 알 겁니다. 한 번에 잘 안 되죠. 한 번에 될 수가 없습니다. 수행은 어떠한 경우든지 천천히 흘러갑니다. 한 발 디디고 나면 그다음 발을 디딜 수밖에 없지, 그걸 뛰어넘어서 갈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또 그것이 없는 것처럼 돌아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한 발 한 발 디딘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내가 살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듯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나는 사띠하면서 살아야 된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이번 안거 석 달 동안 아니면 일주일 동안 내가 뭔가 결과를 얻겠다’, 만들어서 결과를 얻을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결과를 얻기에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냥 한 발 한 발 디딘다 생각하십시오.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끔 만들어 주고, 마음이 가볍게 돼 있을 때 대상을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들을 이번 안거 기간 때는 1차적인 목표로 한번 잡아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조금 더 수행이 지속되도록 해야 됩니다.

오늘은 하고 내일은 안 하고 또 그다음 날은 하고 또 그다음 날은 안 하고, 이렇게 자꾸 끊어져 버리면 수행이 무르익기 전에는 처음부터 또 다시 해야 됩니다.

아무리 오늘 수행이 좀 잘 됐다 하더라도 내일 쉬어버리고 나서 모레 하려고 할 것 같으면 다시 처음부터 또 해야 되는 거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더디다는 거라. 그래서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하루에 적어도 몇 시간씩 사띠가 연결되는 현상이 지속되도록 하고, 그다음 날도 그렇게 되고 하면 수행의 성숙은 빠르게 일어나게 됩니다.

 

① 스케줄링하기

자, 이번 안거 때는 달력을 옆에 갖다 놓고 내가 한가한 시간이 어디일지, 내가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뺄 수 있는 시간이 어디인지를 갖다 딱 한번 체크를 해보십시오.

그래서 그 시간 동안은 무조건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게 첫 번째 말을 하는 「스케줄링하기」라는 거라. 계획표를 딱 세우고 거기에 맞게끔 그 시간을 먼저 빼놔라는 거라. 빼놓고 설혹 그것으로 인해서 다른 게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들이 있어가지고 그 일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말고 그 시간은 지키도록 자꾸 노력들을 하십시오.

적어도 하루에 한 서너 시간은 뺄 수 있을 겁니다. 그 시간 동안은 어쨌든 수행을 지속할 수 있도록. 2시간은 좌선·경행 1시간씩 할 수가 있죠. 2시간은 일상생활 할 때 사띠를 지속하려고 하는 훈련들을 한번 해보십시오.

 

아까 얘기했죠. 가볍게 마음을 편안하고 가볍게 만들고 나서, 그냥 대상을 사띠만 하는 훈련들을 자꾸 하라는 거라. 집중해서 그걸 하려고 하지 말고!

그러면 4시간 동안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매일 4시간씩 했을 때 안거가 끝나는 세 달 후에는 훨씬 사띠하는 것이 수월해져 있다는 것들을 알게끔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번 할 수 있도록 하시고.

 

② 수행 도반과 함께 하기

그다음에 두 번째, 어차피 여러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야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수행하고 문답하고 가고 법문 듣고 가고 해야 됩니다. 그거 게을리하지 말아라는 거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토요일 날은 가서 법문 듣고 수행한다." 하고 마음을 먹고 그 시간은 빼지 말아라.

혼자 수행할 때하고 도반들하고 같이 수행할 때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근데 도반들을 보더라도 도반들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페이스는 자기 페이스대로 하면 됩니다. 나는 걸을 때 요 속도로 걷는다 하면 그냥 그렇게 걸으면 됩니다. 도반들이 천천히 걷는다 해가지고 그걸 따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좌선할 때 나는 30분 지나고 나면 도저히 사띠하는 것이 힘들다면 30분만 하라는 거라. 다른 사람 1시간 한다 해가지고 방해만 되지 않게끔 하고 경행을 하고 하면 됩니다. 근데 그걸 도반들하고 같이 한다 해가지고 그 스케줄을 다 맞추려고 하면 오히려 수행은 힘이 듭니다.

 

단지, 도반들하고 하면 틀림없이 이점들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수행을 해야 된다는 거라. 그런데 자꾸 사람들은 핑계 대고 빠지려고 그럽니다. 나중에 지나고 나보면은 수행하기 싫어서 하는 게으름들이 더 많았지, 실제 무슨 일이 있어서 빠지는 것들은 그게 급한 일이 아닐 것 같으면 거의 대부분 없다는 거라. 마음이 수행을 하기 싫어할 것 같으면 도반이 아무리 많아도 수행 안 하고 가버립니다. 그러지 말고 3시까지는 수행 도반들하고 같이 수행하겠다 하고 마음을 먹고 왔으면 그거 채워라는 거라.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와가지고 수행 안 하면 또 의미는 없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가볍게" 하는 훈련이 될 것 같으면 수행하는 것이 오히려 재미가 있습니다. 왜? 적어도 5초에 한 번씩은 사띠를 하는 걸 아니까, 5초에 한 번씩이라도 사띠를 하라는 거라. 5초에 사띠 한번 하고, 이렇게만 해도 사띠를 했을 때 마음은 굉장히 가벼워집니다. 깃털처럼 가벼워집니다. 그것들을 경험하고 나면 "아! 사띠가 이렇게 좋구나" 하는 걸 아는 거라. 그래서 수행 도반과 함께 수행하려는 마음들을 자꾸 가지도록 하면 됩니다.

 

③ 배우고 법문 듣기를 계속하기

그다음에 세 번째가 배우고 법문 듣는 거 계속하는 겁니다.

법문을 들을 때 대부분 보면 잘못하고 있는 게, 자기한테 맞는 것만 법문을 들으려고 합니다. 근데 법문은 그렇게 들으면 안 됩니다. 물론 자기 수행에 도움이 되는 법문들이 있으니까 그것을 들으려고 하겠지만, 그냥 법문은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하고 다르지 않다고 할 것 같으면 그냥 들으라는 거라 그 법문을.

이번에 빤냐와로 스님 법문 중에서 "수행 기초편 1편부터 10편까지 듣겠다", 그냥 1편부터 10편까지 그냥 들으라는 거라. "이번에 집중 수행하는 거 1편부터 10편까지 듣겠다", 그냥 그렇게 들으라는 거라.

 

법문 듣기를 그런 식으로 해나가면 그것은 수행에서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지금 현재는 그것이 해당이 안 되는지 몰라도 그 법문 내용 중에 하나가 탁 나에게 와 닿아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 수행하다가 걸릴 때 그 법문이 탁 떠오릅니다.

스님이 태국 가서 처음 수행을 한 단계 탁 발전시킨 계기가 바로 그겁니다. 어느 스님이 법문할 때는 듣고 싶은데, 어느 스님이 법문할 때는 영 재미가 없어서 안 듣고 싶으니까 안 갔어요. 근데 큰 스님이 뭐라 하더라고. 왜 그렇게 법문을 그렇게 듣느냐는 거라. “그냥 가서 들어라. 언젠가 너에게 도움이 된다.”

근데 실제 그 스님이 법문할 때 아무것도 내 귀에 들어온 게 없었거든. 근데 한참 지나고 나서 수행하다가 막혔는데, 그 유명한 스님의 법문이 생각나는 게 아니고 그 스님이 한 말 중에 하나가 탁 떠오르는 거라.

 

그래서 "법문은 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가려서 듣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들어라." 이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중에 수행에 도움은 됩니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한테 이익되는 것만 법문을 들을 것 같으면, 그거는 수행에 장애요소로 다가와집니다.

자기가 먼저 수행의 다음 단계를 예측을 하게 되는 거라. 수행이 그렇게 나아가야 되는데, 예측하는 마음이 먼저 가 있는 거라. 그럼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경우는 다 틀릴 수밖에 없는데 왜 거기에 자기가 끼워 맞춰져야 되는데?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거라. 그래서 지금 현재 이익되는 법문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법문은 있는 그대로 자꾸 들으려고 하라는 거라. 시간이 작고 많고를 떠나가지고 그렇게 법문을 듣는 훈련들을 자꾸 하시길 바랍니다.

 

④ 집중 수행에 참여하기

그다음에 네 번째, 집중 수행에 참여하기.

가끔씩은 집중 수행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거 다 잊고 오로지 수행하는 시간만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데 집중 수행만 또 고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수행할 때는 잘 갔는데 돌아오고 나면 또 일상생활에서 다 까먹어 버리고 ‘아, 또 집중 수행하러 가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살게 되고, 또 그러다가 집중 수행가서 좋았다가 또 들어오고 나면 또 도로아미타불이고, 그렇게는 하지 말고.

 

집중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평상시에 해왔던 수행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겁니다. 집중하는 힘들도 커져야 되고 사띠하는 힘들도 커져야 됩니다. 그렇게 커졌을 때 그것이 일상생활에 돌아와서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다시 유지가 돼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집중 수행은 그냥 ‘집중수행해야 되겠다’는 병만 키워버리게 되는 거라.

 

그리하더라도 1년에 한두 차례씩은 집중수행하는 시간들을 반드시 가지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못하는 것들은 집중수행을 통해서 한 단계 증장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거라.

수행을 통해서 윤회로부터 벗어나야 되는 것, 또 수행을 통해서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법을 익혀 나가는 것, 그것들을 달성을 해나가려면 집중수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는 것들을 명심하도록 해서 1년에 한 차례 두 차례씩은 꼭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⑤ 언제든지 다시 시작하기!

그다음에 다섯 번째, 이렇게 얘기해도 또 수행 안 하는 사람은 또 까먹고 안 합니다. 언제 내가 수행했나 싶을 만큼 까먹어 버립니다. 살아가기 바빠서. 그거는 좋다는 거라. 다시 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되는데 ‘아이고, 안 했는데... 이제는 못 하겠다’ 하는 마음이 앞서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수행은 숨이 탁 끊어지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 언제든지 시작하는 시점에서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지고 바로 수행의 결과를 얻어낼지 하는 것은 누구도 모른다는 거라.

 

한참 동안 수행 안 해도 좋습니다. 근데 다시 돌아와서 수행하는 마음들은 항상 지니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돌아갈 고향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될 사띠입니다. 사띠하는 것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이 생에서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생을 잘 살았다고 보장도 할 수 없고, 다음 생을 보장할 수 있는 법도 없다는 거라.

지금이라도 잠깐이라도 내가 사띠 하는 훈련, 그러고 나서 또 까먹어도 괜찮아. 그러고 나서 또다시 잠깐이라도 바르게 사띠하는 훈련들을 자꾸 할 수 있도록 해서, 다시 리셋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훈련들을 자꾸 해서, 수행하는 마음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는 언제든지 여러분들이 다시 수행할 때 기억을 했다가 좀 더 수행하는 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활용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