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좋은 습관, 나쁜 습관 (20150903)

담마마-마까 2021. 12. 23. 08:52

https://youtu.be/vN6hPw-mR6w

* 좋은 습관, 나쁜 습관 (20150903)

 

오늘은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에 대한 것을 얘기를 하겠습니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정확하게 동전의 양면입니다.

얼마 전에 그걸 또 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얘기부터 먼저 할게요.

 

양산 통도사 부근에 가면 일요일 법회하고 오후에 차 한잔 먹으러 가는 찻집이 있어요. 전통찻집인데 매번 스님들 몇명이 거기 가서 차를 먹다 보니까 익숙해지니까, 하루는 가니까 "스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그러는 거라. 그래서 "그게 뭔데요?" 그러니까 찻집 앞에 사람들 보기에 예쁘라고 꽃을 화분에다가 많이 심어놨는데 그걸 누가 자꾸 가져 간다는 거라. 하나 없어지고 또 얼마 있다가 또 하나 없어지고 자꾸 그래서 cctv를 돌려봤다는 거라. 그런데 한 사람이 계속 그걸 가져간 거라. 그러면서 속상해 죽겠다는 거라. 몇년 그렇게 정성들여 키워놓은 건데 홀라당 가져가니까 속이 안 상하겠어?

그렇다고 자기는 그거 지킬려고 밤에 자지도 않고 거기서 살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 그 cctv에 얼굴이 나오니까 그 얼굴을 문에다가 딱 붙여놓을까? 아니면 요걸 경찰에다가 신고를 해갖고 쇠고랑을 차버리게 할까? 고민이 든다는 거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는 거라. 우짜면 될꼬? 놔두면 계속 그거 훔쳐 갈 건데.

 

버릇이 그렇게 들으놓으면 거기서가 아니라 다른 데서라도 또 그렇게 훔쳐갑니다. 여러분들도 어릴 때 그런 거 많이 겪어봤잖아. 어릴 때 사탕하나 사먹고 싶은데 엄마는 안 사주니까 엄마 호주머니에 있는 100원짜리 살짝 몰래 가져가서 사탕 사먹고 했다가 나중에 걸려가지고 디지게 혼나고 그랬잖아. 그런 경험들이 있다는 거라. 어른이 되어도 경우는 다르지만 그런 버릇들이 있는 거라.

 

그래서 물어봤어. 잃어버린 그것이 아까워요? 하니까 아까워 죽겠대. 그걸 어떻게 키운 건데, 매일 같이 정성스럽게 물주고 어쩌고 해가지고 몇년을 키운건데 그게 아깝다는 거라. 그게 아깝지 않은 거면 어땠겠느냐고 하니까, 아깝지 않은 것들이면 누가 가져가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거라는 거라.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게 경찰에 신고한다든지 아니면 그 사진을 인쇄해가지고 그걸 딱 붙여놓고 한다든지 하면, 그 사람이 주인한테 앙심을 품고 나중에 해코지 하면 우짤거냐? 그 사람은 잡을 수 있을지 모르고, 그 사람에게 망신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해코지 당하는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글귀를 하나 적어놔라 그렇게 한적이 있습니다. 뭐라고 써놓으라고 했느냐면,

 

나는 당신이 참 가엽습니다. 훔쳐 가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훔쳐 가는 당신은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나쁜 버릇은 세상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드러나게 돼있다는 겁니다.

그 밑에다가 글귀를 크게 해가지고 "위험은 꼭 껴안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당신이 불쌍해서 하는 얘깁니다. 하고 써놔서 붙여두라고 했어요. 그래가지고 안 고쳐지면 할 수 없는 거고. 그런데 거짓말 같게도 그다음에 그 사람이 자기가 훔쳐간 걸 그대로 다시 가져와서 밤에 살짝이 놔놓고 간 거라.

 

무엇에 그 사람이 깜짝 놀랬을까?

우선 그 글귀를 쓰는 사람이 악한 마음 가지지 않고 썼거든. 니 죽일놈 살릴놈 하는 게 아니라 참 니가 가엽다는 거라. 그런 버릇가지고 있는 거 언젠가는 들키고 들통이 날 건데, 그거 당신에게 다 돌아가는 건데 참 가엽다는 거라. 그게 좀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써놓은 거라. 그리고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그런 것들은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그 위험을 꼭 껴안지 말아라.

그 사람도 가져갈 땐 뭐 눈치 봐가면서 가져가지, 그거 그냥 가져갔겠어? 자기 자신도 나쁜 건 자기가 알거든. 다른 사람들 눈은 피했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위험을 꼭 껴안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불안하니까 아이고, 안 되겠다 싶으니까 다시 갖다 놓은 거라. 그다음부터는 아마 그 사람은 남의 거 훔치려고 할 때 양심에 거리껴가지고 아마 훔치기 힘들어질 거라.

이래가지고 그다음에 가니까 차를 공짜로 주더라고. 그거 써놨더니 훔쳐간 것도 도로 돌아오고 그 뒤부터는 안 없어지고 한다고.

 

경전에 보면 바라문 가족 부부가 나오는 게 있습니다.

그 바라문 부부는 옷 한벌 가지고 살아가. 그래서 부처님이 설법하는 날은 부인이 그 옷을 입었으면 부인이 가서 설법을 듣고 와가지고 남편에게 얘기를 해주고, 또 남편이 입는 날엔 남편이 옷을 입고 가서 설법을 듣고 와가지고 부인한테 얘기를 해주고. 한 벌 밖엔 없으니까 두 사람이 같이 갈 수는 없잖아. 한사람이 발가벗고 갈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살아가는데 어느날 자기 집 앞으로 스님 한 분이 지나가는 거라. 탁발을 하고 싶은데 할 게 없어. 그래가지고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가지고 그 스님에게 탁발을 하게 되는데, 그 스님이 가고 나서 "이겼다! 이겼어!" 그렇게 소리치는 거라. 온 동네가 다들리도록 고함을 치니까 저게 무슨 소리인가 해갖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거라. 그 얘기가 왕에게까지 들어간 거라.

 

뭘 이겼다는 거라? 뭘 이긴 거라?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버렸다는 거라. 한 벌 뿐인 옷인데도 그렇게 그걸 주고 나서 자기는 자신을 이겼다고 해서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거라. 선한 일을 했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데도 그걸 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됐을 때 자기 것 한 벌 뿐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준 것에 대해서 자기 자신은 너무나 좋다는 거라. 그래서 자기 자신은 자기에게 이겼다는 거라.

 

훔쳐 가는 사람은 그런 버릇이 들어있으면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남에게 베풀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아까 처음에 얘기했듯이 "버릇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기 자신이 욕심을 많이 가지고, 또는 남의 것 보면 탐내는 마음이 자꾸 있는 사람들은 그거 고칠려고 할 것 같으면 자꾸 주는 버릇을 해야 되는 거라.

 

또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성내놓고 성내는 것도 모릅니다. 애가 뭐하나 얘기하니까 성을 바르르르 했는데 지는 까먹어요. 그때는 성이 나가 있는데. 뭔가에 대해서 반응하는 게 즉각적으로 일어나가지고 성을 내고 있으면서도 성내는 줄을 모릅니다. 그게 버릇이 딱 되어 있는 거라. 뭐가 조금만 해도 그냥 성이 나고, 아니면 남들이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서 항상 비판적으로 자꾸 보이게 되고, 그래서 그런 버릇들이 들면 계속 들어버리는 거라.

 

그런 사람은 아까 얘기했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자애의 마음은 계속적으로, 그런 마음이 들자마자 알아차려서 아, 내가 자애의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자애의 마음을 계속적으로 가져야 되는 거라.

그래야 성내는 것들, 남을 미워하는 마음들을 극복해나갈 수가 있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쉽게 생각하면 훔치고 성내고 하는 것들 '그거 안 하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물론 안 하면 그 일은 없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잠재되어 있는 것들은 끊어내지 못합니다. 언젠가 또 다른 조건을 만나면 그것이 튀어나오게 돼있습니다.

10년간 열심히 수행해서 화내는 습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10년간은 화를 안 냈지. 그런데 탁 조건을 만나면 화가 탁 일어나게 되는 거라. 그래서 착각을 합니다. '아, 내가 이거 화는 없어졌는데 화의 잠재적인 것까지 뿌리는 못 끊었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거는 '화가 일어난' 겁니다. 잠재적인 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잠재적인 것은 밖으로 드러나지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좋은 습관을, 좋은 버릇을 들일려고 해야 됩니다.

 

경전에 그런 게 있습니다. 버릇이라고 하는 것은 겹겹이 쌓이는 것들입니다. 겹겹이 그 일을 해서. "악이 겹겹이 쌓이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것이다." 좋은 일이, 좋은 것을 하는 것들이 겹겹이 쌓이는 것은 참으로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다가오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잘한다고 생각이 들 거 같으면 그것이 기다려집니다. 그 결과가 기다려집니다. 또 그렇게 할 일들이 기다려지는 겁니다.

기다려지는 것들이 많아져야 되는 것이지, 그 하는 일들이 괴로운 것이 돼서는 안돼버립니다.

 

가끔씩 선을 행하면서도 괴롭게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그것은 선인가? 하는 거라. 아닙니다! 선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악을 더 겹겹이 행하는 것들입니다. 선한 일을 했을 때는 그것이 기다려집니다. 그런데 악한 일을 했을 때는 그것이 두려웁고 괴로움을 낫게 되는 겁니다.

만약에 양산에 있는 가게 주인이 악한 마음을 먹고 악행을 자신이 행했다 할 거 같으면 돌아올 것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마음이 없이 선한 마음을 내어서 선한 마음으로 그 글귀를 썼다는 거라. 기다려진다는 거라. 저게 어떻게 반응을 할까? 자기가 나쁜 일을 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나쁜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안 거라. 기다려보니까 좋은 결과가 돌아오는 거라.

 

경전에 "마음은 버릇으로 행한다" 하고 얘기합니다. 마음이 행하는 것은 버릇따라서 행해진다는 거라. 왜 기다려지는 것들을 행하지 않고 두렵고 괴로운 것들을 자꾸 행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뭔가를 할 때 그 하는 의도가 선해야 만이 선한 것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수행에서 '요니소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 그렇게 얘기합니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그것들을 행하라."

대상을 알아차릴 때도 선한 의도를 가지고 그 대상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 대상이 싫다는 마음이 일어나버릴 것 같으면 선한 의도는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느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고통스러운 것들은 선한 의도로써 그것을 알아차려나가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그 고통스러운 것이 괴로움으로 나에게 다가와지지 않습니다. 그 고통이 고통으로만 바라볼 것 같으면, '나'라고 하는 것이 없이 고통으로만 볼 것 같으면 그것이 변해나갑니다.

 

그걸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어져. 그래서 또 다른 고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 고통은 괴로운 것인데도 그것을 기다리게 되는 거라. 이미 나에게는 그 고통이 하나의 대상일 뿐이라는 거라.

즐거운 것들을 기다리듯이 그것도 하나의 대상으로서 기다려지듯이, 괴로운 것들도 대상으로써 기다리게 되는 거라. 그래서 나타나기만 하면 즐거운 느낌이든, 괴로운 느낌이든 그냥 알아차려나가게 되는 거라.

평소에 살아가면서 그런 좋은 버릇들, 좋은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대상을 알아차릴 때도 똑 마찬가지로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게 괴로워.

 

경전에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붙이기 위한 방법 4가지>

"삽바 사상 세이야" 그렇게 얘기합니다.

"항상 좋은 마음들을 일으키도록 그것을 가까이 두어라."

의도를 내더라도 좋은 의도를 내려고 하고, 뭔가를 생각하더라도 좋은 걸 생각하려고 하고, 뭔가를 행하더라도 선한 일들을 행할려고 하고, 그것을 가까이 자꾸 행하라는 거라.

친구가 있어도 선한 친구가 옆에 있어야 되는 거고, 스승이 있어도 선한 스승이 여러분들 옆에 있어야 되는 것이지, 여러분에게 자꾸 나쁜 것들을 행할 수 있는 조건들이 되는 것들을 가까이 두지 말아라는 거라.

 

그다음에 "삿담마 사와낭" 그렇게 얘기합니다.

"바른 진리를 자주자주 접하라"

마음이 선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울적할 때나 아니면 뭔가를 하기 싫어하거나 이럴 때는 바른 진리를 자꾸 가까이 두어가지고 자꾸 그걸 읽으라는 거라. 그래서 자주자주 그걸 하라는 거라.

 

여러분들에게 프린트물 나간 것들도 많고, 여러분들이 접할 수 있는 경전들도 많고, 또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법문들도 많다는 거라. 자주 자주 그걸 접하라는 거라.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서 수행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그런 것들을 자꾸 접해야 되는 거라. 접해야만이 마음이 활기가 있어지고 마음이 선한 의도를 일으킬 수가 있다는 거라.

 

그다음이 "마나시까라 니야낭 담마낭 마나시까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선한 의도를 자꾸 일으켜라" 는 거라.

선한 의도는 자꾸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그것은 행위로써 연결이 됩니다. 아무리 선한 법을 들어도 그것을 따라서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변에 좋은 스승 좋은 친구 또 좋은 구절들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따라서 선한 일들을 하지 않을 거 같으면 의미가 없어져버립니다.

숟가락을 잡는 법도 어릴 때 바르게 배운 사람들은 힘들이지 않고 그냥 숟가락질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소홀히 한 사람들은 나중에 커서도 숟가락질을 하는데 어설픕니다.

 

테라와다 스님들이 한국에 오면 이 스님이 얼마만큼 수행을 잘하고 있나 하는 것을 시험해보는 게 있습니다. 젓가락질을 이렇게 줍니다. 젓가락을 처음 접해보는 거라. 동남아시아는 젓가락을 쓰질 않습니다. 손으로 하든지 아니면 포크로 하지 젓가락을 잡아본 적이 없어요. 젓가락 잡는 법부터 몰라요.

그럼 딱 젓가락 잡는 법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미끈미끈한 콩을 껍질을 깐 조그만 콩을 앞에 놔줍니다. "한번 집어보세요."

힘이 지나쳐도 이게 비끄러져버리고, 힘이 약해도 가져오지 못하고 중간에 떨어져버립니다. 정확하게 조준을 해서 정확한 힘을 가지고 그것을 집어와야 됩니다.

 

그런데 기가 차게, 젓가락 쥐는 법만 딱 가르쳐주고 나면 젓가락을 잡고 손으로 이렇게 한번 두번 요렇게 요렇게 연습을 해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콩을 집는데 정확하게 집어서 그대로 가져옵니다. 하나도 떨림도 없이.

습관은 그와 같습니다. 딱 한번 들여놓으면 그다음부터는 그대로 그렇게 행해집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작은 거라고 하더라도 그냥 흘겨넘겨 버릴 것 같으면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잠재되어있는 습관으로써 남아버리게 되고, 그것이 나쁜 결과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세 번째 얘기하는 것이 뭐냐면, 아무리 선한 의도를 내고 여러분들 곁에 좋은 스승과 좋은 친구와 좋은 담마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실천되지 않으면, 배운 것들이 실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찬가집니다. 그 테라와다 스님들이 왔을 때 그다음에 또 젓가락 쥐는 법 까먹어버립니다. 한 번 해가지고 어떻게 기억을 해? 그다음에 또 가르쳐주면 그대로 또 해냅니다. 몇번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젓가락질하는 법을 분명하게 알아버립니다.

바르게 익히고 바르게 배웠으면 그것들 하는 것들을 몇번 하고 나면 자신이 분명히 그것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언제까지 계속 여러분들 곁에 좋은 조건들만 만들고, 좋은 마음들만 내는 법만 알 거냐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 "담마누담마 빠띠빳띠" 그럽니다.

담마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따라 실천하는 사람에게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계·정·혜는 그것을 따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갖추어지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계행이 갖추어졌고, 여러분들이 수행을 할 때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가볍고 평안할까? 대상을 알아차릴 때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알아차리고 있느냐는 거라. 실천을 안 했으면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경전에서 말하는 "좋은 습관을 붙이기 위한 방법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마음은 어떤 경우든지 악한 쪽으로 기울어지려고 합니다. 마음의 본심은 항상 악한 방향으로 나아갈려고 하게 됩니다. 게으름 부리고, 욕심 부리고, 성내고 하는 방향으로 항상 나아갈려고 하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그 마음의 본심과 철저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과 싸워서 탁 이겼을 때 그 바라문과 같이 "이겼다! 이겼다!"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자신이 집착하는 마음과 싸워서 이겨서 그것으로부터 탁 벗어났을 때 자신이 이겼다 하고 하게 되는 거라. 그래서 똑같은 상황을 만나더라도, 욕심부리는 것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것을 이겨나갈 수가 있는 거라.

 

괴롭고 탐·진·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기다려지는 대상일 뿐이라는 거라. 수행에서 고통스러운 상황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고통은 기다려지는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선한 일들이 겹겹이 쌓여지면 그것은 기다려지게 됩니다. 마음의 버릇이 선한 것들을 자꾸 행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선한 쪽으로 기울어지게끔 만들어라는 겁니다. 그래야만이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즐겁든 괴롭든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그것은 기다려지는 대상이고 내가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대상이 되게 됩니다.

 

버릇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마음하나 탁 돌려버리면 행해야 되는 것들이 180도로 바뀌게 됩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아니면 그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돌릴 수 있는 것들은, 여러분의 마음이 바뀌면은 그것을 돌릴 수가 있는 거라.

좋은 버릇들을 들일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