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우안거 입재_집착에 대해서 (20180727)
··· 읽어보시면 될 겁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안거 시작하는 날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또다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인제 우리 여기 선원에서 자꾸 잊어먹는 게 안거는 첫 출가한 스님들은 반드시 우안거 목욕가사가 구비되어야만이 안거를 지낼 수가 있습니다. 안거가 끝나면 까티나가사에서 까티나가사를 받아야만이 안거를 끝내고나서 밖으로 만행을 다닐 수가 있듯이, 안거에 들어갈 때도 목욕할 수 있는 가사가 필요하고, 안거가 끝나고 나서 만행을 나갈 때도 가사가 필요합니다. 그 부분은 여러분들이 반드시 명심을 해야 될 부분입니다.
이때까지는 스님이 항상 태국 갔다 오는 길에 우안거 목욕가사를 준비 해와가지고 그냥 입고, 또 까티나 가사도 미리 스님들이 준비를 해와가지고 스님들이 입을 수 있게끔 하고, 이렇게 해왔는데 그것도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내년부터는 여러분들이 준비를 해야 됩니다. 준비를 안 하니까 안거가 시작하는데도 우안거 목욕가사를 주는지조차도 몰라. 안거가 끝나고나서 까티나 가사를 스님들에게 올려야 된다는 것도 생각을 못하고.
스님들이 계속 그 부분을 강조를 안 하는 이유는 뭐냐면 그게 너무 상업적으로 자꾸 발전을 하는 것 같아가지고 그걸 경계하기 위해서 스님들이 준비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했는데, 그게 우리 스님들이 조금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실제적으로 테라와다 불교국가에서는 안거 들어가기 전에 우안거 가사 올리는 걸 사원마다 대대적으로 합니다. 또 결제가 끝나고 나서 까티나가사 올리는 것도 대대적으로 합니다. 그 두 개가 사원 경제를 어느 정도 책임을 져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오랫동안 그 모습을 보고 온 스님으로서는 아무리 제사 안 지내고, 기도 안 하고, 오로지 수행하고, 담마 전하는 것으로서, 회원들 보시로써 회비로써 선원이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러한 것들을 안 할려고 하긴 하는데, 그래도 여러분들이 잊지 말아야 되는 것은 반드시 있다는 거라.
선원의 운영을 여러분 재가자들이 책임을 져야되듯이, 스님들이 안거를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안거를 끝내고 나서 필요한 것들, 또 선원에 거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여러분들이 챙겨야 될 부분입니다. 그런 부분은 꼭 명심했다가 내년부터는 스님이 직접 얘기를 안 해도 여러분들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 보이는 게 우안거 목욕가사입니다. 우안거 목욕가사와 일반가사와의 차이점은 이 일반가사에는 조의가 있습니다. 쪼가리가 돼있죠? 쪼가리가 돼있는데, 목욕가사는 조의가 없습니다. 통으로 돼있습니다. 스님들이 목욕을 할 때라도 항상 중요 부위는 가리게끔 돼있습니다. 그래서 목욕할 때는 반드시 이 옷을 입고 하라 해서 그걸 목욕가사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왓사찌와라(vassa cīvara) 그렇게 얘기합니다. '왓사와소 찌와라(Vassavaso cīvara)' 정확하게 얘기하면 '우안거 목욕가사'라는 그런 뜻입니다.
사실은 이게 없으면 안거 때 스님들이 샤워하고 목욕하고 하는 것들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여러분들이 우안거 목욕가사나 아니면 까티나가사를 구입할 때 그 조건들을 잘 보고 조의가 없는 것은 목욕가사이기 때문에 우안거 시작하기 직전이나 우안거 시작할 때 스님들께 올리는 것이고, 조의가 있는 것들은 까티나가사 때 올리는 것이다 하는 것을 명심해서 그렇게 구입을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안거 들어가면 세 달간 안거 들어가지죠?
그런데 사실은 시간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겁니다. 그것은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지 실제 여러분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3개월 이렇게 딱 정해서 안거를 지내게 될까?
실제 존재하는 것은 그냥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밖에는 존재를 하지 않습니다. 또 지금 현재라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여러분들한텐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지금 현재를 분명하게 사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해당되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일어나는 대상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한발한발 나아가게 될 때 어느덧 3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인도나 동남아시아와 다르게 한국은 실제적으로 우기라는 개념이 이 기간하고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국을 비롯한 유럽 미국 이런 데들도 테라와다 불교를 하고 있는 데는 안거 기간을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환경조건이 다르다고 해가지고 우안거가 아니라 하안거, 동안거 이렇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안거를 지내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에! 음력으로 6월 보름부터 9월 보름, 아니면 10월 보름까지! 한 달 더하는 사람은 10월 보름까지 그렇게 지내는 것이 동일합니다.
그것은 부처님 당시 때부터 실행되어 왔던 것이고, 그 전통들을 그대로 존중하기 때문에 그 기간을 그대로 지키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실정에 맞다해서 지키고 안 지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는 뜻입니다.
담마는 어딜 가나 바뀔 수가 없습니다. 동일합니다. 그래서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거니 더하거나 덜 할 수는 없는데, 굳이 이런 의식적인 부분까지 동일하게 적용해야 되느냐 할 것 같으면 사실은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테라와다불교를 하고 있는 데서는 의식들마저도 동일하게 지금 적용들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한국도 꼭 이것이 맞다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 안거기간을 지내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큰 효용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적용한다 하고 생각을 하고 그런 관습적인 것들을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안거는 여러분들에게 조금 더 법을 공부할 수 있고, 법을 닦을 수 있고, 법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법문을 듣고, 또 일주일에 한 번씩은 불재일을 지키고, 또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지속적으로 집중수행을 하고, 이런 식의 생활을 몸에 익히면 적어도 안거 기간이 끝나고 나서는, 담마의 소중함이나 또 이것을 그대로 몸에 지녀야 되겠다 하는 마음들을 되새길 수가 있기 때문에 안거 기간이 중요한 겁니다.
안거 동안에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집착」에 대한 얘기들을 좀 하겠습니다.
깨달음에 이르신 분과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의 가장 간단한 차이가, 어떤 것들에 대한 집착의 부분입니다.
집착이 많으면 많을수록 깨달음 하고는 멀어지는 상황에 있고, 집착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깨달음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첫 번째, 물건들에 대한 집착입니다.
여러분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든, 아니면 개인적이 아니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것이든, 그렇지 않으면 남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든,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 가족에 대한 것뿐아니라 여러분들이 키우고 애완동물에까지 그런 것들에 대한 집착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행은 방해를 받습니다. 또한 그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올바르게 실천해나가는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내기가 힘들어져버립니다.
단편적으로 내 아이와 다른 아이가 싸웠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아이 편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동일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선원에서 가르치는 방법과 다른 선원에서 가르치는 방법에 충돌이 있을 때는 우리 선원의 방법이 옳다고 옹호를 하게 됩니다.
개념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든 물건에 대한 집착이든 사람에 대한 집착이든 그런 것들이 많아가지고는 올바른 방법으로 깨달음에 나아가기 힘들다 하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그런 것들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은 그런 것들에 의지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나이 들면 자식에게 의지하려고 하고, 또는 가족보다는 애완동물에 의지하게 되고, 돈이나 명예에 대해서 의지하게 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수행방법에 대해서 의지를 하게 됩니다.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불법승이라는 삼보에 의지해야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의지를 하라고 해가지고 그것을 집착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의지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집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번 안거 기간 동안에는 그런 것들에 대한 집착을 자꾸 끊도록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물건에 대한 집착, 또는 가족에 대한 집착 이런 것들을 자꾸 내려놓는 연습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본인의 지식 능력에 대한 집착입니다.
가끔씩 그런 걸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남들보다도 조금 더 담마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할 거 같으면 그것에 대해서 집착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남들에게 자꾸 피력을 하려고 합니다. 내가 너보다도 훨씬 많이 안다. 그래서 어디 토론이 있을 거 같으면 적극적으로 참여를 합니다. 그런데 그 토론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토론이 아니라 다툼의 장으로 바뀌어버리게 됩니다. 건전하게 토론이 되어야 될 것이 다툼이 되는 이유가 바로 "지적 능력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들 바뀌어버리게 됩니다.
부처님은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척도는 능력과 도덕적 삶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고 있는지 악하게 살고 있는지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얼마만큼 발달 돼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을 판단한다. 잘 살아가고 있는지 못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 길로 가고 있는지가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인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면 지적 능력도 그 능력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그 지적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 지적 능력에 집착하지 않을 때 그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주게 되는 것이지 그 지적 능력에 집착해서 다툼을 형성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발휘하게 될 때는 자신이 자꾸 돌아봐야 됩니다. '어, 내가 이것에 대해서 집착을 해서 남에게 드러내보일려고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내 자신의 자존감을 높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들을 자꾸 돌아봐야 됩니다. 물건과 사람에 대한 의지도 집착이 되듯이 지적 능력도 똑같이 집착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부처님은 의지하는 것들에 대해서 지적 능력뿐 아니라 다른 능력이 뛰어난 것에 대해서 탓을 하질 않습니다. 탓하는 것은 바로 그것들에 대한 집착입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집착이 곧 악마다" 하고 적어놓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마라(māra)가 존재를 하고 있으면 그것은 빨리 몰아내야 되는 것이지 그것들을 붙잡고 있어야 될 부분은 아니다 하는 뜻입니다.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악마다' 하고 자꾸 마음에 되새기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길이 있습니다. 가장 쉬운 길은 뭘까? '출가'입니다!
출가하면 사람에 대한 의지, 사회적인 부분에 대한 의지, 그것과의 관계, 이런 것을 집착하는 것이 적어집니다. 또 능력이다 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적인 부분에서의 능력입니다. 일하는 부분, 지식적인 부분,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떠나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부터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길은 출가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도 적극적으로 그 길을 가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재가자들은 지금 당장 출가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출가할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가장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이 바로 이 안거라고 하는 기간 동안입니다. 안거 기간은 그래서 "팔계를 지닌다" 합니다. 출가자와 진배없는 계가 바로 오계와 다른 이 팔계입니다.
스님들은 여러분들과 똑같이 오후에 음식을 먹질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적어도 이 불재일을 지킬려고 해야 됩니다. 스님들은 여러분들과 똑같이 음악을 듣는다든지 아니면 공연을 보러 간다든지 이런 유흥거리 즐길거리를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그렇게 반드시 해야 된다는 거라. 스님 방에도 가보면 침대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딱딱한 돌판 하나 있습니다. 아주 낮게, 한 10센치가 될까? 푹신하고 안락한 시설을 즐기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그래도 검소하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자꾸 여러분들도 실천해야 됩니다.
오계와 다르게 팔계를 지닌다고 하는 것은 출가자와 다름없는 생활들을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씩은 실천해나간다는 그런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안거 기간은 여러분들한테 굉장히 소중합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할 때 출가한 스님들을 이해할 수가 없고, 항상 대립할려고 합니다.
테라와다 불교권이 그나마 그래도 자정능력이 생기고 하는 것들은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하면 스스로 본인이 출가를 해봐서 출가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환속해가지고 재가 생활을 이해하게 되는 것, 또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불재일을 지켜서 출가자와 재가자가 서로의 관계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되기 때문에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은 분명하지만, 그 관계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관계로써 바뀌어져나가는 겁니다.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간입니다. 부처님이 집착함을 떨구어내기 위해서 출가를 해라 했듯이 여러분은 이 안거 기간 동안은 반드시 출가자와 다름없는 삶들을 살아가면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또 서로를 배려하고 하는 관계들로써 발전할 수 있는 계기들이 되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부처님이 제시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두 번째가 '해탈'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수행을 통해서 해탈에 이르는 것 같이 좋은 것은 없습니다. 지식적인 부분으로써는 어떠한 경우든지 해탈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또 내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하고 아무리 바라밀을 많이 쌓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해탈에 이르는 길은 도달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해탈에 이르는 길은 어떠한 경우든지 여러분들이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해서 수행해서 여러분 스스로 그것을 증명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완전히 집착으로부터 벗어날려고 할 것 같으면 해탈에 이르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적어도 여러분들이 이것을 명심할 것 같으면 내가 지금 현재는 완전하게 해탈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안거 기간 동안에는 이 부분만큼은 반드시 해탈에 이르겠다 하는 것들을 스스로 결심할 필요성은 있다는 겁니다.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한다. 이번 3개월 동안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부단하게 찾아서 먹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려고 해야 됩니다.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식욕이 있든 없든 맛이 있든 없든 그것에 따라서 먹고 안 먹고 하는 관계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또는 본인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이나 그런 것들을 보면 불뚝 성질이 나고 그것에 대해서 항상 말이 먼저 앞서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러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러한 생각이 일어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서 그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면은 설혹 견해가 다르더라도 그것에 인해서 성냄이 일어나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어서 다툼이 일어나게끔 만들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해탈은 어떠한 경우든지 한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자의 길도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를 밟아가야 되듯이, 해탈도 한 번에 탁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가 끊어지고 나면 그다음 것이 또 끊어지고, 그것이 끊어지고 나면 또 다음 것이 끊어지고 하는 것이지 집착하는 것이 한 번에 완전히 끊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본인이 적어도 이거 하나만큼은 해탈에 이르렀다 하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안거 기간 동안에는 갈고 닦고 수행해나가야 됩니다.
그다음에 부처님이 제시한 세 번째 길은 '존재욕구' 부분입니다.
갈애 중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이해하기 수월한 것이 뭐냐면 이 존재욕구입니다. '지금 당장 죽는다?' 대부분은 죽기 싫습니다. 살고 싶다는 거라. 존재욕구라는 것이 그런 겁니다. '지금 병들었다?' 건강해지고 싶어합니다. 그게 존재욕구라는 거라.
존재욕구 부분은 여러분이 이해하기 수월하지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참 힘이 듭니다. 그래서 존재욕구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하나씩 익혀나가야 됩니다.
부처님이 제시한 첫 번째 방법이 "최소화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도 최소화해야 되듯이 수행하기 위해서 알아야 되는 것도 최소화해야 되는 것이고, 또 죽기 싫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가장 최소화해야 되는 것이고, 지금 병으로 인해서 고통스럽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그것도 최소화할 줄 알아야 됩니다.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 되면 만족할 줄 알게 되는 마음들, 그것들이 존재욕구들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가장 단순하게 가장 최소화해서' 살 수가 있을 거 같으면 존재욕구는 많이 줄어듭니다. 줄어들어가야만이 그 존재욕구를 완전하게 끊어낼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이런 부분입니다.
안거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본인이 갈고 닦기에는 참으로 좋은 기간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를 하지 않지만 지금 현재 내가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나가면 3개월 뒤에는 '아, 내가 참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하는 것들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이번 안거 기간 동안에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집착하는 부분들을 하나씩 하나씩 떨쳐나갈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시간들이 되도록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안거 입재법문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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