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법문 교재(프린트물)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알아차림 (20150904)

담마마-마까 2022. 1. 5. 09:10

*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알아차림 (20150904)

 

◎ 번뇌의 발생

 

우리는 눈, 귀, 코, 입 등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일상생활에 있어 사띠가 없으면 욕구나 분노가 일어납니다. 눈을 뜨고 무엇을 보고, 그것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탐욕이며, 그것이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노입니다. 우리는 탐욕이나 분노를 잘 보기 위해서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탐욕이나 분노라고 하는 것은 불선한 마음(akusala citta)이며 번뇌이므로, 그것이 원인이 되어 나쁜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능한 한 멈추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엇인가 보았을 때에 욕망이나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왜 일어나는가 하면 우리들이 그것을 컨트롤 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컨트롤하려면 알아차림(사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상을 보았을 때에 이것은 좋다, 이것은 싫다는 식으로 보기 때문에 거기서 탐욕이나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 대상은 다만 일어났다가 사라져 가는, 생겨서 소멸하는 법입니다. 나타나 사라져 가는 것이기에, 그것을 다만 「보고 있음, 보고 있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붙잡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탐욕이나 혐오라는 것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납니다. 이것이 좋다, 싫다고 하는 집착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았을 때에 싫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집에 돌아와서도 저것이 싫다 이것이 싫다고 그것을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있어서 단지 볼 뿐이지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하는 것이 일상에서의 알아차림(사띠)입니다. 보았을 때에 보았다고만 알고, 붙잡지 않는 훈련을 항상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마음의 업

 

우리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저것이 싫다, 이것은 이러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마음의 업이 됩니다. 범부들의 마음의 업이라고 하는 것은 행동의 업이나 말의 업 등으로 반드시 연결되어 나옵니다. 마음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행동과 결합되어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탐욕, 분노, 무지를 없애는 것은 수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적이나 원수를 보고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의 업입니다. 그 때에 오계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죽이는 것은 계율에 위반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러한 생각을 행위로 옮기는 것을 제어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업으로부터 나쁜 말을 하거나 나쁜 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하게 됩니다.

 

계를 지키는 사람은 마음의 업이 있었다고 해도, 나쁜 행위를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속에 분노의 번뇌가 있어도, 사마디가 있으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으므로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 싫은 사람이 있어도 수행을 하면 분노는 없어져 버립니다. 싫어하는 것은 분노지만, 집중력이 있으면 마음이 침착해집니다. 분노가 있을 때, 평온함은 없습니다. 분노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갖고 싶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잘 잠잘 수 없게 되거나 평온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탐욕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붓다는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붓다는 위대한 스승입니다. 붓다가 없었다면, 우리는 탐·진·치에 대해 어떻게 할지 몰랐을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눈으로 대상을 봐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대상을 좋아하면 탐욕이고, 대상을 싫어하는 것은 분노입니다. 이렇게 좋다, 싫다에 치우치지 않게 중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으면 매우 위험하게 됩니다.

 

◎ 적은 6개의 문으로부터 들어온다.

 

알아차림(사띠)은 안전 보장과 같은 것입니다. 위험한 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 알아차림(사띠)입니다. 적은 6개의 문으로부터 들어옵니다. 안·이·비·설·신을 모두 막아도, 마음으로부터 적은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차림이 없으면 안 됩니다. 보았을 때는 다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면 대상이 다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라고 알게 됩니다. 눈에 대해 그렇게 알 수 있으면, 귓전을 맴도는 것도 나타났다가 사라져 간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가 싫은 소리를 말하면, 그것에 대한 2배, 3배로 되갚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 때에 알아차림이 있으면, 다만 들을 뿐이기에 거기서 끝나 버립니다. 알아차림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매우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수행하면 깊은 사마디를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보다도, 항상 혐오나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지 체크하는 알아차림의 수행이 일상생활에 효율적입니다.

 

평상시의 생활에서는 눈을 감을 수도 없고, 소리를 안 듣게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육근을 통해 들어옵니다. 그냥 들어오는 데로 두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알아차림(사띠)을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눈이나 귀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눈이나 귀를 통해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탐욕이나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을 하고 있으면, 약한 냄새가 나도 그것을 수행의 대상으로 해서 「냄새」라고 알기에, 그 고약한 냄새가 닙바나로 이끄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눈앞의 사람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도, 다만 보고 있을 뿐, 이것은 일어났다 사라져 간다고 하는 분명한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있을 때는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등 일상의 대상에 대해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

 

◎ 마음의 평안과 알아차림(사띠)

 

마음의 평안이 있으면 화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알아차림(사띠)이 있으면 분노라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수행을 시작하기 전과 수행을 자주 행한 후를 비교해 보면, 마음이 점점 성장해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면, 자신의 인생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젼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보고 듣는 것에 집착합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없다, 24시간으로도 부족하다」라고 말합니다.

 

눈감고 앉아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철을 타고 가면서 보이는 것들을 「보고 있음, 보고 있음」이라고 다만 보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수행이 됩니다. 모든 것이 수행의 시간이 됩니다. 먹고 있을 때 「맛있다」라고 하는 것은 탐욕이며, 「맛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분노입니다. 알아차리면 씹고, 삼키고, 보는 것으로 식사 때도 수행의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지속해가면 배가 불러오듯이 집중력도 가득하여 지혜가 일어납니다.

 

어느 정도 먹으면 좋은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릅니다. 먹을 때도 탐욕이나 혐오로 먹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사띠)으로 식사를 하면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식사하는 20~30분의 시간이 수행의 시간이 됩니다. 탐욕도 분노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붓다는 우리에게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행운이며, 어떤 식으로 먹으면 좋은지 알고 있습니다.

 

또, 전철을 타고 가면서 앉아있을 때는 접촉하고 있는 곳을 알아차리며 「접촉하고 있음, 앉아있음」이라고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30분간 수행시간이 생깁니다. 눈으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봅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나타났다 사라져 가는 것과 같이, 눈에 비치는 의식도 나타났다 사라져 갑니다. 귀로 들을 때도 듣고 있는 대상이 들려서 사라져 가는, 그것은 단지 소리라는 파동이 나타났다 사라져 갈 뿐입니다. 마음과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나타나서 사라져 갑니다. 소리라고 하는 것은 물질입니다.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소리라고 하는 물질과 그것을 듣고 있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나서 동시에 사라져 갑니다. 우리는, 눈, 귀, 코, 혀, 신체, 마음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리가 들렸을 때는, 「소리」, 「듣고 있음」이라고 알아차리고 있으면, 그것은 단지 진동인 것을 알기에 사라져 갑니다. 듣거나 보거나 하고 있을 때는 탐욕이나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을 세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행은 배의 팽창과 수축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마음을 항상 청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 마음을 어떻게 세탁할까

 

항상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라는 것을 체크하십시오. 그것이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본다는 것은 마음을 체크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을 체크하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마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행복할 때에서도, 행복하지 않을 때에서도 그 마음에 대해서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이나 학교나 일 등으로 「좋았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어디론가 가버리므로 끊임없이 마음을 체크해 주십시오. 무엇을 하고 있어도 지금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고 나서 배라면 배, 주요한 대상으로 돌아옵니다.

 

코끝이면 코끝, 배라면 배를 제1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도, 그 때에 보거나 듣거나 냄새나거나 했을 때에는 그것을 주 대상으로 해서 알아차리고, 그것들이 없을 때에는 제1의 대상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우리에게는 집중해야 할 대상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지금이라는 때가 중요하고, 배의 부푸는 곳을 보고 있을 때는 지금의 마음과 부푸는 곳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배의 수축과 팽창을 보고 있을 때는 마음의 눈을 여기(배)에 두고, 함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눈을 여기(배)에 둡시다. 그것이 효율적인 수행의 방법입니다. 눈을 항상 여기(배)에 놓아두는 마음으로 해나가면, 마음은 그만큼 달아나지 않습니다. 5분 정도 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말고, 지금에 마음을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또, 앉아있을 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같은 자세로 해주십시오. 2~3시간 앉아도 문제없습니다.

 

가려움이 있으면, 다만 「가려움」이라고 봐 주십시오. 「가려움이 없어지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가려움이 없어지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탐욕입니다. 「왜 가려움이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노입니다.

 

무엇이 일어나도 조용하게 인내를 가지고, 일어난 채로 두십시오. 인내의 마음을 만드는 것은 중요합니다. 인내가 없으면 긁어내거나 합니다. 분노를 내는 것보다는 긁는 편이 좋습니다. 의도라고 하지만, 긁을 때 「긁고 싶어 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곧바로 긁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손을 들고 가서, 「접촉했다」 「긁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린다는 느낌으로, 긁을 때도 알아차리며 긁도록 하십시오.

 

앉아 수행하고 있을 때는, 눈을 살며시 감은 채로 하는 편이 좋습니다. 눈을 뜨면 집중력이 날아가 버립니다.

 

여러 가지가 일어나도 인내가 중요합니다. 초심자는 큰일이라고 하겠지만,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인내가 매우 중요합니다. 인내에 의해, 큰 괴로움도 작은 괴로움으로 할 수 있습니다. 싫은 감각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것을 수행의 대상으로 합니다. 쾌적한 감각이든, 불쾌한 감각이든, 그것을 수행의 대상으로 해서 알아차립니다.

 

아픔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마음도 아픔과 함께 있도록 합니다. 아픔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사이가 좋은 친구입니다. 아픔에 대해서 화내서는 안 됩니다. 아픔에 견딜 수 없을 때에는, 자세를 바꾸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자세를 바꾸거나 하는 것은 그것은 자연스러움이며, 분노나 탐욕이 아닙니다. 아픔에 대해서 화내거나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신체에 일어나는 아픔은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앉아있으면 처음은 쾌적한 느낌이지만, 30분 정도 지나면, 불쾌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때에 쾌적한 것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싫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쾌적한 느낌도, 불쾌한 느낌도,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압니다. 그처럼 해서 인내를 가지고 있으면, 큰 아픔이라는 것은 일어나오지 않게 됩니다.

 

2~3년쯤 수행을 하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어서, 비록 아픔이 일어나도 아픔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으면, 그것이 진정되어집니다. 30분 내내 움직이지 않겠다는 강력한 결의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마음의 트레이닝입니다. 마음에서는 행복감이나 불행한 느낌 등 여러 가지 것이 생겼다가 사라져 갑니다. 그것들에 대해서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그러한 것이 없을 때는 주요한 대상인 배나 코에 집중합니다.

 

누워있을 때도, 손을 대어 배가 부풀어 오르고 줄어들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십시오. 누워서 과거나 미래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릴렉스시키는 것이 중요

합니다.

 

손을 여기(배)에 두고, 배의 팽창과 수축을 5분~10분 느끼고 있으면 졸려집니다. 수면

제는 필요 없습니다. 하루 동안 애썼으니 마음껏 릴렉스 해주십시오. 집중해서 10분~30분 정도 합니다. 그래서 잠잘 수 없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좋습니다. 정신적인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 잠잘 수 없어도 그처럼 수행 하고 있는 경우에는 다음날에 졸려지지 않습니다. 수행의 힘이 있으면 그만큼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누웠을 때의 수행입니다.

 

아이가 저금통에 돈을 모으는 것처럼 조금씩 하고 있으면 가득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눕는 수행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자신의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자

 

그래서 일상적인 알아차림으로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전의 수행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들은 이 시간을 소중히 하고, 우리들의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걷고 있을 때도 「걷고 있음, 걷고 있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언제 어떤 시간이라도 수행의 시간이 됩니다. 간단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처음은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후는 매우 쉬워집니다.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은 잘 몰라서 배우는 것이 큰일이었지만, 지금은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행도 그와 같이 다음에는 편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매일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먹을 때도 스푼으로 밥을 퍼서, 씹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여 20~30회 씹는 것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한번이라도 씹는 것에 알아차림을 가지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좋습니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횟수를 거듭해 가면 연습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에 10번 알아차림(사띠)을 할 수 있었다고 하면, 알아차림(사띠)의 마음이 점점 나갑니다. 집중과 알아차림과 지혜가 증가해 가서, 점점 목표에 가까워져 갑니다. 그래서 매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행은 우리들의 마음과 몸이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항상 수행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한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배를 알아차리고 있을 때 1분간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선행을 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게 하루 동안 선행과 악행 중 어느 쪽이 많을까요? 대체로 탐·진·치가 많을 것입니다. 수행자는 탐·진·치를 없애는 일을 매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중을 얻을 수 없다든가, 닙바나가 어떻다든가,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지금은 알아차림을 유지해나가면 됩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6개의 문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에 대해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탐욕이나 분노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