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탈에 이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八支聖道)의 순서 (20160319. 서울)
● 진정한 자유의 순서 요약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른바 에고라고 하는 나(atta)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순서가 있습니다.
1. 마음에 맑고 깨끗한 감정을 유지하고 생활한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자아로 더러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맑고 깨끗한 감정을 삽입합니다.
2. 망상을 멈추기 위해 현실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관찰한다.
어떻게 해서든 망상을 멈추기 위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상을 관찰하려고 합니다. 이른바 사고는 하지만 망상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발견해서 자아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난다.
자아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아는 원래 없으니까. 자아가 있다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감정은 번뇌입니다. 기본적인 번뇌는 욕구·분노·무지입니다.
욕구에는 동료가 있습니다. 허세, 오만 등입니다.
분노에도 동료가 있습니다. 질투, 낙담, 후회 등입니다.
무지의 동료는 자신의 의견에 매달리는 것, 자아 등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감정은 사람에게 항상 있습니다. 그러한 무지는 욕구와 함께 행동합니다. 무지는 분노와도 함께 행동합니다. 무지는 자기 스스로도 행동합니다.
그러나 욕구와 분노는 조합은 만들지 않습니다. 성질이 다르므로 함께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무지가 이들과 항상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무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제 순서의 설명에 들어가겠습니다.
● 1. 마음에 맑고 깨끗한 감정을 유지하고 생활한다.
올바른 사고를 한다는 것은 알기 쉽게 말하면 성냄, 미움, 해를 주는 감정의 망상을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완벽한 사고는 무리입니다. 그래서 그중에서 몇 가지를 선택합니다.
⓵ 제일 위험한 것을 먼저 멈춘다.
분노의 사고만은, 미움의 사고만은, 타인에게 해를 주고 싶은 것만은, 보복을 하고 싶은 것만은, 등 그중에서 가장 위험한 하나는 완전하게 멈추도록 노력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상을 완전하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제일 위험한 것만은 먼저 멈추도록 합니다.
⓶ 욕구가 확대되는 망상을 멈춘다.
완전하게 멈추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가 들어오면 갖고 싶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욕구가 계속 확대됩니다. 욕구가 확대되어도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을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확대되는 욕구에 목을 맵니까? 그래서 욕구를 확대하는 사고는 금지입니다. 욕구가 확대되는 사고가 있었다는 것은 당신이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망상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그 옷을 사고 싶은데∼, 그 가방을 갖고 싶은데∼. 그것은 200만원이라서 너무 비싸다. 그러나 갖고 싶다~, 사고 싶다~, 이것은 위험합니다. 나에게는 관계없는 것,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그래서 욕구가 확대되는 망상이 있으면 위험합니다. 병입니다. 이것은 멈추어야 합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욕구를 확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⓷ 타인에 대해서는 온화한 사고를 유지한다.
어떻게 그 사람을 괴롭힐까가 아니라 온화한 사고를 유지해야 합니다. 평화를 유지하는 것,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 등을 사고합니다.
⓸ 욕구로부터 멀어지는 사고를 실천한다.
자신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00만원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가방을 사는 것이 아니라, 100만원으로 나는 어느 정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라고 사람을 돕는 것을 생각한 편이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음에 새로운 사고를 삽입하는 것, 맑고 깨끗한 사고를 삽입하는 것,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자비희사의 생각을 실천한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하기를!】이라고 매일 생각해서 마음에 맑고 깨끗한 사고
가 유지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아직 망상이 정지한 것은 아닙니다.
⓹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지하는 오계의 이익을 반조한다.
5계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지하는 피드백이 됩니다.
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노력하고 있고 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망상을 멈추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판단을 해서 나쁜 말과 행위를 멈춘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멈추었습니다.
죽이지 않는다고, 욕심내지 않는다고, 그릇된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결정했기에,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 어떤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신의 더러워진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피드백하게 됩니다.
⓺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자비희사에 근거해서 행동을 해본다.
자비희사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하기를!】 이라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런 마음을 지닌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능력 범위에서 사람을 돕거나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위로해 주거나 하면 됩니다.
그래서 첫 단계에서 팔지성도의 바른 사유(sammā saṅkappa), 바른 언어(sammā vācā), 바른 행위(sammā kammanta), 바른 생활(sammā ājīva)이라고 하는 4가지를 실행하게 됩니다.
● 2. 망상을 정지하고 현실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관찰한다.
이것은 이성편입니다.
첫 단계에서는 자비의 명상을 하고, 사고를 컨트롤 하고, 계율을 지키는 등 종교적인 것 같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먼저 이성을 기릅니다.
⓵ 먼저 쓸데없는 망상은 삼간다. 과거를 생각해 내거나 장래를 고민하거나 기대하거나 하는 것을 삼갑니다. 현재 지금의 문제라도 쓸데없는 망상은 삼갑니다.
⓶ 입증할 수 없는 이야기는 멈춘다.
남의 말을 옮기는 것, 비방하는 것 등은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입증할 수 없거나, 증거가 없으면 멈추어야 합니다.
더불어 신화, 신비적인 이야기, 신탁, 초능력, 기적 등의 이야기는 입증할 수 없으면 일체 멈추어야 합니다.
입증할 수 없으면 망상이 되어 폭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이성에 의지해야지, 신에 의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⓷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지, 해탈로 나아가는 것인지를 살펴서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사물을 보도록 인도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귀하게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인지 아닌지, 입증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를 조사합니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 봅니다. 이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특색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고나 개념에 대해서도 1·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2·도움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 3·입증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 4·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는지 더러워지는지, 5·인격 향상에 도움 되는지 도움 되지 않는지 조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는 이 5가지로 분별해 보아서 버릴 것은 버립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망상의 98%정도는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맑고 깨끗한 사고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망상을 줄이는 방법은 이 5항목으로 나누면 정신적으로 성숙합니다.
다음은 실행편입니다.
⓸ 악사고와 악행을 멈추고 선사고와 선행을 하도록 노력한다.
이것을 팔지성도에서 바른 노력(sammā vāyāma)이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천 가지 게송을 독송하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고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욕구나 분노를 지닌 채 노력해도 바른 것이 아닙니다. 뭐든지 노력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밖에 목표를 설정해서 「아! 이렇게 되고 싶다」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자신의 악사고와 악행을 찾아내서 그것을 없애고 고치도록 해나가면 좋습니다.
처음은 나쁜 점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없애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점점 작은 나쁜 버릇 등도 없애도록 노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좋은 일의 경도 같습니다. 비록 작은 좋은 일이라도 노력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선행으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행을 늘려 가면 좋습니다.
나쁜 사고, 나쁜 행위를 그만두고 좋은 사고, 좋은 행위를 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에의 길입니다. 신뢰받는 훌륭한 인간이 되는 길입니다.
⓹ 정보는 접하는 대로 그대로 두고 사띠한다.
해석하지 않고, 사고하지 않고 「사띠」한다.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벽이 보이면 깨끗한 벽이다∼해서는 안 됩니다. 「보인다」로만 알아야 합니다. 들리면 「소리」 「들림」으로만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가 되면 망상이 됩니다. 이건 어려운 훈련입니다. 이 훈련을 거듭해서 데이터만을 취합니다. 위빳사나 수행으로 그것을 훈련합니다. 수행은 「지금의 순간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데이터만을 취해야지 데이터를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당히 어렵지만 해 보면 올바르게 알아차리는 것에 의해 욕구나 분노는 멈추고 마음은 깨끗하게 되어 갑니다.
또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선한 요인이 필요하지만, 그 모든 선한 요인을 사띠(sati)가 끌어들입니다. 사띠를 분명하게 실천하고 있으면 집중력이나 지혜, 노력 등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좋은 요인이 모두 따라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정진하라, 지혜를 길러라」라고 하는 것보다「사띠가 끊임없도록 노력하라」라고 계속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팔지성도의 바른 알아차림(sammā sati)입니다.
⓺ 그리고 집중력을 키운다.
집중력을 키우는 것으로 보다 명확하게 관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집중력이 없으면 소리가 접한 순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벌써 망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극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대상에 철저하게 집중해서 마음에 들어오는 다른 정보를 차단하는 훈련을 계속하여서 마침내 강력하게 집중하게 되면 소리만 접해서 사라지고 접해서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또한 수행을 방해하는 번뇌인 「욕구·분노·졸음·혼침과 후회·의심」, 이런 장애가 억제 당합니다. 그러면 수행 대상과 자신이 하나가 된 상태로 흘러가는 것 같은 경험이 일어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고 망상이 일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을 하면서 집중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키우면 보다 선명하게 데이터만 접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팔지성도의 바른 집중인 바른 삼매(sammā samādhi)입니다.
이로써 팔지성도의 7가지 항목이 끝났습니다.
● 3.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발견해서 자아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난다.
지혜인 바른 견해(sammā diṭṭhi)를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을 계속하면 사물은 인연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저것은 이것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압니다.
예를 들어, 붉은 꽃이 여기에 있으면 망상하면 붉은 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릅니다. 빛이 희기 때문에 붉게 보일 뿐입니다. 「빨강」으로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럼 붉은 꽃에 적외선을 비추면, 혹은 자외선을 비추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이쪽에서 느끼는 것은 눈에 닿는 원인에 의해서 바뀌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보이는 것, 들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식」마저도 자신이라고 하는 실감과 같이 인연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성립되는 것입니다.
⓵ 고정된, 변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 다양한 인연에 의해서 합성된 신기루와 같은 것에 집착해 왔습니다. 「나」라고 말해 온 것은 신기루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는 없는 것이다」라고 발견합니다.
⓶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발견한다.
지혜는 박식함이 아니라 이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실은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에고에의 착각이 사라져 갑니다.
⓷ 지혜가 생기면 지금까지 있던 자아라고 하는 착각이 없어진다.
계속 한층 더 실천하면 자신이라고 하는 실감마저도 실체가 아니라 비어있음을 발견합니다. 깨달음에는 4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해탈합니다. 이것으로 사람은 자유롭게 됩니다.
노력하는 것에 의해, 지혜를 개발하는 것에 의해, 마음의 더러움을 모두 떨쳐버리는 것에 의해서만 마음의 자유를 획득합니다. 이런 3단계의 순서에 의해 자아의 착각은 사라집니다.
Paccattaṁ veditabbo viññūhīti.
(빳짯땅 웨-디땁보- 윈뉴-히-띠)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진리를 스스로 분명하게 이해하여 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 > 법문 교재(프린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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