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까딴뉴따 까따웨디」 _냐나로까스님 입멸1주기 추모법회_빤냐와로 스님 법문 및 당부 말씀 (20150208)

담마마-마까 2025. 4. 7. 09:44

https://youtu.be/oHtZ0-ApQOs?si=ZBwQK9tKpDqGvVuC

 

* 「까딴뉴따 까따웨디(kataññutā katavedi)」 - 빤냐와로 스님 법문

<37:56초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편하게 좀 앉으십시오.
원래 이 자리에는 이사장 스님이 법을 설해야 되는데 이사장 스님이 지금 외유 중이시고, 뭐 그냥 법납 순으로 하다 보니까 제가 하게 됐습니다. 이해를 해주시고 조금이나마 이곳에 와서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를 하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을 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 재가 되지만은 그 사람의 이름이나 영향력은 계속된다." 하고 나옵니다. 냐나로까 스님 인제, 저기 이 양반 돌아가신 지 딱 1년 됐죠? 이미 재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냐나로까라는 이름은 아직 우리가 기억하고 있고 또 그 스님이 일반 재가자들한테 가르쳐준 가르침이나 수행은 계속해서 그 방법대로 쭉 수행하고 따라가고 하게 됩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마하보디 선원이 없어지기 전에는 아마 이름하고 영향력은 계속 되겠죠.

없애버릴까? 그냥? 이참에 그냥? 뵈기도 싫었는데 그냥 이참에 싹 없애버릴까? 아까 여기 운영위원장의 추모사하고 그다음에 교단 입장에서의 교단운영위원장 스님의 추모사가 있었습니다. 책에 잘 써져 있는데, 어찌 보면 참 자기 입장밖에 얘기를 안 한 것 같애.

 

마하보디 선원에서는 냐나로까 스님이 이런이런 일을 해서 그걸 추모하면서 우리 선원이란 생각이 강하게 드러나죠.
또 교단 입장에서는 ‘아냐. 이 마하보디 선원은 교단 소속이고 교단 것이기 때문에 교단에서는 여기서 이런 일을 하겠다’ 하는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두 개를 절충하면 참 좋은 형태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빨리어 단어 중에 까딴뉴따(kataññutā)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까딴뉴따(kataññutā)"라는 게 뭐냐면 "빌린 것을 아는 지혜", "빌린 것을 아는 덕"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교단 소속이라 하더라도 뭐 교단에서 이 마하보디 선원 짓는데 10원 하나 보탰어? 안 보탰거든. 단지 이제 교단 소유물이 됐으니까 이것을 빌렸다는 생각을 가질 수가 있어야 되는 거고.

재가자 여기 마하보디 선원에 소속되어 있는 재가자 분들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사용하니까 내가 주인인데 내가 그리고 마하보디 선원을 위해서 참 열심히 노력을 했기 때문에 이것이 정이 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근데 죽고 나서 지 몸 하나 가져가지 못하는 건데 이건 넘의 거잖아. 지 몸에 딸려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데 있는 건데, 이거 뭐 그냥 빌렸다는 생각 좀 해버리면 안 되나? 교단도 이것을 빌렸다는 생각을 해야 되고, 마하보디 선원 식구들도 이것은 내가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이다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이제 빨리어 단어에서 까딴뉴따(kataññutā)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다음에 까딴뉴따에 따라서 반드시 나오는 단어가 뭐냐면 "까따웨디(katavedi)"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빌렸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갚아줘야지 안 갚아주면 그건 도둑놈이지. 넘의 돈 빌리더라도 그걸 갚아줘야 되는 것이고, 무엇이든 빌렸을 것 같으면 반드시 그거는 갚아줘야 됩니다. 그래서 "빌린 것에 대해서 되갚아 줄려는 마음을 내는 것", "그렇게 되갚아주려는 덕이 있는 것"들을 까딴뉴따-까따웨디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선원에 냐나로까 스님이 남긴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근데 우리는 과연 냐나로까 스님한테 뭘 되돌려주고 있는 거라?

1년을 가만히 한번 돌아보십시오. 여기 와가지고 스님한테서 수행 배우고 가르침 받고 한 거 1년 동안 여러분들이 뭘 얼마나 돌려줬습니까?
또 교단에서는 교단대로 그냥 방임해가지고 있었고.

 

인제는 우리가 그래도 이제 마하보디 선원이 안정이 되어 가니까 이제는 돌려줘야 될 적절한 시점이 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하보디 선원에서는 이때까지 해왔던 거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또 해나가야 되고, 그렇게 해나가는 것이 냐나로까 스님한테 내가 돌려주는 길이라. 그리고 그 가르침 따라서 계속적으로 나가서 수행을 해나가야 되는 것이고.
또 교단에서도 스님이 원했던 거 그거 여기 마하보디 선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자꾸 해나가야 되고, 돌려줄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스님이 입멸하기 한 몇 개월 전부터 받아온 게 있습니다. 아 이 마하보디 선원은 여러분도 알겠지만, 마하보디 선원이 참 어찌 보면 열악한 조건입니다.
덩치는 큰데 여기 음지가 돼가지고 난방비도 엄청 들게 되고 여름엔 또 엄청 덥게 되고, 그러니까 이 건물이 한두 개라? 몇 개나 되는데 이거 유지하려다 보면 똥 빠져요.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러 오고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하면 참 좋은데 그마만한 여건은 못 됩니다. 교통편도 불편하지, 여러 가지 또 불편한 부분들도 있지, 그거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입멸하기 전에 계속적으로 얘기한 것이 뭐냐면, “아 여기 마하보디 선원을 상가 스님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이 자리가 상가 스님들이 또 계속적으로 다른 스님들을 배출할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가 됐으면 참 좋겠다.” 어차피 지금 여기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곳이고, 또 어차피 누군가 스님이 있어가지고 지속적으로 재가자들을 수행 지도하고 법을 설해야 되기 때문에, 여러 스님이 있을 것 같으면 그만한 이익들이 많다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빨리 서둘려고 했던 것이 시마홀을 건립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버마 가가지고 시마홀 이름을 탁 받아왔을 때 되게 좋아했었어요. 그 이름 그때 뭐라고 뭐라고, 뭐라 뭐라 했던 기억이 나는데. 왜 그러냐 하면, 시마홀 이름을 받아와야만이 여기에 이제 시마홀을 건립을 하면서 형식에 맞게끔 건립을 하고, 또 그 시마홀이 있어야만이 상가가 여법하게 형성이 돼야 됩니다. 그 시마홀이 없으면 스님들이 아무리 있어도 반쪽짜리 밖에 안 돼.

그래서 그런 기억이 참 많이 나는데,

 

한번 인제는 우리가 진지하게 한번 좀 생각을 해봅시다. 어떻게 하면 이제 우리가 이 마하보디 선원에서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가지고 바르게 돌려줄 수 있을 것인가?

물려받고 빌렸으면 이제는 제대로 좀 돌려주자는 거라. 재가자들도 마하보디 선원 식구들도 ‘아, 참 좋다’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또 스님들도 원만하게 ‘아, 참 여기 가면은 평온하게 머물 수 있고 여기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하는 것들이 될 수가 있고, 그런 것들을 인제는 적어도 인제 1년 동안 유예 기간을 뒀으니까 인제는 조금 머리를 맞대고 바른 방향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에는 신비한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놀랍니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안 놀랩니다. 하늘에 있는, 겨울이니까 눈이 떨어진다, 눈 맞고 있는 사람이 ‘저 눈 좀 안 차가웠으면 좋겠다’ 아무리 서가지고 내리는 눈은 예쁜데 저게 좀 차갑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따뜻한 눈이길 바란다 해가지고 바라집니까? 안 바라집니다. 아무리 저기 있는 파란 하늘이라 하더라도 그 파란 하늘이 노란색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해가지고 파란 하늘이 노란색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건 정해진 겁니다. 눈은 내리면 반드시 차갑게 돼 있는 것이고, 하늘은 파란색을 띠게끔 돼 있는 거죠. 정해진 이치입니다.

여러분 죽는 거는 정해진 거 아닙니까? 냐나로까 스님 죽는 거는 정해진 거 아니에요? 정해진 이치입니다. 정해진 이치가 그냥 찾아왔을 뿐입니다. 슬피 울고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입니다. 당연히 와야 될 사항들이 그대로 온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죽음을 맞아야 되는 존재라는 생각은 그래서 항상 잊지 말아라 하고 이야기합니다.

죽음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가지도록, 그래서 내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반드시 마칠려고 해야 됩니다.

 

가끔씩 스님이 농담을 합니다. “나는 내가 할 일들을 갖다가 다 할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한 120살 정도 돼야 죽어야 될 거야.”하고 얘기합니다. 이 사람도 바르게 인도해 줘야 되고, 저 사람도 바르게 인도해 줘야 되고, 온통 눈에 보이는 게 그거라. 그러다 보면 나는 매일같이 열심히 살아야 돼. 나에게 죽음이 다가온다고 할 것 같으면, 그렇게 자꾸 인식하고 있을 것 같으면 적어도 난 오늘 사는 거 헛되이 살면 아까워.

 

냐나로까 스님 입멸했습니다. 급작스럽게 입멸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나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면 나는 지금 사는 것이 아까워.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 돼. 언제 다 갚아주고 갈 거라? 부모님한테 빌린 뭐 부모님에게 은혜도 갚아야 되는 거고, 냐나로까 스님한테 입었던 은혜 그것도 내가 되갚고 가야 그래도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는 하고 이 세상을 마칠 거 아니라? 남에게 빚을 지우고 할 일들을 다 못하고 할 것 같으면 그건 다음 생에서 또 받아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살아가면서 ‘아, 내가 하루빨리 내가 해야 될 일들을 다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또 하나 죽음에 대한 것들을 그리고 돌아가신 분의 성품들이나 돌아가신 분의 영향력을 계속 생각을 하고 있으면 또 좋은 것들이 뭐냐 하면 공포감이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것들이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뭔가 차가 확 다가온다, 대부분 사람들은 ‘엄마야’ 하고 놀랍니다. 근데 나는 언제든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그냥 담담하게 바라봅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사람들이 담담해지면서 죽음을 맞는다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버리고 그냥 죽음을 받아들여 버리니까 받아들이면 담담해지는 거라. 공포감이 없어집니다.

 

살아가면서 급작스럽게 무슨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차에 갑자기 치이기도 할 것이고, 급작스럽게 뭔가 몸에 병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 아니면 급작스럽게 가족 중에 무슨 일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 수시로 찾아올 겁니다.

그걸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는 있어야 될 거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배웠고 또 스님한테 그렇게 배워가지고 수행도 열심히 했는데.

냐나로까 스님은 그걸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공포감이나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받아들일 때야만이 삶에 대해서 조금 더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걸 그냥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좋은 대상일 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갑작스럽게 차가 나타났을 때 그건 좋은 대상입니다. 나에게 죽음이 닥쳤을 때 그것도 좋은 대상입니다. 얼마나 좋은 대상을 만났느냐는 거라.

그래서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힘들을 여러분들도 가질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빨리어 경전을 하나 읽어보겠습니다.

 

『① Jarādhammomhi jaraṁ anatīto.

자라-담몸히 자랑 아나띠--.

: 나는 계속하여 늙음에 쫓기고 있으며 이 늙음을 피할 길은 없네.

Byādhidhammomhi byādhiṁ anatīto.

브야-디담몸히 브야-딩 아나띠--.

: 나는 계속하여 병드는 현상에 쫓기고 있으며 이 병듦을 피할 길은 없네.

Maraṇadhammomhi maraṇaṁ anatīto.

마라나담몸히 마라낭 아나띠--.

: 나는 계속하여 죽음에 쫓기고 있으며 이 죽음을 피할 길 없네.

Sabbehi me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삽베-히 메- 삐예-히 마나--히 나---- 위나---.

: 나는 사랑하는 이들과 모든 소유물을 남겨두고 떠나가야만 하네.

Kammassakomhi, kammadāyādo,

kammayoni, kammabandhu, kammapaṭisaraṇo.

깜맛사꼼히, 깜마다---,

깜마요-, 깜마반두, 깜마빠띠사라노-.

Yaṃ kammaṁ karissāmi kalyāṇaṁ vā pāpakaṁ vā

tassa dāyādo bhavissāmīti.

양 깜망 까릿사-미 깔르야-낭 와- -빠깡 와-

땃사 다--- 바윗사--.

Tasmātihamhehi evaṁ abhiṇhaṁ paccavekkhitabbaṁ.

따스마-띠함헤-히 에-왕 아빈항 빳짜웩키땁방.

: 이것은 내 자신의 업이기에, 내가 업의 상속자이고, 업으로 인해 태어나서, 업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업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라네.
나는 내가 짓는 착한 행위이든 악한 행위이든, 그 결과를 자기 자신이 받아야만 하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와 같은 다섯 가지를 항상 관찰해야만 하네.

Abhiṇha paccavekkhaṇa pāṭha (아빈하 빳짜웩카나 빠-)​​】

 

이게 항상 관찰해야 될 다섯 가지에 대한 것입니다.

출가한 스님이 항상 관찰해야 될 10가지에 대한 것, 또 어떤 경우에는 항상 관찰해야 될 2가지에 대한 것, 어떤 경우에는 3가지, 4가지 그런 것들도 있습니다.

근데 이제 여기서는 다섯 가지를 예를 들어놓았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거라. 그리고 실제로는 모든 현상들은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이기 때문에 나·나의 소유물이라고 하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 하는 거라. 거기에 대한 집착하지 마라는 거라.

그다음에 마지막 다섯 번째는 지어놓은 업은 그거 어떻게 하지 못한다. 내가 선한 마음을 일으켰으면 선한 업을 지을 것이고, 악한 마음을 일으켰으면 악한 업을 지을 것이다. 그럼 그 지은 업은 그대로 자기가 받고 있다는 거라. 그걸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거라.
그것은 정해진 법칙입니다. 이게 다섯 가지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지 않을 수가 없고, 내가 집착할 만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열심히 살아야 되고, 선한 마음을 내서 선한 일들을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한 일들을 자꾸 하도록 해야 됩니다. 설혹 내가 이생에서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선한 일들로 인해서 선한 과보를 받을 때는 다음이라도 바라볼 수가 있지.
더더구나 선한 과보들을 쌓아놓은 것들은 언젠가는 그것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돼 있고, 이생에서 선한 마음으로 인해서 수행을 할 때 빠른 속도로 나는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다는 거라.

 

냐나로까 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음은 그대로 당신 자신이 받았습니다. 이 잘 지어놓은 거 어떻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평상시 때 그래도 여러분들에게 참 잘해줬고 좋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래도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와서 있는 겁니다. 선한 과보들을 닦아놨지 못했을 때 선한 마음을 내지 못했을 때는 그 결과는 받지 못하는 건데 그래도 이렇게 모여 있다는 거라.

 

그런데 아쉽게도 그 사실을 이 냐나로까 스님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눈물 흘릴 수도 없고 듣지도 못합니다. 우리와 다른 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단지 우리는 그걸 통해서 우리도 저렇게 되니까, “우리는 바르게 그래도 이생에서 살자” 하고 우리끼리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 이걸 이 죽음을 통해가지고.

 

이제는 마하보디 선원이 그래도 바르게 자리를 잡고 또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상가 스님들과 또 마하보디 선원 식구들이 힘을 합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스님도 상가 일원으로서 힘을 보탤 수 있으면 보태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 다섯 가지 법을 관찰하여 집착하지 않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건강 젊음 사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욕구로부터 벗어남이 평온하다라고 알아서 닙바나를 목표로 정진의 마음을 일으키자.

 

"까딴뉴따 까따웨디(kataññutā katavedi)"

빌린 것들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되고, 그 빌린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다시 돌려줄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적어도 여러분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또 냐나로까 스님의 제자들이고, 상가 스님들이 동일한 상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까딴뉴따 까따웨디"는 실천되어 나갈 것으로 확신을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빤냐와로 스님 당부 말씀

<1:41:30초부터 시작됩니다.>

 

편하게 앉아 보십시오.
마하보디 선원 선원장 스님이 누굽니까? (재가자 대답 : 냐나로까 스님)

냐나로까 스님 입멸하셨는데 1년 전에. 2대 선원장은 사사나 스님, 이사장 스님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사나 스님이 여기 상주하면서 수행 지도하고 할 겁니다.

단, 상주하고 있지만은 다른 곳에서도 “나는 우리 스님 모시고 여기 집중 수행 좀 하겠다.” 하면 사사나 스님이 비켜줘야 돼.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부산 붓다의길따라 선원에서 ‘우리 이번에 3일 수행하겠다. 그런데 나는 우리는 우리 스님 배운 대로 그냥 우리 스님 모시고 할란다’ 할 것 같으면 그 스님 모시고 와가지고 여기서 수행을 집중 수행을 3일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대신에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마하보디 선원 식구들도 당연히 거기에 동참할 사람들은 동참하고 이렇게 할 수가 있고, 그래서 그 스님이 주가 돼서 법문하고 수행지도를 하고, 또 저쪽 어디 서울 쪽에서 수행을 하겠다 할 것 같으면 그 스님 모시고 하고, 만약에 그 스님이 아니고 그냥 그래도 우리는 그 선원장 스님 사사나 스님 모시고 사사나 스님 지도받겠다 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마하보디 선원이 마하보디 선원의 자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돌아가는 체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외부에서 와서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대신에 외부에서 올 때는 외부에서 공양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들은 거기서 다 해결이 가능해야 돼요. 마하보디에 의존해가지고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공양할 수 있는 수행자들이 있고, 또 집중 수행을 해보겠다 할 것 같으면 여기는 언제든지 그렇게 개방을 하기로 상가에서 결정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2대 선원장은 사사나 스님이지만 3대 선원장은 또 누가 될지 모릅니다.
이사장 스님 임기가 몇 년이죠? 3년입니다. 3년. 나는 2번 만기 해 먹었거든. 그래서 인제 3대 이사장 사사나 스님이 3년을 하게 되는데, 3년만 할지 또 한 번 더 할지 또 아니면 계속 장기 집권할지 그거는 몰라요. 근데 인제 그다음에 만약에 누군가 다른 이사장 스님이 바뀌면 여기 선원장 스님은 그 바뀐 스님이 여기 선원장 스님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 테라와다 불교의 본부 선원 역할을 이 마하보디 선원이 하게끔 됩니다. 그게 이제 교단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기존에 마하보디 선원에서 기존에 해왔던 프로그램들을 갖다가 운영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거는 그대로 유지를 해나가게 됩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 전에 해왔던 프로그램보다도 훨씬 프로그램은 많이 늘어나지게 됩니다.

 

단지 이제는 예전같이 공양간에 누군가가 하나 상주해가지고 공양을 하는 시스템은 이미 바뀔 겁니다.

그리고 수행하러 온 사람들도 생각 자체를 바꿔야 됩니다.

‘나는 수행하러 왔지, 공양 한 끼라도 해주러 안 왔다.’ 오지 마세요.
일주일 수행하러 왔다. 한 끼는 여러 사람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하고 합심해가지고 ‘이 끼는 내가 공양을 지어가지고 같이 온 수행자와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공양을 할 수 있게끔 몇 명씩 모여서 한 끼를,

 

그래서 돌아갈 수 있게끔 해서 공양간에 누구도 상주를 해서 할 수 있는 체제는 이미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러 오신 분들도 적어도 한 끼는 내가 그 시간에는 공양간에 가서 뭘 해도 도와주고 해야겠다. 그리고 그 나머지 시간, 그래봐야 공양 준비하는데 한두 시간이면 되잖아. 나머지 시간은 수행만 하겠다, 하는 그런 생각으로 프로그램들을 운영을 하고 생각들을 바꿔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양간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나면 아마 여기는 또 바꿔야 될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선 여기는 어찌 보면 돈이 많이 든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아마 모르긴 해도 난방 부분을 대대적으로 손질을 해야 될 것으로 봅니다. 이사장 스님 오면.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스템으로 돼 있어요. 그래서 아마 모르긴 해도 돈이 들어도 난방시스템 그리고 냉방시스템 자체를 전체적으로 아마 다 바꿔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오면 자기 방은 일단 따뜻하게, 그리고 이 법당은 따뜻하게 유지할수 있도록 항상 유지가 되도록, 그래서 수행하러 온 사람들이 적어도 추워서 더워서 수행 못 하겠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난방시스템 자체를 전체적으로 다 갈아야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오든 두 사람이 오든 수행하러 오면 수행비 내고 왜 떨고 가야 돼? 수행비 내고 와가지고 왜 수행 지도도 못 받고 일만 하고 가야 돼? 그건 아니라는 거라.

 

그 대신에 누구든지 수행하러 올 것 같으면 하루 동안에 1시간 정도는 반드시 울력 시간이 있다는 겁니다. 대중들 공히 울력 시간이 정해질 겁니다.
정해지면 그 시간에는 지가 수행하고 싶어도 못 해. 다 대중들이 참여해가지고 뭐 벽돌 부서진게 있으면 벽돌 세우는 일들을 해야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아마 모르긴 해도 마하보디 선원이 수행자들이 와서 수행을 하는데 조금 더 그래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수행처가 될 거라고 봅니다.

 

그 대신에 여러분들도 일부 양보할 건 양보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나 돈 냈으니까 일체 안 하겠다.’ 아예 돈 내지 말고 오지 마. 그런 사람들은 수행해봐야 안 늡니다. 그건 스님이 단언을 합니다.

그리고 외부에 있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수행 집중수행처가 없는 분들은 여기 와서 수행 집중수행을 하라는 거라. 그리고 여기 마하보디 선원에 돈 좀 보태주고 가. 그래야 여기 재정이 자립이 돼.

그렇게 해서 서로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각각의 그룹들은 여기를 정점으로 해서 집중수행할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먼저 만들어야 됩니다.

 

그럴려면 스님들이 상주할 수 있는 곳이 만들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스님들이 거주하는 공간들을 먼저 마련할 수 있도록 그렇게 아마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도 기존에 있는 마하보디 선원에 있는 식구들도 염두에 두고 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꼭 상가 스님들을 위한 상가스님 절만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테라와다에 소속되어 있는 분이면 테라와다에서 수행하고 싶어 하고 법을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은 여기 와서 수행하고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되도록 그렇게 조치를 하며,

스님들이 결의를 했다는 걸 먼저 알려드립니다.

 

아마 2월 20일인 24일인가에 사사나 스님이 오실 겁니다.
그러면 모르겠는데 6월 말 정도에는 사사나 스님이 상주를 하고 또 다른 스님이 상주를 하고, 그렇게 되면 정상적으로 3월달부터는 정상적으로 법회들이 운영이 되어나갈 겁니다.

이때까지 1년 허송세월, 허송세월은 아니지만 어디 1년을 보낸 것에 대해서 조금 이제 우리가 바르게 이제는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건 잊어버리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 그럼 여기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자 우리 다 같이 "사-두" 한번 세 번 하고 끝내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