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연성이 없는 마음은 스트레스에 굴복한다. (20110113)
스트레스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가?
스트레스가 완전하게 없는 자는 해탈에 이른 사람입니다.
해탈에 이른 사람에게는 번뇌가 없기에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그래서 붓다와 같은 정각자에게는 어떤 스트레스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설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따라서 번뇌가 스트레스이고, 번뇌가 스트레스의 원인입니다.
불교는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는 가르침이기에 지금 당장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번뇌를 멸진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와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경우를 한번 봅시다.
·즐거운 일을 행할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가?
·하는 일이 능숙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가?
·좋은 결과가 보일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가?
(또는 하고 있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무엇인가 반응이 있을 때)
·스스로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할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자극, 발전 등이 있을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가?
이런 것들에는 아마 스트레스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즐겁게 할 수 없을 때
·싫은 일을 할 때
·일이 능숙하게 진전되지 않을 때
·결과가 없을 때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자신이 없을 때
·능력에 맞지 않게 일이 많아 보일 때
이런 것들에는 스트레스가 쉽게 쌓이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런 스트레스가 쉽게 쌓이는 것들을 전부 모아 보면 싫다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싫은 기분은 분노라고 합니다.
결국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은 많은 부분이 분노, 빨리어로 도사(분노), 도마낫사(분노가 있는 마음 상태)입니다. 스트레스의 상황을 만드는 대부분은 분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분노와 그 대처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으로 스트레스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합니다.
안·이·비·설·신·의라고 하는 감각 기관에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하는 정보가 접하는 것을 우리는 「산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 있다」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6가지 감각기관에 6종류의 정보가 접하는 것입니다.
그 6종류의 정보는 1·좋다 2·싫다 3·흥미를 가질 수 없다고 하는 3개의 판단 영역으로 분별됩니다.
신체에 접한 정보를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분류합니다.
분별하는 기준을 사람은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좋고 싫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업」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들어오는 정보에 의해 그 기준은 강화되거나 바뀌거나 합니다.
이렇게 판단 기준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업이라는 것은 운명이라고 규정짓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인식을 할 때에는 번뇌가 일어납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우리들은 인식할 수 없습니다. 번뇌가 스트레스라면 인식할 때에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보아도, 들어도, 맛봐도, 향기로부터도, 신체에 닿는 감각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날 난방이 되지 않았다면 당연히 추울 것입니다.
그 추위가 신체에 닿는다면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인식 과정에서 설명한 것은 신체에 정보가 접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보는 한순간이라도 없어지는 일 없이 감각 기관에 닿습니다.
예를 들어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계속 보이고 있고, 귀가 있는 동안은 계속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신체가 있는 한 계속 여러 가지 것이 접하고 있기에 느끼지 않는 순간은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 기준에 맞추어 구별하고 판단을 합니다.
그 정보가 너무나 빨라서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있든 없든 정보에 대한 판단은 일어나고 기억합니다. 3가지로 판단해 기억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정보를 판단하는가를 두고 그 사람의 성향(기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면, 기분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향입니다.
신체는 누구나 똑같은데 한줄기 바람을 두고 춥다, 덥다, 좋다, 싫다고 가지가지로 느낍니다.
그런 것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환경에 살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즐겁다, 어떤 사람은 괴롭다고 합니다.
일단 우리의 판단이 우리의 성향이라고 이해해봅시다.
꽃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지, 흥미가 없다고 판단하는지는, 들어온 정보를 좋아하고·싫어하고·흥미가 없다고 하는 3가지 순간으로 나누어 받아들입니다.
헤매는 일 없이 본능적으로 판단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피망을 싫어하는 사람은 피망이 맛있는지, 맛이 없는지 전혀 헤매지 않을 것입니다.
습관으로 인해 판단기준이 생겨 업이 결정한 본능입니다.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강할 의지와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는 이상 본능에 좌지우지되어 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뭐든지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그 비관주의를 바꾸기 위해서는 상당히 강할 의지로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성향을 바꾸고 싶으면 강한 의지와 이성이 필요합니다.
이제 여러 가지 성향을 불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rāga carita
정보를 「좋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은 사람은 탐욕의 성향.
② dosa carita
정보를 「싫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은 사람은 분노의 성향.
③ moha carita
정보를 「특별히 관심가지지 않는다」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은 사람은 무지(어리석음)의 성향.
④ saddhā carita
정보를 거부하는 일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은 사람은 믿음의 성격.
3과 4는 비슷한 성향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성향은 잘 결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쇼핑하러 가서 유효기한이 언제인지, 어디서 제조되었는지, 보고 조사하려고 하지 않고 가격표만 보고 그대로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특별히 관심가지지 않고 상품을 신뢰하고 쇼핑센터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유효기한이 지난 것은 팔 리가 없고, 몸에 나쁜 것은 팔 리가 없으며, 정부는 화학첨가물이 과도하게 들어가 있는 것은 허가할리 없다는 성향이 강한 사람입니다.
⑤ vitakka carita
다른 감정이나 개념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판단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고생하는 경향이 많은 사람은 숙고형의 성격.
정보를 순간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머릿속에서 개념이 여러 가지 복잡하게 얽혀 정체 상태이기에 판단을 미루게 됩니다.
⑥ buddhi carita
좋고 싫음의 판단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인데, 그것에서 그만한 이유를 탐구하여 취하는 경향이 많은 사람은 지식형의 성격.
예를 들어 장미꽃을 보고 예쁘다고 하지 않고, 장미의 복잡한 꽃잎 형태나 색깔 등이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불필요한 말을 합니다.
본인에게는 거기에 무엇인가 이유가 없으면 성이 차지 않기에 한마디 불필요한 이유가 들어갑니다.
이것이 기둥이 되는 6가지의 성향입니다.
사람을 순수하게 이 6가지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섞여 있습니다.
섞여 있으면 성향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 6가지 기둥을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바다에 각기 다른 기둥을 넣어 두면 조개 등 여러 가지가 달라붙습니다.
그러면 그 기둥이 무슨 기둥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3각형의 기둥에도 조개 등이 붙으면 둥글어지기에 둥근 기둥이라고 결정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둥을 뒤따르고 있는지 그것만을 보아야 합니다.
이 6가지 성향에는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이것으로 나쁜 성향, 좋은 성향을 구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성향을 이 6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혈액형과 같이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일 뿐입니다.
먼저 자신이 무슨 성향으로 사물을 보고 있는지 알면 상당히 편합니다.
그래서 닮은 감정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게 조심합니다.
만약 분노형이라면, 무엇을 봐도 쉽게 화내게 됩니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여 폭발합니다.
그래서 닮은 것을 경험해선 안 됩니다.
울어야 할 처지가 되면 어떻게든 웃을 수 있는 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일부러 즐거운 마음으로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세상에서는 스트레스의 임무교대를 스트레스의 발산, 해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일이 끝나면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휴일에는 어딘가로 여행이라도 가고... 그러한 식으로 스트레스의 임무교대를 권합니다. 결국은 그것도 스트레스이지만, 스트레스의 질이 다르기 때문에 폭발하지 않고 끝납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의 해소법으로서 스트레스를 다른 스트레스로 바꾸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바꿔 넣어도 그것은 해결이 아닙니다. 발병하지 않을 정도로 제어하고 있을 뿐입니다.
바꾸고 또 바꾸고 해도 실패할 때가 있고, 갑작스럽게 스트레스가 폭발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의 임무교대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버립니다.
• 경직된 마음
마음은 정보를 인식하는 기능이므로 본래는 경직되어선 안 되는 기능입니다. 유연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떠한 정보도 있는 그대로에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올바른 인식입니다. 정보는 선도, 악도 아닌 단순한 정보입니다. 귀에 닿는 것, 몸에 닿는 것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마음이 경직되면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형태로 판단한 인식이 됩니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형태로 판단하면 바른 인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잘못된 인식으로 사는 것은 위험하고 불행한 원인이 됩니다.
① rāga carita 탐욕의 성향
욕구가 강한 성격의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쫒아서 겨우 찾아내지만, 그것을 오래도록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또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가 됩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있을 때도 기준에 맞지 않는 정보에 대해 좋고 싫다는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이것 또한 상당한 스트레스가 됩니다.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자신에게 맞는 음식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결정해서 들어간 식당이 자신에게 다 맛있을 수는 없기에 그곳에서도 분별하여 먹고 싶은 것만 먹습니다. 맛있는 것은 최고라고 하겠지만 맛이 없으면 불쾌해합니다.
오히려 음식을 탐하지 않는 사람은 맛있게 먹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탐하는 사람은 그 많은 음식 중에서 자신의 틀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오면 분노합니다. 식사를 즐길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는 분노로 표출됩니다.
그래서 성격적으로 「싫다」라고 판단하는 편이 많아집니다.
본래 탐욕형이라서 「싫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태와 다른 것에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 「싫다」라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② dosa carita 분노의 성향
분노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대부분의 정보를 「싫다」라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화병에 꽂힌 예쁜 꽃이 활짝 핀 것을 보아도, 밝은 마음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괜히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어두운 마음이 생겨버립니다.
예쁘다고 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정보에 대해서도 지칩니다.
가끔 분노형의 사람도 좋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정보에 접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트집 잡을 수 없는 것과 대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대게 싫다,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한창 사랑스러울 때에는 좋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노형은 금방 아이에 대해 지쳐버립니다. 같이 놀아주는 것보다 숨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분노의 마음은 어둡습니다.
③ moha carita 무지의 성향
무지형의 사람은 뭐든지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은 경직되어 있습니다.
정보를 구별,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이런 성향을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가 복잡하게 쌓입니다.
그러나 좋다 싫다로 판단한 정보에 대해서 강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화내지 않는 사람이 화내면 어떻습니까? 대단히 무섭습니다.
판단한 정보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상당한 충격을 줍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에 대해 미움을 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세월이 지나도 그 미움이 계속한다면 다른 사람을 파괴하든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번뇌에 집중되어 사로잡히지 않고 엇갈려서 번뇌가 회전하기 때문입니다.
화내지만 격렬하게 화내지 않고, 욕구는 있지만 탐욕에 빠지지 않는 등으로 자기 제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엇갈려서 일어나는 번뇌가 왜 모이는 것일까? 이 중개역은 누가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번뇌의 무리의 우두머리는 무지입니다.
욕구와 분노는 알기 쉽지만, 무지는 투명해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방사능과 닮아있습니다.
모기가 공격하여 물면 쉽게 알 수 있어 퇴치할 수 있지만, 방사능이 새면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투명한 번뇌인 무지가 가장 위험합니다. 투명하기 때문에 모든 번뇌와 조합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④ saddhā carita 믿음의 성향
뭐든지 받아들여서 전부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도 인식할 수 있는 용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기농 슈퍼에서 팔고 있는 것은 좋은 것이라도 전부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용량, 가져가서 놓아둘 수 있는 용량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으로 우리에게는 대량으로 정보가 흘러들어오므로 데이터의 처리 능력을 넘어섭니다.
쇼핑할 때 자주 있는 경험으로 처음에는 재미있을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서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용량이 넘치면서부터는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새로 나온 것은 사고 싶어 하면서 비교하고 궁리하다 보면 스트레스에 빠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보를 차단하는 힘이 약하기에 스트레스에 잘 빠집니다.
⑤ vitakka carita 숙고하는 성향
숙고라고 해도 논리적인 것이 아니기에 결국은 망상형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하기 때문에 정보가 들어가지 않고 걸립니다. 정체되어 있는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10분 걸릴 것이 정체되어 있기에 30분이 걸립니다. 이것은 본인도 싫습니다.
생각이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으면서 인식하므로 잘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오해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감각기관으로 부터 들어오는 정보가 적은 경우라도 사고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만듭니다.
망상은 탐욕형의 경우도 있지만 여러 가지 것을 보고 듣고 즐기기 때문에 망상으로 인해서는 스트레스가 잘 쌓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숙고형은 생각하는 것이 맴돌면서 자신의 망상에 의존하고 있기에 상당히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⑥ buddhi carita 지식적인 성향
들어오는 정보가 논리적이라야만 납득을 하고, 거기에다가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무한하게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서 모두 납득하고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장미꽃 하나를 보고 꽃잎의 형태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기에 예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무한하게 들어오는 정보 모두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은 납득하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정보의 홍수이기에 이런 정보들이 싫은 겁니다.
또 그것은 단순한 본능으로 지혜, 이성을 키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식적인 성향이라고 해도 결국은 습관적인 본능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틀, 자신의 이해와 맞지 않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싫은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지식적 성향의 함정입니다.
혐오는 스트레스입니다.
6개의 어느 성향에서도 반드시 스트레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향을 지녔다는 것은 형태를 가지기에 경직되게 되는 것입니다.
3. 스트레스의 해결 방법
1) 해결 방법의 발견
우리들에게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매일 일어나고 있는 분노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면 됩니다.
분노에도 타입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노의 타입을 알면 해결 방법이 발견됩니다.
변화하는 분노, 이것이 주요 포인트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분노와 세상에서 말하는 분노는 다릅니다.
탐욕의 성향은 기분이 나쁜, 싫은 기분, 좋아하지 않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등의 자신을 중심으로 한 분노가 많습니다.
분노의 성향은 사람에게 화내거나, 실패에 화내거나, 아이에게 화내고, 부하에게 화내는, 등의 타인에 대한 분노가 많습니다. 보편적인 분노입니다.
무지의 성향은 상대의 행복, 성공, 장점 등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질투라고 하는 분노와 상대의 실패, 결점 등을 말하여 퍼뜨리고 싶어지고, 말을 하면 사람의 나쁜 점만을 끄집어내어 과대 포장하여서 퍼트리는 등의 분노가 많습니다.
또한 맞닥뜨린 대상을 이길 수 없다고 쉽게 포기하여 분노하고, 그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피해버리는 등의 분노도 많습니다.
믿음의 성향은 사람의 성공, 행복을 과소평가하고, 인정하지 않고, 뭐 그 정도쯤이야 라며 업신여깁니다.
예를 들어 태국사람이 올림픽에서 태권도로 금메달을 땄으면, 뭐 다른 선수가 약했으니까! 라고 말하며 분노합니다. 금메달 딴 것을 부정하진 않지만 높이 평가하려고 하지 않고 업신여깁니다.
숙고하는 성향은 조그마한 일도 허락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분노가 많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내고, 허락하지 않고, 그 일을 기억해 둡니다. 그것은 질이 나쁜 성향의 분노입니다.
또한 자신은 완벽하다고 착각을 하여 실패하면 낙담하고 후회하는 분노가 있는 반면에, 자신을 불필요하게 낮게 평가해서 비관적인 피해망상으로 분노하기도 합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 > 법문 교재(프린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다께서 설하신 행복의 조건 38가지 『망갈라 숫따』 (20120727) (0) | 2021.04.15 |
---|---|
망상을 멈추어보자 (20120427) (0) | 2021.04.14 |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길을 끊어라 (20101115) (0) | 2021.04.10 |
둑카(DUKKHA, 苦, 괴로움, 불만족) (20091002) (0) | 2021.04.09 |
웨사카 붓다의 날 (20100521) (0) | 2021.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