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법문교재/법문 교재(프린트물) 120

해탈에 이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八支聖道)의 순서 (20160319. 서울)

* 해탈에 이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八支聖道)의 순서 (20160319. 서울) ● 진정한 자유의 순서 요약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른바 에고라고 하는 나(atta)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순서가 있습니다. 1. 마음에 맑고 깨끗한 감정을 유지하고 생활한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자아로 더러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맑고 깨끗한 감정을 삽입합니다. 2. 망상을 멈추기 위해 현실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관찰한다. 어떻게 해서든 망상을 멈추기 위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상을 관찰하려고 합니다. 이른바 사고는 하지만 망상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발견해서 자아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난다. 자아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아는 원래 없으니까. 자아가 ..

좋아함과 사랑의 뒤에는 괴로움과 공포가 있다. (20161021)

* 좋아함과 사랑의 뒤에는 괴로움과 공포가 있다. (20161021) 「좋아」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좋아」라고 말할 때는 사람의 기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됩니다. 또 어떤 물건을 좋아하게 됩니다. 더불어 타인의 사고, 생각도 좋아하게 됩니다. 자신의 사고, 망상, 관념 등은 당연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좋아하게 되는 대상에는 3개가 있습니다. (1) 사람이나 생명체 (2) 물건 (3) 사고 그런데 불교에서는 「좋아」라고 하는 감정은 사람의 자유를 속박하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좋아」가 문제인 것은 불교만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철학에서도 「좋아」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상식에서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

집착을 버리는 법 (20161007)

* 집착을 버리는 법 (20161007) 부처님 당시에 다른 지방으로부터 30명의 비구들이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리뿟따 존자는 이 비구들을 해탈로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부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처님! 2개의 법이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그 2개의 법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이 질문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2개의 법이란 무엇이냐고 질문 받아도 대답하기 힘듭니다. 2개로 나누어 설해진 법은 많이 있습니다. 세간법과 출세간법, 조건 지어진 법과 조건 지어지지 않은 법 등 많이 있습니다. 이 경우는 출가한 비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2개의 법입니다. 출가한 비구들의 유일한 목적은 해탈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빠뜨릴 수 없..

어른이 되는 길 (20160930)

* 어른이 되는 길 (20160930) 탐·진·치를 지닌 아이인 채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성장이나 나이가 먹어가는 것과 함께 마음도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어른은 압도될 것 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마음의 어른만큼 도움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성장의 정도입니다. ■마음의 평안이 가지는 힘■ 불교에서 지혜 제일은 사리뿟따 존자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도 인도 사회에서 뛰어난 지식인이었습니다. 인도의 모든 종교철학을 섭렵한 사리뿟따 존자가 진리를 구하여 유행을 시작한 그때에 깨달음을 이룬지 얼마되지 않은 앗사지 존자를 우연히 만났습니다(앗사지 존자는 부처님의 최초 5명 제자 가운데 한분입니..

삶은 불확실하고 죽음은 확실하다. (20160909)

* 삶은 불확실하고 죽음은 확실하다. (20160909) 이것은 불교에서 유명한 말입니다. 죽음은 모든 생명에게 반드시 다가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으로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죽음을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본능적으로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피할 수 없다」라는 것을 애써 회피하거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이나 몸에 매달려 많은 욕망과 집착을 안고 살아갑니다. 갓난아기가 태어났을 때 가족이나 친지 친척들은 환희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격렬한 진통에 잘 참은 아이엄마도 기쁨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기를 응시하며 출산 때에 맛본 고통이나 곤란함은 쓸데없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갓난아기는 울면서 태어납니다. 그것을 보면..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다. (2016092)

*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다. (2016092) 부처님 시대에 욕구에 빠진 세속적인 삶의 방법을 싫어해서 청정한 마음을 닦아 해탈을 체험하고 싶다고 생각한 어느 무리 모두가 출가했습니다. 출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을에서 떨어진 숲속에 들어가 수행에 힘썼습니다. 노력이 결실을 맺어 서서히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어 갔습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도 없고 밖의 세계로부터의 자극도 없었기 때문에 수행 과정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사마디(선정), 마음의 통일을 만드는 명상에 주력해서 선정에 이르는 것을 성취했습니다. 그 비구들은 출가한 시점에서 욕구에 대한 미련은 없었고, 숲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속세의 자극도 없었습..

무상을 아는 것이 인생을 아는 것이다. (20160826)

* 무상을 아는 것이 인생을 아는 것이다. (20160826)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 괴로움은 많이 있습니다. 인간은 괴로움을 당할 때 자아를 괴로움의 주재자로 여깁니다. 또는 자신을 자아로 간주함으로써 아예 괴로움을 겪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아는 오온에 붙인 명칭에 불과합니다. 곧 괴로움을 다스릴 만한 권능이 없는 신기루가 자아라는 말입니다. 결국 자아에 대한 집착의 끝은 역시 괴로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무상한 오온은 실로 무상하기에 괴로운 것입니다. 괴로운 것이라고 해서 아무리 오온을 자아라고 집착한다고 해도, 자아는 허구이기에 괴로운 오온은 무아일 수밖에 없습니다.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의지해야 할 곳은 관념적인 자아가 아닙니다. 한낱 말에 불과한 자아는 결코 보호자나 피난처가 될..

눈앞의 즐거움이라는 함정 (20160819)

* 눈앞의 즐거움이라는 함정 (20160819) 사람은 자주 잘못을 범합니다. 잘못을 범하지 않는 인간은 세상에 없기 때문에, 잘못을 범하는 것이 인간의 특색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잘못을 범한다는 이 사실을 이해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 낙담만 하지 않을 수 있고, 남도 자신처럼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잘못에 대해 용서하고 이해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것이 훌륭한 인간의 삶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세상에는 인간으로서 적합하지 않은 부류의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속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잘못이 알려지면 용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타인이 잘못하면 단호히 허락하지 않고 그것을 비난합니다. 이러한 성격은 인간관계를 나쁘게 합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 (20160805)

*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 (20160805) 기쁨이 없으면 마음이 성장하지 않는다. 마음의 성장에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면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의 상태로 변화해갑니다. 그대로의 상태로 변화한다고 했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퇴화되어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영양제인 기쁨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기쁨을 느끼고 싶어하고, 기쁨을 구해서 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지만 기쁨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식사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먹을 것이 맛있으면 즐거움도 일어납니다.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음식이 맛있으면 그것을 만든 재료들도 좋은 것뿐입니까? 다양한 식품 재료의 특색과 영양과 요리 방법과 먹어야 할 양 등도 이해하는 것이 안전할 것입..

마음에는 게으름이라는 병이 있다. (20160701)

* 마음에는 게으름이라는 병이 있다. (20160701) 부처님께서는 완전하게 진리를 설하셨고, 누구라도 손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지도하셨으며,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누구라도 이해하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가르침에는 맹목적이거나 미신적인 특색은 하나도 없고, 고행이나 특별한 종교적인 관습 등은 요구하고 있지도 않고, 사람들의 전통이나 관습 등에도 거슬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불교를 실천해 보려는 사람들의 수는 적습니다.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깨달음에 이르는 사람들은 매우 드뭅니다. 그것은 왜일까 하는 점을 생각해 봅시다. 문제가 일어나면 다른 대상,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