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법문 교재(프린트물)

어른이 되는 길 (20160930)

담마마-마까 2022. 4. 30. 09:10

* 어른이 되는 길 (20160930)

 

탐·진·치를 지닌 아이인 채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성장이나 나이가 먹어가는 것과 함께 마음도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어른은 압도될 것 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마음의 어른만큼 도움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성장의 정도입니다.

 

■마음의 평안이 가지는 힘■

 

불교에서 지혜 제일은 사리뿟따 존자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도 인도 사회에서 뛰어난 지식인이었습니다. 인도의 모든 종교철학을 섭렵한 사리뿟따 존자가 진리를 구하여 유행을 시작한 그때에 깨달음을 이룬지 얼마되지 않은 앗사지 존자를 우연히 만났습니다(앗사지 존자는 부처님의 최초 5명 제자 가운데 한분입니다. 사리뿟따 존자와 같은 뛰어난 지식인 출신이 아니라 보통의 바라문 출신이었습니다). 앗사지 존자가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만으로 사리뿟따 존자의 마음은 놀랐습니다. 반드시 이 사람은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앗사지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를 불교적으로 가르칠 능력은 없었지만 그의 한마디를 들은 사리뿟따 존자는 예류과 단계의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뛰어난 지식인도 마음의 어른에게는 이길 수 없다고 하는 점입니다.

 

또 다른 예로 불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시킨 아소까 대왕의 예입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전인도를 통일해서 지배한 것은 아소까 대왕입니다. 이 때문에 잔혹한 침략으로 수십만 명을 살육하기도 했습니다. 잔인한 살육을 반복하면서 남인도를 침략했었을 때 대왕은 자신의 행위에 의문을 안고 낙담하기 시작했습니다. 잔혹한 침략 행위만 계속해 온 자신의 삶의 방법이 너무나 허무하다고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그를 구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궁전의 창밖으로 작은 아이가 보였다고 합니다. 출가해서 혼자서 걷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침착하고 무엇 하나 초조함도 없어서 평온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아소까 대왕은 「아! 이 아이는 행복하다. 평화롭다! 평온함을 체득하고 있다…」라고 느껴서 궁전 가운데로 불러왔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어떠한 종교의 수행자도 존경합니다. 아소까 대왕은 아이이지만 출가하고 있는 이 아이를 어떻게 취급하면 좋은 것인지 헤매면서, 「적당한 곳에 앉으세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이미 아라한이었기 때문에 일단 주위를 둘러보고 자기보다 더 위의 “마음의 어른”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대왕의 손을 잡고 왕좌에 앉았습니다. 아소까 대왕이 인도의 제왕인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명의 아저씨와 함께 있듯이 당당한 아이의 모습 속에 대왕은 「거대한 평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됨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대왕은 열심히 불교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선언했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전쟁을 하지 않겠다!」라고. 전쟁으로 국토를 넓히는 것은 무의미하고 그것보다는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오는 것이 왕의 일이다고 선언한 후 불교의 포교에 힘썼습니다. 그 덕분에 불교는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침착한 사람이 한명 있으면 훌륭한 일이 일어납니다. 탐·진·치 대신에 선한 마음을 만들면 견실하고 명확한 지혜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 한없는 행복이 있습니다. 혼자라도 그 길을 찾아냈다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지금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불필요한 허세를 부리며 경쟁할 것이 아니라 지혜를 짜내어 침착하게 생활해 보면 어떻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정직하고 완고하게 산다.■

 

예를 들어 경제 상황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한탄만 하고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도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행위로 경제 상태가 악화되었다면, 우리들 힘으로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지만, 마음이 탐·진·치로 약화되어 있으므로 행동할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도전하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자신을 잃거나 합니다. 혹은 아이처럼 좋고 싫음의 기준으로 무모하게 행합니다. 그것은 아이 같은 삶의 방법이기에 정신적으로 어른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동할 수 있으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러나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정직은 문제입니다. 마음은 탐·진·치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기분에 정직하게 산다고 하는 것은 위험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싫은 일을 참으면 스트레스가 폭발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양극단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을 하면 자신은 행복하게 될 수 있다, 동시에 타인도 행복하게 될 수 있다는 그러한 길을 찾아 실행해 나간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덧붙이면 「마음이 성장하지 않은 인간의 정직함」은 위험합니다. 선천적으로 있는 것은 탐·진·치이기에 성장하지 않은 마음에 솔직한 것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마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장하는 것」에 정직하여야 한다고 알아야 탐·진·치에 지지 않게 되고, 욕구는 극복하는 것이라는 마음을 만들어 거기에 정직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욕구는 정복해야할 것이며, 욕구에 정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쁜 일,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것, 또 타인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고 그러한 것에 완고해지면 좋습니다.

 

즉, 무엇에 대해서 완고한가 하면 그것은 진리에 대해서 완고합니다. 진리는 올바른 삶의 방법입니다. 신이 만든 것, 혹은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진리란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법칙입니다. 신이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하는 신념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란 실증할 수 있어서 누구라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진리는 다음 세상이 있든 없든 나쁜 것은 해선 안 됩니다. 화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진리도 다음 세상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진리인 것입니다. 잘난 체하거나 기고만장하게 되면 자신도 기분이 좋지 않고 타인도 싫은 기분이 되는 그런 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명쾌한 진리에 근거해서 그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완고하게 되어 정직하게 된다는 그러한 정직함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계속해 가면 이윽고 솔직해집니다. 자꾸자꾸 솔직해져 갑니다. 원래는 마음에 독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독빼기 행위는 처음은 조금 괴롭습니다. 그러나 자꾸자꾸 독이 사라져 가면 편해지고 솔직해져서 매우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울면서도 선한 일을 한다.■

 

마음을 성숙시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애의 실천입니다. 인간은 원래 자애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타인의 일은 싫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싫어하면 자신도 미움받고 자신의 행복이 사라지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애는 길러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울면서도 선한 일을 행하십시오. 나쁜 일을 그만두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울면서」라고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쉽게 남에게 좋은 일을 하기 보다는, 상대를 죽이고 싶다고 하는 기분이 정직합니다. 일을 해 돈을 버는 것보다는, 어디엔가 있는 것을 빼앗는 편이 간단합니다. 그것이 본래의 기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울면서도, 싫어도, 방법이 없어도, 선한 일을 하며 사세요라고 부처님께서는 조언했습니다. 그것이 용기 있는 삶의 방법입니다.

 

비록 싫어도, 분해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나라를 위해서는 적을 죽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아니요! 적도 행복하다면 좋으니까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평화로운 사람이 평화로운 사람을 죽이려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마음이 약합니다. 욕구가 있고, 공포감이 있어서 유혹되기 쉽습니다. 욕구나 분노에 유혹되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괴로워도 유혹되지 않는 용기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기적이고, 자애의 마음도 없고, 자기 위주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게 되고 싶다면 「싫은 사람도 행복하기를!」이라고 바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조금씩 싫은 사람이 없어져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갖고 싶어서 무슨 말을 하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구만, 내 것을 빼앗으려고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아! 이 사람은 이것을 갖고 싶어 한다.」라고 느낄 뿐입니다.

 

분노가 아니라, 「예! 당신은 이것을 갖고 싶어 하네요. 그러나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어서 곤란하네요.」라고 부드럽게 말하게 됩니다. 주어도 괜찮다면 주겠지만, 만약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에게도 그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한다면 상대는 싫은 사람은 아니게 됩니다.

 

좀 더 마음이 자라면 「내가 아니라 당신이 사용해도 나는 즐겁습니다!」라며 그것을 주어 버립니다.

 

이렇게 어떤 생명을 보았을 때에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느껴지게 되면 꾸밈없는 삶의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불행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훌륭하고 절대적인 행복을 만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을 부정하는 것도, 긍정할 것도 없이 불교가 말하는 또 하나의 길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이번 포인트

 

•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음의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 마음의 평안이 가지는 힘은 실로 위대합니다.

• 삼독심을 버리고 진리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 울면서도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용기 있는 삶의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