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법문 교재(프린트물)

눈앞의 즐거움이라는 함정 (20160819)

담마마-마까 2022. 4. 15. 09:10

* 눈앞의 즐거움이라는 함정 (20160819)

 

사람은 자주 잘못을 범합니다. 잘못을 범하지 않는 인간은 세상에 없기 때문에, 잘못을 범하는 것이 인간의 특색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잘못을 범한다는 이 사실을 이해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 낙담만 하지 않을 수 있고, 남도 자신처럼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잘못에 대해 용서하고 이해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것이 훌륭한 인간의 삶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세상에는 인간으로서 적합하지 않은 부류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속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잘못이 알려지면 용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타인이 잘못하면 단호히 허락하지 않고 그것을 비난합니다. 이러한 성격은 인간관계를 나쁘게 합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우선 자신이 자주 잘못을 범한다고 하는 것, 그것을 타인이 용서해주면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는가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도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을 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해해서 자신도 그것을 용서할 의무가 있다고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잘못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지만. 우리는 사람이 잘못을 범하면 용서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사람이 잘못을 범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잘못을 범한다고 하는 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현상입니다. 실수를 범하고 싶고. 실패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올바르게 행동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디선가 잘못을 범해 버립니다. 방어책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런데도 잘못을 인류로부터 완전하게 없앤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사람은 자신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픔을 느꼈던 적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모릅니다. 사람의 고민이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은 자신이 맛본 고민, 괴로움의 경험을 타인에게 비추어서 타인의 고민,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경우에도 자기중심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잘못이 적은 삶의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항상 타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법이 생기면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때에도 그것을 타인에게 비추어 본다면 자신의 행동은 실수가 적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타인에게 충고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 경우도 곧바로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부터 사용하려고 하는 말, 자신의 태도를 타인에게 비추어서 만약 타인이 이러한 말로, 이러한 태도로 자신에게 충고한다면 자신은 어떤 기분으로 받아들일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라면 자애롭게 충고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이것은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충고하면 잘됩니다.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기에 잘못을 범한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중심으로 자신의 형편에 의해 사물을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잘못을 범하는 길입니다. 가끔 욕구, 성냄, 질투, 방만, 라이벌 의식 등의 감정으로 넋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때의 행동도 모두 잘못입니다. 반드시 그 후에 후회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알기 쉽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과 상가에 막대한 보시를 하고 지지해 준 아나따삔디까라는 장자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돕는 것이 그의 성격 그 자체였기 때문에 불교 상가 이외에도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이나 궁핍한 사람들에게 보시를 행하며 돕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장사로 부터 들어오는 수입이 적어져서 그의 재산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장사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보시는 재산을 생성하지 않는 쓸데없는 행위입니다. 그의 수호신은 그를 걱정해서 ‘상가로의 보시를 그만두고 편히 지내세요’ 라고 말했지만, 그는 반대로 자신의 수호신을 집으로부터 내쫓았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눈치 챈 수호신은 아나따삔디까의 장사를 궤도에 오르도록 도와주며 자신의 실언에 용서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사하는 입장으로부터 생각하면 보시는 재산의 낭비입니다. 세상 누구든지 그처럼 생각합니다. 지혜를 가지고 생각하면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확정하는 행위입니다. 일반 사람에게는 눈앞의 결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행동하고 큰 손해를 보고 큰 실패를 경험합니다.

 

이것은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고, 공부가 재미없고, 친구와 노는 것이 즐겁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눈앞에서는 좋은 것이 안 보이지만, 장기적인 시점에서는 훌륭한 결과를 낳는 행위가 많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결코 불행하게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앞의 결과에 눈이 먼 것이 인간의 불행과 실패의 원인입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좋은 것은 의미 없고 재미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를 불행과 파괴로 이끄는 행위는 매우 재미있게 느낍니다. 마약, 술에 빠지는 것, 등은 알기 쉬운 예입니다. 이 법칙은 인류에게 있어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눈앞의 재미있는 결과만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잘못의 근본 원인입니다.

 

***이번 포인트***

 

* 잘못은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용서하는 마음은 매우 소중합니다.

* 할 수 있는 한 자기 중심적이 되지 않게 노력하면 잘못이 적어지게 됩니다.

* 행동하기 전에 상대의 기분을 자신의 일로 보는 것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눈앞의 좋은 결과는 장기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의 원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