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nNJI8-48Xd0?si=p_CnvRAUYWvmiOUV
<테라와다 스님들에게 필요한 네 가지 물품 - 가사, 음식>
출가한 스님들도 출가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고, 재가자들도 재가자로서의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또한 출가자와 재가자가 어떤 관계로써 맺어져 있는가 하는 것들을 모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죠.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런 부분들이 한국에는 좀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지금 남은 5번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좀 익혀야 될 것 같아서 그걸 중심으로 잡았습니다.
불교의 출가자든 재가자든 기본적으로 생활은 3개의 패턴으로 이루어집니다.
안거라고 들어봤어요? 우안거. 몇 개월이죠? (수행자: 3개월) 3개월, 어떤 경우에는 4개월 하는 스님도 있습니다. 안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전안거, 후안거가 있는데, 음력 6월 보름에 들어가서 9월 보름에 마치는 경우, 그럼 3개월이 되죠. 근데 후안거는 7월 보름에 들어가서 10월 보름에 마치는 겁니다. 그래서 한 달 뒤에, 6월 보름에 들어갈 수 없는 여러 가지 사정들 때문에 안거를 못 했을 경우 그다음 달 7월 보름에 시작이 되죠. 그 대신에 7월 보름에 시작이 되면 3개월 해야 되니까 10월 보름에 마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9월 보름에 마치는데. 그래서 안거를 좀 많이 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6월 보름 전안거에 들어가서 후안거 끝나는 10월 보름까지 하니까 4개월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4개월 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안거가 끝나고 나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뭐가 있죠? 까티나가 있죠. 까티나는 언제 하죠? 음력 9월 보름 다음날 9월 16일부터 해서 10월 보름 사이 한 달간, 그때 스님들에게 가사를 올리는 기간입니다. 그때 까티나 가사를 올려지는 거죠. 한 달 이내에 어느 날을 잡아서.
만약에 예를 들어서 후안거를 들어간 스님이다. 그러면 안거가 끝나야 그걸 받을 수 있는데, 자기는 안거가 끝나기 전에 까티나 가사 기간이 안거 끝남과 동시에 종료가 돼버리죠. 그러니까 후안거 들어간 분들은 까티나 가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안 돼버리게 되는 거라.
그래서 통상적으로는 전안거인 6월 보름에 안거에 들어가는 것이 기본적인 패턴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가사는 1년에 딱 그 한 달밖에 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기간을 넘기고 나면 받을 수가 없거든.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게 그 우안거 기간이 불교의 하나의 생활 패턴입니다.
출가한 스님뿐 아니라 재가자들도 안거 때는 다른 때하고는 조금 틀리죠. 뭐가 틀립니까? 조금 더 수행을 많이 하게 되고, 그리고 매번 포살일을 지키려고 합니다. 불재일이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불재일을 지키려고 하고, 또 되도록이면 5계 아니면 8계들을 지키려고 하고, 그리고 조금 더 공덕을 많이 쌓으려고 하고, 불교를 조금 더 많이 배울려고 합니다. 스님을 통해서든 아니면 뭐 어떤 방식으로 하든. 그런 것들이 이제 안거 때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스님들도 마찬가지인 거고.
하나의 기간은 그럼 여러분들이 알았습니다. 우안거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다음에 또 어떤 기간이 있을까? 1년은 12달인데, 3개월 아니면 4개월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간은 세 종류가 있다고 했으니까, 나머지 두 종류가 있겠죠. 그렇죠?
하나의 종류가 뭐냐면, 안거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하는 것이,
짜릿따(caritta)라고 하는 기간을 반드시 지키게끔 되어 있습니다. 유행기간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도 안거 끝나고 나면 걸망 싸짊어지고 만행 떠나죠. 그게 짜릿따 입니다.
근데 불교에서의 만행과 다른 종교에서의 만행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날까? 만행에는, 그래서 만행이라고 안 하고 보통 그걸 유행이라고 그럽니다. 반드시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뭐냐면 법을 들을 수 없는 지역에 있는 곳에 가서 법을 전하는 것 그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내가 일상적으로 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으니까 그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반드시 참회하는 의식을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겁니다. 쉽게 말하면 각각의 개개인은 청정함을 유지할려고 하고 또 이 법이 좋은 만큼 이 법이 오래도록 변함없이 계속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것 하고, 포교라는 뜻이죠. 그 두 가지가 이 짜릿따 기간에 하게 됩니다.
짜릿따 기간은 정해져 있질 않습니다. 통상적으로는 보면 15일 이상을 반드시 하게끔 됩니다. 왜 그러냐면 짜릿따 기간에 참회 기간은 만약에 예를 들어서 내가 남한테 심하게 아픈 말을 해서 아픔을 좀 많이 줬다, 그럴 것 같으면 그건 중죄에 해당이 되거든. 그럴 것 같으면 그걸 참회하는 기간은 보통 그 기간이 언제냐면 일주일이라고 그럽니다. 일주일인데 일주일을 하고 또 별중 생활도 일주일 하고 해야 되니까, 결국 결과적으로는 보름이라는 뜻이 됩니다. 보름 기간은 기본적인 기간이 됩니다. 아무리 짧게 해도 보름 간은 유행 기간을 갖다가 가지게끔 돼 있고 길게는 자기가 더 하고 싶다 그러면 더 많이 하면 됩니다.
또는 안거 기간 동안에 있으니깐 “스님, 이번에 우리 지역에서는 스님들이 안거도 안 하고 해갖고 우리는 부처님 법을 들을 기회도 없었고 수행도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안거 끝나고 나면 우리한테 와서 좀 법을 설해주십시요” 이럴 것 같으면, 그런 청이 있으면 그것도 가야 됩니다. 적어도 보름에서 두 달간이 이 유행 기간에 해당이 됩니다.
부처님 당시 때는 제자들이 이 유행 기간에 법을 설하며 또는 자기 참회를 하면서 부처님한테 와서 “부처님 이번에 나 안거는 어디서 지냈습니다.” 하고 보고하는 그런 기간이 되는 겁니다.
그게 인제 두 번째의 불교도들의 생활 패턴입니다.
재가자들 같은 경우는 그렇게 오래도록 가 있지를 못합니다. 그 대신에 재가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뭐냐면, 오래도록 가 있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일들을 해야 됩니다. 안거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한 것들을 갖다가 이제는 도반들하고 자꾸 나누려고 해야 되는 거라. 이 법의 소중함들을 자꾸 나누려고 하고, 그래서 말하는 패턴이 그냥 일상적인 말하는 패턴에서 법을 가지고 말하는 패턴으로 자꾸 이렇게 바꾸어주려고 그 습관 들이는 것이 이 짜릿따 기간에 해당이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집중 수행을 들어가는 기간, 그리고 자기 스스로 지나온 생활들 그리고 여러 가지 수행 부분에 대한 것들 잘잘못들을 반성하고 그것을 바로 시정하는 기간들로 잡는 것, 그래서 안거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그 기간들을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스스로 점검해서 그걸 잡아 나가는 기간으로 잡아야 됩니다.
두 기간을 얘기를 했고, 또 하나는 그럼 뭐가 있을까?
일상적인 생활입니다. 정주하면서 머물면서 하는 생활들, 쉽게 말하면 사원에 거주하면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생활들, 여러분들 같은 경우에는 집에 머물면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생활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5주 동안은 이 기간에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여러분들의 얘기를 할 겁니다.
오늘은 일상생활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아까 가사는 올릴 수 있는 기간이 있다고 그랬죠? 스님이 지금 가사 몇 가지를 입고 있습니까? 지금 현재? (수행자: 세 가지) 두 가지죠. 아랫가사, 요게 아랫가사죠. 요것도 조각이 돼 있죠? 보입니까? 요래 조각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가사, 위에 가사도 이렇게 조각으로 돼 있죠? 그렇죠? 그리고 요 지금 하나 있는 것, 요것까지 이제 3개죠.
스님들은 반드시 이 세 가지 가사(三衣)를 항상 지니고 다니게끔 그렇게 돼있습니다.
이 3가지 가사는 아까 가사를 줄 수 있는 기간이 있다고 그랬죠? 까티나 기간 내에만 가능합니다.
그럼 만약에 스님이 목욕을 할 경우에는 이 가사를 입고 할까, 안 입고 할까? 홀라당 벗고 할까? 누가 안 봐도 스님들은 홀라당 벗을 수가 없습니다. 밑에 아랫가사는 반드시 착용을 하게끔 돼있습니다. 근데 스님들은 가사를 자기가 소유할 수 있는 가사는 한 벌밖에 없어. 아랫가사도 하나, 윗가사도 하나, 그다음에 이 겹가사도 하나밖에 없어.
겹가사는 겹가사의 용도가 있고, 윗가사는 윗가사의 용도가 있고, 아랫가사는 아랫가사의 용도가 있습니다. 아랫가사를 위에 입을 순 없잖아.
그럼 목욕할 때는 쉽게 말하면 중요 부위는 가려야 되니까, 아랫가사만 입고 목욕을 할 거 아니라. 그럼 이거 물에 젖어버리고 나면 뭘 입을까? 그러면.
그래서 목욕할 때는 필요한 가사가 또 따로 있어야 되겠죠? 그걸 갖다가 우의라고 그럽니다. 또는 비 오고 할 때 이 옷을 입고 나갈 것 같으면 비 홀라당 다 젖어버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옷 말고 다른 비옷용으로써 가사를 입게끔 돼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가사는 항상 목욕을 할 때든 아니면 잠을 잘 때든 아니면 외출을 할 때든 아니면 이런 법문을 하는 자리든 어떤 경우든지 반드시 지참하고 입게끔 돼 있는 거라.
근데 가사를 떠나버릴 것 같으면 그거는 승려가 아니게끔 되는 거라.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이 뭡니까? 가사와 머리카락입니다. 요즘은 재가자들도 머리 짧게 깎은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출가한 스님들은 반드시 머리를 보름에 한 번씩은 깎도록 돼 있단 말이라. 그리고 항상 어느 때 언제라도 가사는 입게끔 돼 있습니다. 1벌을 입든 2벌을 입든 어쨌든 간에 규정에 따라서. 그렇기 때문에 가사를 벗어버린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출가자가 아니라고 규정이 돼 버리게 되는 거라.
그게 이 가사라고 하는 거라.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가사를 줄 수 있는 것은, 조금 전에 같이 우기 때나 아니면 목욕할 때 입을 수 있는 그런 거는 언제든지 줄 수가 있고, 또 누가 돌아가셨다 할 거 같으면 그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가사를 갖다가 놔놓고 그걸 갖다 스님들이 가져갈 수 있게끔 하는 분소의 가사 이런 것들은 가능하지만,
평상시 스님들이 입는 이것(삼의)은 그 기간 때만 가능하다는 거라.
그래서 평상시에 입는 이 가사를 만드는 방식하고, 목욕하고 또 분소의로써 만들어진 가사하고는 만드는 방식 자체가 틀릴 수밖에 없다는 거라.
한국에 테라와다를 따르는 비구니 스님들이 있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는 비구니가 없죠. 이미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12세기 때. 그렇기 때문에 비구니 계단은 지금 현재는 없는 셈입니다. 복원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테라와다를 따르고 있는 비구니, 대승 비구니지만 그분들도 이 가사를 입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테라와다에는 비구니가 없으니 가사를 입을 수가 없어. 그럼 대체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테라와다 방식대로 살고 싶어 그걸 따르고 싶은데. 어떤 방식이 있을까?
가사에 조의가 있는 것들은, 삼의는 반드시 조의를 만들어서 입게끔 돼 있는데, 특별한 경우에는 조의가 없어도 입을 수가 있게끔 돼 있습니다.
삼의 중에서 하나만 조의가 만들어지고 나머지 두 개는 조의가 안 만들어진 걸 갖다 입어도 관계가 없습니다. 또는 두 가지가 조의는 있고, 그러니까 웃가사 하고 이 중의-겹가사하고는 조의가 있고, 아랫가사는 조의가 없어도 됩니다. 그렇게 규정이 돼 있단 말이라.
그러면 테라와다 계율에서 어긋나지 않고 테라와다를 따르는 비구니 스님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려고 할 것 같으면 방편을 쓸 수 있는 것이, 조의 없이 가사를 해서 입을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 아랫가사든 웃가사든 그 방식에 맞게끔 해주는 것, 이 방식을 쓰면 크게 무리하지 않고 한국에서도 테라와다 방식을 그대로 전수를 해가면서 그 스님들에 대한 예우들을 다하는 경우가 되게끔 됩니다. 어쨌든 이게 인제 기본적인 건데,
가사 같은 경우에는 입는 방식도 다 틀릴 뿐 아니라 입어야 되는 행사에 따라서 입는 가지 수도 각각 다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절에 있을 때는 아랫가사만 입고 있어도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태국이나 버마 이런데 가면 절 안에서 보면 스님들이 위에 쪼가리 같은 거 하나 입고 밑에 가사만 입고 이렇게 다니는 경우들을 가끔씩 볼 겁니다.
그런데 절 밖으로 딱 나올 경우에는 그렇게 해가지고 다닐 수는 없죠. 어떻게 해야 돼요?
아랫가사에다가 윗가사를 반드시 입게끔 돼 있습니다. 그것도 윗가사를 그냥 입는 것이 아니고, 어깨·양 팔·양 무릎을 다 감싸는 형식으로 옷을 입고 나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내가 만약에 사원에서 벗어나는 거리가 30km를 넘어서 버리는 경우가 될 경우에는 반드시 이것까지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30km를 넘어서 버리면 옛날에는 30km 일 거 같으면 걸어다니는 시절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거리가 됩니다. 그럼 하룻밤을 지내야 되는 거라. 그렇게 되면 하룻밤을 지내는 형태가 될 경우에는 반드시 이 겹가사를 가지고 가게 됩니다. 지금도 절 부근이나 아니면 가까운 데 갈 때는 이걸 안 가지고 갑니다. 근데 그 절에서 멀리 벗어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걸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삼의를 반드시 갖추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장소와 어떤 것들에 따라서 스님들이 옷을 입는 방식이 다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가사를 만들 때도 누가 만들어 줍니까? 스님들이 가사를 직접 만듭니까?
가사는 누가 공양 올립니까? (수행자: 재가자들이) 재가자들이 올립니다. 그럼 그 재가자들이 가사 만드는 방식을 모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가사를 어떻게 해줄 거라? 뭐 그냥 가게 가서 하나 사가지고 올려주면 돼? 올려주더라도 그 올리는 기간에 맞게끔 된 가사를 가지고 와서 줘야 될 거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그 스님이 입을 수가 없거든.
그래서 가사는 반드시 재가자들이 만드는 방식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야 됩니다.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가사에는 반드시 아래쪽(아랫가사)에는 이런 고리가 있습니다. 이런 고리가 있죠. 고리와 단추가 있습니다.
그런데 위쪽(윗가사)에는 양쪽 끝에 그런 고리가 없습니다. 없죠? 끝에. 그 대신에 위쪽에는 뭐가 있습니까? 이렇게 표시를 해둡니다. 그래서 어느 가사를 만들더라도 가사의 위쪽 맨 중앙에는 이런 표가 하나씩 돼 있습니다.
이게 인제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다른 이교도의 침입이 있고 할 때 가사를 가지고 다니고 도망칠 여유가 없을 경우에는 요것만 떼가지고 갑니다. 그럼 가사를 지닌 형태가 돼. 그래서 다른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이걸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승려다" 하고 하는 증명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위에는 반드시 이걸 갖다 붙이게끔 돼 있고, 아래에는 아까와 같이 양쪽으로 고리를 반드시 만들어야 된다. 알겠죠 이거는. 양쪽으로.
그래서 고리(loops)가 있는 게 아래쪽(아랫가사)이고, 위에 이 스티커(tags) 같은 것들이 있는 것이 위쪽(윗가사)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보면 가사들은 이렇게 조의가 있습니다. 크게 보면 짧은 거 하나, 하나 밑에 긴 게 하나 있습니다. 긴 천. (수행자: 123페이지의 그림이 나오네요.) 예. 그래서 반드시 긴 천 하나 짧은 천 하나 요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요쪽이 짧은 천이면 요쪽 옆에 대는 거는, 요게 긴 천이 되고 저 밑에가 짧은 천이 되고, 요게 인제 쉽게 말해 지그재그식으로 반복되게끔 돼 있습니다.
그런 데다가, 긴 천 짧은 천 이걸 갖다가 일장일단이라고 합니다. 일장일단 사이에는 이 작은 천이 반드시 들어가게끔 돼있다. 그리고 일장일단이 계속 반복되는 사이에도 긴 천이 하나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요 천, 그래서 일장일단 하고 긴 천을 한 조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 조가 몇 조가 있느냐에 따라서 1조. 2조. 3조. 4조. 5조.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7개 있을 때는 7조라고 그러고, 9개 있을 때는 9조라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사에는 5조. 7조. 9조.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게 인제 가사 형식인데,
만드는 거는 반드시 위에 있는 부분 일장일단을 먼저 만들고, 그걸 옆으로 붙여서 또 일장일단을 뒤집어서 붙이고, 가운데가 먼저 들어가지고 양쪽으로 만들어지고, 그다음에 또 양쪽으로 만들어지고, 이런 식으로 계속적으로 반복해 나가게 돼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을 갖다가 뺑 두르게 되어지면 가사가 되는 형태가 됩니다.
이게 기본적으로 가사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천이 긴 것이 많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의 같은 경우에는 긴 것들만 계속 연결하고 짧은 것만 하나만 연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인제 스님들이 추울 때 덮쳐 입는 것들을 할 때는 그렇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진 건데,
보통의 규격은 가로 세로가 10:6, 길이가 6이면 가로는 10이 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10:6의 규격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스님들이 이걸 갖다가 돌돌돌돌 말 수가 있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6 이걸 갖다가 길이라고 그럽니다. 키 큰 분도 있고 키 작은 분도 있단 말이라. 그래서 이걸 길이를 갖다가 보통 190. 200. 210. 220. 이런 식으로 나눠놓게끔 됩니다. 그래서 보통 윗가사는 190부터 해가지고 220까지, 그럼 200이면 폭은 얼마나 되겠어요? 300이 되는 거죠. 300이고 요거는 200이 되고, 그렇게 되도록 합니다.
그 대신에 아랫가사는 그것의 딱 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크기가. 그래서 100cm부터 120cm까지, 아랫가사는 윗가사의 반의 길이와 폭으로써 만들어지게끔 돼있습니다.
그게 인제 가사라고 하는 겁니다.
이 규정을 지켜서 반드시 만들도록 해야 되고, 규정에 맞게끔 가사를 입도록 해야 됩니다.
그런데 가사는 왜 입습니까? 옷을 왜 입어요?
그렇지. 추위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또 벌레가 침투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또? 신분하고는 관계없습니다. 남들이 봤을 때 좀 부끄러운 부분들을 가리기 위해서 입고,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보통 몸은 안락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안락하게 되면 뭘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까?
수행하기 위해서! 그 목적으로 가사를 입는 거기 때문에 가사의 질이 좋은 것 나쁜 것 구분 안 합니다. 그리고 가사가 색깔이 어떤 것도 구분을 안 합니다.
그 대신에 색깔은 원색은 반드시 피해야 됩니다. 혼합되지 않는 원색, 빨간색 요런 거, 그다음에 노란색 파란색 까만색 하얀색, 이런 원색은 안 됩니다. 반드시 혼합된 색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갈색 아니면 빛깔 잃은 주황색 이런 식으로 혼합된 색을 반드시 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게 인제 가사의 색이고, 가사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한번 가사를 언젠가는 한번 만들어 봐야 됩니다.
만들어 봐야만이 그 가사의 소중함을 압니다. 특히 이제 테라와다 불교 같은 경우에는 가사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냐면 가사를 내가 재가자가 이렇게 지니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럴 것 같으면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질 않습니다. 출가할 때 보면 부모님이 이 가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출가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 부모님한테 삼배를 합니다. 그런데 이 가사를 인제 출가하려고 하는 사람한테 인제 주게 되거든. 그럼 아직 계를 받지 않아도 이 부모님이 자기 아들한테 삼배를 해요. 그마만큼 가사의 소중함을 아는 거라. 왜 그럴까?
왜 가사가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게 될까?
가사는 출가한 상가를 대신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
가끔씩 그런 얘기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강의하고 법문하는 거는 오히려 재가자들 재가법사나 아니면 교수들이 훨씬 뛰어나고 잘한다는 거라. 스님들이 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안 들으려고 그래요. 그런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근데 그거는 여러분들이 생각을 바꿔야 됩니다.
재가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계의 청정에 이르지는 잘 못합니다. 또 계의 청정은 잘 지킨다고 하더라도 선정의 청정함은 획득하지를 못합니다. 사선정을 얻었다든지 그 선정을 자유자재로 한다든지 이런 것들을 하지 못한다는 거라.
그것까지 한다고 치더라도 지혜가 익어서 지혜의 청정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는 거라.
계정혜의 청정을 얻기는 재가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힘이 든다는 거라. 그래서 내가 계를 지키기가 진짜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이 출가를 할려고 하는 거라. 계를 지키기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그게 바탕이 안 되는데 어떻게 선정의 청정을 얻고 지혜의 청정을 얻어서 지혜가 발현되고 할 거라? 안 되는 거라.
근데 출가한 자들은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갖다가 자꾸 닦아 나가고 청정하게 만들어나가게 되는 거라. 그래서 결국은 성자에 이르게 되는 거고.
그래서 그 성자들이 있기 때문에 일반 재가인들이 믿음의 대상이 되고 그분들에게 가사를 올리든 밥을 공양을 올리든 할 것 같으면 그것으로 해서 나에게 복이 생기는 거고, 그로 인해서 나는 천상이 태어나는 거고, 이런 혜택들을 누리게 되는 거라.
그게 쉽게 말하면 출가한 스님들이라. 그게 만약에 없다고 할 것 같으면 교학적인 부분은 틀림없이 교수들이나 재가법사들이 훨씬 더 잘할 수가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여러분들이 정신적인 안정, 그리고 체험을 통한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고 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는 거라.
그래서 이 가사는 재가자가 입는 게 아니고 반드시 출가자가 입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재가자들은 이 가사의 방식으로 옷을 지어 입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 가사의 색으로도 옷을 해 입질 않는 거라. 그만큼 이 가사를 소중하게 여기는 거라.
또한 출가한 스님들도 이 가사의 방식들을 고수를 해가지고 그대로 내려옵니다. 부처님 당시 때부터. 그래서 지금도 바꾸질 않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치마 같은 이거 그냥 천 조각입니다. 돌돌돌 말아 갖고 입는 게 얼마나 불편해요?
스님도 처음에 태국에 있다가 한국에 오니까 지하철을 옆으로 이렇게 지나가는데 여자들이 많고 하니까 부딪히고 이럴 위험성이 있으니까 그거 피한다고 이렇게 맨홀 뚜껑이 있는 쪽으로 이렇게 이렇게 갔어. 근데 그 뚜껑이 뭐냐면 밑에서 에어컨 바람이 이렇게 샤악 불어와. 뜨신 바람이 올라오는 거라. 그러니 어떻게 되겠어요? 치마가 휘익 뒤집어 지는 거라. 그렇다고 완전히 뒤집어진 건 아닌데 확 이렇게 날리고 하는 거라. 그마만큼 불편해. 그리고 이걸 입으면 어디 손이나 자유롭게 쓸 수도 없고 하는데도 지금도 이걸 고수를 하는 거라.
간혹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이 가사의 색을 가지고 색깔만 맞춰가지고 한국식 방식으로 옷을 해 입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가사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건 넌센스입니다.
가사는 규정에 인해서 정해진 것 외에는 변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조의도 그 조의의 방식으로 만들어야만이 그게 가사가 되는 것이지, 그 조의를 떠나버린 상태에서는 가사가 아닙니다. 그게 작은 조각은 10cm 20cm 규정, 그것보다도 큰 규정, 이런 규정들을 다 지키게끔 돼 있는 것들이라.
그래서 간혹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가사를 입었다, 근데 가사가 그건 아니라. 그냥 그거는 스님들이 입고 있는 옷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 옷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입어야 되는 것이 이 가사라. 스님도 여기 티를 하나 걸쳤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왔을 때 이거 안 입었었어요. 맨살을 드러냈거든.
막 여기 뭐라 그래요? 겨드랑이 털도 보이고 막 이러니까 사람들이 처음엔 하 이러고 못 보더라고. 그래서 야 이거 이래가지고는 안 되겠다. 법을 전하는 것도 좋은데 마음이 안정이 되고 열려야만이 그 법을 들을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는 거라. 그래서 이런 티를 하나 입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염려가 없어져 버리는 거라. 이거는 그냥 옷일 뿐인 것이지, 가사는 아니라는 거라. 가사는 이거라. 그래서 이걸 입었다고 하더라도 이거는 반드시 입게끔 돼요.
그래서 잘 때도 이걸 하물며 머리맡에 두고 자도록 돼있다는 거라. 스님들도 이렇게 가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재가자도 가사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가사라고 하는 것은 곧 상가라는 거라. 우리가 의지해야 되는 것이고, 또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우리가 복덕을 쌓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그분들이 그 상가 스님들이 이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깨달음을 이루어서 법을 전해주는 그걸 듣고 우리도 그 깨달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이 가사라는 거라.
이걸 함부로 생각을 하지 마라 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음식입니다.
한국에 가끔씩 보면 그런 게 있습니다. 사찰 음식 해가지고 이렇게 아주 먹음직스럽고 맛있게 또 자연식으로 해가지고 이렇게 하는 거. 그걸 보면서 가끔씩 스님이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스님들이 먹는 음식의 기본적인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구나.’ 스님들은 음식을 받고 음식을 먹을 때 어떤 생각으로 합니까? 몸을 살찌우기 위한 것도 아니고 배고픔의 느낌만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지, 맛있는 것 그리고 자연식을 먹어서 배부르다는 느낌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유지해가지고 수행하기 위해서 이 밥을 먹는 거라. 몸을 유지하는 네 가지 영양분 중에 하나기 때문에 먹는 것뿐이라.
그게 이 음식이라는 건데, 이게 웰빙이라는 이름을 타고 이 음식이 그 근본을 갖다가 자꾸 벗어나는 형태들을 띠는 거라. 조금 더 맛있게 먹는 방법 조금 더 건강하게 먹는 방법. 음식을 건강하게 먹으려고 하지도 말고 맛있게 먹으려고도 하지 마라라고 분명히 규정이 나와 있는데, 왜 그렇게들 하고 있느냐는 거라. 그걸 사찰 음식이라는 이름으로. 그거는 아니라는 거라. 기본적인 것은 음식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거라.
그래서 음식은 규정에 뭐라고 나와 있느냐면, 아마간다라고 그럽니다.
'아마간다(Āmagandha)' 쉽게 말하면 냄새나는 것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들, 돼지고기나 생선 같은 것들은 그런 비린내가 납니다. 그 냄새 나는 것들. 그래서 채식만 하는 사람들은 육식하는 사람들 되게 싫어합니다.
근데 부처님은 아마간다의 규정을 갖다 뭐라고 해놨냐면,
"무언가를 자꾸 더 맛있는 걸 먹으려고 한다. 번뇌가 자꾸 더 쌓이는 일들로서 밥을 먹는다. 이걸 아마간다라고 하는 것이지, 내가 생선을 먹고 내가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그게 아마간다가 아니다." 하고 얘기합니다.
가끔 테라와다 스님들이 고기 먹는 걸 보고 대승불교 스님들이 스님이 고기를 먹느냐고 그럽니다. 자기들은 뒤로 다 먹으면서. 아니라는 거라. 음식은 그런 규정으로써 만들어놓은 게 아닙니다.
단지 이 음식을 먹어가지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서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써 음식을 먹는 거기 때문에,
"3가지 조건과 10가지 고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이든 먹어도 괜찮다."
나를 위해서 그 생명을 죽였다고 의심이 들거나, 죽이는 모습을 보거나, 누가 죽였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거나 이런 경우에는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 돼.
가끔 식당에 가면 스님들한테 고기를 이렇게 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은 그럴 때마다 반드시 물어봅니다. “이 무슨 고기냐?” 하고 반드시 물어봅니다. “스님, 소고기입니다.” 그럴 것 같으면 확인이 된 상태라. 그럼 소고기는 10가지 먹지 못하는 고기에는 포함이 안 돼 있어요. 근데 그렇게 확인을 안 한 경우에는 이게 무슨 고기인지 모를 경우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거라.
또는 스님한테 공양 올리기 위해서 팔딱팔딱 뛰는 생선 잡아갖고 탁 죽여갖고 내놨다. 그럴 것 같으면 그 스님을 위해서 죽인 겁니다. 근데 그걸 내가 모를 경우에는 먹었을 때는 문제가 안 되는데, 누가 저 스님 줄라고 살아있는 생선을 잡아가지고 죽여가지고 줬다. 그럼 그건 누가 좋게 봐주는 사람은 없다는 거라. 그런 소리를 들을 경우에는 그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거라.
그리고 직접 내가 그걸 보든지, 아니면 의심이 될 경우. 탁 고기 보니까 요게 냉동 고기를 가지고 한 건지 아니면 이제 막 잡은 고기를 가지고 한 건지 보통 표가 납니다. 그럼 의심이 들 때는 “이 죽은 거 했냐?” 하고 물어봅니다. “아니요. 산 거 가지고 했습니다.” 그럼 그건 못 먹는 거라. 그럴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고기든지 먹을 수가 있다는 거라.
시하라고 하는 장군이 부처님한테 귀의를 하고 나서 그 시하가 부처님을 위해가지고 고기를 내놨는데 그게 뭐냐면 살아있는 걸 갖다가 부처님한테 맛있게 드시게 하려고 죽여갖고 이렇게 내놨거든. 부처님이 모르고 그걸 먹었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는 거라. 생명체를 죽여 갖고 그렇게 먹는 저런 부처님이 어디 있냐고.
그 뒤부터는 이 3가지 조건들을 반드시 지켜라 그럽니다.
"들었거나 보았거나 의심이 됐을 경우에는 그 고기는 먹지 말아라."
하물며 그러는데 스님들은 탁발을 해도 괜찮고 공양 초청을 해도 관계가 없습니다. 근데 공양 초청하는 데가 생선횟집, 그것도 눈 시뻘겋게 뜨면서 아가리를 뻐끔 뻐끔뻐끔 하고 있는 그걸 먹으라고 이렇게 내놔. 그런 짓은 하지 말아라는 거라. 살아있는 생명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 스님을 위해서 먹도록 만들면 안됩니다.
일상생활 할 때 여러분들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먹어봐야 맛있게 먹어봐야 얼마나 맛있게 먹을 거라고, 살아있는 거 갖고 와서 하려고 자꾸 하느냐는 거라. 그거 하지 마라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그 생명을 죽일 때는 살의가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죽이려고 하는 의도가 없으면 죽일 수가 없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든지 스님한테 공양 올리기 위해서든 어쨌든 죽이려고 하는 의도가 없으면 그걸 죽일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왜 좋은 일을 할려고 하면서 나쁜 행위를 하면서 좋은 일을 할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렇게 한 것들이 그게 무슨 공덕이 되겠느냐는 거라. 그렇지 않다는 거라. 자기가 먹든 가족이 먹든 다른 사람이 먹든지 간에 살아있는 걸 가지고 요리를 할려고 생각을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게 인제 음식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단지 채식을 하는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걸 보통 '망사윌랏(망사위랏)' 그렇게 얘기합니다. 채식만 하는 사람인데 채식하는 기간을 딱 정해서 합니다. 언제? '내가 이 3개월 안거 동안에는 열심히 수행만 해보겠다' 그럴 때. 그리고 여러분들 같은 경우는 '오늘은 생일이니까 내가 채식만 하겠다' 아니면 '오늘은 무슨 좋은 날이니까 오늘은 채식하겠다' 이런 특별한 날에는 채식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도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소고기를 안 먹습니다. 사람이 고기를 먹게 됨으로 인해가지고 생겨난 병이 굉장히 많다고 그럽니다. 옛날에는 고기를 먹기 전에는 세 가지 병밖엔 없었다고 그럽니다. 늙는 병, 먹고 싶은데 못 먹는 병, 쉽게 말하면 가지고 싶은데 못 가지는 거 그것도 병입니다. 배고픔의 병이 그래서 가장 크다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갖고 싶은 거 가지지 못하는 병, 먹고 싶은 거 먹지 못하는 병, 그리고 늙어가는 어쩔 수 없이 이 몸을 받아서 늙어가는 병, 이 세 가지 병밖에는 옛날에는 없었다고 그래요. 고기를 먹기 전에는. 빨리 주석서에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소고기, 경전에는 물소고기라고 그렇게 돼있습니다. 물소고기를 사람이 먹고 나서부터 기하급수적으로 99가지 병이 생겨나고 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거라. 지금도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고기를 안 먹습니다. 다른 고기는 다 먹으면서. 태국이나 버마 같은 경우에는 소고기 먹거든요. 근데 거기는 좀 특별하게 그렇게 합니다.
쉽게 말하면 고기는 몸의 병을 생겨나게 할 원인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거라.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거는 특별한 때 그리고 특별한 기간에는 안 먹고 몸을 청정하게 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씩 한 번씩 쉽게 말하면 몸을 정화시켜 주는 것들. 그런 것이지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옵니다.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스님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안거 기간 동안에는 나는 망사윌랏 할 거다. 채식만 할 거다” 하고 선언을 합니다. 그러면 그 스님한테는 채식만 먹도록 만들어줘요.
그럼 그걸 평생 하느냐? 평생 안 합니다. 그 안거 기간 동안에만 딱 합니다.
왜? 음식은 어차피 재가자들이 만들어서 스님한테 공양 올리게 됩니다. 청식을 하든 아니면 탁발을 하든 간에. 그러면은 동물성 기름도 채소를 가지고 볶을 때 할 수가 없고, 닭고기 빼고 뭐 빼고 생선 빼고 고기 빼고 요리할 게 별로 없습니다. 스님들 탁발하고 뭐 하려고 했는데 해줄 것이 별로 없어져 버리게 되는 거라. 그리고 자기들도 해주고 나서 그걸 먹어야 되는데 자기들도 그러면 못해서 못 먹게 되는 거라.
쉽게 말하면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서 공양 올리기 쉽게끔 만들어줘야 되는 게 스님들이 해야 될 몫입니다. 그래서 자애경에도 보면 "4가지 공양물을 올리는 재가자들을 갖다가 공양 올리기 쉽게끔 만들어 줘라" 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근데 채식을 할 것 같으면 그 조건이 성립이 안 되는 거라. 그래서 채식주의자를 오래 하지를 않게끔 되는 거라.
그래서 10가지 고기는 거기에다가 스님이 적어놨습니다. 그 10가지 고기는 먹지 않는 것으로 그렇게 돼있습니다.
(인육은 물론 코끼리·말·개·뱀·악어·사자·호랑이·표범·곰의 고기 등 특수한 10가지 고기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게 보통 음식에 대한 것들입니다.
음식은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않고 오후에 먹을 수 있는 게 있고, 또는 7일간 저장하면서 먹을 수 있는 게 있고, 그다음에 일평생 먹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오늘 같은 경우는 오후니까 여러분들이 차를 줬습니다. 그렇죠? 쉽게 말하면 테라와다 스님들은 오후에 어떤 경우든지 음식을 먹진 않죠. 딱딱한 것이든 부드러운 것이든 씹고 하는 것들은 먹을 수가 없다는 거라.
만약에 여러분들 같은 경우에 스님들한테 공양을 올리고 싶다 할 것 같으면 언제 해야 돼요? 오전에 해야 되는 거라.
그런데 오후에 뭔가 스님한테 공양을 올리고 싶다 할 것 같으면 뭘 그럼 해야 되겠어요? 이런 것들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비스켓을 주면서 “스님 공양 올릴게요” 하면서 오후에 준다. “오후에 우리 못 먹는데” “놔두고 내일 잡수세요.”
출가한 스님들은 저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세 가지 규정이 딱 있습니다.
날을 넘겨서 저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하룻밤을 지나야 됩니다. 그거는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출가한 스님들은 조리를 해가지고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조리가 가능한 거는 뭐냐면 조리돼 있는 걸 데워 먹는 거는 가능합니다. 그 외에는 내가 직접 조리를 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먹기 위해서 뭘 만들 수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지키는 거라.
그런데 비스켓을 오후에 주면 이걸 우짜라는 얘기라? 이걸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습니다. 받으면 이미 내가 죄를 범하게 되는 형태가 되고, 안 받으면 줄라고 하는 사람 마음을 언짢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버리고. 그러니까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는 거라.
그래서 오후에는 반드시 여러분들은 지켜야 될 것들이 스님들에게 뭔가를 공양을 올릴 때는 먹을 수 있는 것들 씹을 수 있는 것들은 올리면 안 된다. 그러면 마시는 것들.
마시는 것들이라도 각 나라마다 규정이 조금씩 틀리긴 한데, 보통 씨가 들어가지 않는 조그만 과일들을 가지고 주스를 만들어서, 근데 건더기가 있으면 안 되고 물로만 주스를 만들어서 그거는 올려도 됩니다. 근데 씨가 들어가고 하면 안 됩니다. 왜? 그 씨는 다시 발아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거는 그 스님이 새로운 생명을 죽이는 간접적으로 죽이는 거와 마찬가지라. 그래서 씨가 들어가면 안 됩니다. 포도도 마찬가지, 포도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넣어가지고 하면 안 돼.
그리고 또 가끔씩 보면 특히 이번 같은 경우에는 스님이 그 수술을 하고 몸이 좀 안 좋아가지고 이렇게 누워 있었거든.
그러니까 스님이 많이 안 좋은갑다 해가지고 누가 미음을 쑤어놨어. 쉽게 말하면 쌀을 갖다가 갈아가지고 쌀뜨물같이 이렇게, 건데기가 하나도 없어. 자기들 생각에는 건더기가 아니니까 씹어 먹지 않고 후루룩 마시는 거니까 괜찮겠지 해갖고 그걸 해갖고 오후에 “스님 이거 드세요. 몸 안 상하게요.” “뭔데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왔다는 거라. 참 이걸 때리치도 몬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생쌀은 스님이 그걸 받아서도 안 되고, 생쌀은 내가 먹을라고 그걸 조리해서도 안 되는 건데, 뭐 불린 쌀로 가지고 했겠어? 처음에는 생쌀로 가지고 하지. 생쌀 가지고 불려가지고 갈아가지고 물 넣고 해가지고 어떻게 했겠지. 그렇게 해가지고 가져온 거라. 못 먹는 거라.
마시는 거라고 하더라도 음식의 종류에 들어가는 겁니다. 기본적인 것은 쌀이니까 단단한 음식입니다. 단단한 음식으로 만든 거니까 당연히 그거는 오전에 먹어야 되는 음식인 것이지, 그것이 씹는 것이 아니라 해서 오후에 먹어도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마시는 거라고 하더라도 주스라고 하더라도 물만 소로록 빠져야 되는 것이지, 건더기가 들어가서 물론 씹지는 않겠지만은 그것이 요기가 된다고 생각을 할 것 같으면, 그거는 이미 음식의 종류에 들어가 버립니다. 부드러운 음식에 들어가 버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걸 내가 먹고 나서 아 조금 배가 좀 든든해졌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건 이미 음식이 돼버리는 거라. 아무리 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럼 여러분들 오후에는 그런 걸 주면 안 돼. “내일 드시면 되지” 그런 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같이 이렇게 아파있는 상태다. 그럴 것 같으면 여러분들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꿀 같은 거, 아니면 영양제 같은 거, 이런 것들은 일주일 동안 놓아놓고 먹을 수도 있고, 내가 아플 때마다 영양제 같은 걸 먹을 수가 있고 그럽니다.
단지 그 영양제는 안 아플 때는 먹어서는 안 돼. 약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약을 먹어서 그 병이 낫기 위해서 그 약을 먹는 것이지, 아프지도 않은데 그 약 먹는 사람은 그건 바보입니다. 내가 몸이 많이 허약한 상태에서 영양제를 먹어야 되는 것이지, 나같이 건강한데도 나이 들면 약해질 걸 대비해 갖고 영양제를 먹는다? 그거 바보라는 거라. 그거는 약의 범주를 이미 벗어난 상태가 됩니다. 몸을 위하는 상태가 돼 버리기 때문에 그런 거는 죄가 돼버리게 되는 거라.
이게 이제 음식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먹을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들이 있고, 또는 오후에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들이 있고, 약으로써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음식들은 반드시 규정을 지켜서 스님들은 먹게끔 돼 있습니다.
이거 여러분들이 물 갖다 놓을 때 어떻게 했어요? 이리 가져오니까 스님이 요렇게 손을 딱 대죠. 반드시 손으로 건네줄 경우, 그렇지 않으면 쟁반으로 해서 건네줄 경우, 또는 이게 아니면 받침도 괜찮고 받침으로 해서 건네줄 경우, 그럴 때만 스님이 받은 것이 되는 것이지. 지금 한참 여기서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고 있는데, 여기다 “스님 드세요” 하면서 탁 놔주고 갔다, 그러면 이거는 스님들이 못 먹어.
(수행자: 스님 물하고 이쑤시개는요?) 물하고 이쑤시개는 관계없습니다. 물하고 이쑤시개는 주든 안 주든 그건 지가 하면 돼요. 물하고 이쑤시개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 다.
기근이 들어서 탁발을 못 할 때라도, 경전에 그런 구절이 있어요.
과일을 자기가 숲에 있는 과일을 떼가지고 가져가요. 가져가 가지고 마을에 내려가 가지고 마을 사람 앞에다 툭 던져놓습니다. 그럼 이제 마을 사람들이 눈치를 채고 ‘아, 스님이 저걸 잡숫고 싶어 하는구나’ 해가지고 그걸 갖다가 다시 스님한테 줍니다. 그때서야 이제 그 스님이 그걸 먹을 수가 있는 거라. 주인 없는 과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직접 떼서 먹지를 못하게끔 돼 있는 거라. 누가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준다고 하는 것은 손으로 주거나 받침으로 주거나 쟁반을 통해서 줘야만이 가능하게 돼 있다는 거라.
그래서 공양청을 할 것 같으면 공양을 올린 접시들을 갖다가 스님한테 탁 이렇게 올려줍니다. 그럼 이걸 올려주면 스님이 거기에 손을 딱 놓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거는 스님한테 준 것이 돼. 그럼 또 다른 것도 그렇게 해줘야 되는 거라.
근데 이제 내가 혼자서 들 수 있는 상일 경우에는 쟁반 쟁반 쟁반 별로 안 하고 이 상 자체를 갖다 살짝 들어줍니다. 그럼 스님이 거기에 탁 놓습니다. 그러면은 그 전체를 갖다 올리게끔 되어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만 먹을 수가 있는 것이지. 그냥 놔두는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도 먹을 수가 없게끔 돼 있다는 거라.
공양을 올릴 때는 이 점을 여러분들이 반드시 주의를 해야 됩니다.
그게 이제 음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음식과, 또 공양을 올리는 때에 따라서 공양 올리고자 하는 음식이 따로 있고, 그걸 분명하게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 방법에 맞게끔 해서 공양을 바르게 올릴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거주처와 약품에 대한 것들로서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릴 수 있는 품목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가사, 가사는 때가 있죠.
그다음에 발우, 발우는 여기에다 자세히 적어놨습니다. 발우는 어떤 것이 되고 어떤 것이 안 된다는 거를. 발우는 스님들이 하나 이상을 지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출가한 스님들이 발우 가지고 있으면 다시 발우 올릴 기회는 아마 잘 없을 겁니다.
그다음에 허리띠, 이게 천이기 때문에 옷을 멜 수 있는 허리띠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허리띠에는 어떠한 경우도 바클이 있으면 안 돼. 짬매게끔 돼 있는 형태라. 그리고 여러 개가 꼬아져 있는 것도 안 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한 세트로 된 것들은 보면 보통 허리끈이 같이 딸려 나옵니다.
그렇지 않고 집에서 만들 경우에는 천으로 해서 한 줄로 양쪽으로 한 줄로 하도록 해서 몸의 반이나 3분의 2를 갖다가 덮을 수 있게끔 요만한 길이로써 만든단 말이라. 천으로서. 그러면 이렇게 되고 나서 나머지 몸을 감싸는 것은 여기 끝과 여기 끝에다가 줄을 요렇게 매는 거라. 그럼 이 줄이 와서 멜 수 있는 방식, 이게 인제 허리끈입니다.
허리끈을 만들어서 스님들한테 공양을 올려도 괜찮습니다.
그다음에 실과 바늘, 또는 면도기, 면도기는 삭발하기 위한 용도 그다음에 면도하기 위한 용도가 있습니다. 삭발하는 거는 양쪽 날이 있는 것들이 돼야 되고, 면도할 수 있는 것은 뭐 관계는 없고 그렇습니다.
그다음에 물거름망, 쉽게 말하면 정수기. 요즘 스님도 지금 쓰고 있는 게 뭐냐면 브리따라고 하는 그 간이 정수기가 있습니다. 필터가 들어가서 전기도 필요 없고 그냥 요만한 주전자입니다. 요마만한 주전자에 요 필터가 한 개 있어요. 그래서 물을 이렇게 쪼르르르 따르면 필터를 통해서 이렇게 물이 걸러지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물거름은망 그런 것들이 가능합니다.
그다음에 세면할 수 있는 도구들, 수건 비누 칫솔 치약 그다음에 손톱깎이 면봉 뭐 이런 것들, 이런 세면 도구들.
그 대신에 세면도구 중에서 수건 같은 거는 되도록이면 가사색에 맞는 것들이 돼야 됩니다. 수건도 색깔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원색이 들어간 것들은 스님들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색이 아닌 색, 그래서 되도록이면 가사색 비스무리한 것들을 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 조건들이 있고,
그다음에 시계, 이런 시계가 아니고 이 손목시계가 아니고 어떠한 경우도 스님들은 몸에 뭔가를 갖다가 부착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시계든 팔찌든 아니면 이거 반지든 목걸이든 이런 걸 못하게끔 돼있습니다. 장식품은 일체 못하게끔 돼있어요. 그래서 이런 시계가 아니고 자명종 시계, 또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 같은 거 그런 시계들 그런 것들.
그다음에 약들, 그다음에 우산, 샌들,
샌들도 뒤에 샌들이 요렇게 뒤에 그 고리가 있는 거 있죠. 발 뒤로 거는 거 있죠. 발이 여기 있으면 발 뒤에 이렇게 보통 거는 게 있는데 그건 안 됩니다. 그리고 또는 발등 위를 요렇게 거는 게 있습니다. 요렇게 걸도록 돼있는 거 그것도 안 됩니다. 또는 발목을 요렇게 감싸도록 된 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샌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발가락이 끼는 경우든지 발이 끼이는 것만 가능합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이 걸쳐지는 것들은 안 됩니다. 그리고 색깔도 마찬가지 그 원색은 안 됩니다. 그리고 샌달은 반드시 홑겹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근데 이제 혹한 지역에서는 여러 겹 여러 층이 되는 것도 허용을 합니다. 인도의 변방이라고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한국은 인도의 변방입니다. 그래서 여러 층이 되는 것은 한국에서는 허용이 됩니다. 버마 같은 경우에는 반드시 홑겹이 돼야 됩니다. 가죽으로 된 홑겹. 어쨌든 여러 층이 된다고 하더라도 고리가 있는 것들은 샌들로서 사용을 못하게끔 돼 있으니까 그거는 피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수행자 질문: 스님, 그게 슬리퍼 개념인가요?)
그렇죠. 슬리퍼
(수행자 질문: 그러니까 저희는 샌들은 뭔가 이렇게 죄게 돼 있는데, 스님 말씀은 표현하시는 것은 지금 슬리퍼를 샌들이라고 하시는 거 같아요.)
아 그래요. 내가 그럼 샌들이라 안 하고 슬리퍼라고 그리 해야 되겠구나.
근데 이거는 그게 영어 명칭이 샌달로 돼있습니다. 슬리퍼는 방 안에서 신는 걸 슬리퍼라고 영어에서는 그렇게 얘기하거든. 근데 그 슬리퍼라는 것이 또 빨리어에 있어요. 슬리퍼는 사용하는 것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욕실, 그다음에 화장실, 그다음에 대변하는 곳, 우리나라는 대변하고 소변하는 곳이 한 곳으로 돼 있는데, 태국 같은 데나 이런 데는 따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군데에서는 슬리퍼를 반드시 착용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 슬리퍼는 가죽이 아니고 고무나 요즘 말로 할 거 같으면 플라스틱 비슷한 그런 것들을, 우리말로 할 것 같으면 욕실화라고 하죠. 그건 따로 돼 있습니다. 욕실화 같이 그렇게 생긴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샌들이라고 하는 것은 밖에서 신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규정 자체가 가죽으로 된 것이 되게 됩니다. 가죽으로 된 것.
그다음에 전등, 램프 같은 거죠. 전등, 그다음에 가위 같은 거, 그다음에 학용품, 그다음에 휴지 같은 것들, 그다음에 수행하기 위한 방충망 모기장 요런 것들, 그다음에 우산, 그다음에 책, 그다음에 요즘은 허용되는 게 뭐냐면 레코딩 되는 거 요런 것들이죠. 요런 것들도 허용이 됩니다. 씨디나 레코드, 근데 반드시 씨디나 레코드는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담마를 위한 용도로서만 써야 된다는 것.
그래서 그런 것들은 스님들에게 공양 올릴 수 있는 물품들입니다.
올릴 수 없는 게 뭐가 있을까?
여러분 가장 많이 하는 거 영화 cd 주는 거, 뭐 음악 테이프 주는 거, 아예 안 됩니다. 그다음에 오락 게임 이런 것들이 되는 것들, 쉽게 말하면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것들은 아예 안 됩니다. 그런 거는 공양 올릴 수 없는 품목입니다.
또한 할 수 없는 게 그거 말고 취하게 하는 것들 술이나 마약 담배 이런 것들,
그다음에 큰 물품들 티비, 아니면 절을 만들어서 하는 거, 이런 것들은 스님에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상가에게 올릴 수 있는 것이지. 어떠한 경우도 그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그 스님을 위해서 절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 하더라도 그 스님 개인 명의가 아니라 상가 명의여야 됩니다. 특히 요즘 같은 경우에는 자동차, 나도 자동차 있지만 내 자동차 우리 선원 이름으로 돼 있어요. 근데 실제로 타기는 내가 타고 있거든.
그런 큰 품목들 의자 탁자 이런 것들, 그다음에 침대 같은 거 이런 것들은 전부 다 상가 소유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래서 상가 소유와 개인 스님에게 주는 것들을 반드시 구분하라.
다음에 선풍기 같은 것도 괜찮고, 그다음에 장식품은 안 됩니다. 장식품은 아예 품목 같은 데 안 들어갑니다. 가끔씩 그런 것들 주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무슨 스피커 좋은 거 스님 이거 쓰세요 하면서 갖다주고, 아니면 여행 갔다 와가지고 무슨 어디 기념품 가 와갖고 스님한테 드리고, 아예 그런 것은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은 안 되니까 그렇게 알도록 하고.
그다음에 여러분이 꼭 알아야 되는 것이 뭐냐면, 손상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과일도 안 됩니다. 오전 중에는 관계없습니다. 근데 오후가 되면 그것들을 갖다가 드리면 안 됩니다. 물론 그걸 주면 스님은 직접 안 하고 다른 사람이 하겠지만, 원형 그 자체를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오후에는 아예 안 됩니다. 과일들이라도.
대충 테라와다 스님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뭔지 알겠죠?
그래서 무슨 행사가 있고 할 때는 거기에 맞게끔 물품들을 올릴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질문하십시요.
(수행자 질문: 스님 대승에서는 스님께 이렇게 직접 안 드리구요, 법당에 이렇게 딱 있으면 거기에 딱 올려놓잖아요. 근데 선원에 그냥 딱 올려놓으면 안되나요?)
안 됩니다. 어떠한 경우도 규정에 그렇게 돼 있는 걸 그 스님이 집었다 할 것 같으면 율장에는 그것 자체를 다른 스님도 못 쓰게끔 돼 있습니다. 툴랏짜야에 해당이 된다 하고 분명하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가끔씩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봉투를 이렇게 가져와가지고 스님한테 직접 주기 미안하니까 어디 부처님 앞에다 이렇게 딱 놔놓고 글로 써놓습니다. '스님 용체 쓰세요.'
그거 스님이 쓸 수가 없습니다. 그거는 받은 것이 아니라. 그걸 만약에 그 스님이 이걸 집었다 할 것 같으면, 그 봉투를 집었다 할 것 같으면 그거는 다른 스님들도 쓸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럼 이 돈을 갖다가 어떻게 써야 되느냐 하면 다른 용도로 써야 된다는 거라. 스님 이외에 다른 용도로서. 그래서 그럴 경우에는 그 봉투채로 해가지고 스님 같은 경우에는 어디 누가 선원에 뭐가 필요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을 사놓아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주는 것이 아니면 그 스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수행자 질문: 스님, 그러면 그 스님 시간에 맞추기가 상당히 어렵잖아요. 재가자들이. 시간에 맞는 분께 딱 몰아가지고 그렇게 한꺼번에 드리는 건 괜찮나요?)
그거는 괜찮죠. 본인이 안 주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직접 그 스님에게 전해주는 방식을 택해야 된다는 거라. 됐습니까?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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