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자신의 엄격함을 지켜라. (20140617)
부처님 당시에 그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만 그 수행처에 같이 수행하면 다른 사람들이 짜증을 내고 수행하기 싫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얼마 수행 못하고 다른 데로 가버리든지, 또는 같이 수행을 안 해도 그 사람 행동거지만 보더라도 싫은 마음이 자꾸 일어나고 해서,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 사람하고 안 접할려고 하게 됩니다. 그런 스님이 한 분 있었어요.
목갈라나 존자가 왜 저럴까 생각해서 그사람에게 물어봅니다.
도대체 너는 어떻게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을 하느냐?
아, 똑같이 합니다.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부처님 당시 때는 강가에 가서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죠. 강가에 가서 몸 씻고 깨끗하게 해가지고 아침에 준비되면 다른 사람과 똑같이 탁발을 나가고, 그러고 나서 탁발 갖다오고 나면 점심밥 먹고, 밥 먹고 나서 조금 있다가 또 수행 좀 했다가, 그러고 나서 저녁때 되면 경전 좀 읽다가 그러고 잠이 듭니다.
목련 존자가 아무런 잘못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 다른 스님들 하고 똑같이 하니까. 패턴은 똑같거든. 그래서 이상해서 그래? 그러면 내일은 너하고 내하고 하루동안 같이 생활을 한번 해보자 해가지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가지고 여러분들로 얘기를 할 것 같으면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해야 될 거 아니라? 잠도 깰 겸 해가지고. 그걸 하는데 다른 사람들하고 틀린 거라. 세면대가 있을 거 같으면 어떤 사람은 세수를 하면 물이 많이 밖으로 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물이 안 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스님은 세수를 하고 나면 온 바닥이 그냥 물투성이야. 그러니까 조심성이 없는 거지.
그러니까 경전에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강에 가서 목욕을 하는데 첨벙첨벙하고 막 하니까 다른 스님들이 와서 몸을 씻을려고 하면 물이 자꾸 튀고 하니까 안 좋은 마음이 드는 거라.
그래서 목갈라나 존자가 그 스님한테 얘기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할 때 뭐 그렇게 첨벙거려가면서 세수를 하느냐는 거라. 아침에 세수할 때는 몸 깨끗하게 해가지고, 오늘 하루도 내가 열심히 살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도 내가 정말로 부처님 제자답게 잘 살겠다 하는 마음으로 할 거 같으면 그렇게 튈 이유가 없는데, 그걸 물이 좋다고 그냥 첨벙거리고 하니까 온데 물이 튄다는 거라.
세수할 때도 세수하면서 아, 내가 오늘 하루도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할 것 같으면 적어도 그렇게 많이 튀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너가 잘못했다 하고 얘기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탁발을 나갑니다. 탁발을 나가는데 나가자마자 목갈라나 존자가 되게 뭐라 합니다. 너는 아침에 탁발을 나가면서 뭔 휘파람을 불어쌌고, 땅에 돌이 있다고 돌을 탁 차쌌고, 왜 그렇게 걸으면서 가느냐는 거라.
길을 걸어갈 때 뭐 조그만 돌이라든지 깡통이라든지 있을 거 같으면 그걸 피해 가든지, 깡통을 집어서 버릴 데다가 버리든지 하면 되는 거지, 자기가 그 소리 들을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탁 차쌌고 하면서 왜 그렇게 가느냐는 거라.
탁발을 나갈 때는 반드시 걷는 데 마음을 집중해서 걸어라. 그럴 것 같으면 적어도 앞에 무엇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좋고 싫은 마음은 일으키지 않는다는 거라. 앞에 있는 조그만 돌멩이나 또는 깡통들이 내가 즐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거라. 이게 제자리에 놓여져 있지 않을 거 같으면 제자리에 놔주면 되는 거고, 버려질 때 버려지지 않았을 거 같으면 버려지는 곳에다가 버리면 되는 거라. 그냥 차분한 마음으로 그러면 될 거를 갖다가 그걸 그냥 자기가 놀이의 도구로써 삼는다는 거라. 그 스님이 목갈라나 존자한테 그냥 밥 받으러 가는데 그냥 밥만 받아오면 될 거 아니냐. 밥만 받아오면 될 거 아니냐는 거라.
그래서 목갈라나 존자가 되게 뭐라 합니다.
물론 밥을 받아야 내 몸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건 틀림없다. 그런데 밥을 받을 때 어떤 마음으로 받느냐는 것도 중요하듯이, 밥을 받으러 갈 때 어떤 마음으로 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니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고요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엄격하지 않을 거 같으면 그럼 어떡할 것이냐?
걸어갈 때는 걷는 데다가 마음을 집중해야 됩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거기에다가 마음을 집중해야 되지, 거기에 집중하지 않을 거 같으면 마음은 항상 놀거리에 빠지게 되고 즐길거리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항상 남에게 안 좋은 모습으로 보이게 되고 자기 자신에게 실수를 하게끔 된다는 거라.
탁발 받아도 받고 나서 금방 들어오지를 안 해. 아직 내가 밥 먹을 시간이 멀었다는 거라. 그러니까 절에 들어와가지고 자기 방 주위를 청소를 하든지 아니면, 절에 청소를 하든지 이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구 잘한다" 하는 소리를 들을 건데 자기는 그거 안 하는 거라. 내가 아직 밥 먹을 시간이 멀었기 때문에 나는 좀 쉬고 가겠다는 거라. 나무 그늘에 앉아가지고. 거기 앉아가지고 내내 쉬는 거라.
그러고 나서 밥 먹는데도 밥을 그냥 먹지를 않는 거라. 주위 사람하고 내내 얘기를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수행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엉뚱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 거라. 뭐가 가는데 뭐가 좋으니 어쩌니, 꼭 여러분들 밥 먹는 모습하고 같습니다.
밥 먹을 때 밥만 먹도록 하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는 거라. 밥 먹는 것은 둘째라. 그냥 이야기꽃 피우는 게 주목적이라.
오후에 수행을 해도 꼭 마찬가지라. 산만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를 못해. 남들은 1시간 좌선하고 1시간 경행하는데 지는 한 20분만 앉아있다가 또 일어나서 20분 경했했다가 또 앉아가지고 또 20분 좌선했다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쟤만 있으면 내가 수행이 안되는 거라. 내가 산만해지고 짜증나. 쟤 안 오는 시간에 내가 가서 수행을 하든지 쟤가 있으면 아예 수행을 안 하는 거라.
그런데 본인은 몰라. 그걸. 그런데 그것이 수행이 되겠어? 수행하면서 오만 거 다 간섭합니다. 자기는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걷다가 서서 “경행 그렇게 하면 안돼. 요렇게 해” 뭐 어쩌고 저쩌고, 좌선하고 있으면 뭐 어쩌고 저쩌고 그럽니다. 자기 수행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고 남들에 대해서 잘못 지적하기 바쁜 거라.
남을 흉보거나 아니면 남을 경시하는 것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이 불선업을 쌓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거라.
수행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겁니다. 남에 대해서 관여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할 때는 수행만 하도록 해야 됩니다. 집에 두고 온 여러 가지 생각들, 남의 수행에 대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 그리고 외부적인 대상들이 보이는 것들, 외부적인 대상이나 아니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것들,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수행 대상으로 삼아서 그것을 다스려야 되는 것이지, 그것들이 시시비비에 휘말려 버린다든지, 거기에 그 대상에 끄달려들어가 버리면 일단은 수행은 끝나버립니다.
보이는 대상에 끄달려들어가 버릴 것 같으면 그 대상을 보게 됩니다. 잘생겼다 못생겼다 오만 생각 일으키게 되지, 쟤가 수행 잘하고 있다 못하고 있다 오만 생각 일으키게 되지, 밖에 것까지 왜 대상으로 자꾸 삼느냐는 거라.
그러니 마음이 이곳저곳 헤매기 바쁘니까 앉아서 가만히 수행을 하지도 못하고, 경행을 해도 오래도록 경행을 하지도 못하는 거라. 한시간 정해져 있을 거 같으면 한시간 동안 좌선을 해야 되는 거고, 한시간 동안 경행을 해야 되는데, 그걸 소화해줄만한 마음이 안 돼있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수행 안 하고 다른 데 가버리는 거라. 다른 일 생겼으니까 다른 일하는 거는 맞지. 그런데 꼭 그때 해야 되느냐는 거라. 비중을 수행하는데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 두어버리니까 다른 일들을 해야 되는 거라. 그거 안 한다고 해서 오늘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데도, 그게 중요하게 보이는 거라. 수행보다.
오후에 경을 읽을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경전을 읽고 그것에 대해서 다시 숙고하고, 그래서 아, 이 가르침 대로 따라가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러지를 못하는 거라. 그러니 경을 아무리 읽어도 경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고 그걸 외울 수도 없고 외워도 금방 잊어버리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는 거라. 마음이 붕 떠있으니까 그게 안 들어오는 거라. 법문을 들어도 마찬가지고 경을 읽어도 마찬가지고 이익이 없는 거라. 그러고나서 저녁에 피곤하니까 저녁에 잠자고.
생활은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은데 방식이 이렇게 차이가 나버리는 거라. 십년을 가도 그게 무슨 이익이 있고, 또는 죽을 때까지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수행했다고 무슨 이익이 있느냐는 거라.
그때 부처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없어서 그렇다."
어떤 다른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지금 뭘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꾸준하게 해나가는 힘, 그 엄격함이 없어서 그렇다는 거라.
엄격함이 없으면 다른 데로 벗어나버립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은 그러한 방식이 몸에 자꾸 익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남에 대해서 관여를 하게 되고 또 거기에 자신이 휘말려 들어가게 되고, 엄격함을 지니십시오.
생각을 좀 한번 해보십시오. 법문을 들을 시간이 다가온다. 그럴 것 같으면 여러분들은 마음이 자꾸 밖으로 향하도록 하고 들떠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문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해야 그 법문이 들리는 것이고, 수행하기 위해서 좌선할 것 같으면 좌선하기 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됩니다.
아, 내가 이 한시간 동안은 반드시 일어나지 않고 수행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고요하게 앉아서 수행 대상에 마음을 두기 위해서는 그런 훈련들을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서 붓다눗사띠 라든지 멧따바와나 라든지 해서 예비수행 네 가지 단계들을 조금 조금씩 해서 마음을 대상에다가 둘 수 있게끔 하면, 대상이 일어나면 금방금방 알아차릴수 있게끔 해야 됩니다. 그거 몇번 하고 나서는 호흡을 관찰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러면 대상을 알아차리기가 한시간 동안 순일하게 알아차려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럼 한시간 동안 해나가도 크게 무리가 없어져요. 그런데 그거 안 하는 거라.
들떠버리게 되면 어떠한 경우도 자기 자신이 지금 해야 할 것, 자기 자신이 지금 마음을 두어야 될 것, 해나가야 될 것들에 대해서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다음에 잘못된 관계들은 가져서는 안됩니다.
수행을 해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자꾸 할려고 해야 됩니다.
자기의 살아온 패턴들은 바꾸지 않고 수행에 진척이 있도록 한다? 그건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자기 방식을 바꾸지 않고 수행하면 뭔가 바뀔 것이다?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의 방법으로는 뭐가 안되기 때문에 그걸 바꾸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데도, 자기 자신은 그 패턴을 바꾸지 않는 거라.
밥 먹을 때 떠들고 하면서 밥 먹는 것, 그리고 필요하지도 않는데 쓸데없는 사람들하고 자꾸 만나는 것, 쓸데없는 일들을 자꾸 만드는 것,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자신은 점점 더 산만해지고 오히려 안정되지 못해서 수행을 하면서도 그 방식을 그냥 견지를 해나가는 거라. 누구야 하고 부르면 금방 쫓아나갔다가, 밥 먹으면서 낄낄거리고 웃고 떠들고 놀다가, 그러면서도 '어, 내 수행해야지'
자기 방식을 안 바꾸려고 한다는 거라. 잘못된 방식인 줄 알 거 같으면 바꾸어야 되는데 그걸 안 해버리는 거라.
그러면서 본인은 그럽니다. 그래도 나는 공덕을 많이 쌓았으니까, 다음 세상에는 좋은데 태어날거다. 물론 공덕을 많이 쌓았으면 좋은데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걸 바란다고 될 수 있을 거 같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바란다고 바라는 데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공덕을 많이 쌓아도 바른 방법으로 공덕을 쌓지 못했고, 공덕을 쌓았다고 생각을 일으키는 그 자체는 이미 그 공덕이 반감되고 있다는 얘기와 마찬가집니다.
살아가는 데는 많은 소용돌이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쁨들 즐거움들 그런 데에 빠져버리게 되면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가 버리게 되는 거라. 또는 자기 자신을 밖으로 자꾸 내세우게 돼버리게 됩니다. 기쁨과 아만심이 일어나버릴 것 같으면 그 소용돌이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격함을 지니는 사람들은 도와 과에 이르게 되는 거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격함을 지니지 못하게 되면 똑같은 패턴들로 반복되게 됩니다. 아무리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자신에 대해서 지켜야 될 것들을 지키고 해야 될 것들을 하는 것들을 알지 못할 것 같으면, 그러한 엄격함이 없을 거 같으면 똑같은 패턴으로 다시 떨어진다는 생각을 반드시 해야 됩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자기 자신의 엄격함을 지켜라」 하는 얘기로써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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