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법문 교재(프린트물)

지식욕 (20170414)

담마마-마까 2022. 5. 28. 09:10

* 지식욕 (20170414)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명예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권력일까요?

 

분명히 이러한 것을 「인간이 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나 명예, 권력 등은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고 하는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있으면 있을수록 또한 위험한 측면이 있는 것을 몸소 체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중요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집니다.

 

누가 봐도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란 “지식”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요?

어떠한 인간도 지식은 얼마가 있어도 너무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지식은 깊게 하면 깊게 할수록, 넓히면 넓힐수록, 그 가치는 자꾸자꾸 높아져 간다고 누구나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그럴까요?

 

이 세상에 어떤 각도로부터 봐도, 어느 입장의 사람이 생각해도, 절대적으로 옳다,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 있을까요? 만일 올바른 지식이라고 알아도 그것이 잘못된 지식이었다고 하면 대단히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또 지식은 정보로서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 측의 판단력, 이해도, 감정 등에 의해 올바른 정보가 잘못된 지식으로 살짝 바뀌어 가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은 인간도 물질도 항상 변화해 가고 진보해 가기 때문에 어제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도 내일이면 잘못되었다고 하는 현상도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번 올바르다고 여겨진 지식도 나중에는 틀렸다고 하는 것이 늘 일어나고 있으면 세상의 혼란을 불러 버립니다. 또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이전의 지식은 절대인 것이 아니라고 하면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자신이 없어져 어느새 애매한 인간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지식은 또 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용됩니다. 이른바 지식인에게는 모두 일단 신뢰와 존경과 다소의 동경을 안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지배받는 것을 용인하여 사회를 맡겨 버리게도 되어 버립니다. 방대한 지식을 얻고, 사람을 감동시키고 싶고, 놀라게 해 주고 싶고, 자기주장의 도구로 하고 싶다는 쾌감으로부터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지식은 위험한 것도 상당히 있습니다. 생명이나 자연을 파괴하는 폭발물·무기·독 등을 만드는 지식이나, 극단적인 사상이나 비도덕적인 가르침, 허무주의 등은 사회 파괴로 연계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도 “지식”은 인간의 발전, 행복에 빼놓을 수 없는 고마운 현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지식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다 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식”을 불교의 도덕에 대조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지식은 과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렇다. 라고 확인할 수 있으면 그 지식을 얻기 위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어떤 고생도 싫어하지 않고 그 지식을 획득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안 좋은 지식이거나 해가 되는 지식이면 결단코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지식에는 하나 더 중요한 견해, 생각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그 지식에 대해서 실용주의의 입장을 취했을 경우입니다. 지식은 대부분은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이 확실히 실행할 수 있는 것인지, 실천 가능한 일인지라고 하는 판단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높은 수준의 지식이라도 그것이 실천 가능하지 않은 단순한 탁상공론적인 지식이면 그것은 마음의 부담이 될 뿐입니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든 혹은 얕은 지식이든 그 지식으로부터 우리가 실행할 수 있어 그 결과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기준이 지극히 중요한 것이 됩니다.

 

불교적 지식에 대해서도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서 탐구하기 위한 불교는 사람이 일생 동안 공부해도 모자라는 만큼의 경전, 주석서, 논서, 각각의 종파의 교설 등 그 정보량은 방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교육과 학문으로서 불교의 지식을 취하여 그 쾌감만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 사람들은 유감스럽지만 불교에서 가리키고 있는 곳의 행복을 체험하려 하지 않습니다.

 

지식인으로서 인정될 뿐이거나 또 종교적 논쟁에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불교를 배우는 것을 부처님은 엄중하게 경고했습니다.

불교는 중생에게 도움이 되는 실천적인 가르침입니다. 실천하는 자는 현세에 있어서의 행복으로부터 한층 더 고차원의 행복으로 확실히 진행될 수가 있습니다. 지식욕이라고 하는 목적만으로 불교를 배우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올바른 지식의 방식이란 이런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시대 인도에서는 풍부함의 상징으로 소를 많이 기르고 있었습니다.

풍부한 지식으로 불교를 이해하고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그날의 급료를 위해서 타인의 소를 소중하게 사육하고 있는 고용된 사람과 같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주위에는 확실히 소가 많이 있어서 일견 풍부하게 보이지만, 소는 그의 것이 아닙니다. 소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은 고용주의 것이며 급료를 받는 그에게 있어서 그 소는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고 소에 대해서 아무런 권리도 없습니다.

 

불교를 깊게 연구해 전문가가 되어도 그 사람이 얻는 덕은 고용된 소몰이꾼과 같아서 겨우 급료만 챙길 뿐입니다.

 

●이번 포인트

 

지식에 대한 주의사항:

•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되는 지식은 피하는 것.

• 해가 없더라도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을 얻으려고 고생하지 않는 것.

• 지식욕을 채우기 위해서 지식을 쫓아도 그것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하는 것.

• 방대한 지식이 있는 것은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아는 것.

• 얻으려고 하는 지식의 실용성, 실천성을 잘 확인하는 것.

• 불교의 지식은 적어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으로서 의의가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