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4CqvGBKGM8?si=ZwhYU10MIWsmon2o
* 부처님의 일대기-연도로써 정리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927-3
오늘은 부처님의 입태부터 열반에 이르는 것까지에 대한 걸 갖다가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입안에 사탕이 있어가 조금 말이 좀 헛나와도 좀 이해를 해요. (예)
먼저 한번 물어봅시다.
부처님, 지금은 부처님이 존재하는 시기입니까? 아니면 부처님이 없는 시기입니까?
유불식이냐, 아니면 무불식이냐? 하는 겁니다. (수행자: 존재하는 시기입니다.)
어째서? 부처님 열반에 드신 지 오래됐어. (수행자: 법이 존재를 하고 그대로 내려오고...)
법이 존재한다 해서 부처님이 존재하는 거 하고는 좀 구분을 해야 되는 거고.
어찌 생각해요? (수행자...) 무불시대에요? 그 무불시대면 미륵불이 태어나야, 태어났든지 뭐 했겠네.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거하고 테라와다 불교에서 말하는 거하고는 차이가 좀 많이 나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이 그러니까 이론상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나서 다음 부처님이 태어나기 전까지를 부처님이 없는 시기라 해서 '무불(無佛) 시대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근데 테라와다에서는 한 세기에 오직 하나의 부처님만 존재하게끔 돼 있지, 부처님이 두 명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거는 알죠? 대승불교에서는 여러 명의 부처님이 존재하기도 하고 또는 여러 세계에 하나의 부처님이 존재하기도 하는데,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세계에 하나의 부처님! 그 원칙은 항상 지켜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지 2600년, 정확하게 2602년이 지났는데, 그럼 지금 무불시대여야 되는데 왜 아무도 무불시대라고 얘기를 안 할까? 무불시대 맞아요, 틀려요?
(수행자 대답: 경전이 있잖아요.)
경전하고는 틀린다니까 자꾸 경전을 얘기합니다. 물론 경전도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깨달은 사람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거는 부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부처님하고는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데,
그래서 부처님의 열반을 테라와다에서는 세 가지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는 부처님이 열반에 든 때, 입멸하신 걸 갖다가 얘기를 하고,
두 번째는 오온이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을 때, 다비를 해버리잖아요. 다비를 해버리면 그 전에 식은 달아나 버렸다고 하더라도 몸은 남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몸까지도 인제 다비를 통해서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을 경우, 오온이 완전하게 소멸되는 상태를 갖다가 그 두 번째 입멸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주석서에는 또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게 뭐냐면 사리. 그렇게 하고 나니까 다비하고 나니까 부처님 사리가 남았단 말이라. 지금 사리가 이 세상에 존재를 하죠?
그래서 아직 사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부처님이 존재하는 시기로 보는 거라.
좀 억지스럽죠? 근데 어쩔 수가 없어.
그거는 테라와다의 주석서들을 배경으로 한 거기 때문에, 그걸 배경으로 했을 때에,
"사리가 아직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은 아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신 유불(有佛) 시대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걸 왜 서두에 꺼냈느냐 하면 유불시대하고 무불시대하고는 서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부처님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서는 내가 부처가 되고 싶어도 부처가 되기 위해서 서원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됩니다. 근데 부처님이 계시는 시대에서는 내가 부처가 되고 싶을 때는 부처가 되는 서원을 할 것 같으면 다른 조건은 물론 7가지 조건, 다 전체 8가지 조건을 다 갖추면 내가 언젠가는 다음 생에 부처가 될 수가 있게끔 돼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일대기를 얘기할 때 대부분 보면 부처님 과거 전생의 얘기, 수메다가 디빵가라 붓다 연등불에게 수기를 받는 것부터 이렇게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어쨌든 연등 부처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 연등 부처님이 직접 있는 상태에서 내가 부처 되기를 서원할 것 같으면 그럼 연등불은 “그래. 너는 언젠가는 부처가 될 것이다” 하고 이제 수기를 해주게끔 되는데, 그렇지 않고 만약에 연등불이 없는 시대였다. 그러면 부처가 되고 싶어도 부처가 될 수 없겠지. 수기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됩니다. 그래서 부처가 되기 위해서 서원을 세우는 8가지의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됩니다.
물론 나는 부처는 싫고 그냥 내 혼자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분들이 말하는 그 독각 벽지불이 되겠다 할 것 같으면 그 조건이 또 따로 있습니다. 그 조건이 5가지인가 이렇게 있고, 그다음에 그렇지 않고 나는 그냥 아라한이 될란다, 그냥 아라한이 되겠다 할 것 같으면 아라한이 되기 위한 조건도 또 따로 한 두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조건이 조금 조금씩 틀립니다.
근데 지금 만약에 여러분들이 부처가 되고 싶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부처가 될 수가 있을까? 그건 왜 그럴까? 지금 아까 사리가 있기 때문에 아직은 부처님이 계신 시대라고 했는데 (수행자: 여자는 안 되고 스님으로서 부처님이...)
그 조건은 있는데, 그 조건을 다 갖췄다 하더라도 지금은 또 안 되는 것이 뭐냐면, 살아있는 부처님 자신하고 사리하고는 또 엄격하게 구분을 합니다. 그래서 수기를 하기 위해서 그런 서원을 세우기 위한 조건에는 사리의 조건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부처님하고 접해가지고 그 수기를 받아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 뭐 누가 수기한다. 그거 전부 테라와다 교리 조항으로 볼 것 같으면 그거 전부 가짜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넌 앞으로 뭐가 될 것이다.” 아니면 티베트 스님들이 와서 뭐 어쩌고 이렇게 수기한다. 교리적으로 안 맞게 되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을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테라와다적으로 여러분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서원은 뭐가 있을까?
아라한이 되는 것밖엔 없어. 다른 조건은 물론 벽지불은 될 수가 있고 그다음에 성문은 될 수가 있어. 사와까라 해서 그 조건은 간단합니다. 성문 같은 경우에는 내가 서원을 하는 것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덕을 쌓은 것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인 게 공덕을 쌓지 않으면 어떤 조건도 충족할 수가 없어. 아까 우리 해피 스님이 보시 지계 수행 뭐 이 부분을 하는데, 쉽게 말하면 그런 공덕들을 쌓지 않고 말로만 만날 부처님 가르침만 듣고 있어가지고 말짱 뭐 다른 거는 다 도루묵이다 할 것 같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라.
공덕이 일단은 먼저 쌓여져야 되는 것은 기본인 것이고, 그다음에 내가 서원을 해야 되는 것들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 그러고 나서 이제 벽지불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서 또 조금 더 다른 조건들이 더 있어야 됩니다. 남자로 태어나야 되고 인간으로 태어나야 되고 하는 그런 조건들이. 그다음에 그 부처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그것보다 더 많게 됩니다. 이 8가지 조건이 있는데, 8가지 그 조건 중에 가장 지금 해당 사항에 여러분들이 없는 것이 뭐냐면, 직접 부처님을 현전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서는 여러분들은 이 세계가 다 망해서 새로운 부처님이 태동하기 전에는 여러분들은 부처가 될 수 없어. 쉽게 말하면 성불을 할 수가 없다. 그게 대승불교하고 테라와다 불교하고 차이점입니다. 수기조차도 할 수가 없어. 수기를 할 수 없는데 성불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있을 수가 없다는 얘기지.
자, 그걸 이제 배경으로 해서 부처님의 탄생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얘기를 할 때 탄생부터 바로 얘기를 하지 않고, 아까 수메다 얘기에 과거 전생부터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 이제 이어지는 것이 뭐냐면 입태 부분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물론 대승불교에서도 마야 왕비 옆구리로 흰 코끼리가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 하는 그런 것도 있고, 또는 금성이 샤악 떠오를 때 태몽을 꾸었다 하는 그런 기록도 있고 합니다.
그런데 테라와다에서는 그 입태하는 것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테라와다 신자 중에 비구계를 받으려고 할 때 만약에 예를 들어봅시다. 올해가 지금이 몇 월달이죠? 음력으로? 8월이죠. 그런데 8월이면 만약에 올 말이 연말이 돼야 만이 내가 20살이 된다. 그럴 거 같으면 원칙대로 할 것 같으면 20살이 되기 전에는 비구계를 받을 수가 없으니까 받을 수가 없습니다. 비구계를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럼 내년 받아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모태에 들고 나서 입태하고 나서 그러니까 6개월 기간, 입태는 10개월이잖아. 4개월을 제외한 6개월 기간은 이걸 나이로써 인정을 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얘기하면 19세 6개월이 되면, 정확하게 19세 6개월이 되면 비구계를 받을 자격을 주게 되는 겁니다. 조금 차이가 나죠. 한국에 하고는.
또 하나, 그거 말고 낙태, 낙태가 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규정을 몇 개월부터 잡을 수 있을까? 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자궁에 입태가 돼 가지고 쉽게 말하면 그리고 최초의 마음이 생겨나고 최초의 식이 생겨난 이후는 그것은 생명으로서 간주를 하게 됩니다. 식이 생겨날 때는 언제 정도가 될 것 같아요? 몇 개월 정도 됩니까? (수행자: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몰라.
근데 경의 기록에 의할 것 같으면 그리고 주석서를 배경으로 할 것 같으면 그게 인제 거기에 명시가 돼 있어. 입태 후 20주면 몇 개월입니까? 20주? 4개월이 조금 넘죠. 그래서 보통 그걸 4개월이라고 부르는 스님도 있고 5개월이라 부르는 스님도 있어요. 아니면 5주가 있는 주가 있으니까, 어쨌든 20주가 경과됐을 때부터는 이미 그거는 생명으로서 인정을 하는 거라.
그게 빨리 주석서에 그냥 나와 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라. 쉽게 말하면 4개월은 낙태가 돼도 살인죄는 되지 않는데, 4개월이 지나버리면 그것은 살인죄에 해당이 돼버리는 겁니다. 낙태를 그래서 금하게 돼 있는 겁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그런 세세한 규정들이 있는 걸 봤을 때는, 탄생 못지않게 입태가 테라와다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리고 모든 자료들을 전부 정리해가지고 그걸 나이를 이렇게 쭉 매겨보니까, 거의 대부분이 어디에 일치하느냐면 입태로부터 치는 나이가 거의 맞아떨어져요. 부처님이 29세에 출가했다고 그렇게 나오는데 출생으로부터 칠 것 같으면 29세가 안 돼. 28세 2개월이야 근데 입태로부터 치면 정확하게 29세였다는 거라. 그래서 일부에서는 부처님의 그 나이는 입태로부터 계산을 해야 맞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근데 지금 테라와다 불교권에선 그렇게 계산을 안 하고 있죠. 부처님이 탄생 태어난 날을 기념해서 기념을 하고 있죠. 그건 이제 관습적인 것이고. 관습적인 것인데, 불교 자체적으로는 봤을 때는 "입태한 것이 이미 새로운 부처가 태동되는 시기다"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1불 1세기의 원칙에는 주석서에는 입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출생으로부터 그 부처의 시대가 시작되는 게 아니고, 입태로부터 그 부처의 시대가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입태했을 때 온 천지가 부르릉뿡깡하고 난리가 났다 하고 기록들을 하고 이렇게 됩니다. 그게 왜 그러냐면 한 부처가 출생을 하면 다른 부처를 막을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게 뭐냐면 그런 경천동지한 일들이 일어나게끔 경전에서 사실은 기록을 한 것뿐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대다 하고 선언을 한 거와 마찬가지가 돼버립니다. 그게 이제 "입태"라고 하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예)
그런데 테라와다는 입태하고 탄생 출생하고를 분명하게 구분을 합니다.
근데 대승불교에서는 이게 구분이 안 돼. 어떤 경전에는 탄생이라 했는데 그게 입태를 가리키는 묘사하는 것들이 있고, 어떤 거는 또 탄생을 묘사하는 것도 있고, 그래서 지금 입태의 상황들이나 아니면 출생의 상황들이 대승불교의 기록들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렇게 동일할 것 같으면 이론적으로 봤을 때는 부처님은 입태하자마자 출생해야 되는 판이 되는 거라. 그렇게는 될 수 없죠? 어디든지 뭐 애는 입태되고 나면 10개월 후에야만이 나오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 거의 대부분은 뱃속에 들어있던 시기를 10개월로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태와 출생은 분명하게 구분을 해야 된다는 것이 테라와다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입태를 또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들입니다.
부처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이 입태로부터 되는 것이고, 또 비구계를 받는 것도 출생을 기준으로 해서 비구계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나이를 전부 계산을 해봐도 입태를 기준으로 하는 것들이 거의 맞아떨어진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 그런 기준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앞에는 입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음력 6월 보름날 입태하고, 10개월 후인 음력 4월 보름날 탄생을 하고, 그다음에 음력 6월 보름날 출가를 하고, 음력 4월 보름날 성도를 하고, 음력 4월 보름날 입멸을 하는 것으로,
그래서 거기에 따라서 나이를 계산해 보니깐 입태 후 10개월 후에 탄생, 그리고 출가는 만 29세, 그리고 성도는 만 35세 10개월, 입멸은 만 80세 10개월,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출생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출생 때가 처음 시작되는 거기 때문에, 출가하는 것은 만 28세 2개월, 그다음에 성도는 만 35세, 그다음에 입멸은 만 80세, 이렇게 되게 됩니다.
이렇게 계산을 하다 보니까 문제가 하나 뭐냐면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했다고 얘기를 하는데, 기록을 전부 대조를 해보니까 6년 10개월이 맞아. 그렇게 되니깐 빨리 주석서 곳곳에도 가끔씩 7년간 악마가 부처님을 쫓아다녔다, 7년간 고행했다, 하는 그런 기록도 있습니다. 근데 그게 7년이라는 게 잘못 해석을 해버리면 만 7년으로 돼버리게 됩니다. 만 7년이 아니고 햇수로 7년을 얘기하는 겁니다. 6년 8개월이면 햇수로 7년이 되는 거라.
그래서 어떤 기록에는 7년이라는 기록이 있고, 거의 대부분 다른 기록에서는 6년으로 기록이 돼있고, 그렇게 돼있습니다.
자, 입태 부분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남전이라는 것은 남쪽으로 전해진 걸 얘기합니다. 북전은 북쪽으로 전해진 것.
남전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은 빨리어 하나로 동일합니다. 근데 북전의 기록은 언어들이 조금 다양합니다. 쉽게 말하면 산스크리트, 한역, 티벳, 그다음 우르두어 이렇게 좀 다양합니다.
어쨌든 남전 기록에서는 다 동일하게 나옵니다. 입태가 언제 됐다는 것들이.
그런데 북전의 기록에서는 대승불교에서 지금 하고 있는 기록에서는 이것이 상당히 모호합니다. 이것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분들이 없이 마구잡이로 같이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료를 취급하는 학자들 입장에서는 남전기록을 기본 토대로 하게끔 되는 거라. 내가 테라와다 스님이라 해서 그런 게 아니고 그게 기본적인 바탕이 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계산을 하고 맞춰봐도 이게 안 맞는 거야. 북전기록으로서는.
그렇기 때문에 남전 기록을 가지고 중심 토대로 두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빨리어 본생담(Jātaka) 주석서인 니다나카타(Nidānakathā)라고 하는 데서는 마하마야 왕비가 아살라하(āsāḷhā)달 보름날, 음력으로 6월 보름이게 됩니다. 6월 보름에 보살이 결생되었다는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10개월간 보호하고 출산했다. 그렇게 나와 있고, 다른 기록들에도 보면 전부 입태 날짜를 분명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음력 6월 보름이라고 분명하게 기록을 해두고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입태 날짜하고 출생 날짜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한역 경전들 같은 경우에는 10개월이 아니라 12개월이 되든지, 아니면 입태하자마자 출생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래서 한역 경전들을 보면 그 기술을 어떻게 하냐면, 네 번째 달 또는 두 번째 달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달에 입태하고 두 번째 달에 출생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전부가 그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이게 이게 맞질 않는 거라.
근데 대부분은 보면 10개월간 그런 한역 기록들에도 태내에서 10개월간 있었다고 얘기를 하는데도, 이 입태의 기록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날짜들을 명시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출생을 4월 보름, 물론 한국에서는 4월 8일이라고 얘기합니다. 4월 8일이라고 얘기하는데 4월달에 출생을 할려고 할 것 같으면 입태는 당연히 6월달이 돼야 됩니다. 그게 상식적으로 맞는 겁니다. 그렇게 봐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4월 달에 입태된 것으로 보기에는 맞지 않다 하는 겁니다.
그게 이제 10페이지에 나와있습니다.
그래서 테라와다에서는 입태가 음력 6월 보름, 그다음에 탄생이 음력 4월 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4월 이게 보름이 되는가? 아니면 8일이 되는가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물론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만월일이라고 기록들을 가지고, 보름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앞에 얘기했지만, 만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기록이 돼 있는 것은, 대승불교에서는 해석하기를 갖다가 이게 달이 차고 달이 차는 그 마지막 때를 얘기한다 해가지고 그걸 다 8일이라고 하기도 하고 23일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인제 합니다. 그래서 그거는 이제 해석의 차이이기 때문에 8일이나 아니면 보름이냐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렇지만은 지금 현재는 전 세계에서 UN에서 인정한 것이 4월 보름으로써 인정이 돼버린 상태입니다. 부처님 출생이라고 하는 것이 4월 보름으로 이미 명문화돼서 못이 박힌 상태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부처님이 태어난 날은 그러니까 부처님 오신 날은 4월 보름으로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테라와다 불교에서 여러 의식들을 거행하고 할 때는 아직은 의식들을 거행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의식을 만약에 거행해야 될 경우에는 4월 보름으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 다른 나라에서들도 다 그때 의식들을 거행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합니다.
하루를 할 경우에는 그렇게 하고, 그렇지 않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주일간 수행 기간' 해가지고 8일부터 해서 보름날 회향하는 형태들을 취하기도 하고, 안 그러면 여러 가지 뭐 보시하는 행사라든지 여러 가지 행사를 할 때 8일부터 시작해서 보름날 회향하는 형태들을 취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래도 보름이라는 걸, 여러분들이 좀 알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다음에 부처님의 출가 부분입니다.
출가 부분에 스님이 잘못 기록한 게, 11페이지 그 마지막 부분 한 일곱째 줄 앞에 보면 '아살라하 달 만월의 마지막 밤 시간(4월 보름의 깊은 밤)' 해가지고 괄호 해가지고 '(4월 보름의 깊은 밤) 시간이 되었다'돼있는데, 그게 4월이 아니라 6월입니다.
스님이 이걸 변경한다고 하면서 요 부분에서 깜빡했습니다. 기록에는 네 번째 달이라고 돼 있으니까, 그걸 갖다가 우리 지금 음력으로 환산할 것 같으면 6월이 돼야 됩니다. 음력 6월. 그 부분은 다른 건 다 변경하면서 요건 또 깜빡해서 이걸로 바꿔주시길 바랍니다. '6월 보름의 깊은 밤 시간'입니다.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출가 재일을 갖다가 음력 2월 8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거는 어디에도 근거하지 못하는 겁니다. 어디에도 근거 자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출가뿐 아니라 열반일도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인도력을 중국력으로 환산을 할 때 굉장한 모순들을 지니게 됩니다.
환산을 하면서 그냥 그대로, 쉽게 말하면 '인도력 두 번째 달'을 중국력으로 환산하면서 그냥 그대로 또 두 번째 달이라고 기록한 데도 있고, 이걸 잘못 기록해가지고 두 번째 달이 아니고 정월로 기록한 데도 있고, 어떤 데는 또 3월로 기록한 데도 있고, 어떤 데는 4월로 기록을 한 데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기록의 잘못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그걸 갖다가 그대로 우리는, 지금 보니까 당연히 중국에서 그걸 번역한 거니까 중국력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거라. 중국력이니까 2월이면 중국 음력 2월로 생각을 하게 되는 거라. 근데 그거는 번역할 때 아마 착오들이 있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지금 2월 보름으로 아, 2월 8일로, 8일이나 보름이나 그건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2월 8일로 출가 재일로 하는 것은 상당히 뭔가 잘못돼 있습니다.
사실은 그게 4월 달로, 인도력 네 번째 달을 갖다가 중국에서 번역을 잘못해가지고 2월로 아마 된 것으로 생각이 돼요. 근데 사실은 그거는 2월이 아니고 지금 우리의 음력으로 치면 6월이 됩니다. 6월이 되기 때문에, 출가는 6월이 돼야만이 이게 계산이 맞아떨어집니다.
그래야만이 6년 10개월 고행의 기간이 되지, 그렇지 않고 음력 6월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이후, 만약에 한국식으로 2월이 될 것 같으면 부처님이 성도할 때가 될 것 같으면 7년 2개월이 돼버립니다. 기간이 맞지 않습니다. 어디 기록에도 7년이 넘어가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 출가재일이 2월달이면 당연히 부처님 성도하는 것은 4월 보름으로 돼 있단 말이라.
그런데 이게 안 맞는 거라. 7년 2개월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6년 8개월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8개월을 지냈을 경우에는 그걸 갖다가 이제 만 햇수로 칠 것 같으면 만 6년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햇수로 치면 7년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맞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재일 환산할 때 아마 착오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테라와다의 기록에서는 출가의 날을 분명하게 기록들을 해놔 놓고 있습니다.
"보살은 전륜 성왕의 위의를 버려버리고 아살라하달 보름의 마지막 밤 시간", 마지막 밤 시간이라는 건 삼경을 얘기합니다. "삼경에 출가하였다." 하는 기록들이 분명하게 있고, 다른 스리랑카 역사서에도 그런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음력 6월 보름날 출가한 것으로 테라와다에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부처님의 성도 부분입니다.
부처님의 성도도 대부분은 35세로 돼 있는데, 북전 기록에서는 30세, 24세, 35세, 각각입니다. 왜 이렇게 되느냐면 6년 고행을 계산을 해야 되기 때문에, 출가를 갖다 몇 살로 잡느냐에 따라서 성도한 나이가 틀려집니다. 테라와다에서는 29살에 출가했으니까 당연히 6년 10개월을 더하면 35세 때 성도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북전 전승에서는 19살에 출가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19살에 출가를 하다 보니까 6년을 더하면 몇 살이 돼요? 25살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경전이나 인도의 기록 어디에도 25살에 부처님이 성도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미스터리가 돼버리는 거라. 그렇게 되니까 성도는 35살에 맞출려다 보니까, 아니면 이 부처님이 고행했던 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거라. 12년 고행, 이렇게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16년 고행 이렇게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걸 갖다 짜집기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오역들 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그렇진 않고, 19살에 출가했을 경우에는 25살에 성도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는 없다 하는 걸 분명하게 하고. 그래서 부처님이 성도한 것은 35살.
대승 경전이나 주석들의 대부분을 보면 35살로 또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그 기록들에 대한 것이 소부 경전들 또 다른 주석서들에 분명하게 35세 때 그리고 아시타 선인의 예언에서도 35년 후에 성도한다. 하는 기록들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성도 나이는 35살에 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입멸하는 것은
경전의 기록에서는 부처님이 입멸 장면은 보통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부처님이 진짜 입멸하는 장면, 대반열반경에 나와 있는 부분에 대한 거,
그다음에 또 대반열반경에 입멸을 예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라에게 내가 3개월 후에 입멸할 것이다. 하고 이제 예언하는 부분,
그다음에 부처님의 양대 제자 사리불 하고 목련존자가 부처님 열반하는 모습을 나를 도저히 못 보겠다 해서 먼저 열반에 드는 장면,
이런 것들이 부처님의 입멸에 대한 장면으로써 등장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날짜들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3개월 후에 입멸할 것이다." 하고 예언을 할 경우에, 여러분들이 만약에 부처님이라 할 것 같으면 그 예언을 언제 해야 계율에도 어긋나지 않고 합리적일까?
예를 들면 스님들이 각 지역에서 안거를 지내고 있는데, 그때 부처님이 안거 기간 중에 입멸했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돼요? 스님들이 부처님을 뵈러 오지를 못하게 되는 거라. 지금도 테라와다 스님들은 열반에 드는 날짜를 조정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큰 스님들은. 대부분을 보면 안거 기간 우안거 기간 중에는 열반하질 않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하물며 부처님은 당연히 안거 기간 안에는 열반에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안거가 끝나고 나서 "나 이제 3개월 후에 열반에 들 것이다." 하고 얘기를 해야 되는 거라.
그런데 대승불교권에서는 부처님이 열반한 게 열반 재일이 언제죠? 2월달이 돼. 그럼 2월달이 될 것 같으면은 2월 전에, 그러면 우리말로 11월이니까. 12월 1월 2월, 11월에 예언을 해야 됩니다. 음력 11월에.
근데 음력 11월이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봅시다. 부처님이 안거가 끝나고 나서 후기 안거까지 치면 음력 10월이 됩니다. 음력 10월 보름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 각지에서 부처님한테 이제 점검받기 위해서 오게 됩니다. 부처님은 그래서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10월인데 11월 한 달 기간, 한 달 후에 부처님이 열반을 예언을 했을 것이다? 그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서울까지 가는데 뭐 하루면 이렇게 오지만은 부처님 당시 때는 서울까지 갈려고 할 것 같으면 보통 4요자나 정도 걷는다고 쳤을 경우에는 이 거리일 것 같으면은 400km일 것 같으면 거의 대부분 한 10일이 걸린다고 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왕복 기간을 잡아야 되기 때문에 20일이 걸려버립니다.
그러면 그 넓은 인도 대륙에서 부처님을 뵈러 오는 기간을 계산할 것 같으면 1개월 가지고 그 정도에서 예언을 할 시간적인 여유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이것은 1월달에 음력으로, 음력 1월에 예언을 하시고 4월에 열반에 든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게 사실은 합리적입니다.
또 경전 기록에 부처님이 열반하셨을 때 무우수나무 꽃이 피었다고 이렇게 나옵니다. 인도에는 2월달에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우리로 치면 5월달 넘어 돼야 무우수나무에 꽃이 핍니다. 음력 4월이 되는 거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더라도 부처님 열반한 게 음력 2월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북전에 전하는 기록은 그래서 인도력을 중국력으로 환산하면서 심각한 오류들을 저지르고 있다 하고 추측들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봤을 경우에는 부처님이 29살에 출가를 하고 35살에 성도를 하고 80세에 열반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리고 그 입멸하고 열반하고 출가하고 성도하고, 하는 그 날짜들을 보더라도 지금 테라와다에서 얘기하는 4월 보름 또 6월 보름이 논리적으로도 맞다는 거라.
그렇게 봤을 때는 지금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그래서 부처님이 태어나고 성도하고, 열반하신 날은 4월 보름으로 동일합니다. 한국에는 이게 지금 다 틀리죠. 다 제각각입니다. 다 틀립니다. 논리적으로 이게 맞다는 거라. 그리고 부처님이 입태하고 출가하고 한 날은 유월 보름으로 돼 있습니다. 이것도 논리적으로 맞다는 거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바른 해석 방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다음에 연도에 대한 얘기입니다.
연도는 참 차이가 많습니다. 부처님이 출생한 연도가 언제냐? 열반한 연도가 언제냐? 하는 것은 각각의 기록마다 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올해 불기 몇 년입니까? (수행자: 2557년) 예? 2557년? 왜 2557년을 써요? 북전 전승으로 할 것 같으면 2557년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죠? 왜 그러냐면 부처님 열반하고 나서 100년 후에 아소카 왕이 탄생한 것으로 북전에서는 기록을 대부분은 하고 있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한 100년 정도가 더 있어야 되죠. 더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적어야 되는 거지. 적어야 됩니다. 근데 지금은 다 그게 통일되고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면, 1950년에 세계 불교도 협의회가 태동이 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1956년도에 세계 불교도 회의가 네팔의 룸비니에서 열리게 됩니다. 그때가 언제냐면 부처님이 입멸 2500년 되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테라와다 전승에 의해서.
그때 이제 그 불교도 회의에서 "올해가 불기 2500년이다." 하고 명시를 딱 해버리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사실은 전 세계에서 다 통일이 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뒤에 나중에 1967년도에 그 세계 불교도 협의회에서 인정한 불기를 갖다가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전에는 지금의 불기를 안 쓰고 다른 불기를 썼어요. 그래서 지금 전 세계적으로 불기는 통일되게 돼 있습니다. 근데 한 해 차이가 납니다. 우리나라 달력 보면 2557년이라고 안 쓰고 58년이라고 되어 있을 겁니다. 맞습니까? 58년으로 돼 있습니다.그게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나면 한 살이거든. 테라와다 불교 국가에서는 1년이 지나야 한 살이라. 쉽게 말하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4월 보름이 지나야만 한 해를 연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2500주년으로 했지만, 그다음해 1957년도가 2500년이 됩니다. 1년이 지나야 되니까. 그러니까 1957년 음력으로 4월 14일까지는 2500년이야. 4월 보름부터 2501년이 되는 거라.
근데 우리는 1956년이 이미 2500년이고, 1957년 1월이 되면 이미 2501년이 돼버리게 되는 거라. 그래서 인제 1년 차이가 나는 형태를 띱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도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스리랑카의 하나의 파하고, 버마의 하나의 파에서는 지금 우리나라와 같이 58년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 외에 나머지는 나머지 종파들은 57년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57년이 불기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자, 그런데 왜 그러면은 부처님이 입멸을 한 것이 이렇게 거의 100년 아니면 150년 이렇게 차이가 나게 될까? 왜 그럴 것 같아요?
이게 기록의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각각의 부파에서는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기록을 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록할 때 자기들의 입장을 대변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설일체유부나 이런 경우에는 3차 결집이나 이런 부분에 대한 것들을 빼야 됩니다. 빼고 2차 결집했던 부분들을 아소카왕 때의 연대로써 만들어 놔야 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설상부나 대중부 계통에서는 3차 결집을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3차 결집 때 테라와다의 형식을 띠는 나머지 종파들은 전부 다 흰옷을 입혀서 다 승단에서 쫓겨나 버리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출가자가 아닌 상태로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승단이 존재를 하지 않는 거라. 그런데 지금 현재 자기들은 승복을 입고 생활하고 있거든. 그럼 이 3차 결집을 결집한 것으로써 기록을 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
이런 차이들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들을 갖다가 왜곡을 하게 됩니다.
그게 기록의 문화에서 발생한 오류들입니다. 그전에는 구전으로 전승되어 가지고 왔습니다. 구전으로 전승되어 왔을 때는 이런 불합리한 점이 없었어요. 그대로 지금도 독송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전하는 방식은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면 부처님 말씀을 암송해서 전하는 방법,
또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해서 깨달음에 이르러서 그 방법을 전하는 것,
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두 가지 방법을 다 쓰고 있습니다.
수행과 공부, 그게 중국에서도 그대로 이어져가지고 이렇게 나오게 됩니다. 교학과 수행이라고 하는 것들.
그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교학의 방법이든 수행의 방법이든 어떠한 경우든지 자기가 그걸 해야 됩니다. 그걸 갖다 내가 다 외워가지고 전해야 되는 것이고, 내가 다 실천해가지고 그 경지에 이르르고 나서 그걸 갖다가 전해야 되는 것이고.
그게 쉽게 말하면 불교적인 방법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이게 기록이 되다 보면, 기록할 때 잘못 기록해버리면 오역이 돼버립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그 테라와다 불교의범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스님도 그 불교의범을 만들면서 많은 부분을 고쳤습니다. 많은 부분이 장음 단음뿐 아니라 이게 빨리어에서 도저히 이 용법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바꾸었습니다. 바꾸어가지고 쉽게 말하면 그 의범을 만들었거든.
그 부분에 대해서 이상하면, 오만 자료들 다 뒤집으면,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 그것이 자기도 모르게 변경된 것들이 눈에 띄게 되는 거라. 1950년대에 나온 것들을 봤을 때는 이건 장음이 돼 있는데, 그게 70년대에 나온 것을 보면 장음이 빠져 있어요. 그럼 단음으로 돼 있어. 또는 60년대에 나온 것들은 그 앞에 글자가 뭔가 다른 글자가 하나 더 붙어 있는데, 그 뒤에 거는 그게 빠져가지고 그냥 기록이 돼 있고 그래요. 그래서 이걸 갖다가 전부 다 교정을 이번에 하면서 다 한 거거든 사실은. 그래서 이게 기간이 좀 오래 좀 걸린 것은 있습니다. 기록이라는 것이 이런 것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록된 것들을 토대로 해서 내가 체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걸 갖다 가르치려고 할 것 같으면 오역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체험하지 않는 상태일 것 같으면 기록에 나와 있는 것들만을 가지고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각각의 체험들에 대해서 거기에 맞는 대응법을 개발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불교를 전하는 방법은 이 기록에 의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도. 이걸 갖다가 쉽게 말하면 머릿속에다 다 집어넣고 있어야만이, 그걸 갖다 이해를 하고 있어야만이 그것이 여러분들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은 항상 이걸 ‘어? 뭐가 있더라?’ 하면서 이걸 찾아봐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수행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통해서 수행을 하려고 할 것 같으면 여러분들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똑같은 문제의 상황에 부딪치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거기에 맞춰서 거기에 휩쓸려 들어가 버리게 됩니다. 근데 자기 것이 되어 있을 경우에는 그 상황에 맞게끔 내가 바르게 대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전하는 방법은 그 두 가지 방법이기 때문에 기록을 너무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는 겁니다.
어쨌든 지금은 이미 탄생한 것은 기원전 624년, 입멸은 기원전 544년으로 전 세계 불교도들이 공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거는 어디의 전승도 아니고 테라와다의 전승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테라와다의 전승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그거에 맞춰서 부처님 일대기를 열반 때까지를 연도로써 정리를 해봤습니다.
BC624년에 탄생, BC595년에 출가, BC589년에 성도, 그다음에 BC589년에 똑같은 해에 초전법륜, 그다음에 똑같은 해에 5일 후에 두 번째 설법 무아상응경, 그다음에 똑같은 해에 전도 선언, 그다음에 BC544년에 부처님이 입멸, 그때부터 불기 원년이 내립니다.
그다음 해부터는 1년으로 들어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정리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부처님 탄생부터 해서 부처님이 입멸할 때까지를 연도기로 정리를 해봤습니다.
그래서 일목요연하게 해놨으니까 여러분들이 보고 이해하기가 좀 수월할 겁니다.
중요한 부분은 안에 내용들입니다. 이걸 스님도 쭉 정리를 하다 보니까 ‘아, 참 그 부처님 열반에 들려고 했을 때 이런 말씀을 했구나’ 하면서 그걸 이렇게 쭉 적어 나가다가 보니까, 가슴에 와닿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이걸 그냥 건성으로 읽지 말고 한번 찬찬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부처님 입태부터 해서 열반에 이를 때까지를 갖다가 정리하는 거기 때문에 크게 불편한 부분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이런 형태들은 스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테라와다 불교도들은 다 이런 형태들을 해서 공부를 하고 또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당연히 테라와다 불교를 배우려고 왔으니까 이것으로써 배워야 된다는 거라. 한국적인 방식으로 배울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는 겁니다.
그게 부처님 탄생부터 열반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이해하겠죠? (예)
그것만 얘기를 좀 해드릴게요.
성문, 아라한이 되려고 한다. 그럴 경우에는 갖춰야 되는 것이 아까 뭐뭐 두 가지를 했어요? 공덕행을 쌓는 것, 그다음에 내가 원하는 것 서원하는 것, 이 두 가지를 해야 되고.
그다음에 벽지불과 같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 부처가 되려고 할 경우에는 많은 사람은 여기 해당이 안 됩니다. 사람인 것은 맞는데 남성으로 태어나는 것, 그다음에 세 번째가 완전하게 번뇌를 여읜 아라한에게서 수기를 받아야 돼. 그러니까 아라한이 아닐 경우에는 그 해당이 안 되는 거라. 그다음에 공덕을 쌓고, 그다음에 자기가 그것을 원해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성불하기 위한 것은 8가지입니다.
사람, 그다음에 남자, 그다음에 조건이 갖춰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수메다 때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연등불이 와서 그 진흙이 있어가지고 그 진흙을 메꿀 수 있는 조건들 '헤뚜'라고 그럽니다. 그런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된다는 것, 그다음에 부처님과 마주해서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야 되는 것, 그다음에 출가한 자여야 되는 것, 그다음에 덕을 갖추고 있어야 되는 것, 저번 테라와다 불교 부분 할 때 10가지 덕 부분 있죠? 그런 덕들을 갖다가 갖춰야 되는 것, 그다음에 바라밀 수승한 행위들 공덕행 들을 쌓아야 되는 것, 그다음이 원해야 되는 것, 그 여덟 가지가 갖춰져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성불하기는 틀렸다.
그다음에 대승불교에서 만날 독각(獨覺)이라해서 비하하는 독각이 되기도 여러분들은 해당사항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제자로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 성문(聲聞)이 되는 것, 그것도 공덕행 안 산(한) 사람은 해당사항 없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거는 아라한 되는 것, 그것도 뻬빠지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은 뭘 해야 돼? 세세생생 지나가면서 공덕을 자꾸 쌓도록 해야 되는 거라.
공덕 쌓는 것들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은 이런 조건들도 갖춰지지 않을 뿐 아니라 수행에서도 진척이 없다. 그거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는 거라.
그러니까 괜히 마음을 나쁜 방향으로 자꾸 쓰려고 하지 말고, 좋은 마음들을 자꾸 내려고 그러고, 그리고 그 내는 마음들이 내 마음속에만 있지 말고 말이나 행동으로 자꾸 표출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것이 생활화되지 않으면 수행도 뭐도 아무 것도 못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성불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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