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사카 붓다의 날 (20100521)
5월은 테라와다 불교도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달입니다. 이달의 보름날(금년은 28일)로부터 새로운 해가 시작됩니다. 서기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탄생만을 기점으로 하고 있지만, 테라와다 불교에서 불기의 경우는 붓다의 탄생, 성도, 입멸이라는 세 가지 큰 사건을 기념하여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모두 웨사카달의 만월일에 일어난 것이라고 믿고 있는 세 가지 큰 사건의 하나인 붓다의 입멸일로부터 불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금년은 불기 2553번째의 해에 해당합니다.
지금 말한 세 가지 큰 사건이 모두 웨사카달의 만월일에 실제로 일어났는지 어떠했는지 실증 불가능한 것이지만, 테라와다 불교도에게는 문제되지 않을 것입니다. 긴 세월동안 테라와다 불교국에서는 이날을 부처님을 모시는 날로서 최대한 성대하게 붓다 축제를 거행하며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서는 등을 만들어 자기 집에 걸어두는 것으로 빈자일등의 의미를 모든 사람이 되새기며 이 날을 축하합니다. 외국에 살고있는 사람도 연하장을 교환하며 이날을 축하하며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합니다.
붓다의 탄생, 성도, 입멸이 왜 같은 날 이루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3가지 큰 사건은 종교적으로 같은 이유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붓다는 석가족의 왕자 싯닷타(Siddhattha)로서 태어났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 있어서의 마지막 생이며, 이후 윤회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성도도 또한 말할 필요 없이 윤회하며 괴로움이 계속되는 원인을 멸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입멸은 대반열반에 들어가 윤회를 끝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 가지 큰 사건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붓다는 태어난 그 날 7걸음을 걸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을까,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종교에도 그러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붓다에 대해서도 보통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얼마든지 있다고 중부경전 No.123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붓다는 보통 우리들의 잣대에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그 같은 표현으로 가리키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실증하려고 해도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전에는 지금 말한 것처럼 보살(붓다의 성도하기 전의 삶)이 태어나자마자 7걸음을 걸으며 위대한 말(āsabhiṁ vācaṁ)를 했다고 하니까, 이 말을 매우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만하지 않은 보살의 「승리의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사방팔방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최고의 환경과 조건으로 태어난 것을 알아서 다음과 같은 말을 선언하였습니다.
Aggo'ham asmi lokassa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다.」
Seṭṭho'ham lokassa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하다.」
Jeṭṭho'ham asmi lokassa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공경 받는 존재다.」
Ayaṁ 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이것이 마지막 탄생이며, 이 생 이후 또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담담하게 사실을 말하고 있는 보살의「승리의 선언」이라고 테라와다 불교도는 보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대단한 말을 했다고 볼 것이 아니라, 교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붓다는 모든 살아 있는 온갖 존재들이 둑카(괴로움, 불만족)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을 발견하였습니다. 물고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육지를 걸을 수가 없듯이, 모든 중생들은 둑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해결하기 어려운 벽을 한 사람의 인간인 붓다는 깨었습니다.「깨달음」을 발견했습니다. 붓다가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기 전부터 인간으로서 우리들과 현격한 차이가 나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임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게송은 「우리와 비길 수 없는 보기 드문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분은 저희들에게 행복하게 도달하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라는 붓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이와 같이 말하는 것에 의해 가리키려고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보살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만으로 세상의 사람들은 안심합니다. 테라와다 불교도는 이 게송을 웨사카 축제 때 즐겁게 흥얼거립니다.
이런 이야기도 경전에 있습니다. Keniya라는 이교도(jaṭila, 머리를 땋은 결박수행자)의 수행자가 붓다와 비구 상가에 식사 공양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Sela라는 바라문의 지도자가 찾아옵니다. 그는 Veda성전을 모두 통달하고 있어서 300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Sela장로가 Keniya에게 묻습니다, 「 Magadha 국의 Bimbisāra왕이라도 초대합니까?」 Keniya는 「아니오, 붓다에게 공양 올릴 준비를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붓다」라는 말을 들은 그 바라문 지도자는 놀랐습니다.
Veda성전에서 붓다(세계에서 최고의 사람)에게는 신체에 32상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하나 둘이라면 몰라도 이 세상에 32상이 갖추어져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그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Sela지도자는 제자들에게 그 32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그것이 붓다에게 있는지 조사하게 합니다. 제자들은 30가지 상호를 발견했고 Sela도 그것을 확인했지만, 나머지 둘에 대해서 확인할 수 없어 의문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안 붓다는 옷에 덮여있던 나머지 두 가지 상호를 Sela에게 보입니다. Sela는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 것을 확신하지만, 붓다로서의 더 완벽한 증거를 갖고 싶어 합니다.
Sela는 위대한 인물을 칭송하면 그분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붓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신체를 관찰해 보내 완전한 사람인 것을 알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출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륜성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 Sela야! 나는 실로 위없는 담마의 바퀴를 굴리는 전륜성왕이요, 또한 붓다이다. 왜냐하면 나는 진리에 근거해 사람들을 다스리고 있기에, 그 어느 누구도 그 진리를 거역할 수 없느니라.」
( Rājāhaṁ asmi Selā ti Bhagavā, dhamma rājā anuttaro,
dhammena cakkaṁ vattemi, cakkaṁ appativattiyaṁ. )- 숫따니빠다 554번 게송
양자의 긴 대화의 마지막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알아야 할 것은 이미 모두 알았다. 실천해야 할 것은 모두 실천했다. 버려야 하는 것은 모두 버렸다. 고로 나는 붓다라고 칭한다.」 「 나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신뢰를 가져라. 정자각자를 만나는 것은 희유인 일이기 때문이니라.」(숫따니빠다 558~559번 게송)
「바라문이여, 위없는 자인 나는 정자각자라고 하는 위대한 의사이니라.」
(so ' haṁ brāhmaṇa sambuddho sallakkhatto anuttaro)-숫따니빠다 560번 게송
붓다의 가르침은 우리들에게 있어 생명보다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 담마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더 없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정자각자인 붓다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
Sukho Buddhānaṁ Uppādo!
붓다의 출현은 행복이어라!
* 웨사카 붓다의 날 (20100527)
5월 28일 만월의 날에 불기는 2553년으로 바뀝니다. 테라와다 불교도에게 있어 이날은 365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이날 하루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행에 힘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대하게 붓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한국의 전통과 달리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탄생도,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된 것(성도)도, 열반에 들어가신 것도, 함께 축하합니다. 역사적인 3개의 사건이 같은 날에 일어났다고 믿고 있어 함께 축하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 있습니다. 서기 5월의 만월에 해당하는 날은 음력으로는 Vesākha달이므로 축제의 이름도 웨사카 축제라고 합니다. 불교도의 사이에서는 붓다의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류가 발견할 수 없었던 괴로움을 넘는 방법, 궁극적인 지혜의 길을 붓다는 발견했습니다.
붓다의 탄생에 대해서는 「Ayaṁ 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 (이것이 마지막 태생이며, 또 다시 태어날 것은 없다) 라고 경전에 쓰여 있습니다.
끝없이 윤회하며 괴로워하고 있던 생명에서, 윤회를 끝내는 「마지막」의 탄생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을 편력해도 깨달을 수가 없었던 붓다는 중도를 발견해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그 깨달음에 대해서는 「Khīnā jāti;생은 멸하고, kataṁ karanīyaṁ;이루어야 할 것은 이루어 끝냈으며, vusitaṁ brahma cariyaṁ;수행은 완성하여, akuppā me cetovimutti;마음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ayaṁ 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이것이 마지막 태생이며, 또 다시 태어날 것은 없다.」라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수행을 완성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마지막」의 탄생인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으로 괴로움을 넘어 해탈하여 45년간 부처님은 전도를 하셨습니다. 마음에 괴로움은 없었지만 육체를 갖고 있었으므로 병이 들거나 때로는 굶주리거나하는 육체적 근심은 남아 있었습니다. 80세가 되고 나서 웁빠왓타나라는 곳에서 부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거기서 신체의 괴로움도 끝났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Bhagavā parinibbâyi (세존이 열반에 들어가셨다)」라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Pari는 「완전하게」라는 의미입니다. Nibbāyati는 「소멸한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Parinibbāyi는 「완전하게 소멸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불길이 사라졌다고 하는 의미로 유명한 「열반」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부처님이 죽음을 맞이한 것도 또한,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마지막」의 탄생입니다.
「마지막」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탄생도, 성도도, 입멸도, 생명으로서의 「마지막」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Vesākha달의 만월에 일어났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붓다가 나타난 것의 중대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경의를 가지고 축하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5월 28일은 승리의 날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물리쳐 이긴 기념일입니다. 인류에게 행복의 길이 열린 더없이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불기의 숫자도 이날로 바뀝니다. 불교도의 정월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여러 사람이 태어나 사상가, 발명가, 종교가도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해 주려고 모두 노력했지만, 인류가 사는 괴로움이라는 문제의 해결 방법을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종교를 믿어 봐도 「죽고 나서 천국…」등의 확인할 수 없는 약속으로 끝나게 됩니다.
사는 괴로움에는 대답이 없습니다.
과학의 세계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어 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류는 새로운 괴로움이나 문제를 만날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연까지 파괴하고 살기 어려운 환경까지 만들게 됩니다. 인간이 목표하는 행복의 길은 보이지도 않고, 아무리 고생해도 「마지막」의 탄생에는 도달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걷는 길(탐진치를 채우는 욕구의 길)은 새로운 괴로움을 만드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한 인간의 삶의 방법에 좋아할 것도 없고, 부정할 것도 없고, 보다 뛰어난 초월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도」를 비로소 부처님이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붓다가 출현하는 것이라고 말해졌습니다. (Sukho Buddhānaṁ uppādo!)
모든 고정 관념을 버려버리고, 모든 감정에도 좌우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산다」는 문제를 탐구해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불교는 붓다의 위대한 지혜로 쉽게 말한 것이지만, 욕구에 빠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마저 깨달은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면 내가 지칠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런 이유로부터입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 나는 매우 깊고, 발견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평온하고, 뛰어난, 이론을 뛰어넘은, 완벽한 (것이기에), 현자에게는 이해 가능한 진리를 체득했다.」
(Adhigato kho me a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panīto atakkāvacaro nipuno pandita vedanīyo - Majjhima Nikāya 1권 167p)
오래된 친구인 5명의 수행자들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시기 위해서 길을 떠난 부처님은 도중에서 우빠까 유행자를 만났습니다.
괴로움을 넘어서서 고요한 부처님을 본 우빠까는 놀라면서,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
부처님은「나는 모든 것을 넘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의 현상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갈애를 멸하여서, 해탈했습니다. 스스로 혼자 (힘으로 진리를) 발견했으므로 누구를 스승으로 하겠습니까?」
(sabbāhibhū sabbavidū'ham asmi, sabbesu dhammesu anūpalitto, sabbaṁ jaho taṇhākkhayo vimuto, sayaṁ abhiññāya kaṁ uddiseyyaṁ. ) (Majjhima Nikāya 1권 171p)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Upaka는 스승의 이름을 가르쳐 줄거라고 기대하며 물었으므로, 부처님의 말의 의미를 그 자리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부처님은 「그는 알지 않았다」라고 알아차리고, 다시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나에게는 스승이 없습니다. 나와 동일한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사람이 신앙하고 있는 신들 중에서도 이 세상에서 나와 필적할 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아라한(완전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이상 없는 스승은 나인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정자각자(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사람)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안온하게 되었습니다. 해탈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카시마을로 향하는 중입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지만, Upaka는 쇼크로 경직된 채로 서 있었습니다. 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누그러지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고귀한 깨달음을 자신 한 명의 힘으로 얻었다고 들었으면, 「제발 나에게도 그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러나 Upaka는 자신의 정신 상태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고 「당신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anantajino라고 칭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ananta는 무한이라는 의미입니다. jino는 승리자입니다. 부처님을 패배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부처님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anantajino는 불후 불멸의 승리자인 것입니다.
상대에게 이해받고 싶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anantajino라는 말을 사용해 더욱 설명했습니다. 「불후 불멸의 승리자란, 번뇌를 소멸한 나와 같은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나는 모든 악에 이겼습니다. 따라서 jino라고 칭합니다.」 그런데도 Upaka는 「그럴지도 모르지요...」라고 수긍한 채 떠나갔습니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았는데 전혀 이해받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실패인가, Upaka가 너무 어리석었던가, 의문이 남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의문은 후에 Upaka가 출가하는 것으로 풀릴 것입니다. 부처님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 누구의 마음에도 그 완전한 평온함이 새겨집니다. Upaka도 부처님의 말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인생에 완전하게 실패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으스대고 뽐냄으로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부처님은 올바른 길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사람은 근거가 없는 모든 것을 의지가 된다고 착각하며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빌어도 전혀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은 평온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괴로움으로 고민하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부처님은 평온함의 오아시스를 주고 있습니다. 불후 불멸의 승리자이며 일체지자인 부처님을 기쁨을 가지고 생각하여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행복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시대라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붓다의 가르침의 유효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붓다의 날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것에 의해 진정한 행복에의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Sukho Buddhānaṁ Uppādo!
붓다의 출현은 행복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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