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 175

느낌을 극복하기 위한 분명한 알아차림 (20150313)

* 느낌을 극복하기 위한 분명한 알아차림 (20150313) 위빳사나- 수행을 할 때 수행자는 세 가지 양식의 느낌 (vedanā : 웨-다나-, 감각)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느낌 속에는 세 가지의 바르지 못한 성향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바르지 못한 성향을 제거해야만 수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느낌 안에 일어나는 세 가지 바르지 못한 성향이란, •즐거운 느낌에는 탐욕(lobha : 로-바)의 바르지 못한 성향이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괴로운 느낌에는 성냄(dosa : 도-사)의 바르지 못한 성향이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중간 느낌에는 무지(moha : 모-하)의 바르지 못한 성향이 반복해서 일어납..

Brahmacārī(범행 수행자)와 Brahmacārinī(범행 수행녀)의 위치설정 (20150306)

* Brahmacārī(범행 수행자)와 Brahmacārinī(범행 수행녀)의 위치설정 (20150306) 1. 수행자의 위치 ①. 사회적인 입장에서의 위치설정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비구 상가 비구니 상가 재가의 남성 신도 재가의 여성 신도 ②. 수행의 결과로부터 본 위치설정입니다. 아라한 불환자 일래자 예류자 여기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아라한)의 입장으로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도 아라한들도 같은 수준의 최종 해탈을 한 자입니다. 최초로 깨달은 60명의 아라한들에게 전도 활동을 하라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했을 때, 자신도 아라한의 한사람으로서 세었습니다.(이 세상에는 오직 61명의 아라한이 존재한다!) 그러나 붓다는 해탈의 선구자인 것입니다. 발견자인 것입니다. ..

경행(caṅkama) (20150227)

* 경행(caṅkama) (20150227) 1. 경행이란 무엇인가 수행자들은 네 가지 자세로 알아차림(正念. 정념) 공부를 합니다. 걸으면서, 서서, 앉아서, 그리고 누운 채로 알아차림을 닦습니다. 어떤 자세든 늘 알아차림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역시 알아차림 수행의 으뜸가는 자세는 跏趺坐(가부좌)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몸은 움직임 없이 이런 가부좌 자세로 여러 시간 버틸 수가 없고, 따라서 수행자는 좌선과 경행을 번갈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행이 매우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경행의 성질과 의의 그리고 그로부터 생기는 이로움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알아차림의 실천은 물을 끓이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물을 끓이려면 우선 물을 탕관에 부은 다음, 탕..

담마를 아는 자는 실천 수행하는 자이다 (20150227)

* 담마를 아는 자는 실천 수행하는 자이다 (20150227) 부처님의 시대에 한 사람의 비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불법을 거의 배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게송만 들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기억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의 진심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해로 끝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가지고 체험으로 이르고 있었습니다. 알기 쉬운 말로 아라한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성자는 그리고 많이 불교를 배우려는 흥미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알고 있는 불교의 모든 것은 처음 들은 게송 하나 만이었습니다. 그 성자가 기억하고 있던 유일한 게송은 빨리 경전의 「우다나(자설게)」라고 하는 경의 37번 게송입니다. Adhicetaso appamajjato, Munino monapathesu ..

명성의 함정 (20150213)

* 명성의 함정 (20150213) 사회의 명성을 받는 것이 한 마디로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위험이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명성은 전도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러 곳으로 퍼졌습니다. 꼬살라 국왕도, 마가다 국왕도 불교도가 되었고, 부유한 상인들도 잇달아 불교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시 인도에서 존경받고 있던 사회 지도자인 바라문들의 스승들이 불교도가 된 것입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붓다가 젊은 나이에 왕위를 버려 출가한 것, 보기에도 아름다운 훌륭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 수행을 완성하여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공표하고 있던 것, 확실히 사람을 감동시키는 설법을 하는 것, 카스트의 차별을 모두 버려 버린 것, 모두에게 평등하..

지금의 순간을 살자 (20150206)

* 지금의 순간을 살자 (20150206) 세상의 모든 것은 일순간이라도 멈추는 일 없이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무상」이며, 이것이 존재의 법칙인 것입니다. ¤ 무상은 거역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무상에 거역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과 같이 몸맵시도 좋고, 피부도 탱탱하고, 체력도 있어서,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늙고 병들며 체력은 쇠약해져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죽음이 옵니다. 생명은 무상인 것입니다.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우리는 처음으로 마음의 평온함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짧은 인생 속에서 싸우거나 탐내거나 어리석은 행위를 하면 손해라는 것을 알고, 선한 행위를 하며 인생을 가치 있게 보내려고 하면 결과적으로..

낙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20150130)

* 낙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20150130) 사람의 실행력 혹은 의지라는 것은 길게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곧바로 의지가 사라져 버린 경험은 누구라도 있을 것입니다. 노력하고 마음에 힘을 굳게 주어도 또다시 낙담해 버려 힘이 없어집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자신이 바랄 정도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경우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구나하며 의지가 뚝 떨어져 버립니다. 다음 이유는 자신이 하는 것에 여러 가지 장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안 되면 단념하고 싶어집니다. 다음 이유는 자신이 바라는 결과와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는 자신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이유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스스로 마음에 그릴 수 없..

수행과 장애 (20141219)

* 수행과 장애 (20141219) [기초수행 2] ❍ 수행하는 사람이 지켜야 하는 규칙 ❍ 보디빌더들은 염분과 카페인을 멀리한다고 합니다. 먹는 음식 못 먹는 음식 가려야 하고, 그걸 엄격하게 지켜야 훌륭한 근육이 생겨나고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멀리할 것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멀리할 것을 피하는 규칙을 잘 지켜야 수행에서 힘이 길러집니다. 첫째, 생명체를 죽이는 일. 둘째, 훔치는 일. 셋째, 불건전한 성관계를 갖는 일. 넷째, 거짓말하는 일. 다섯째, 술이나 중독되는 약물을 섭취하는 일입니다. 첫 번째 것을 지키려면 이제 여름에 모기 한 마리도 잡으면 안 됩니다. 방문을 열어두고 전자모기향으로 모기를 방 밖으로 쫓아두고 방충망 모기장 쳐야됩니다. 두 번째 것을 지키면..

생명을 관리하는 2가지 양심 (20141212)

* 생명을 관리하는 2가지 양심 (20141212) 양심은 마차의 2개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쐐기”와 같습니다. 붓다는 양심을 빨리어로 히리(hiri)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과 가까운 성질을 가지는 옷땁빠(ottappa)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리」 「옷땁빠」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입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도덕적 양심」에 가까울 것입니다. 히리와 옷땁빠는 분노나 혐오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리와 옷땁빠는 불건전한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두렵다고 느끼는 매우 한정된 부끄러움과 두려움입니다. 이 2가지가 함께 하여 투명한 도덕적 양심, 성실한 인격의 형태를 만듭니다. 성실한 사람은 아무것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도덕적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무량심(CATU-APPAMAÑÑĀ-CITTA, 四無量心) (20141205)

* 사무량심(CATU-APPAMAÑÑĀ-CITTA, 四無量心) (20141205) 「자비」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불교적 답입니다. 불교도가 목표로 하는 것은 지혜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최종적인 마음의 해탈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범부중생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고, 깨달음을 이루어도 자신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는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떤 방법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자비의 삶을 말합니다. 이렇게 자비와 지혜는 불교의 두 가지 기둥이라고 할 만큼 어느 쪽도 빠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입니다. 독사나 바퀴벌레도 네트워크의 일원입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서로를 서로 지탱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