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을 만들지 않는 삶 (20170217)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경쟁 사회의 일원으로서 출발하는 운명에 있습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고 하고,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명분으로도 경쟁에서 이기라고 부모로부터 부추겨집니다. 사회에 나오면 나오는 대로 직장 상사로부터는 다른 회사에 지지 말라고 엉덩이를 채입니다. 같은 회사의 동료도 출세를 위한 경쟁자로밖에 존재하지 않게 되어 갑니다. 이런 경쟁 세계가 현실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람들과 매스컴 등은 「공존·공생의 번영」이야말로 인간의 행복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모든 이들이 자기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그러한 행동을 하면 세상은 잘 되어간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좀처럼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오늘날까지 문명이라는 것은 인간의 경쟁 본능이 구축해 왔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했을 경우 경쟁이라는 것에는 반드시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이 존재합니다. 지면 분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이기면 이기는 대로 상대에게 미움받거나 사람을 적으로 만들거나 하는 현상도 일어납니다. 진 인간은 자존심이 손상되고, 이긴 인간은 자신이 한층 더 강한 경쟁의 표적이 되는 것을 자각하기에, 양자 모두 정신적으로 큰 억압(압력)과 거기에 따르는 스트레스에 휩쓸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겨도 져도 그 자체가 스트레스의 덩어리가 되어 버려서 인간의 삶의 방법으로서 행복감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괴로움으로 가득 찬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살아가는 것(生)도 또한 괴로움이다(Jāti pi dukkā)」고 하는 의의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 없이 행복과 평온함을 맛볼 수 있는 인생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경쟁」이라고 하는 말을 「공존」이라고 하는 말로 옮겨놓고 생각해 보면 알기 쉬워질 것입니다. 지금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면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상대방도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직간접적으로 여러분의 인생에 깊게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협력이 있어서 여러분은 지금이라고 하는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러한 사람들이 살아있어 주기 때문에 자신이라고 하는 생명이 성립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 한 사람의 존재라는 것이 이 사회, 이 나라, 또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각각 관계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류의 관계가 적이라든지 경쟁자라고 말해서 성립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형제라는 발상은 이런 사실로부터 일어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인간도 신들도 동물도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주석서에서는 지옥의 불길까지도 당분간 멈추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일까요? 인간이 화합하며 사이좋게 사는 것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삶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쟁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걸어야 할 진실의 길과 너무도 먼 얘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 이렇게 자신이 살아있을 수 있는 그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그 혜택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속에서 보답하는 삶의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쉬운 일입니다. 제일 먼저 실행한 자신도 혜택을 받은 상대도 서로 마음이 풍부하게 되어, 거기에는 원한도 분함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삶의 방법 속에서야말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방법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은 살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는 능력과 재능을 구사하고 그것을 또 충분히 살리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그 방법을 누군가를 넘어뜨리기 위해서나 누군가와 싸우기 위해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나의 주위로 누군가가 나를 앞질러 간다면 그것은 그 앞질러 간 사람 쪽이 적어도 나보다 능력이나 재능이 뛰어나서거나 혹은 이루려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나보다 그 사람이 더 필요하게 되어서이기에 오히려 나는 그 사람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과 내가 각각 적당한 입장에 놓여진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나 나도 특별히 경쟁한 것이 아니기에, 따라서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에는 입장이 바뀔 때도 있겠고, 혹은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좋지 않습니까?
또 나에게 경쟁하자고 도전해 오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 자신이 그 사람을 경쟁 상대라고 보지 않는 한 나에게 있어서는 어떤 괴로움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서로가 같은 씨름판 위에 있다면 보다 재능이 풍부한 편이 우선될 것이고, 다른 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어떤 관계를 가지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어느 것이든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경쟁 상대라는 개념이 생기지 않는 세계가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라고 하는 인간의 자질이 십분 발휘되는 위치에 자신이 놓여지는 것이야말로 행복에의 길임이 틀림없지만, 그 방법으로서 경쟁이라고 하는 수단을 행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을 배려하고 그 안에서 날마다 노력 정진해 나가는 과정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자신이 먼저 웃어 주는 것, 먼저 고맙다고 하는 것,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적을 만드는 것은 실패의 삶의 방법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모두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에 승리하는 비밀은 매우 심플합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화를 내었다고 화를 내어 돌려주면 자신의 패배입니다. 적으로 만들지 말고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아군으로 바꾸는 도전을 합시다. 나의 인생이니까 내가 운전해야 합니다.
세상은 넓지만, 이 세상을 자신의 아군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을 즐거운 세계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삶이 불교인의 의무입니다.
● 이번 포인트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 내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 나밖에 할 수 없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삶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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