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테라와다 불교사

테라와다 불자들의 특징_빤나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1213-3

담마마-마까 2025. 1. 26. 16:33

https://youtu.be/FQAjD7hrYe0?si=3W_tMbdEh1Xqk3bJ

 

* 테라와다 불자들의 특징_빤나와로 스님법문_담마스쿨_131213-3

 

아마 이제 마치고 나면 내년 후반기 돼서 아마 또 여러분하고 볼 수 있을 거라.

어쨌든 1년에 한 차례씩은 수계식을 하기로 했으니까, 수계식 관련부터 먼저 얘기를 좀 할게요. 원래 수계식, 법명을 주는 것은 8계 이상 자에게 법명을 줍니다. 그러니까 오계자는 그냥 재가 신자가 되는 것이지 수계명을 받는 것은 아니죠.

재가 신자를 빨리어로 뭐라고 그래요? 우빠시카, 우빠사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빠, 우빠라고 하는 것이? 우빠가 무슨 뜻입니까? 우빠니샤드 말은 많이 들었죠? 그러니까 뭘 따라간다고 할 때 그걸 갖다가 우빠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뭘 향해서 이렇게 나아간다고 이렇게 할 때.

 

그러니까 우빠사까(upāsaka), 우빠시까(upāsika) 남자 여자 할 때, 그러니까 뭘 따라가긴 따라가는 사람들인데 여러분들은 청정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닙바나 해탈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또 달리 말하면 부처님이나 부처님이 제자들을 향해서 뒷발꿈치 따라다녀서 그거 쫓아 따라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재가자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청신녀 청신남 이렇게 인제 한자로 부르고 하죠. 또 어떤 경우에는 근사남 근사녀 이렇게 한자로 부르게 되는데, 가까이 다가간다는 거거든.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긴 다가갔는데 아직은 그 속에 들어간 거는 아니라. 다가갈려고 노력들을 하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근데 이제 보통 8계 이상 받는 사람들은 달리 이름을 부릅니다.

브라흐마짜리니(brahmacārī) 이렇게 인제 이름을 부르죠. 범행녀라는 그런 뜻입니다. 청정범행을 행하는 사람들. 여러분들은 청정범행 행하려고 열심히 쫓아가는 사람들이고, 이제 8계 이상을 받는 사람들은 항상 청정 범행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계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그 속에서 항상 청정하게 노닐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은 벌을 받거든. 그래서 스님들이나 청신녀 그리고 사미들은 잘못한 게 있으면 참회를 해야 되고, 안 그러면 쫓겨나기도 하고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뭐 잘못해봐야 그 쫓겨날 이유는 전혀 없죠? 그 속에 아직 들어가질 못했으니까.

그래서 수계식을 한다는 것은 일단 그 속에 들어간다는 얘기라. 그러니까 5계 가지고는 안 되겠죠? 그래서 8계 이상을 받는 경우에 수계식을 해줍니다.

 

그런 표현들을 합니다. 스님들이 수계식을 하는 걸 "바리때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앉을 때도 스님들이 일반 다른 스님들은 요렇게 바리때 형식으로 동그랗게 요렇게 앉습니다.

그 가운데만 앞에만 딱 띄워나놓고 그리고 이제 수계 받은 사람은 그 속으로 이렇게 쏙 들어옵니다. 들어와서 맨 앞에 있는 스님한테 '나 계 좀 주시오'. 하고 이제 청하고, 그러면 '내가 니한테 계를 줄게' 해가 계주고 나서, 그러면 이 바리때 속으로 인제 완전히 들어오게 되는 거라. 그래서 "교단 속에 들어온 자가 된다" 그렇게 얘길합니다. 그걸 이제 "수계식"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다음 주는 수계식을 재가자들의 수계식이 있게 되는 거죠? 여러분들도 어쨌든 바리때 속으로 들어와야 돼. 그럴려면 5계 이상이니까, 적어도 8계는 받아야 되겠죠? 그래서 "다음 주에는 미리 점심을 많이들 먹어라. 오후에는 못 먹는다." 팔계 뭔지 알죠? 그렇다고 해서 잔뜩 먹으라는 게 아니고.

어쨌든 그날만큼은 적어도 팔계를 지키는 청정 범행녀가 됩니다.

 

8계 이상을 지니는 자들은 재가자들 중에 머리를 기르는 사람도 있고 머리를 깎은 사람도 있습니다. 8계든 9계든 10계든 뭐 비슷비슷합니다. 근데 머리를 기른 사람들은 집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불재일 날에만 일주일에 한 번씩 절에 가서 8계 이상을 지킵니다. 그날 하루만 열심히 잘 지키면 돼. 나머지 때는 팔계 안 지키고 오후에 잔뜩 먹고 뭐 그냥 그렇게 살아도 전혀 오계만 어기지 않으면 문제가 없어.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불재일 날 흰옷 입고 그냥 절에 가서 닐리니 맘보 하면서 놀고 있다가 그다음날 오고 이렇게들 합니다.

 

그거 말고 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있죠? 머리 깍고. 그걸 이제 다른 이름으로 이렇게 부르게 됩니다. 보통 '매치' '딸라신' 뭐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10계를 지키는 자', '8계를 지키는 자' 그렇게 부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제 절에서 살게 되니까 항상 팔계를 지키는 자가 되는 거라. 특별한 날에만 지키는 게 아니고 그 사람들은 기본이 8계, 아니면 10계를 받았으면 10계고.

 

그런 사람들과 집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사람들의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다른 차이점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8계 이상을 항상 지키는 자들은 탁발을 나갈 수도 있고 쉽게 말하면 그다음에 법을 설할 자격도 빨리 좀 주어지게 되고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출가자와 거의 비슷한 상황까지는 가기는 가는데, 출가자하고는 또 좀 틀리고, 하여튼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하는 것은 적어도 인제 여러분들이 하루 동안은 브라흐마짜리니 청정녀가 되겠다고 서원하면서 계를 받는 그런 의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아까 뭐라고 그랬죠? 여러분들이 그날 하루 준비해야 될 것은 "점심을 많이 무라". 그리고 그날 하루 동안은 적어도 하룻밤낮입니다. 그다음 날 해가 뜨기 전까지는, 적어도 "공덕들을 많이 쌓고 선한 마음들을 항상 지니는 자가 되도록 해라."

 

옛날에 스님이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을 때 해인사 전통이 뭐냐면 계를 받고 나면 바로 내려와서 ...에 가서 회 먹는 게 전통이었어요.

요즘은 그게 없겠지만, 쉽게 말하면 계를 받자마자 내려와서 계를 깨는 게 일이었어. 참 우습죠? 그게. 근데 이제 내려와서 낙지를 먹었는데 낙지를 먹자마자 탁 입 안에 입 천장에 딱 걸려가지고 이게 떨어지질 않네. 아무래도 꺼림칙한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랬겠지. 그러고 나서 ‘야, 내가 다시는 이 생선들을 회를 갖다 먹어서는 안 되겠다’ 해서 그 뒤부터 아예 안 먹었어.

 

근데 어쨌든 여러분들은 계를 받는 것은 계를 깨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깨기 위한 게 아니고 그 계 속에서 머물고 살기 위해서 계를 받는 것들입니다. 그 대신에 다른 때는 머리를 길르는 사람들이니까 오계는 반드시 지키도록 하라.

그거 할 자신이 있는 사람만 수계식에 참여해라. 여기엔 19명이나 되는데 뭐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어. 어중이 떠중이 막 다 집어넣어 놓은 건 아니죠? 다 이제 자격 조건을 갖추었다고 보고 스님이 확인 몇개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계를 받을 때 또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될 뿐 아니라 또 준비해야 될 게 있습니다. 계를 받을 때는 스승이 정해집니다. 아까 그랬죠. 그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나의 스승이 정해지게끔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계를 주는 스님이 스승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번에는 내가 주니까 내가 여러분들 스승이 될 수밖에 없어. 다음에는 또 다른 스님이 하도록 하면 그 스님이 여러분 스승이 되고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스승이 정해진다고 하는 것은 재가자로서 인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이제 이 불교를 계속적으로 수호하고 스님들을 보살피고 그리고 이 불교에 따라서 살아간다는 그런 맹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스님, 나의 스승이 되어 주시오." 하는 의식을 반드시 하게끔 됩니다. 일반 오계하고는 조금 틀리죠? 그냥 '나한테 계를 주십시오.' 이러는 게 아니고 "나의 스승이 돼주시오." 해가지고 그 스님이 "그래. 내 니 스승 해줄게" 이렇게 허락하고 나면, 그때서야 인자 "나에게 인제 계를 주시오." 이렇게 하게 돼있습니다.

그럴려면 맨입에 스승 되어주라고 소리를 못 할 거 아니라. 그래서 대부분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스승이 되어 주시오 할 때 그 스승을 청하는 스님에게 뭔가 바치는 게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그렇게 하죠. 이게 나라마다 조금씩 틀립니다.

그게 뭐냐면 보통 ", , " 이 세 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준비해야 될 것은 개인적으로 준비하면 됩니다.

나는 향 1자루 준비할란다, 아니면 나는 초 1자루 준비할란다, 나는 꽃 1송이 준비할란다, 각자 그거는 맞게끔 준비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준비 안 해와 가지고 “나는 마음을 준비했습니다.” 뭐 그래도 되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계를 청하고 나서는 그 상징물들을 그 스승에게 올리도록 그렇게 합니다.

주의해야 될 것은 먹을 것들은 준비하지 말아라. 특히 오후에 하기 때문에 먹을 것들을 스님들이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 그리고 봉투 준비하지 말아라. 봉투도 마찬가지 그 자리에서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안 됩니다.

 

쉽게 말하면 그런 것을 받으면 내가 뭔가 물질적인 후원을 받은 것으로 인해 가지고 계를 주는 것처럼 되기 때문에 매관매직이라고 그러죠 그걸? 그와 같이 여겨지기 때문에 테라와다에서는 그걸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향 · 초 · 꽃 중에 하나는 반드시 여러분들이 준비를 해왔으면 좋겠다. 이게 여러분들이 준비해야 될 겁니다. 간단하죠? (예) 그것만 하면 계 받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전에 하나 확인하고 싶은 거, 수계명이 있는 사람들 수계명을 얘기를 해줘도 됩니다. 그대로 쓸려고 할 경우에는 그대로 써도 됩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한글로 뭘 한자로 뭘 받았다, 그럼 그 이름이 좋다, 그 이름을 계속 불리고 싶다,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이름 가지고 스님이 빨리어로 지으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좋은 이름 나놔 놓고 또 새로 이름 받으려고 하지 마. 이름은 그 사람을 부르기 위한 명칭인 거지 그 이상도 그 이하가 아닙니다.

언제 뭐 내보고 진용 스님 한다고 해가지고 내가 뭐라 하고, 아니면 빤냐와로 스님 한다고 해서 뭐 뭐 어쩌고 이러진 않잖아. 빤냐와로 스님이라 부르던 진용 스님이라고 부르든 내가 뭐 틀려지는 건 아니잖아. 본질은 여기 있기 때문에 그 명칭들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마라.

 

그리고 계 받은 거 보면 어떤 경우에는 좋은 이름도 있고 뭐 부르기 좀 힘든 이름도 있을 거라. 그건 너무 탓하지마. 그거 중요한 거 아니라.

우리 선원에서도 이름이 수수옥이라고 하는 이름을 받은 분이 있어요. 수수옥 거꾸로 하면 어떻게 돼요? 난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거꾸로 하니까 옥수수가 되는 거야. 그래서 웃은 적이 있는데, 뭐 옥수수라 생각을 하든 안 하든 간에 뭐 수수옥 그냥 부르기 좋으니까 그냥 수수옥 이렇게 부르고, 아직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들은 계 받은 이름이 좀 안 좋다 싶으면 기분 나빠가 또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명칭을 가지고. 그야 뭐 여러분들 마음이긴 한데, 그래서 너무 이름에 집착하지 말아라 하는 겁니다.

 

... 수계받을 수행자들에게 받고 싶은 이름에 대해서 (중간 생략)... ... ...

됐습니다. 수계첩 크게 의미 가질 필요 없습니다. 어쨌든 1년 동안 했으니까 안거 한 철 지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인제 계를 주는 거니까 그렇게 의미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비구 스님들은 계를 받는 것으로부터 해서 법납이 착착 올라가는데, 법납이 올라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구 이하, 사미도 법납이 없습니다. 사미가 아무리 오래돼도 19살에 출가한 사미한테 절해야 돼. 인자 막 출가해도. 그래서 사미는 세속 연령으로 높낮이를 구분을 하게끔 돼 있죠. 그러니까 재가자는 더더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내가 계를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먼저 불교 신자가 됐다 해서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 거기 때문에 너무 크게 의미를 갖지는 말고, 단지 마음속에서 ‘아, 이제 내가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가는 불자가 됐다.’ 하는 그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됐죠?

 

교재, 인제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많이 못 해줘가지고 좀 미안키는 한데 어쩔 수가 없고 지금 내준 것은 현재의 테라와다 불교인데, 현재의 테라와다 불교에 대해서 쓴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전 세계에 지금 테라와다 인구가 재가자가 한 몇 명이나 될 것 같아요? 통상적으로? 10만 명? 7만 명? (...)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우리나라? 없습니다.

테라와다를 좋아는 하고 테라와다 공부를 했는지는 몰라도 테라와다 불자라고 이름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은 전무합니다. 아직은 한국은 통계에 잡혀 있질 않습니다.

통계에 잡혀 있는 것들을 이렇게 참조를 해보면 1억 5천만 정도 된다고 그럽니다. 보통 동남아시아에 집중돼 있죠. 1억 한 1천만 정도가 동남아시아에 집중돼 있고 4천만 정도는 유럽과 미국 구라파 쪽 그리고 인도네시아 일본 이쪽에 포함돼 있고, 아직은 한국은 테라와다 불자라고 지금 UN에서 지금 집계한 것들이 잡혀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테라와다 불자라고 하는 거하고 테라와다 공부를 하는 거하고는 조금 틀리다는 거죠. 테라와다 수행을 하는 거 하고.

수행은 누구든지 뭐 종교와 관계없이 할 수 있고 공부는 누구든지 할 수 있는데, 테라와다 불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거기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것들로 인해서 흔들림이 없이 그 길을 간다고 하는 그런 의미들을 가지기 때문에, 물론 바뀔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그 방향을 가진다는 거기 때문에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게 인제 지금 현재 이 테라와다 불교의 현재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테라와다 불교가 보통 동남아시아에 있기는 한데, 그 동남아시아도 지금 현재 테라와다 불교는 두 가지 경향들을 가지게 됩니다.

정통적인 테라와다 불자, 그리고 화교 출신 불자, 그 사람들도 테라와다를 하기 때문에 테라와다 불자입니다. 근데 화교 출신 테라와다 불자하고 전통적인 테라와다 불자하고는 조금 경향 성향이 많이 좀 틀립니다.

근데 그 공통 분모들을 탁 뽑아보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그 특징들을 가지게끔 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테라와다 스님이 만약에 테라와다 스님이 목탁들고 관세음보살 이럴 것 같으면 참 보기 안 좋겠죠? 그렇죠? 그런데 테라와다 불자가 뭐 동지기도 있다 그러면 동지기도비 내고 기도하러 갔다, 아마 마찬가지로 보기 안 좋을 거다.

또 다른 면으로 할 것 같으면 테라와다 스님들은 누가 돌아가신다고 할 것 같으면 가서 염불을 해줍니다. 따로 돌아가시기 전에 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 3일간은 가서 염불을 해줍니다. 근데 그것은 그 의미들을 가지게끔 돼 있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너희들도 곧 죽을 거니까 하루빨리 수행하고 공덕 쌓아라 하는 그런 얘기들을 해주는 것이 주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테라와다 의식에는 반드시 거기에 맞게끔 뭐 공덕을 쌓기 위해서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린다든지 아니면 가사를 올린다든지 뭐 법문을 듣는다든지 이런 형태들을 반드시 취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런데 테라와다 불자가 됐으면서 누가 주변에 가족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느 절에 가서 49재를 하고 있다, 그것도 사실은 별로 안 맞는 거지.

 

그런 부분을 빼고 테라와다 불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어떤 특징들은 틀림없이 있다는 거라. 그래서 오늘은 그 특징들에 대해서 여러분들한테 조금 얘기를 할려고 그럽니다. 그 특징을 알아야 이제는 다음 주에 계 받을 건데 그래도 그 길을 따르려고 할 거 아니라. 그래도 안 따를 사람은 또 새해 되면 점 보러 가는 사람도 있을 거고, 틀림없이 있겠지만은, 그렇죠? 그래도 점점 더 그런 것들이 엷어져 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테라와다 불교의 공통된 특징이 뭘까?

딱 하나를 꼽아라 그러면. 해피스님 뭘까? (해피스님: 모르겠습니다.)

이때까지 테라와다 불교사 뭐 들었어?

 

순수성을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것, 바꾸지 않으려고 한 것, 그게 인제 테라와다 불교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간혹 뭐 그런 얘기를 합니다. “아, 이거 현대에 안 맞으니까 바꾸자” 저번 세미나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죠?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꼼짝도 안 합니다.

그게 무슨 보수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테라와다 불교는 그걸 바꾸자마자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그 대신에 그 순수성을 견지를 해오면서 얻어지는 이익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끔씩 그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다든지 아니면 테라와다 경전을 읽을 때 그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이 저기 앞에서 딱 나타나 가지고 법문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경전 읽을 때 진짜 부처님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습니다.

살아있는 불교를 할 수 있다는 거라. 살아있는 불교를. 절에만 가야 불교를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 생활에서 응용될 수가 있고, 또 그것이 실제 나에게 크나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 그게 인제 테라와다 불교가 순수성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그게 가능해지는 부분들입니다.

그게 아마 테라와다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일 겁니다.

그래서 그 순수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부단하게 노력을 합니다. 스님은 스님들대로, 재가자들은 재가자들대로.

 

그다음에 또 하나 특징을 대라고 할 것 같으면, 혹시 여러분들 그런 거 본 적 있어요?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이렇게 스님이 옆에 지나가면 옆에 싹 길을 비키면서 이렇게 합장하고 있는 거, 아마 많이 접했을 겁니다.

그리고 스님들은 만나면 누구든지 출가하신지, 몇 년 안 거 지냈습니까? 하고 물어보고 자기보다 선배 스님이면 하루라도 먼저 선배 스님이면 깍듯하게 삼배하는 것, 일배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삼배하는 거 이런 걸 아마 봐왔을 겁니다.

그게 뭐냐면 존경해야 될 대상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존경한다.

 

사실은 그게 확립이 돼 있어야 가능합니다. 붓다·담마·상가에 대한 확립이 돼 있어야만이 가능합니다. '부처님' 할 것 같으면 뭔가 부처님에 대해서 탁 확립이 돼 있고, '담마'할 것 같으면 확립이 돼 있고, '상가'할 것 같으면 딱 확립이 돼 있어야만이 이게 가능한데,

한국은 조금 그게 애매모호하죠. 부처님 해도 뭐 석가모니 부처님만 있는 게 아니고 뭐 아미타 부처님도 있고 뭔 부처님도 있고, 담마도 부처님 가르침이라 해도 뭐 각각의 종파에 따라서 이 소의 경전이 다 틀립니다. 요쪽에는 금강경, 요게는 법화경,

 

테라와다 불교는 그런 게 없죠? 그래서 테라와다 불교를 갖다가 각각의 교파들을 갖다가 니까야라고 합니다. 마하니까야, 담마윳띠까니까야, 시암니까야, 라마냐니까야 그럽니다. 니까야라고 하는 것은 교파라고 하는 뜻입니다, 불교라는 교의,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교의는 동등한데 그 교의에 따라서 각각의 파들이 나눠진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율은 동일하다는 거라.

동일하기 때문에 파는 틀리지만 이 스님들이 다른 파에 가더라도 거기에서 같이 모든 것들을 해나갈 수가 있는 거라. 거기 가서 무슨 뭐 탁발이 있으면 탁발도 같이 하게 되고, 그다음에 스님들끼리 모여서 회의가 있으면 그것도 참석할 수 있고, 이렇게 돼 있다는 거라.

그런데 한국은 안 그렇죠? 조계종 뭐 무슨 스님들 회의에 태고종 스님들이 보면 난리가 납니다. 왜 그래요? 교의가 다 틀리기 때문에. 이게 교의가 확립이 사실은 안 돼 있지 한국은.

 

그런데 테라와다는 담마하면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상가 할 것 같으면 그것도 딱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은 상가가 뭐 재가자가 그 속에 들어가니 포함이 되니 안 되니, 그래서 재가상가가 있니 어쩌니 자꾸, 그리고 한국에 승보가 있니 없니, 자꾸 막 떠들어쌌고 그럽니다. 확립이 안 돼 있다는 얘기라 그게.

근데 테라와다에는 상가가 딱 정해져 있습니다. 재가자 불포함, 출가 스님들 요 딱 고정화되어 있습니다. 상가에 대해서 개념이 혼동될 이유도 전혀 없는 거고, 그중에서 성인의 경지에 이른 성스러운 상가가 있을 거고, 그다음에 그냥 평범한 상가도 있을 거고, 그렇지만 어쨌든 상가라는 개념은 딱 정해져 있다는 거라.

 

이게 여러분들이 정립되어야 될 필요성이 반드시 있다.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정립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존경해야 될 대상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거라.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그게 딱 확립이 돼 있으니까 스님이 오면 스님이 오는 게 아니고 상가라고 하는 보물이 걸어오고 있는 거라. 그러니 얼마나 존경하고 공양해야 될 대상이라? 그러니까 옆을 비켜가지고 합창하고 있는 거라. 뭐 아무것도 모르는 스님이라도.

여러분들도 이걸 자꾸 확립하도록 해야 됩니다.

 

존경해야 될 대상들을 반드시 확립하라. 앞으로 점차적으로 확립해 나갈 거라고 봅니다.

립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보통 이제 한 5가지로 이렇게 얘기들을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저쪽에 동남아시아 불자들은 스님이 오면 합장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꿇어 앉아가지고 있다. 그럴 거 같으면 그건 몸으로써 존경을 표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몸으로 표할 필요성도 있고, 몸만 있어요? 말로써 표현하는 것도 있습니다. 스님한테 뭐 좋은 말을 한다든지, 아니면 스님 보고 “훌륭하십니다. 사두” 한다든지 뭔가 말로도 표현하는 게 있을 거고, 또는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아, 진짜 존경하는 마음들을 가지는 것.

그러니까 스님에게만 그런 게 아니고 가르침에 대해서도 그리고 부처님에 대해서도.

 

그래서 여러분들이 뭘 해야 뭘 합니까? 수행에서 아눗사띠 하죠? 붓다눗사띠, 담마눗사띠, 상가눗사띠 합니다. 끊임없이 그것을 되풀이해서 생각하고 관찰하는 것.

‘아, 부처님, 아라항, 번뇌가 없는 분, 야 우짜면 번뇌가 없을까? 나도 저렇게 따라가야지, 아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번뇌가 없어지는구나’ 끊임없이 ‘아라항’을 하면서 그걸 생각하는 거라. 그러면 어떻게 돼요? 마음은 고요해지고, 마음은 기쁨이 생겨납니다.

그러면은 생각하는 것으로 인해서 이미 나는 존경해야 될 것을 존경해버리게 되는 거라.

말과 몸과 마음으로 존경해야 될 걸 존경하고, 또 있습니다.

 

뭐가 있을까? 그걸 이제 소유물에 대한 보시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반드시 존경해야 될 대상들에게는 소유물로서 존경의 예경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래서 저쪽 사람들은 아침 되면 탁발 할려고 해.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너 어디 가노?” 그러면 “절에 갑니다.” 그럽니다. “절에 왜?” 그러면 왜 절에 가느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뭐라고 얘기하냐면 “탄분 쌓으러 갑니다.” 그럽니다. 쉽게 말하면 공덕 쌓으러 간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절에 가서 공덕을 쌓았다. 스님한테 공양물을 올렸든 아니면 절에 부서진 것 보수하라고 사무실에 가서 보시금을 얼마 내었든 그러면 영수증을 이렇게 받거든. 영수증에 뭐라고 딱 적혀있는지 알아요? 혹시 그쪽 나라에 가서 영수증 받아본 사람 있어요? 없어요?

 

뿐냑켓땅 로깟사(anuttaraṁ puññakkhettaṁ lokassa) 그렇게 적어놨습니다. 아마 그나라 말로 적어놨는 거 여러분들이 모르겠지. 뭡니까? 이 복전의 밭이라는 거라. 이 세상의 공덕의 밭. 그래서 '이것을 당신이 공덕 쌓았다는 걸 증명합니다.' 하고 그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우리는 영수증이라고 안 하고, 그 사람들은 뭐냐면 '공덕 증명서'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절에 뭐하러 가느냐 할 것 같으면 법문 들으러 간다, 법문 듣는 것도 공덕 쌓는 거고, 수행하는 것도 공덕 쌓는 거고, 그래서 다들 “뿐냐 공덕 쌓으러 간다.” 그렇게 얘기를 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공덕 쌓는 일을 등한시 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삼보가 무너져 버립니다. 재가자들의 공덕을 쌓는 것들로 인해서 이 삼보는 유지돼 나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삼보라고 하는 것은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인제 네 번째고.

 

다섯 번째는 뭘까? 법으로써 공경, 여러분들이 열심히 그걸 수행하고 열심히 그것 따라 살아가면서 그 생활에 딱 젖어 있을 경우에 그 법으로써 공경하게 되는 거라. 가장 어찌 보면 큰 겁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해도 뭐 전혀 흔들림 없이 그 길을 따라가게 되는 것.

적어도 공경해야 될 방법은 이렇게 크게 나눠 가지고 한 다섯 가지 넘어 됩니다.

 

그 방법으로 인해서 여러분들은 자꾸 공경해야 될 대상들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게 테라와다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그게 없으면 테라와다는 유지가 안됩니다. 그게 자꾸 없애버리려고 할 것 같으면 쉽게 말하면 뭐 그냥 가서 공부 배우고 또 수행만 한다. 그럴 것 같으면 이 고리를 만들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절에서는 돈 몇 원 내야만이 거기 가서 공부할 수 있고, 몇 원 내야만이 거기 가서 수행할 수 있게끔 하는 거라. 구조가 희한하게 자꾸 꼬여버리는 거라. 유지를 해야 되는데 유지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 수단으로 하는 거라. 그러면 어떻게 돼요? 이게 테라와다의 본질이 자꾸 변질돼 버리는 거라. 그렇다고 칩시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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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와다의 중요한 원칙 세 번째 특징, 팔정성도 아리야 아탕기까 막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팔정성도 따라서 자꾸 살아가야 됩니다.

이걸 자꾸 벗어나려고 하지 마라. 견해도 바르게 세워야 되고, 말을 하는 것도 배워가지고 그 말하는 법대로 따라서 해야 되는 거고, 생각하는 법이라든지, 아니면 내가 행동하는 법이라든지, 또 내가 직업을 가지고 할 때 어떻게 어떤 직업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 거라든지, 그리고 내가 수행할 때 어떻게 알아차림 해야 되고, 어떻게 내가 집중해야 되는 건지, 팔정도만큼 정확하게 해 놓은 게 어디 있어?

수행에 대하면 수행에 대한 거, 생활이면 생활에 대한 거, 모든 것들을 망라해 놓은 것들이 팔정성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팔정성도에서 어긋난다 할 것 같으면 안 돼. 어떤 경우든지 이걸 자꾸 비춰보도록 해야 되는 거라.

 

그다음에 특징 네 번째, 빨리어. 공통적입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는 지속적으로 빨리어는 배워야 된다.

그래서 가끔씩 스님이 시험 칠 때도 있을 거라. 하기야 뭐 우리 운영위원회에서 내보고 과목 안 맡기면 내가 할 말은 없긴 한데, 맡기면 빨리어에 대해서 맡긴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이번에는 김재성 교수가 2학년 1학기 빨리어 아마 맡아 있을 거라. 근데 아마 나보다는 좀 수월할 거라. 내보고 빨리어 과목을 맡겼으면 여러분들은 죽어요.

이 상가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걸 외워 오지 않으면은 수업을 안 해. 내가 처음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태국 가가지고 태국말도 잘 모르는데 이놈의 빨리어를 외워 가지고 가야 되니, 그것도 1~2 페이지가 아니고 몇 페이지씩 외워 가야 돼요. 말도 안 되는데 또 그걸 해야 되는 거라.

근데 그걸 해가지고 가면, 물론 여러분들한테는 1~2 줄을 하겠지만은, 해가지고 가서 딱 할 것 같으면 나중에 되면요 빨리어가 굉장히 빨리 늡니다. 공통적으로 테라와다 불교는 공통 언어는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니라. 태국어도 아니고, 빨리어입니다. 그래서 빨리어는 반드시 해야 돼.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걸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라? 적어도 아침 저녁으로 예불문 가지고 독송 한번 아침 저녁으로 하고, 그리고 이런 법회에 나오면 말도 안 되고 잘 안 돌아가도 자꾸 할려고 해야 되는 거라. 삼보 예찬도 하고 삼귀의 오계도 받고, 회향게송도 하고, 자꾸 할려고 해야 되는 거라. 그 게 기본이 안 돼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

공통적인 언어를 모르고 어떻게 불교를 알 거라? 알 방법이 없는데.

빨리어 반드시 공부하십시오. 알았죠? (예) 음, 말은 잘한다이.

 

그다음에 다섯 번째, 부처님에 대한 개념을 반드시 정립하라

부처님은 영원하여 전지전능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 아니다. 기복적인 거 이후부터는 줄여나가고 없애버려라. 기도하고 하는 것 이런 것들 하지 말아라.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기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스님들이 축원을 해주긴 하더라도 그 축원하는 거하고 기도는 틀립니다. 축원은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지만, 기도라 하는 것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게 돼 있습니다. 특정인만 잘 되라고 하는 가르침이 그게 무슨 부처님의 가르침이겠어? 그거 하지 말아라는 거라. 소원을 들어주는 분이 아닐 것 같으면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왜 그 같은 일들을 갖다가 의식을 하느냐는 거라. 하지마! 테라와다 불교는 아주 간단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는 거 100% 다 안 해버리면 됩니다. 100%!

 

부처님한테 할 바에야 스님들한테 해라. 그 여력을 갖다가. 살아있는 삼보인데 그 삼보에 할 생각 안 하고 왜 저기 돌아가신지 2600년이 된 그 부처님한테 가서 매달리느냐는 거라. 고민이 있고 문제가 있고 해결할 것 같으면 스님한테 가서 그 문제 해결을 해 달라고 하라고. 고민 털어 놔 놓으면 스님이 방향을 부처님 말씀에 맞게끔 잡아줄 거 아니라. 그럼 그 방법대로 자기가 실행하면 되는 거라. 그걸 해야지 왜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나아가느냐는 거라.

 

그다음에 여섯 번째, 보살 개념보다는 성자의 개념을 자꾸 가지도록 하라.

여러분들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주고 이익을 줄 수 있는 분들은 그 성자들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돌아가신 부처님도 아니고 관세음보살이나 무슨 각각의 보살들도 아니고 그 어떤 누구도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그것 따라가서 그 깨달음에 이르러서 여러분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들, 그분들이 여러분들에게 이익을 주고 여러분들에게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가 있는 겁니다. 그 개념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 바라밀 십바라밀 쌓는 것 등한시 하지 마라.

십바라밀은 저번 1학기 때 얘기가 된 부분입니다. 이걸 하지 않고 뭔가를 한다, 그거는 이빨 빠진 호랑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도 맛있게 씹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바라밀을 행하는 것, 테라와다에서는 30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걸 이제 세 단계로 나눠 가지고. 그 바라밀을 행하는 것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뭐든지 행하면 이게 그 바라밀이 될 수 있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여러분들이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기가 수월해지고, 그게 수행이든 아니면 일상적인 생활이든 단계들을 극복해 나가는 힘들을 가져다 주게 됩니다.

 

그다음에 여덟 번째, 이 생에서 닙바나에 이르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죽고 나서 극락 갈라고 자꾸 하지 말고. 어떤 사람은 그러대. 죽고 나서 49재 지내주라고 딱 예금을 해 놔놨다고 그러대. 죽고 나서 그걸 그렇게 해가지고 극락 가면 뭐 할 건데? 그거 하지 마라는 거라. 이 생에서! 조금 더 내가 바른 마음을 가지고 기쁨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고 그리고 도와 과에 이르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되는 거라.

닙바나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라. 여러분들 곁에 있다는 거라. 여러분들이 하는 것에 따라 축생의 삶이나 닙바나의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거라. 닙바나의 삶을 자꾸 살도록 자꾸 노력을 하게끔 하라.

 

그다음에 아홉번째, 반드시 삼귀의 오계 받아지녀라.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팔계 지켜라.

선원에 가든 안 가든 자기가 딱 정해가지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팔계 지켜라는 거라.

 

그리고 출가자는 계율을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야 되고, 재가자 존중하고, 개개인이 아니라 상가의 일원으로서 자꾸 살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

그리해야만이 재가와 상가의 관계가 형성이 되게 돼 있다는 거라.

그래서 그 힘으로 인해서 교단이라고 하는 것들을 떠받들게 돼 있습니다.

뭘 자꾸 얻어가고 타내가지고 갈라고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보태주려고 해야 됩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갈 때 그 보탬이 되는 것들이라.

 

마지막에 있는 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붓다의 가족 중에 무임승차하는 자가 많아지면 교법은 쇠퇴해 기울게 되어 버립니다.

붓다의 가족으로서 어깨에 메어 떠받치는 구성원이 증가하면 교법은 융성해져서 발전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 역할을 해야 되는 거라. 재가자는 재가자의 역할, 출가자는 출가자의 역할을 바르게 해나갈 때 이게 가능해지게 된다는 겁니다. 이해하겠죠?

이때까지 테라와다 불교 교단사를 해왔습니다.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 못다한 것들은 스님이 틈틈이 시간 내서 만들어서 교단 홈페이지에 올려놓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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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와다 불교사 교재】_ 결집

【 테라와다 불교사 교재】5. 제1차 결집6. 제2차 결집7. 제3차 결집10. 제 4차 결집 - 불교 경전의 문자화16. 현재의 테라와다 불교(테라와다 불교의 원칙과 특징들)  5. 제1차 결집  부처님께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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