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회의 힘 (20151008)
오늘은 「참회의 힘」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보통 "재가자들이 해야 될 것이 세 가지는 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가 어쨌든 삼보에 대한 믿음은 있어야 되는 거고,
삼보에 대한 믿음이 있는 상태에서 일상생활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꾸 알아차리려고 하는 것, 그게 하나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또 하나가 일상생활에서 사무량심, 자비희사라고 하는 사무량심을 끊임없이 마음속에 가지는 것.
그다음에 세 번째가 무상·고·무아의 성품으로 자꾸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
그렇게 보통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
세 가지를 다 해나가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잘 안 돼나갈 겁니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는 반드시 할려고 해야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마음에 사무량심 자애의 마음들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까루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럴 것 같으면 크게 어긋나지는 않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런 사무량심의 마음조차도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들을 알아차릴 때 아, 이것은 참 무상한 것이다 하는 것, 고의 성품, 무아의 성품으로 자꾸 알아차리고 그렇게 알려고 자꾸 노력하다 보면 적어도 그것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는 것들은 없기 때문에 그래도 원만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재가자들은 이 세 가지는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리해도 실수를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또는 남에게 의도하지 않더라도 나쁜 말들을 하게끔 되고 이렇게 하면서 살아가지게 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사실은 없는데, 그렇게 했을 때 그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문제가 돼버립니다.
만약에 여러분들 같으면 앙굴리말라라고 하는 그 대역죄인, 그러니까 999명의 사람을 죽인 사람, 어쨌든 사악한 견해에 빠졌든 다른 사람의 꾀임에 빠졌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어쨌든 살생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대역죄인이 옆에 있으면 어떻게 할까? 그거 받아들이고 용서해주고 같이 함께 살아나갈 자신들 있어요?
뭐 거기까지 얘기를 안 하더라도 교도소에 법문을 다니고 또는 그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 때문에 굉장히 힘들다는 거라. 실제로 자기는 교도소 가서 그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만큼 착하고 순수한 사람도 없다는 거라.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나와서 출소하고 나서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대부분 그렇게 안 되는 것들이 뭐냐면 사회에서 그걸 받아주지 못한다는 거라.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아니면 자기가 익힌 습성으로 인해가지고 다시 또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라. 계속 악순환의 고리를 걸어가게 되는 거라. 그러면서 그분이 그러더라고. 참 안타깝다. 따뜻한 마음으로 그사람들을 받아만 주더라도 그 사람들은 사회 나가서 바뀔 건데 그러질 못한다는 거라, 사람들이.
누구든지 잘못을 범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은 잘못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딨어? 세상에.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불환과에서도 잘못을 범하게 되는 거고, 하물며 일반 범부중생들은 더더구나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오늘도 이 선원에 오자마자 참회부터 했을 겁니다.
"제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저지른 잘못한 것들을 참회합니다." 하면서 참회하니까, 그다음에 본인이 뭐라고 그랬어요? "잘못을 용서합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마시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판결권을 쥐고 있다는 얘기라. 그 사람이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을 거 같으면 그 잘못은 없어지지 않는 것들이라는 거라. 누군가가 그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용서해주고 받아주지 않을 거 같으면 그 잘못은 그대로 그냥 드러나버리게 된다는 거라. 감춘다 해가지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감출려고 하고 나는 잘못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자꾸 생긴다는 거라.
그래서 경전에 보면 "참회하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은 바뀌어진다." 하고 얘기합니다. 참회하는 습관을 들임으로 인해가지고.
가끔 잘못을 저질렀다가 교도소 갔다가 사회에 나와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주 기분좋게 "나 옛날에 참 나쁜짓 많이 했어"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주 기분좋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하고 있는 거라. "나는 그런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는다" 하는 걸 아는 거라. 그러니까 그냥 밝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그냥 드러내는 거라. 과연 여러분은 잘못에 대해서 드러낼 수 있을까? 잘 못한다는 거라.
잘못을 드러내지 못할 거 같으면 그것은 참회가 되지를 않습니다.
후회하고 또 그것을 반성할지는 몰라도 진정한 참회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밖으로 드러내는 거라. 드러낸다고 하는 것은 '아, 내가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은 저지르지 않겠다' 하고 맹세를 하든지, 아니면 '그와 같은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고 자신감이 생길 때 드러낼 수가 있게 되는 거라. 그런데 그 교도소 갔다 온 분은 아주 자연스럽게 밝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도 꼭 마찬가집니다. 참회를 할려고 할 거 같으면 우선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야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을 드러내게 됐을 때 "내가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 하고 서원을 세우게 될 때 그것이 참회하는 말이 돼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회를 자주 하다 보면 마음이 바뀐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바뀌지 않을 거 같으면 그것은 참회하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럴 때 참회의 힘들은 생겨나게 됩니다.
앙굴리말라가 자신이 잘못한 것들을 알고 열심히 수행을 합니다. 그렇지만 아라한이 되고 나서도 자신이 잘못한 것들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됩니다. "네가 나의 어머니를 죽인 놈이지?" 하면서 돌팔매질을 하게 됩니다. "네가 나의 아내를 죽인 자이지?" 하면서 돌팔매질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묵묵하게 견딥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뭐라고 하느냐면 내가 과거에 저지른 악행들은 지금 내가 수행을 완성해서 선행을 한 것들,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것들로 인해서 그것은 다 덮어져버린다는 거라.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원인으로서 지금 결과가 나타나서 돌팔매질을 당하지만은 나는 이미 이걸 덮었다는 거라.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 미워하고 그 사람들을 원망하는 마음은 요만큼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거라.
그와같이 지금 저사람들이 돌팔매질 하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들 나는 저 사람들을 전부 다 용서한다는 거라. 저것도 악행이고 참회해야 될 일들이지만 나는 저 사람들을 다 용서한다는 거라.
참회를 하게 되는 습관을 가지면 그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 용서해주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자신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참회해서 용서받기를 바라는데,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그걸 용서해주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반쪽짜리밖에 안 되는 거라.
자기 자신은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든지 탐진치가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범부 중생은 누구든지 탐진치를 품은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똑같이 그렇게 저지르게 되는 겁니다. 내가 그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참회할려고 하듯이 다른 사람이 반성하고 참회할 때 그것을 받아주고 용서해줄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그러한 마음들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자신은 언제든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너와 다르지 않게 똑같이 그렇게 잘못을 한다. 그런 마음이 들어야만이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 그래' 받아들이고 용서해줄 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뭐라고 되어있느냐면 「'자신이 올바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바른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자신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자신의 견해는 바른 것이다 하고 가질 것 같으면 항상 다툼이 있고, 항상 그속에는 남을 이해하고 용서할려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거라. 그마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는 거라. 경전에.
부처님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말하는 것은 가장 큰 죄다."
오히려 사소한 허물을 저지르는 것들보다도 더 큰 죄라는 거라. 적어도 자신이 '아이고, 나도 참 잘못하는 것이 많은데' 하는 마음을 가질 것 같으면 자신도 마음을 참회하려고 할 뿐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이해해줄려는 마음이 생기는데, 자신은 올바르다고 생각을 하는 거라. 그러면 자신은 참회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용서하는 마음도 생기질 않는다는 거라.
설혹 자신이 올바르다고 해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자신은 올바르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잘못된 거라는 거라.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감출려고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들도 용서하지 않는 크나큰 이중적인 죄를 범하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큰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하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아직은 올바른 사람이 되어있지 않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구의(身口意)로 행하는 것들은 올바른 것이 되질 못합니다.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을 범하게 돼 있습니다.
똑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잘못을 자꾸 참회할려고 하고,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저지르지 않을려는 마음을 굳게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자꾸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들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게송에는 "아항 반떼- 삼바훌라- 나-나-왓투까-요- 아-빳띠요- 아-빳징 따- 뚬하 물레- 빠띠데-세-미."
그러고 나면 "빳사시 아-우소-" 하고.
그러고 나면 다시 또 뭐라고 합니까?
"빳사타 반떼-" 하고 또 물어보게 됩니다.
당신이 나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해했는데, 당신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그럼 잘못을 용서해주고 이해해준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나도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이해해주고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그러는 거라.
그게 올바른 방법이라는 거라.
다 용서해주기만 할 것 같으면 자신의 잘못은 누가 그러면 용서해주고 이해해 주나?똑같이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중생인데?
그래서 참회는 어떠한 경우든지 서로 하게끔 돼있습니다. 서로! 한 사람만 참회하고 한 사람이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참회했으면 한 사람이 용서해주고, 마찬가지로 또 그 용서해 준 사람이 참회하면 또 다른 사람이 용서를 해주고, 그러한 것이 바로 서로 용서해주고 참회하고 하는 참회의 힘들이 돼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참회를 계속하다 보면 생겨나는 것이
"이대로는 안된다" 하는 마음들을 가지게 됩니다.
매번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똑같은 일이 반복돼버립니다.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 상태에서는 안된다'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습관적으로 '아,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또 내일도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습관적으로 할 것 같으면 자신은 진보할려는 마음은 생겨나질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참회는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을 기울여서 진짜 '아, 내가 이런 잘못은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다.' 하고 맹세를 하고,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서 '아, 이대로는 이렇게 계속해서는 안된다' 하는 마음을 굳게 딱 결의를 가질 수 있어야 만이 마음이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겁니다. 마음이 악한 방향에서 선한 방향으로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겁니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불완전합니다. 항상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언제까지 그럴 거냐는 거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거라. 하루빨리 내가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지 반복적인 것들을 계속적으로 할 것 같으면 안 된다는 거라.
습관이 되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참회는 진짜 정말로 정직한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단순한 문장으로 해서도 안 되고, 자신이 올바르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한번 해보십시오. 「참회 게송」 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참회 서원의 게송」입니다.
참회합니다.
어리석게 몸과 말과 마음으로 범해버린 잘못이 나에게는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을 마음깊이 참회합니다.
삼보에 대한 잘못,
스승에 대한 잘못,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잘못,
이런 것 모든 잘못을 참회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범한 잘못도 마음으로 받아들여 용서하겠습니다.
이후로는 작은 잘못도 범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하겠습니다.
내가 힘써 해야 할 일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순간순간 변해가는 이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
진정한 행복을 얻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해탈의 길에 이를 때까지 바르게 노력할 것을 서원합니다.
이게 기본적인 「참회 서원의 게송」 입니다.
실수를 범한 적이 있었다면 또는 내가 남에게 베풀 줄을 몰랐다면, 또는 내가 남의 은혜를 모르고 흘려버렸을 경우에, 또는 내가 남들에게 난폭한 행위를 했을 경우에, 나쁜 마음을 가졌을 경우에, 이런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참회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 참회 대상은 경전에는 "열 가지 대상에 대해서 참회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스님은 세 가지만 했습니다. 삼보에 대한 것, 스승에 대한 것, 부모에 대한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것,
그렇게 할 때 여러분들은 참회의 대상에게 바르게 참회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스승에 대해서 잘못을 했다, 그럼 그 스승에게 마음을 보내면서 '아, 내가 이런 잘못을 범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 그리고 스승님도 잘못한 게 있으면 내가 용서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해야 될 일은 그런 잡다한 일에 휘말리지 않고 내가 해야 될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해서 수행해서 해탈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하고 딱 마음을 먹는 겁니다.
또는 부모님한테도 마찬가지로 똑 그와 같이.
경전에는 그렇게 돼있습니다.
부처님과 그리고 깨달음에 이르신 성자들과 부처님 당시 때 아라한들 사리불과 목련존자와 같은 분들, 어머니와 아버지, 스승, 설법하는 분, 존경에 적합한 분-계를 잘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사람들에게 열심히 베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자신은 그사람들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거라. 자신이 아무리 잘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분들은 습관적으로 다 그렇게 잘해나가고 있다는 거라.
그렇지만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어쨌든 그런 분들에 대해서 내가 비난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내가 그분들에 대해서 항상 '아, 내가 이런 잘못을 범했습니다. 당신의 잘못도 내가 용서합니다.'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질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 열 가지 대상에 대해서는 항상 참회하고 용서하는 마음들을 가져라" 하고 경전에서는 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자기가 잘못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머리 아픈 것, 잘못한 것에 대해서 속앓이를 하고 있으니까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거라. 그리고 자신이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멍한 상태로써 있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몸이, 경전에는 손발이라고 되어있는데 손발이 저린다든지 아니면 몸이 자꾸 쑤셔온다든지 아파오는 것,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는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것.
그리고 마음이 흩어져버린다는 거라.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는 입에서는 자꾸 거친 말이 나오게 되는 거라. 남을 비난하는 마음을 낸다든지 아니면 싫증을 내는 말을 한다든지, 거친 말이 자꾸 나오게 된다는 거라.
그리고 주변의 관계들이 자꾸 망가져버리게 되는 거라. 친구 관계라든지 가족관계라든지,
그런 것들이 "참회해야 될 때 참회하지 못해서, 그럴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참회하는 습관들을 들이면 그 힘은 굉장히 큽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음도 생겨나고,
자신은 불완전하다 하는 에고를 자꾸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그리고 그런 잡다한 일들로 인해서 후회하는 마음들을 일으키지 않게 되는 거라.
그러니 마음은 당연히 선한 마음으로 바뀌게 되고, 해야 할 일들 해탈을 향해서 나아가는 길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거라.
그마만큼 참회의 힘들은 큽니다.
그래서 그 일들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예불문에 보면 아침저녁으로 참회하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각 사원에 절에 가면 예불을 할 때 아침예불 저녁예불 할 때 항상 참회를 합니다. 부처님 앞에서 참회를 합니다. "부처님께 참회합니다. 법에 참회합니다. 상가에 참회합니다."
그리고 또 스승 앞에 가서 거기 같이 모인 사람들끼리 또 서로 또 참회를 하는 거라. 매일 아침 저녁 예불할 때마다 계속 그렇게 해온다는 거라.
얼마나 잘못한 것들이 많기에 그럴까?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은 한량이 없습니다. 실제로. 굉장히 많다는 거라. 그런데 그렇게 실수하고 참회할 것들이 계속 많아가지고 안 된다는 거라. 그래서 마음을 빨리 항상 선한 마음이 일어나서 실수하지 않게끔 참회할 것들이 없게끔 자꾸 만드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리 하더라도 아라한이 되더라도 참회하는 마음을 끝끝내 버리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빠와나라 라고 하는 자자날에 대중들에게 "내가 삼개월 동안 잘못한 것들이 있으면 지적해달라. 그러면 내가 참회하겠다" 하고 얘기합니다.
하물며 부처님도 그러는데 여러분들은 매일 같이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그러한 서원 결의들을 세워서 마음이 항상 선한 방향으로, 마음이 항상 수행하는 마음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게 될 때 맨 첫 번째 얘기한 것,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항상 모든 일들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마음들을 가질 수 있는 거고, 또 내 마음속에는 항상 자비희사라는 사무량심을 항상 자꾸 가질 수 있게끔 되는 거고, 모든 일들을 대할 때 무상·고·무아의 성품으로 집착함 없이 있는 그대로 자꾸 대할려는 마음들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오늘은 참회의 힘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14~2015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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