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7 일상수행법문

「윤회의 진실」 세미나_축사법문_빤냐와로스님_20161203.서울

담마마-마까 2025. 1. 27. 18:14

https://youtu.be/JZ_E-SyS1Y8?si=aiFUv4vlcWV4_gR9

 

* 「윤회의 진실」 세미나_축사법문_빤냐와로스님_20161203.서울

(08:20초 이후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편하게 좀 앉으십시요.

 

사회자: 그럼 먼저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수지하는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빤냐와로 스님: 합장 한번 해보실까요? 프린트물 앞에 있죠. 스님이 선창을 하면 따라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예. 법우님들 그리고 오늘 나눠드린 책자에 보면은 프린트물 2페이지에 여기 예불의식문이 있습니다.


빤냐와로 스님: 같이 해보겠습니다.

 

[법회의식 시작]

 

아라항 삼마-삼붓도- 바가와-, 붓당 바가완땅 아비와-데-미.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존귀하신 분,

그 존귀하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최상의 예배드립니다. <일배>

 

스왁-카-또- 바가와따- 담모-, 담망 나맛사-미.

그존귀하신 분에 의해 잘 설해진 위없는 담마, 그 담마에 머리 숙여 예배드립니다. <일배>

 

수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상강 나마-미.

부처님을 따라 잘 수행하는 제자들인 상가, 그 상가에 머리 숙여 예배드립니다. <일배>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닷사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닷사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닷사

그분 존귀하신 분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께 예배드립니다.

 

붓당 사라낭 갓차-미. 부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담망 사라낭 갓차-미. 담마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상강 사라낭 갓차-미. 상가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두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두번째도 부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두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두번째도 담마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두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두번째도 상가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따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세번째도 부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따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세번째도 담마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따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세번째도 상가를 의지하여 나아가겠습니다.

 

①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살아있는 생명 해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② 아딘나-다-나-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주지 않는 물건 가지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③ 까-메-수 밋차-짜-라-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잘못된 성적인 행위를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④ 무사-와-다-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⑤ 수라-메-라야 맛자 빠마-닷타-나-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이마-니 빤짜 식카-빠다-니

실-레-나 수가띵 얀띠, 실-레-나 보-가삼빠다-,

실-레-나 닙부띵 얀띠, 따스마- 실-랑 위소-다예-.

이와 같은 계를 잘 지님으로써 행복해지고,

이와 같은 계를 잘 지님으로써 부유로워지며,

이와 같은 계를 잘 지님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니,

이와 같은 계를 청정히 지녀야 합니다.

 

[대중] 아-마 반떼-. 잘 알겠습니다, 스님.

 

 

먼저 오늘 「윤회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해피법당에서 하는 세미나를 축하드리고, 교단의 스님과 교단도 ... ... 상황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동참을 했는데, 좀 세미나는 지루하죠. 아마 조금 지루한 부분은 있을 겁니다.

근데 참 다행스러운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뿐냐디빠 스님 해피스님은 윤회를 부정한다 하고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오늘 세미나에서 ‘제가 윤회가 있다, 윤회의 진실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하고, 발표를 해서 일반적으로 그렇게 오해했던 분들이 그런 오해를 풀리는 그런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고,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한국적인 상황에서 '진아'에 대한 얘기들로써 한창 사조를 이끌어가더니 그 진아에 대한 것도 무아에 인해서 반박을 받고 하니까, 지금은 '윤회없음' 이라는 것들로 또 하나의 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출가를 한 스님이든 아니면 재가자이든 맨 처음 배우는 것들이 윤회에 대한 것들입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그냥 열심히 수행만 하고 청정하게 살아가면 되기 때문에 윤회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닌데, 실제 재가자들에게는 윤회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들을 많이 봐옵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 평생을 두고도 미심쩍어하는 일이 또 윤회 부분입니다. ‘과연 윤회를 할까 말까?’에 대해서 미심쩍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차이가 나는 것이 뭐냐 하면, 그렇게 미심쩍어 하지만 또 스승님이 윤회는 한다. 또 경전에서 윤회에 대해서 가르치고 부처님도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틀렸다고 얘기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는 겁니다.

 

본인이 윤회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려고 할 것 같으면

선정삼매를 통해서 적어도 제4선정 이상에서 그 선정에 자유롭게 자재하는 상태에 머무르게 됐을 때, 자재하게 된다는 것은 언제 내가 선정에 들고, 언제 선정에서 나오고, 그 선정 시간을 얼마나 유지를 할 것이고, 또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선정삼매에서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이 될 때를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걸 다섯 가지 자재라고 그러는데, 그런 다섯 가지 자재가 사선정에서 무르익어 있는 상태에서 윤회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체험하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은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적어도 무아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을 한 상태, 그래서 갈애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됐을 때, 여러분들 해피법당에서 잘 배워서 세 가지 갈애 알죠? 감각적인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그다음에 존재하지 않으려고 하는 갈애. 이것은 해석하는 것이 조금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게으름 부릴려고 하는 갈애라고 칩시다.

그렇게 세 가지 갈애들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이 없는 상태에 이르르게 되었을 때 그러한 상태는 대부분은 불환과 이상에 이르러야 됩니다. 대부분은 아라한이겠죠. 그러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는 윤회를 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은 전혀 윤회에 대해서 가타부타 하질 않습니다.

그런데 일반 대중들은 그런 상태에 이르는 것이 참 힘이 들고 또 그것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간혹 경전을 잘못 해석하거나 아니면 경전의 윤회 부분에 대한 것들을 일부만 발췌해서 그것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윤회가 없다고 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뭘 얘기할까요? 뭘 윤회라고 할까요?

죽고 나서 다음생으로 가는 것, 이것이 윤회입니까?

(수행자 대답...) 예. 그것도 윤회의 일종입니다.

근데 윤회라고 하는 것은 흐르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사라(saṁsāra)'라고 하는 것은, 엄밀하게 얘기할 것 같으면은 '움직여 나가는 것, 변화해 나가는 것, 갈팡질팡 제자리를 못 찾아서 조건 따라서 다음 것들이 생겨나는 것들을 윤회'라고 얘기합니다.

 

코를 한번, 숨을 딱 한번 막아보십시요. 1분만 참아볼 수 있겠어요? 힘들죠? 괴롭죠? 왜 그렇게 괴로울까요? 숨을 쉬려고 하는 갈애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숨을 쉬어야만이 살아있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것 같으면은 갈애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갈애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근데 숨도 마찬가지로 들이쉬었으면 반드시 내쉬어야 됩니다. 우리 육체도 점점 변해가는 거고, 나머지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도 변해가게 됩니다. 한순간도 멈춰있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한 변해가는 것들도 윤회의 영역에 속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여러분들이 겪는 윤회는 어쩌면 여러분이 경험하는 전부일 수가 있습니다. 죽고 나서 얘기만 할 것 같으면 윤회를 여러분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윤회에 대한 정의들도 불교적으로 분명하게 내려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분명하게 단언을 해놓은 것이 뭐냐면

"업과 윤회는 불교만의 독특한 특색을 지닌 가르침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힌두교적인 윤회와 불교적인 윤회는 분명히 틀리는 것이고, 힌두교적인 업과 불교적인 업은 분명하게 틀립니다. 그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분만 하고 나더라도 적어도 윤회 부분에 대해서 윤회가 있고 없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것들로 인해서 의문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또 하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10가지 무기(無記)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10가지 대답을 할 수도 없고, 대답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대답을 할 수 없는 것들을 10가지 무기의 영역으로 속해놨습니다. '이 세상에 끝이 있는가 없는가?' 이런 것들, 논리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바뀌는 것들이기 때문에 어떤 답을 해도 다 정답이 없다고 보는 부분입니다.

그럼 과연 윤회도 그 무기의 영역에 속해 있을까요? 없죠!

윤회는 분명하게 부처님이 정의를 해놨습니다. 그런 대답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경전 어디를 보더라도 윤회의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구구절실하게 부처님이 잘 설해놨습니다.

 

똑바로 경전만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에 대한 오해는 없다 하는 부분입니다.

무기에 속하지 않는 건데, 여러분이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세미나를 통해서 ‘아, 확실히 윤회라고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정립을 해서 그러한 의문을 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하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과 똑같이 사선정을 자유롭게 경험한 분들이나 아니면 성스러운 과위에 오른 성인들이 아닌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테라와다 불교 국가에서는 윤회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삼보에 대한 것들이 정립이 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입니다.

여러분들 스승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 여러분들 스승이다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그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그것들을 내 마음대로 조작한다고 할 것 같으면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 경거망동한 행동은 적어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설혹 내가 경전을 통해서 그것들을 보고 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해피스님이나 스승을 통해서 윤회에 대해 설하는 것들 그대로 받아만 들인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본인 자신은 가장 불교도에서 중요한 삼보에 대한 확립들은 조금씩 해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은 적어도 윤회에 대한 것들을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자리는 그 의문들을 풀기 위해서만 온 자리는 아닙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또 대론들이 있을 수 있고 답이 안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부처님은 윤회를 설했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 가르치는 스승들도 윤회를 설하고 있고, 지금도 그런 윤회를 경험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놓치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오늘 여기 듣는 것으로서 윤회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듣는 것은 오감을 통해서 듣는 부분들입니다. 오감을 통해서는 윤회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실제적으로는 없습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선정에 들든지 성인의 과위에 올랐을 때 윤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 여러분이 그냥 오감을 통해서 그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이런 자리가 그래도 중요한 것들은 그래도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진정성이다 하는 것들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갈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을 바래보면서, 오늘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다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 따라서 살아가면서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짯따-로- 담마- 왓단띠 아-유 완노- 수캉 발랑.

사-두 사-두 사-두

 

[사회자] 예. 진용 스님의 인사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