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브공항 - 업의 지혜_업이 자기자신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 (20141030)
요즘에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아마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려 있을 겁니다. 위험한 게 사람과 사람을 통해서 전염이 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공항을 가보면 연결하는 공항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유럽 어디로 갈려고 하는데 거기까지 바로 가는 것이 아니고 싱가폴이나 태국이나 이런 경유지로 해서 거기서 또 다른 비행기를 갈아타고 유럽까지 가기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게 인제 허브 공항 같은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비행기를 잘못 갈아타면 엉뚱한 데로 가게 되는 거죠.
우리 불교 수행에서 어느 정도 수행해야 적어도 그 허브 공항까지는 갈 수가 있을까? 어느 만큼 공부하면 그 정도까지 가겠어요? 어쨌든 거기까지는 1차적으로 날아가야, 그러고 나서 거기서 바로 목적지까지 갈 수가 있는 지점까지는 갈 거 아니라.
(수행자 대답 : 예류자까지 되어야)
그거는 이미 허브 공항을 지나서 한참 비행 중에 있는 거고, 그래서 예류과에 이르면 비행 중에는 목적지까지는 어쨌든 언제가 되어도 이르게 되는 거죠.
왜 처음에 에볼라 바이러스 얘기를 했느냐 하면 에볼라 바이러스는 나에게 영향을 미쳐가지고 내가 죽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살기도 하겠죠? 그러면 적어도 에볼라 바이러스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사람이 죽음과 동시에 에볼라 바이러스도 동시에 소멸하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적어도 에볼라 바이러스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다음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육체를 매개로 해서 살기 때문에 육체가 죽음에을 맞게되면 마음에 따라서 지가 다음생으로 넘어갈 방법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건데도 그래도 저거보다는 더 위험한 게 있는데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뭐가 여러분들에게는 가장 위험할까? 이생 뿐아니라 다음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수행자 대답 : 사견이 아니겠습니까?)
사견? 사견은 다음생까지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것은 이생이 끝나고 나면 다음생을 받을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나는 거기 때문에 그것은 아니고.
업입니다. 업(業)! 거 왜 허브공항 역할 하는 걸 얘기를 해도 눈치를 못 채?
업을 만드는 것은 보통 번뇌입니다. 우리 마음에 빨려들어가는 번뇌는 반드시 업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 업은 어떤 경우든지 과보를 생성하게 됩니다. 그거는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과보가 이생에서만 끝나면 좋은데 다음생까지도 영향을 미치니까 참 문제입니다.
여기까지 얘기했으니까 답을 알겠지? 허브공항 역할을 하는 게 뭡니까?
(수행자 대답 : 수행)
수행? 수행을 했으니까 싱가폴까지는 갔을 거 아냐?
업이 자기 자신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
깜맛사까따 삼마딧티(kammassakatā sammā diṭṭhi)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게 사실은 불교에서는 허브 공항 역할을 하는 겁니다.
거기까지는 일단 가야 그다음에는 어떠한 경우도 설혹 거기서 미아가 된다고 하더라도 업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주저앉아서 사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 내가 업을 짓는 일들, 좋은 업을 짓도록 하겠다는 그런 거는 하게 된다는 거라. 나쁜 업은 짓지 않을려고 하게 되고.
더더구나 이렇게 업이라고 하는 것도 언젠가는 빨리 이걸 없애버려야 되는 거, 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까지 이르르겠다 싶으면은, 더욱 거기서 비행기 타고 목적지까지 완전하게 가게 되는 거고.
그래서 "수행에서 지혜의 제1단계가 이것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여러분들이 "아, 내가 업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다" 하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를 하고 있을까?
어렴풋이는 이해를 하겠죠? 나쁜 일 했으면 나쁜 결과 온다는 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고, 좋은 일들을 할 거 같으면 좋은 결과 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있어요. 나는 좋은 일 많이 했는데 왜 나한테는 좋은 일이 안 일어날까? 저사람은 만날 나쁜일 해도 왜 저렇게 오히려 로또 같은 그런 거나 당선되고 좋은 일들은 왜 자꾸 일어날까?
업에 대해서 견해가 완전히 확립된 사람은 적어도 그런 마음을 품지는 않게 되겠죠. 업의 결과는 분명하기 때문에!
숨을 들이쉬었으면 내쉬는 결과를 가져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살 방법이 없습니다. 그거는 알죠? 안 쉬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데 그 숨을 하나 들이쉴 때 끊임없이 내가 노력하는 힘이 없을 거 같으면 그 숨을 다 들이쉬지 못하게 됩니다. 다 들이쉬지 못하면 당연히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죽음에 이른 환자들은 숨을 다 들이쉬지 못하는 거라.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해서 숨을 들이쉬고 또 숨을 내쉬게는 됩니다. 살기 위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서 자신은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자신이 하는 일로 인해서 업은 분명하게 결정됩니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럼 적어도 여러분들은 원인·결과에 대한 것들은 호흡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호흡을 통해서 원인·결과에 대해서도 모를 것 같으면 그거 어쩔려고 그래?
어제는 진주에 법회가 있어가지고 거기 불교회관에서 법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법문이 끝나가지고 누가 질문을 한 사람이 하더라고.
"스님, 뭔가 마음의 갈등들이 참 많이 생기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렇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 마음의 갈등이 막 생길 때는.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요걸 할까, 저걸 할까, 어찌해야 될까?
대부분 사람들은 이 갈등을 해결할 길을 찾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빨리 이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갈등하지 않기 위해서 이 문제와 관계없는 다른 것들을 하면서 술을 먹든 뭐를 하든지 하면서 그 갈등들을 싸움 지을려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제자들일 거 같으면 적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물어봤어요. "사성제에 대해서 아십니까?" 그렇게 하니까 "압니다." "뭡니까?" 하니까 "고·집·멸·도" 잘 알아. 고가 있는데 무엇이 원인이 돼서 고가 일어나고, 그걸 이런 식으로 노력하면서 해보니까 그것이 사라지고 없더라 하는 거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거든.
그러면은 마음의 갈등이 있을 거 같으면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아, 내가 마음의 갈등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먼저 아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마음에 갈등이 있는 줄을 알아야 그 갈등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거 아니라?
그런데 사람들은 갈등이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지 않고, 이걸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도출해낼려고, 목표를 향해서 나아갈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선택하는 것들이 꼭 바른 것들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해야 될 것은 그것이 우선이 아니고 '마음에 갈등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먼저 아는 거라.
그런데 그 갈등하는 것이 '어? 뭐 때문에 내가 갈등하는가' 하는 것을 알 거 같으면 문제는 수월해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같으면 문제는 간단한데 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기질적으로 또 습관되어진 것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갈등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빨리 그것들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갖다가.
그래서 마음의 갈등이 생겼을 때는 '아, 갈등이 있구나' 하고 먼저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 갈등은 대부분은 마음이 싸워서 일어납니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하면서 마음이 이쪽 마음 저쪽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갈등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갈등의 원인은 마음이 싸우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럼 싸우는 것들을 중단시켜주면은 마음의 갈등은 적어도 없다는 거라.
그래서 그 갈등을 하는 동안에 마음이 싸우는 동안은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은 지치게끔 됩니다. 그런데 스트레스 받고 지친다는 사실을 알 거 같으면 '아, 내가 이 갈등은 안 해야지' 하고 탁 놔버리고 하면 마음은 고요해집니다. 그럼 그때되서는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평온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갈등이 있을 때는 이게 기본입니다.
마음이 싸우는 것들로 인해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고,
싸우면은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이 지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그 스트레스나 마음이 지치는 것들을 없애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갈등이 있는 것 싸우는 것들을 중지해야 되는 거라.
이렇게 알아야만이 마음에 갈등이 생기는 것들을 안할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문제해결을 '어, 나는 이것을 하겠다' 해서 그것을 해서 쭉 밀고 나가면 되는 거라.
그런데 이렇게 먼저 보지를 않고 먼저 문제해결을 할라고 할 것 같으면 똑같은 문제가 또 생기고 또 생기고 한다는 거라.
뭔가 내가' 아, 이것들은 내가 일으켜서는 안되겠다' 하는 것이 강하게 마음에 자리 잡아야만이 그것이 생겨나지를 않는다는 거라.
마음의 갈등이 나에게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나를 이렇게 지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거 같으면, 그다음엔 갈등 생기는 일이 있어도 갈등을 안 하고, 차라리 뭔가를 바로 하게 된다는 거라.
수행에서 지금은 스님 법문을 듣습니다.
그러다가 스님을 보니까 스님도 보여. 법문도 듣고 들리기도 하고 보이기도 해. 수행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것이 마음의 갈등이 되어야 됩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는 거기 때문에, 두 가지를 지금 내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럼 마음은 어떻게 됩니까? 둘 중에 하나 선택해야 되는 거라.
법문을 안 듣고 나를 보기만 하는 것을 하든지, 아니면 나를 보지는 않고 듣기만 할 건지 분명하게 선택을 해서 그것을 하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수행 잘하는 사람은 법문 들을 때도 스님 얼굴을 보고 있지만 촛점이 없어. 그렇지 않으면 눈을 지긋이 감고 법문을 듣든지. 이미 마음에 갈등하는 것이 없을 거 같으면 듣기만 쭉 하게 됩니다. 그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려 나가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가 유지돼나갑니다.
법문을 어떻게 듣고 그것을 전체를 기억하고 하는 것들도 물론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보다도 그것이 좋은 대상이 되어야 되는 거라. 나에게 수행하기 위한 좋은 대상이 되어야 되는 거고, 마음의 갈등이 일어났으면 그것은 내가 수행하기 위한 좋은 대상이라.
그것을 바르게 해결해야 되는 것이지 그냥 그 문제를 인식하지 않고 넘어가버릴 것 같으면 똑같은 문제가 또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들릴 때 들리는 것만 알아차리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것 같으면, 법문할 때는 보고 듣고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라. 듣기만 쭉 한다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그 법문조차도 나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눈도 닫고 귀도 닫고 그냥 호흡하는 걸 알아차리게 되는 거라.
업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 것 같으면,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힘이 생기는 것이 무얼 집중해야 되는지, 내가 수행대상이 뭐가 되어야 되는지,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서 몰입하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압니다.
그래서 '자-나 삼마-딧티(jhānasammādiṭṭhi)'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허브공항에 갔으면 자기가 뭔 비행기 타는 걸 분명하게 게이트를 확인하고 그 비행기 쪽으로 다가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맞는 비행기를 타고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이 그 비행기가 나를 목적지까지 파리까지 데려다주게 되는 거라.
마음이 뭘 하는지를 잘 모를 것 같으면, 아무리 업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부터 헷갈려버립니다. 진도가 안 넘어갑니다. 아, 내가 지은 행위는 내가 받는 것이다. 뼈저리게 느끼고 안다고 하더라도 또 수행에서 들이쉬고 나면 반드시 내쉰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원인·결과 원인·결과, 일어나는 물질적인 현상이 있으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고, 또 새로 일어나는 들이쉬는 호흡이라는 물질적인 현상이 또 있고, 또 다른 새로운 마음이 있고, 물질적인 호흡도 새로운 것들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도 계속적으로 새로운 것이라는 것, 원인·결과 원인·결과로써만 계속 진행되는 것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집중하는 법을 모르면 깨져버리게 됩니다.
공항에 갔는데 그 비행기 잘못 찾으면 그것같이 낭패는 없다는 거라. 여러분들은 적어도 그런 '냐나(ñāṇa)'에 대한 것들은 분명하게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경전에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수행의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또 집중하는 법을 분명하게 안다고 할 것 같으면 이와 같은 이익이 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수행대상을 앉아서 호흡하는 것만 수행대상으로 할려고 합니다. 소리가 들리면 소리 들린다는 걸 즉시 수행대상으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또는 걸어가면서 걸어가는 발걸음에 수행대상으로 하지 않고 보이는 대상이라든지 아니면 망상하고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망상할 것 같으면 멈춰서야 되는 것이고, 보인다고 할 것 같으면 볼려고 할 것 같으면 그 보면 당연히 걸음은 딱 멈춰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을 자꾸 잊어먹는 거라.
일어나는 대상은 즉각적으로 알아차려야 됩니다. 일어나는 대상을 알지 못할 것 같으면 선정의 이익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선정에 대한 지혜가 열리면 첫 번째 이익이 그렇게 경전에는 나와 있습니다.
"몰입하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그 호흡을 놓치지 않는다." 하는 겁니다.
힘이 약해지면 힘이 약해지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그것이 대상이기 때문에. 그러고 나서 호흡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내가 죽음의 순간이 되면 내가 죽음의 순간에 의식이 일어난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겁니다.
죽을 때 자기가 호흡을 하고 있으면 호흡을 놓치지 않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죽는다 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같이 좋은 일이 어딨겠어요?
집중의 힘이 생기고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법들을 알 것 같으면 적어도 그 하나의 이익은 얻을 수 있다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 이거는 여러분들하고 또 실재하고는 관계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힘들이 죽음의 순간에 바른 수행의 대상이 뭔지를 분명하게 알고 죽음을 맞이할 거 같으면 당연히 나쁜 세계에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라.
경전에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긴 시간동안 인간계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하는 거라.
꼭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생에서 적어도 나쁜 행위 저지를 일들은 애초부터 만들지 않는다는 거라. 나쁜 마음 품을 일도 애초부터 만들지 않는다는 거라. 거짓되고 남을 헐뜯고 나쁜말 하는 것도 애초부터 만들지 않는다는 거라. 말을 하면 말을 하는 것이 대상이기 때문에 대상을 알아차릴 것 같으면 선한 마음들이 항상 일어납니다. 행위하는 것들을 알아차릴 것 같으면 그 행위를 분명하게 알 것 같으면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지를 않습니다.
긴 윤회의 시간을 꼭 따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남아있는 시간 동안에는 반드시 나쁜 행위쪽으로는 쏠리질 않는다는 얘깁니다.
세 번째 이익은 여러분들에게 가장 반가운 것, 도와 과의 기초, 수다원부터 아라한에 이르는 도와 과의 기초가 된다 하는 겁니다. 이제는 그 길을 탔기 때문에 그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비행기가 이륙만 할 것 같으면 큰 문제 없을 거 같으면 목적지까지 간다는 거라. 설혹 또 다른데 불시착하는 한이 있어도 그건 그 항공사에서 알아서 그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게 돼있는 거라.
적어도 그 이륙하는 힘들을 키울려고 할 것 같으면 선정의 힘, 집중의 힘들, 그리고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힘들이 반드시 키워줘야 됩니다.
오늘은 에볼라가 위험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일으키는 번뇌가 여러분들을 미래에 묶어두는 일들을 한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길 바랍니다.
업은 반드시 그 결과를 낳습니다. 그리고 수행의 대상은 분명한 겁니다. 찰나 간에 지금 즉시 일어난 것이 여러분들 수행의 대상입니다. 그것을 놓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14~2015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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