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수바-시따 숫따(Subhāsita-sutta) (20141118)

담마마-마까 2021. 8. 25. 09:00

https://youtu.be/U5dhviEOz0g

* 수바-시따 숫따(Subhāsita-sutta) (20141118)

'잘 설해진, 잘 말해야 되는 것에 대한 경' SN 3-3

 

경전에 '수바시따 숫따(Subhāsita-sutta)'라고 하는 경이 있습니다. '수(su)' 는 무슨 뜻입니까? '좋다'는 뜻이죠. 뛰어나다는 얘기도 있고, 순조롭게 잘 내려간다 할 때 또 수(su)라는 것을 씁니다. 수카, 둑카 할 때의 그 수(su)도 꼭 마찬가집니다. '바-시따' 라고 할 것 같으면 '말한다' 그런 뜻이죠? '이야기 한다'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수바-시따' 라고 하면 '훌륭하게 말해진 것, 훌륭하게 말하는 것' 그런 뜻을 지닙니다. 또 '수바-시따 숫땅'이라고 하면 '잘 말해지는, 잘 말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들을 얘기한 경전'이라고 봐야 되죠.

 

경전을 먼저 들려드리겠습니다.

네 가지 특징을 갖춘 말은 훌륭하게 설해진 것이지 나쁘게 설해진 것이 아니다. 현명한 사람들에게 비난받지 않고 질책당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 번째 훌륭하게 설해진 것만을 말하고 나쁘게 설해진 것은 말하지 않는다.

가르침만을 말하고 가르침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는다.

자애스러운 것만 말하고 자애스럽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는다.

이 네 가지 특징을 갖춘 말은 훌륭하게 설해진 것이고 나쁘게 설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첫 번째 잘 설해진 것이 최상이고 가르침만을 말하지 가르침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고, 자애스러운 말을 하고 자애스럽지 않은 말은 말하지 않는다. 진실한 것을 말하고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옵니다.

 

왕기사가 그것을 받아서 시를 짓기를,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그런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잘 설해진 말이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말 사랑스러운 말만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불화를 가져오지 않고 사랑스러운 것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이것이 잘 설해진 말이니 그것은 영원한 가르침이고 진실 속에서 가르침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이 괴로움을 종식시키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하는 게송을 얘기합니다.

그게 인제 '수바시따 숫땅'이라고 하는 경전 내용입니다.

 

여기는 "네 가지 조건을 갖춘 말에 대한 것"이라는 겁니다.

첫 번째가 뭐겠습니까? 좋게 말해진 말을 하라 하는 겁니다.

말은 어쩔 수 없이 하고 살아야 되죠? 그런데 말을 하는데 감정 없이 말하는 사람 있어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거의 대부분 감정이 섞여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왕 감정이 섞여서 나올 것 같으면 그 감정이 좋은 감정이면 좋은 말을 하겠지. 좋게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쁜 감정이면 나쁘게 말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 스님이 말은 핵연료와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 핵을 이용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든지 다 알고 있다는 거라. 잘 사용하면 이렇게 에너지로써 잘 사용할 수가 있지만, 그게 핵연료로써 누출돼버리면 아니면 그게 폐기물일 경우에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게 누출됐을 경우에는.

감정이 섞인 것 중에 좋은 감정이 섞인 것들은 좋은 역할을 하지만 나쁜 감정이 섞여버리면 그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핵폐기물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아무리 다툼이 있어도 감정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말을 하고 또는 이성만으로써 얘기할 것 같으면 사실은 그렇게 싸울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못하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부처님 당시 때도 그런 게 있습니다. 둘이 참 친한 스님 두 분이었는데 두 분이, 스님들이 보름마다 한번씩 하는 포살 행사가 있습니다. 포살 행사를 가는 길에 한 스님이 소변이 급하니까 아, 나 잠깐 소변 좀 볼게 하고 저기 숲에 가서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기다리고 있던 스님이 소변을 보러 간 스님이 언제 나오나 하고 보니까 스님이 혼자 나오는 게 아니고 그 숲에서 웬 여인하고 같이 나오거든. 그래서 그 스님을 비난을 합니다. 너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한 거냐? 거 왜 여자하고 같이 나오느냐? 이렇게 얘기하는 거라.

그런데 이 소변을 보고 온 스님은 여자가 안 보여. 그러니까 실제로 보이는 게 아니고 따라다니는 겁니다. 나쁜 말로 할 것 같으면 악령과 같은 존재입니다. 나한테 무슨 여자가 있다고 그러느냐? 그런데 상대 스님은 이게 보이는 거야. 여기 옆에 있지 않느냐 하고 말하니까 그래 가지고 싸우게 된 거라. 그래 다른 스님들한테도 그 얘기를 하게 되니까 이 두 스님의 관계가 굉장히 나빠져버린 거라.

그러니까 괜히 모함을 당한 스님 입장에서는 화가 나는 거라. 그전에는 그렇게 친했던 동료 스님인데 그 동료 스님을 비난을 하기 시작하는 거라.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얘기한 다른 동료 스님들도 막 비난을 하는 거라.

 

부처님이 불러갖고 야단을 칩니다. 이 다른 스님들은 네가 다른 여인과 함께 나오는 것을 본 스님들이다. 그럼 그 사람들은 당연히 너를 비난하게 돼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실제 있는 일이든 아니든 간에 봤다는 거라. 그러니까 본 것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고, 그리고 너 그렇게 하면 안된다 하고 얘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괜히 모함을 하지 않느냐? 왜 없는 것을 만들어가지고 얘길 하고 저 사람들이 나쁘다고 얘기를 하느냐는 거라.

너는 실제로 그런 행동을 안 했다고 하더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틀림없이 있다는 거라. 과거생부터 여러 가지 인연에 인해가지고 그런 모함을 당하는 그 조건들을 타고났다는 거라. 그러면은 내가 옛날에 잘못한 것 때문에 내가 이렇구나 하고 생각해서 그걸 고치려고 생각해야지 다른 사람들이 너를 모함한다고 해가지고 네가 그 사람들한테 화를 내서 되겠느냐? 그런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도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또는 나쁜 일들에 같이 끌려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참 억울한 거라, 사람들은. 억울하니까 막 아니라고 얘기하다가 안 되니까 막 다른 것들을 가지고 얘기하고 모함을 한 것들에 대해서 화를 내고 성을 내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성을 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보면 이미 감정이 섞여버리게 됩니다.

그러면은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더욱더 번져버리게 된다는 거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모함할 때 '아, 왜 그럴까?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해서 반성을 하고 나는 그런 잘못이 없다 할 거 같으면, 지금이 없다고 할 거 같으면 '아, 혹시 내가 과거에 그런 것들로 인해서 이런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해서 더욱 조심하게 돼야 되는 것이 맞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괜히 "아니다" 하면서 다른 사람을 욕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거라.

 

그래서 첫 번째 얘기하는 좋은 말만을 하라고 하는 것은 어떤 조건이 되든지 항상 좋은 말을 해라.

남들이 설혹 나를 모함하는 상태가 된다고 하더라도, 또는 내가 아무런 이유없이 그 나쁜 일들에 휘말려 들어가는 어떤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더라도 좋은 말을 하라는 거라. 나쁜 말을 하지 말고. 어떤 상황 어떤 조건이든지 항상 좋은 말을 하라. 자애의 마음, 까루나의 마음, 무디따의 마음, 우뻭카의 마음을 지니고 말을 하라.

 

좋은 말을 하라는 그 첫 번째 이유가 말을 할 때 자신을 괴롭히지마라 라는 얘깁니다. 자기가 좋은 말을 할 거 같으면 자기 자신을 괴롭힐 일은 없습니다. 자기가 나쁜 말을 하면 자신을 괴롭히는 거라. 말해 놓고도 내가 힘들고, 말을 하는 에너지로 인해서 몸도 나쁜 상황으로 바뀌게 되고. 자신을 괴롭히는 일들을 해서는 안된다 하는 거라. 말을 할 때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은 그건 참 어리석은 짓이라는 거라.

 

그다음에 좋은 말을 하라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기 위한 것들입니다. 행위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보다 말을 해서 해치는 것이 훨씬 오래갑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면 그 과보는 안 돌아와? 자신에게 돌아오지 누구에게 돌아가겠어? 그 동료 비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는데 자기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환영이 따라다니는 것도 그 다른 사람을 해치는 잘못 때문에 그런 거라, 과거에.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그 사람이 결국 나쁜 상황이 돼서 죽음을 맞게 되고, 그러니 이생에 태어나더라도 그 스님을 나쁜 방향으로 이끄는 그런 환영들이 자꾸 나타나는 거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도록 해서.

다른 사람을 해치면 그 사람도 나쁜 상황에 빠질 뿐아니라 그 과보는 반드시 자기가 받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해치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좋은 말을 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좋은 말을 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이 있죠!

첫 번째가 뭐에요? 거짓말 하지 마라 하는 거죠. 거짓말 하지 마라.

그다음에 두 번째 양설, 여기선 이말하고 저기선 저말하고 하는 것 하지 마라. 아무리 상황이 그런 말을 해야 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선 이말하고 저기선 저말하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런데 습관돼 있어요. 그런 것들이 보면. 여기서는 좋은 말 아주 상냥하게 얘기해놓고 돌아서 다른 사람한테는 막 그냥 욕하고. 그거 습관들여 놓으면 굉장히 나쁜 상황이 됩니다. 내가 주변에 그런 스님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참 많이 봐왔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굉장히 안 좋은 상황에 처하게 돼버립니다. 오히려 거짓말하는 것보다도 이 양설, 이쪽에선 부드럽게 말하고 저쪽에서는 막 뭐하고 하는 그런 것들은 오히려 거짓말 한번 하는 것보다도 훨씬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에게도 나쁜 상황이 되게끔 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거친 말, 보통 여러분들이 욕설이라든지 비속어 같은 거 아니면 거칠게 말하는 것 이런 것들을 얘기합니다. 마음이 거칠면 말도 거칠어집니다.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거친 말을 일상적으로 잘합니다. 그런데 그거는 마음이 거칠기 때문에. 표준말을 쓰라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거칠게 해서는 안된다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네 번째가 뭐지? (수행자 대답 : 기어)

입에 발린 말? . 사탕발림 식으로 말을 해서 그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나에게 이익을 얻으려 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좋게 말을 하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말은 좋게 해야 됩니다. 좋은 말을 해야 됩니다. 마음에 자비희사의 마음이 있는 상태면 좋은 말을 하게끔 돼있습니다. 잘 사용된 핵연료는 유용하게 쓰여집니다. 잘 수련된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은 참으로 좋은 영향들을 미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좋게 말하도록 하십시오. 좋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 수바시따 숫따에서 얘기한 두 번째, 법만 말하지 법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아라는 거라.

법만 말하는데도 다 말을 못해서 문제가 되는데 법이 아닌 것을 말해갖고 뭐하겠느냐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면 "성스러운 침묵을 유지하라"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설혹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하고 나를 모략을 하고 하더라도 내가 법을 말해야 되는 것이지 법이 아닌 것들을 말해선 안된다는 얘깁니다.

경전에는, 담마빠다 같은 경우에는 뭐라고 돼있느냐면 "찢어진 북과 같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랬을 경우에는 내가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 같으면 찢어진 북과 같이 울리지 않게 하라는 거라. 누가 나를 탕탕 두드리더라도 북이 찢어지면 소리가 울리질 않습니다. 오히려 침묵하라 하는 얘깁니다.

 

대부분 다툼을 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틀린 것들을 얘기할 때 그것을 바로 잡을려고 막 얘기합니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들은 대부분 그 부분들입니다. 나는 이리 생각하는데 자기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그것에 대해서 바르게 얘기해준다고 하면서 그게 다툼이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한번 이렇게 해보면 저 사람이 그 얘기를 바르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안 돼있다 하는 게 판가름이 납니다. 그럴 것 같으면 중지를 해야 됩니다. 찢어진 북과 같이. 내가 오히려 바른 법을 말한다고 하면서 다툼을 만들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이미 비법이 돼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출가스님들 중의 계율 중에서 "한 시간 이상 토론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 시간 토론을 해서 결론이 안 날 거 같으면 이미 그거는 아무리 바른 얘기들을 해가지고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바른 것이 아니라는 거라. 다툼을 증가시켜버리는 거라. 나는 그런 마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증오심이나 원한심들을 계속 증가시킬 뿐이라는 거라.

그게 바른 법을 말하라 하는 의미입니다.

 

법은 어떤 경우든지 다툼이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법을 설하지 않을 경우는 있고 침묵을 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바른 법이 다툼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도 우리 선원 식구들은 잘하는 거는 뭐냐하면 다른데 하고는 다르게 막 서로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하고 싸우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거 참 의미 없는 겁니다. 설혹 자기가 이겼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를 가져? 이미 다툼을 만들어버렸고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해서 이겼다 해서 그것이 바른 법이 아니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바른 법은 다툼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다툼을 만들 상황이 될 것 같으면 침묵하는 것이 바른 법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수바시따 경에서 얘기하는 것이 자애의 말을 하라.

자애가 있지 않는 말은 아예 애초부터 하지 말아라. 자비의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수행을 할 때도 마음이 평온하고 선한 마음의 자리가 되어있지 않는 상태에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에 선한 마음이 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마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거라.

자애로운 마음, 연민히 여기는 마음들을 항상 지닌 채 말을 하라는 거라. 그렇지 않고 나에게 말을 하는데 자비가 없다고 할 것 같으면 중단을 해야 됩니다. 자애가 있지 않은 말을 해서는 안된다 하는 겁니다.

 

경에서 얘기하는 네 번째,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지 진실이 아닌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겁니다.

그거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실을 말해야 되는 것이지 진실이 아닌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이익과 또는 자신의 명예를 가지기 위해서 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들은 진실된 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세간사 여덟 가지를 가지고 하는 말들은 진실된 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 뭔가 말을 한다? 아니면 내가 이런 얘기를 하므로 인해서 내가 조금 더 치켜세워진다? 그것은 진실된 말이 될 수가 없다는 거라. 진실된다고 하는 것은 세간 일로부터 벗어났을 때 진실되어지는 겁니다. 아무런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를 얘기를 해야 됩니다.

 

이게 '수바시따 숫따'라는 '잘 설해진, 잘 말해야 되는 것에 대한 경전' 내용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은 항상 제멋대로 되기가 쉽습니다. 말을 할 때 이런 것들을 주의하지 않을 것 같으면 항상 마음은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 감정이 일회용으로만 해서 끝나버리면 참 좋은데 감정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항상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폭발을 해버릴 것 같으면 말은 걷잡을 수가 없게 돼버립니다. 핵도 밖으로 유출돼버릴 거 같으면 그것은 이미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말을 할 때는 항상 핵연료와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도록 항상 바른말 좋은 말들 선한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네 가지 특징을 갖춘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네 가지 특징을 갖춘 말들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