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지켜야 할 계행 - 계행의 확립 (20141218)

담마마-마까 2021. 8. 29. 09:00

https://youtu.be/aJ839WXZBhE

* 지켜야 할 계행 - 계행의 확립 (20141218)

 

항상 얘기하는 거지만 스님이 필요한 자리가 있으면 거기에 스님은 가서 내 할 일을 할 겁니다. 선원을 떠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이렇게 얘기해놓으면 “스님, 어디 갑니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선원을 떠나는 건 아니고, 떠날 때가 되면 떠나게 되겠지. 필요한 자리가 되면 거기 가서 또 내 할 일을 해야 됩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자기가 있어야 될 곳과 또 자기가 해야 될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을 할 줄 압니다. 그런데 재가자들은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때 부처님 말씀을 듣고 아, 내가 진짜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자답게 살아보겠다 하는 사람이 있었거든. 여러분하고 똑같이 오계를 받아지녔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오계를 지키기는 지켜야 되겠는데, 지킬려다 보니까 자칫 잘못하면 어길 것 같거든. 남들한테 말하는 것도 거짓말 하지마라 하니까 말하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 거짓되게 말하는 거거든. 거짓말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고, 나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는 거라든지, 남을 비난할려고 하는 거라든지, 아니면 이중적으로 이말저말 하는 거라든지, 아니면 필요없는 말을 한다든지 이런 말을 할 거 같거든. 그러니까 말도 할 수 없을 거 같고. 또 어디 한발짝 움직일려 해도 개미나 뭐 밟아죽일까봐서 움직이지도 못하겠고, 꼼짝달싹을 못하겠는 거라.

그래서 오계는 받았으니까 오계는 지킬려는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가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부처님이 봤을 때는 한심한 거라. 그래서 그거는 그렇게 해선 안된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그다음에 한 거는 뭐냐면 이때까지 너무 편안하게 있었으니까, 인제는 편안하게 있지 말고 인제는 내가 움직이면서 뭔가를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몸에 뭔가를 지니고 있으면 움직이면서 그것들이 부딪치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가 있고, 특히 겨울철 같은 경우 옷이 삐그덕삐그덕 수행처에서 할 것 같으면 다른 수행하는 사람들한테 방해가 되고 하니까, 그리고 추운 날씨라고 하더라도 양말을 벗고 조심해서 걷고 이런 식으로 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고도 부처님이 뭐라 합니다.

 

편안하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가지고 몸에 아무것도 안 지니고 뭔가를 할려고 해도 그렇게 해도 안 되고.

그래서 부처님한테 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계를 지키면서 살고 싶은데 도저히 계를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 오계 받았죠? 오랫동안 오계 지킬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말을 할 때도 아까 얘기한 잘못된 말 네 가지 종류는 안 해야 될 것이고, 뭔가를 봤을 때도 아, 참 저걸 갖고 싶다는 훔치는 마음들을 내지 않아야 되는 것이고, 뭔가를 보더라도 예쁘다 하는 욕망들도 일으키지 말아야 되는 거고, 그리고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업신여기거나 아니면 해코지 할려는 마음들도 가지지 말아야 되고, 당연히 오늘 만약에 연말이라서 누구하고 같이 모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술 한잔 할 수도 없는 거고, 어떻게 해야 돼?

 

그런데 이걸 지킬려고 하는 마음들을 가질려고 할 것 같으면 우선 마음에서 그게 먼저 일어나야 됩니다.

"내가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쁜 행위들을 하면 나한테 안 좋은 결과들이 오는구나" 하는 그런 마음들이 일어나야만이 이 계행들을 지킬려고 하는 마음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인제 보통 사람들은 오계를 받으면 오계만 지키는 것이 계행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계행 부분이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들을 좀 상세하게 얘기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들이 오계 아니면 특별한 날에 팔계 이렇게 지키는 것, 그 항목을 이렇게 받아서 그것을 지녀서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들을 보통 뭐라고 얘기하느냐면 '와릿따 실라'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받은 항목들은 반드시 지킬려고 노력하는 것들.

 

그와 반면에 그 항목에 포함되어 있든 포함되어 있지 않든 계행들을 유지해나갈려고 하는 마음들을 지닌 것은 '짜릿따 실라'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가끔씩 수행하러 오는 사람들을 이렇게 보면 어떨 때 오면은 뭔가 하나씩 바뀌어있는 것을 봐요. 화장실에도 보니까 겨울이니까 엉덩이 차가울까 봐서 누가 두꺼운 거, 뜨듯한 거로 누가 바꿔놨더라고.

또 여러분들은 잘 느끼지 못할지 몰라도 여기 있는 거 깨끗합니다, 방석이. 누군가 사람들이 깨끗하게 쓰라고 누군가가 빨래 해가지고 열심히 해가지고 깨끗하게 해놔놓습니다. 그리고 청소도 보면 누군가가 깨끗하게 해놓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들을 일으켜야 되는데, 그런데 다 그렇게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짜릿따 실라'에 대한 이해들을 가지지 않으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수행하러 와서 수행하기 위해서 좀 더 좋은 조건들을 내가 만들어주는 것들, 또는 내가 수행하기 위한 스스로의 조건들을 더 만들어주는 것들, 본인 자신이 청결하지 못하고, 본인 자신이 옷가지나 이런 것들이 좀 냄새나고 할 것 같으면 수행에 방해가 됩니다. 그러면은 본인 옷도 깨끗하게 하고, 또 떨어진 것이 있으면 기워 입고, 또 머리를 안 감아가지고 긁적거려가며 수행하기가 싫으니까 머리를 깨끗하게 감고 수행할려는 마음가짐들.

계율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이런 것들을 하는 것, 자기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편안하고 조금 더 이익이 되는 일들을 스스로 하는 것들, 이걸 '짜릿따 실라'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크게 보면 여러분들이 지키는 계행은 항목을 받아서 지키는 것도 있을 뿐만아니라, 항목에 포함이 되든 포함이 되지 않든 그것에 관계없이 스스로 마음을 내서 지키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계행을 지킨다」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처음에 얘기했지만 계행을 지킬려고 할 것 같으면 나쁜 일을 행했을 때 내가 가져오는 두려움들, 나에게 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들, 그것들에 대해서 피해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들이 일어나야만이 계행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런데 계행을 지켜나가야 만이 수행하는데 편안한 마음들, 고요한 마음들, 집중하는 마음들을 개발하는데 용이합니다.

 

그럴려면 계행을 지킬 때 항상 여러분들이 먼저 명심해야 되는 것은

 

첫 번째, 의도에 대한 것들!

내가 뭔가를 행할 때 그 의도들이 뭔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걸 '쩨따나 실라'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계행을 확립하는 첫 번째입니다.

내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하는가? 내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행하고 있는가? 내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의도가 올바르면 행해지는 것들은 올바르게 됩니다.

나에게 남을 해칠려는 마음이 없을 거 같으면, 또는 해칠려는 마음이 있더라도 아, 해칠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그 해칠려는 마음을 없애버릴 것 같으면 남을 해치는 행위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한테 말을 할 때도 내가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말을 할 것 같으면, 항상 남에 대해서 따뜻하고 자비로운 말들을 하게 되는 거고.

 

그런데 그런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남에게 말을 할 때도 나의 생각이나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하게끔 되고, 내가 하고 싶은 행위들을 하게 되고, 또는 감각적인 욕망에 빠져서 뭔가를 행하게끔 된다는 거라.

 

의도를 알아차리는 게 그마만큼 소중합니다.

신·구·의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의도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 의도가 있어야만이 뭔가를 행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뭔가를 말할려고 할 때 또 뭔가를 행할려고 할 때, 뭔가를 생각할려고 할 때는 아, 그 의도를 먼저 분명하게 알려고 하라는 거라.

내가 말을 할려고 할 때 먼저 말을 할려고 하지 말고 아, 내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이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말을 할려고 하는가 하는 마음을 분명히 알고 그런 마음이 있으면 말을 하는 거고, 그런 마음이 있으면 행하는 거고, 그런 마음이 있으면 사유하라는 거라. 의도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려고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계행을 확립하는 두 번째는 '위라띠 실라'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행하는 것들은 선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선하지 않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는 겁니다.

 

몸으로 행하는 것, 말하는 것, 마음으로 행하는 것들, 이것은 어떤 경우이든지 여러분들에게 업이 됩니다. 바른 것들을 행하든 바른 것을 행하지 않든 여러분들에게 업이 되어서 그 결과는 여러분들이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바른 업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거라.

어차피 말을 하고 행해야 할 것 같으면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하도록 하라는 거라.

행하고 있으면서도 아, 바른 행위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면, 처음에 의도는 알아차릴지 몰라도 그 행위는 불선한 행위가 돼버린다는 거라. 또 그 말하는 것은 불선한 말이 돼버린다는 거라.

행하는 것이 있을 때 그 행하는 시작부터 해서 행하는 것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들을 분명하게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걸어갈 때는 걸어가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끝까지 걸어가야만이 그 걸어가는 내내 적어도 내가 걸어가는 행위에서 불선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의도보다는 행위가 훨씬 더 깁니다.

설혹 내가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행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그 행하는 것들은 바른 업으로써 남게 된다는 겁니다.

수행을 해나갈 때,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 불러오고 꺼지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한시간 동안 할 것 같으면 한시간 내내 알아차려야만이 마음이 그 대상으로부터 벗어나질 않습니다.

설혹 내가 그 행하는 것들 불러오고 꺼지는 것들을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그 알아차림이 미미해서 그냥 불러오고 꺼지는 것들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시간 동안 내내 그렇게 알아차리고 있더라도 불선한 마음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위의 시작과 행위의 진행되는 것과 행위가 끝날 때까지는 분명하게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위라띠 실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사마라 실라'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단속하면서 계행을 지켜라 하는 겁니다.

 

그중에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잘 단속하기 위해서는, "오늘은 이것만은 반드시 지키겠다 하고 마음을 먹는 것!" 그걸 여러분들이 "계를 받아지닌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삐띠목카 사마라 실라'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오늘은 오계, 그 오계를 반드시 내가 지킨다 하고 마음을 딱 다짐을 하고 단속을 해버리는 겁니다. 오늘은 내가 팔계는 반드시 지킨다 하고 마음으로 딱 작정을 해버리는 겁니다.

그걸 사마라 실라의 첫 번째, 빠띠목카 사마라 실라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사띠 사마라 실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들은 단속을 하는데 그걸을 알아차림으로써 단속을 해야 됩니다.

자신의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단속해야 됩니다. 그래서 보면 본다고 분명하게 사띠해야 되는 거고, 들으면 들린다고 분명하게 사띠해야 되는 것이고, 감각기관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없을 거 같으면 그것을 단속할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감각기관은 반드시 그것들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알아차림의 힘이 강할 것 같으면 명칭을 붙이지 않고 분명하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알아차림의 힘이 약할 것 같으면 명칭을 붙여서 그것들을 단속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각적인 것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맡는 감각기관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겁니다.

보지마라, 듣지마라 하는 것이 아니고 보면 본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들으면 듣는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들을 놓쳐버리면은 단속하는 기능이 사라져버립니다.

행위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를 단속하지 못하면 탐·진·치에 물들 때 그것들을 제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탐·진·치를 알아차리고 있는 꼬리들이라는 겁니다. 쉽게 얘기하면 안 좋은 행위를 하면서도 정당화시켜버린다는 겁니다. 아, 난 어쩔 수 없이 했다. 남에게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사람을 위해서 했다고 정당화시켜버립니다.

 

그래서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어떠한 것들이든 반드시 단속해서 알아차리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이게 과연 나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건지, 이게 과연 나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기억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설혹 내가 단속하는 힘들이 떨어지고, 또는 알아차리는 힘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익이 오지 않는 일은 자기가 스스로 아는 거라.

행복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거고, 그래서 그것들을 안 할려고 하게 되는 거라.

 

그리고 그렇게 감각기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단속하게 되면은 구분을 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말을 할 때인지, 적절한 시간인지, 적절한 장소인지, 또는 적절한 대상인지, 이 말을 했을 때 합당한 대상인지 아닌지 그런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어른들에게 어려운 말들을 할 것 같으면 어른들은 알아듣습니다. 아이에게는 어려운 말을 할 것 같으면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럼 아이에게 하는 말은 내가 적당한 것을 골라서 해야 됩니다. 아이가 울고 있을 때는 그 울음을 그쳐주어야 되는 것이지, 그 울음을 더 일으키는 말들은 하지를 않게 됩니다.

시기와 장소와 그 사람 이런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가 있게끔 됩니다. 그게 감각기관에 대해서 그것들을 단속하면서 알아차리는 힘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겁니다.

 

그다음에 사마라 실라의 종류 중에 '칸띠 사마라 실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칸띠는 여러분들이 알 겁니다. 평온한 마음을 가지는 것! 견뎌내면서 평온한 마음을 항상 유지해나가는 것들입니다.

춥다 해가지고 "어이, 춥다" 할 수는 없습니다. 옷을 더 껴입어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 몸의 체온을 유지를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은 몸의 체온이 유지되는 것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옷벗고 견딘다 해가지고 몸의 체온을 유지할려고 할 것 같으면 그건 어리석은 것들이라.

 

칸띠는 그런 의미입니다.

항상 마음을 평온하고 고요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옷을 껴입듯이 여러분들도 그러기 위해서 조건들을 만들어야 됩니다. 설혹 그런 조건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 조건들을 가지고 항상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만들어야 됩니다.

 

환경조건들, 내가 지금 가난하다고 불평불만 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닙니다. 또는 내가 먹는 음식 맛없다고 불평불만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그것을 음식을 내가 먹어야 되는 거고, 그 환경조건에서 살아야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러한 조건에 있어도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설혹 맛있는 음식이 온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가져야 되는 겁니다. 좀더 좋은 조건에 산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가져야 됩니다.

그게 칸띠 사마라 실라라고 하는 겁니다.

항상 어떤 조건, 어떠한 상황, 어떤 세간적인 여덟 가지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나가는 것,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이 지켜야 될 것들을 분명하게 지키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사마라 실라의 종류 중에 '위리야 사마라 실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위리야는 노력입니다. 마음을 자극하는 것들을 볼 때마다, 또는 그런 대상을 듣고 볼 때마다 노력을 해야 됩니다.

마음을 자극하는 것들은 나에게 거친 마음을 일으키끔 합니다. 마음을 자극할 때마다 그 자극하는 것들은 최소화시키려고 하고, 그 자극하는 것들로 인해서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훈련들을 하지 않을 거 같으면, 또 그런 노력들을 하지 않을 거 같으면 마음은 항상 거칠어져 버립니다.

 

거친 마음으로는 사마디에 이를 수도 없고 지혜를 개발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에 마음을 자극하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으로 인해서 거친 마음이 일어나면 그 거친 마음을 분명하게 몰아내어야 됩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아, 이런 거친 마음이 있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됩니다.

이걸 위리야 사마라 실라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보면은, 여러분들이 단지 오계를 받아지녀서 그것만 지킬려고 하는 것은 계행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10가지 바라밀 종류 중에서 실라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실라 바라밀을 확립할 때는 이러한 방법으로 해야 됩니다.

바라밀이 확립될 때 깨달음에 이를 조건들을 갖추어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계율이 중요해서 여러분들 계만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계행을 지킬 때 일어나는 마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행할 때 모든 것들을 알아차리려고 하고,

그러한 것들을 행할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선한 마음들을 제거할려고 노력하고, 남에 대해서 배려하고 남에 대해서, 항상 똑같이 평등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일러가지고 계행 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계율을 지킨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기 자신이 계행을 지키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도구입니다.

여러분들이 행하는 수행들이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을 거 같으면 그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편한 수행을 하든 아무리 혹독한 수행을 하든 그것이 그렇게 함으로 인해가지고 내가 마음이 좀 더 성숙돼지고 마음이 좀 더 평온한 상태로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어서 깨달음에 나아가야 되는 것이지, 한시간 동안 내내 앉아서 꼼짝도 안 하고 고행을 했다 해서 마음의 성숙이나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을 거 같으면 그것은 수행이 아니라는 거라.

 

계율을 지키는 것이 수행을 위한 방편이 되어야 되는 거고, 그 밑바탕이 되어야 되는 것이고, 그 계행으로써도 여러분들이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봤을 때, 얼마만큼 사띠라고 하는 알아차림이 중요한가 하는 것들을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의도도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행하는 것들도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행하고 나서도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뿐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아차려 나갈 때,

그래야만이 불선업을 쌓지 않고 내가 행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마음의 성장과 깨달음으로 향해 나아갈 수 있게끔 되도록 해야 됩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