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법문 교재(프린트물)

전쟁은 어리석은 자들의 피난처 (20151204)

담마마-마까 2022. 1. 28. 09:10

* 전쟁은 어리석은 자들의 피난처 (20151204)

 

석가족과 꼴리야족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의 사람으로, 비였던 마하-마야 부인은 꼴리야족의 사람이었습니다. 양국 모두 로히니 강의 물로 농업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이 해는 물 부족으로 농민들은 자신의 밭에 먼저 물을 대려고 서로 경쟁했으므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싸움은 점차 커져서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양국은 군사를 움직여 본격적으로 싸워서 강의 소유권을 빼앗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양 민족은 모두 지기 싫어해서, 전술의 달인이었습니다. 싸움에 임할 때는, 「이기든지 전장에서 죽든지, 그 둘 중의 하나밖에 없다」라는 마음으로 싸우는 성격이었던 것입니다. 양 민족의 영웅적 기상은 모두의 파멸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관찰하여 아시고선 양쪽 군대의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양 종족의 친척입니다. 양쪽으로부터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쪽을 편들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쌍방은 일단 싸움을 멈추고 부처님의 말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나지막하게 「장군들이여!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장군들은 「로히니 강의 물의 소유권을 획득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장군들이여! 이 물의 가치(가격)는 어느 정도입니까?」라고 묻자, 「가격을 매길 정도의 가치는 없습니다. 물은 공짜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싸움으로 장군의 생명과 군인의 생명은 수없이 없어집니다. 여러분 한사람의 생명의 가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생명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고귀한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단지 가치 없는 물을 위해서,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피를 흘리는 것은 영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것이 올바르게 정치를 하는 것이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됩니까? 분명하게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이 정치가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라며 부처님은 양쪽을 설득했습니다. 모두 너무나 큰 수치를 느끼고 싸움을 그만두었습니다. 부처님은 자원이 적으면 모두 절약해서, 균등하게 나누고, 서로 협력하여 사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라고 가르치고, 강의 자원을 균등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 일화는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쓸모없는 변명을 하며 전쟁을 하거나 학살을 하거나 해 온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로 일어난 전쟁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이 사소하고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 변명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역사를 쓰는 사람들도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지 않고, 누가 이겼는지, 누가 졌는지, 전술은 어떠했는지 등을 끝없이 이야기하고, 진 사람보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전쟁에 이긴 악인을 영웅으로서 칭송합니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도 전쟁의 어리석음을 알기는커녕, 자신도 영웅의 기분이 되고 싶어 합니다. 무지한 사람에게 관리되고 있는 이 세계에서 그렇게 해서는 전혀 살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쟁도, 테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싸웁니다. 전장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자신의 민족의 자유를 쟁취하고자 생각한 어리석은 자는 싸움을 걸고, 감언이설로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도 질질 끌고 가서,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에 빠뜨립니다. 여자나 아이나 노인도 가차 없이 적으로 몰아 학살해 버립니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동 지역의 재산을 선진국의 회사가 독점하고 싶어서, 정치가라는 어리석은 자를 자극해서, 전쟁, 암살, 쿠데타, 분쟁 등을 일으켜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개발하는 능력은 가진 사람이라도 어리석은 과학자들이나 기술자들은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합니다. 무기의 가격을 몇 십 배로 뻥튀기하여 팔기 위해서 사람들의 조화를 잔혹하게 부숩니다. 단지 무제한하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자신들의 힘을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해서입니다. 혹은 무의미한 주의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또는 성서 등에 쓰여져 있는 허구를 현실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제한하게 돈을 벌어도 그것은 고민과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한사람의 인간에게 일생 필요한 돈의 양은 한정된 것입니다. 고급차를 100대 가지고 있어도, 대저택을 20채나 가지고 있어도, 하나의 몸으로 전부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철부지 같은 망상가들이 먼 옛날 만들어낸 신화를 현대 사회에서 실현시키려 해도 시대가 다르기에 잘될 리도 없습니다. 결과는 인간 차별과 미움과 살인뿐입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모든 생명을 사랑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전쟁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 평화를 부숩니다.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행복을 부숩니다. 풍부하게 되기 위해서 자원을 파괴합니다.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타인을 차별합니다.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 상대를 괴롭힙니다. 더구나 자신의 삶의 방법, 생각, 주의 주장이 올바르다고 고집합니다. 타인의 마음까지 컨트롤 합니다. 세상의 이 어리석은 삶의 방법에 트집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괴짜 취급합니다. 따돌려버립니다. 탄압을 합니다. 올바른 의견도 탄압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공언합니다. 그래서 고민과 괴로움을 증폭합니다.

 

세계는 이런 것으로 뒤집혀 있습니다. 이성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에게 유혹되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근성이 없는 약한 사람은 모두가 하고 있기 때문에 한다. 심지가 강한 영웅은 올바른 일을 한다.」

 

자신은 살해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기분은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살해당하고 싶지 않다」 「행복하게, 편하게, 오래살고 싶다」라고 하는 기분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나」를 이해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모델로 해서 다른 생명을 관찰하면, 살아가고 싶은, 죽이기를 원하지 않은, 이라고 하는 기분은 모든 생명에 보편적인 것이라고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해치고 죽여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의 협력, 버팀목 등이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른 생명으로부터의 버팀목, 협력, 도움 등이 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성공의 정도를 측정하는 포인트도 다른 생명으로부터의 협력과 버팀목을 얻고 있는지 않는지 라고 하는 점에 걸려 있습니다. 다른 생명에 폐를 끼치거나 방해를 하는 사람에게는 밖으로부터의 협력은 없어지기 때문에 불행하게 되어 버립니다. 때로는 지키고 싶어하는 자신의 생명마저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행복하게 되고 싶다」 「병이 들고 싶지 않다」 「오래 살고 싶다」 「편하게 살아가고 싶다」라고 생각한다면 또한 그러한 희망을 실현하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자신과 관계가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해서 친절한 것, 자애를 가지는 것, 협력하는 것, 서로 돕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게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도 행복하게 되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 나만 행복하면 된다.」 라고 하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행복은 타인의 협력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행복은 흔적도 없이 끔찍하게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일반적인 말의 의미, 또는 불교에서 말하는 「생명을 죽여선 안 된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도 「나를 해치지 마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싶지 않다, 나를 해치지 마라는 본능은 모든 생명도 죽고 싶지 않다, 살해당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불교에서는 「사람을 죽이지 마라」가 아니라, 「생명을 죽이지 마라」입니다. 「불살생」인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살생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래서 모두 분노와 미움에 괴로워하고 있지만, 우리는 화내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기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모두 분쟁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쟁을 그만두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모두 적을 쓰러뜨리려고 자멸하지만, 우리는 적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애로 감싸 안아, 우방으로서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가 있는 사람의 길, 불교도의 길인 것입니다.

 

● 이번 포인트

 

• 모든 전쟁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습니다.

• 심약한 어리석은 자는 싸우려고 합니다.

• 어리석은 자는 싸우는 것이 평화롭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의 성공은 다른 협력에 의합니다.

• 다른 생명을 괴롭히고 죽이는 사람들의 행동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 자신이 살해당하고 싶지 않은 생명은 다른 생명을 결코 죽여서는 안 됩니다.

• 현명한 자는 괴로워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도 행복하게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