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문과경(Sāmāññaphala-sutta)1. 뽀야데이(보름날) 법문 (20080322)
뽀야데이(poya day, 보름날)인데, 「사문과경」이라는 것은 장부경전에 나와 있는 경입니다. 「사만냐팔라숫따(Sāmāññaphala-sutta)」라고 하는 것인데 사문은 여러분들 잘 알죠? 출가한 승려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 출가한 승려들의 과(果)·열매, 수다원부터 해서 아라한과까지 얻는 과정에 대한 것들을 설해놓은 경전이다 하는 뜻입니다.
굉장히 오래된 것들이고, 물론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 아닌 경전이 없겠지만, 특히나 이 경전은 일반적으로 경을 하나 그냥 공부를 하겠다 할 거 같으면 대부분 스님들이 추천해 주는 경이 뭐냐면 이 사문과경 입니다.
세속적인 가르침들도 물론 있고, 출가한 분들에게 해당되는 가르침도 있고, 또 이 경전의 내용에는 당시의 그 육사외도에 대한 것들을 부처님이 조목조목 잘잘못을 가린 부분들도 있고, 해서 그때 당시의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가 있고, 또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장 자세하게 설해놨다고 정평이 나 있는 그런 경전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출가자들만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일반 재가인들은 뭐 그렇게 배울 것이 없을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렇진 않죠? 재가인들을 위해서, 출가자들에게 한정하지 않고 재가인들을 위해서 조목조목 말씀해 놓은 것들도 있습니다. 지혜롭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자비롭게 사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얘기를 쭉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이 얼마든지 접할 수가 있습니다. 꼭 불교가 아니더라도 접할 수도 있고.
그래서 불교의 특색을 얘기하라고 할 것 같으면 "출세간의 지혜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출가한 사람들이나 수행하는 사람들이 얻는 지혜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설해놓은 경전이 이 사문과경이다 하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있는 경전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 경을 설하게 된 배경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경전은 아자따삿뚜라고 하는 왕에게 설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본적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가다 왕국의 수도가 라자가하 입니다. 그 라자가하 하고 가까운 곳에 망고동산이 하나 있는데 누구의 망고동산이냐 하면 지와까! 여러분들이 잘 알죠? 의사 지와까 입니다. 지와까 꼬마라밧짜(Jīvaka Komārabhacca) 라고 하는 분이 소유하고 있는 망고 숲에서 이 경전을 설하게 된 겁니다.
지와까는 이름입니다. 뒤에 꼬마라밧짜라고 그렇게 되어 있는데, 네팔에 가면 '꾸마라'라고 있죠? '신의 화신'이라고 해서 '꾸마라'라고 하는 것이 어린아이 소년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또 왕자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왕의 아들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거기서 말하는 꾸마라는 꼭 소년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의 화신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 꾸마라라는 용어는 네팔에서는 여자이기 때문에 생리가 시작이 되면 그 자격이 박탈되죠. 사실은 인도에서도 이 꾸마라라는 명칭은 결혼하기 전까지만 씁니다. 결혼하고 나서 성년이 되면 꾸마라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자의 경우는 자기가 왕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나이가 육십이 되도 꾸마라라는 명칭을 씁니다.
마찬가지로 이 지와까의 이름에 꼬마라밧짜 라고 하는 것의 꼬마라가 들어있는 것은 계속 따라붙었거든. 지와까는 왕이 되지 못한 분이라. 결국 왕자의 신분으로서 계속 살아가셨던 분이기 때문에 이 명칭을 그대로 씁니다. '밧짜'라고 하는 것은 '길렀다'는 뜻입니다. '꼬마라밧짜'라고 할 거 같으면 '왕자의 신분으로서 자랐다'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지와까'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의지할 곳이 없는 고아'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마가다국의 왕이 이 지와까를 양자로 들여가지고 길렀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 이름에서 나와 있는 것들은. 자기 아들이 아닌 거죠. 자기 아들이 아닌데 양자로 들여가지고 쭉 길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부모가 아닌 것을 알면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또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들을 많이 받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되면 타격을 받아가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어쨌든 지와까는 어릴 때부터 고아로 있었지만 왕의 아들이 돼가지고, 왕의 아들이 되어도 꼭 마찬가집니다. 그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항상 받게 돼있습니다. 내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도 이 지와까는 교육을 잘 받아가지고 훌륭한 의사로서 당대에 가장 뛰어난 의술을 쓸 수 있는 의사로서 자라게 됩니다.
결국에는 부처님에게 귀의해가지고 부처님의 주치의가 되기도 합니다. 자라난 내력의 영향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일에 많이 흥미를 가졌던 분입니다. 결국에는 부처님한테 귀의를 해가지고 지금 얘기한 망고 숲, 망고 숲을 상가에 기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경전이 설해진 게 이 지와까가 소유하고 있는 이 망고 숲에서 설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경전이 설해진 곳은 그렇지만은, 경전을 설한 대상이 누구냐 하면 왕입니다. 그러니까 지와까의 아버지하고 연관이 되어있는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아자따삿뚜라고 하는 왕입니다. 빔비사라 왕의 아들이죠? 빔비사라 왕의 아들입니다. 아자따삿뚜하고 지와까 하고는 거의 동년배입니다. 거의 비슷한 나이입니다. 빔비사라 왕하고 부처님하고는 또 동년배죠? 그러니까 부처님이 봤을 때는 지와까가 거의 아들 같은 그런 겁니다. 지와까와 마찬가지로 아자따삿뚜도 아들 같은 그런 왕입니다. 그 아들 같은 왕에게 설한 경전입니다.
이 아자따삿뚜 왕의 이름도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ajātasattu vedehiputta)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아자따' 할 때 '자따'는 뭡니까? '태어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아자따'라고 할 것 같으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하는 그런 과거분사형인데 아자따 라고 하는 것은 부친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다음에 '삿뚜'라고 하는 것은 '거역한다'는 뜻입니다. '부친을 거역한다, 적대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낳아준 분은 어머니지만 빨리어 이름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름을 동시에 씁니다.
지와까도 마찬가집니다. 지와까도 마찬가지였고 이 아자따삿뚜도 마찬가집니다. 원인을 만든 것은 아버지가 원인을 만들죠? 아버지가 원인을 만들기 때문에 어머니가 낳았지만 양친의 이름을 똑같이 써줍니다. 그런데 이 이름에서 삿뚜가 들어가는 건 어머니 아버지를 다 부정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아자따삿뚜가 결국에는 이 빔비사라 왕을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그로 인해가지고 이 이름을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 '웨데히'는 '어머니의 이름'이죠? '뿟따'는 '아들'입니다.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아자따와 웨데히를 부정하는 삿뚜'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 뜻인데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쓰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진 않습니다. 인도는 애가 태어나자마자 점성술사가 별을 보고 점을 쳐가지고 아이 이름을 짓습니다. 그래서 뒤에 마음대로 자기가 이름을 갖다 붙이고 변경하고 그러지는 못합니다. 그런 거를 봤을 때는 처음부터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고 봐야 됩니다.
이 아자따삿뚜하고 친했던 분이 누굽니까? 데와닷따죠.
데와닷따가 하루는 아자따삿뚜 왕에게 얘기를 합니다. 지금 왕자님의 아버지인 왕은 아직 젊다. 그래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 그걸 니가 왕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것 같으면 니는 늙은이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왕권을 가지지 못하면 니가 즐길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즐기지 못한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아자따삿뚜 왕이 그럽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니까, 되도록 왕을 빨리 죽여라 하는 그런 암시를 줍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아자따삿뚜 왕이 이 빔비사라 왕을 죽일려고 그럽니다. 이 아자따삿뚜 왕도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은 원한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하고 그렇게 친하니까 부처님이 없을 때는 부처님이 보고 싶어서 미치겠거든. 그래서 제안을 한 것이 뭐냐 하면 부처님의 종족 중에서 한 사람하고 결혼을 해가지고 있으면 부처님을 보듯이 하겠다 해가지고 석가종족에게 그런 신청을 합니다. 그런데 석가종족은 순수혈통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기 때문에 아무리 빔비사라 왕이라고 하더라도 석가종족의 순수혈통을 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궁리를 하다가 속여가지고 하녀의 딸을 이 빔비사라 왕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결혼을 해가지고 아들을 낳은 게 이 아자따삿뚜 왕입니다. 아자따삿뚜 왕이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곳이라 해가지고 석가종족이 있는데 가서 수모를 많이 당했거든. 왜? 하녀의 자식이라 해가지고. 자기는 하녀가 아니고 왕녀인 줄 알았는데 하녀인 것을 알게 된 경우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석가종족에게 원한을 가집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아자따삿뚜 왕이 석가종족을 멸하기까지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한을 가지고 있었던 왕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을 했던 그런 패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권력을 이렇게 잡고 나니까, 어떻게 잡냐면 자꾸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이 빔비사라 왕이 그래도 아자따삿뚜 왕자를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아자따삿뚜 왕자는 엄격하게 볼 것 같으면 그것도 양자와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싶어 하니까 극진히 사랑한 나머지 왕위를 물려줍니다. 니가 그럼 왕이 되어라. 왕이 되고 나니까, 왕이 되더라도 아직 젊었으니까 어떻게 해요? 대신이나 왕이 간섭한단 말이라. 잘못하는 것들은 막 간섭하고 하니까 보기 싫은 거라. 그래가지고 아버지를 감옥에다가 유폐시켜버립니다.
유폐시켰는데 아버지인 빔비사라 왕의 입장에서는 얼씨구나 좋다 하는 거라.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에 의해서 이미 수다원과에 이르렀던 분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좋아. 정사 골치 아픈 거 할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방에 앉아서 수행할 수 있고 고요하고 그렇게 좋거든. 그래서 아, 인제는 해방돼서 참 좋다. 속박되는 게 없어서 이렇게 좋구나 하고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거라. 그러니까 이 아자따삿뚜 왕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음식을 안 넣어줍니다. 음식을 안 넣어주니까 그 빔비사라 왕의 부인, 그러니까 아자따삿뚜 왕의 어머니가 음식을 가져가가지고 넣어줍니다. 경전에는 나중에 음식까지 못 들여가게 하니까 몸에 꿀을 발라가지고 가서 그걸 핥도록 해서 연명을 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어쨌든 간에 그렇게 해서 하더라도 수행을 하다 보면 여러분들도 알 겁니다. 음식물이 굉장히 장애로써 작용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음식물을 먹을 때는 꼭 필요한 만큼만, 이 몸을 유지해서 건강을 유지하고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써 음식을 먹도록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또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음식을 안 먹어도 오히려 혈색이 더 건강하거든. 그러니까 아자따삿뚜 왕이 결국은 아버지의 다리를 잘라버립니다.
그러니까 세속적으로 할 거 같으면 양자와 마찬가지인 아들이 왕위까지 물려줬는데 자기 아버지 다리까지 잘라버리게 된 거라. 그러니까 다리를 잘렸으니까 옛날에는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이 다리가 썩어가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왕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이 아자따삿뚜 왕은 아들을 얻습니다. 자기도 결혼을 해가지고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보니까 아들이 그렇게 예쁜데 그때사 자기가 부모가 됐으니까 부모의 입장을 이해를 하게 되는 거라. 그래서 퍼뜩 생각을 해보니까 아버지가 다리를 잘린 채 감옥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든 거라. 그래서 빨리 아버지를 감옥에서 풀어서 모셔오시오 하고 사람을 보냈는데 그때는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신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굉장히 시달립니다.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그게 인연이 돼가지고 아, 과연 진리라는 게 뭔가? 내가 어떻게 살아가면 바르게 살아가는가? 하는 걸 굉장히 탐구를 하게 됩니다.
그때 이 지와까가 아자따삿뚜 왕에게 충고를 합니다. 매달 한 달에 한 번씩 오늘 같은 뽀야데이 날 유명한 사람들 유명한 명상가들을 초청해가지고 삶에 대한 가르침을 듣도록 하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런 죄책감도 씻을 겸 그래야 되겠다 싶어서 아, 누구를 초청할까? 하고 궁리를 하게 됩니다.
인도 같은 경우에는 뽀야데이 날은, 매달 보름은 종교의 날입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것에 힘쓰도록 제도화는 되어있지만, 관습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보면 부처님이 태어나고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르고 열반하신 날이 언젭니까? 바로 뽀야데이 날입니다. 보름날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이 뽀야데이 날 깨달음에 이른 분들이 많습니다. 달의 기운이란 게 무시를 못합니다. 여기 해운대도 얼마 전에 그거 하대. "달빛명상걷기" 해가지고 올해부터 시행한다고 하는데 이게 언제 하느냐면 보름 전에 13일 14일부터 해가지고 며칠간 한다고 그렇게 하더라구요. 여자분들 같은 경우에는 보름날 되면 달이 뜨고 하면 특히 요즘 같은 봄철에는 많이 들뜹니다. 그런 거 혹시 모르겠어요? 괜히 싱숭생숭해지고 그렇게 됩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그런 정신적인 에너지가 강하다는 얘깁니다. 강하게 받는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그걸 수행으로 돌릴 거 같으면 깨달음에 이르는데 더 용이한 방법이 될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뽀야데이 날은 무조건 수행하는 날입니다. 종교적인 날이다 해가지고 우리 같은 이런 위빳사나 수행이 아니라도 다른 수행이나 기도를 꼭 하도록 하는 날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그거를 차용해가지고 초하루 하고 보름날은 사람들이 모여서 법회를 하도록 그렇게 돼있습니다. 꼭 마찬가지로 사만냐팔라숫따도 보름날, 언제냐면 우기가 끝나고 나서 인도력으로 11월 보름날 이 경전을 설하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경전의 내용에 들어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08~2010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웨사카뿌자(Vesākha-Pūjā) 특별법문 (20090502) (0) | 2021.02.23 |
---|---|
부처님 오신 날(Vesākha-Day) 봉축법회 (20090502) (0) | 2021.02.22 |
망갈라 숫따(길상경) (20080605) (0) | 2020.12.24 |
사문과경3. 뽀야데이(poya day, 보름날) 법문 (20080618) (0) | 2020.12.24 |
사문과경2. 뽀야데이(poya day, 보름날) 법문 (20080519) (0) | 2020.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