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 2562년 담마와나선원 까티나축제 법문 (20181028)
[빤냐완따 스님과 빤냐와로 스님의 법문이 설해집니다.]
[ 빤냐완따 스님 법문 ]
빤냐완따 스님입니다. 반갑습니다.
올해가 불기 몇년일까요? (일동 : 2562년) 62년. 언제부터? 오늘부터! 오늘부터는 아니고 지난주에 요번 결제가 끝났지만 음력 9월 보름 3개월 왓사가 끝나는 그 시간부로 그때 빠와라나(Pavāraṇā)라고 하는 자자의식을 해요. 우리 스님들 상가 대중들이. 그러면서 3개월 간의 결제를 마치면서 그간 있었던 허물들을 다 참회하고 그러면서 결제를 종료하고 그날로부터 불기 1년, 1년 해서 2562년 지금으로부터 부처님 열반하신지 2562년 되는 해가 그렇게 불교 역사의 기록에 의해가지고 그렇게 날짜를 정해서 지금 그렇게 내려오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가 불기 2562년이라고 하는데, 그 불기를 공식적으로 쓰게 됐고, 또 우리 스님들도 결제를 마침으로서 한 왓사, 우기결제 하나 마치면 한살이 더 올라가요. 그래서 우리 스님들로서는 새로 태어나는, 또 한살 더 먹어서 그 나잇값을 해야 되는, 법납의 값을 잊지 않고 또 여러분들 공덕에 따른 수행을 하게 되고 새로운 마음의 결심을 하게 되는 중요한 날이에요.
부처님 입멸하시고 나서 1차 결집이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삿된 견해가 끼여들어서, 불교 부처님 가르침이 영원히 지속되는데 안타까움을 느끼신 장로들께서 마하깟사빠 장로께서 500분의 아라한들을 결집시켜서 부처님의 삼장을 결집을 하게 되는데 그때 원칙이 있었습니다.
딱 세 가지 원칙,
앞으로 우리 부처님의 제자들은 이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해가지고 세 가지가
첫 번째, 부처님이 정해주신 율법대로 살 것,
두 번째, 부처님이 정하신 원칙에서 일체 그 어떤 것도 빼지 말 것,
세 번째, 그 어떤 원칙도 보태지 말 것.
원칙대로 살 것, 율법대로 살 것, 빼지 말 것, 보태지 말 것.
그래서 우리 부처님의 제자들이 2500여년 동안 오로지 테라와다불교의 비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고수하려고 피눈물로서 지켜왔고 그 전통을 또 우리들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원칙이라고 하는 것, 우리 비구계가 227계의 비구계목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우리가 해탈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정신적인 것 팔정도 수행을 우리가 실천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그것을 보호하는 외형적인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비구들 승가공동체가 계속 이어져나가기 위한 물질적인 요소 4가지 공양물이 있어요.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 비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사에요 가사, 까티나.
4가지 공양물은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기 예불문에 나와있듯이
빠띠상카 요니소 찌와랑 빠띠세와미
(paṭisaṅkhā yoniso cīvaraṃ paṭisevāmi)
"우리가 공양받은 이 가사에 대해서 바른 생각으로 관찰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저희들에게 공양올린 가사를 늘 일념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공덕을 잊지않고 또 가사를 입고 이렇게 수행해나가는데,
우리 비구계목 227계 중에 가장 많이 내용 나오는 계목이 제가 기억하기로는 가사에 관련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왜 가사에 관련된 부분들이 이렇게 많은가? 부처님께서도 비구의 상징을 부처님께서 정하신 원칙에는 삼의일발(三衣一鉢) 아랫가사를 안따라와사까(antaravāsaka), 웃가사를 웃따라상가(uttarāsaṅga), 그다음에 겉에 덮는 것은 상가띠(saṅghāṭi)라고 해요. 이 삼의와 율법에 정해진 원칙에 위해 삼의(三衣) 하고 발우 한벌(一鉢) - 삼의일발이 스님들이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물품이에요.
그래서 어찌됐든지 간에 이 테라와다 전통에서는 가사는 생명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고 이 원칙을 지킴으로서 우리는 부처님의 정신, 가르침이 이 안에 들어있다 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스님이 출가하게 된 동기 중에 하나도 제가 출가하기 전에, 그때는 니까야가 번역되기 이전이었는데 아함경이라고 특히 장아함경에 나와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순간 거기에 나오는 얘기가 뭐냐면 부처님께서 대스승께서 승가리를 말아서 베개로 뉘시고, 그다음에 그때 마지막 제자 수밧따가 부처님이 입멸에 드시는 순간에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와서,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시면서 다시 나와서 제도하시고 마지막 비구제자로 만들고 입멸에 드시는 순간이 있어요.
너무나 저는 감동을 받았고 부처님의 어떤 신화적인 면에서만 재가불자로서 접하다가 마지막 순간 입멸의 순간에서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제자를 이끄시고 돌아가실 때 승가리를 베고 돌아가시는데, 이게 무엇인지 알고 봤더니 이게 상가띠였어요. 경전 기록에는 그렇게 돼있어요.
그러면서 많은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감동을 받았었는데, 어찌됐든 이 비구의 상징물로서는 이 가사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요.
특히 많은 공양 행사도 있고 일년 중에 부처님 오신날 붓다의 날, 뭐 성도절 여러 가지 명절들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부처님 오신날 붓다의 날만큼이나 어쩌면 의미로 붓다의 날이 가장 의미있는 날이지만, 그래도 가장 더 행복하게 더 축복하면서 하는 행사가 이 까티나 행사에요. 그래서 까티나 행사라고 안 그러고 "까티나 축제"라고 해요.
까티나 축제는 이런 까티나라는 이런 행사를 선정함은 결제안거를 왓사기간을 청정하게 상가스님들이 율법에 따라서 규정에 따라서 수행에 정진하면서 수행을 잘 마친 스님들에게 올리도록 율법에 정해져있는 하나의 계·율이에요. 의식이에요. 그래서 삼개월 동안 마친 스님에게 한달 안에 불자들이 예전에는 천을 모아서 승가에 공양을 하면 스님들 것을 한달 안에 가사를 만들고 염색을 하고 그래서 오늘 바쳐지는 공양물이 까티나가사에요.
까티나 가사가 왜 생겨나게 됐느냐면, 부처님 재세시에 제따와나 수행처에 부처님께서 머무실 때 모든 제자들은 가능하면 부처님 가까이에서 결제를 나고싶어 했어요. 그리고 가능하면 부처님께 법문 한마디를 부처님 곁에서 부처님의 법을 느끼면서 수행하고자 했는데, 인도라고 하는 나라가 워낙 광활한 그 먼 땅에 한 번은 빠와라고 하는 지금으로부터 하면 부산의 천리길은 더 되는 것 같아요.
그 멀리 떨어져있는데 삼십명의 대중 스님들이 부처님 법을 따라서 열심히 정진해오다가 올해 한해는 요번 왓사는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에서 나야겠다라고 결심을 하고 열심히 올라오다가 지금 아마 충청도쯤 되는 천안삼거리 쯤에서 날짜가 다 차버렸어요. 그러니까 삼개월 간 왓사 시작되는 기간이 지나버렸어요.
그래서 부득이 하게 거기서 왓사를 지내게 되고 왓사를 마치고 나서 기원정사 제따와나로 부처님을 참배하러 올라오는 와중에 장마를 만나서 그만 홀딱 온몸이 흙탕물이 됐어요. 비를 맞아서 흙탕물이 돼서 옷이라고는 발우 한벌하고 안따라사와까, 웃따라상가, 상가띠 이 세 벌의 가사를 입고 부처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옷이 엉망이고 보기도 싫고 그 모습 그대로 부처님께 다가가서 인사를 올렸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너무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고 "내가 정한 원칙이 삼의라고는 정했지만 그래도 예외의 규정을 하나 정해야겠다. 여벌의 가사를 하나 더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정해진 원칙이 기록에 나옵니다. 그것이 "까티나 가사"라고 하고 그래서 "그 삼의는 결제를 마친 비구 수행승들에게 한달 이내에 공양을 올릴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기원이 된 게 이 까티나 가사의 기원입니다.
이 까티나라고 하는 의미는 그 금강석 같다, 견고하다, 흔들림 없다, 부처님의 진리가 만고불변의 진리이듯이 그 진리가 부처님 가르침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그거와는 비견할 수 없이 금강석 같거니와 거기에 여러분이 수승한 공덕도 금강석처럼 금강석을 보호하는 여러분의 공덕의 의미를 담고서 까티니 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까티나 가사가 그만큼 의미있고 소중하다는 의미를 잘 아시고 우리 21세기에는 말이에요, 우리 테라와다의 전통이 뭡니까? 보수적인 거 아니에요, 원칙적인 걸 지켜가는 것. 그러다 보니까 심지어는 삼장에서 빨리어 암송으로 전승하다가도 제가 배운 바에 의하면 틀린 것도 나오게 돼있어요. 2500년이 지나다 보면, 문자 하나가 틀려도 틀린 것 같은데도 문법적으로 봤을 때는 틀린 것 같은데도 그래도 그거를 그대로 암송하고 전승한대요. 왜냐하면 가능한한 삿된 다른 이견이, 견해가 들어가지 않도록.
어찌됐든 간에 아주 원칙주의자에요 저희들은. 현대에 와서는 좀 융통성도 발휘하기는 하지만 그런 마음이고 정신을 가지고 사는게 테라와다의 정신이고 또 저희 비구들입니다.
오늘 같은 날 단풍이 들고 이 아름다운 가을날에 또 여러분 불자들과 이런 의미있는 행사에 앞으로 한국 불교가 테라와다 불교가 저희들이 10여년 전에 2009년인가요?
우리 빤냐와로 삼장 큰스님을 모시고 테라와다를 설립할 때도 한국 불교라고 하는 한국 불교의 토대 위에서 정말 우리 부처님의 본래의 가르침을 어떻게 과연 뿌리내릴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가 불자들한테 공양을 받으면서 우리가 해야 할 임무가 그 가르침을 우리 땅에 뿌리내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다 완수를 못하더라도 그 주춧돌 하나라도 놓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절집에서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자들과 우리 여러 상가 스님들이 합심해서 힘을 모아서 지금까지 잘 해오고 있고,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을 오늘부터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런 마음으로 수행 열심히 하시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 축하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까티나 가사에 대한 여러 가지, 여러분들에게 이걸 받음으로 인해가지고 스님들이 얻게 되는 여러 가지 권한도 있고 여러 가지 규칙 세부적인 것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또 여러분들도 공덕이 되고 그런 것들은 다음 기회에 여러분들이 법문을 통해서 배우시도록 하고요, 오늘은 축하해주시고 또 여러분들의 오늘 공덕이 무한하고 그런 공덕이 모든 많은 분들에게 다 돌아가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 아짠 빤냐와로 큰스님 법문 ] 15:00부터 시작됩니다.
반갑습니다. 공덕 많이 쌓았어요? 쌓았는지 보자.
공덕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을까?
그냥 보시 올린다고 다 공덕이 될까?
선행을 했다 해서 공덕이 될까?
만약에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부처님이 선을 얘기할 때는 꾸살라(kusala)라고 하고, 공덕이라 할 때는 뿐냐(puñña)라고 하고 이렇게 용어를 달리하지 않았겠죠.
공덕이라는 용어는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고 해봐요.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고 해도 마음은 청정하게 됩니다. 또는 여러분들이 말을 한다든지 행동하고 할 때 나쁜 행위를 안 하게 되면 또 청정하게 됩니다. 적극적인 의미는 아니지만은.
어쨌든 여러분들이 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우선 청정하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경전에도 칠청정이라고 하는 거 있죠? 계로 인해서 마음이 청정해지고 하는 여러 가지 청정의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여러분들이 마음을 청정하게 할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서 공양을 올릴 때도 여기 있는 스님들을 한번 가만히 보십시요. 전부 이 가사 색을 입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때 부처님이 입으셨던 가사고, 그것이 2600년이 지나도 그대로 지금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님들이 설하는 법도 부처님이 설하는 데서 어긋나지 않게끔 그것만 계속해나갑니다. 다른 것들을 첨가하지도 않고 자기의 견해를 덧붙이지도 않고 또는 빼지도 않고, 또 여러분들한테 개차법이라는 이름으로 인해서 보시 많이 하라는 얘기도 하지 않고.
보시를 얘기할 때는 그 의미가 있습니다.
보시를 하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고요해져서 좀 더 빨리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어야 되는 것이지 보시만 얘기해가지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은 이런 스님들을 보면서 아, 이 스님들이 나를 테라와다로 이끌었고 또 내가 좀 더 부처님 가르침에 다가갈 수 있게끔 하고 그래서 나는 인제는 스스로 탐·진·치를 몰아내는 법들을 아는 상태에 이르렀다 하고 생각이 들면, 여기 있는 스님들로 인해가지고 마음이 그냥 고요해질 뿐 아니라 그냥 그걸 환희심이라고 그럽니까? 마음이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럴 때 공덕이 생깁니다.
그래서 공덕이라는 것은 마음을 청정히 하여서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들입니다.
오늘은 불교 행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여러분들은 반드시 미래세에 이익이 있고 좀 더 나은 조건으로 나아가고 그리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공덕들을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획득을 해야 됩니다.
가끔씩 그렇게 해보십시요.
호흡을 가다듬어서 들이쉬고 내쉬고 하고 알아차리고 나서, 부처님을 회상한다든지 아니면 상가스님들을 회상한다든지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기쁨이 온몸에서 쫘악 퍼져나가게 될 때, 그럴 때는 여러분들이 또 다른 공덕들을 쌓게끔 됩니다.
참 공덕짓기에 좋은 날이 이런 날입니다.
사실은 오늘은 그 얘기를 할려고 한 건 아닌데 시간이 너무 없어가지고 딱 하나만 얘기할게요.
인제 테라와다 불교가 설립된지 9년이 넘어 됐습니다. 그래서 각 선원들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토대들은 어느 정도 갖추어졌습니다.
공통의 법과 율이 있기 때문에, 그 법과 율에 따라서 각각의 선원은 공통의 행사, 공통의 일들, 공통의 법들을 설하고 할 수 있는 상황이 돼나갑니다.
그럴 때 참 조심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왜 출가했는지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자리가 잡히기 시작을 하면은 출가한 스님들은 출가한 목적을 잊어버립니다.
스님들은 왜 출가했을까?
가장 쉬운 답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겁니다.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한 겁니다. 자기 수행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있는데 그걸 까먹어버립니다. 법을 설하기에 바빠서, 선원 운영하기에 바빠서, 사람들하고 자꾸 연락을 해야만이 선원에 오기 때문에 그 일 한다고 바빠서, 본질하고 자꾸 벗어나게 됩니다.
또 하나는 뭐가 있을까?
오늘 같은 날은 스님들에게도 이익이 있지만 여러분들에게도 공덕을 쌓아주기 위해 좋은 조건을 가지게 됩니다. 출가한 스님들이 여러분들에게 공덕을 쌓아주기 위해서는 참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덕을 쌓아주는 것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귀찮다는 명목으로.
또 스님 자신은 출가를 했으면 세속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좀 더 다른 사람보다도 더 알아차림을 많이 해서 스스로가 더욱더 자기 스스로도 공덕을 더 많이 쌓게 됩니다. 공덕을 쌓아주게도 하고 공덕을 스스로도 쌓게 되는 일들을 자꾸 등한시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별반 틀릴 것 같애요? 선원에 귀속돼있으니까 선원에 오면은 수행들을 합니다. 법문을 듣습니다. 왜 하죠? 왜 수행합니까? 왜 여기 와가지고 이런 까티나 행사에 참여를 하면서 공덕을 쌓을려고 합니까? 본인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공덕을 쌓고 선을 행하고 수행을 하고 하는 것이, 지금 당장 눈앞에서 조금씩 마음이 향상되어 나가져야 되는 거고, 그로 인해서 빨리 지혜의 단계들을 밟아나가서 도와 과에 이르러야 되는데 그걸 잊어버린다는 거라.
왜 선원에 나오는지 왜 수행하는지를 자꾸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게 스님이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첫 번째 부분입니다.
음, 일곱개나 적어왔는데 큰일났네. 이렇게만 한번 생각해보십시요.
부처님이 살아계신다면 출가한 우리 스님들보고 뭐라 하실까?
또는 재가자인 여러분들 보고 뭐라 하실까?
“아이고, 요놈 참 잘 살아오고 있구나. 잘컸네!” 할 것 같애요?
그 정도는 돼야 될 거 아니라. 부처님이 칭찬할 수 있는 제자는 돼야 될 거 아니라.
이 좋은 길, 이 바른 길을 걸어가면서.
정법의 길을 갈 때는 정법의 길을 갈 수 있는 조건들을 여러분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됩니다. 부처님이 기뻐하고 부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자꾸 본인이 물어봐야 됩니다. 그래서 아니다 싶을 때는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남에게 배려하고 이해하고 할려고 하는 마음들을 자꾸 가지고, 어떤 대상들에 부딪칠 때 성냄이나 질투하는 마음들이 일어났을 때는 조금 더 관용을 베풀려고 하고 자애롭게 대할려고 하는 마음들을 자꾸 일으키게 되고. 저 사람을 죽이고 싶다든지 때리고 싶다고 할 때는 그것보다는 아, 내가 좀 더 사무량심을 닦아가지고 부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제자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은 그러기 위해서 이 선원에 오고 이 좋은 법을, 이 좋은 법을 배우면 이런 자리에 와서 눈물이 나야 됩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내가 못 따라했나 하는 마음에. 자신이 따라하게 될 때 부처님에 대해서 고마워하게 되고, 그 법을 전해주는 스님들에 대해서 고마워하게 됩니다. 그래야만이 스님들은 더욱더 바르게 법을 전해주고, 자기 자신도 닦아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항상 부처님의 가호가 있어서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하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짯따로 담마 왓단띠 아유완노 수캉 발랑
끝났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18~2022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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