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단하게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 (20150919. 서울)
◉ 소망 실현에 필요한 「말의 정의」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등의 축복, 자비의 게송은 우리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또한 자주 귀에 들려옵니다. 왠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확실히 무엇을 완성하고 싶다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기를!」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마음이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모르는 한,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평화롭기를!」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평화가 실현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소망을 포함한 말의 의미는 애매합니다. 명확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건강하기를! 오래도록 건강하게 보내기를! 신의 축복이 있기를! 과 같은 문장에는 정해진 의미가 없습니다. 그때 그때의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행복하게 되고 싶고, 평화롭게 살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오래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구체적인 정의가 없으면 실천할 수 없습니다. 몇 살까지 사는 것이 장수인지, 어느 정도의 컨디션을 가지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등은 개개인 자신의 취향으로 설정해, 그 목적을 목표로 해 노력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기대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 의미가 개개인의 취향의 정의로 상관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회에서 다르다고 말하면 곤란합니다. 자신이 절세의 미녀·미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으면, 또는 모두가 반대의 의견이거나 하면 곤란해져 버립니다. 요컨대 사람의 희망·소망을 포함한 말에도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정의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 불교가 보여 주는 해결책
견해를 바꾸어 생각해봅시다. 모두 행복하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는 지금 현재는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벌써 있는 것에 대해서는 기대할 필요도, 소망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가 있는 부모는 「아이를 가지기를!」이라고 원하지 않습니다. 임신하고 있는 어머니는 「순산하기를!」이라고 기원하지만, 「아이를 가지기를!」이라고는 기원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모두 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누구 하나도 아직도 행복에 도달하지 않은, 현실적으로 불행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교의 해결책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알았으면, 그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인연·조건 등을 바꾸는 것을 추천합니다. 원인이 바뀌면, 결과도 바뀝니다. 지금 불행하다면 현실을 알아차린 사람이 그 조건을 바꿉니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것보다 「불행하지 않다」는 상태에 이릅니다. 「행복하기를!」이라고 하는 말보다 「불행이 없기를!」이라고 말하는 편이 구체적입니다. 「건강하기를!」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이 병이 낫기를!」이라고 말하는 편이 구체적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열반은 불행을 극복한 상태라고, 부정형을 사용해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쪽이 구체적입니다.
◉ 문제의 발견이 출발선
사람이 행복하게 되고 싶다고 원한다면,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이해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고민 괴로움이란 모두에게 평등하게 있습니다. 고민, 괴로움의 원인도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생명의 괴로움과 그 원인을 부처님이 고성제와 고집성제라고 명명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면 근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희망 섞인 말로 하면 「행복하게 되기를!」인 것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모두 알고 싶어 합니다. 부처님이 이 질문에 대답하셨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 대답에 세속적인 의문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부처님의 견해는 구체적이고 애매함은 없습니다. 사람의 기분이나 마음에 맞추는 대답도 없습니다.
◉ 부처님과 마라(악마)의 대화
상윳따 니까야(상응부)의 악마 상응부분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느 날 사람을 죽이는 일도 없이, 괴로워하게 하는 일도 없이, 괴롭히는 일도 없이 통치할 수 없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가는 국민을 위해서, 국민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정치 생명을 걸고 약속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차이가 납니다. 정치가는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국민에게 폐를 끼칩니다. 통치자에 의해 국민이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하고 있는 현실을 부처님께서는 연민심을 지니고 관찰했습니다. 이러한 경우 어리석은 자는 「정직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통치한다면 이 꿈을 실현할 수 있다」라고 대답입니다. 이것은 대답이 아니라, 희망․ 소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라(악마)가 와서 「부처님이라면 누구하나 죽이는 일 없이, 괴로워하는 일 없이, 괴롭히는 일 없이, 통치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통치란 있을 수 없고,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라에게 「금이나 은으로 만든 산을 주었다고 해도 인간은 만족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정치란 욕망의 불길에 끊임없이 연료를 주는 행위입니다. 욕망은 결코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록 평화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쌓아 올렸다고 해도 사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다른 견해로, 다른 차원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부처님의 행복론 12가지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부처님이 말씀하신 항목을 경전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일이 생겼을 때에 친구가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친구가 필요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지지해주거나 도와주거나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입니다. 재해․재난 뿐만 아니라 결혼식 등의 「중요한 일」도 생깁니다. 그러한 때는 고민하거나 걱정하거나 침착성이 없어지거나 하기 쉽습니다. 그때 만약 동료가 모여 도와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얼마나 평온함을 느끼겠습니까? 그 경우 자신의 마음에 있던 고민, 괴로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일이 생겼을 때 도와주는 친구가 있는 것은 행복입니다.
(2) 일상 필수품에 대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행복입니다.
돈, 집, 의복, 음식, 차, 가방 등 소지품이나 필수품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좀처럼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다 좋은 것을 바라게 됩니다. 「좀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만족하지 않은 증거입니다. 이른바 불만,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좀 더 좋은 것이 있었으면!」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인생은 불행뿐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보면, 점심은 한 번 밖에 먹을 수 없습니다. 밤에는 한 장소에서 밖에 잘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한 번의 식사에 대해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잘 수 있는 장소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지금의 1분에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의 1분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1가지입니다. 그것을 기뻐하며 충실감을 얻고 실천하면 그야말로 행복합니다. 지금 있는 것에 불만을 느끼면, 일생 불만이 계속되는 인생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행복을 획득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만족의 빠리어는 tuțțhī(뚯티-)입니다. 가득 차고 충분하다고 하는 단어적인 의미보다, 「이것으로 좋은 것 아니냐?」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일상 필수품에 대해서 만족을 느껴지도록 합시다.
(3) 노후에 좋은 인생이었다고 생각되도록 덕을 쌓고 있다면 행복합니다.
결국은 인간도 동물도 반사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계획을 세워 착착 실행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반사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판단을 해서, 나쁜 행위는 멈추고, 좋은 행위는 하면서 사는 일도 가능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반성한다는 기능이 있습니다. 반성에 의해 삶의 방법을 개량하거나 제어하거나 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반성해 보면, 낙담하는 일뿐이라면 불행한 인생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지키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 일을 하는 것 등 누구라도 하고 있는 패턴과는 다른 어떤 좋은 일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은 선행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떤 때에 반성해도 「좋은 인생이었구나!」라고 기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행을 하는 것을 인간에게 있어 직접적인 행복입니다. 임종 때 죽음의 바닥에 누워 있을 때에도, 마음 가득히 기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선행을 행하도록 힘씁시다.
(4)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행복입니다.
붓다가 말씀하신 「존재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괴로움이 있습니다. 배가 고프거나, 더운데 절전을 위해서 냉방을 켜지 않기도 하고, 신체가 나른해 지거나 하는 것 등도 괴로움입니다.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그때마다 매번 그 괴로움을 없애는 것, 극복하는 일도 행복입니다. 더위에 찬물로 샤워하는 것도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므로 즐겁습니다. 완전하게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궁극적인 행복이지만, 그때 그때의 괴로움을 없애는 일도 행복입니다.
(5~6) 어머니와 아버지를 잘 모시는 일도 행복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할 정도로 격렬한 감정으로 양육을 합니다. 언제나 아이의 일로 머리가 꽉차있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칭찬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자식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것은 유전자에 인쇄되어 있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유전자의 프로그램이며 사람의 본능인 것입니다. 그에 반해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를 걱정하고, 부모를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유전자의 프로그램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본능을 부수고 보다 높은 삶의 방법을 하면 사람은 대단한 만족감·충실감을 얻습니다. 누구에게나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를 잘 모시면 자기 자신이 「살아있어서 좋다」는 높은 충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 해 보십시오. 아이를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입니다. 그때도 아이가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고,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배불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아이는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고생하며 살아온 부모님에게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다고 합시다. 부모님은 반드시 「너는 진짜로 착한 자식이다. 고맙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부모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과 충실감을 줍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만, 부모에게 봉사하는 것을 실천하면 그야말로 행복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7~8) 사문·바라문에게 봉사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사문·바라문이란 인도에 있는 여러 형태의 수행자가 아닙니다. 불교에서의 정의는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할 목적으로 세속의 소유물을 모두 버리고 출가자가 되어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은 소유하는 것이 없기에 재가자들이 식사나 머물 곳 등을 보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보시에 의해 수행자가 목숨을 보존해서 수행합니다. 재가자들에게도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재가자는 「우리가 성스러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라는 충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통 사용하면 사라지는 재산이 지속되는 결과로도 됩니다. 이상의 설명은 주석서의 설명입니다.
위의 원문을 충실히 번역하면 「사문이라고 하는 성질이 있는 것, 바라문이라고 하는 성질이 있는 것」이 됩니다. 그 말은 우리의 마음도 욕구에 빠져 있는 속인의 레벨에 둔 채로 살지 말고, 보다 뛰어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계를 지키거나 수행하거나 해서, 보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증장시킬 수가 있다면 이것도 대단한 행복입니다.
(9) 늙을 때까지 계율을 지키며 사는 것은 행복입니다.
단지 하루라도 계율을 지키며 살아보면 행복감·충실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정직한 인간으로 살았다」는 마음이 됩니다. 후회할 일이 없는 하루는 행복합니다. 그렇게 늙을 때까지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 되겠습니까?
(10) 마음에 「믿음」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이것은 무비판적으로 믿는 신앙이 아닙니다. 불교의 믿음은 확신·납득이라는 의미입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배워, 그 가르침은 그대로 진리라고 납득할 수 있으면, 「믿음이 나타났다」라는 것이 됩니다. 붓다가 말씀하신 가르침을 납득했다면,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최고로 행복하게 됩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인간으로서 사는 일도, 집착·속박 등에 괴로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일도, 해탈을 목표로 해서 도전하는 일도, 「믿음」이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11) 지혜가 일어나는 일도 행복입니다.
부처님은 「불행·공포·위험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무지로부터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성장시키는 것은 행복의 실현이 됩니다. 모든 현상은 무상인 것,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일시적으로만 성립되고 있는 것, 모든 현상에서는 영원히 변함없는 실체가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12)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여러 가지 행복론을 모두 정리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완전하게 죄를 범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면 해탈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 죄를 범하지 않는 인생을 지내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 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고 행복하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닐 것입니다.
이상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행복론입니다.
● 이번 포인트
• 희망적 행복은 애매합니다.
• 현실적인 괴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 행복은 누구라도 간단히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 해야 할 일을 행하고, 죄를 범하지 않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 > 법문 교재(프린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자의 마음 (20160122) (0) | 2022.02.07 |
---|---|
좋은 목적은 의욕을 지속시킨다. (20151017. 서울) (0) | 2022.02.05 |
악은 선을 가장하고서라도 사람을 덮친다. (20150815. 서울) (0) | 2022.02.01 |
다섯 가지 장애 (20150725. 서울) (0) | 2022.01.30 |
끊임없이 더러움이 일어나므로 수행에 휴식은 없다. (20150523. 서울) (0) | 2022.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