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2sqwpWeiU?si=qF3gfwtbObfx6ufp
* 패엽경-패엽 손질하는 법, 사경 방법 등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614-1
오늘 시간 할 거는 패엽경에 대한 겁니다.
스님이 가져온 저 패엽경은 한 몇 년이나 됐을까? 몇 년 정도 됐을 것 같아요? 1년 됐습니다. 작년에 알루위하라에 누가 여행 갔다가 거기서 직접 스님들이 패엽한 걸 사 왔으니까 1년 된 거지. 패엽은 야자 잎으로 새긴 것들을 얘기하죠.
야자잎은 한 몇 년이나 그게 갈 수 있는 걸까? 얼마 정도 갈 것 같아요? 수명이 가만히 그냥 자연 상태에서 놔주면 100년. (수행자: 나무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잎을 말씀하시는 거에요?) 잎! 잎을 얘기합니다. 패엽, 야자나무의 잎.
지금 최고 패엽으로 오래된 게 기원후 5세기 때 쓴 거니까, 몇 년 같습니까? 1600년! 뭡니까? 우리나라 불교 역사만큼 됐네. 한 1600년간, 그거는 아주 희귀한 경우고. 대부분 그래도 오래됐다 하는 것들은 7~8세기 이후 특히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에는 보통 13세기 14세기 때가 가장 오래된 것들입니다. 그리 해도 기본적으로 몇백 년은 가죠. 몇백 년은 갑니다.
근데 야자 잎은 그냥 자연 상태에서 그대로 놔두면 얼마나 갈까? 그건 얼마 안 가죠? 진짜 야자잎 어디 떨어진 거 이렇게 놔두면 뭐 100년이 무슨 100년이야. 1년 되기도 전에 다 썩어버립니다.
그런데 왜 패엽경으로 만든 야자잎은 뭘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오래갈까? 몇백 년이나 갈까? 그냥 잎은 잎인데 요걸 뭔가를 제조를 했겠죠. 제조를 했으니까 그리 오래도록 갈 수 있게끔 되는 겁니다. 우리 나무도 잘라 가지고 소금에다가 바닷물에다가 담그고 그다음에 그늘에다 말리고 그다음에 밖에다가 옻칠 같은 걸 해야만 이게 오래 가는 것이지. 그냥 나무 그냥 이렇게 잘라갖고 집 지어놓으면 금방 썩어버립니다. 그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패엽도.
그리 해도 나뭇잎인데 아무리 제조를 한다 해도 그건 한계를 가지게 됩니다.
최초로 경전으로 쓰여진 패엽경은 언제 쓰여집니까? 불교에서 제4차 결집 때 써지게 되죠.
1차 2차 3차는 인도에서 다 일어났죠. 1차 결집은 부처님 열반 바로 직후에 바로 그해에 했고, 그다음에 2차 결집은 100년 뒤에 했고, 3차 결집은 그리고 또 200년 뒤에 아소카 왕 때 했고, 그래서 다 인도에서 일어난 겁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부 어떻게 했어요? 경전들을 어떻게 전했어요? (수행자: 합송으로..) 합송하는 방식으로 했죠? 인자 많이 아네. 합송하는 방식으로 했는데,
합송은 문제점이 뭘까? 내가 누구에게 전해주려 하더라도 내가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이 이걸 적어가 전해줄 수 있는데, 내가 완전히 알고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라? 다른 사람이 있어야 증명할 거 아니라. 그러니까 적어도 이걸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이 내 말고도 또 다른 사람이 하나 있어야 되는 거라. 집단이 돼야만이 가능한 거죠. 그래서 이 집단이 그다음 집단에게 넘겨주고, 여러 명이 돼야만이 이제 가능합니다.
근데 만약에 우리 선원에 스님이 5명이 있다가 다 환속 해버리고 딱 한 스님밖에 안 남았다, 그럼 합송하는 걸 한 스님이 그다음 대로 전해줄 수는 없죠?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럼 이건 어떻게 돼요?
합송하는 것은 대가 끊어져 버립니다. 내가 여기에서 이 집단에서 다음 집단으로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될까? 달리 길이 없습니다. 그럼 그 한 사람이라도 그거를 갖다가 써 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들어간 게 기원전 236년입니다. 데와남삐야 띳사 왕이 통치를 하고 있을 때 아소카 왕의 아들인 마힌다 장로가 여러 스님과 사미들을 데리고 전도사로서 스리랑카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래가지고 불교를 전했는데, 불교를 전해도 항상 그 불교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나간다고 보장을 못합니다. 중간에 무슨 일이 항상 생기게 돼 있습니다.
그게 언제였느냐면 그러니까 기원전 236년에 그걸 전해주고 나서, 불교에 위기가 닥친 게 정확하게 얘기해서 그로부터 108년 후 위기가 닥칩니다. 불교는 어쨌든 국민이 있고 나라가 있어야만이 그 불교가 그 나라에 정착을 하는데 외세 침입을 자꾸 받아 쌌고, 또 그 나라에 기근이 들어서 12년간 기근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풀뿌리도 캐먹기 힘든 실정이니까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올리고 탁발할 수 있는 근거가 안 돼.
그럼 우리 회장님 같으면 출가한 스님이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럴 때는. 아마 큰 스님들 몇 명을 제외하고 나면 먹고 살기 힘들면 뭐 그냥 살 수가 없습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경작할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일궈 먹을 수가 없으니까 별 수 없이 그냥 환속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환속을 하게 됩니다. 구전을 통해가지고 암송으로 전해지는 게 이게 끊어질 위기가 딱 닥친 거라.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아, 거기다가 그런 기근이 들었다가, 다시 인제 그리고 외세 침입 타밀족들의 침입이 있었는데, 타밀족의 침입이 있으니까 그것도 막아내고 해가지고 다시 이제 나라가 안정이 되게 됐는데, 12년간 이 왕이 도망을 다니면서 은혜를 입었던 스님이 한 분 있었는데 이 스님한테 크게 절을 하나 지어줬어요.
근데 보통 절을 지어줄 때 테라와다 방식은 어떻게 되냐면, 그 스님 이름으로 절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상가 이름으로 하게 돼 있습니다. 그 스님이 거기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여기 있는 스님한테 스님 기거하라면서 이제 뭘 하나 마련해 준다. 숙소로 마련해주든 절을 마련해 주든 마련해준다. 내 개인 이름으로 할 수가 없는 거라.
그러니깐 우리는 지금 법인으로 돼 있잖아요. 한국 테라와다 불교는. 법인 이름으로 그걸 만들어 놔야 되는 거라. 그러니까 이 스님이 가고 나더라도 거기에 다른 스님이 있을 수가 있게 되는 거라.
이게 인제 테라와다 방식인데, 이 띳사 스님이 그걸 개인 이름으로 그 절을 받게 된 거라. 그러니까 이 스리랑카 승단에서는 난리가 난 거라. 그걸 왜 개인으로 받느냐? 그건 너 잘못했다. 그러니까 이거 다시 승단 이름으로 돌려라. 이리 했는데 이 스님이 욕심이 있어 놓으니까 그걸 안 한 거야. 그러니까 안 하니까 어떻게 해? 승단에서는 뭘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이 스님을 쫓아낼 수밖에 없는 거라. 부처님의 율에 맞게끔 살지를 않으니까 쫓아낼 수밖에 없는 거라.
그래가지고 이제 쉽게 말하면 파승이 돼버립니다. 승가로부터 제외돼 버리게 되는 거라. 너는 이제는 중이 아니다. 하고 내쳐버리게 되는 거라.
쉽게 말하면 4가지 바라이죄에 해당이 되게 됩니다. 4가지 바라이죄에 해당이 되면 그 스님은 쉽게 말하면 사문 출송을 당하게 됩니다. 다시는 이 가사를 입을 수도 없고 일반적으로 세속에 살다가도 다시 또 출가할 수도 없습니다. 나머지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환속했다가 다시 또 지가 출가 생활하고 싶으면 또 출가할 수가 있는데, 이 4가지 바라이죄에 해당이 되면 그것조차도 안 돼. 한번 사문 출송되면 복권조차도 안 되게 돼 있는 거라.
근데 그 스님을 따르는 다른 스님들이 생각해 보기에 이 좀 너무했다 싶으거든. 아무리 개인 이름으로 했다 하더라도 뭐 저렇게까지 사문 출송을 할 수가 있나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들이 세를 규합하기 위해서 인도에 그때 유행했던 대승불교의 교파와 손을 잡습니다.
그래서 율장을 변경을 하기에 이르르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개인 이름으로 가져도 괜찮다. 그리고 부처님 법에 대한 것도 변경을 가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있던 테라와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건 완전히 이단이 돼버리는 형태가 돼버리는 거라.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렇게 세력이 커지다가 보니까 원래 있던 거는 아, 마하위하라라고 그럽니다. 우리말로 하면 대사파라고 그러고,
저쪽은 무외산사파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무외산사파가 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지지를 받다가 보니깐 이게 세력이 커집니다. 이러다 보니깐 여기 무외산사파에서 대승불교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대승불교의 스님들을 인정을 하게끔 됩니다.
테라와다의 방식은 정확하게 출가한 스님들의 계맥을 잇지 않았으면 그걸 인정을 안 합니다. 그래서 계를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20가지 출가할 사람이 적용되는 것들이 어긋남이 없어야 되는 거고, 그리고 삼사.. 또 아니면 삼사칠증(三師七證)의 조건을 갖다가 반드시 갖춰야 됩니다.
그리고 그 출가했을 때 할 수 있는 게송 우빠삼빠다 게송 그 게송을 갖춰야 되고, 그리고 그 출가할 장소가 정해진 시마석 결계당이 존재를 해야만이 출가의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지는데, 이것 중에 하나라도 어긋나 버리면 그건 바르게 계를 받은 것이 아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심지어 하물며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이 출가를 시켰던 수밧다 마지막 제자, 부처님이 시킨 것인데도 그것조차도 인정을 안 할려고 하는 경향이 있거든. 그 정도로 엄격하거든.
왜 그러냐면 출가의 계율은 아예 딱 정해져 있습니다. 에이 빅쿠에서 시작해가지고 띠사라나 빅쿠로 해서 우빠삼빠다 빅쿠로 해서 출가의 규정이 아예 딱 정해져 있어요. 그 규정이 부처님 당시 때 이미 확립됐기 때문에 그것이 쭉 면면히 이어졌을 때는 그 이상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무외산사에서는 대승불교권 인도에 있던 스님들은 어떻게 계를 받았는지도 조사 확인이 안 된 상태인데 이걸 인정해 주는 거라 쉽게 말하면. 쉽게 말해서 대승불교 스님이다. 만약 대승불교에서 승납이 10년이 됐다 예를 들어서, 그러면 이제 내가 만약에 한 5년 됐다. 그럼 내가 인제 테라와다 스님인데 저기 가서 인사를 해야 되는 거라.
여러분들이 봤을 때 불합리하다고 보겠지만, 테라와다의 방식에서는 이게 어긋나는 거라. 정확하게 계를 받은 근거가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은 인정이 되는데,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걸 인정을 안 하는 형태라. 이러다 보니까 스리랑카 내에서도 이게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지게 되는 거라.
그런데다 법과 율을 고치려고 해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것들을 만들지, 그런 데다가 스님들이 이거 삼장을 다 외워가지고 집단에서 다음 집단으로 전해줄 수 있는 스님들도 거의 없어져 버리지, 다른 대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뭐냐면 암송하던 것들을 글로써 새기게끔 됩니다.
그게 뭐냐면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제4차 결집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알고 있는 빨리어 경전 또는 한국에서 알고 있는 산스크리트 경전 아니면 티베트 경전, 대정신수대장경 이런 것들 모든 것들은 맨 처음 시발점이 이 야자나무 잎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들이 시초가 되게 됩니다. 그전에는 경전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산스크리트어를 쓰든 빨리어로 쓰든 아니면 어떤 언어로 쓰든 글로서 새긴 적이 없었던 거라.
그러니까 최초로 시작된 게 불교에서는 제4차 결집이 됩니다.
1차 2차 3차는 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그 결집을 행하게 됩니다. 근데 제4차 결집은 안 그렇죠. 그 스님이 지원을 받지 않고, 대사파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이대로 갔다가는 왜곡되겠다는 결단을 내려서 결집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500명의 스님들이 그 당시에 스님들과, 일반적으로 불교가 존재했던 곳이 아누라다뿌라 그다음 미힌탈레라고 하는 곳입니다. 마힌다 장로가 왔다 해서 미힌탈레라고 이름이 붙었는데, 그 지역으로부터 거의 100km 넘어 떨어진 곳에 있는 동굴에서 결집을 하게 됩니다. 거기가 어디냐면 알루위하라 라고 하는 곳입니다.
빨리어로는 알로까위하라라고 그럽니다. 로까, 아로까 그러니깐 세상에 있지만 세상하고는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그런 뜻으로써 알로까위하라, 그렇게 존재하는 사원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 정도로 스리랑카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곳인데, 이 알루위하라에서 경전을 필사를 하게끔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필사하는 방법이 스리랑에 전해지지 않았으면 필사가 가능했을까? 그러면 경전은 그때가 기원전 1세기입니다. 기원전 1세기 때 써져 있었지만, 경전 말고 다른 것들은 인도에서 쓰여진 역사가 없을까? 틀림없이 있었겠죠. 있었으니까 그게 그 방식이 스리랑카로 전해져 왔을 겁니다.
그래서 야자나무 잎에 필사하는 방식은 이미 기원전 5세기 기원전 6세기 때 인도에서 시작이 되게 됩니다. 그게 인제 경전이 아니고 다른 그 문서라든지 천문학이라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시라든지 이런 것들이라서 그런 것이지. 이미 필사는 그때부터 시작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필사의 방식에 따라서 어떤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딱 정해집니다. 포티 방식, 아니면 무슨 다른 방식 이런 식으로 어떤 방식들이 이미 정립이 되게 됩니다. 그게 인제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이미 기원전에 이미 건너가게 됩니다.
야자나무는, 그걸 기록하기 위한 것들이 야자나무인데,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 두루마기 또는 파피루스 이런 것들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문화유산으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서구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양피지 동물의 가죽이라든지, 또는 그 백화나무 나무껍질에 쓴다든지, 그다음에 이제 종이, 종이를 뜨는 방식이 이제 각각 나라마다 틀려요. 우리는 물에다가 이리이리 이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뜨잖아요. 옛날 창호지들. 그런 방식이 있고, 또 그걸 폭 담가가지고 뜨는 걸 건져내가지고 뿌려가지고 하는 방식이 있고, 뜨는 방식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쨌든 그 종이를 갖다가 두루마기 식으로 만들어가지고 거기다가 기록하는 방식이 있고 그렇게 돼 있는데,
인도나 동남아시아 인도에서 시작돼서 출발해가지고 그 주변에 퍼진 것은 방식이, 맨 처음에는 뭔 방식으로 했냐면 이 야자잎에 기록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거죠. 서양하고 마찬가지로.
그래서 아까 여러분들에게 보여줬는데, 그 야자는 바르게 법제를 하지 않으면 오래도록 유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법제를 반드시 하게끔 돼 있습니다.
야자잎 여러분들 봤어요? 대부분 야자잎 가지고 뭐 만들어요? 대나무 바구니 이렇게 같이 야자 잎을 이렇게 쪼개 가지고 대나무 바구니 만들기도 하고, 공예품 만들기도 하고, 또 남자들은 그거 좋아하잖아. 술, 야자 꽃 착 잘라가지고 거기서 나오는 수액 가지고 술 만드는 거, 그런 것들이 보통 야자가 쓰일 수 있는 그런 것들입니다.
근데 잎으로는 쓸 수 있는 것이 공예품 만드는 종류 외에는 별달리 쓸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야자 잎이 저거도 보면 알겠지만은 어떻게 생겼냐면 요렇게 살이 이렇게 쭉 가로 세로로 돼 있는 살이 양쪽으로 딱 붙어있는 형태입니다. 양쪽으로, 그러니까 촘촘하게 돼 있는 게 쉽게 말해서 종이 2장이 양쪽으로 이렇게 요 하나의 대를 중심으로 해서 딱 붙어있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야자 잎이.
그런데 가로하고 세로로 이렇게 선이 쭉 있는 것이 이렇게 촘촘하게 돼 있다는 것뿐이기 때문에 가로 세로가 약하기 때문에 글자가 동글동글하게 쓰지 않으면 이게 찢어져 버립니다.
그럼 야자잎에 적어도 글을 쓰려고 할 것 같으면 글자는 반드시 동글동글동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겠죠? 그러면 동글동글하고 동글하게 쓰지 않고 우리같이 기역 니은 같이 이렇게 탁탁 끊어지는 식으로 쓸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찢어져 버리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철필로 가지고 이렇게 음각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동글동글해야 되고, 그렇지 않고 그냥 거기다가 붓글씨 식으로 이렇게 그냥 쓸 경우에는 똥글똥글할 필요 없이 반듯해도 됩니다. 근데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있는 거는 글자가 동글동글하죠. 저거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음각한 형태죠.
인도에서 스리랑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퍼진 글자들은 전부 인도 아리안 계통입니다. 그래서 인도 아리안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브라흐미 글자'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브라흐미 글자에서 파생된 것들은 전부 다 동글동글합니다. 그러니까 패엽경을 쓰더라도 요걸 음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새길 수가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들이 많이 알고 있는 산스크리트 티벳어라고 하는 것, 인도에서 북쪽으로 넘어간 네팔 티벳으로 넘어간 것들은 글자가 동글동글한 게 아니고 각이 딱 집니다. 그래서 데와나 가리어라든지 이런 범어들은 보면 각이 져 있죠. 그럼 그거는 야자잎에 쓸 경우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펜글씨 식으로 써야 되는 거라. 음각을 할 수가 없고 그냥 붓글씨로 이렇게 써야 되는 거라.
그래서 야자나무 잎에 새기는 방식은 이렇게 두 방식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음각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장 오래된 것도 음각한 게 아니고 네팔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원후 5세기에 있는 것도 쓰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쓰는 것들을 오래도록 그 글자가 날아가지 않고 보존하려면 어떤 걸 써야 될까? 일반적으로 그때 당시 화학염도 없었겠지만, 일반적인 거 가지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보면 돌가루, 돌가루 돌을 갖다 갈아가지고, 색깔 있는 걸 가지고 이렇게 글을 쓰게끔 됩니다. 그렇다고 글을 쓰더라도 그걸 그대로 놔두면 당연히 나중에 글자가 날아가 버린다는 거라.
그럼 그 위에다가 쉽게 말하면 기름칠을 해줘야 됩니다. 우리 식으로 동백기름을 칠하든지 옻을 칠하든지 그렇게 칠해줘야만이 이 글자가 날아가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이 되게 됩니다.
그러려면 돌가루든지 아니면 나무에서 그 색을 갖다가 만들어내야 됩니다. 그래서 노란색이 나오는 나무 열매가 있다 그러면 거기서 그 색을 추출해야 되는 거고. 빨간색이 나오는 게 있다 할 것 같으면 빨간색 열매에서 그걸 추출해야 되는 거고. 그럼 그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곳에서만 그걸 갖다가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근데 네팔이나 북쪽은 히말라야 산맥이기 때문에 그런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나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추출하기가 쉬워.
근데 인도 남쪽으로는 산이 많이 없기 때문에 그런 나무나 그런 돌을 구입할 수 있는 조건들이 사실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야자나무에 음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뭐냐면 야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북쪽으로 가면 없습니다. 우리나라 야자나무 자랄 수 있을까? 못 자라죠. 추우면 야자나무는 못 자랍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가지고 넘어온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시아에 자생하는 것도 있었지만은 더운 데서 자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인도 남쪽은 야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데, 네팔이나 티베트 쪽은 야자가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나무들이 다른 나무들이 많아서 글씨를 쓸 수 있는 재료는 있다고 하더라도 야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인도에서 수입을 해 와야 됩니다. 근데 만약에 인도에서 수입할 조건이 안 된다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뒤부터는 야자에 글을 새길 수 있는 조건이 안 돼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네팔이나 티벳 쪽은 일찍이 야자나무에 글을 새기는 것이 중단돼 버리게 됩니다. 야자를 구할 수가 없으니까.
근데 동남아시아 쪽으로 퍼진 거는 다 야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재료가 필요 없습니다. 음각하면 되니까.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패엽경들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게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야자에 따라서 그런 특징들이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야자 종류는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패엽경으로 쓸 수 있는 야자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보통 한 10종류 정도 된다고 얘기를 합니다. 지금 남아있는 야자 종류들 조사를 해보니까. 그중에 대표적인 게 뭐냐면 공작 야자라고 하는 것, 그다음에 또 하나가 팔미라 야자라고 하는 것, 이 두 종류가 거의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저거는 팔미라 야자입니다.
공작야자와 팔미라 야자의 차이점은 뭐냐면,
공작 야자는 아주 잎이 부드럽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잘 구부러집니다. 잘 구부러지더라도 똑 부러지지는 않습니다. 근데 팔미라 야자는 잎이 두꺼울 뿐 아니라 이렇게 구부리면 잘못하면 똑 부러져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공작 야자는 야자 잎의 양쪽에 선이 이렇게 굵은 선이 이렇게 쭉 돼 있습니다 끝에. 근데 이 팔미라 야자는 그게 없어.
그러니까 만약에 그 야자잎을 이런 데다 이런데다 스친다고 하더라도 공작야자 같은 경우에는 이 굵은 선이 이렇게 방어막이 돼 가지고 이게 잘 터지질 않습니다. 근데 팔미라는 그게 없으니까 어떻게 돼요? 잎이 스치면 그 쉽게 말해서 실밥 터진다고 하는 식으로 끝이 이렇게 터져버리게 되는 거라.
아무리 두꺼워도 그런 나쁜 조건이 돼 있습니다. 그러니깐 두껍다 해서 이게 보존이 오래될 수 있는 게 아닌 거라. 부드럽고 끝이 선이 있어가지고 잘 터지지 않는 이 공작야자가 보존하기에는 훨씬 더 용이한 조건을 가지게 되는 거라.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경전은 뭐로 써지냐면 이 공작 야자로 써지게 됩니다. 그 대신에 공작 야자는 아까 팔미라 야자에 비해서 이게 두께가 얇습니다. 얇기 때문에 조심해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
그래서 음각을 할 경우에는 음각하는 방법에 따라서 그 야자 잎에다 음각을 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동글동글하게 한다 하더라도 구멍이 날 수밖에 없는 거라.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저거는 지금 팔미라 야자, 두꺼운 야자 잎인데도 지금 현재 저거는 이제 그 전시용으로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인데 한 면으로 밖에는 안 썼습니다.
근데 옛날 패엽경들을 보면 양면으로 다 돼 있습니다. 그 얇은 공작야자로 썼는데도 양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만큼 쉽게 말하면 정성을 들여서 써야 될까? 안 그러면 뒤에 것까지 베어져 버리게 되는 거라.
쓸 때는 반드시 철필을 그래서 쓰게끔 돼 있습니다.
철필이 생긴 게 어떻게 생겼냐면 앞에 이렇게 뽀쪽한 송곳같이 돼 있습니다. 그 위에는 반드시 뭐가 존재하냐면 칼, 우리 같으면 이렇게 동그란 이런 그 칼날이 이렇게 위에 붙어있습니다.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그게 없으면 이 무게가 얼마 없기 때문에 보통 힘을 주고 쓰게끔 됩니다. 근데 철필에다가 요런 것이 날이 하나 이렇게 달려지면 그 무게 때문에 균형을 맞출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내가 눌러쓰지 않아도 그냥 붓글씨 식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이게 음각이 되는 거라. 그래서 철필에는 반드시 거기에 그게 달려 있습니다.
그걸 갖다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해가지고, 이렇게 둥근 칼날같이 이렇게 달려 있으니까 글씨 잘못 쓰면 그걸 갖다가 이렇게 살살살 긁어가지고 메꾸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착각하는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야자는 한번 쓰고 나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동판입니까? 아니면 나무도 아니고 어떻게 그걸 뭉갤까? 뭉갤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근데 생긴 걸 보고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거는 그래서 그런 게 아니고 무게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게감과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낸 겁니다. 그래서 그걸로 가지고 반드시 사경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펜글씨 식으로 쓸 경우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펜글씨 식으로 그냥 저쪽 네팔이나 티벳 쪽에 쓰는 방식은 음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글씨를 쓰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냥 목탄 같은 거 구해오고 그다음에 갈대 같은 거 불에다 태우면 검게 됩니다. 그럼 그걸 가지고 쓰면 됩니다. 그래서 음각하지 않는 경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음각할 경우에는 그런 조건을 반드시 갖추어야 된다, 하는 그런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쪽으로 네팔이나 티벳 쪽으로 써진 것들은 패엽경을 보면 음각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전부 글씨를 펜글씨 식으로 써있습니다.
그 대신에 남쪽으로 간 스리랑카 버마 태국 그다음에 인도네시아까지 다 포함한 이 지역으로 간 것은 펜글씨는 거의 없습니다. 전부가 음각을 하는 형태를 띠게 돼 있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쪽으로 간 것은 음각을 하려다 보면 인도 아리안 계통의 언어에서 발달된 동글동글한 글씨들을 쓰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스리랑카에서 써질 때는 뭐로 써져 있겠어요? 자기 나라 싱할라 글씨로 쓰게끔 돼 있습니다. 그럼 싱할라 글씨로 쓸려다 보면 싱할라 글씨도 그렇게 동글동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버마에 간 것도 버마 글씨로 써야 되기 때문에 버마 글씨도 동글동글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국으로 간 것도 태국 옛날 그 란나타이어 고대 타이어들은 그걸 갖다 몬나우 언어라고 합니다. 그 언어들도 동글동글합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깜보쟈 언어도 전부 동글동글합니다.
그래서 이 네 개의 글씨들로 새겨진 것들을 빨리어 경전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빨리어 경전은 싱할라 빨리, 버마 빨리, 타이 빨리, 캄보디아 빨리,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걸 갖다 통합해가지고 요즘은 로마나로 쓰죠. 그걸 지금 영어식 표기 방식으로. 그러다 보니까 그걸 로마나 빨리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기록이 되게 됩니다.
그러는데 빨리어는 기원이 쉽게 말하면 브라흐미 글자라고 그랬습니다.
브라흐미 글자는 태동이 된 것이 발음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우리는 옛날 한글에는 지금의 자음 모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자음 모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점 찍는 것도 있고 이상한 글자들도 많이 있고 그렇습니다. 지금 로마나 빨리어들 보면 뭐 밑에 점 찍는 것도 있고, 위에 점 찍는 것도 있고, 이렇게 기러기 표시도 있고 뭐 이런 것들이 있죠? 그게 왜 그러냐면 발음의 정확성에 따라서 기록한 문화의 표시입니다 그게.
그러다 보니까 브라흐미 글자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다 보니까 스리랑카에서도 스리랑카 사람들은 발음을 하더라도 인도 사람하고 똑같이 발음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 자체가 틀리기 때문에. 그런데 빨리어는 발음하는 걸 기록하는 거기 때문에, 그 발음을 정확하게 그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음이면 장음으로 기록을 해야 되는 것이고, 단음이면 단음으로 기록해야 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장음 단음에 따라서 아무리 발음 하는 법이 틀린다고 하더라도 그걸 정확하게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자기들이 그걸 발음하기 힘든 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거기다 표시를 해줘야 됩니다.
그래서 만약에 N자는 은 니은 발음이 납니다. 일반적으로. 근데 자기들이 니은 발음하기 힘들다 하는 것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니은에다가 엔자 밑에다 점을 하나 딱 찍어줘야 됩니다. 요게 원래의 발음이다 하는 표시를 해주는 거라. 그게 쉽게 말하면 그런 식으로 발전돼 온 것이 각각의 나라에서 각각의 기호들이 자꾸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갈매기도 생겨나지고 점도 생겨나지고 그다음에 길게 장엄하는 것도 생겨나지고 이런 식으로 생겨나지게 됩니다.
그게 쉽게 말하면 빨리어라고 하는 글자로 정착을 하게끔 됩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북쪽으로 간 언어들은 그럴 필요성이 별로 없습니다. 글자를 새기는 게 아니죠. 글자를 쓰는 방식입니다 패엽에다가. 그러니까 그냥 패엽에다 쓰면 됩니다. 그러면 찢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이 져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서는 산스크리트의 계통들이 발달하면서 각각의 언어로써 정착이 돼버립니다. 각각의 글자로서. 그래서 티벳 언어는 음성에 따라서 만들어진 게 아니고 글자로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글자를 이렇게 만약에 쓴다 그러면 그 글자를 발음은 '아'라고 이렇게 썼다, 그러면 발음은 '아'하고 티벳 사람하고 똑같이 할 수 있지만 기록하는 것은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티벳 문자로 기록한 '아' 하고 한글로 '아'라고 기록하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볼 것 같으면 이게 같은 글자인지를 모릅니다.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는 거라. 문자로써 기록될 경우에는.
그렇는데 스리랑카에서 처음 경전을 기록하면서 경 율 론은 싱할라 글자로 쓰더라도 빨리어를 그대로 기록을 하게끔 됩니다. 패엽경 했다 그러면 패엽경을 싱할라 글자로 쓰더라도 빨리어로 쓰게끔 됩니다. 근데 빨리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면 싱할라 글자로 패엽경이라고 쓰더라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빨리어 삼장을 쉽게 말하면 이렇게 예를 들어 볼게요.
'이띠삐소 바가와' 한글로 씁니다. '아라항 삼마삼붓도' 이렇게 써놨다. 여러분들 의미 모르면 이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모릅니다. 스리랑카에서 기록할 때 그렇게 써 놓는 거라. '이띠삐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삼붓도'
그런데 그렇게 쓰지 않고 '그분, 존귀하신 분,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이렇게 써놓은 것이 또 있습니다. 똑같은 싱할라어인데.
빨리 삼장은 삼장 경율론은 '이띠삐소'로 써놔놓고 주석서는 '그분 존귀하신 분'으로 써놔 놓습니다. 주석서는 쉽게 말하면 스리랑카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의미를 알 수가 있는 거라. 그런데 빨리 삼장은 몰라. 그게 제4차 결집 때 쓰여지게 됩니다.
주석서는 많이 있겠죠. 그래서 주석서는 기원전부터 시작해가지고 기원후 100년까지 그 주석서가 계속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패엽경이 딱 만들어지게 됩니다.
근데 이걸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뭐하노? 빨리어 의미를 모르면 '이띠삐소 바가와' 하고 써놔놨으니 이걸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합송을 해왔기 때문에 그 방식으로 그냥 싱할라어로 써놔 놓은 거라. 그럼 이걸 누군가가 이걸 번역을 해야 됩니다. 이걸 번역을 안 하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다가 뒤에 나중에 후대에 기원 후에 이걸 번역들을 하게 됩니다.
이해가 잘 안 되죠? 이해가 됩니까?
왜 그러면 패엽경에다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빨리어를 갖다가 그대로 써놔놨을까? 경율론을.
패엽경에 글씨를 쓴 이유가 뭡니까? 부처님의 말씀을 한 자도 변형됨이 없이 그대로 전할려고 하는데 전할 조건이 안 되기 때문에 대체하기 위해서 글자로 써 놓은 겁니다.
글자를 쓰기 위해서, 그걸 찍어내기 위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걸 그대로 그대로 보존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럼 그걸 만약에 내가 여러분들이 아는 글자로 써 놔 놨다, 그럼 여러분들이 이해는 하는데 이걸 갖다가 다른 나라에서도 이해할 수 있느냐는 거라.
태국 스님하고 스리랑카 스님하고 모였다. 그러면 찬팅 하기를 '그분 존귀하신 분' 이렇게 할 것 같으면 저쪽 사람이 알아듣겠어요? 한글을 모르는데? 그런데 '이띠삐소 바가와' 할 것 같으면 저쪽 사람들도 똑같이 따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미를 모를 경우에 의미를 몰라도 어쨌든 합송을 할 수가 있다는 거라.
그래서 삼장의 중요성 때문에 그것은 빨리어로써 그렇게 기록을 하게 된 거라.
예전에 그 스님들이 얼마만큼 이걸 보존하는 걸 갖다가 그리고 변형됨이 없이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느냐 하는 거라.
그게 이제 경전에 맨 처음 써진 게 패엽경에 써지게끔 됩니다.
패엽경은 어떤 의미로든 부처님의 말씀을 변형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라는 생각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걸 내 언어로써 써놔 놓을 경우에는 다른 나라에서 그걸 알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티벳에서 써진 경전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티벳 언어를 안 배우면 알 방법이 없습니다. 자기들은 자기들의 의미로 써놔놨기 때문에. 그러면은 '이띠삐소 바가와'를 갖다가 나는 번역하기를 '그분 존귀하신 분'으로 번역을 했다. 다른 사람 번역한 사람은 그분 존귀하신 분이 아니고 ‘세존 아라한 정각자’ 이렇게 번역을 한 사람도 있을 거란 말이라.
근데 이렇게 만약에 번역을 했다 치자, 그렇게 해서 기록을 했다 치자. 그럼 이게 세월이 지나면 우리나라는 아라한이라 안 하고 응공이라고 하죠. 세존 응공 정각자 하여튼 이런 식으로 했단 말이라. 그럼 세월이 이렇게 지나다 보면 이게 변질이 되게 됩니다. 응공을 갖다가 응공이라고 써놔 놓으니까 아라한의 의미가 퇴색돼 버립니다.
아라한이라는 원래의 의미는 번뇌로부터 떠나고 그리고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응당 공양받을 만한 자격을 갖췄고 그리고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그리고 그러한 적들을 쳐부쉈다는 의미인데, 응공이라고만 써놔 놓으니까 응당 공양받을 만한 분으로서만 해석이 돼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아라한의 원래 의미하고는 자꾸 멀어지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이걸 응공을 가지고 그러니깐 해석을 하다 보면 아라한의 의미하고는 또 멀어져 버리게 되는 거라.
의미로써 써놔놓으면 후대로 가면 갈수록 원래 의미하고는 점점 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게 테라와다 경전과 대승 경전의 차이입니다.
테라와다 경전은 스리랑카에서 써진 경전이든 태국에서 써진 경전이든 버마에서 써진 경전이든 똑같습니다. 첨가된 것도 없고 빼진 것도 없고 별반 틀린 게 없습니다.
그런데 티벳에서 써진 경전과 중국에 써진 경전은 경전 자체가 틀립니다. 뭔가 첨가된 것도 있고 뭔가 빠진 것도 있고 뭔가 변경된 것도 있고. 그러면 중국 대장경하고 또 한국 그러면 고려대장경하고 똑같습니까? 또 틀릴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러니 패엽경에 새긴 것들을 왜 '이띠삐소 바가와'라고 경율론에는 그렇게 썼을까? 하는 거라.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이해를 해야 된다는 거라.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그대로 다음 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패엽경의 역사에 보면 119페이지에
[옛날에는 크게 지혜 있는 비구들이 있어서 구전으로 합송하여 삼장을 전하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교법으로부터 멀어져 있어서, 이를 안타깝게 여겨서 비구들을 모아 삼장과 주석서를 빨리어와 싱할라어로 사경하여 써서 교법을 영원히 존속시키고자 한다.]
분명한 차이를, 자기들이 주석을 한 것들은 자기들이 생각이라는 거라. 그러니까 자기들이 알아듣는 싱할라어로 써도 괜찮아.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끔.
그런데 빨리어 삼장은 그게 아니라는 거라. 부처님이 하신 거기 때문에, 후대로 그게 변형됨이 없이 가기 위해서는 빨리어로 쓸 수밖에 없었다는 거라. 그걸 변경되지 않고 존속시키는 것들이 쉽게 말하면 테라와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한 치라도 어긋나는 것들은 조금 전 같이 아바야기리 무외산사파와 마찬가지로 파승이 돼버립니다. 그 스님을 잘라내는 한이 있어도 그 세력이 커 가지고 내보다도 훨씬 힘이 크다고 하더라도 잘라내는 한이 있어도 이걸 변경을 안 시킵니다.
그게 패엽경입니다.
패엽경은 손질할 때부터 잘 손질을 해야 됩니다.
야자나무는 보통 야자가 길이가 보통 잎이 보면 1m에서 1m 50, 긴 거는 한 2m 정도 됩니다. 그러면 그걸 그냥 야자를 자르는 게 아니고 보통 보면 야자가 우리로 치면 무슨 나무고? 요렇게 이렇게 나오는 게 있어요. 종려나무, 종려나무 종려잎 나오는 거 봤어요? 어린잎이 요렇게 또르르 말려가지고 이렇게 처음에 요 고사리같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어린잎이 조금씩 올라오면서 이게 몽우리입니다. 여러 개를 이렇게 퍼지면서 여기 하나씩 쭉 퍼져나갑니다. 어린잎이. 그러다가 이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게 색깔이 뚜렷, 크기는 더 커지지는 않는데 뚜렷해지고, 단단해집니다. 꼭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말하면 어린잎이 요렇게 뭉쳐 있다가 쪼르르 펴가지고 완전히 펴졌다 그러면 아직은 보들보들은 합니다. 더 자라지는 않아도. 요때 딱 자르는 거라. 그러니까 발아부터 해가지고 한 5주 정도 지나면 야자잎이 그 정도 된다고 그럽니다. 그럼 요것만 잘라. 야자잎이라 해서 다 잘라가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나머지는 세서 할 수가 없어요. 법제를 못해.
요걸 딱 잘라가지고 이걸 여러 번 법제를 거칩니다. 땅속에다가 그 모래나 습기 있는 곳에다가 묻었다가 다시 또 꺼내가지고 건조시키고 또 묻었다가 건조시키고 거의 1년 과정을 이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면서 이걸 갖다가 여기 몸뚱이를 인제 딱 자릅니다. 그러면은 요렇게 퍼져있는 야자 잎이 하나씩 탁탁 잘릴 것 아닙니까? 그럼 이 짤린 걸 갖다가 다시 짤린 것은 보면 하나의 잎이 양쪽으로 요렇게 돼 있습니다.
요런 식으로 가운데 힘줄이 이렇게 쭉 있고 나머지는 이렇게 요런 식으로 두 개가 붙어있습니다. 그러면 이 가운데 이렇게 힘줄 돼 있는 걸 갖다가 딱 제거를 해야만이 이 두 개를 갖다가 쓸 수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가운데 있는 힘줄을 딱 제거를 합니다.
그러면 이게 인제 일반적으로 요런 길다란 것으로 이렇게 됩니다. 요렇게 되게 됩니다. 한 1m 50에서 2m 되는, 1m에서 한 1m 50 정도 되는 그럼 요걸 이제 딱 가져와가지고 쉽게 말하면 이렇게 가져온 걸 갖다가 불기 불을 피워 놓은 데다가 정제 훈제를 시킵니다. 이 잎을 집어넣어가지고 그 연기를 쐬이면 적어도 여기 벌레가 끓고 하는 것들을 갖다가 없앨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끄집어내 가지고 다시 모래 속에다 넣고 또 그리고 돌 같은 데다가 펴기 위해서 딱 눌러둡니다. 여러 장을 갖다가.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잎이 보들보들보들 해집니다. 그렇게 이제 여러 번 과정을 거칩니다.
이걸 나라마다 이걸 하는 법이 틀립니다. 연기에다가 훈증을 하기도 하고 또 바닷가 쪽에 가까운 데는 바닷물에다가 그걸 갖다가 염분을 넣어가지고 쉽게 말하면 부식을 방지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조금씩 틀립니다. 대부분은 보면 연기로 가지고 훈증을 합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만들어졌으면 요렇게 돼. 1m나 1m 50 되는 걸 갖다가 가져와서 인제는 자릅니다. 그러면 요 정도 됐으면 두 조각을 이렇게 딱 자를 수가 있죠.
두 조각을 자르고 그다음에 여기서 반을 딱 자릅니다. 그러면 1m짜리는 반을 자르면 이 길이가 50cm가 될 것이고, 1m보다 좀 큰 1m 50짜리일 것 같으면 한 60cm가 될 것이고. 길이가,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쉽게 말하면 조각 조각을 다 내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보니까 이 길이가 이쪽 가로폭은 3.5cm에서 보통 한 5cm 정도 되고 이 길이는 보통 45cm에서 60cm 아니면 70cm까지 조금 다양하긴 하는데 그 정도 규격을 보통 해요.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짧은 게 나옵니다.
지금 저거와 마찬가지로 25cm. 50cm짜리를 다시 반으로 자르면 25cm 됩니다. 저렇게 나온 것들은 연대를 따져보니까 그거는 대부분 보니까 15세기 16세기 훨씬 지난 것들은 그렇게 됩니다. 나중에는 그게 편리성 때문에 인제 그렇습니다. 어쨌든 대부분 보면 요 폭이 한 3.5에서 4cm 정도 되고 이 길이가 한 60cm 정도 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패엽경이 지금 그 규격입니다.
그렇게 잘라주고 나면 그걸 모아가지고 구멍을 뚫습니다.
요렇게 돼 있다, 그러면 3등분 해가지고 여기다 두 군데 구멍을 뚫기도 하고, 가운데 하나의 구멍을 뚫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걸 갖다가 할 것 같으면 구멍을 뚫어야만이 이걸 매둘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패엽 종이는 약하고 나캉나캉하기 때문에 양쪽에다가는 대나무를 대든지 나무를 대든지 이렇게 돼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구멍 뚫은 데다가 실을 끼워가지고 동글동글동글 해가지고 싸야만이 요게 보존이 가능합니다.
그럼 만약에 담마빠다를 이렇게 썼다. 차이가 뭐냐면 브라흐미 문자에서 파생한 글자들은 글자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집니다. 우리 한글 방식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파생한 스리랑카 언어든지 태국어든지 할 것 같으면 전부 이렇게 읽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티벳 계통에서 파생된 것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집니다. 그러니까 티벳 장경 볼 때는 거꾸로 읽어야 돼요. 우리하고 방식이 틀려.
어쨌든 그렇게 쓸려고 할 것 같으면 요렇게 자른 데다가 선을 이렇게 튕겨야 됩니다. 글자를 정확하게 쓰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보통 이 넓이에 보통 한 5줄 정도 이렇게 선을 튕깁니다. 선을 이렇게 딱 튕겨놔가지고 그건 나중에 지워버리면 되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글자들을 사경을 하게끔 됩니다. 아니면 펜글씨로 이렇게 쓰게끔 됩니다.
그러면 야자 잎이 기름 성분이 많은 것들은 글자를 쓴다고 하더라도 글자가 조금 지나고 나면 아무리 법제를 했다 하더라도 글자가 파여진 부분에는 좀 거무티티하게 바뀌게 됩니다. 근데 기름 성분이 적은 것들은 글자를 파놔도 이게 다른 거 하고 색깔이 비슷해져.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이 글자에다가 뭔가를 갖다가 색을 입히게 됩니다.
그래서 색을 입히기 위해서 숯가루나 이런 걸 갖다가 요 위에다 싹 바릅니다.
발라갖고 천을 갖고 싹 닦으면 글자 파진 데는 색깔이 드러나지는 거라.
그럼 이렇게 해가지고 여기다가 다시 야자잎 마지막 부분에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 기름을 칠합니다. 기름을 칠하고, 그렇지 않으면 야자 잎이 매끈하게 되기 위해서 돌을 이렇게 문지릅니다. 문지르면 색깔도 드러날 뿐 아니라 이게 재질 자체가 부드러워집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글자를 씁니다.
그렇게 여기서 요렇게 요렇게 한 다섯 줄 이렇게 썼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넘길 때는 요렇게 요렇게 바로 넘깁니다. 그래야 여기에 실을 끼워놔도, 요렇게 해야 그다음에는, 그전에는 요 위에 이렇게 써가지고 이렇게 나왔다 할 것 같으면, 그다음 장은 밑에 게 이렇게 올라가져 가지고 요렇게 써지게 되는 거라. 이렇게 이제 글을 쓰고.
그렇게 써지다 보니까, 번호를 매길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번호를 매길 때는 반드시 왼쪽, 왼쪽 끝단에다가 번호를 매깁니다. 우리말로 할 것 같으면 여기다 숫자로 1 2 3 4 이렇게 써지게 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다가 대부분은 1 2 3 4 번호를 쓰는 게 아니고 까ka 카kha 가ga 이런 식으로 씁니다. 쉽게 말하면 빨리어의 음성에 따라서 자음과 모음을 합해가지고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아a 이i 우u 모음 같은 경우에 그다음에 빨리의 자음 같은 경우에는 까ka 가ga 카kha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그 순서가 있습니다.
그 순서에 따라서 글자를 씁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까 까ka 카kha 가ga 이런 식으로 글자를 쓰게 되는 거라. 이런 식으로 쭉 나가고, 그래서 그렇게 번호를 매깁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까 빨리어 자음 모음을 모르는 사람은 이게 몇 페이지인지 모르는 거라. 써놔 놔도.
그렇게 해가지고 만들어진 게 이 패엽경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패엽 손질하는 법은 조금 전에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경 방법은 그런 식으로 쭉 써 나갑니다.
그다음에 뒤에 패엽경의 역사라고 돼있습니다.
패엽경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패엽의 역사는 기원전 6세기 아니면 5세기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단지 경전으로 써진 것들은 최초가 기원전 1세기 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기원전 1세기 때 거는 지금 안 남아있죠 패엽경.
지금 그걸 전 세계에서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데이터베이스화 된 게 네팔에서 나온 것, 그다음에 태국 북부에서 나온 것, 그다음에 인도의 오리사주에서 나온 거, 그다음에 버마에서 나온 것, 그다음이 캄보디아에서 나온 거, 그다음에 라오스에서 나온 것, 이런 것들이 지금 거의 대부분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있습니다.
패엽경을 이런 식으로 쓰다가 보니까 삼장을 다 쓰면 이게 몇 권 정도 될까?
몇 권 정도 될 것 같아요? 대충 3700권.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이게 인제 1권으로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이 긴 것들은 뭐 좀 두꺼울 거고, 굉장히 얇은 것들은 조금 얇게 될 거고 하는데, 대부분 보면 100장 내외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이 짧은 거는 두 경전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게 해가지고 1권 1권씩 해가지고 이걸 갖다 삼장을 다 써놓은 게 3700권 거의 가까이 됩니다.
이거 보존하는 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보통 아무리 그렇게 법제를 해도 이건 몇백 년 후는 쓸 수가 없습니다. 계속 또 이걸 봐야 되기 때문에. 그러면은 그다음 후대에서 몇백 년 후에는 또 이걸 다시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 하더라도 원본이 있을 것 같으면 이걸 옮겨 쓰기가 쉽습니다. 근데 원본이 없으면 다른 나라 것에서도 가져와서 써야 됩니다.
버마나 태국에서 그런 적이 있었어요. 또 스리랑카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자기들이 원본을 다 갖추어져 있는 것들이 없는 경우가 있었어요. 소실되기도 하고 뭐 전란으로 인해서든지 뭐 어떤 경우든지 그렇게 해서 만약에 담마빠다가 1장부터 2장까지는 있는데, 3장 4장이 지금 패엽경은 없다 그럴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딴 나라에 있는 거라도 가져와야 돼. 아니면 다른 지역에 있는 거. 그럼 가져와서 빨리어로 써져 있으니까 어떻게 돼요? 쓸 수가 있는 거라. 변경됨이 없이 그대로.
그렇게 해가지고 보존들을 이때까지 해온 거라.
지금 빨리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그래서 뭘 배워야 되느냐면, 스리랑카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지금 대부분 보면 로마나로 된 걸로 빨리어를 배웁니다. 태국에서 배우는 사람도 지금 태국어로 된 것들로 빨리어를 배웁니다. 버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빠리웨나라고 해가지고 스리랑카에 있는 현지(현재)의 승려학교들은 옛날 싱할라 언어로 된 걸로 빨리어를 배웁니다. 태국에 있는 스님들 교육기관에 있는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강원, 강원에서는 옛날 란나타이로 된 걸로 가지고 배웁니다.
그 차이가 뭐냐 하면, 옛날 글자들은 음사하기 위해서 동글동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빨리어 그 자체로 발음하기가 수월합니다.
근데 지금 아무리 스리랑카 언어 그리고 태국 언어 그리고 버마 언어라 하더라도 음사하는 방식이 아니고 문자화되기 위한 글자들은 이걸 정확하게 발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빨리어를 배울려면 옛날 그 음사하기 위한 방식으로 쓴 것으로 가지고 배울 수밖에 없는 거라.
그게 인제 패엽경인데, 패엽경은 대부분 보면 스리랑카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기원후부터 써지기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물론 그전부터 있었다는 증거는 있습니다.
패엽경을 그런 식으로 만든 것이, 나중에 이게 패엽경 이후에 만들어지는 게 뭐냐면 동판이나 금판이나 돌 석판의 양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동판이든 석판이든 석판의 양식도 이 패엽경의 양식을 그대로 띠게끔 됩니다.
그래서 동판에 이렇게 쓰더라도 패엽경의 형태들 요 그대로 이렇게 표시를 해줍니다. 석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갖다가 뭐라고 하냐면 '포티 양식'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포티 양식은 지금 버마에도 기원후 1세기 때 포티 양식으로 석판에 써진 글씨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유추를 합니다.
아, 버마에도 기원 전후에 패엽경으로 글자를 썼었구나 하고 유추를 하는 것이고, 태국도 마찬가지고 캄보디아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거는 없습니다. 그게 없다는 거라. 야자잎에 쓴 것이. 왜? 그 뒤에 글자들이 만들어진 게 대부분 기원후 12세기 13세기 이때 자기들의 글자들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그때 인제 글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해가지고, 그 글자들로써 다시 패엽경을 쓰려고 할 것 같으면 뭘 기본으로 해야 되겠어요? 스리랑카에 있는 걸로 기본으로 해서 자기들이 이제 교육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패엽경으로 남아있는 것들은 전부가 13세기 이후의 것들이 남아있게 됩니다.
특수하게 그 전에 네팔 그리고 날씨가 건조하고 부패하기 쉽지 않은 그 도낭 같은 데 이런 데는 기원후 5세기 또 7세기 때 것이 가끔씩은 있는데, 대부분 보면 지금부터 한 몇백 년 되지 않는 것들이 패엽경으로 남아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 패엽의 역사도 종지부를 찍게끔 됩니다. 그게 종이가 만들어지면서 패엽경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완전히.
종이는 뭘 하기 위해서 종이가 만들어집니까? 인쇄하기 위해서 종이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종이가 들어올 때는 인쇄 기술이 같이 들어오게 됩니다. 야자가 들어왔을 때는 야자에 패엽하는 음각하는 법이 같이 들어오는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종이가 들어오니까 당연히 이제는 일부러 쓸 필요가 없습니다. 찍어내면 됩니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게 그 뒤부터는 종이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게 전부 석판 동판 그다음에 우리 목판 이런 기술들이 발달됐고, 그래서 지금 고려대장경이나 이런 것들이 그때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종이에다 그걸 찍어내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패엽은 이미 종지부를 찍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봤듯이 저렇게 그냥 장식용으로만 쓰여질 수 있는 겁니다.
그리하더라도 패엽을 한 이유가 뭡니까?
부처님 말씀은 그대로 다음 대에 전하기 위한 겁니다.
암송의 방식은 바뀌질 않게끔 되는 거라. 지금도 암송의 방식은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지 옛날같이 그 인원이 많지 않다는 것뿐입니다.
패엽경의 역사는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불교의 고유한 방식인 합송의 방식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게 이제 지금 패엽경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해를 해야 되는 것은 패엽경의 가치를 분명하게 여러분들이 알고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들입니다. 인제 패엽경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겠죠?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https://alfl6843.tistory.com/455
'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 > 테라와다 불교의범과 신행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라와다 스님들에게 필요한 네 가지 물품-거주처, 의약품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705-1 (0) | 2024.12.24 |
---|---|
불교도들의 3가지 생활 패턴. 테라와다 가사 만드는 방법, 음식 공양방법, 공양을 올릴 수 있는 품목들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628-1 (1) | 2024.12.22 |
테라와다 불교의 제사의례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607-1 (4) | 2024.12.16 |
수다원에 이르는 길, 삼보에 대한 확신이 들려면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531-1 (3) | 2024.12.14 |
「붓다의날」의 의미와 재가불자들이 특별하게 하는 일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524-1 (0) | 2024.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