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8~2022 일상수행법문

2019년 우안거 입재_말을 할 때 기본적인 원칙 (20190713)

담마마-마까 2022. 5. 17. 09:00

https://youtu.be/_5nO8BC0SEE

* 2019년 우안거 입재_말을 할 때 기본적인 원칙 (20190713)

 

조용한 상태에서 (툭툭툭 마이크 치는 소리) 그 소리가 들리면 굉장히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빨리어에도 '까-까(kāka)' 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시끄럽게 떠드는 걸 '까-까' 그렇게 얘기합니다. 까마귀 울음소리와 똑같습니다. 까마귀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 반대되는 걸 보통 '부드러운 말을 한다' 할 때 반대되는 용어로 "아까까상"(akākasaṅ)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도 말을 할 때 항상 '내가 혹시 말을 할 때 까마귀 소리 내는 거 아닌가' 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까마귀 소리를 계속 내면 본인도 나중에는 듣기가 싫습니다. 애들한테도 잔소리를 해도 적당히 해야지 지나치면 애들도 그게 듣기 싫고 본인도 그게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까마귀 소리가 계속 일어나면은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부드러운 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그게 세련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거칠은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태국에 스님이 처음 갔을 때 암만해도 인제 87년, 88년 이때였으니까, 그때만 해도 스님들이 공부를 배울 때 일반인한테 못 배우게 돼있어요. 출가한 스님이 됐으니까 태국에서 다시 출가했으니까, 출가한 스님이 가르쳐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태국어든 빨리어든 출가한 스님이 가르쳐주는데, 태국 스님들이 가지는 고질적인 병이 뭐냐면, 왕도 스님 밑에 있고 일반 재가자는 더더구나 더 출가자 밑에 있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래서 누구한테도 높임말을 쓰지마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태국말 가장 쉬운 말이 뭐가 있어요? “안녕하세요?” 하는 것 “사왓디카?” “사왓디캅?” 그러죠. 태국 스님들은 그냥 “사왓디?” 그러지 뒤에 '카' '캅'을 붙이는 법이 없습니다. 혹시 못 느꼈어요? 존칭어를 못 쓰게끔, 지금도 그 전통이 어느 정도는 살아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나이 반백살 된 분들이나 아니면 70, 80살 된 분들이 오더라도 말을 하면 경어를 그냥 씁니다. 그러니까 인자 막 출가한 스님이 경어를 쓰면 아무리 출가자지만 재가자의 입장에서는 기분좋게 그거를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걸 몰랐어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제 자신은 몰랐어요. 그게 꼭 그래야 된다는 걸 몰랐는데, 나중에 어느 분이 그것도 출가자 중에는 절대 그런 얘기 안 하고 재가자 중에 어느 분이 “스님, 태국어를 잘못 배운 것 같습니다.”

거 왜 그렇냐고 하니까, “왜 존칭어를 안 쓰십니까?”

그래서 출가한 스님은 재가자들한테 존칭어를 쓰지 말아라고 하든데. “아닙니다” 지금은 그런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는 거라.

옛날에는, 진짜 우리 말로 할 것 같으면 조선 시대 때는 그랬을지는 모르는데 지금은 현대사회이기 때문에 스님들보다도 재가자들이 훨씬 불교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수행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어린 스님이 경어를 쓰면 누가 좋아합니까? 요즘은 절대 그렇게 낮추어 부르는 말을 써서는 안됩니다 하는 거라.

그때 가슴이 뜨끔 했어요. 나는 아무 의식 없이 배웠는데 그게 잘못돼있는 거라.

사실은 언어와 문화는 거의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그 문화가 바뀌면 거기에 맞춰서 언어도 바뀔 수 있게 됩니다.

 

가끔씩 여러분들이 제가 말하는 거 못알아 듣는 말들 많죠? 경상도 사투리 쓰고 하니까 어떨 때는 사람들이 뭔 말 했는지를 잘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거는 어쩌지를 못합니다. 내가 표준말을 써보지를 않았고 그러니까 어떨 때는 그냥 내가 익숙한 말이 튀어나옵니다. 그런 부분은 여러분들이 조금 이해를 해줘야 될 부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자기 자신의 지방 언어를 써가지고 법문을 하라" 빨리어가 생겨난 게 그래서 그런 겁니다. "누구든지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써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출가자 사이에서는 어떨까? 출가자 사이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존칭어를 쓰는 것보다는 그냥 선배스님은 후배스님한테 경어를 쓰게끔 그렇게 배웁니다. 그게 아예 몸에 익숙해져 있어요.

이런 일이 부처님 당시 때도 숱하게 일어났습니다. 내가 지금 아라한이 되었다. 아니면 내가 출가한지 훨씬 선배 스님이다. 그럴 것 같으면 으레 경어를 쓰게끔 됩니다. 후배스님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안 좋으니까 부처님한테 고자질을 하거든.

그러면 부처님이 불러가지고 왜 그런 말을 쓰느냐? 그런 말을 쓰면 안 된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 대신에 왜 이런 말을 쓸까 하는 걸 부처님은 분명하게 알아봅니다.

 

습이 들어있으면 그건 참 바꾸기 힘듭니다. 과거생부터 상류계층만 계속적으로 태어났다 할 것 같으면 하대하는 말을 쓰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습이 되어 있습니다.

꼭 과거생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생에서 살아온 것이 그냥 주는 것만 계속 받아먹고 남을 부리고 살았다 할 것 같으면 하대하는 것이 그냥 생활화돼있다시피 할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하면 사회문제가 금방 돼버립니다.

 

출가자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그 쓰는 사람의 마음이 과연 어떻느냐 하는 걸 부처님은 따집니다. "하대를 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쓸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말을 쓰느냐는 거라. 남을 깔보고 하기 위해서 쓰는 건지 아니면 깔보는 거하고는 관계없이 습이 돼있는 건데, 그건 다른 사람들의 존칭어와 마찬가지로 자신은 쓰는 용어인데, 마음에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깨끗한 마음에서 말을 한다 할 것 같으면 부처님은 그걸 용인해줍니다. 똑같은 하대의 말이라 하더라도 어떨 때는 용인이 되고, 어떨 때는 용인이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이 뭐냐면, 말은 그것이 존칭어를 쓰든 경어를 쓰든 뭘 하든 간에 어떠한 경우든지 깨끗한 마음에서 나와야 합리적인 부분이 된다는 겁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상태일 거 같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말을 할 때 그것을 설혹 존칭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비꼬는 말이 되기가 쉬워집니다. 경어를 쓰면은 남을 하대하게끔 쓰는 말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수행할 때 맨 먼저 뭐부터 해요? 대상을 알아차리기 전에? 마음을 고요하게 하죠? 고요하고 깨끗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할 때 대상을 알아차리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말을 할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자신의 마음이 깨끗한 마음인지 아닌지를 먼저 보고, 그러고 나서 말을 하는 습관들을 자꾸 가질려고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맨 처음에 얘기했듯이 까까 소리, 까마귀 소리만 계속 내게 된다는 겁니다. 거친 말이 자꾸 튀어나오고. 그거는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을 건든다든지 자신과 상반되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소리는 까마귀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부드럽고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고 세련되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남을 꾸짖는다든지 아니면 딱딱하고 한 말들이 금방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명심해야 될 거! '까까' 소리 내지 말자! 까마귀 소리 내지 말자!

까마귀 소리는 한 번 들을 때는 그냥 들을만 하지만 두번 세번 계속 들으면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밖에 되지 않는 겁니다.

 

[말을 할 때 기본적인 원칙, 다른 사람이 반응하는 것에 따라서 본인은...]

다섯 가지를 애기를 해줄테니까 한 번 잘 기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처음에 말할 때는 부드럽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본인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상대방이 반응할 때 화가 난 상태에서 말을 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 '저사람이 화가났다' 하고 본인이 판단되면 어떻게 해야 되요?

 

첫 번째입니다. 분노한 사람을 대할 때, 그걸 말을 대하든 그 분노하는 것이 보여지든 간에 그런 사람을 대할 때는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자애를 지니는 것!

저 사람이 화가 났다 할 거 같으면 나는 일단은 자애를 지니는 것, 자비의 마음을 지닌 상태가 되도록 딱 만들어라. 그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대부분 화를 내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거친 말들을 합니다.

그냥 폭언을 한다든지 비난한다든지 하는 말들을 합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 내가 자애를 지니고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보여지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자애를 지닌 게 보였으면 화가 났으면 '아, 저 사람은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고 발견했으면 그런 말을 안 하게 되는데, 이미 폭언을 한다고 하는 것은 자애를 지니고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고 있는 상태가 돼야 됩니다.

 

그럼 본인은 어떻게 해야 될까? 자애를 계속 지녀야 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는 그것을 무시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한 것 자체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게 그냥 귀를 통과해서 지나가듯이 바람이 통과하듯이 그냥 바로 무시를 해버려야 됩니다.

그사람도 이성적으로 판단해갖고 뭔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귀담아두어버리면 문제가 커져버린다는 거라.

아이들은 차라리 잘 압니다. 엄마가 막 화가 나있을 때는 아무 소리 안합니다. 뭔 소리하면 더 화를 돋구기 때문에. 그냥 무시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그냥 밖으로 드러나듯이 난 너를 무시한다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말 자체를 그대로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그대로 통과하도록 만들어라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보통 하긴 하는데,

 

세 번째, 폭력을 휘두를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 그 말하는 것을 지나쳐가지고 폭력을 직접 휘두를 때 어떡할 것이냐? 그냥 맞아야지 우짜겠노.

방어는 하겠죠. “때리지마” 하면서 방어는 하지만 그걸 폭력으로 돌려주면 안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폭력으로 돌려줘가지고는 그 문제해결은 못합니다. 요즘 사회에서도 맞았다 해가지고 그것을 다시 되돌려준다 해가지고 정당화시켜주는 사회가 아닙니다. 옛날 전투하는 시대에서는 가능하겠지, 요즘 사회에서는 그것도 허물이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협박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하더라도 그것을 되돌려줄려고 하지 말아라. 묵묵하게 맞든지 아니면 방어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자리를 피하든지 그렇게 해야지 폭력으로 되돌려줘서는 안됩니다. 그게 세번째입니다.

 

네 번째,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남에 대해서는 자꾸 간섭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전에 언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죠. 보시하는 걸 보고 그 보시의 공덕이 없다고 생각해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지마. 의미 없어”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공덕이 있고 없고는 하는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생겨나는 것이지, 내가 그것을 하라, 하지 마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가끔 사람들은 인도에 가면 구걸하는 애들한테 돈을 주는 거, 줘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사실은 정답이 없습니다. “옛다, 이거 먹어” 하고 나쁜 마음을 가지고 줬다고 할 거 같으면 그거는 안 주는 것만 못합니다. 그건 아무런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아, 이것으로 인해서 너에게 도움되기를' 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에게 줬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자신에게 공덕이 되어 돌아옵니다.

돈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첫 번째고 두 번째고 관계없이 자기가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건 그 사람의 업입니다. 그 사람의 업이지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라는 거라. 그러면 내가 할 일은 지금의 마음의 상태에 달린 것이지, 그것이 주고 안 주고의 문제에 있지는 않다는 거라. 나쁜 마음을 일으켜서 줄 거 같으면 아예 안 주는 것이 낫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가지고 줬을 거 같으면 그것은 주는 것이 맞는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그렇게 인색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형제간에 분쟁들이 있고 할 때는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누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유산을 남겼는데 첫째아들이 그 재산을 다 차지할려고 한다. 나는 유산 상속분이 요정도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싸워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부모가 재산상속을 요렇게 요렇게 정해놨다고 할 거 같으면 그건 당연히 받겠죠. 법적으로 또 가지고 할 거 같으면 또 어느 일정 부분은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싸우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안 싸우는 것이 좋습니까? 재산을 떠나가지고.

“당연히 안 싸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본인이 그 유산을 상속해가지고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거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살 수 있다는 거라.

그럼 답은 정해져 있지 않느냐는 거라. 안 싸우면 되는 거고, 그거 없이도 내가 살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주기도 하는데 그거 뭐라고 형제간에 금이 가도록 만드느냐는 거라. 한번 금이 가놓으면 오래갑니다. 그런 것들은.

차라리 그러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고 얘기했는데, 못 알아듣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돈이 보이거든.

 

경전에는 분명하게 얘기합니다. "그와 같은 인색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줘라" 더 줘버리라는 거라. 적어도 마음을 그렇게 가져야만이 그것으로 인해서 다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다섯 번째, 특히 아이들한테 부모들이 잘 얘기해야 됩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 어떠한 경우도 그것을 용납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내가 맑고 깨끗한 마음에서 아이에게 도움이 되게끔 염려하는 마음에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고 하면서 저건 절대 하면 안된다 하는 걸 분명하게 인식을 자꾸 시켜줘야 됩니다.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저지를 수 없는 범죄가 없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 됩니다. 어른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거 같으면 그 사람을 염려하는 마음을 딱 지닌 채 항상 이 부분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걸 분명하게 얘기해야 됩니다. 설혹 그렇게 지적하는 것으로 인해서 “나는 너 다시는 안 봐!”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진실은 어떠한 경우든지 변경할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자애를 지니고 또 인내하고 하는 부분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실하고 배척되지 않을 때의 얘기입니다.

진실하고 배척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항상 자애를 지닌 채 그 사람을 염려하는 마음을 지닌 채 그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을 해야 됩니다. 단지 장소와 때를 가려라. 지금 당장 얘기해갖고 효과가 없다면 다음에 좋은 상태에서 분명하게 얘기해야 됩니다. 여러 사람 있는 곳에서는 안되겠다 싶으면 다른 장소에서 혼자 있을 때 얘기한다든지. 그런 것은 가릴지 몰라도 그 진실을 그냥 덮어 넘길 수는 없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도 어느 다른 스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어느어느 스님이 이러한 범계를 저질렀는데, 스님이 어떻게 조치를 좀 취해주십시오” 하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범계 사실이 확인된 상태일 거 같으면 또 그것을 묵과하고 넘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은 그 선원에 운영위원회한테 알려라. 그리고 그 스님이 속한 교단, 태국이면 태국 스리랑카면 스리랑카 미얀마면 미얀마 그 교단에 분명하게 알려라.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 스님하고 나하고는 원수지간이 돼. 그렇다고 해가지고 사실을 은폐하고 덮고 넘어가지는 못한다는 거라.

 

이게 다섯 가지 소중한 부분입니다.

 

처음에 '아까까상' 얘기했죠? '부드러운 말', 전제조건은 항상 말을 하기 전에는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돼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말을 할 때 기본적인 원칙이, 조금 전에는 말을 할 때 다른 사람이 반응하는 것에 대한 다섯 가지 원칙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내가 말을 할 때의 기본적인 원칙은

 

첫 번째가 '아까까상' 어떠한 경우든지 부드러운 말이 되도록 할 것.

두 번째, '윈냐빠니' 라고 그럽니다. 뭔가 말을 했으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된다는 거라.

의미없는 말은 되도록이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건 거짓말의 영역에 속합니다. 남을 무시하고 남을 비난하고 하는 것만 거짓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말들도 전부 거짓말의 영역에 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단 내가 말을 하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됩니다. 만약에 본인이 도움되는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면 그냥 침묵하라는 거라 말을 하지 말고. 차라리 침묵하고 자신의 육근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동요하는 법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입니다.

 

세 번째, '닙비사쩨깐찌' 라고 그럽니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화를 내지 말아라.

여러분이 행복해지고 싶죠? 여러분만 행복하면 됩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 혼자서 독립해가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 되는 거고.

인간의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먹는 것부터 해서 공기까지 모든 것들이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야만이 여러분이 행복해지고 건강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럼 그런 모든 것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을 생각을 해야 됩니다.

꼭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화내는 거 듣고 싶지 않거든 여러분이 화내지 말아야 됩니다. 듣기 싫듯이 나도 화를 내서는 안됩니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자식이든 아니면 자신하고 가장 흉허물이 없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자신보다 아랫사람이든지 누구에게든지 화내는 것들은 하지 말아라.

 

이 3가지는 반드시 말을 할 때 지켜나가라.

 

그 전제조건은 자애의 마음을 지닌 채 항상 맑고 깨끗한 마음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여러분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으로 인해서든 아니면 여러분이 말하는 것으로 인해서든,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그것이 여러분들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길이다 하는 걸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