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의 힘 (20150702)
오늘은 「선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조그맣게 선한 일들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들을 간과하는 수들이 많습니다.
아마 보통 출가한 스님들 같은 경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출가해가지고 하는 것들이, 조금 더 선한 일들을 많이 해가지고 공덕을 더 많이 쌓기 위해서 출가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행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선한 마음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선한 마음들이 일어났으면 그 결과는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지 항상 알아차릴려고 합니다. 밥을 먹을 때든 아니면 걸어갈 때든 뭐든 옷을 씻을 때든 어떤 것이든 그렇게 합니다. 선한 공덕들을 더 많이 쌓는 계기들을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지 출가한 스님들은 보면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을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선한 마음들을 지속해서 일으켜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걸 자꾸 간과하는 수들이 있습니다.
'뭐 조금 하는 이거 뭔 영향을 미치는가?' 이렇게 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항상 선한 마음이 자꾸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악한 마음들이 일어나는 것들은 방어를 하고 선한 마음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됩니다. 그럴려면 끊임없이 뭘 하든지 그것들을 알아차릴려고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출가한 스님들이 하는 게 두 번째가 뭐냐면, 그런 선한 일들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과보가 있더라도, 그것은 윤회의 굴레에 있는 것이다 하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해서 선한 과보를 받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조금 더 행복해지고, 다음 세상에 좀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건 윤회의 굴레에 있는 것이지 윤회를 벗어난 상태는 아니라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 조금 더 내가 행복하다는 것뿐인 것이지, 그렇다고 그 행복이 닙바나의 행복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는 생각을 강하게 합니다.
어떻게든지 이생에서 완전하게 해탈에 이르도록 하는데 전심전력하게 됩니다.
대부분 출가한 스님들은 그 두 가지는 항상 잊어버리지 않을려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출가한 스님들만 그리해야 하는가? 여러분들도 꼭 마찬가지지.
그런데 그럴려고 하면 그 시발점이 되는 조그만 선한 일들에 대해서도 그 힘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들을 자기가 스스로 자꾸 알도록 해나가야 됩니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 당시 때 깟사빠 존자 밑으로 출가한 스님이 한 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스님은 출가 생활을 해봤지만 별로 재미가 없거든.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끊임없이 알아차림을 유지한 것도 아니고, 사마디 수행을 통해가지고 완전히 삼매를 경험한 것도 아니고, 별로 재미도 없어.
특히 사마디 수행 같은 경우에는 초선정까지는 스님들 대부분이 그것은 선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뭐냐면 초선정에 든다고 하더라도 번뇌들이나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것은 그대로 일어납니다. 단지 대상을 알아차리는 힘이 좀 더 강해진 것뿐인 것이지.
그런데 이 스님 같은 경우에는 출가해서 재미가 없으니까 다시 환속을 해버립니다. 해버렸는데 선한 마음을 지니는 것, 선한 공덕을 쌓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알지를 못했기 때문에 금방 악에 물들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되고, 결국 잡혀가서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7일 후에 단두대에 목이 짤리는 선고를 받았거든.
사리뿟따 존자가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이 너무 불쌍한 거라. 저놈의 자식이 조금만 더 자기가 열심히 했으면 환속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환속해가지고 저렇게 나쁜 짓은 안 할 건데 하는 마음이 드는 거라. 그러니까 조그맣게 자신이 행했던 선한 것들도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쉽게 악한 일들을 저지르게 되는 거라.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가 그 사람한테 가서 그럽니다.
"네가 그래도 출가해서 잘한 일 뭐 없냐?"
"나는 그래도 나쁜짓 안 하고 법회에 꼬박꼬박 참석해가지고 법문은 들을려고 했습니다. 수행은 안 했는데 그거는 할려고 자꾸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중함을 몰랐던 거라. 그때 일으켰던 선한 마음들, 그리고 그 선의 힘이 얼마만큼 크냐 하는 것들을 간과를 해버렸다는 거라.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한테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그 스님이 '아, 그래도 내가 도와 과에 이르지는 못하고 별실이 수행에 진척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건 없이 잘 살았구나. 그래도 꼬박꼬박 큰스님들 법문하면 법문 들을려고 하고, 선원에 오면 청소라도 할려고 그러고, 이 방석이라고 깔려고 그러고, 그런 게 있으니까 내가 참 잘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딱 미치게 되는 거라.
수행은 언제 시작이 되느냐면, 이렇게 해서 마음이 '아, 내가 선한 일들을 한 것이 참 잘한 것이다.'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쉽게 말하면 선한 마음으로 마음이 이동해서 그 마음이 일어나게 됐을 때 마음은 차분해집니다. 고요해집니다.
그래서 그 생각이 미치자 '아, 내가 이 선한 것들의 힘을 간과했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드는 거라.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자신은 내일 죽게 돼있거든. 그러니까 내일 죽음을 앞두고 내가 이래가지고 죽어가지고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이 드는 거라. 죽음은 어디 있는가 하고 살펴보게 됩니다. 호흡을 못하면 죽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하게 됐을 때 호흡을 딱 관찰하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선한 일을 했던 것들을 기억함으로 인해서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 아주 순조롭게 돼버립니다. 그게 바로 선의 힘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가 창을 찔러도 해침을 당하지 않는 상태, 그 알아차리는 것이
내일 당장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까 더욱 경각심이 일어나는 거라. '아, 이거 그냥 계속해야 되겠다'는 거라. 그 자리에서 묶여있는 상태에서 탁 탈출을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는가? 묶여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저렇게 탈출을 할 수가 있는가? 그래서 결국 그사람은 왕의 특명에 의해서 죽이지 못하고 다시 살릴 수 있게 되는 거라.
조그맣게 자신이 했던 선한 일들에 대해서 회상하고 기억함으로 인해서 그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게 선의 힘들입니다.
경전에서는 선의 힘을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첫 번째 "선의 힘은 불길과 같다. 불꽃과 같다." 하고 얘기합니다.
한번 번져나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선의 힘을 일으키기가 힘드는 것이지, 그 일으킨 것들을 기억만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힘으로 인해서 큰일들을 만들어낸다는 거라.
여러분들이 악한 마음이 들 때나 또는 수행이 잘 안 될 때, 자신을 한번 돌아보라는 거라. '내가 어떤 선한 일들을 했는가?' 그거 기억하고 회상함으로 인해서 '아, 내가 그래도 참 잘했구나' 하는 마음이 딱 드는 거라.
그러면 마음은 선한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요해지고 침착해지는 역할들을 하게 되는 거라. 대상을 알아차리기가 훨씬 수월하게 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선한 마음을 일으켰다 해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선한 과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윤회의 굴레에 해당이 되는 겁니다. 좀 더 좋은 결과를 받은 것뿐인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으로부터 벗어납니까?
그것으로부터 손을 놔버려야 됩니다. 번뇌로부터 벗어났을 때!
내가 선한 일을 했다고 하는 것에 대한 생각조차도 놔버리게 될 때 윤회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선한 마음 선한 것의 힘으로 인해서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진 상태에서, 그러한 것들도 놓아버리게 될 때, 대상을 그냥 그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죽음이 호흡 간에 있다는 강박감을 일으켜서 그 죽음에 대한 생각조차도 놔버렸을 때 호흡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되는 겁니다.
그랬을 때 그 선의 힘은 불길과 같이 자기 자신을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선의 힘은 불길과 같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두 번째 "선의 힘은 식물과 같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종자, 씨앗을 심으면 그 씨앗이 자랍니다. 그런데 씨를 심지 않으면 그 나무가 자랄 이유가 없습니다. 선은 내가 선한 것들을 심어놓으면 그것은 반드시 자랍니다. 그런데 자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후가 안 맞든지, 물이 안 맞든지, 여러 가지 조건이 안 맞으면 그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선이라고 하는 씨앗을 싹 튀우기 위해서는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바라밀을 행할 때는 그 바라밀의 공덕으로 인해서 내가 수행에서 한 단계 진척하는 한 단계 높여주는 역할을 할 때 그 바라밀의 공덕이 가장 큰 겁니다. 그 바라밀로 인해서 자기가 지금 현재 받는 과보만을 생각을 한다 할 거 같으면 그것은 바라밀의 공덕을 적게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수행이 잘 안 될 때는 그것은 선한 바라밀들이 한 단계 수행을 진척시켜주는 역할들을 합니다. 그래서 선한 일들을 행한다고 할 거 같으면 그 선한 일들을 한 것들은 반드시 내가 닙바나에 이르기 위한 도구로써 자꾸 생각을 해야 됩니다.
지금 현재 내가 받는 어떤 결과물로만 생각할 거 같으면 그것도 윤회하는 굴레에 해당되는 것뿐입니다.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재산을 움켜쥐고 있다가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 재산을 다음 세상에 가져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가도 보시하는 행위들을 해서 그 선한 행위들로 인해서 선한 결과를 받습니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고 그렇게는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 결과도 윤회의 굴레에 있는 것이지, 그리고 그 결과도 항상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두번 받고나면 그 결과는 끝나버립니다.
그럼 그 결과 받는 것도 사실은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려놓듯이 선한 결과에 대한 것도 집착을 버려버려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내야만이 이 식물과 같은 선의 힘들이 싹이 트게 됩니다.
선한 행위를 한 것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받습니다. 그것을 부정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생각해버릴 것 같으면 자신은 그 선의 힘에 대한 영향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싹을 틔우지 못하는 역할들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의 힘은 식물과 같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선의 힘은 바나나 나무와 같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바나나 나무는 한쪽 귀퉁이만 살짝 잘라서 땅에 놔둬도 거기에서 다시 바나나 나무가 생겨납니다. 그게 바나나 나무의 특징입니다. 그 잘린 거기에 바나나 나무의 세포들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그것이 뿌리를 내려서 바나나 나무가 새로 자라게 겁니다.
선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바나나 나무와 같다 하고 얘기합니다. 잘려버렸다고 하더라도, 그 잘린 것들로 인해서 다시 또 나무를 이루도록 하는 역할들을 합니다. 지금 현재 선한 일들을 짓지 않는다고 해가지고 그것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이와 같이 선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하찮게 여길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조그만한 선한 일들을 한 것들은 '아, 내가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은 일으켜야 되지만 그것에 대한 집착을 또한 버려버리게 될 때, 더 큰 과보들을 가져오게 되고, 또는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결과들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경전 곳곳에 보면 그런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길이 울퉁불퉁하니까 사람들이 다니기 좋게 길을 다듬어주는 거, 조그만한 선한 일들을 한 것들로 인해서 천상에 태어났다는 거라. 또는 출가한 스님에게 탁발 하나 정성껏 공양 올린 것 그것으로 인해서 범천계에 태어났다는 거라. 조그만 선한 것들이지만 그 힘은 굉장히 크다는 거라.
그런데 그것들을 잊어버릴 것 같으면 선의 힘은 발휘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선의 힘은 아까 마하깟사빠 존자의 제자와 같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또는 윤회로부터 탈출하게 해줍니다.
또는 그 선의 영향으로 두고두고 선한 마음들을 회상하면서 일으킬 수가 있는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이 행하는 선한 일들은 그와 같은 힘들을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선의 힘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악의 힘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똑 마찬가지로 악도 그와 같은 힘을 가집니다.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선한 일을 행할 수 있을 때 선한 일들을 자꾸 행할려고 해야 됩니다. 또한 그 선한 일을 행한 것들에 대해서 기뻐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또한 그 선한 일들을 한 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들을 버려버려야 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길입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데도 행하지도 않고 선한 것들을 행한 것에 대해서 기뻐할 줄도 모르고, 그리고 선한 것들을 행한 것들에 대해서 집착을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오히려 악한 것의 힘을 키우는 역할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행할 수 있을 때 선한 일들을 행하라.
그러한 선한 것에 대해서 기뻐할 줄을 알아라.
그러한 선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아라.
이것은 여러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됩니다.
그것이 선의 힘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선의 힘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길입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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