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문은 귀에 거슬리는 것 (20090503)
부처님의 가르침 특히 인제 여기 있는 스님이 전해주는 그런 가르침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빨리어 경전을 읽든지 아니면 스님의 법문을 듣고 하면 "아, 참 좋다. 그게 바로 진리다!" 하고 이해들을 합니다. 특히나 대승경전 보다도 더 알기 쉽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지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사랑받는 것은 아니죠? 물론 불교도 이외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인데 불교도들 중에서도 이런 테라와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해서 다양할 것입니다.
그런데 테라와다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게 "직접적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직접 어떤 문제에 대해서 바로 얘기를 하고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을 얘기를 하고 해서 직접적이다 하고, 그다음에 "사람의 마음의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래서 좋아한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은 조금 전에 법회를 시작하기 전에 계를 받았습니다.
그와 같이 살생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간악한 행위들을 하지 말아라. 그다음에 음주를 그만두어라 하고 그렇게 얘기를 하면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 살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귀가 아픈 말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고기 잡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동물들을 취급하는 사람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그 불살생에 대한 얘기들을 들으면 그렇다고 그걸 부정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걸 실천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좀 복잡한 측면도 있을 겁니다. 또 마음에서 욕심이 많고 게으름피우고 또 질투하고 미워하고 화내고 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성향이 강한 사람들도 그런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면 아마도 좋은 기분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부처님 하시는 말씀은 사실 그대로 맞다. 맞기는 맞는데 좀처럼 실행하기가 힘들다. 행하기 어렵다" 라고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왜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겁니다.
그러한 것들 '맞기는 맞다' 하는 것들을 인정하고 고치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전혀 그 사람의 마음은 성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측은한 마음이 들어요 부처님이.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해도 일반 사람들은 맞기는 맞는데 실행하기 어렵다 해가지고 피해버리는데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부처님이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부처님은 직접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부정할 수 없게끔 하고, 물론 상대방의 마음이 일시적으로 피할려고 하지마는 그걸 피해가지 않고 법을 설했습니다.
이 테라와다 불교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바로 이 강한 태도들 때문입니다.
후에 불교가 발전하면서 불교가 인기가 없으면 곤란하니까 부처님 법을 설해주는 사람들이 인제 조금씩 경향을 바꿉니다. 조금 더 상냥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 참 훌륭합니다!" 하면서 칭찬하고 또 그 사람을 이렇게 치켜세우고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아, 참 불교라고 하는 것은 참 고마운 종교다. 따뜻한 종교다. 자애로운 종교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뿐입니다. 그러고 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참회와 그것을 바꿀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칭찬하는데 그럴 이유가 뭐 있어.
부처님 당시 때 아주 아름다운 여인 중에 난다라고 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경전에는 난다가 세 분이 등장하는데 여자 난다를 얘기합니다.
부처님의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과 또 마하빠자빠띠 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난다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부처님 제자가 돼서 출가제자가 돼서 '선정제일'의 비구니가 돼죠. 그 난다가 한 분이 있고,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부처님 제자 중에 난다의 약혼녀인 깔르야니 난다라고 하는 분이 있고 또 한 분이 난다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난다라고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다들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름 앞에다가 루빠라는 이름을 붙여서 루빠난다 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난다는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난다라고 하는 분도 남편 될 분도 출가를 해버립니다. 경전 상에도 결혼식 날 부처님이 바리때를 이 난다에게 들려가지고 선원까지 와가지고 머리를 깍여버리죠. 그러니까 남편 될 사람도 자기를 그렇게 예뻐하고 사랑했지만 출가를 해버렸고 나머지 자기의 가족 친척들도 어머니도 출가를 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모든 분들이 다 출가를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이 루빠난다가 있게 됐는데 그러다가 인제 자기도 출가를 하게 됩니다. 거기서 머리카락을 깍고 분소의를 입고 비구니 스님들과 같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어도 워낙 아름다우니까 눈에 띄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 루빠난다를 칭찬을 많이 합니다. 아, 참 아름답다. 그러니까 그 루빠난다는 조금 더 행동거지에 조심하게 되고 조금 더 우아하게 이렇게 치장을 합니다. 출가한 스님들이 우아하게 치장을 한다 할 것 같으면 얼마나 우아하게 치장을 하겠어요?
그런데 저희들도 경험을 해봤는데 그런 것은 있습니다. 스님들이 가지고 있는 게 이 가사하고 바리때입니다. 대부분 보면 이 바리때가 좋은 게 탁발로 해서 아니면 일반 신도들이 공양을 올리면 그게 좋으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바리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줘버리든지 해버리고 좋은 걸 가지게 됩니다. 바리때도 어떤 때는 자꾸 더 좋은 것으로 바뀌어나갑니다.
가사도 까티나 가사의식이라든지 아니면 빵수꿀라 가사라든지 아니면 빱바 의식이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가사들이 막 들어오게 되면 가사도 전에 입었던 것보다 더 좀 때깔 좋고 또 예쁜 것들을 자꾸 입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게 보이는 거죠.
이 루빠난다가 아마 그런 형태들을 띠었던 것 같애요. 그래서 조금 더 몸을 치장을 하게 되고 이렇게 하게 됩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칭찬하니까 그 칭찬에 걸맞게끔 내 몸과 주변을 가꾸게 됩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긴 있습니다. 있지마는 가장 중요한 부분 하나를 간과를 해버리게 됩니다. 부처님의 말씀 자체는 이 몸은 부정한 것이고 무상한 것이다 하는 것인데 그 부분을 잊어버린다는 거라.
그러니까 만날 부처님은 그런 설법을 하는데 이 루빠난다는 감히 부처님 곁으로 갈 자신이 없는 거라. 나는 자꾸 아름답게 꾸미고 이빨도 다른 사람들 한번 칠 때 두 번 치고 이렇게 하는데 부처님은 그걸 보고 나를 얼마나 뭐라 할 것이냐 하고 생각이 드니까 가까이 가지를 못하는 거라. 그래서 일 년이 지나도록 출가할 때까지 가지를 못합니다. 다른 비구니 스님들은 이 제따와나선원에 가서 부처님 법문 듣고 그렇게 찬탄을 하거든. 아, 부처님 훌륭하다 이러고.
여러분들 같으면 부처님 훌륭하다 할 때 어떤 것을 가지고 훌륭하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이 여기 살아계신다고 치고.
맨 첫 번째 사람들은 부처님 몸을 보고 훌륭하다고 그럽니다. 부처님은 32상과 80종을 갖춘 아주 훌륭한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몸에서 휘황찬란한 광채도 나고 이렇게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모습에 반해버립니다.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F4, F4의 귀공자 같은 그런 모습에 그냥 홀딱 반해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아, 참 훌륭한 분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두 번째 부류는 뭐라 하느냐면 부처님이 설하는 법의 소리를 듣고, 부처님의 소리가 그렇게 메아리가 울려퍼지고 그렇게 부드럽고 그지없이 좋거든. 가끔씩 스님도 그런 얘기를 듣는데 처음 전화를 받았는데 “아, 스님 목소리 너무 좋습니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전혀 몰라. 그렇게 인제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고 "아, 부처님 참 훌륭하신 분이다" 하고 판단을 합니다.
또 인제 세 번째 부류는 뭐냐 하면... 기억이 안 나네.
음, 네 번째부터, 네 번째 부류는 뭐냐 하면 부처님이 설한 법을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아, 부처님이 설한 진리가 딱 맞구나." 무상하다 할 것 같으면 아, 내가 그걸 체험해 보고 경험해 보니까 그것이 진리다. 아, 참 저분이 설한 진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는 것이구나. 그 진리대로만 살아갈 것 같으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돼서 "아, 부처님 훌륭하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 번째는 지금 생각이 안 나는데 어쨌든 그렇게 네 가지를 가지고 부처님은 훌륭하다 하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비구니 스님들이 제따와나에 가서 부처님 법을 듣고 와서 부처님이 훌륭하다고 할 때는 대부분 이 네 가지에 포함이 되겠죠.
그런데 이 루빠난다가 그 소리를 듣고 보니까 아, 나도 한번 그 부처님을 뵙고 싶다 하는 생각이 일어나거든. 왜? 모든 사람들이 다 부처님의 진리를 듣고 그 말씀이 정말 맞다,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진리다 하고 확신을 가지고 부처님이 훌륭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 모습을 가지고 훌륭하다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음성을 가지고 훌륭하다 하고 이렇게 각자 다르거든. 그래서 아, 나도 한번 뵙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인제 부처님을 뵈러 갑니다. 그렇게 부처님을 뵈러 갔는데 부처님이 뭐라고 했겠습니까? 루빠난다가 있는 그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몸은 무상한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이고,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라. 똑같애. 똑같애. 그 자리에 왔다 해가지고 달리 부처님이 설한 것은 아니라는 거라. 그런데 루빠난다의 마음은 이미 바뀌어져 있다는 거라.
그전에는 부처님에 대해서 경계하는 마음이 먼저 있었거든. 그러니까 아무리 무상하고 고통스럽고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얘기하더라도 그거 맞는 말이지만 그거 내가 지금 실천하기 힘들다, 어렵다는 거라. 그래서 그걸 피한다는 거라. 그런데 인제는 마음이 바뀌어져가지고 그 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라. 그래서 내 자신을 바꾸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태국에 있을 때도 그런 예들이 있습니다. 바리때를 자주 바꾸는 스님들이 있습니다. 좋은 바리때가 들어오면 그 바리때를 했다가 일 년도 안 가서 좀 있으면 더 좋은 바리때 있으면 또 좋은 바리때로 바꿉니다. 큰스님이 한번 불러갖고 그런 스님을 혼을 냅니다. 바리때에 구멍이 났느냐? 아니면 바리때에 도저히 녹이 슬어가지고 못 쓸 정도가 돼서 밥 먹는데 지장이 있느냐? 아니라는 거라. 그럼 왜 바리때를 바꾸느냐? 바리때가 새로 생겨서 바꿨습니다. 출가한 자가 바리때가 새로 생겼을 것 같으면 니 바리때 남을 주고 좋은 바리때를 가져가서 되겠느냐? 그 뭐 할라고 그렇게 욕심부리느냐? 욕심부릴 것 같으면 세속에 있지 뭐 하러 출가해가지고 그런 욕심을 부리고 있느냐? 따끔하게 혼을 냅니다.
그렇게 혼을 내도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는 거라. 큰스님이 그러고 나서는 한동안은 안 바꾸겠지. 그것도 조금 지나면 또 바꾸게 되는 거라. 그 말이 맞기는 맞는데 나는 그걸 멈출 수가 없다는 거라. 어렵다는 거라.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그 바리때 좋은 걸 더 취할려고 하는 걸 안 바꾼다는 거라.
아마 여러분들도 꼭 마찬가질 겁니다. 부처님이 말한 팔정성도 중에서 바른 생활을 해야되는 근거들을 이렇게 제시를 해줍니다. 그래서 고기 잡고 하는 살생하는 그런 것들은 하지 말아라 하는 데도 내가 지금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거 안 할 수가 없으니까 그걸 안 바꾼다는 거라. 아무리 좋은 얘기라 하더라도 그게 맞는 얘기라고 하더라도 못 바꾼다는 거라.
그런데 부처님은 한결같이 얘기합니다. 틀렸다. 틀린 것은 틀렸다 합니다. 바꾸고 안 바꾸고 하는 것은 그 당사자의 마음의 문제이고, 진리는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지금의 불교 상황같이 "아, 참 훌륭합니다. 참 잘하십니다. 장하십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뭐가 바뀌겠느냐는 거라. 그 사람 마음은 흡족해지고 '아, 참 불교가 좋구나' 마음은 들지 몰라도 그것뿐인 걸 어떡하냐는 거라.
여기 있는 스님도 여러분들에게 가끔씩 뭐 그냥 좋은 것만 보고 칭찬만 해주면 좋겠습니까? 칭찬해줘야 될 땐 칭찬해줘야 되지. 그렇지만은 바른 길을 갈려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부처님의 진리를 체험해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르게, 이것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하고 바르게 알려줘야 됩니다.
부처님도 이 루빠난다에게 똑같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도 동네가 있습니다. 민락동이라는 이 동네는 보면 술집도 많고 또 뭐 노래방도 많고, 횟집도 많고 어찌 보면 오탁악세입니다. 오탁악세. 굉장히 사람들이 유흥을 즐기는 그런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 속에 무슨 선원이 있느냐? 오탁악세에 맞게끔 그냥 그런 부류들이 있어야 되는데 유별나게 여기는 선원이라 해서 그것도 기도하고 제사 지내고 그런 데가 아니고 그냥 수행하고 부처님 법 전해주는 그런 곳으로 있으니까 "참 유별나다" 하는 얘기들을 합니다. 그래서 가끔씩 스님이 여기 있으면 이 '붓다의 길따라' 이름을 보고 들어와서 여기 무슨 술집이냐, 까페냐 물어보는 사람들이 다반사라. 그것도 한밤중에 자다가 나가서 이래 보면 그런 사람들이 가끔씩 옵니다.
이 마을을 예를 들더라도 그와 마찬가집니다. 뼈대를 가지고 이 건물을 만들고 이 마을들이 형성돼왔는데 새벽녘 되면 어떻는지 아세요? 굉장히 추잡합니다. 그렇게 즐겁게 놀고 즐기던 장소가 싸움판으로 변해져있고 길거리는 오만 잡다한 쓰레기들로 널려져 있고, 그래서 청소부들이 이 지역이 최고 치우기 힘들다고 그럽니다. 물론 쓰레기양도 많을 뿐만 아니라 그런 양만 많으면 괜찮은데 이상한 오물들도 굉장히 많이 있거든. 그 아름다운 거리가 밤만 되면 변한다는 거라.
여러분들의 몸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짱하고 깨끗하게 잘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 뼈대는 이 피라고 하는 것, 힘줄이라는 것으로써 달라붙어갖고 유지를 시켜주고 오만 고름들이 있는 그런 불결한 것으로 덮여져있는 거라. 그런데 그 안에 실상을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겉모습만 "아, 참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거라.
"루빠난다야, 니 몸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지금 겉모습만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뿐인 것이지 너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쭈그러들고 저기 우리 나이 드신 분과 같이 저렇게 힘없고 병들게 돼있다는 거라.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거라. 죽고 나서 땅바닥에 그거 버려지면 오만 구더기 다 끓는 거고 묘를 안 썼으면 짐승들이 그거 물고 낚아채가고 해가지고 나중에 어디 자취나 남을 수 있는지 아느냐? 그런데 지금 현재 니가 아름답다 해가지고 그 아름다움만 유지하는 것만 할 거 같으면 그거 어디다가 쓸거냐는 거라. 니 몸이 항상 그렇게 있을 거 같으면 뭐 그렇게 해도 되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있을 수가 없다는 거라.
여러분들이 어쩔 수 없이 생활하기 위해서 부처님 법과 어긋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가지고 그럼 어떻게 할 것인데? 그 과보들은 다 어떻게 받을 것이고 그 마음이 더러워지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라.
사람들은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주는 문제, 마음의 진정한 문제에 대해서 지적받으면 혐오하고 반발합니다. 그래서 아, 그거는 알고 있다. 그것은 진리이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그만둘 수 없다 하는 거라. 그런 마음의 상태를 가진다는 거라. 그거는 그 사람의 성장을 방해하고 장애가 되는 것이지 바꾸어나가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거라. 행복에 이르는 진리는 가지고 있는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은 일반 중생들을 걱정해서 걱정하는 마음이 지극정성으로 앞서기 때문에 엄격하게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부처님 말씀은 귀에 거슬리게 됩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그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을 자꾸 들어야 된다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루빠난다 같이 마음이 변하고 열리게 돼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루빠난다는 수다원이 됐다가 조금 더 설법을 듣고 나서 아라한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근기들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언제 그런 상황이 될지는 누구도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에 거슬리는 설법을 자꾸 들을려고 해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내 자신을 자꾸 바꿀려고 해야 됩니다.
부처님이 말한 것들에서 한치라도 어긋난다 할 것 같으면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고, 부처님이 자꾸 행하라 하는 것일 것 같으면 자꾸 행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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