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08~2010 일상수행법문

사문과경3. 뽀야데이(poya day, 보름날) 법문 (20080618)

담마마-마까 2020. 12. 24. 16:41

https://youtu.be/PjfZ2R5-WjU

* 사문과경3. 뽀야데이(poya day) 법문 (20080618)

 

사문과경 첫 번째 시간을 했죠? 오늘 두 번째 시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이 오늘은 보름이니까 보름날은 수행하고, 또 법을 듣는 날이니까 누구에게 가서 법을 들으면 좋겠나 하고 대신들에게 물어보니까 누구는 뭐 뿌라나 깟사빠, 누구는 뭐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 이렇게 쭉 얘기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중에 자기의 주치의인 지와까 의사가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를 쭉 얘기를 하면서 여래, 응공, 정변지 이런 분이 계시니까 그분에게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바로 부처님한테 가는 것은 아닙니다. 환희심은 일어나고 하지만 자기가 지은 죄가 있거든. 자기 아버지를 죽인 죄과가 있단 말이라. 그래서 사실은 부처님한테 바로 가지를 못합니다. 가면 부처님하고 왕의 부친하고는 아주 절친한 관계에 있는 줄 뻔히 압니다. 빔비사라 왕은 여러분들도 잘 알지만은 부처님하고는 그냥 친구 같은, 아주 절친한 친구 관계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떠나가지고 그런 관계인데 그런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니까 부처님한테 가지를 못했는데, 어쨌든 그러고 나서 그 당시의 유명한 여섯 분 종교가・사상가들을 찾아가서 법을 물어봅니다.

그러고 나서 결국에는 여섯 분한테서도 다 명확하게 답을 얻지를 못합니다. 어떤 것이 바른 것이고, 어떤 것이 틀린 것이고, 어떤 것이 공덕을 쌓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이 출가한 사람들이 덕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들을 명확하게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부처님한테 오게 됩니다.

 

그걸 알고 부처님이 왔을 때 이 왕에게 먼저 물어봅니다. 여섯 분의 위대한 사상가들에게 갔는데 그 사상가들은 뭐라고 얘기하드냐 하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것들을 부처님은 "이것은 바른 것이고 저것은 틀린 것이다" 하는 식으로 먼저 조목조목 얘기해주는 부분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부분을 먼저 이해를 해야 만이 출가하는 것이, 그리고 수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조금 더 이해를 바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왕이 뿌라나 깟사빠(Purana Kassapa)에게 가서 물어봅니다. 뿌라나 깟사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이 질문을 합니다.

우리 일반인들은 쉽게 얘기하면 내가 밥을 지으면 밥이 완성되어가지고 그걸 맛있게 먹는 이익이 있고, 또 농사를 열심히 잘 지으면 벼를 수확하는 그런 이익도 있고, 또 내가 남에게 착한 일을 하고 또 나눠주고 할 것 같으면 칭송받고 하는 그런 이익이 있다.

그런데 출가한 사람들, 또 수행하는 사람들은 출가하면 어떤 이익이 있고 수행을 열심히 하고 그러면 어떤 이익이 있느냐? 물론 뭐 저기 먼 미래에 극락정토에 가든지 아니면 뭐 천당에 가든지 이런 거 말고 현세에서, 현재 여기서 어떤 이익이 있느냐 하고 먼저 물어봅니다.

 

이것은 뿌라나 깟사빠 한테 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물어봤습니다.

그러니까 이 뿌라나 깟사빠가 뭐라고 대답하느냐면 "대왕이여, 만약에 누가 어떤 사람의 다리를 절단을 해버렸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과보가 없다. 누가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누굴 죽여 버리든, 아니면 남의 물건을 훔쳐버리든, 아니면 뭐 어떤 다른 나쁜 행동을 하든지 간에, 하는 행위 자체는 죄악을 만들지 않는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칼로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가루가 되도록 다 뿌셔가지고 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죄악은 없다.

그러니까 받는 업보는 없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짓는 행위 자체가 악이다 선이다 하는 것도 없으니까 나타나는 업보도 악이다 선이다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라. 또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좋은 일도 나쁘다 바르다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공덕도 없다는 거라. 공덕을 짓든 악을 행하든 그것 자체도 없고 나타날 것도 없다는 거라. 그래서 어떤 것을 해도 그 행위에는 죄가 없다. 그리고 죄가 나타날 것도 없다 하고 깟사빠 선인이 얘기를 합니다.

 

자칫 잘못 들으면 이것을 '도덕부정론'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내가 잘하든 잘못하든 받을 것이 없으니까 니 맘대로 살아라 하는 얘기로 듣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그걸 보통 한국에서는 도덕부정론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뜻으로 이 깟사빠 선인이 얘기를 한 것은 아니겠죠? 그래도 당대의 큰 사상가인데, 인도를 주름잡던 여섯 사상가 중에 한 사람인데 그분도 수행을 했을 거고 그분을 따르는 많은 제자들이 있는데 그런 얘기한다고 넘어갈 사람은 아닐 거란 말이라.

 

이 얘기는 뭐냐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뭔가 내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 할 것 같으면 그것이 들킬까 봐서, 아니면 그것이 남에게 알려질까 봐서, 아니면 그것으로 인해서 오는 위험들로부터 사람들은 두려워한다는 거라. 그렇게 두려워함으로 해서 오히려 마음에 응어리들이 더 남아있게 되고 더 안 좋은 결과들을 가지고 온다는 거라. 그래서 깟사빠가 그 얘기를 한 부분이 요점이 뭐냐 하면 무서워하는 부분을 버려버리라 하는 거라. 내가 지은 행위, 나쁜 거 지으면 무서워하고 좋은 거 지으면 대부분 으시댄다는 얘기라. 으시댈 것도 없고 무서워할 것도 없다는 거라.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버려버려라 하는 얘깁니다.

 

왜 깟사빠 선인이 이런 얘기를 했느냐면 악을 짓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그런 어떤 속박들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또 인도 당시의 종교들은 보면 바라문이라고 하는 종교 계급들로 해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착취를 당합니다. 지금도 그럴 겁니다. 각 종교에서 "시주하십시오. 시주하면 공덕을 쌓습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공덕을 쌓고 하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내가 공덕을 쌓는지 안 쌓는지는 내가 눈으로 확인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라요. 그런데 그렇게 보통 얘기를 한다는 거라.

그러니까 이 깟사빠 선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어떤 면에서는 이건 착취라는 거라. 이게 자꾸 잘못된 방향으로 번져나갈 것 같으면 큰 문제가 된다는 거라. 그래서 만약에 병이 들어서 도저히 고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럴 것 같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종교가나 사상가에 의지합니다. 옛날로 치면 바라문에게 의지한다는 거라. 옛날 바라문한테 가서 주술로 "오오오" 이래가지고 병을 낫게 한단 말이라. 낫든 안 낫든 간에 그만한 이유들을 들이댄다는 거라.

 

지금도 마찬가지라. 내가 무슨 병에 걸렸다 할 거 같으면 스님들한테 찾아가가지고 구병시식을 한다는 거라. 또 안 그러면 어디 수도원이나 요양원에 가서 이상한 방법으로 다른 종교들이지만 그렇게 해가지고 몸을 치료하고 이런다는 거라. 그런데 물론 다 나으면 좋은데 대부분이 보면 그거와는 관계없이 된다는 거라. 낫는 것은 참 드문 경우라는 거라. 그러니까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다 하는 거라. 오히려 그런 것이 조금 더 미화돼 버린다는 거라. 지금 안 낫더라도 그래도 당신이 그렇게 선업공덕을 지었기 때문에 내세에 천인으로 태어날 것이다 아니면 저 하늘나라 하느님 계신 곳에 승천할 것이다 이런 논리로써 기제를 댄다는 거라.

그래서 이런 것들을 경계한 부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대부분 벌이라고 하는 개념은, 나쁜 짓을 행했을 때 짓는 것을 벌준다고 하는 개념들은 남을 벌주고 싶고, 남을 비판하고 싶고, 남을 괴롭히고 싶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보면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을 자기가 한눈에 싹 들어가지고 관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가집니다. 그래서 일목요연하게 이 사람의 행동거지나 여러 가지들을 훤하게 알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신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 애들한테 뭐 할 거 같으면 뭐 따끔하게 뭐라 하고, 아니면 뭐 잘못했으면 벌을 주려 하고 했을 때, 그런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한번 판단해보십시오. 이거는 어떤 면에서는 병적인 부분으로 연결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라는 거라.

 

그거는 어디로부터 오느냐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안감들 때문입니다.

그런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행위들을 하고 또 그런 행위들을 한 사람들은 당연히 나쁜 결과를 받을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이것은 벗어나라 하는 거라. 인간의 가장 큰 약점 중에 하나가 죄책감의 문제, 그리고 공덕을 쌓는 문제, 이것은 두 개 다 경우는 다르지만 정신적인 속박이라는 거라.

그래서 그 '정신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시오' 하고 얘기를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해도 지금도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끔쩍도 안 하고 있고, 한국에는 또 마찬가지로 그런 여러 가지 방법들로 사람들을 현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깟사빠 선인이 얘기한 방법으로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있는 속박들을 버려버리게 되면 우선은 각자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언뜻 보면 맞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를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냐 하면 물론 부처님이 지적하신 부분도 있기도 한데, 깟사빠 존자가 간과했던 부분은 뭐냐 하면 영원불멸의 영혼이라는 것들이라는 거라. 도덕을 부정할려고 할 거 같으면 영원불멸의 영혼을 인정해야 됩니다. 영원불멸의 영혼이라고 하는 불멸하는 것을 인정할 거 같으면 도덕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절대적인 영혼이 있다, 그 영혼은 죽지도 않고, 영구히 존재하고, 그리고 항상 청정한 것들이라는 거라. 영원불멸하기 때문에 더러워지지도 않고, 변형도 되지 않고, 그냥 뭔가 존재하는 특별한 것들, 그러니까 밖에서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거라. 그러니까 당연히 나에게 그런 영혼이 있다고 할 거 같으면 내가 사람을 죽였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영향을 안 받아야 된다는 거라.

 

그래서 영혼을 내세울려고 할 것 같으면 당연히 도덕적인 것들은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내가 조그마한 나쁜 일로 인해서 영혼이 영향을 받아서 영혼이 나쁜 쪽으로 휩쓸리고, 내가 좋은 일을 조금 했다 해가지고 영혼이 좋은 쪽으로 휩쓸리고 할 거 같으면 그걸 영혼이라고는 얘기를 못한다는 거라. 적어도 불멸하는 영혼이라고, 그리고 항상 존재하는 영혼이라고 할 거 같으면 그건 도덕적인 개념들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거라.

 

부처님이 그걸 지적을 합니다. 이 도덕부정론의 근본적인 뿌리는 영원불멸하는 것들이 항상 자리를 깔고 있다 하는 거라. 그래서 절대적인 영혼을 믿어서 영혼이 행하는 행위는 변함이 없고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먼저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주게 돼있다는 거라. 그리고 이런 사상을 가지니까 어떻게 되냐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 왕이 질문한 것은 우리는 좋은 행위를 하면 좋은 결과를 낳고 이런 이런 행위를 하면 이런 결과를 낳는데, 출가한 사람들은 출가해가지고 어떤 이익이 있고, 또 수행해가지고 어떤 이익이 있느냐 하고 물어봤는데 이 깟사빠는 뭐라고 대답했어요?

내가 나쁜 짓 지어도 나쁜 거 받을 것도 없고, 좋은 일 지어도 좋은 거 받을 것도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라.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똑같은 이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러니까 왕의 입장에서는 '내가 묻는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답을 한 것이 아니다' 하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철학을 부처님이 뭐라고 하느냐면 '아까리야 와다(akiriyavāda)'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와다(vāda)'라고 하는 것은 무슨 논지, 사상 그런 뜻입니다. '끼리야(kiriya)'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행위죠! 행위입니다. 그래서 행위 자체는 어떤 것에도 '아끼리야(akiriya)'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는 사상입니다. 행위 자체는 영혼이라는 것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는 거라. 그래서 우리가 행위하는 것이 영혼이라는 정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는 거라. 실제 그렇습니까? 여러분들 행위하고 나면 정신, 마음에 영향을 안 받습니까? 나쁜 짓 하면 마음에 영향을 받고, 좋은 일 하면 또 마음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라. 그런데 그리하는데 왜 이것을 부정하느냐는 거라. 그 근본 뿌리가 바로 영혼불멸 사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상에서 여러분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부분은 뭐냐 하면 어떤 사상이든 그 사상에 속박되어버리면 안 된다 하는 겁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많은 일에 속박이 됩니다. 당신 이거 뭐하면 지옥간다 이럴 것 같으면 그거 안 한다는 거라. 다른 종교에서 많이 얘기하는 겁니다. 지옥행이다. 아니면 천당행이다. 굉장히 무서운 얘기들인데 그런 데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 하는 얘깁니다.

그런 것은 뭐냐 하면 지옥가고 천당가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들어준다는 얘기하고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특별하게 존재하는 영혼불멸이라고 하는 어떤 존재가 이 사람을 지옥에 가게도 하고 천당에 가게도 만든다는 거라. 내가 하는 것에 따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적어도 불교도라고 할 거 같으면 그런 입장으로부터는 벗어나라 하는 겁니다.

이 뿌라나 깟사빠의 사상으로부터 여러분들이 배워야 될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그냥 단순히 논쟁만 일삼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사과가 맛있느냐 하고 물어볼 거 같으면 사과가 맛있다 사과가 달다 하고 얘기를 해야 되는 것이지, 양배추도 달고 무엇도 뭐 어떻다 하고 사과하고는 관계없는 얘기들을 할 것 같으면 논점을 벗어나게 된다는 거라.

대부분의 논지들은 그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행위는 내가 했는데 심판하는 것은 신이 심판한다고 할 거 같으면 이건 사과하고는 관계없는 다른 얘기들을 하고 있다는 거라. 그 깟사빠 선인이 얘기하는 것도 그런 경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부처님이 비판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 사상의 근본에는 뭔가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하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라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도덕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하는 거라.

 

자! 인제 여러분들은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

잘하는 것들은 잘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데 잘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누가 내 아기가 잘못했다 할 거 같으면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판단을 내가 지금 객관적으로 그 행동을 보고 그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을 먼저 판단해야 됩니다. 절대 주관적으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객관적으로 봐서 그 사람의 행동이 잘못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을 갖다가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상대방이 그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 아무리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그 사람이 그걸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잘못을 나는 잘못 안 했다 하고 인정을 안 할 거 같으면 그건 소용이 없는 거라. 그러니까 싸움이 되는 거라.

그리고 상대방이 그 잘못을 인정을 해서 그 잘못을 시정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내가 잘못했기는 잘못했는데 똑같은 일을 벌일 것 같으면, 똑같은 잘못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질 것 같으면 그건 소용이 없다는 거라. 그것을 시정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라.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판단을 해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 그렇게 잘못을 가리고 나서 그 두 사람, 나와 그 상대방의 관계가 보다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라. 발전 못 한다 할 거 같으면 아예 관여 안 하는 것이 낫다는 거라.

 

왜? 잘못은 그 사람이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지은 행위가 설혹 나쁜 과보를 받든 좋은 과보를 받든 그건 그 사람의 일로써 놔두라는 거라.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만 판단기준으로 잡아야 된다는 거라.

 

이런 네 가지가 채워졌을 때 잘잘못에 대해서 심판할 수가 있다는 거라.

객관적으로 잘못한 행위인가?

상대방이 그 잘못을 인정하느냐?

그다음에 그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상대방과의 관계가 더 나은 관계로써 발전할 수 있는가?

 

이 네 가지를 항상 판단기준으로 잡아라 하고 부처님이 얘기를 합니다.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면 비도덕적인 것이든 하는 행위는 꼭 여기에 부합되도록 하라"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그런 의미에서 깟사빠 선인의 얘기들은 잘못된 부분이 있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막깔리 꼬살라에 대한 얘기를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