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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Vesākha-Day) 봉축법회 (20090502)

담마마-마까 2021. 2. 22. 11:09

https://youtu.be/8OriREry82I

* 부처님 오신 날(Vesākha-Day) 봉축법회 (20090502)

 

우리 꼬맹이들 한 번 얘기해보지. 오늘 무슨 날이야? 응? 석가탄신일.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거기에 대한 얘기를 간단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부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보낼 때 뭐라고 적었어요? '웨사카 뿌자(Vesākha- Pūjā)' 그렇게 적어놨죠!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한국에서 하고 있는 석가탄신일 하고 마찬가진데 거기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요즘은 이 통신기술이 발달되어 있어서 옛날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옛날에는 각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다른 나라에서 잘 알지를 못했고 또 거기에서 하는 일들 행사들을 주변 사람들이 잘 몰랐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통신이 발달하면서 요즘은 전 세계가 그냥 한나라이다시피 그렇게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멕시코에서 그 바이러스 인플렌자가 발견되니까 그게 그 나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퍼져서 우리나라도 지금 열두 번째 발생국이 됐거든요. 그렇게 되는데,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 세계에서 미움을 받으면 전 세계에서도 미움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미움이나 원망이나 탐욕이나 이런 것들이 한 지역에서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공공연하게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럴 때 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서 부처님 오신 날을 우리가 잘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평화와 안락과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개인의 마음의 아픔과 전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 진리를 설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물론 이 자리에는 대승불교를 믿고 있는 분들도 있고 또 불교를 믿지 않는 분들도 있고 여러 부류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은 어쨌든 이런 정신들을 새겨서 서로 화합하고 협력할 거 같으면 조금 더 나은 일들을 만들어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인도에는 날란다라고 하는 불교대학이 있었습니다. 거의 천년 이상을 불교를 가르쳤던 곳입니다. 인도 사람들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중국 파키스탄 오만 나라에서도 그 나라에 가서 불교를 배우고 그래서 그걸 전 세계적으로 또 나누어 가지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마만큼 부처님의 말씀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요 근래에는 스리랑카 분인데 다르마빨라 라고 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인도에 지금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부처님 성도한 장소 붓다가야를 불교 성지로 만든 최초의 분입니다. 그전에는 거의 폐허화되다시피 했고 힌두교도들이 그냥 공유하고 있었던 일개 인도만의 성지였는데 그것을 다르마빨라라고 하는 분이 전 세계적으로 호소를 해가지고 불교 성지로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다르마빨라의 앞에는 테라와딘 이라고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테라와딘 아나까리까 다르마빨라'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러니까 테라와다 불교도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붓다가야를 진짜 중수를 하고 보수를 하고 그리고 그렇게 불교도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성지가 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은 그 테라와다 나라 테라와다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고 이 마하나야 대승불교권 일본 한국 중국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공헌을 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인종과 종파를 초월해서 그마만큼 부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을 해냈다고 봐집니다.

그래서 웨사카 날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지금 통일되어가고 있는 그런 형태들을 띠고 있습니다.

 

통신이 발달하기 전에는 서로 간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았단 말입니다. 그 통신이 발달하고 나니깐 지금은 어떻게 되냐면 1950년에 맨 처음에 제1차 세계불교도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그게 스리랑카에서 열리게 됩니다.

이때 결의된 것이 뭐냐 하면 "세계 불교도회의연맹은 모든 나라의 정부 최고책임자에게 인류에게 위대한 혜택을 베푼 부처님을 널리 칭송하고 존경해서 오월의 만월일을 경축일로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제1차 세계불교도회의 때 결의를 하게 됩니다.

 

오월의 만월일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웨사카라고 하는 것은 인도력으로 치면 5월달입니다. 요즘의 양력하고 거의 비슷하죠? 근에 우리 한국의 음력으로 치면 4월입니다. 만월일이라고 하면 4월 보름이 되겠죠! 음력으로 치면 "4월 보름날을 웨사카데이로 한다" 하고 세계에 공표를 하게 되게 됩니다.

그렇게 해도 사람들이 다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1954년도에 미얀마 양곤에서 다시 한번 더 얘기를 합니다. 인도가 안 따르니까 인도 정부에 대해서 "부처님의 풀문데이(Full Moon Day) 오월 만월일을 경축일로 하도록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인도에 공식적으로 요청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또 56년에 네팔에서 4차 세계불교도회의 때 파키스탄 정부에 대해서도 또 요청을 하게 되고, 그다음 61년도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렸을 때 여기서 대만, 캄보디아 정부에 공식으로 요청을 하게 됩니다.

76년도에 11차 세계불교도대회가 태국 방콕에서 열리게 됐는데 이때도 일본에 공식으로 요청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겪어오게 됐는데, 여기서 76년도에 완전히 일치해서 "사월 만월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한다" 하고 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뭐냐 하면 "본 회의에서는 웨사카 만월일이 동일한 날에 실시하는 것을 결의해서 확정한다. 우리 세계불교도회의와 이 총회에서 가결한 결의를 재차 확정하여 각 나라의 합의를 거쳐서 세계 불교도의 날로 확정한다" 하면서 하게 됩니다.

그 해에 UN에서도 세계불교도의 날,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크리스마스가 전세계적으로 12월 25일로 정해졌단 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4월 보름날로 한다 하고 UN에서도 결의를 하게끔 됩니다.

 

그런 과정을 겪어왔는데 그러다 보니까 전 세계에서는 4월 보름날로 부처님 오신 날로 지금 새고 있습니다. 지금 안 따르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정도이고, 일본도 병행을 하고 있습니다. 4월 8일하고 4월 보름하고 병행을 해서 그래서 4월 8일부터 4월 보름까지를 행사를 잡고 있고, 대만뿐 아니라 말레이시아까지도 전체가 다 4월 보름날로 잡고 있습니다.

61년도에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이게 공식 문서인데 "웨사카 만월일을 경축일로 정부에서 검토해서 허락해주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연방의 불교도 사이에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4월 팔일에 축하하는 곳도 있고 4월 보름날에 축하하는 사람도 있다. 이 불일치가 지금까지 불교도가 합동으로 웨사카만월일을 경축일로 하는데 많은 방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 말레이시아 연방의 모든 불교도 테라와다 불교와 대승불교를 포함한 모든 불교도가 부처님의 탄생을 웨사카 만월일에 하는 것에 합의를 했다. 해서 똑같은 날에 모든 사원에서 축제의식을 행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웨사카 만월일이 불교행사 중에서 가장 신성한 날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와 열반을 축하하는 삼계의 날입니다. 온 세상의 불교도들은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이 삼계의 기념해야 할 날을 축하합니다. 재가자는 이 날을 특별한 날로써 궁핍한 사람들에게 보시를 하거나 절에 시주를 하거나 경전을 독송을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설법을 듣거나 계율을 지키는 등 덕이 있는 행위를 행합니다. 이러한 날에 우리들은 사월 보름 만월일에 세계불교도회의 결의에 따라서 말레이시아에서도 붓다의 날로 하기를 정부에 청합니다" 하면서 공식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62년도에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웨사카 만월일을 경축일로 승인을 하게끔 됩니다.

 

그게 지금까지 부처님 오신 날의 세계적인 흐름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서로 간의 교류들이 없을 때는 이런 일들이 잘 없었는데 1950년부터 해서 지금까지는 거의 줄기차게 부처님 오신 날을 정해져 온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 60년 가까이 흘렀죠? 흘렀는데 아마 우리나라도 4월 보름날로 정하는 날이 곧 올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린 선원에서는 내년부터는 사월 보름날로 정해서 부처님 오시고 성도하고 열반하신 날을 기념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좀 더 좋은 조건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이 자꾸 무르익는 것 같애요. 어쨌든 기본적인 우리의 돈이 있고 또 누가 또 돈을 좀 더 내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하기 때문에 좀 더 좋은 조건들을 갖추기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 이 웨사카라고 하는 날입니다. "부처님의 탄생, 성도, 열반의 날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부처님은 기원전 632년 웨사카 만월일에 탄생하셨습니다.

태어나서 이름을 싯닫타, 싯다르타 그렇게 이름을 받았는데 그 의미는 뭐냐하면 모든 선, 모든 바른 것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싯다르타 라고 하는 뜻이. 그래서 악을 물리치고 바른 것이 뭔지를 이 세상에 정립해서 그것을 가져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나눠줄 사람이라는 그런 뜻이 됩니다. 그게 싯다르타라고 하는 의밉니다.

 

숫도다나 왕과 마야 왕비의 사이에서 태어난 싯다르타 왕자는 여러 면에서 뛰어났습니다. 또 부유롭게 살아왔습니다. 아시타 선인이 싯달타 왕자가 태어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왜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아기가 태어난 날 눈물을 흘립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하고 그럽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내가 이렇게 미소짓는 것은 아, 이 왕자가 이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할 걸 이루게 되고, 그 어느 누구도 못다한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미소짓고 웃는다는 거라. 또 하나는 왜 눈물을 흘리느냐면 내 나이가 인제 곧 죽을 날이 다가왔다는 거라. 그 부처님 말씀을 듣고 살 수가 없다는 거라. 부처님이 그런 법을 설하기 전에 나는 이미 죽음을 맞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게 서러워서 운다는 거라.

여러분들은 부처님 탄생한 날에 그러면 뭘 해야 되겠어요? 울면 안 되겠죠! 왜? 부처님 말씀을 지금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에! 항상 미소짓고 웃을 수가 있어야 됩니다.

 

어쨌든 이렇게 뛰어난 지혜를 가진 왕자가 생존에 대한 모습들을 커가면서 봅니다. 개구리를 뱀이 잡아먹고 그 뱀을 갖다가 또 매가 채어나가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아, 생존경쟁을 해야 되는 사회는 참으로 각박하고 무서운 곳이구나. 내가 조금만 약하면 남에게 잡아먹힌다는 거라. 내가 조금만 능력이 떨어지면 다른 사람이 나를 쳐내버린다는 거라. 내 자리라고 견고하게 있을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자리가 만리장성을 쌓은 것처럼 견고하지가 않다는 거라. 뺏겨버린다는 거라. 이 생존경쟁의 사회가 참 덧없는 곳이구나 하는 걸 인제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을 길가에서 만나기도 하고 또 병이 든 환자를 만나기도 하고 또 죽은 시체를 보기도 하면서 이 싯다르타 왕자는 오싹하게 피부로 느낍니다. 아무리 이 몸을 소중히 해도 결국에는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구나. 그 노병사(老病死)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 왕자는 '아, 이게 살아가는 모습이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수행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너무나 평온하고 고요했기 때문에 아,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몸이 노병사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적어도 살아 있을 동안에는 그렇게 평온하고 고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느냐 하고 마음을 먹게 돼서 출가를 하게 됩니다.

출가를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피나는 노력을 6년간 하게 됩니다. 피나는 노력, 범상치 않은 노력들을 6년간 해서 마침내 진리에 눈을 뜨게 됩니다. 최초로 진리에 눈을 뜬 것이 뭐냐 하면 중도(中道)라고 하는 겁니다. 세속적인 쾌락에 빠져서도 안 되고, 또 이 몸을 고통스럽게 해도 안 되는 거고, 그 양쪽 모두를 피해야 하는 것이 바른길로 들어서는 문이구나 하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해서 싯달타 태자가 태어난지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 날 붓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게 됩니다.

이 날도 마찬가지로 서른다섯 번째 생일날일 뿐 아니라 성도한 날인 웨사카달에 만월일이 됩니다. 그후에 45년간 줄기차게 이 깨달은 법을 다른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법을 설하게 됩니다.

 

그 내용이 크게 나누면 여러 가지가 되겠지만은 간추려서 하면 네 가지에 포함이 됩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는 한은 항상 괴로움이 있다. 그 괴로움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라.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에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하고도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해야 되고, 미운 사람하고도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가지고 또 대면을 해야 되고, 또 이 몸을 가지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괴로움을 정신적으로도 받게 되고 육체적으로도 받게 되고, 이런 것들이 있게 된다는 거라. 아무리 기쁨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이 생로병사로 인해서 일어나는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라. 그게 부처님이 말한 첫 번째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괴로움이 있다는 것은 왜 오는가 하는 거라. 끝없이 내 거라고 고집하게 되고 욕심부리게 되고 끝없이 갈망하는 것들 갈애가 있게 되고 이런 것으로 인해서 이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몸은 자꾸 변하게 되어있는데 안 변할라고 내 거라고 자꾸 붙잡으니까, 이 안 변할 수가 없는데도 붙잡고 있으니까 괴롭다는 거라.

그러니까 안 늙게 만들라고 아무리 팽팽하게 만들라고 하더라도 세월 앞에 장사가 없거든.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이 있음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괴로움이 더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욕심을 가지고 스스로가 이기주의적으로 바뀌다 보니까 그런 괴로움을 받는구나 하는 것이 부처님이 말한 두 번째 진리입니다.

 

세 번째가 이 갈애, 붙잡고 하는 것들을 놓아버렸을 때 근심이 소멸하는 상태가 있다 하는 걸 아는 겁니다. 그 붙잡는 걸 탁 놓아버리는 것이 있구나.

 

그다음에 네 번째가 뭐냐 하면 그렇게 놓아버릴 수 있도록 다가가는 길이, 성스러운 여덟 가지 길이 있구나 하고 여덟 가지 길을 설하게 됩니다. 그것이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해서 여덟 가지 길로써 팔정도로써 얘기하게 됩니다.

 

이게 부처님이 45년간 법을 설한 기본적인 굴레입니다.

물론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듣다가 퍼뜩 깨달음에 이르러서 아라한이 된 사람들도 있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 귀의해서 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방법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45년간은 법을 설하고 나서 부처님도 이 진리에서는 한치도 벗어날 수 없듯이 45년 후에는 완전하게 열반에 듭니다. 꾸시나라 라고 하는 곳에서 사라쌍수 아래서 완전하게 이 몸을 버리게 됩니다. 그것도 꼭 마찬가지로 웨사카 만월일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삼대일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부처님 탄생과 성도와 열반일이 똑같은 날 웨사카 만월일에 일어났다 해서 그날을 '붓다의 날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기 보다는 부처님이 오시고 성도하고 열반한 날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얘길 안 하고 '붓다의 날이다' '부처님의 날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이렇게 불교는 인도를 출발점으로 해서 세계의 모든 나라에 퍼져나갑니다.

그러면서 그 가르침을 이해한 사람들의 문화에 융해되어 나갑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각 나라마다 나름대로의 불교미술 불교문화가 형성되게끔 됩니다.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우리의 문화 우리의 미술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불교하고 연관을 맺게끔 돼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문화나 우리의 미술은 파키스탄의 문화나 파키스탄의 미술하고는 또 다릅니다. 거기에는 거기 나름대로의 불교미술과 불교문화를 형성해나갔습니다. 관습들이나 그 나라의 문화에 맞게끔 다양한 형태로 적응을 해나갔다는 겁니다, 불교가.

그와 마찬가지로 이 부처님의 날도 각 나라에서 나름대로의 문화에 맞게끔 그것을 축하합니다. 어떤 곳은 반야심경을 치면서 축하를 하고, 어떤 곳은 또 빨리어를 독송을 하면서 축하를 하게 되고, 어떤 곳은 그냥 명상만 하면서 축하를 하게 되고, 이렇게 나라의 문화나 그 관습에 따라서 공통적으로 부처님의 날을 축하를 하지만은 그 내용은 본질적으로 똑같게 돼있습니다.

 

웨사카 부처님의 날을 축하하는 가장 중요한 날은 이날이 '맑고 깨끗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날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해서 마음을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게 하는 날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경전을 독송을 하고 명상을 하고 자비를 실천하고 하는 날이 이 붓다의 날 부처님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불단 앞에 각각의 공양물을 올렸습니다.

꽃도 올리고 향도 올리고 초도 올리고 과일도 올리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날에 상징적인 이 공양물을 올릴 때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을 반드시 명심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지금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 그리고 초 불타고 있는 초, 그리고 심지가 타들어가고 있는 향, 이런 것들도 모두 다 불타버립니다. 없어져버립니다. "꽃과 향과 초도 그와 같이 사라져버리듯이 나의 생명도 쇠약해져서 언젠가는 죽음을 맞는다." 이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꽃을 올릴 때도 초를 올릴 때도 향을 올릴 때도 공양물을 올릴 때도 이 사실을 잊어버릴 거 같으면 부처님이 오신 날에 맞게끔 내가 마음을 가지지 않은 것이 됩니다. 이 사실을 반드시 명심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계 어느 나라든지 '불살생의 날'로 정해져 있습니다.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이날은 공양물을 먹을 때 전에는 고기도 먹습니다. 돼지고기도 먹고 또 닭고기도 먹고 합니다. 스님도 먹고 일반인들도 먹고 하는데, 딱 이날 만큼은 안 먹습니다. 대승불교권에서는 당연히 채식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걸 안 먹죠. 불살생의 날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걸 안 먹습니다. 그래서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안 먹는 것뿐 아니라 일반 상점 같은 곳에서도 아예 안 팝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안 파는 날을 거의 일주일을 안 팔거든. 안 파니까 애를 먹어요. 한국 사람들은 기독교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가 있기 때문에 스리랑카나 태국 같은 곳에서 상점에 가서 '고기주시오' 하면은 고기 안 줍니다. '오늘은 고기 안 팝니다.' 영문을 모르는 거라.

 

불살생의 날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가지고 이날은 '해방의 날이다'.

부처님이 성도를 해서 이 갈애로부터 해방되었고 또 열반을 해서 이 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또 태어남으로 인해서 완전하게 해방되기 위한 기초를 닦았다 해서 해방의 날이다 해가지고 그날은 방생을 합니다. 물고기 방생을 하든지 조류 방생을 하든지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들도 태종사나 이런데 있으면서 방생을 해봤겠지만은 기르는 것들을 사와가지고 방생을 할 경우에는 대부분이 죽든지 다시 잡혀버립니다. 그렇죠? 민물고기를 바다에다가 집어넣을 거 같으면 다 죽어버립니다. 또 민물고기라 하더라도 그걸 어느 못에다가 방생을 해도 그것도 또 다 잡혀요.

새를 방생을 해도 방생하고 나서 또 좀 있으면 그 새들이 또 다 잡혀버려요. 왜 그러냐 하면 자연에 적응을 을 안 했기 때문에 이런 도심 속에서 방생을 하면 그게 오래 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다시 잡혀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반드시 방생할 때는 어디서 하라고? 멀리 가서! 새를 방생할 경우에는 시골 같은데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방생하라. 물고기를 방생할 때도 그에 맞게끔 방생하라. 외국 고기들 막 사온 거 잡아갖고 방생하지 말고 우리 토종 물고기들, 그것도 방금 잡힌 것들, 양식 안 한 것들, 이런 것들 잡아가지고 그 지역에 가서 거기에 맞는 것들에다가 방생을 해야만이 그게 방생이 되는 것이지 아니면 살생을 하게 되는 거라.

 

이 붓다의 날에는 이런 의미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살생의 날이고 해방의 날이다." 그래서 일반 재가인 만큼은 반드시 흰옷을 입고 절에 모입니다.

부처님이 "불교신자 재가인들은 흰 옷을 입어라" 하고 얘기를 했거든.

흰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치장을 하지 않고 이날은 절에 와서 팔계를 지킵니다. 여러분들 조금 전에 팔계를 했죠!

 

이날 만큼은 경건한 불교도가 되는 날이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생명을 죽이지 말고 또 훔치지도 말고 성적인 행위도 하지 않고 나쁜 말도 하지 않고 술이나 마약 등을 사용하지도 않고 또 정오 이후에 부적절한 시간에 먹는 식사도 하지 않고, 춤 노래 또 자신을 장식하는 것들로부터 그런 쾌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버리고, 또 자신의 겸손함을 실천하기 위해서 높은 침상이나 사치스런 의자에 앉지 않고 맨바닥에 가까운 방석 하나만 의존해서 그날은 살아가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날은 부처님께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들인 스님들께 설법을 듣는 그런 날입니다.

 

또한 이 붓다의 날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나 장애가 있는 분들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찾아가서 봉사하는 날이다 하는 뜻입니다. 자선시설에 일정 부분을 기부를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런 요양소 같은데 찾아가서 몸을 씻기든지 빨래를 하든지 하면서 봉사하는 날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도 기쁘고 그분들도 기쁨을 누리는 기쁨을 함께 하는 날이다. 저속하게 내 혼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욕망을 채우는 날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는 날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 함께 기뻐하는 날의 일환으로써 절에다가 각각의 장식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여기에 다른 사람들 보고 기뻐하라고 꽃도 가져다 놓고 또 이렇게 연등을 달아서 예쁘게 꾸미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날은 일부러 벽화를 그립니다. 오늘 우리 꼬맹이들 도화지 한장씩 줄테니까 여기 그림들 하나씩 한번 그려봐라이.

부처님의 존경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그런 기쁨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그런 날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오늘 여러분들 떡 했죠? 떡 같은 것들 과일이나 음료수들 이런 것들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태국 스리랑카 버마 이런 데는 부처님 오신 날 일주일 전부터 기부를 받아가지고 기부한 돈을 가지고 각각의 음료수나 떡 같은 걸 합니다. 거리 거리마다 그걸 설치해 놔놓고 자동차가 지나가면 자동차를 세워가지고 그거 나눠주고, 사람이 지나가면 반드시 물 한잔이라도 음료수 한잔이라도 먹고 가게 합니다. 그러니까 그날은 거리를 한 1키로만 걸으면 배가 불러. 그렇게 서로 기쁨을 나누는 그런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근래는 부처님 오신 날 일주일 전에 퍼래이드 하죠? '제등행렬'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테라와다 불교권에서 이 제등행렬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제등행렬에 대한 것은. 물론 이 제등행렬을 함으로 인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거기 참석한 사람들이 부처님 말씀 배우고 함께 기뻐하고 이런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제등행렬이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등행렬 하는 것에 너무나 경비가 많이 든다는 거라. 그 돈이면 함께 기뻐할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 것이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되겠느냐는 거라. 그 몇십억 아니면 몇억이라고 하는 돈을 함께 배고픔을 나누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곳에다가 나누어질 수 있을 것 같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느냐는 거라. 제등행렬은 필요한 부분이겠지만은 너무 지나치게 형식화된 것은 피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오히려 큰 상징물 하나 마련을 해서 그리고 다른 곳에서 상징물 만들 돈이면, 그리고 옷을 맞출 돈이면 그 돈 다 모아가지고 좋은데 써라는 거라. 좋은데. 좋은데 안 쓰고 절을 하나 지어도 좋고. 절을 아마 지으면 몇 개를 지을 거라. 1년에 몇 개씩 절을 지을 거 같으면 이 나라에 얼마나 절이 많아지겠어요. 제등행렬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붓다의 날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그러면 부처님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냐 하는 거라.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 열반에 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슬퍼서 웁니다. 부처님이 슬퍼하지 말아라. 이 몸 있다고 하는 것은 내뿐 아니라 모든 사람 이 몸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쇠퇴해서 없어지게 돼있다. 뭐 하러 슬퍼하느냐. 구성된 모든 것들은 변하여 없어진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라. 그것이 부처님께 경의를 표하는 길이다. 그래서 이 육체가 소멸되고 나서 내가 죽은 뒤에도 그래도 내가 설한 법, 이 진리는 남아있지 않느냐. 너희들은 그것을 스승으로 삼아라.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나선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그러면 우리가 붓다의 날에 부처님께 경의를 표하게 될까?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고 그것을 배우고 따르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은 이 육체가 죽은 뒤에는 나의 담마, 나의 말을 스승으로 삼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이 진리만이 불변의 것이고 무상의 법칙에 지배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무상의 법칙에 다 지배당한다. 반드시 변해서 쇠퇴하고 없어지게 돼있다. 소멸되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나에게 경의를 표할려고 할 것 같으면 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 나의 가르침을 배워라." 그것이 붓다의 날을 축하하는 방법입니다.

 

이 부처님의 날 웨사카뿌자(Vesākha-Pūjā) 날에 모든 살아있는 분들이,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행복과 평안을 가져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