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자기 파괴를 부르는 수다 (20150604)

담마마-마까 2021. 11. 26. 09:00

https://youtu.be/cNSgadnDjRE

* 자기 파괴를 부르는 수다 (20150604)

 

오늘은 「수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자기 파괴를 불러오는 수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말하는 것도 수행의 일부죠? 그래서 말은 잘하라고 하는데, 수다는 말하는 네 가지 영역에는 속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죠? 거짓말하지 말아라, 그다음에 욕설 같은 거 하지 말아라. 그다음에 남을 이간질하는 말하지 말아라. 그다음에 의미없는 말하지 말아라. 하는 네 가지 종류의 말을 부처님이 설했는데, 수다는 이 네 가지 종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가끔씩 스님들끼리 만나면 뭔가 주제가 하나 탁 나오면 어느 정도 하고 탁 그치면 참 좋은데, 이게 끊임없이 계속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아, 좀 그쳤으면' 하는데도 안 그치면 어떻게 해? 나중에는 내가 그 자리를 나와야 됩니다. 끊임없이 수다 떠는 거와 마찬가지가 되니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다를 떠는 거죠. 경전에도 "분명하게 말을 할 때의 기준을 잡아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거는 여러분들이 다 알 거라고 봅니다. 누누하게 네 가지 기준에 대한 얘기들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은 수다에 대한 얘기들을 하겠습니다.

 

부처님 당시 때 요즘 말로 할 거 같으면 만담가 같은 분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요즘은 만담가가 거의 없죠? 옛날에는 만담가라는 게 있었어요. 자리를 마련해가지고 계속 뭔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말을 합니다.

말을 하는데 그 만담가들도 말을 하는 법을 배워야 만담가가 되는 것이지, 아무데나 말을 계속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가지고 만담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담가가 될 때도 말을 할 때 말을 하는 의미들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그걸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법도 배워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처음에 도입할 때와 중간과 결론을 분명하게 낼 줄도 알아야 되는 거고,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배워야만이 만담가가 되는 겁니다. 함부로 만담가가 되는 것은 아니죠.

 

아마 그런 분이 부처님 당시 때 있었던 모양이라. 그러니까 그분하고 말을 탁 하면 이분은 쉴 새 없이 계속 말을 하기 때문에 중간에 끊을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라. 그래서 왕이 한번은 부처님한테 와서 그럽니다.

"부처님, 저 사람 말은 듣고 싶은데, 좋은 말이기는 한데, 너무 시간 오래 끌고 너무 계속 얘기하니까 참 불러서 조언을 듣기도 겁납니다. 저걸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때 부처님이 그럽니다. 그러면 어디에 누군가 한 사람이 숨어 있다가 그 사람이 말을 할 때마다 입에다가, 요즘 말로 할 거 같으면 염소똥입니다. 염소똥이 어떻게 생겼냐면 동글동글하게 생겨가지고 커피콩 같은 그런 형태를 띱니다. 커피콩 보다 조금 더 클 겁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 입을 벌릴 때마다 중간에 하나씩 하나씩 던져넣어줘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말을 할 때 진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염소똥은 사실은 냄새가 그렇게 안 납니다. 그런데 이게 안으로 들어가 놓으면 몸 안에서 가스하고 냄새들이 역하게 나오는 모양이라. 그래서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왕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당신이 지금 말을 할 때마다 계속적으로 얘기하기에 중간중간에 염소똥을 하나씩 입속으로 넣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역한 냄새가 난다. 지금 빨리 가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마도 당신 내장이 망가질 것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이 만담가가 가서 내장을 청소하고 나서, 그러고 나서 자신이 생각을 합니다. '어, 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계속 수다를 떠는 거는 오히려 자기가 지속적으로 염소똥을 먹고 있어서 자기 스스로 파괴하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얘기하고 살고 있었다는 거라.

 

그래서 오늘은 제목을 「자기파괴를 부르는 수다」라고 이름을 붙여놨습니다.

그런데 말은 참 잘하면 좋습니다. 단지 "수다 떠는 것은 금지하라"

잡담하고 수다 하고는 다릅니다. 잡담은 의미없는 말입니다. 그것은 부처님도 거짓말의 영역에 속한다고 해서 그건 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수다 떠는 것은 그중에는 의미있는 말도 있는 거고, 또 일부는 의미없는 말도 있는 건데, 단지 끊임없이 얘기를 하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의미있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말을 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성격은 아니죠. 미움받는 성격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 부분도 여러분들이 계율에는 저촉이 되지 않지만 항상 명심을 해두어야 되는 부분입니다.

 

부처님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사람이 말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경전에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말을 할 때는 그 주제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할 것!

말을 할 때는 어떤 경우든지 그 주제로부터 벗어난다면 말을 멈추고 다시 그쪽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계속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짧게 얘기할 것!

어떤 얘기든 짧게 얘기를 해야 되지 그것을 길게 늘어놓는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말을 할 때 명확하게 말할 것!

명확하게 발음을 하는 것. 얼버무려가지고 쭉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 하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얘기하는 것.

 

그다음에 네 번째가 소리를 높여서 말하지 말아라!

소리를 높인다고 하는 것은 감정이 들어가는 것들입니다. 말을 할 때는 감정이 섞여버리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을 뭐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소리를 높이지 말아라는 거라. 감정을 넣지 않고 뭐라 할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안 되는데, 감정이 들어가버리면 우선 말이 높아져버립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소리를 높이지 말아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라.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을 써야지 괜히 고급 언어를 쓴다든지 아니면 천박한 말을 쓴다든지 그런 것으로써 말을 하려고 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가 쉽게 인용해가지고 하라.

조금 전에 그 대신과 마찬가지로 말을 하는 것 자체, 수다를 떠는 것 자체가 자기 파괴를 불러온다는 것을 염소똥을 먹는 거와 같다는 식으로 그렇게 일화를 들어서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하라.

 

그런 것들이 부처님이 "사람이 말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에 대한 기준으로 잡아놓은 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그런 것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는 타고나는 것이지 그것은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그걸 훈련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 외에 아름다운 목소리 말고 다른 것들, 조금 전에 얘기한 것들은 자기 자신들이 반드시 길러나가야 되는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경전에 말에 관계된 것들을 부처님이 칭송해놓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는 누가 최고이고, 그다음에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것으로는 누가 최고이고, 그다음에 설법하는 것은 누가 최고이고, 그다음에 말하는 것을 아름다운 시로 만들어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누가 최고이고, 그다음에 내가 말한 것을 의미를 덧대어가지고 쉽게 풀어서 말하는 것은 누가 최고이고, 하는 것들을 쭉 부처님이 얘기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말은 잘하면 그것이 최고가 될 수 있는데, 수다를 떠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누가 최고다 하고 얘기하는 법은 없다는 거라. 수다의 위험성은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를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돼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들을 보면 말을 작게 해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보다는, 말을 많이 해서 그중에서 실수를 한 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하는 것들은 길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 그러면 그런 「수다를 떨지 않기 위해서 부처님이 제시한 4가지 방법」에 대한 것들을 얘기를 하겠습니다.

 

이 4가지를 설한 경전은 「고깔리까 비구경」이라고 하는 건데, 고깔리까 비구 경전을 보면 이런 게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참 잘하고 있는데, 이 고깔리까라고 하는 스님이 사리뿟따 존자를 비난을 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뭐 남들한테는 참 잘 가르치는 것 같은데 돌아서고 나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안 좋은 얘기를 한다, 아니면 사리뿟따 존자가 행실이 참 좋은데 돌아서고 나면 남이 안 보이는 데선 그렇지 않다 하는 그런 얘기를 계속적으로 중얼중얼중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듣든 안 듣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사람들하고 만나면 계속적으로 그 사리뿟따 존자에 관한 얘기를 다른 사람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얘기를 하는 거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참 거북하고 하니까 부처님한테 가서 그 비구스님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부처님이 그때 얘기한 것이 이 4가지 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듣고 그대로 지킬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무카상야또(mukhasaṃyato)' 그렇게 얘기합니다. "입을 제어하라"

이게 말하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내가 이 말을 할 때 자신이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아닌지 이런 것들을 분명하게 하고 나서 말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말을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감정이 섞이게 되어 있고, 그리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말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수다를 떨지 않기 위해서 첫 번째가 입을 제어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 수행하는 사람들은 입을 제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말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말을 하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말을 하는 것은 그것은 수행자답지 못하다는 거라. 말하는 것은 분명하게 자기가 알아차려보라는 거라.

그것은 여러분들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귀가 있기 때문에. 귀로 듣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말하는 것은 자기가 듣습니다. 다른 사람도 듣지만 자기도 듣습니다. 듣는 것에 집중을 하라는 거라. 그러면 내가 실수를 했든지 아니면 말이 길어진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을 분명히 알아차릴 것 같으면 가라앉는다는 거라.

 

귀를 통해서 듣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말을 할 때 입술이 달싹거리는 것으로써 말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진행이 되면 말하는 것들을 가슴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가슴의 느낌으로써 알아차리면 됩니다.

물론 입술의 느낌으로써 알아차리는 방법들도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입술의 느낌과 가슴의 느낌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입술의 느낌은 단지 부드럽고 그것이 거칠고 하는 것들을 느낄 수 있는 반면에, 가슴의 느낌은 아주 다양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감정이 섞여 있을 경우에는 가슴의 느낌을 보면 그 감정을 제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말을 할 때 가슴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좋고, 그런데 그것이 안 될 때는 말을 할 때 입술의 느낌들을 알아차리고, 그것조차도 안된다고 할 것 같으면 자신의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말을 가지고 그것들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적어도 그것은 할 줄 알아야 말하는 것들을 제어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입을 제어를 하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을 하면 끊임없이 수다를 떨게 됩니다. 남들이 불편하든 안 하든 그거하고 관계없이.

그래서 반드시 수다를 끊기 위해서 첫 번째가 입을 제어하라.

 

두 번째 '만따바니(mantabhāṇī)'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가치가 있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내가 그 말을 다시 되새겨 봤을 때 고찰해봤을 때, 그대로 따라야 되겠다는 말을 '고찰하는 말'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럼 말하는 사람도 말을 할 때 내가 이것을 말을 함으로 인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좋은 영향을 받는 말이다 하는 것을 분명하게 생각을 하고 말을 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법을 설했는데 법을 설하고 나서 사람들이 일어서고 나면 뭘 설했는지 하나도 모르고 그냥 다 까먹어버리는 게 있고, 어떤 경우에는 일어나고 나서 그다음 날이라도 또 그 뒷날이라도 그것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아, 내가 그대로 따라야지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가치가 있는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여러분들의 말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것 같으면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말하는 것들이 그 사람의 가슴에 탁 박혀가지고 그것을 다시 되새기고 되새기고 할 수 있는 말들은 그것이 악한 영향을 주는 것이 있고,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남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그런 가치있는 말들이 되는데, 그런 가치있는 말들을 하지 않고 가치 없는 말 가슴에 박혀가지고 악한 감정을 일으키게끔 만드는 것들 그런 것들은 절대 해서는 안됩니다.

 

가끔 자식들이 부모에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되새겨서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들은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할 때 이에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걸 저사람이 다시 되새겨 봤을 때 아, 참 훌륭한 말이구나, 아니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가 있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말을 할 때는 아,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고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수다를 떨지 않기 위해서는 가치있는 말들을 자꾸 할려고 하라는 거라.

 

가치있는 말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수다 떨 만큼 그렇게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수다 떠는 것이 점점 없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수다가 돼버릴 것 같으면 그거는 가치있는 말이 되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말할 때.

특히 이번 경주 같은 경우에 그런 것을 느꼈거든. 스님들이 다 법문을 한마디씩 하다 보니까 다 의미있고 좋은 말들이라. 나중에 사람들이 지겨워하는 거라. 힘들어하는 거라. 힘들어져 버리니까 그 말이 나중에는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거라. 계속적으로 말을 한다는 것은 그와 같다는 거라. 아무리 의미있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가치가 없어져버리는 거라.

 

그다음에 세 번째 '아눗다또(anuddhato)'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흥분하지 않는 것' 입니다.

감정을 가지고 말하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감정을 실어서 말하지 않도록 하라는 겁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감정이 들어가면 말이 높낮이가 있어져 버리고, 말이 진실한 말이 아니고 거짓된 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감정을 실어서 얘기를 할 것 같으면 항상 '나' 중심으로 말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감정을 가지지 않고 말을 해야 됩니다. 감정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에 동조를 해버리면 그사람도 그 감정에 휩싸여 들어가버립니다.

 

"감정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은 세균에 오염된 것과 같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요즘 무슨 바이러스 해가지고 입으로 전파되는 거 있죠? 그거와 같습니다. 자신이 감염되고 죽을 위험성에 있는 것들입니다. 말을 함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거 오염시키게 되는 거라. 감정을 싣지 않을 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데 감정을 실었을 경우에는 그와 같이 세균과 같이 오염돼버리는 거라. 그래서 감정을 가지지 않고 말을 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이 세 가지가 수다를 떨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수다 떨면 안 피곤해요? 스님 같은 경우에는 말을 좀 하고 나면 되게 피곤해. 그런데 꾸준히 수다 떠는 사람들은 보면 안 피곤한 모양이라. 안 피곤하니까 그거 하고 있겠지. 자기 딴에는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의미 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이 버릇이 들어놓으면 누군가를 만나면 말을 안 하면 안 돼. 뭔가를 계속적으로 해야 되는 거라.

 

그것은 바른말,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는 거짓말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지만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뭐라고 그러느냐면 "아름다운 말은 수다떨지 않는 말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감미로운 말, 아름다운 말, 가치가 있는 말을 해야 되는 것이고 아름다운 말들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될 때만이 수다 떠는 것들의 위험성을 알고 이 수다 떠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타까에 보면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하도 거북이가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해가지고 계속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하니까, 백조가 꾀를 냅니다. 저기 히말라야 쪽에 호수가 있는데 굉장히 아름답다. 내가 거기에 너를 데려가 줄테니까 너가 거기 가면 굉장히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그러니까 거북이가 그래 좋아. 그런데 내가 너를 데려다 줄려면 내 동료하고 둘이서 데려다주어야 되는데, 나뭇가지를 우리가 양쪽에서 물테니까 네가 그 나뭇가지 가운데를 물고 있어야 너를 히말라야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 너 혼자 날 순 없으니까. 그럴려면 너는 어떠한 경우든지 말을 하면 안 된다.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가면서 말을 할 것 같으면 떨어져버리지. 자기가 나는 동물이 아닌데. 그것만 하면 내가 너를 아주 행복한 히말라야로 데려다주겠다 하고 그럽니다. 그래 좋다.

 

수다떠는 사람들은 그거 견딜 수 있을 거 같애요? 못 견딥니다. 하늘을 나는데 누가 시비를 걸기를 해, 아니면 누가 자기한테 말을 걸기를 해?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백조가 말을 하겠어,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말을 걸겠어? 전혀 그렇지도 않은데 수다를 떠는 사람은 그걸 못 견디니까 자기 스스로 얘기를 하는 거라. 자기 죽는 줄은 모르고. 경전에는 수다 떠는 것을 그렇게 비유를 해놓았습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파괴로 이끄는 어리석은 것인 줄도 모르고 자기 스스로 말을 한다는 거라.

 

그래서 여러분들은 말하는 것들은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수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고, 말을 하는 것도 반드시 훈련이 필요하다고 알아야 됩니다. 특히 수다는 감정을 가지고 말하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말은 감정을 가지고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을 가지면 감정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나'라고 하는 것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 점을 명심하고 아, 내가 수다 떠는 성격이 있다 할 것 같으면 그러지 않도록, 이것은 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