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6~2018 붓다야나선원법문

효도하는 사람은 어떤 불행도 넘을 수 있다. (20160506. 대구)

담마마-마까 2022. 2. 16. 09:00

https://youtu.be/_zj_whiv2Yk

* 효도하는 사람은 어떤 불행도 넘을 수 있다. (20160506. 대구)

 

어제가 어린이날이었죠? (네) 내일 모레는 어버이날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 주제는 효도에 대한 건데, 그래서 제목이 「효도하는 사람은 어떤 불행도 넘을 수 있다」 하는 부분입니다.

 

스님의 가족을 예로 들면 우리가 다섯 자식이 있는데 스님이 장남이거든요. 그런데 부모님 둘 중에 누굴 많이 따르냐면 다섯 명 다 어머니를 많이 따랐어요. 한 번도 우리한테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해가지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없고, 반드시 그거는 시정하도록 만들어주고, 잘했으면 잘했다고 칭찬하고, 그리고 조그만한 거라도 챙겨가지고 자식들한테 뭘 해줄려고 하니까, 다들 다섯 자식들이 다 어머니를 굉장히 따랐어요. 어머니가 말하면 뭐든지 다 믿고 따르는데 아버지는 좀 그러지는 않았거든. 아버지는 밖에서 일을 하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옛날에는 아버지는 양조장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일을 한 것이 많지. 그런데다가 아버님은 조금 자식들한테 무심한 편이었어. 잘해도 잘했다 소리 안 하고, 잘못했다 해도 나몰라라 하고 이런 스타일이었거든. 그런데 자식들 입장에서는 잘못한 것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해주는 것이 그때 당시에는 싫은지는 몰라도 나중에 가서는 보니까, 그게 오히려 부모가 당연히 해야 되는 것들을 했다 생각이 드니까 그런 부모들을 더 따르게 되더라고.

우리 가족 같은 경우도 좀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그래서 모친이 먼저 돌아가시고 나서 나중에 아버님이 재혼한다 하니까 집안 다섯 식구들이 다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는 거라. 뭐 때문에 반대하는지 알아요? 엄마 자리를 누군가가 넘본다는 그 생각도 물론 있을 수가 있는데, 아마 사정이 바뀌어가지고 아버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만약에 재혼하시겠다고 그러면 다들 자식들은 흔쾌히 “예, 어머니가 행복하면 그렇게 하세요” 아마 이렇게 했을 거 같은데 아버님은 그렇지가 않은 거라.

 

그래서 내가 가서 조정을 해주고 그런 적이 있는데, 출가자가 와서 재가자의 일을 조정하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닌데, 그런데 관점이 다른 거라. 그러니까 아버님이 뭣 때문에 재혼할려고 하고 어떤 길을 가는 것이 더 행복한가 하는 것을 자식 입장은 둘째고, 자식들은 자식들이 바라보는 부모의 관점만 생각을 하는 거라.

 

쉽게 말하면 육방예경(六方禮經)에도 나와있지만, 부모가 자식한테 해주어야 되는 게 뭐가 있어요? 그걸 다섯 가지로 보통 얘기해놓고 있거든요.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잘못한 것이 있다고 분명하게 얘기해라.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해줘야 되고,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더 훨씬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는 거고,

그러고 나서는 애들을 반드시 교육시키는 것, 교육시키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자기가 클 때는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부모가 당연히 해주어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는 좀 크고 나면은 당연히 결혼을 시켜줘가지고 잘 살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주고,

그리고 다섯 번째는 그러고 나서 일정한 시기가 되면 여러분들 재산분할 하듯이 재산을 나눠주도록 하고,

그런 것 다섯 가지가 부모가 자식에게 해줘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안 해주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우리 아버님 살아계시는데 얘기해서 뭐하지만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그 일을 잘 못했거든. 잘했든 잘못했든 그냥 내버려두는 그런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아버지 역할을 잘못했다고 생각이 드니까, 애들이 아버지 역할도 제대로 못했으면서 또 다른 어머니하고 해서 어쨌든 거기도 자식들도 알아있을 건데 그 굴레를 또 지느냐는 것 때문에 많이 반대를 했던 겁니다.

그런데 스님이 잘못 결정을 내렸는지 몰라도, 어쨌든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해줘야 되는 의무지만 의무를 안 했다 해가지고 아버지가 행복해야 될 권리를 자식이 박탈할 이유는 없다 해가지고 난 재혼하는 걸 찬성을 했었어요. 그래서 재혼을 했는데 결국에는 얼마 못 가 또 헤어지기는 하대요.

 

그리했는데 그 경우들을 보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되는 것도 있고, 또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되는 것들을 지금 얘기하겠습니다.

그걸 통틀어 가지고 불교에서는 「효행」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보통 효행이라고 할 것 같으면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만 얘기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도, 그래서 육방예경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대해서 분명하게 그렇게 구분을 해놨습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부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친구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이런 것들을 상호 간에 하는 것들을 「효행」의 영역에 넣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반드시 해야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까?

첫 번째가 "부모를 모시는 것". 직접 모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멀리서라도 항상 마음을 모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쉬운 것이 없는지 잘 살펴봐 주는 것.

 

스님이 일찍이 사회생활을 안 해보고 대학 다니다 바로 출가를 했으니까 나는 그 물정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밑에 동생이 남동생인데 결혼을 했어요. 그 부인이 참 아버지를 잘 모셔. 처음에는 같이 모시다가, 결혼한다고 하는 바람에 분가를 했다가 나가서 깨지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올 염치가 없는지 따로 아파트를 얻어가지고 있겠다 해가지고 아버지를 아파트 얻어 드리고, 그 대신에 매일 같이 이 며느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매일 같이 가서 문안 인사를 하고 반찬을 갖다 드리고 이렇게 하는 거라. 그리고 불편함이 없도록. 왜 불편함이 없기야 없겠어? 나이 드신 분인데. 그래도 소일거리 만들어드리고 이렇게 하더라고. 그래서 참 잘하고 있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스님은 솔직히 밑에 남동생보다도 남동생 부인을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아버지한테 하지 못하는 걸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잘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마음으로는 항상 응원해주고, 그래서 둘이 싸우면 절대 남동생 편을 안 들어 줘. 이 며느리 편을 들어주지.

그래서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되는 것이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자식이 부모에게 해줘야 되는 것은 뭐냐면 "부모님의 책무를 대신해준다" 경전에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책무를 대신해준다고 할 것 같으면 무슨 가업을 이어받는다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걸 잘못 해석하면 그렇게 되는데.

가끔씩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나이 드신 분이 와가지고 “스님, 내가 형편이 안 돼도 살아있을 때는 스님한테 맛있는 거라도 사드리고 하는데 내가 죽고 나면 하지도 못합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건 뭐냐면 자식이 그 부모가 하는 선한 일들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얘기라.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되는 의무들을 안 한다는 얘기거든. 그걸 책무라고 그럽니다. 부모를 대신해가지고 그 책무를 다하는 것들.

 

그러니까 그 부모가 하는 것이 그것뿐이겠어? 여러 가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슨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할 거 같으면 그 일들을 이어받아서 계속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얘기합니다. 자식에게 그런 교육은 잘 시켜야 됩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시키지 않으면 커가면서 더 시키지 않으면 부모가 하던 일들하고 자식하고는 별개의 것이 돼버립니다.

그게 자식이 부모를 대신해서 해야 되는 것 중에 두 번째에 해당이 됩니다.

꼭 사회적으로 부모가 하던 직업을 물려받는다든지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는 그런 것들하고 거리가 좀 멉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논의돼야 될 부분인 것이지, 그렇다고 해가지고 이게 틀리고 맞고의 성질을 떠나가지고, 그 대신에 부모가 선한 마음을 내어서 사회에 대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것들을 자꾸 물려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다음에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되는 의무 중에 세 번째가 "집의 격을 지키는 것"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집에는 집의 고유한 특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격을 지키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술꾼으로 노름꾼으로 이렇게 전락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그 자식을 나쁜 사람이라고 보지만, 그 자식을 길렀던 부모를 욕을 하기도 합니다. 집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거라. "집의 격을 지키는 일도 자식이 해야 되는 일 중에 하나다" 그렇게 부처님이 얘기합니다.

 

그렇다고 해가지고 내려온 전통들을 그대로 지키라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걸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자식이 하는 일이 부모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 그것이 바로 집의 격을 지키는 것들입니다. 우리 자식은 참 훌륭한 일을 한다 하는 마음이 들고, 그걸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된다 하는 그런 얘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집의 재산을 지킨다" 하는 겁니다.

삼대부자가 없다는 얘기는 아마 그런데 해당이 될 거라. 부모가 잘 유산으로써 물려주고 그리고 집에서 이뤄놓은 걸 자신은 그걸 올바른데 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나 아니면 흥청망청 쓰는데 써버린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안된다는 거라. 그걸 집의 자산을 지키는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부모님에 대해서 회향하는 것".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보통 여러분들 사십구재 지내면 땡 하잖아. 49재 지낼 때 회향을 하긴 하는데 지내고 나면 그뒤부터는 그런 일을 안 한다는 거라. 그걸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자신이 살아있을 동안에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선한 일들을 했을 때 ‘아, 이러한 것들을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회향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져주는 것! 그걸 돌아가신 부모님께 공양올린다, 부모님께 회향한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 것들이 자식이 부모에게 반드시 해야 되는 의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걸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되는 것,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되는 것, 이걸 통틀어가지고 부처님이 "효행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대부분 보면 부모가 자식들한테 하는 것은 대부분 잘합니다. 나쁜짓 하면 뭐라 하고, 잘했으면 잘했다고 칭찬하고, 그리고 여러분들 공부시켜주고, 결혼시켜 주고, 그리고 재산도 나눠주고 이런 것들은 그게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일인데 그건 대부분 잘한다는 거라.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하는 것들은 조금 전에 다섯 가지 예를 들었지만 대부분 잘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거라.

 

여러분들은 인제 나이가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있든 살아있지 않든 부모님에게 해야 되는 효도는 반드시 해야 됩니다. 돌아가셨으면 돌아가신 부모님께 해야 되는 의무, 잘 회향하는 것들을 항상 자꾸 해야 되는 것, 살아계시면 살아계신 부모들에게 해야 되는 의무들, 여러분들이 청정하고 또 바르게 선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들이, 여러분들이 부모에게 해야 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하지 않고 지낸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부모 자식간에 해야 될 일들을 하지 않는 결과에 해당이 됩니다.

여기에서 경전에서 예를 든 것이 그렇습니다.

 

보통 예를 들어봅시다. 얼마 전에 네팔에 지진이 있었죠? 지진이 탁 일어났을 때는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모릅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뭐가 무너지고 이러면 자기 대피하기 바쁩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면 내 집을 잃어버렸다, 내 가족을 잃어버렸다, 아니면 친척을 잃어버렸다, 뭐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모르겠다, 이런 것 때문에 그때부터 사실은 지진의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는 그때부터 공포가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선진국과 후진국들 물론 경제적인 차이들도 있지만 재건하는 속도들을 보면 굉장히 차이가 납니다. 선진국 같은 경우들은 물론 물질적인 부유가 있기 때문에 금방 그 건물들을 짓고 하는 건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고 그것들에 대해서 대처하는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다릅니다.

공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점들로부터 해가지고 사람들이 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하는 것들을 잘 대처하는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대처하지 못하고 그냥 그것들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고, 그것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참 후진국적인 사고라는 거라.

 

그래서 여기에도 적어놨지만 "사라진 것은 이미 사라졌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없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됩니다. 실제 그렇다는 거라. 사라진 것은 이미 사라져버렸다는 거라. 원래 상태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걸 자꾸 바란다는 거라. 여러분이 아이가 되고 싶다 해가지고 아니면 학생이 다시 되어서 공부하고 싶다 해가지고 그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못 돌아간다는 거라. 그런데도 그걸 바란다는 거라. 그래서 그것은 실제 해당 사항이 없는데 거기에 매여버리면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거기서 또 벗어나지 못하면 비참한 상태들로 계속 나아가게 되는 거라. 오히려 자칫 잘못하면 자기 자신을 해치는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그래서 역경에 도달했을 때 얼마만큼 잘 헤쳐나가느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그것을 잘 헤쳐나간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런 사람들을 두고 부처님은 아, 그래도 너는 참 잘 살아간다 하고 얘기합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물질적으로 지금 내가 당장 집을 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집을 짓기 위해서 그 사실을 잊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실로부터 헤쳐나와서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게 될 때 그 사람은 참 잘살아가는 사람이다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하게 됩니다.

 

경전에 그런 게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상황하고 비슷할 겁니다. 자식이 아들이 네 명 있는데 아들 네 명을 다 공부를 시키고 해가지고 장성했기 때문에 다 결혼시키고, 결혼했으니까 살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준 거라. 자기가 가진 돈이 80원 있다 할 것 같으면 그거 네 아들들에게 10원씩 골고루 주는 거라. 그러면 40원이 남았잖아. 그러면 40원은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아, 이거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또 내가 선한 일을 하는데, 또 내가 노후에 쓰기 위해서 자금을 놔두게 되는 거라. 그래서 40원은 이미 없어졌어요.

 

그리했는데 살아가면서 항상 어떤 일들이 닥치게 됩니다. 똑 우리 부친이 재혼하겠다는 일이 닥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이 딱 닥치는 거라. 그러면 자식 입장에서는 어, 재혼할 거 같으면 저 40원 남의 집에 넘어간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라. 그렇게 하니까 재혼을 반대하는 거라. 그러니까 아버지의 행복은 둘째라. 그러면 자기들이 잘 모셔야 되는데 잘 모시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할 거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런데 아이들은 “우리가 잘 모시겠습니다” 하면서 그 40원마저도 다시 10원씩 다 가져가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아버지는 남은 게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는 대신에 모든 재산을 다 나눠줬으니까, 요 몇달은 첫째 집에 가고, 그다음 몇달은 둘째 집에 가고, 이런 식으로 하는데 어느 누가 좋아하느냐는 거라.

거기도 아들이 있으면 며느리가 있는데 며느리는 자기 아버지도 아닌데 누가 모시고 있을라고 그래? 그러니까 자꾸 싫은 기색이 보이니까 나와가지고 또 다른 집에 가고. 그 논리가 뭐냐면 사실은 똑같이 있는데도 왜 우리 집에 더 오래 머무냐고 생각을 하는 거라. 똑같이 나눠 줘놓고 나는 장남인데 더 많이 안 주고 똑같이 줘놓고 왜 여기만 더 있느냐고 그렇게 합니다. 눈치 보여서 거기 있겠어? 결국 갈 데가 없으니까 빌어먹게 되는 거라.

 

인도에 가면 그런 종교가들이 있습니다. 물론 주석서에는 부처님 당시 때부터 해가지고 아소카왕 때까지 그 종교가 있었다고 그러는데 그 뒤에는 없어졌다고 그럽니다. 아소카가 3차 결집을 하면서 그런 부파들은 다 평정이 되어버린 상태가 됐다고 그러는데, 어쨌든 지금도 보면 온몸에 회분을 바르고 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죄가 많아가지고 죄를 씻기 위해서 또 그렇게 한다고 그럽니다. 그런 수행자들이 있습니다. 참 많이 보이는 수행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인도에 가면.

그런데 그 생활을 하면서 빌어먹고 있는데, 잘사는 사람이 그런데 가서 빌어먹고 있을 거 같으면 금방 몸이 망가져버립니다. 몸이 쇠약해져가지고 지팡이 짚고 겨우 다니는 거라. 그래가지고 어느날 사람들이 부처님한테 가면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해가지고 “부처님한테 가봐라” 하니까 부처님한테 가니까 그 사실을 듣고 부처님이 그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이 게송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고 아들이 있는 데서 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 게송 내용이 뭐냐면 어찌 보면 여러분들도 거기에 해당이 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자식보다도 내가 뭔가 의지하는 것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이 더 낫다고 그럽니다. 자식 저거 아무리 있어 봐야 소용없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자식보다도 훨씬 좋아. 아니면 그런 자식보다도 내가 마음을 나누고 있는 친구가 훨씬 좋아.

그래서 경전의 제목이 뭐냐면 "자식보다도 지팡이가 낫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지팡이는 짚고 다니면 쓰러지지 않게끔 하고 넘어졌을 때 허약한 분들은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면 지팡이를 의지해서 일어나게 되고, 그리고 개들이나 달려들 것 같으면 그것 가지고 쫓아버릴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팡이가 낫다고 합니다. 내가 쓰러졌을 때 자식들은 외면한다는 거라.

 

그런데 그렇게 돼가 되겠어? 아무것도 없는 지팡이가 자식보다 낫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물질이 마음을 지니는 인간보다도 낫다고 하는 건데 그게 말이 돼? 꼭 마찬가집니다. 여러분 재산이 자식보다 낫다고 할 거 같으면 꼭 같은 논리입니다. 참 서글픈 일들이라. 서글픈 일들. 그래도 뭐 현실이니까, 부처님 당시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적어놨습니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솟아난 기쁨의 감정.

오로지 아이의 행복만을 바라며 손수 돌보고 길렀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나를 돼지와 같이 혐오한다.

! 아버지, 아버지라고 나를 부르는 악인을 낳았구나!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화신한 사인조의 악귀들이구나!

 

적어도 사람일 거 같으면 자기를 길러주고 돌봐준 아버지한테 그러지는 못할 건데, 틀림없이 저 나쁜 놈이기 때문에 그런다는 거라. 자식은 사랑스러운데 사랑스러운 아들들에게 씌인 악귀들이구나.

자식이 해야 될 일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자꾸 내쫓고 아버지를 혐오한다고 할 거 같으면 그거는 악귀지, 그거는 자식이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늙은 아버지를 쫓아내가지고, 나는 지금 구걸하며 먹고 살고 있다는 거라. 그렇게 쫓겨나고 보니까 우리 아이들보다도 지팡이가 더 고맙다는 거라. 여러 가지 일들을 나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 참 서글픈 이야기라.

 

인도 당시에는 재산을 물려받고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전부 사형에 처하는 법률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이 몰랐을 때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버리면 인도에서는 사형에 처합니다.

아마 한국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재산 다 물려받고 부모님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주변 사람들도 다 손가락질하고 피해를 입게 돼있습니다. 그리고 모르게 쉬쉬하면서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그게 공론이 되면 문제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요즘은 물려준 재산 돌려 받을려 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거라. 그런데 대부분 재산들을 재판부가 무슨 계약서를 썼든 어쨌든 간에 부모 손을 들어줄려고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자식이 해야 되는 의무를 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라. 그거는 뭐냐면 인도 당시 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겁니다. 쉽게 말하면 물려받은 재산이 있든 없든 간에 자식을 길러주고 그렇게 키워준 부모에 대해서는 자식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되는 의무들을 해야 된다는 거라. 사회가 그렇게 잘 못한다고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따질 때 못할 경우에는 그건 나쁘다고 얘기한다는 거라.

여러분들은 적어도 부모님에게 지팡이가 자기 자식보다도 더 낫다고 하는 상황에 빠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출가한 스님들도 그래도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씩은 찾아뵙고 부모님한테 잘 계시느냐고 용돈도 쥐어드리고 이리하는데, 집을 떠난 출가자들도 그러는데 재가자들이 그걸 나몰라라 할 거 같으면 그건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그 사실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상태에서 이 게송을 외워라 하고 부처님이 가르쳐주니까 실제 그렇게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 자식들을 가만히 둘라고 그래? “저 죽일 놈!” 하지. 자식들이 그때사 정신을 차리고 아이고, 우리가 참 잘못했다 해서 부모님을 다시 모시게 됩니다.

이 아버지 입장에서는 부처님 때문에 자신이 예전의 생활로 돌아온 것이 고맙기 때문에 부처님한테 공양을 올리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자식들도 공양올리는데 동참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하니까, 자신도 부모와 자식 간의 해야 될 일들을 서서히 깨우치게 되고. 몰라서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른다고 해가지고 해야 되는 의무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거라.

그래서 그 얘길 하면서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효도하는 것이 참 행복한 것으로 이끌어준다" 하는 거라. 그전에는 자식 간에도 서로 이익 챙길라고 다투고 했는데 이젠 안 그렇다는 거라. 이제는 서로 자식 간에도 서로 우애있게 하게 되는 거라. 그리고 마음에도 항상 아 부모님이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다는 거라.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영향을 미친다는 거라.

자신들은 실제로는 부모 재산을 다 물려받았지만 해야 될 일들을 다 하게 되고, 그렇다고 해가지고 자신들이 불행한 게 아니고 오히려 더 행복하다는 거라.

 

제 같은 경우도 내 밑에 남동생 와이프로 들어온 분이 결혼한 게 뭐 때문에 결혼할려고 마음 먹었느냐 하면 가족들이 너무나 우애있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들을 자꾸 보다 보니까 저런 집안이면 가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서 결혼했다고 그러더라고. 자식 간에 우애있게 지낸다는 것은 아버지가 하나의 원인이 되지만 그 원인으로 인해서 실제로는 더 좋은 결과들을 낳게 된다는 거라. 그걸 자꾸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내일 모레면 어버이, 부모님의 날입니다. 여러분에게 부모님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거라. 또 부모님은 여러분들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거라. 지팡이보다도 못한 자식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부모님을 생각하면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행복이 일어나는 것인지. 그러면서 부처님이 코끼리 얘기를 합니다.

 

코끼리가 잡혀갔는데 잡혀가서도 음식을 안 먹거든. 왜 그러냐 하고 물어보니까, 눈먼 장님 어머니가 숲에 홀로 있는데 내가 만날 열매 따가지고 어머니 먹이고 했는데 인제 내가 잡혀왔으니까 저 어머니는 어떻게 하느냐는 거라.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들어가겠느냐는 거라. 그게 자식의 마음이라는 거라.

부모님이 힘든 상황일 거 같으면 그 힘든 상황을 자식이 그걸 대신해서 할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걸 내버려두고 모른 채하고 자기는 맛있는 거 그냥 먹는다는 거라. 그거는 바람직한 방향이 안된다는 거라.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했을 경우에는 코끼리는 맛있는 거 먹을 수는 있지만 거기서 일어나는 상황들은 없는가? 왕이 타고 전쟁터에 나가가지고 화살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거고,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는데, 차라리 그런 상황보다는 나이든 눈먼 어머니지만 어머니에게 가서 잘 보살펴드리면서 그 숲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거라. 그런데 행복한 길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현재 내가 맛있는 거 있다고 해서 맛있는 거 먹는 것이 그것이 행복은 아니라는 거라.

그 사실을 알고 왕이 나서 아, 저렇게 뛰어난 자식이 있구나 해서 다시 부모님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래서 그 코끼리는 다시 숲으로 돌아가서 눈먼 어머니를 일평생 잘 시봉했다고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어버이에게 하는 것들은 대단한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행복해지는 것들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는 것들, 또 자식으로서 해야 될 의무들을 반드시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자식이 해야 될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일어나는 불편함과 불행은 그건 하나의 부속물이다는 거라. 불행하다 행복하다 하는 것은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물질이 있고 없고 아니면 어떤 상태에 놓이고 안 놓이고를 떠나가지고 이루어지는 것들이라는 거라. 자신의 마음이 행복하면은 그 불행은 자신하고는 관계없는 겁니다. 단지 내가 지금 불편하다고 해가지고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생각을 해야 됩니다.

 

'불행은 부속물일 뿐이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불행에 대해서 고민만 해가지고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세월호에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도 있습니다. 굉장히 마음이 아픈 일들입니다. 그렇지만 자식 잃은 슬픔에 빠져가지고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는 거라. 그러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그 일을 해나가야 되는 거라.

 

뭔가 재산을 잃어버렸을 때도 그 재산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한탄만 해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라. 물질적인 것들은 여러분들에게 행·불행을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행·불행을 가져오는 결과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만드는 겁니다.

그 사실을 항상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신의 마음이 좀 더 행복해지고, 좀 더 나은 방향을 원한다고 하고, 또 평온한 상태가 돼있을 거 같으면 지금 해야 될 일들을 분명하게 자신은 하게 된다는 거라. 좀 더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자꾸 사실들을 볼려고 해야 된다는 거라. 그게 여러분들이 힘든 일들을 넘는 열쇠다 하는 겁니다.

 

효행, 효도하고 하는 것들,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되는 것들,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되는 이 효행은 사람이 사는 기쁨입니다. 그 일을 했을 때 항상 나에게 기쁨들이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기쁨들을 누릴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었으면서도 그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내일 모레는 부모님 어머니 아버지 날입니다.

그날에 잘 돌아보면서 내가 잘못한 일들이 있으면 빨리 제자리로 돌려놓도록 하고, 또 잘한 것이 있으면 더욱 더 노력할려고 하는 그런 마음들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