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20150918)
부처님과 동시대의 종교 지도자 중에 Sañjaya(산자야)라는 유명한 분이 있었습니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고 제자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육사외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재 산자야가 남긴 직접적인 문헌은 존재하지 않지만 빨리 경전에 인용된 것으로 유추해 보면, 그는 「지혜, 지식, 인식은 불가지(不可知), 혹은 철저하게 불확정(不確定)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불가지, 불확정」이라면 주장할 일도, 말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것들도 또한 「아는 것(知)」를 인식시키는 의미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문과경」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산자야의 제자가 「다음 세상(사후의 세계)이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산자야는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별도(다른 차원으로 취급하는 것)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유무의 양쪽 모두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유무의 양쪽 모두가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일종의 회의주의적인 입장으로부터 모든 인식 수단을 던져버려 결론을 회피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산자야는 이렇게 말하는 입장을 지켜온 것 같습니다.
Sāriputta(사리뿟따)와 Moggallāna(목갈라나)는 부처님의 2대 제자로서 유명하지만, 이 두 명도 이전에는 산자야의 제자였습니다. 특히 지혜있는 자라고 불리는 사리뿟따는 진리를 구하는 논객이라는 입장으로 보아, 모든 인식 수단에 대해 끝없이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산자야의 논리는 기분 좋은 것으로 비쳐졌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고의 자유는 당연히 환영받아야 할 일이지만, 자유는 또한 이런저런 문제를 야기합니다. 한편, 어쨌든 어떠한 결론을 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급진적 사고에 빠지는 위험과 논리를 고집한 나머지 자신의 삶의 방법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사고 형태에 이르고 마는 양극단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두 사람은 그 후에 인연 법칙에 의해 현상이 일어나고 또한 사라져 간다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 나서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생각은 분명히 다양합니다. 납득이 가는 것과 납득이 가지 않은 것,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 확실하지 않아서 어느 쪽에도 취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렵게 숙고한 결과의 결론이 당연한 것이면서도 부정될 가능성도 많습니다.
「무의미한 것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의미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잘못된 사유를 가진 그들은 진리를 획득하지 못한다.
의미 있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알고 무의미한 것을 무의미하다고 본다. 올바른 사유를 가진 그들은 진리를 획득한다.」 (담마빠다 11, 12 게송)
회의주의나 다른 사고 형태에 대해서 대답한 부처님의 말씀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의미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명제를 고찰해 보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 인생에 있어서의 실천적인 가치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의미(진리)」라고 하는 명제는 론과 반론이 양립하는 인식이라고 하는 범주에서 과연 이해 가능한 일입니까? 부처님은 회의주의에 대해서 실천 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생각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언행을 실천하기 전에 3가지의 포인트를 체크하겠습니다.
(1) 이것을 실천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 세상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다음 세상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향상합니까?
(2)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인가? (자신에게는 좋은 결과가 되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결과가 되는 경우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결과가 되어도 자신에게는 나쁜 결과라고 하는 일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이 행위는 나와 다른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인가?
이 3가지를 주의해서 실천하면 혼란할 것도 없고, 지금 실천해야 할 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되어, 그것을 확실히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인지를 가르칩니다. (불교에서는 사고도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는다고 헛된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두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논리나 이론 등의 사고의 유희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위 그 자체입니다.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 관념적 사고나 철학적 고찰이라는 포즈를 취한 책 속의 이론 등이 어느 정도 고매한 생각이라도 무가치하다고 봅니다.
「누구의 의견이 올바른가, 누구의 의견이 잘못되어 있는가?]등의 논쟁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쓸데없는 어리석음이라고 부처님께서 경전 곳곳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3가지 체크 포인트에 대해 예를 들어 고찰해 봅시다.
근처 집에서 화재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그 화재를 끄는데 노력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서 도움이 되므로 체크 (3)에 해당합니다.
다음에 집에 갇힌 사람을 도우러 간다고 하면 이것은 체크 (2)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의 결과 자신이 화재로 화상을 입거나 상처라도 나거나 하면 이것은 체크 (1)에 해당하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방호복 등을 준비해서 도우러 가면 그 행위는 체크(1)에도 부합해서 행위는 관철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항상 3가지의 포인트를 보고, 거기에 알맞은 결론을 끌어내면 자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가 되기에 용이하게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관으로서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 철학적 종교 사상이나 개념, 관념적 사고 속에 시비를 가리는 등의 어리석은 행위는 경고합시다. 혼란의 원인을 만들 뿐입니다.
• 어떤 주의·주장에 집착하는 것보다 모든 주의·주장의 실천적 측면을 고찰합시다.
• 몸, 말, 뜻의 행위에는 우선 (1) 자신을 위해 도움 될까 (2) 타인을 위해 도움 될까 (3) 자타의 행위에 도움이 되는지를 체크해 실시합시다.
• 좋은 행위는 즉시 실행하자(선은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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