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14~2015 일상수행법문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5가지 조건 (20150402)

담마마-마까 2021. 9. 10. 09:00

https://youtu.be/nnTNYCDSDmA

*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5가지 조건 (20150402)

 

오늘은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5가지 조건」에 대한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불교를 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처음에 갖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그럴 겁니다. 테라와다 불교를 접하고 나서 처음에 드는 환희심이라든지 처음에 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아, 이게 바른 거 같다, 이 길로 가야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길로 그냥 그대로 쭉 가는 것은 아니죠? 그런 사람도 있고 게 중에는 또 이것도 아닌가 해가지고 다른 데 가기도 하고, 아니면 또 다른 조건들로 인해서 또 등한시하게 되고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부처님 시대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랐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죠?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떠한 경우든지 진리다 하고 따라가게 됩니다.

간혹 그게 잘못 오해가 되면은 부처님이 없으면 뭔가 좀 잘못된 것 같고, 또 부처님이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 없으면 그것도 좀 잘못된 것 같고 이렇게 생각들을 하게도 됐습니다.

 

부처님과 그 어린 여자아이 하고의 대화에서 그런 것들이 잘 나타납니다.

부처님이 항상 한곳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안거 지내러 간다고 하니까 부처님한테 가서 조릅니다.

부처님 한 번만 더 여기 그냥 있어주십시오.

부처님이 다른 데 약속이 돼있단 말이라.

그럴 수가 없다. 너는 왜 여기 나를 있으라고 그러느냐?

부처님이 여기 없을 거 같으면 법이 없는 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믿음이 확고하게 되기 전에는 그냥 돌돌돌 등질 수도 있고 그냥 흐지부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있어주십시오. 하고 얘기합니다.

 

그때 그럽니다. 그 말은 일리가 있는 거라. 여러분들하고 경우가 비슷할 겁니다

여기도 스님 법문 없다 그럴 것 같으면 안 옵니다.

또는 여기 와서 수행 할려고 안 하고 다른 것들 하다가 흐지부지하다가 가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때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은 어떻게 하면은 그 사람들에게 내가 없어도 내 가르침을 따르고 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수행 열심히 하고 그럴 수 있느냐? 하고 물어봅니다.

그때 그 아이가 그런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이 말한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계율을 잘 지키고 그러면 그게 가능할 겁니다.

너는 그러면 그렇게 하고 있느냐?

나도 지금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그거 왜 그런가? 왜 그런 믿음과 계율에 대한 것들을 등한시하게 되느냐?

자기 자신이 자신이 없다고 그럽니다.

 

그때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만약에 네가 이번 석달 동안에 이걸 한다고 나한테 약속만하면 내가 여기 머물게 하고 얘기합니다.

그게 인제 "계율을 지키는 것만 하라"

계율을 지키면 자동적으로 아, 이게 부처님이 말씀하신 게 맞구나, 그래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들도 생기는 거고, 그리고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대한 믿음들도 생기는 거고.

그래서 "그걸 하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하니까 부처님이 거기에 남게 됩니다.

나중에 삼개월이 지나고 나서 물어봅니다.

인제 내가 없어도 되겠느냐?

"예. 인제 없어도 됩니다."

 

삼개월만에 어떤 차이가 났을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 확고하게 믿음을 확립하게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수행자가 가져야 되는 자질 첫 번째, 믿음에 대한 얘기를 알면은 붓다·담마·상가에 대한 믿음만 자꾸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거라.

자기 자신이 그것은 내가 확고하게 지키고 확고하게 실천해나간다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상태에서, 붓다·담마·상가에 대한 것은 믿음이 확고하게 될까?

그게 사실은 잘 안되는 거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음을 확고하게 가져야 됩니다.

 

물론 그럴려고 할 것 같으면 끊임없이 수행해야 되고, 끊임없이 가르침을 들어야 되고, 끊임없이 삼보에 대한 믿음들을 자꾸 일으켜야 됩니다.

어느 순간 떨어지면 또 끌어올리고, 떨어지면 또 끌어올리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거 같으면, 이 길 말고 다른 길을 또 찾아가게 되고, 이 스승 말고 다른 스승들을 찾아가게 돼있고, 그리고 이 수행 말고 또 다른 수행들을 또 할려고 하게 돼있는 거고.

 

여러분들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스스로가 나는 바른 길로 가고 있다 하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 있느냐는 거라.

나는 나쁜 짓 안 하고 좋은 말만하고 좋은 행동들 하고, 좋은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하고 확고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있는가?

적어도 이 테라와다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고 했으면 그정도는 돼야 될 거 아니라.

그럼 아직은 스스로에게 그런 확신들을 가지지 못했다는 얘기라.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질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확고해야 됩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 될 것이고, 이것은 내가 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자꾸 구분하려고 해야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 내가 이렇게 할 것 같으면 닙바나에 이른다. 내가 이렇게 할 것 같으면 도와 과에 이른다. 이렇게 할 것 같으면 행복해진다. 하는 확신이 없이 뭐하러 이 가르침을 듣고 이 가르침을 따라서 실천하느냐는 거라.

 

지금 현재 눈앞에 있는 조그만 것 하나 따먹었다고 해가지고, 그거 때문에 이 가르침 듣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데서는 이런 것들 배울 수도 없고, 또 그 실천법들이 바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건가?

그것은 언제든지 바뀝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바뀝니다.

또 다른 것이 나타나면 또 거기에 마음이 쏠리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입니다.

살아있는 경우에는 어떤 경우든지 그렇게 되게 됩니다.

 

그걸 "오가(ogha), 격류"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바와 오가(bhava ogha)" 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다른 대상들에 인해서 휩쓸려들어가게 됩니다.

다른 것들이 나타나면 확 휩쓸려들어가게 됩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휩쓸려들어가는 거라. 그것은 출가한 스님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그 격류에 휩쓸려들어가는 것은.

 

단적인 예로, 이 수행을 어느 정도 하면서 삼매를 어느 정도 체험을 해봤다. 아니면 니밋따를 체험을 해봤다. 그러면 그다음에 수행을 한다고 앉을려고 할 거 같으면 뭐가 먼저 떠오르냐면 '아, 내가 삼매 체험 해야지'. 그전에 수행했을 때 아주 기쁨의 현상들이 일어났는데 '그거 다시 한번 더 맛봐야지' 하는 생각이 먼저 탁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수행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삼매나 니밋따는 천천히 일어나든지 아니면 아예 일어나질 않게 됩니다.

그게 바와 오가의 영역에 속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것이든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리면서 아, 모든 것들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고 판단하고 꾸준하게 그냥 노력해나가는 사람은 설혹 삼매에 이르지 못하고 또는 수행의 진척이 느리다고 하더라도, 확고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가더라도 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갖추어야 될 첫 번째 부분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들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장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때가 아니면 수행해가지고 깨달음에 이를 구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믿어야 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고.

 

그다음에 두 번째가 조금 등한시하기 쉬운 것들인데, 몸에 대한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들입니다.

수행을 자꾸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진척이 있고 할 거 같으면 몸을 생각하는 것을 자꾸 등한시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장기간 외국에서 수행을 많이 하면 몸을 버려가지고 오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기 부분이라든지 아니면 외부적인 것이든 버려가지고 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물론 기후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여러 가지 조건들도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해야 되는데도 오히려 한국보다는 더 몸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쓰면서 수행을 할려고 그럽니다.

 

물론 그렇게 해가지고 어느 정도 진척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도와 과의 경지에 이르는 진척이 아닐 것 같으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몸이 상해버릴 것 같으면 다시 또 제자리로 돌아와야 됩니다.

그러면 다시 또 그 몸 추스리는데 시간을 몇달이고 몇년이고 또 허비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수행을 해도 옛날과 같은 그런 상태에 이를려면 또 한참 시간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면 조건이 어떤 조건이 되든지 간에 항상 수행하는 사람들이 유념해야 되는 것이 건강입니다. 건강을 해칠 정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좌선수행이 잘된다고 어떤 경우에는 하루종일 좌선만 하고 앉아있습니다. 물론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관절이라든지 건강을 해칠 정도가 될 것 같으면 안 되는 거라. 그것뿐 아니라 발란스를 맞추는 것조차도 깨져버리게 됩니다.

 

'아따삐 삼빠자나(ātāpi sampajān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수행은 어떠한 경우든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끊임없이 알아차릴려고 불굴의 노력을 해나가는 것들을 수행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 힘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져야 되는데, 좌선만 계속하다 보면 아따삐 부분이 사라져버리는 거라. 끊임없이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하는 마음보다는 고요하게 머물려고 자꾸 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수행의 발란스가 깨져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수행해라 그러면 그냥 앉아서 좌선하는 것만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라. 경행하고 일상생활을 하고 하는 것들은 수행이라고 여기질 않게 되는 거라.

 

아따삐 삼빠자나라고 하는 것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것이든, 그것이 행위이든 동작이든 감각이든 어떤 것이든 그것들을 전부다 알아차릴려고 하라는 거라.

그런데 좌선에서 수행을 하다 보면 그중에 일부만 자꾸 알려고 그럽니다. 알아차려지기 때문에. 행위에 대한 것들은 잊어버립니다. 그러니까 행위하고 하는 밥 먹을 때, 걸어갈 때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알아차리려고 안 합니다. 그다음부터는.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수행할 때도 그랬을 겁니다.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올 때는 그중에 알아차림이 과연 얼마나 됐는가? 별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한시간 두시간 좌선하고 또 천천히 경행하고 이것만 수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또 떠날 때는 집에 갈 때까지 또 잊어버리는 거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수행에서 발란스를 맞춰야 됩니다.

좌선이 한시간이 됐을 거 같으면 일상생활에서의 행위들을 알아차리는 것도 똑같이 한시간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수행자가 갖추어야 될 조건이 몸의 건강함입니다.

차라리 몸의 건강을 버리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훨씬 이익입니다.

몸의 건강을 해치면서 어느 정도 수행에서 진척이 있는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럴려면은 어떠한 경우든지 발란스를 맞춰야 됩니다.

모든 것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견해를 바로 세울 줄 알아야 됩니다.

 

보통 견해를 바르게 세우는 것 네 가지를 얘기할 때

첫 번째가 까마(kāma) 부분을 얘기합니다.

감각적인 것들에 대해서 견해들을 자꾸 바로 세울려고 해야 됩니다.

맛보는 거 맛있다고 자꾸 할려고 하지 말고, 보는 것들 아름답다 추하다 하는 생각들을 자꾸 가지지 말아라는 거라.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한 것들은 그냥 흘려버릴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감각적인 것에 대해서 견해를 바로 세우지 않을 거 같으면, 수행자가 갖추어야 될 마지막 다섯 가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힘들어져버립니다.

 

어떠한 경우도 안·이·비·설·신·의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일어나는 대로 둘려고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 됩니다.

보면 보인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맛보면 맛본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렇게 자꾸 하지 않을 거 같으면 감각적인 것에 자꾸 빠져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더욱 더 탐닉하다 보면, 견해 자체가 잘못 세워져버리게 됩니다.

이거 한꺼번에 확 해버리고 나면 다시 안 할 거 아닌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는 법이 없습니다.

숟가락질을 배울 때 숟가락질을 배우는 것이 힘드는 것이지 배우고 나면 아주 쉽게 합니다. 감각도 그걸 개발하고 나면은 그것은 아주 쉽게 되는 것이지, 그것이 딱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일상생활 할 때 감각에 대해서 자꾸 바르게 견해들을 세울려고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견해를 바르게 세우는 것의 두 번째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견해들을 자꾸 세우려고 해야 됩니다. (bhava ogha)

왜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왜 살아가고 있는가? 수행하기 위해서? 아니면 공덕을 많이 쌓기 위해서? 아니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왜 살고 있느냐는 거라.

그 견해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은 다른 것들로 인해서 흔들려버리게 됩니다.

수행해야 되는 시간에 다른 일들 돈버는 일이 있을 거 같으면 돈을 버는 일을 하게 되는 거고, 또는 남들 만날 약속이 정해질 거 같으면 법문 듣고 하는 걸 빼먹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목적이 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꾸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일반적으로 말하는 딧티(diṭṭhi) 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 또 자신이 정립한 견해, 이런 것들이 결코 바른 것이 아닙니다.

도와 과에 이르렀을 경우에는 견해가 자꾸 사라져버립니다.

그런데 도와 과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자꾸 자신의 영역, 자신의 견해를 쌓아갑니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도와 과에 이르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테고리 견해들을 자꾸 부술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나는 이렇게 수행해야 된다. 이것 이렇게 가는 것이 바른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거라. 내가 지금 도와 과에 이르렀는가? 그렇지 못할 거 같으면 그거 버리라는 거라.

 

네 번째가 아윗자(avijja) 입니다. 무명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쉽게 얘기하면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팔정도에 맞는가, 안 맞는가.

바른말을 하고, 바르게 생활을 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신·구·의를 통해서 하는 것들이 바른가 하는 것들을 자꾸 돌아봐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무명의 영역으로 자꾸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오가(ogha)라고 하는 폭류는 내가 통제해가지고 가까스로 버티지 않을 거 같으면 휩쓸려들어가버리는 것들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내가 붙잡고 그렇게 가지 못하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견해들을 자꾸 세울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노력하는 힘이 없으면 안됩니다. 노력의 힘!

끊임없이 자꾸 노력을 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 노력은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들입니다.

노력의 힘이 떨어지는 순간에 감각적인 것들, 또는 믿음들, 건강을 유지하는 것들, 그리고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들, 한꺼번에 다 날아가버립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제해야 될 거는 자제하고,

견해를 내세웠으면 견해를 내세우는 것들도 멀리 벗어날려고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내가 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집부리는 것들도 버려야 되는 것들이고,

대상에 대해서 뭔가 알아차릴 때 그것을 붙잡을려고 하는 것들도 놓아버려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 자꾸 알아차릴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어떠한 경우든지 그것을 끊임없이 알아차릴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것에는 어떠한 것에도 붙잡히지 않고,

붙잡지 않는 상태가 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뭔가 자애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 나를 내세울려고 한다? 그러면은 그거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수행하면서 반드시 갖추어야 되는 것들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분명하게 아는 것!

어떠한 것이든 일어났으면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사라지게 돼있는 것에 그것을 집착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수행에서 본격적으로 수행이 진척돼나가는 것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분명하게 아는 지혜가 열렸을 때, 그때 수행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면 수행자들이 갖춰야 될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아는 지혜입니다.

호흡도 일어났으면 사라지게 돼있고, 생각도 일어났으면 사라지게 돼있고, 모든 현상들은 일어났으면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그것들을 분명하게 자꾸 알려고 해야 됩니다.

 

이게 수행자들이 갖추어야 될 조건들입니다.

다섯 가지의 조건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수행을 하면서 이 조건들을 자꾸 갖출려고 해야만이 그 수행을 오래도록 할 수가 있고, 또 그 수행으로 인해서 내가 행복하게 돼있는 거고, 닙바나에 이를 길을 닦게 되는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들을 잘 갖추어서 수행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그런 수행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질의응답 >

수행자 질문 : 스님, 오늘 법문 중에서 사띠와 삼빠자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옛날에도 한번 질문드린 거 같은데 아직 완전하게 이해를 못했습니다.

스님 답변 : 사띠는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고, 삼빠자나는 그 알아차리는 것들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그걸 사띠를 알아차림이라고 그러는 거고, 삼빠자나를 분명한 이해라고 그러는 겁니다. 분명한 이해는 선후가 없으면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자 : 한문으로는 정지(正智)라 해놨던데요.

스님 : 그러니까 바른 앎이란 뜻입니다. 바른 이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지(正智)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수행자 : 사띠를 계속 유지시켜 주는 하나의 힘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스님 : 다른 영역입니다. 사띠를 계속 유지시켜주는 것은 다른 작용들로 인해서 계속 유지시켜주는 거고, 어쨌든 사띠가 계속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들이 삼빠자나의 영역에 속하게 되는 겁니다. 됐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