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관계한 일에도 휘말려 들어간다. (20170331)
부처님 당시 사위성에 보석 세공 일을 하는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불교를 믿기에 한 아라한에게 보시하며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게끔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 아라한은 매일 그 집에 탁발을 가서 식사를 하고 설법하는 등 정신적인 지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세공인이 고기를 요리하여 아라한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고기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아라한은 조금 일찍 그 집에 도착했기에 요리가 다 될 때까지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꼬살라 왕의 시자가 보석을 가져와 세공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세공인은 고기를 자르던 피투성이의 손으로 보석을 받아 책상 위에 두고 손을 씻으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집에는 한 마리의 거위가 있었습니다. 그 거위는 고기 냄새를 맡고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주인이 없는 틈을 타 피가 묻어있던 보석을 삼켜 버렸습니다. 아라한의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돌아온 세공인은 보석이 없어진 것을 알고 놀라서 일순간 핏기가 사라졌습니다. 「큰일이다! 가족이나 친척 모두 왕에게 참수당하겠구나!」. 거기에 있던 사람은 아라한뿐이었기에 아라한에게 「보석을 왜 가져갔습니까?」라고 물었지만, 아라한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자백하게 해서 보석을 찾지 않으면 가족의 생명이 위험해지기에 아라한을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폭행을 시작했습니다. 아라한은 침묵한 채로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백하지 않자 손발과 목을 가죽 끈으로 묶고 몽둥이로 아라한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보석의 행방을 말하면 거위가 살해당하기 때문에 아라한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란스런 소리를 들은 부인이 나왔을 때 아라한은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졌습니다. 부인은 울면서 「이 스님은 매우 고귀한 분으로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서 자애를 다해 주신 분이 아닙니까! 아무 욕구도 없는 분이기에 그 보석과는 어떤 관계도 없을 것이 아닙니까! 비록 우리가 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성자를 괴롭혀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필사적으로 말렸습니다. 그러나 세공인은 분노에 사로잡혀서 부인이 부르짖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아라한의 머리와 신체로부터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고기를 좋아하는 거위가 무엇 먹을거리가 있는가하고 다가와 아라한의 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분노로 날뛰고 있던 세공인은 거위를 발로 차서 날려 버렸습니다. 거위는 벽에 부딪혀 죽어버렸습니다. 침묵을 계속 지키던 아라한은 움직이지 않는 거위가 눈에 들어오자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의 거위가 괜찮은지 살펴보십시오!」 아무리 성이 나도 자신이 기르는 애완동물은 귀여워합니다. 세공인은 아라한을 때리던 손을 거두고 거위를 살펴보니 죽은 것을 알고 슬픔이 북받쳐 왔습니다. 거위가 죽은 것을 확인했을 때야 아라한은 「그 보석은 이 거위가 삼켰습니다. 조사해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배를 갈라보니 보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으로 거위가 죽고, 아무 죄도 없는 위대한 성자를 분노에 미쳐서 폭행한 자신을 깨닫고 그는 큰 후회에 빠져 버렸습니다. 땅에 엎드려 조아리고 아라한에게 사과했습니다. 아라한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도 「앞으로도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매일 탁발을 와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아라한은 「나의 과거의 악행에 의해 나는 오늘 살해당할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탓이 아니라, 나 자신이 과거에 범한 어떤 악업의 결과입니다. 이렇게 되었던 것도 내가 번뇌가 없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가족과 친한 관계를 가져서 집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삼보에 믿음을 일으키고 선행을 하려고 하던 여러분도 나의 탓으로 불필요한 악행에 휘말려 버렸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일에 힘써 주십시오. 나는 앞으로 어디를 가더라도 집 밖에서 탁발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아라한은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문이 원인이 되어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공인은 정신적 괴로움으로 장수할 수 없었습니다. 부인도 몇 년 후에 뒤를 쫓았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설법을 청했습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습니다. 「그 세공인은 자신의 행위에 의해 지옥에 떨어졌다. 아라한은 열반에 들어 윤회의 괴로움을 넘었다. 부인은 믿음이 깊은 온화한 사람이었으므로 지금 천상에 다시 태어났다. 거위는 자신을 길러주던 가족에게 몹시 애정이 있었으므로 죽고 나서 그 부인의 배에 머물다가 그 집의 아들로서 다시 태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일화로부터 업이 일하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모두 같은 사건에 말려 들어가도 업의 결과는 다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업은 자신의 것입니다. 조상의 업은 자손에게는 계승되지 않습니다. 업은 행위와 결과입니다. 행위를 실천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입니다. 비록 억지로든 자발적이든 자신의 의지로 했던 것에 차이는 없습니다. 행위는 당연히 결과를 낳습니다. 결과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에 행위와 결과는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Kamma)은 개인의 책임입니다. 말 그대로 「자업자득」입니다.
탐․진․치로 행하면 모두 나쁜 행위․악업이고, 불탐․불진․불치로 행하면 전부 선한 행위․ 선업입니다. 악인(悪因)에는 고과(苦果 : 괴로운 결과)만이 있고, 선인(善因)에는 낙과(樂果 : 즐거운 결과)만이 있으나 실제로 결과를 얻을 때는 온갖 원인이 뒤섞이게 되어서, 어떤 결과가 될지는 간단히는 알 수 없습니다.
업은 복잡하게 행동합니다. 한 개의 업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의 업의 결과로 태어납니다. 그것에 온갖 업이 끼어들어서 지지하거나, 방해하거나, 도중에서 생명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인생 속에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업에는 또 하나의 특색이 있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従 : 끼기끼리 모임)의 법칙 처럼 행복하게 되면 점점 행복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서 일단 불행하게 되면, 연이어 불행하게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업이 닮은 것을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의 삶의 방식은 현세에서 스스로가 제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명이다. 정해졌다. 어쩔 수 없다.’라는 운명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邪見(사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철저하게 언급하는 것은 ‘노력하시오. 힘내세요.’입니다. ‘사람은 어떤 운명으로 태어나든 좋은 방향으로 노력하라. 노력은 그 나름으로 결과를 낳는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면 업이 바뀝니다. 불교는 ‘올바른 방향으로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노력하시오.’라는 입장입니다.
그 세공인과 같이 관계가 없는 것, 또 무의미하게 함정에 빠져 죄를 범해 버릴 우려가 누구라도 있기 때문에 이성을 잃지 않고 주의 깊게 노력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포인트
• 업은 개인의 책임입니다. 그 결과도 그 개인이 받습니다.
• 관계가 없는 것에 말려 들어가는 것은 누구라도 있습니다.
• 이성을 유지해서 탐·진·치 없이 마음을 선하게 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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