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테라와다 불교의범과 신행생활

공덕을 만드는 10가지 방법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726-1

담마마-마까 2024. 12. 30. 17:02

https://youtu.be/QHreM4aeG7Y?si=wPqmYT1Fk1UJF9DV

 

* 공덕을 만드는 10가지 방법_빤냐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726-1

 

오늘 끝나고 나면 한 달간 방학이죠? 되게 좋겠네. 공부하는 학생들은 방학같이 좋은 게 어디 있어. 스님도 어찌 보면 급작스럽게 이 과목을 맡아가지고, 교재도 없는 상태에서 교재 만들어 가면서 지금 한 학기를 진행을 했습니다.

많이 좀 여러 가지를 좀 할 줄 알았는데 준비도 좀 부족할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그렇게 많이 할 시간은 없는 것 같애. 22시간인가? 얼마 정도 되는 거 가지고 이 테라와다 불교의식 전체를 다루기에는 조금 무리는 있었고,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조금 했으니까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지 어떡하겠어.

또 누군가가 이 과목을 또 담당을 아마 하겠죠. 내가 계속 이 과목을 담당하고 있으면 다른 과목을 못해. 그래서 누군가 또 담당을 하면 지금 기본적으로 교재가 어느 정도는 마련이 됐으니까, 그걸 바탕으로 해서 또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할 수가 있어서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료가 조금씩 많이 모이고 쌓여지게 되겠죠.

어찌 보면 여러분들은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손해가 많죠. 아직 완전하게 교재나 이런 것들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면에서는 좀 중구난방적으로 한 부분들도 있고, 그래도 스님은 되도록이면 프린트물이라도 주려고 했는데 다른 스님들은 이놈의 프린트 조차도 안 주고 입으로 떼워버릴 경우도 있을 거고, 그래서 불만이 좀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거는 여러분들이 처음이니까 하고 이해를 좀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제 1학기의 마지막 시간 「공덕을 만드는 10가지 방법」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출가하려면 어떤 공덕들이 많아야 출가를 하게 될까? 가끔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출가하면 3대가 뭐 어쩌고 저쩌고 그런 얘기를 해쌌던데, 너도 출가할 거냐? (수행자: ...) 출가하려면 뭔가 공덕을 쌓지 않으면 출가를 해도 오래도록 출가 생활을 못 하고 금방 돌아가고, 안 그러면 할라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기고 막 이럴 경우들도 아마 있을 겁니다. 결국 출가를 못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물론 마음이 왔다리 갔다리 하겠지.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여러 가지 재쌌고 이런 것들이 있겠지.

 

그런 거 보면 출가하기 위해서도 뭔가 공덕을 쌓기는 쌓아놔야만이 순조로울 수도 있을 것 같고, 여러분들이 수행해 나가는데 사마타 수행을 하든 위빳사나 수행을 하든 도와 과에 이르려고 하는데, 그냥 올해나 작년이나 뭐 비슷비슷하게 이렇게 수행하는 패턴이 이어진다, 그르면 뭔가가 문제가 돼서 그런가? 하고 돌아볼 수도 있어야 될 겁니다.

그때 뭐가 부족해서 그렇지? 하고 생각해 낸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그냥 그냥 저냥 살아라? (수행자: 아니요. 있지요. 뭔가는 ...)

 

그런데 공덕이라는 게 의미가 뭡니까? (수행자: 바라밀)

바라밀하고 공덕하고 같은 겁니까?

바라밀은 빨리어로 빠라미(pāramī) 아니면 빠라미따(pāramitā)라고 그러고,

공덕 같은 경우에는 보통 뿐냐(puññ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용어는 틀리죠. 근데 거의 비슷하게 쓰긴 쓰죠?

근데 엄격하게 구분하자고 할 것 같으면, 공덕은 덕을 지닌 힘입니다.

바라밀은 그 힘으로 인해서 뭔가 이로운 일을 해서 딱 완성하는 것, 그걸 바라밀이라고 그럽니다. 얼핏 이해가 안 될 것 같은데, 예를 들어 봅시다. 오늘 조금 전에 오계 받았죠?

 

오계를 계를 지키고 나아간다고 합시다.

그러면 계를 지켜 나갈 동안에는 선한 마음을 내겠지. 그리고 악한 일 안 하려고 할 거고, 말도 예쁘게 할라 할 거고, 신구의에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그것으로 인해서 악한 것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해서 계를 이렇게 지켜 나가고, 자기 자신을 방어해가지고 이렇게 나가게 됩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걸 보통 '지계공덕을 쌓았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계로 인해서 이익이 되는 그리고 선한 것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힘들을 조금은 길렀다, 그럴 때는 '공덕'이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근데 그게 만약에 바라밀이 될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될까?

바라밀이 될려고 할 것 같으면 그 계를 지킴으로 인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있고 행복이 있게 돼야 되는 거라. 나도 물론 마찬가지고. ‘아, 내가 계를 지키니까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고 이리 좋다’ 그런 것들이 돼야 되는 거고. 내가 또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도 훨씬 이익이 있어야 되는 거라.

밥을 해주는데 밥을 맛있게 해준다. 맛있게 해주는 것은 '공덕'입니다. 공덕 쌓는 일입니다.

근데 그놈의 밥을 먹고 먹는 걸 보니까 내가 되게 기쁘거든. 그리고 그 먹는 사람도 맛있게 잘 먹었다고 얘기합니다. 나도 기쁘고 그 사람도 이익이 있고 이럴 경우에는 그걸 '바라밀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치면 공덕하고 바라밀은 이렇게 조금 차이가 나죠. 대부분은 보면 이걸 같이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테라와다에서는 바라밀을 쓰는 것은 상당히 자제하는 편입니다. 공덕이라는 얘기를 하지. 바라밀은 한국은 그렇지 않은데 한국은 6바라밀 또 화엄경 같은 경우는 10바라밀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테라와다에서도 10바라밀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언급들을 잘 안 하죠.

왜 그러냐면 공덕을 쌓는 거 하고, 바라밀을 쌓는 거 하고는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쉽게 말하면 부처를 목표로 해서 공덕을 쌓는 것은 바라밀에 해당이 됩니다, 부처가 될 목적으로. 그런데 나는 부처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그냥 내가 깨달음에 이르고 이러기 위해서 쌓는 것들은 공덕을 쌓는 일이다 하는 거라.

똑같은 보시를 하는데도 어떤 것은 바라밀을 쌓는다고 그러고, 어떤 것은 공덕을 쌓는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보통 보살행을 할 경우에 완전하게 붓다가 되기 위해서 보살행을 할 경우에, 그때 쌓는 것들은 바라밀을 쌓는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테라와다에서는 성불을 하길 바라질 않죠? 그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렇죠? 한국에서는 성불 얘기를 심심찮게 하는데, 부처가 된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요원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부처가 되려면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게 수기를 받아야 됩니다.

너는 앞으로 성불할 것이다. 넌 앞으로 부처가 될 것이다, 하고 수메다든지 누구한테 그 수기를 받아야 됩니다.

한국에는 요즘엔 수기를 아무 스님이나 아무한테나 이렇게 해주는데, 수기 그렇게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근데 수기를 받는데도 자격 조건이 있습니다. 8가지가 갖춰야만이 수기를 받을 수 있다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 수기를 받을 조건을 갖추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고 봅니다.

 

부처는 둘째 치고, 부처가 되기 위해서 수기를 받는 것만 해도 굉장히 어렵게 생각을 합니다.

수기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뭐냐면,

가장 먼저 내가 인간이 되는 것.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기조차도 받을 수가 없어. 또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여기 대부분 사람들은 부적격. 남자, 과거 부처님 중에 여자로 태어나신 분이 있든가? 없죠? 여자를 무시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그래서 앞으로 나도 만약에 부처가 되려고 할 것 같으면 틀림없이 남자로 태어나야 됩니다.

 

두 번째 조건이 뭐냐면 남자여야 하는 것.

 

그다음에 세 번째 조건이 뭐냐면 지금 내가 이게 수기를 받는 지금 여기 이생에서 과연 내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만큼 바라밀을 쌓았는가? 하나도 착한 일은 안 할려고 하고 수기받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라. 자연스럽게 그 바라밀을 쌓아서 그것이 몸에 익혀져 있는 상태가 돼야 가능하다는 거라.

길거리 오늘같이 더운 날 나이 드신 분이 걸어간다, 그러면 그거 ‘보고 아이고 이 더운데 저게 얼마나 힘들꼬’ 내가 양산 쓰고 가다가도 그 양산 줘가지고 할아버지 이거 양산 쓰고 가세요. 하면서 줄 수 있는 상태가 돼 있어야 된다는 거라. 쉽게 말하면.

지금 현재 내가 아라한이 될 수 있게끔 도와 과를 이룰 수 있게끔 바라밀을 쌓아두지 않은 상태에서 수기 받아봐야 말짱 꽝이라는 얘기라.

 

그다음에가 뭐냐면 이게 보통 수기를 받을 때는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수기를 받습니다. 부처님을 뵈어야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은 그게 지금 현재 조건이 안 되죠. 이 생에서 부처님이 없는 상태에서 수기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게 봐야 됩니다.

 

그다음에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믿는 것. 내가 행한 선한 일은 선한 결과를 낳고 내가 행한 악한 일들은 악한 결과를 받는다는 것. 이걸 분명하게 믿고 그걸 갖다가 그대로 따라야 되는 거라. 나는 왜 10원어치 좋은 일을 했는데 지금 나한테 10원어치 좋은 결과가 없이 5원밖에 안 주노? 하고 마음이 든다 할 것 같으면 이건 틀린 거라. 또는 10원어치 좋은 일을 했는데 왜 나한테는 아무런 결과도 없지? 아니면 나쁜 결과가 마이너스 10원어치 결과가 오느냐? 하고 생각해도 그거는 이미 틀렸다는 거라.

마이너스 10원어치가 온 거는 마이너스 10원어치 다른 일을 한 것으로 인해서 지금 그 결과를 받은 것이지. 앞 전에 한 10원어치 좋은 일을 한 것은 반드시 그 결과는 언젠가는 내가 받는다고 믿기 때문에, 지금 현재 내가 마이너스 10원의 결과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거라. 그걸 '인과를 믿는 것'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원인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믿고 따르는 것.

 

그다음에 지금 현재 이생에서 선정삼매에 들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 그 가는 길을 분명하게 아는 것. 여러분들은 그 길 압니까? 사선정 팔선정 책으로는 알고 있지만은 수행해 보니까 ‘아, 요렇게 하니까 가겠구나’ 하는 확신들이 듭니까?

부처님은 이 방법으로 해보고 저 방법으로 해봐도 도저히 안 되다가 나중에는 8살 때 농경제 때 앉아가지고 좌선해졌을 때 호흡을 관찰하는 것 그걸 생각해냅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저 방법으로 하면 내가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하는 확신을 가져요. 실제로 깨달음에 이른 것은 아닌데도 그 길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걸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된다는 거라. 내가 하면 틀림없이 나는 그 길을 따라서 선정에 들 수 있다 하고 확신을 가져야 되는 거라.

 

특히 스님들은 그것들을 잘 압니다. 선정만 그런 게 아니고 도와 과의 어느 부분에서 내가 불환과에 이르고 어느 부분에서 아라한과에 이르고 하는 것들을 내가 얼마만큼 하면 안다는 걸 압니다. 때가 아닐 경우에는 그걸 늦추고 있다는 경우도 있지만은. 근데 그거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라.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는.

그거는 뭐냐면 분명하게 방법을 알고 가는 길을 알고 있을 경우에 가능하다는 거라. 적어도 수기 받으려면 그거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될 거 아니라. 바라밀을 쌓는 건 바라밀을 쌓는 것대로 또 해야 되지만, 수행법에 대해서 분명하게 그 가는 길을 갖다가 확신할 수가 있고, 그걸 하면 또 자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라는 거라.

 

그다음이 뭐냐면 공덕을 쌓고 바라밀을 쌓을 때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누군가가 뭔가를 가지고 싶은데 내 생명을 가지고 싶다고 할 것 같으면 아낌없이 내줄 수 있는가? 예를 들면. 또는 내가 재가 생활을 하고 있지만은 출가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미련 없이 출가할 수 있는가? 모든 거 다 버리고. 그 정도는 돼 있어야 된다는 거라 수기를 받으려면.

가장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버려버릴 정도로 그 정도의 바라밀을 쌓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가?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것들을 가지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거라.

 

그다음에 내가 진정으로 붓다가 되고 싶어 하는가? 그런 서원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결정심을 가지고 있는가? 부처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부처 되길 수기 받을 수는 없잖아.

 

이런 8가지 조건들이 다 갖춰졌을 때 그 수기 받을 자격 조건이 된다고 그래요.

아무나 그냥 수기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수기를 받아도, 닦고 쌓고 또 수행해야 될 거는 엄청 많아. 4아승기겁을 지나든 8아승기겁을 지나든 16아승기겁을 지나든 간에 그 무수한 세월 동안에 내가 부처가 되기 전에 해야 될 것들이 무수하게 많은데, 그러고 나서 됐다 치자. 어느 세월에? 그마만큼 성불을 한다는 게 힘이 든다는 걸 안다는 거라.

 

그러면 바라밀을 닦는다는 것은 그 성불로 나아가는 길에서 그걸 갖다 원만하게 완전하게 성취한다는 겁니다. 그런 바라밀이든 수행이든 아까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이런 8가지 들을 갖다가.

그러니까 테라와다도 불교도들은 똑같은 걸 하지만, 바라밀이라고 잘 보통 얘기를 안 합니다. 공덕이라고 그럽니다. ‘분’이라고 ‘탐분’ 그렇게 얘기합니다. “공덕을 쌓아라” “공덕을 쌓아라” 이렇게 얘기하거든.

 

그래서 되도록이면 여러분들도 부처가 되기를 바라든, 아니면 부처가 되는 걸 바라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금 현재 그냥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라든, 여러분들은 공덕을 쌓는 일에 자꾸 마음을 기울여야 됩니다. 신중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이것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의 이익들을 갖다가 지금 현재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공덕과 바라밀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분명하게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봅시다. 「공덕을 만드는 10가지 방법」 이렇게 돼있습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밥해주는 것 가지고 한번 비유를 해봅시다. 밥을 해주고 나서 어떤 엄마는 자식이 그 밥 안 먹고 아니면 밥을 깨작거리고 아니면 남기고 하면 되게 기분 나빠합니다. 어떤 엄마는 그거와는 반대라. 밥을 해주고 나서 지가 먹든 말든 난 내 할 일만 했다고 생각하고, 먹는 거 보지도 않고 휑하게 쇼핑하러 가버립니다. 해놔 놓고 “알아서 먹고 치워 놔라이” 하는 그런 엄마도 있고.

또 어떤 엄마는 밥을 이렇게 해주고 나서 ‘얘가 밥 먹고 나서 어떤 행동을 할까?’ 설거지를 해놓는다든지, 아니면 다른 청소라도 한다든지, 아니면 ‘엄마 고마워’ 하고 메시지를 남기든지 그 생각은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각각이 틀립니다.

여러 분들은 어떨까? 어때요? 밥 해주고 나서. 대부분 사람들은 보면 밥 해주고 나면 밥 잘 먹기를 바랄 겁니다. 안 먹으면 성질내게 돼 있어요. 그게 일반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공덕을 쌓았으면 쌓은 만큼 뭔가 결과가 있어야 돼. 결과가 안 나타나면 안 돼.

 

대표적인 거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 선원에서 목요일마다 탁발합니다.

탁발하면 이 사람이 주는 음식 저 사람이 주는 음식 스님한테 줄 거 아니라. 스님은 하나인데 내가 그걸 무슨 돼지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다 먹을 거라. 그거 먹다 보면 어떤 사람 거는 조금 많이 먹기도 하고 어떤 사람 거는 적게 먹기도 합니다. 그럼 이렇게 밥상 물려가면서 싹 와서 봐요. 보면서 자기 거 작게 먹었다고 “스님, 왜 이거 안 드셨어요?” 내가 그게 그 사람이 탁발 해가 올린 건지 어떤지는 나도 몰라. 하여튼 그래. 그런 사람이 있어.

그래서 그걸 보고 ‘야, 이거 올리고 나면 그냥 생각을 안 해버리면 되는데, 그거 올렸다고 지가 집착하고 있어 갖고 그것에 대해서 잘 먹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고, 바라밀을 쌓는 건지 공덕을 쌓는 건지 한다고 뭔가를 쌓기 위해서 하긴 했는데 저게 바로 다 쌓여지는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또 어떨 때는 목요일날 탁발 법회 할 때 내가 안 하고 다른 스님이 오면, 특히 이제 스리랑카 스님이나 태국 스님들이 가끔씩 옵니다. 그럼 그 스님들한테 하라고 해요. 나는 안 해. 그러면 이렇게 내 방에서 가만히 보면 탁발 이렇게 해왔는 거 보면, 내가 탁발 했을 때는 음식이 어느 정도 요만큼 들어오고 또 뭐 주고 싶어 갖고 탁발 준비 안 하는 사람은 봉투에다가 1만원짜리 넣어가지고 요렇게 주고 해갖고 밥상에 요마만큼 이렇게 오는데, 똑같은데 그 스님 올지도 몰랐는데 근데 그 스님이 와서 탁발했는데 이게 없는 거야. 안 내놔.

그러니까 재가자들 중에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음식을 준비 안 해오니까 와가지고 봉투에다가 이렇게 천원짜리 5천원짜리 1만원짜리 넣어가지고 그걸 이제 탁발 공양 대신한다고 해가지고 이렇게 올린단 말이라. 그런 게 없어져 버리는 거라. 안 줘버리는 거라.

 

그래서 물어봅니다. “너들 왜 스리랑카 스님한테는 봉투 안 줬냐?” 아무 얘기를 안 해. 근데 나중에 들리는 얘기는, 스님한테 주면 요마만큼 복을 받을 것 같은데 저 스리랑카 스님한테 주면 요만큼밖에 복을 못 받았을 것 같아가지고 안 줬다는 거라.

세상에 그런 법은 없어요. 받을 사람이 덕이 아니면 수행력이 이마만큼 된다 해서 내가 그마만큼의 것을 받는 게 아닙니다. 받는 사람하고는 관계없습니다.

내가 주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공덕이 얼마만큼 뻥튀기가 되는 거냐 하는 것이지, 받는 사람에게 그 영향을 받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한테 줄 것 같으면 아무런 이익도 없겠지. 근데 그럴 경우가 아닐 것 같으면 그 수행력의 차이, 아니면 법납의 차이 이런 것 가지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근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거라. 10원을 누구한테 빌려주면 돈 나중에 되돌려주지 않을 것 같으면 빌려주지도 않는다는 거라. 되돌려줄 사람한테 혹시 그 사람이 지금 현재 당장 돈을 안 줘도 주라는 마음조차도 안 내고 있으면서, 돈 진짜 안 갚을 사람이 1달이라도 늦어놔놓으면 금방 생각을 해낸다는 거라 사람들이. 뭔가 잘못됐다는 거라.

왜 받을 대상을 생각을 해서 내가 지금 결정을 하느냐는 거라. 공덕을 갖다가. 공덕은 그런 개념으로 쌓으면 안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내가 지금 어떠한 마음으로 이 공덕을 쌓는가? 그것은 뭐냐면 나에게 선한 행위가 그리고 선한 마음들이 일어나게끔 하는 힘들을 길러주는 게 공덕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내가 선한 마음들이 계속 두고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라. 공덕이라는 것이.

그런데 이걸 잘못 착각해버린다는 거라. 특별한 때 아니면 특별한 사람에게 하는 것들이 공덕을 쌓는 일로 생각을 한다는 거라.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덕을 쌓는 거는 여러분들 살아 숨 쉬는 동안에 언제든지 공덕을 쌓는 겁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 숨을 쉬죠? 그리고 살아 있을 동안에 뭔가를 행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숨을 쉴 때 숨을 쉰다고 알아차릴 것 같으면 그것은 공덕을 쌓는 것이고, 뭔가를 행할 때 선한 마음으로 행하면 그건 공덕을 쌓는 겁니다.

근데 그 반대일 경우에는 공덕을 쌓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기가 공덕을 쌓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공덕을 쌓는 일이 아닐 경우들도 있을 수가 있다는 거라. 이걸 조심하라는 거라. 공덕을 쌓을 때는.

 

가끔씩 인도에 가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인도에 성지순례를 가면 차창가로 사람들이 와서 “1달러, 1달러” 하면서 달라고 하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스님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저렇게 자꾸 주면 저 사람들 버릇 나빠져서 안 된다. 저 사람들에게서 자립할 힘이 안 생기기 때문에 그러면 영원히 저렇게 해야 된다. 그러면 스님은 오히려 저 사람들을 자립하지 못하게끔 하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 주지 말아라.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것을 보면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덕을 쌓는 것은 지금 내가 일으키는 마음입니다. 내가 쟤들이 진짜 행복하기를 바라고 쟤들이 진짜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공덕을 쌓는 겁니다. 그로 인해서 물질적인 보시를 하였다. 그 또한 공덕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내야 되는 것이지, 그걸 받고 쟤가 게으름에 빠진다, 왜 그런 걸 갖다 생각하느냐 하는 거라.

 

자기가 무슨 부처님도 아니고, 걔가 그렇게 해가지고 나중에 커서 어떻게 사는지를 뻔히 알고 있는 선지자도 아니고. 여러분들이 할 거는 지금 어떤 마음을 일으키고 어떤 행위를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라. 그래서 1달러를 주고 안 주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싫은 마음으로 휙 던져주면서 1달러 주는 것은 그건 아무런 공덕이 되질 않는 거라. 진짜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연민심을 일으켜가지고 1달러를 줄 거 같으면 그건 큰 공덕이 되는 것이고.

이게 이제 공덕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여기선 열 가지 방법을 얘기를 해놨는데, 이렇게 치니까 공덕을 만드는 방법은 열 가지만 있는 게 아니죠? 무수하게 있습니다. 숨쉬는 것 자체가 공덕 만드는 것들이라.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 공덕을 만드는 것은 숱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거라.

 

스리랑카에 가면 사원의 입구나 아니면 탑 앞에 반드시 있는 게 뭐냐 하면 사자의 형상을 딱 해놨습니다. 다른 나라하고는 좀 틀리게 독특합니다. 그 역사적인 배경이 있어서 그런 거라.

사자가 자기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가 그 자기 아버지 사자를 죽이려고 그럽니다. 쉽게 말하면 죽이려고 하는데도 이 아버지는 그 새끼가 사랑스러워 죽겠는 거야. 그러니깐 내가 해침을 당하는 걸 방어할려고 하는 것보다는, 아들에 대해서 연민심을 오히려 더 일으키는 거라. ‘아이고 그래 니가 괴로움이 없고 행복하라, 아이고 이쁜 자식’ 하는 마음을 더 일으키는 거라. 아버지를 해치려고 새끼가 발톱을 이렇게 하는데 발톱이 거기에 닿지를 않는 거라. 무슨 뭐 방호벽을 이렇게 쌓아놓은 것처럼.

왜 그랬을까? 아버지 사자가 무슨 짐승이 뭔 잘한 일을 하겠어? 만날 넘 죽인 일밖에 더 하겠어? 좋은 일이라고 별로 할 것도 없는데, 그 마음이 아들에 대해서 일으키는 마음이 그 연민심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니까 해치질 못하는 거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연민심의 마음이 사라져 버리고, ‘저놈의 자식이 나를 왜 죽일려고 하지’ 하는 마음이 탁 들 때 탁 해쳐버리니까 죽어버린 거라. 그래서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사자를 갖다 장식을 딱 해둡니다.

 

절에 오면 항상 일으켜야 되는 것이 멧따와 까루나, 자비심을 일으켜서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분들에게 보호되도록 하라. 어떠한 행위를 하든지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행위는 가식적이 될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 왜곡될 수 있다.

그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항상 사자를 갖다가 이렇게 양쪽에다 딱, 무서우라고 하는 게 아니고 그걸 보고 그런 마음을 자꾸 일으키라는 거라.

설혹 나를 죽이는 한이 있고 내가 해코지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내가 연민심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내가 해코지 안 당해. 그리고 내가 남에게 행하는 것들을 연민심을 가지고 할 것 같으면 그거는 큰 공덕들이 되는 거라.

 

쉽게 말하면 공덕행을 할 경우에는 기본적인 바탕은 연민심이 있어야 된다. 이게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야 되는 거라. 멧따와 까루나라는 자비의 마음. 그다음에 또 하나 더 있습니다.

공덕행을 할 때 반드시 또 밑바탕이 되어야 될 것, 어떤 것이 있을까? 자아(自我).

공덕을 쌓는 것은 무엇이 목적입니까? 여러분들이 번뇌로부터 벗어나서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 공덕행들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그 공덕행을 할 때 '나라고 하는 것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 나의 영혼이라는 생각'을 갖다가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어떠한 공덕행을 하든지 이 부분은 반드시 빼야 돼. 빼고 해야만이 그것이 바른 공덕행이 돼. 내가 했다, 아니면 나의 자식이다, 아니면 나의 재산이다, 아니면 나의 아만심, 뭐 이런 것들을 내세울 것 같으면 그것은 바른 공덕행이 되질 않는다는 거라.

 

바른 공덕행을 할 때는 이걸 항상 명심해야 돼.

내가 지금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라고 하는 것들을 가지고 하고 있는가?

이 두 개는 반드시 갖추고 빼야 될 것들이다. 그럴 것 같으면 모든 것들이 여러분들에게는 공덕행이 됩니다. 모든 것들이.

이 두 가지만 잘하면 크게 무리가 없어요.

스님을 볼 때도 자비의 마음으로 이렇게 볼 것 같으면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공덕을 쌓고 있는 거라. 부처님 법을 들으면서도 저 스님이 법문을 잘하든 못하든 나라고 하는 것들을 쏙 빼고 그냥 듣기만 할 것 같으면, 그거 듣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이미 공덕을 쌓고 있게 되는 거라. 그리고 자비의 마음을 갖추고 있으면 더더욱 좋고.

법을 설하는 조건에도 자비의 마음으로서 법을 설하라. 여러분들이 법문을 들을 때도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법문을 들어라. 경전독송 할 때도, 경전독송하는 원칙 저번에 얘기를 했죠. 자비심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전독송하면 안 된다는 거라. 의미를 이해도 해야 되겠지만은 자비의 마음으로 독송을 해야 되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공덕을 만드는 것은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대표적인 게 10가지가 있습니다.

근데 한국에는 보니까 자꾸 이걸 잘못 쓰는 경우가 있는데, "공덕을 만드는 10가지 방법"이라고 해야 되는데, "10가지 토대"라고 자꾸 이렇게 쓰고 있는 경우들을 봅니다.

기초가 된다는, 공덕이 되기 위한 기초다 하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와투(vatthu)를 아마 문자적으로 아마 해석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와투(vatthu)기초나 토대라는 뜻도 있지만은 항목이라는 것들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틀림없이 항목으로 쓰이는 것들이라. 그것은 기초만 되는 게 아니라. 집 짓기 전에 기초 공사하듯이 기초만 하는 게 아니고 집 그 자체가 되는 것인데, 그걸 왜 자꾸 기초나 토대라고 이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돼.

 

어쨌든 그게 10가지가 있습니다.

보시, 지계, 수행, 존경을 겸하는 것, 자원봉사를 겸하는 것, 공덕의 회향, 그다음에 함께 기뻐하는 것, 수희라는 건 공덕을 함께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수희공덕, 그다음에 법을 설하는 것, 법을 듣는 것, 견해를 바르게 세우는 것.

이런 것들이 경전에서 얘기한 10가지 공덕을 쌓는 방법입니다.

 

스님이 세세하게 안 해놨죠. 게을러서 그랬습니다. 원래 이걸 갖다가 처음에는 목적은 앞에 이렇게 세 장 할 때는 공덕이 어떤 것인가? 하는 걸 얘기하고, 뒤에 항목을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이렇게 해야 되는데, 하다 보니까 또 막판이 다가오고 하니까 시간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게을러 가지고 게으름 피워가지고 못했어요.

근데 크게 여러분들이 문제 될 거는 없습니다. 이거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꼭 이것만이 공덕을 쌓는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공덕 쌓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일으키는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서 일으키는가?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행위들이 나의 견해나 나라고 하는 것에 걸리지 않고 행하고 있는가? 그것만 판단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 10가지뿐 아니라 다른 것들도 전부 공덕행이 돼버립니다.

 

그렇게 쌓아버리면 그 사람은 부처를 서원하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는 없지만, 아라한은 될 수가 있습니다.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원인이 되어서. 여러분들도 수행을 해보면 그런 것들을 느끼는 것이 있을 겁니다.

뭐가 내가 부족하지? 지혜가 일어나도 우뻭카냐나를 얻을 때까지는 순조롭게 잘 넘어갑니다. 지 수행 열심히 하면 넘어가집니다. 근데 우뻭카냐나가 탁 넘어가고 나면 이게 진척이 없는 거야. 진도가 안 넘어가져. 그게 바로 공덕 쌓는 것들을 등한시해서 그렇습니다.

 

공덕 쌓는 일은 수행으로 인해서 공덕 쌓는 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는데, 다른 것들을 등한시하고 있는 거라. 봐도 모른 체하는 거라. 내 수행하기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남들이 저쪽에 가서 무슨 보시를 하고 있더라도 나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거라. 남들은 열심히 봉사활동하고 있는데, 나는 수행하기 바쁘기 때문에 내하고는 관계없는 거라. 오히려 자기 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것만 하고 있는 거라. 등한시했다는 거라. 바른 공덕 쌓는 것들을.

이게 발란스가 안 맞으니까 우뻭카냐나 이후에 다음 단계 12단계 13단계 이렇게 넘어가지는 게 안 넘어가지는 거라.

 

스님도 절실하게 느꼈거든 그걸. 그래서 뭘 수행을 했냐면, 경전에 그런 것들이 나옵니다. 봉걸레질 하면서 깨달음을 이룬 거, 쭐라빤다까 그게 퍼뜩 떠오르는 거라. '마음을 닦자. 마음을 닦자' 사실은 마음을 닦는 거라. 그 청소하는 것이.

근데 가만히 돌아보니까 내가 남을 위해서 청소한 게 없었거든. 내 방이나 겨우 지 깨끗하게 잘라고 닦았지, 내 꾸띠 밖에 낙엽이 쌓여도 그거 한번 쓸려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던 거라. 수행한다고. 그래서 딱 닦았어.

수행을 그걸 하고 있는 것들을 갖다가 알아차리는 것을 수행으로.

그래서 내 방문 앞뿐 아니라 절에 큰 길가는 내가 인제 다 쓸고 다녀. 그전에 사람들이 나를 볼 때는 ‘에구, 저놈의 자식은 지 것밖에 못 챙기는 놈이다’ 하고 있다가, 그 뒤부터는 나를 볼 때 얼굴에 씨익 미소를 짓고는 ‘음, 잘하고 있네’ 이러는 거라. 그게 그냥 와닿는 거라. 내가 남을 위해서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도 기쁨을 느끼고 그것이 나도 알고 있게 되는 거라. 그대로 전해지는 거라. 그러면서 탁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더라는 거라.

 

남을 위해서 행하는 바라밀, 남을 위해서 하는 행위들이 얼마만큼 나를 성숙시켜 주는가? 설혹 공덕 쌓는 일이 그거 청소하는 것만 있겠어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것들을 등한시하지 말아라.

적어도 그러면 이 생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공덕 쌓는 일을 등한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 열심히 하면 아라한에 이를 수 있다. 이르지 못할 때, 도와 과에 이르지 못하고 단계단계 뛰어넘지 못할 때는 틀림없이 거기에 맞는 바라밀들이 빠져 있었다. 공덕 쌓는 일들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채워 넣어라는 거라.

 

자, 그렇게 해서 공덕을 쌓는데, 만약에 나는 그것으로 부족하다. 나는 부처가 되고 싶다. 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부처 되고 싶어요? (수행자: 아니요) 안 되고 싶어? 그럼 되지 마. 되기 싫다는데 어떡할 거라. 되고 싶다 하는 사람은 그것을 바라밀로 전환하라.

바라밀로 전환하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똑같은 공덕 쌓는 일들이지만 공덕을 쌓기 위해서 행하는 일과 바라밀을 완성하기 위해서 행하는 일은 분명하게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바라밀은 그것을 완성하는 것이다.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 바라밀 10가지에 대해서 얘기를 해놨습니다.

보시, 지계, 출리, 지혜, 정진, 인욕, 진실, 결정, 자애, 평정-평등심입니다.

그렇게 10가지입니다. 그것을 세 가지의 난이도로 나누어 가지고 되어있기 때문에, 그 각각에 대해서 세 가지이기 때문에 보통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30바라밀'이다 하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 10가지 중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잘 안 되는 게 뭔지 아세요? (수행자: 출리)

출리? 출리는 욕심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욕심 안 가지면 출리는 기본적으로 합니다. 근데 또 출리의 다른 의미는 ‘아이고, 이 세상에 살아봐야 그렇고 그렇게 사니까 차라리 출가하겠다’ 하고 집을 벗어나는 거라 더 큰 뜻을 품고. 그것도 출리가 되고.

이 세상에 가지는 욕심들 그것으로 오는 행복들 그거 별 거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큰 행복 선정삼매로 인해서 오는 행복들을 바라고 그리고 지금 5가지 오욕락에서 오는 행복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것도 출리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 선정에서 지혜로 이렇게 그리고 수다원에서 아라한으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더 큰 것을 바라게 될 때, 그것도 출리가 됩니다.

이렇게 출리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됩니다.

그거는 현재 내 상태에서 요것밖에 못할 것 같으면 그것만 해도 출리는 됩니다. 출리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거는 여러분들이 해나가기는 수월합니다. 마음만 잘 먹으면.

 

근데 가장 안 되는 게 뭐겠어요? (수행자: 지계) 지계? 지계도 열심히 노력하면 지킬 수 있어. 뭘 못 지켜? (수행자: 평정) 평정도 마찬가지라. 남이 씨부리든 말든 간에 나는 내 맘 딱 붙잡고 변하지 않게끔 하려고 하고, 그리고 어디 치우치지 않게끔 하는 거.

 

결정심, 아딧타나! 가장 부족한 것들이 결정심입니다.

한번 길러봐요. 이번 안거 마음속으로 시작하는 사람들 있죠? 결정심 한번 길러봐봐요. ‘내가 요거는 반드시 하겠다’ 하고 탁 마음 먹으면 그것은 자꾸 할려고 해야 되는 거라.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거는 해야 돼. 하늘이 두 쪽 나도.

결정심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정심 바라밀을 닦을 때는.

 

처음에 스님이 태국에 가서 딱 들었던 소리가 뭐냐면 “뭔 스님이 저렇게 화를 내쌌냐” 하는 소리라. 우리는 화를 내는 소리가 아닌데, 그 사람들이 봤을 때는 화를 내고 있다는 거라. 실제로도 화를 내고 있는 거라. 그러니까 내가 싫은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밖으로 표출한 것인데, 근데 나는 그걸 화내는 것이라 안 하고 싫은 마음이라고 봤는데, 저 사람들은 그걸 똑같이 성냄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는 거라. 사실은 그게 맞는 건데.

나중에 몇 번 그 소리를 듣고 나니까 성질이 싹 나. 그래서 ‘내가 다시는 화를 내지 않겠다’ 하고 딱 마음을 먹었어요. 그거 고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그때마다 다시 나를 바로 세워준 것은 이 결정심이라는 거라.

 

내가 한 번 결정한 거, 이거 하나도 못 따라가 가지고 내가 뭘 하겠다는 건가? 뭔 수행을 하겠다고 여기서 뭔 공부를 하겠다고 이렇게 이 머나먼 땅에 와 있느냐는 거라. 뭐 하러 테라와다 배우고, 이 어려운 걸 갖다가. 그냥 한국 사찰 경치 좋은 데 가서 바람도 쐬고 거기서 설렁설렁설렁 놀면서 복이나 쌓고 그러지, 뭐하러 이걸 해요? 뭔가 여러분들이 여기서 이익이 있고 뭔가 있기 때문에 하는 거 아니라? 그러면 결정심을 세워보라는 거라. 그래서 그 이익이 더 배가 되도록 만들어라는 거라.

 

그렇게 목표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어서 그것을 성취하게끔 만들어주는 것은 결정심입니다.

10가지 바라밀이 쭉 있고, 열 가지 공덕을 만드는 방법들이 있고, 그것들을 공덕을 성취하게끔 해주고, 바라밀을 완성하게끔 해주는 것은 결정심이라는 거라.

모든 것들은 자애가 바탕이 돼야 되지만, 결정심이 없으면 이것들을 해나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결정심들을 갖다가 자꾸 키워주려고 한번 노력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화를 안 내겠다 해 놓으니까 화를 낼 수가 없잖아. 속으로는 화가 나 있어도 밖으로는 미소를 지어야 되는 거라. 처음에는 그게 ‘아, 내가 또 화를 냈다’ 하고 언짢아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더라는 거라. 불선한 것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게끔을 해주니까, 그 결정심으로 인해서.

지금 내가 그것까지도 다 되면 얼마나 좋겠어? 근데 안 되는 걸 어떡할 거라. 안 된다고 해가지고 밖으로 표출되는 것까지 다 하지는 말아라는 거라. 불선한 것들을 갖다가 일어나는 것들을 딱 병마개로 요 뚜껑을 만들어주듯이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결정심입니다.

 

결정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선한 일이 아닌 것들은 하지 못하게끔 딱 막아줍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봤을 때도 그것으로 인해서 불선한 것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어줍니다. 살아가다 보면 보고 싫은 마음들도 일어나고 언짢은 마음들 화나는 마음들이 얼마든지 일어나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표출되지 않게끔 딱 막아주는 것은 결정심이 역할을 한다는 거라.

이번 방학에는 그거 반드시 하도록 한번 노력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결정심을 기르면 내가 동요하는 것들이 없어집니다. 어떠한 것에도 크게 영향을 안 받아. 가끔씩 사람들이 “너 밖으로는 화 안 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제?” 이래 해도 별 영향을 안 받아. 그전에는 “내가 언제 성났어?” 이러는데도, 인제 그거 필요가 없는 거라. 결정심이 강하게 돼 있으니까. 딱 동요하지 않는 거라.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동요하지 않는다는 힘들은 굉장히 큽니다. 굉장히 크게 가집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길러주니까, 한번 세 달 동안 열심히 해봐요. 왜 웃어? 해가지고 ‘아, 이것이 이렇게 나에게 이익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들을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마 그냥 요렇게 해가지고 요거는 한 과목 뗐다고 칩시다이.

 

이때까지 테라와다 불교의범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의범이라 해서 그게 의례에만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녹아져 있기 때문에 그것들도 등한시하지 않게끔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릇이 튼튼하면 그 속에 담길 것들도 훌륭해집니다. 그리고 그 담을 것들을 생각을 하고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그럴 겁니다. 그래서 의범들도 중요하게 여기면서 그대로 따르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1학기는 이렇게 해가지고 종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됐습니까?

 

짯따로 담마 왓단띠 아유 완노 수캉 발랑.

항상 담마 따라 살아가면서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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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와다 이야기 18- 공덕을 만드는 10가지 방법

공덕을 만드는 10가지 방법 불교에서는 공덕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 공덕은 「사람이 누구라도 저지르는 행위 가운데 좋은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좋은 일」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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