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바르게 말하는 것도 수행의 하나이다. (20190504)
··· 사람들은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어색한 모양이라. 나는 오히려 말 안 하고 있는 게 참 좋은데, 특히 그런 걸 언제 느끼냐면 누군가가 와가지고 스님한테 수행문답을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거에 대해서 물어본다든지 이럴 때, 여러분도 알지만 스님은 길게 얘기를 안 하거든. 짧게 그냥 얘기를 하는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스님이 쭉 얘기를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애. 그러다 보니까 본인이 할 얘기가 없으면 조금 어색한지 막 중구난방으로 얘기를 합니다. 나중에 보면 뭘 얘기했더라? 본인도 그럴 정도로.
꼭 스님하고 얘기할 때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끼리 만나면 말 안 하고 있으면 어색하나? 불편해? (수행자 대답 : 예. 어색합니다.) 거 왜 그럴까? 왜 어색할까? (수행자 대답 : 상대방이 화가 났는가, 왜 입을 안 떼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이 화가 났든 뭘 했든 본인이 거기에 반응을 안 하고 잘 지혜롭게 대처를 하면 되는 것이지, 왜 그렇게 다른 걸 신경을 많이 쓰는지 모르겠어. 상대방에게, 그렇다고 배려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가지고 그게 뭐 불교에서 얘기하는 말하는 것에 어긋나는 4가지 어긋나는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 남을 비난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나쁜 말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필요 없는 잡담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뭔가 말을 많이 했기는 했는데 '이게 필요 없는 얘기였을까?' 하는 그런 것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올바르게 얘기하는 것도 수행의 하나이다」 하는 제목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자따까(Jataka 本生經)에 보면 그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얘기인데도 큰 재앙을 당하는 게 있습니다.
자따까 얘기하기 전에, 경전에도 그런 게 나오는데, 깟사빠 존자가 소박하게 살아가고 그런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어느 스님이 그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뭐 스님이니까 당연히 소박하게 살아야지, 거 뭐 누구는 못하나? 나도 그럴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 합니다. “그거 뭐 칭찬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하고 그런 얘기들을 합니다. 그런 얘기를 계속 반복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게 부처님 얘기는 아닌데 괜히 듣기 싫은 거라. 뭐하러 그렇게 쓸데없는 얘기들을 할까? 그렇다고 그게 잡담하는 것은 아닌데도 그렇게 느껴지는 거라.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 얘기하지 말아라. 뭐하러 그렇게 수다스럽게 뭔가를 자꾸 계속 반복해서 얘기를 하느냐? 그러지 말아라. 그것은 좋은 것은 아니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도 습관이 들어 있는 사람들은 뭔가를 계속적으로 반복해야 됩니다. 계속 반복을 하는 거라.
그래서 경전에는 결국 그 스님은 그렇게 반복하는 습관이 몸에 들어놔서 죽고 나서 나쁜 곳에 떨어졌다 하고 그렇게 나옵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그런 거 많이 할 겁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에 똑같은 말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것, 그런 것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건 어찌 보면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니고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반복되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그 말을 할 때 자신의 마음을 자세하게 한번 들여다보십시요. 살펴보면 짜증나는 마음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게 반복돼있으니까 선한 마음이 아니고 악한 마음이 자리를 딱 잡고 있으니까 애한테 할 때도 자애를 가지고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싫은 마음으로 그 얘기를 계속적으로 합니다. 그게 습관화 돼있으면 좋은 결과들이 올 수는 없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그걸 받아들일려는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고.
자따까에도 그런 것이 나옵니다.
백조 두 마리 하고 거북이 하고 한 연못에서 사이좋게 살았습니다. 백조는 항상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니까 거북이한테 한번은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전에 있었던 저 히말라야 쪽에 어느 곳에는 참 아름답고 먹을 것도 많고 그렇다. 우리는 이번에 가면 그리 갈 것이다.” 하니까 거북이가 “그럼 나도 그리로 데려가 줘.”
그럼 백조가 거북이를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은 백조는 두 마리니까 막대를 이렇게 해가지고 거북이한테 물리게 하고 양쪽에서 백조가 그걸 물고 날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리가 거북이를 나르기에는 거북이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공중에서 누가 바통터치도 못하는 거고, 그래서 막대기를 물고 날아갑니다.
그 대신에 백조가 부탁을 합니다. “누구도 말을 하면 안 된다.” 백조가 말을 하든 거북이가 말을 하든 말을 하게 되면 공중에서 어떻게 돼요?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니 말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안 좋은 결과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는데 밑에서는 이상한 풍경이 보이니까 “야, 저기 백조가 거북이를 물고 간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그거 신경 쓸 필요 없거든 사실은. 아무 의미없는 말들인데.
그런데도 거북이는 그걸 자랑하고 싶은 거라. “백조가 내 친구라서 나 좋은데 데려다 줘” 하고 말을 안 해도 되는 건데도 그냥 말하는 것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말을 하면 막대기를 놓아버려지니까 밑에 떨어져 죽을 수밖에.
우리도 보면 짜증나서 말을 반복해서 말할 때도 있을 뿐아니라, 기분이 좋을 때도 뭔가를 끊임없이 그걸 얘기를 하게 되는 거라. 만약에 누가 “당신 참 예쁩니다” 하고 얘기하면은 그거 예쁘면 예쁜 거지 그냥 받아들여버리면 되는 건데, 그걸 자랑을 해야 됩니다. 누구한테도 자랑을 하고, 또 저기도 자랑을 하고, 또 여기도 자랑을 하고 계속적으로 반복을 합니다. 그러면 아까 같이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습관 중에 한 사람은 계속 자아가 강화되는 역할들을 합니다.
다. 거짓말 하지말아라. 그리고 나쁜말 욕설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은 하지 말아라. 그다음에 내가 확인된 것이 아니면 남의 말을 옮기고 하는 것들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고 소문을 내고 하는 그런 것도 하지 말아라. 그다음에 쓸데없는 말들 잡담하는 것도 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그것은 말에 대한 규정으로써 4가지를 딱 정해놨습니다.
그런데 잡담에도 속하지 않고 나쁜말에도 속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들 그건 규정을 안 해놓은 거라. 왜 그랬을까? 부처님이. (수행자 대답)
그런데 수다는 그런 4가지에 속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사실은 끝없이 말하는 겁니다.
'끝없이 말한다'는 것은 어떤 거냐 하면 경전에 이렇게 돼있습니다.
반복해서 같은 것을 말하는 것,
두 번째 이야기에 결말이 없는 것,
세 번째 뭘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
네 번째 상대방의 마음이나 기분하고 관계없이 그냥 말하는 것,
그다음에 다섯 번째가 말을 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말을 하는 것,
그런 것들을 '수다'의 영역에 올려놓았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말을 안 하고 살 수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이것들을 어느 정도씩은 다들 하게끔은 돼있습니다. 하게끔은 돼있으니까 계율에 저촉도 안 되고 하니까 그냥 이것이 자꾸 습관화 돼버립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게 있죠? 옛날에 뭐라 그러지? 재미있는 얘기 들려주는 만담가들, 우리 어릴 때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막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기분 좋아갖고 하면서도, 하고 나면 나중에는 끝나고 나면 뭔가 들었기는 들었는데 뭔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게 하여튼 기분만 좋아지고, 그러니까 사람의 감정만 가지고 노는 그런 것들이 장려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것이 허용이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기분을 좋게 하고,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들은 전부 이 '수다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것은 자제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을 하다 보면 사람에게 감동주는 말을 자꾸 할려고 하고 그럽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그러는 게 있죠? 말하는 훈련하는 학원들도 있죠? 뭐라고 그러지? (스피치, 웅변학원) 웅변학원이라 그러나.
스님들 간에도 그런 말하는 법에 대해서 그런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좀 더 아름다운 말을 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런 걸 합니다.
불교에서는 어떻게 규정을 해두었을까?
말하는 게 잘 안되면, 아까 같이 결론도 없이 막 말을 하게 된다든지 이런 여러 가지들이 수다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 계속 반복하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가장 좋은 것은 짧게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스님들에게 「말하는 법에 대한 것」을 조언하는 경전이 있습니다.
꼭 스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정해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말을 하라.
무엇에 대해서 얘기할 것 같으면 거기에 대해서 포커스를 맞춰가지고 말을 해야 되지, 말을 하다가 할 것이 없으면 그냥 침묵해야 되는 것이지, 괜히 쓸데없는 것들을 하지 말아라는 거라.
사람 간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아마 이게 안 돼서 그런 거라. 지금 현재 얘기만 하면 될 건데 또 과거 얘기하고 뭐하고 그냥 자꾸 끄집어 내가지고 이걸 넓혀버리는 거라. 그래서 대화를 하고 말을 할 때는 정해진 주제만 가지고 얘기를 해야 됩니다.
두 번째가 짧게 말하라.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길어버리면 잔소리 밖에 안됩니다. 짧게 말하라.
세 번째는 말을 할 때는 분명하게 발음을 해서 말하라.
얼버무려갖고 얘기를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럼 그것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분명하게 해야 됩니다.
네 번째가 목소리 높이지 말아라.
법문할 때도 마찬가지라. 막 목소리 높였다가, 사람을 감정적으로 끌여들일려고 자꾸 할려고 하는데 그것은 권장하는 방법은 되지 못하는 거라. 부처님이 경전에서 분명하게 얘기했습니다. 목소리 높이지 마라, 그러니까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말고 말을 고요하게 잔잔하게 그렇게 하라는 거라.
다섯 번째가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는 단어, 말을 사용하라.
초등학생이면 초등학생에게 맞는 단어를 써야 되는 거고, 일반인이면 일반인에게 맞는 단어를 써야 되는 것이지, 괜히 어렵게 얘기를 해가지고 자기를 돋보일려고 하는 것들은 하지 말아라는 거라.
여섯 번째는 이것을 듣고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는 일화 같은 걸 예를 들어가지고 설명을 하라.
경전이든지 아니면 사회적인 문제든지 여러 가지 일들을 예나 일화를 들어가지고 알기 쉽게 말하도록 하라는 거라.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말을 할 때는 말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사람이 얘기하죠?
일곱 번째는 사람답게 얘기하라.
사람으로서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내가 품위있게 그리고 격식있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세가 돼서 그렇게 품격있는 말들을 할려고 해야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그냥 아무나 쓸 수 있는 말들을 해서는 안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 것들이 부처님이 말하는 것들을 조언한 예입니다.
물론 발성연습을 하고 좀 더 아름답게 말하는 것도 물론 좋은데, 그런 것은 바람직한 것은 못됩니다. 또 부처님 제자 중에서 아름답게 말하는 사람 중에 제일은 누구다 하는 것도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사람은 누구다, 그다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풀어서 얘기하는 사람은 누구다, 그다음에 법문을 잘하는 사람은 누구다, 이런 것들을 쭉 비구와 일반 재가자들의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놓은 게 있는데, 부처님 80대 제자들 중에서 말과 관계된 것이 아마 7~8명 정도 말과 관계된 것으로 이름이 나온 것은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말을 할 때는 분명하게 아까 얘기한 주제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부터 해가지고 품격있게 말하듯이 그것들을 지키면서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얘기해야만이 내가 계속적으로 반복해가지고 수다 떠는 이런 것들을 예방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말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언젠가 대구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말은 원자력의 핵연료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과 같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도 핵연료가 빠져나와 가지고 지금까지도 계속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기 입에서 나온 것은 그와 같습니다. 자기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굉장히 영향을 미칩니다. 그 사람이 한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수가 있는데, 그 사람이 한 말은 평생 가도 안 잊혀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그만큼 위험한 겁니다.
그래서 본인이 얘기할 때는 이게 핵연료 유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말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생각을,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말을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자! 스님 따라서 게송을 따라서 해보십시요.
mukhasaṁyato 무카 상야또 (수행자 : 무카 상야또) "입을 제어하라"
무카 라는 것은 전면이라는 뜻도 되고, 얼굴이라는 뜻도 되고, 입이라는 뜻도 됩니다. 여기서는 말하는 구절의 전체를 살펴보면 "입을 제어하라"는 그런 뜻입니다.
대념처경에도 이 '무카(mukha)'가 나오죠? "대상을 전면에 두고 하라."
그걸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스승들이 달리 설명을 해놓은 것도 있습니다. 거기서 얘기할 때는 "대상 전체를 있는 그대로 처음부터 일어난 것부터 해서 끝나는 데까지 전체를 온전하게 알아차려라" 그런 뜻으로 얘기했는데,
여기서의 무카라는 것은 "입을 제어하라"는 거라. 말하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말은 함부로 하게 됩니다.
입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라? 입을 꼬매버리면 되요? (수행자 대답 : 침묵하는 것)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잖아. (수행자 대답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생각을 하면 당연히 좋은 말을 하게끔 됩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걸 어떻게 알아차릴 거라, 말을 할 때? 자기가 말을 할 때 무슨 말을 할 것이다 생각을 하고 말을 하면 가장 좋지만,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는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생각을 해가면서 말을 할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가 안 됩니다.
그러면 입을 제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입은 여기서 뭔가에 닿으면서 입술이 달싹달싹하면서 일어나는 느낌들이 있습니다. 그 느낌들을 알아차리면서 말을 하면 좋습니다. 감정이 일어난다든지 그러니까 탐·진·치가 일어날 것 같으면 말을 할 때 입술의 느낌은 딱딱해진다든지 아니면 떨림이 있다든지 아니면 뜨거움이 있다든지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 사람에게 자애롭게 말을 할 것 같으면 입술의 느낌이 부드럽고 고요하게 되고 따뜻해지게 됩니다.
입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말을 할 때 입술에 일어나는 느낌들을 잘 보면서 해도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입술이 닿는 경우도 있지만 안 닿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입의 구조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입술의 느낌을 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귀를 알아차리면 됩니다. 말을 하면 자기도 듣게 돼있습니다. 그러면 귀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보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귀에서 어떤 느낌들이 일어나는지 순간적인 것이지만 분명하게 들리게끔 됩니다.
그게 안 되면 가슴에서 일어나는 느낌. 가장 좋은 것은 어떠한 마음을 일으키든지 마음을 일으키고 나서 말을 하게끔 돼있습니다. 그 의도를 일으키면 가슴에서는 항상 그 의도에 따라서 느낌들이 각각 다른 느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입을 제어하는 것들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따라서 해보세요.
mantabhāṇī 만따바니 (수행자 : 만따바니) "의미있는 말을 하라."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그런 것들은 하지 말아라는 거라. 이 말을 지금 현재 해야 될 것인지 하지 말아야 될 것인지,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 그리고 이 말이 자신에게 선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말인지 어떤지, 분명하게 하고, 그리고 이 말이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서 해야 되는 것이지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을 계속적으로 반복을 한다는 것은 그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가끔씩 그런 얘기를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딱 한 구절 정도가 머리속에 탁 박혀가지고 그 사람에게는 보물이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에 조금 전과 같이 "말은 핵연료와 같다" 그게 가슴에 탁 박히는 거라. 그럼 그거는 그 사람에게는 보물이 됩니다. 의미있는 말은 그와 같습니다. 그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두고두고 쓸 수 있는 것들이 돼야 됩니다. 그 사람이 다시 또 돌아보고 생각을 해봐도 그것이 '아, 참 의미있는 말이구나' 하는 말이 돼야 됩니다. 그러한 말들을 자꾸 해줄려고 해야 됩니다.
그럴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가슴에 와 박힐 수 있는 '결론이 있는 말'입니다. 결론이 없이 막 중구난방으로 얘기하는 것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주제를 딱 정하고 나서 여러 가지 사례들을 들어가지고 아까 부처님이 말하는 법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품격있게 말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게 의미있는 말들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따라서 해보십시요.
anuddhato 아눗다또 (수행자 : 아눗다또) "흥분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감정은 제어한 상태에서 말을 해야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말에서 그대로 드러내가지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정이 제어되면 말이 높아지고 낮아지고 또는 운율을 타는 그런 것들은 있을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흥분을 하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내뱉는 것이 됩니다. 그걸 경전에서는 뭐라고 얘기하느냐면 "똥을 삼키는 것과 같다" 하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뱉어내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똥을 삼키는 거와 같다는 거라. 자신에게 악한 영향을, 계속 몸에 계속적으로 노폐물이 쌓이고 안 좋은 것들이 쌓이면 그건 그 사람에게는 병으로 드러나든지 아니면 그것으로 인해서 죽음을 맞는다든지 그런 결과를 낳게끔 된다는 겁니다. 흥분해서 말하는 것은 그와 같다 하고 경전에서는 얘기합니다.
자신이 그냥 흥분해서 뭔가를 좋고 싫음에 따라서 말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 똥을 삼키는 거와 같다는 거라. 항상 여러분들이 명심을 해야 됩니다. 만약에 그렇게 감정을 조절해서 말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침묵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게 부처님이 "이런 세 가지를 잘 할 거 같으면, 입을 제어하고 의미있는 말을 하고 흥분하지 않게 얘기할 것 같으면, 그 말은 훌륭한 말들이다. 품격이 있고 인간으로서 해야 될 말들을 하게끔 된다." 하고 얘기합니다.
수다 떠는 것은 되도록이면 하지 마십시요. 말하는 것은 수행의 일부이지, 수행이 따로 있고 말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하게 입을 잘 제어해가지고 필요없고 쓸데없는 말들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습관들은 가지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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