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테라와다불교의 신행생활

테라와다 이야기 14- 패엽경

담마마-마까 2017. 2. 16. 21:43

 

 

삼장법사 빤냐와로 스님의 “테라와다 이야기” 22- 패엽경
“BC 1세기 스리랑카 제4차결집 때 패다라잎 필사가 최초의 경전”

 

 

14. 패엽경

 

야자의 잎에 새긴 사본은 세계 문화사에서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과 동등한 중요성을 지니는 유산입니다. 이런 패엽 필사본들은 고대 인도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이 패엽본들은 시대·지역에 따라서는 가장 중요한 문서 유산이 되었습니다. 그 야자의 잎에 부처님 말씀을 필사한 것을 통상적으로 패다라엽경(貝多羅葉經), 줄여서 패엽경이라고 부릅니다.

 

1) 야자의 잎

 

야자는 주로 열대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인데 전 세계에서 3000종 이상에 이르는데, 일반적으로 종려나무 야자나 코코넛 야자 등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중에서 글씨를 쓰는 패엽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잎의 구조나 형태로부터 10여종 정도가 실제로 사용되어 왔는데 인도와 동남아시아, 남부아시아 등에서 사용된 대표적 야자는 2종류입니다.

 

·팔미라 야자(학명:Borassus flabellifer)
·공작야자(학명:Corypha umbraculifera)

 

팔미라 야자는 열대 아프리카 원산의 높이 30m 이상이나 되는 야자로 식품 재료(전분, 설탕, 발효주의 재료), 목재, 선박 재조목, 생활 공예품(모자, 그물, 깔개)등으로 용도가 넓어 중요한 산업 식물의 하나입니다. 인도에서는 히말라야 산맥의 최북부 및 북서부를 제외하고 넓은 지대에 분포하고, 스리랑카, 네팔, 동남아시아 일대(필리핀 및 북부 베트남 제외), 중국 남부에도 생육하는 야자종입니다.

 

공작야자는 남부아시아(인도 남부, 스리랑카)가 원산입니다. 지붕을 덮는데 사용되는 것 외는 용도가 적지만, 패엽본의 재료로서 그 잎은 유연성, 내구성이 뛰어나고 품질이 좋습니다. 또 잎이 크기 때문에 면적이 넓은 패엽의 재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공작야자(Corypha utan), 니파야자(Nypa fruticans), 설탕 야자(Arnga pinnata), 코코넛 야자(Cocos nucifera), 대추 야자(Phoenix dactylifera) 등의 잎이 패엽본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2) 패엽경의 제조법

 

① 패엽 손질방법

 

종려나무나 야자의 잎은 부채가 접혀진 상태처럼 어린잎이 나옵니다. 발아로부터 4~5주 정도 성장한 잎을 잘라내어 잎을 펼쳐서 며칠간 음지에서 말립니다. 다시 접어서 며칠 말리고, 펴서 며칠 말리고를 1개월 정도 반복합니다.

 

그 후 밑 둥을 떼어버려서 잎이 한 장씩 분리되도록 하여 잎 중앙을 가로지르는 주맥을 제거합니다. 다음 과정으로 쌀에 물과 유유를 섞어 간 뜨물과 같은 물에 담가 끓이고 삶아 쪄낸 후 젖은 모래나 습기 찬 건초더미 속에 묻는 방법을 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면 잎이 홀쭉해지는데 그것을 건조시킵니다.

 

건조가 된 야자의 잎을 직사각형으로 자릅니다. 크기는 정해진 규격은 없지만, 남아있는 패엽경의 경우 넓이와 길이가 6.3cm×54cm, 5.6cm×61.2cm, 5cm×45cm 등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잘라놓은 여러 장을 모아 양쪽 밖에 나무판을 놓고 눌러둡니다. 이렇게 만든 뭉치들을 화덕 속에 넣어 연기로 훈증을 합니다. 이것은 곰팡이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잘 마른 잎을 한 장씩 돌이나 모래, 조개 등으로 닦아서 표면을 매끄럽게 한 다음 마지막으로 옷감으로 닦습니다. 돌이나 조개 등으로 닦는 것은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광택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으로 패엽을 고정하기 위해 구멍을 뚫습니다. 양쪽에서 3등분하여 2군데에 뚫기도 하고, 중앙에 1군데 구멍을 뚫기도 하는데 이 구멍에 꼰 실을 통과시켜서 묶습니다. 이렇게 사경할 패엽을 준비하면 됩니다.

 

패엽은 양피지나 종이에 비하면 비교적 간단하고 재료를 구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② 사경 방법

 

야자의 잎에 사경하는 방법은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펜이나 붓 등을 도구로 하여 잉크로 쓰는 방법
두 번째는 철제 등의 첨필로 음각하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의 방법은 어린 대나무를 그을려 글을 쓰거나, 갈대 끝을 이용해 정제된 기름이나 돌가루 등을 안료로 하여 글을 썼다고 합니다.

 

두 번째의 방법은 음각만 하는 것과 음각 후에 그을음 등의 안료를 문질러 바르는 방법으로 나누어집니다. 팔미라 야자의 경우, 음각하면 산화 효소에 의해 음각한 부분이 조금 거무스름해지기에 그대로도 어느 정도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글자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음각한 곳에 그을음이나 숯가루 등을 입히거나 숯가루와 기름을 혼합하여 표면을 도포한 후, 잎을 잘 닦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즉 음각한 자리에 안료가 스며들도록 하여 글자가 또렷하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글자는 첨필이라고 하는 송곳으로 새기게 되는데, 첨필의 손잡이 부분에는 칼날이 달려있기도 한데 이는 음각할 때에 균형감을 유지해주고 첨필을 아름답게 장식해줍니다.

 

필사할 때는 어떤 방법이든 먼저 먹줄을 치는 일을 먼저 합니다. 잎에 보통 5줄~6줄의 가로선을 먹을 퉁겨 긋습니다.

 

음각할 때는 오른손에 잡은 철필과 왼손 엄지손가락과의 공조작업으로 야자 잎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조심스럽게 새겨 가야 합니다.

 

그런데 2종류의 사경 방법이 야자의 잎과 관계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야자의 잎들은 성질상의 차이가 있기에 펜글씨 쓰기법이 유리한 경우가 있고, 음각법이 유리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공작야자 잎은 펜을 이용하여 글자를 써도 잉크를 흡수하지만, 팔미라야자 잎은 철필로 음각해야 잉크를 흡수합니다. 그래서 공작야자가 많은 북쪽 인도에서는 펜글씨 쓰기가 주류이고, 팔미라야자가 많은 남인도와 동인도는 음각이 주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잉크를 흡수하는 부분은 야자 잎의 제조방법과 제조 후의 충분한 시간 등으로 해소되는 것이기에 야자의 종류에 따라 사경법을 일괄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네팔에서는 공작야자 잎과 함께 팔미라야자 잎도 사용했지만, 그곳에서는 쌍방의 야자 잎에 펜글씨 쓰기법으로 패엽경을 만들었습니다.

 

한편 스리랑카, 버마, 태국 등에서도 쌍방의 잎을 사용했지만, 그곳에서는 음각법을 채택했습니다. 즉 사경방법이 야자의 잎 종류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지는 않습니다.

 

패엽경의 형태는 야자의 잎 앞면에 사경한 다음 그 장을 뒤집어엎어서 뒷면에도 사경합니다. 이렇게 앞뒤로 사경한 장들을 모아 경전이 완성되면 앞뒤에 나무판이나 대나무판을 대어 야자의 잎과 얇은 판에 난 구멍에 끈을 넣어서 묶으면, 그것에 의해 패엽경의 순서와 패엽경의 형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간혹 그 장의 좌측 모서리에 숫자로 번호를 쓰기도 합니다. 숫자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ka, kha, ga.... ha, kā, khā, .... hā, ki, khi .... 등으로 빨리어의 자음과 모음을 교차시키면서 쓰는 방법 등이 행하여집니다. 이 형태를 인도에서는 포티(pothi) 양식으로 불립니다.

 

보통은 야자 잎의 양면에 사경하지만, 한쪽면만 사경하기도 합니다.

 

이런 패엽경의 포티 양식은 다른 필사본인 동판이나 나무, 종이에도 답습되었습니다. 이것은 야자 잎 필사본의 전통성과 권위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야자 잎의 필사본 형태는 포티 양식이 일반적이지만, 그 외에 리본을 감는 양식, 직사각형의 잎을 작게 접는 양식, 여러 개의 잎의 긴 변을 실로 연결하는 양식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야자 잎의 필사본이라고 하면 첨필로 음각하는 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2가지의 사경 방법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지역적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야자 잎에 필사하는 방법은 문자의 형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펜글씨 쓰기법에서는 직선도 곡선도 쓰기 쉽지만, 잎의 표면을 첨필로 새기는 방법에서는 직선은 야자 잎 섬유를 부수기 쉽고 글자가 교차하는 경우는 새기기 힘듭니다. 자연스럽게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이용한 글씨체형으로 음각하게 됩니다. 음각법을 채용한 스리랑카의 싱할리 문자, 버마의 버마 문자, 태국의 시암 문자, 라오스 문자, 캄보디아 문자 등이 곡선형의 둥근 글씨체입니다. 이러한 지역에는 남인도 혹은 스리랑카로부터 불교와 함께 문자도 전파 했을 것이기에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3) 패엽경의 역사

 

아시아에서 야자 잎의 필사본은 인도가 근원으로 여겨지지만, 현존하는 야자 잎의 필사본으로 최고로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된 AD 2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는 필사본 조각입니다. 그 뒤를 이어 AD 4~5세기의 필사본이 네팔에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오래된 패엽본이 존재하는 이유는 종교 행사 등에 사용되기에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보호한 점, 야자 잎 중 품질과 내구성이 좋은 소재를 사용한 점, 비교적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가 필사본의 장기 보존에 용이했던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열대와 아열대 기후 탓인지 인도에서는 AD 11세기 이전의 야자 잎 필사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AD 1세기의 동판 필사본에 포티 양식을 볼 수 있어서 그 이전에 야자 잎의 필사본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또한 BC 1세기 스리랑카에서 제 4차 결집을 하며 야자 잎에 경을 필사한 기록이 있기에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면 야자 잎에 필사하는 것은 기원전부터 인도 대륙에 존재하고 있어서 남쪽 스리랑카에 야자 잎으로 필사하는 방법이 전해졌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필사하는 것은 합송에 의해 전해져 온 빨리어를 BC 1세기 스리랑카에서 제 4차 결집을 하며 야자나무 잎, 즉 패다라잎에 필사한 것이 불교 사상에 있어서 최초의 경전 필사 작업입니다.

 

패엽경의 재료인 공작야자와 팔미라야자의 차이는 잎의 두께와 유연성, 그리고 세로에 굵은 줄기의 존재여부일 것입니다.

 

팔미라야자의 잎은 0.6~0.7mm이고 공작야자는 0.3mm~0.4mm이기에 팔미라야자가 약간 두껍습니다.

 

또 유연성에서도 두께가 얇은 공작야자가 훨씬 뛰어납니다.

 

또한 공작야자는 잎의 양쪽 끝에 세로로 평행하게 약간 굵은 줄기가 분명히 있어서 잘 텄어지지 않지만 팔미라야자에는 없어서 견고성에서도 공작야자가 뛰어납니다.

 

그래서 2종류의 야자 잎 사용에서는 16~17세기까지는 공작야자가 월등하게 많습니다.

 

중요한 사건의 기록이나 보관해야 할 사본 등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표면이 매끄러운 공작야자의 잎에 사경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팔미라야자 잎은 사경하기는 쉽지만 잎이 매우 단단하여 취급하기 어렵고 꺾어 접히면 잘 부러지고 잎의 양옆에 지지대 역할을 하는 줄기가 없어서 잘 터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잔존하는 오래된 야자 잎의 필사본 대부분이 공작야자의 잎입니다.

 

불교에서는 「야자 잎의 필사본=불전」의 인상이 강합니다. 확실히 야자의 잎은 불전 필사에 이용되어 권위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야자 잎의 용도는 불전으로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천문학, 수학, 의학, 음악, 문학, 문법, 역사, 점성술등의 필사에 야자의 잎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야자의 잎은 다른 종류의 필사본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야자 잎의 필사본은 불교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유산으로서의 역사적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인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여자의 잎을 이용한 필사본이 광범위하게 이용되었습니다.

 

우선 인도 대륙 남쪽에 있는 스리랑카는 야자 잎의 필사본의 전파는 다른 지역보다 빠릅니다. 스리랑카의 불교 전래는 BC 3세기이기에 이때 야자 잎의 필사방법이 전해졌고, BC 1세기에 제4차 결집을 통해 경전이 야자의 잎에 필사되기에 이릅니다.

 

스리랑카 역사서에 【옛날에는 크게 지혜 있는 비구들이 있어서 구전으로 합송하여 삼장을 전하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교법으로부터 멀어져 있어서, 이를 안타깝게 여겨서 비구들을 모아 삼장과 주석서를 빨리어와 싱할라어로 사경하여 써서 교법을 영원히 존속시키고자 한다.】고 기록하고 있어 야자 잎에 필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리랑카는 현재도 야자의 잎 필사본이 풍부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맥의 네팔에도 야자의 잎 필사방법이 전해졌습니다. 다만 네팔에서는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빨리 제지 기술이 도입되어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패엽의 재료가 되는 야자가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도로부터 야자의 잎을 수입하여 필사했고, 지금도 다수의 필사본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한편 동남아시아는 기원전부터 인도 문명의 영향을 깊게 받아온 지역입니다. 인도로부터 사람들의 이주, 교역, 문화 교류 등이 큰 자리 매김을 가졌습니다. 필사본으로서의 야자의 잎도 인도화의 일환으로 이식되어 필사되었습니다. 인도화중에서도 종교 특히 불교의 전파와 각 지역에서의 문자의 탄생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교의 포교 혹은 전파에 경전이 불가결하며, 경전은 문자와 패엽본을 필요로 합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되어 온 문자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북부 베트남을 제외하면 모든 문자가 동글동글하여 필사하기 쉬운 인도계 문자입니다.

 

버마의 불교 전파는 빠릅니다. 인도 고대사에도 「남쪽 버마에는 몬족이라는 오래된 왕국이 있으며, 서기 1세기에 테라와다 불교가 그 지방에 정착되었다」 「북쪽 버마에는 서기 3세기에 대승 불교가 전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버마에서 발견된 포티 양식의 황금판에 빨리어로 필사한 것이 있는데 이 금판은 서기 1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미 이 무렵 야자 잎의 필사본이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의 역사에서는 11세기에 스리랑카에서 버마 남쪽의 몬족국에 테라와다 불교가  도입되어 몬 문자, 버마문자가 성립되어 야자 잎으로 음각한 패엽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동남아시아 대륙부는 역사적으로 보면 상호 연결이 현저합니다.

 

태국에 불교가 처음 시작된 때는 기원전 3세기경이지만, 수코타이 왕국의 람캄행 왕은 13세기말 스리랑카로부터 테라와다 불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제정하였습니다. 불교의 보급과 함께 문자의 사용으로 야자 잎의 필사본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캄보디아에서도 기원전부터의 불교 전래기록이 보이지만, 본격적인 대승불교의 전래는 6세기 이후입니다. 불교 유적으로서 알려진 앙코르 톰의 건설은 9세기, 앙코르 와트의 건설은 12세기입니다. 테라와다불교의 수용은 태국을 경유한 13세기 후반으로 여겨지는 데, 그 당시 캄보디아를 방문한 중국인 사절단의 기록에 「독송하는 사원에는 경전이 매우 많다. 패엽을 이용하여 경전을 만든다. 붓과 묵을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즉 경전을 야자의 잎에 음각하여 새기는 필사문화가 불교와 함께 전래되어 보급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라오스의 불교전래는 캄보디아를 경유하여 14세기 후반에 테라와다 불교를 수용했습니다. 이들 세 지역은 지금도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기에 12~14세기에 이미 이 지역에서 패엽경이 활발하게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동남아시아 대륙부에서는 불교의 수용과 함께 야자 잎에 경전을 필사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에서는 현재 수많은 사원과 도서관, 박물관 등에 14~15세기 이후의 불교경전, 역사, 법률, 관습·풍속, 점성술, 전통 의료법, 문학 등의 야자 잎 필사본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들 패엽필사본들이 근대 이전의 역사 문서의 주축을 이룹니다.

 

크고 작은 섬들이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자와섬의 보로부두르 유적이나 프람바난 사원이 인도의 영향을 받아 건축한 불교유적입니다. 발리는 현재도 힌두교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대적으로는 수마트라에 인도인들이 지배층이 되어 스리윗자야 왕국을 세운 것이 7세기이고, 거기서 대승불교를 수용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자와에 슈레인드라 왕국이 일어난 것이 8 세기 중순으로 그곳에서도 대승불교를 신봉하였습니다. 또한 보로부두르 사원의 건립이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중반에 건축됩니다. 대체로 이러한 시대에 야자 잎의 필사본이 전해져서 새로운 패엽경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지역의 문자는 브라흐미 문자계에서 파생된 싱할리 문자(스리랑카), 버마 문자(버마), 시암 문자(태국), 깜보쟈 문자(캄보디아), 카비 문자(인도네시아 자와)가 만들어져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의 야자 잎 필사본 문화로 전파되어 정착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티벳에도 특히 불교 연구상 중요한 야자 잎의 필사본이 다수 보존되고 있습니다. 티벳은 패엽의 재료가 되는 야자는 자라지 않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 7세기에 종이와 먹을 도입하게 되지만, 인도 불교의 영향으로 문자도 인도계 문자이고 야자 잎을 수입하여 필사본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는 티벳 왕국의 아래에 있던 돈황석굴(770~848)에서 발굴된 필사본이 야자의 잎에 펜글씨 쓰기로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사경한 것이 지금도 존재함으로 증명됩니다. 이 외에도 펜글씨 쓰기방식으로 필사된 티벳어, 산스크리트어 경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도에서 기원전에 시작된 야자 잎의 필사본 문화는 인도뿐만 아니라 종교, 문자의 전파와 동반하여 주변지역에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중국 위구르 자치구, 티벳, 스리랑카, 버마,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말레이지아, 싱가폴, 베트남 남부, 인도네시아 등에서 다량의 야자 잎 필사본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남겨진 패엽 필사본의 엄청난 양에 의해 야자 잎의 필사본은 지극히 풍부한 문서 유산을 형성하여 세계 문화사적으로 귀중한 역사 유산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작하는 량도 적고, 경전, 부적, 종교의 상징성 등의 용도를 제외하면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역할은 종료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인쇄 기술이 2000년 이상 계속되어온 야자 잎의 필사문화를 이 무대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필사하는 시대에서 인쇄하는 시대로의 이행이 야자 잎의 필사본 제작에 마지막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시대의 변천, 전쟁, 재해, 기상 조건, 소재의 취약성, 사람들의 무관심 등에 의해 소실되고 흩어지고 없어지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패엽에 필사하는 이런 귀중한 문화유산을 전승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