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생활에서 자애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 (20151009)
빨리 경전에 나타난 자애(mettā)의 가르침을 보면 대략 두 가지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일상의 실제 행위와 사고를 그런 방향으로 돌리도록 쓰는 방법으로, 도반들 사이에서 몸과 말로 행할 때 자애를 유지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랑과 존경, 협조, 평화, 조화, 일치로 이끄는 원리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바라밀의 성취나 선정을 목표로 체계적인 자애수행을 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는 첫 번째 일상생활에서 자애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자애경을 표본으로 설명하겠습니다.
Mettā sutta(자애경)는 자애(mettā)의 실천 방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경전은 유명해서 대부분의 불자들은 모두 암기하고 있는 경전입니다.
경전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적절한 장소
2. 마음가짐과 성격의 관리 (이른바 기본적인 도덕)
3. 실천의 대상이 되는 생명의 분석
4. 구체적인 실천 방법
5. 결과
이상과 같은 순서로 이 경전은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애(mettā)는 반드시 해야 할 일, 필수적인 의무(karaṇīya)입니다(Karaṇīyamettā).
먼저 처음 나오는 것은
1. 적절한 장소
Karaṇīyamatthakusalena, yantaṁ santaṁ padaṁ abhisamecca,
(까라니-야맛타꾸살레-나, 얀땅 산땅 빠당 아비사멧-짜,)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고요한 장소를 선택한다.」
수행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고요한 장소가 필요합니까? 이것은 일반 재가자들에게 말한 것이라기 보다는,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수행하는 출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이 출가 제자들에게 번잡한 상가거리에서 자애수행을 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출가 제자들에게는 사람이 여럿 있는 곳, 소란스러운 곳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조용한 곳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일상적으로 자애를 실천할 때는 장소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조용한 장소가 적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분은 그러한 사치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자애를 실천하려고 생각하면 장소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 경전은 자애를 전념해서 수행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장소이든 마음만은 고요하게 머물도록 해야만 합니다.
『청정도론(Visuddhimagga)』은 이 자애관 수행을 논하는 부분에서 자애관을 닦기 전에 미리 갖추어야 할 준비 자세와 마음 자세를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자애를 닦고자 하는 수행자는 그가 초심자라면 ‘장애’를 끊고 명상주제를 배워 공양을 마친 뒤, 식곤증을 떨쳐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잘 마련된 자리에 편안히 앉아 먼저 성냄의 위험과 인욕의 이익을 반조해야 한다.
왜 그런가? 이 수행으로 성냄을 버려야 하고 인욕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허물을 버릴 수 없고 알지 못한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 ··· 성냄의 허물을 살펴보고 성냄으로부터 마음을 격리시켜, [많은] 이익을 가진 인욕에 묶어두기 위해서 자애의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장애’라고 하는 것은 감각적인 욕망, 악의, 등의 5장애(pañca nīvaraṇā) 가 아니라, 수행을 하는데 걱정이나 근심을 일으켜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외적인 10가지 장애(dasa-paḷibodhā)를 말합니다. 그것들은 거처, 가족, 이득, 대중, 공사, 여행, 친척, 질병, 서적, 신통 등입니다.
열반에 이르기를 원하는 사람도, 열반에 도달하여 살아가는 사람도 살아가는 방법은 “모든 생명”에 대해 자애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마음 가짐과 성격의 관리
(1) 삭꼬-(sakko) 무슨 일에도 뛰어난, 유능한
무엇을 해도 서투른 사람, 실패하는 사람은 자애를 실천할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굉장히 초조해지고, 주위로부터도 다양한 질책의 말을 듣게 되면 마음의 침착성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기 전에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우주-(ujū) 올바른, 확실히 하는
애매모호 해서는 안됩니다. ‘어떻게 하지...,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그것은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성격은 안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상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말만 합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러면 심지가 올바르고 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3) 수후주-(suhujū) 곧고, 똑바르고, 정직하며,
다시 한 번 더 우주(ujū)를 반복해서 강조한 것입니다. 즉, 올바르게 확실히 실천할 것을 한 번 더 강하게 강조한 것인데, 그것은 교활하지 않고 허위가 아니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올바른 마음을 줄곧 유지해야 합니다.
(4) 수와쪼-(suvaco)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부드럽게 말하고,
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 화를 내는 사람이 상당히 있습니다.
특히 도와 과에 들기 위해서 suvaco는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수와쪼가 없으면 입구에서 내쫓깁니다. 마찬가지로 화를 내며 말하는 사람은 입구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상대가 흉폭하고 내쫓을 수 없는 경우는 완전하게 무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드럽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수행자들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오만하고 완고하게 말해서는 안 되기에, 수행자에게는 수와쪼가 필요합니다. 그 반대는 완고함(thaddhamāna) 입니다. 완고한 자는 자애의 수행을 하기 어렵고, 결국에는 수행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쭉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항상 부드럽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조심해서 성격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누구의 무슨 말이든 잘 들을 수 있고,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해도 평온하고 부드럽게 할 수가 있습니다.
(5) 무두(mudu) 온화하며,
우리는 자신은 온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상냥하고 온화한 인간이라는 자기암시를 해도, 정말로 그런지 자신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이 온화한지 체크하는 방법은,
사람들을 봐도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흥분도 하지 않는다, 나를 내세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온화한 편입니다.
아이의 행위나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나쁜 것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좋지만, 완고해서는 안 됩니다.
모기나 벌레가 있으면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면 온화함이 없습니다.
다양한 생명에 대해 이해하고 침착하며 마음이 온화하도록 해야 합니다.
(6) 아나띠마-니-(anatimānī) 고만(高慢)하지 않고, 겸손한 것.
아만심이 높은 사람에게는 자비가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고만한 사람은 당연히 다른 생명을 바보 취급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평등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고만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7) 산뚯사꼬-(Sanṭṭussako) 만족할 줄 알고,
이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검소하게 생활하라는 소욕지족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만족함을 안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자기 자원봉사 갔다고 합시다. 점심때 고급 프랑스 요리나 한식 요리를 찾는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자원봉사 하고 있는 곳에 있는 것은 주먹밥뿐일지도 모릅니다. 그 주먹밥을 모두 함께 먹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먹는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면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그 시간에 자신이 얻은 것에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먹밥을 먹으면서 고기나 생선을 먹고 싶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 실격이 됩니다. 그 순간순간에 기쁨과 충실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Sanṭṭussako 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불평하면 만족감이나 기쁨을 느낄 수 없습니다.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다가온 것에 불평하지 않고 밝게 대응하면서 순간순간 만족감이 있어서 즐겁게 생활을 하는 것이 「만족을 안다」가 됩니다.
전혀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성격이라면 자비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제든지 기뻐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생활을 하겠다고 결정하면 행복해집니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의미가 없습니다. 돈을 벌 수가 있으면 돈을 법니다. 그러나 돈을 벌 수가 없어도, 이익을 보지 않아도 괴로워하는 일도 없습니다.
어떤 순간이라도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견해를 바꾸어 보십시오. 인생이 바뀝니다.
(8) 수바로-(subharo) 도움주기 부담스럽지 않고,
이것은 출가자에 대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저것 조건이 너무 많은 인생은 탐욕과 성냄을 가져옵니다.
가능한 한 손이 가지 않도록 홀가분하게 사는 일도 필요합니다.
(9) 압빠낏쪼-(appakicco) 잡무는 적고,
하는 일이 한 짐이라면 침착하게 생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잡무가 많은 사람은 항상 분노가 일어나서 화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냄이 적고 온화하게 살기 위해서는 잡무는 가능한 한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만 합니다.
여러분은 가끔 짬이 나면 일부러 다양한 일에 손을 대겠지요. 일부러 자신의 인생을 바쁘게 합니다. 오라 하지 않아도 가고, 할 일이 없어도 만들어서 하고, 이쪽저쪽 여러 곳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스케줄을 보면 아침부터 밤까지 하는 일이 한가득 있어야 자신이 살아있고 활발하다는 기분이 되겠지만, 사실은 하루종일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잡무를 줄여 한결 온화하게 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0) 살라후까웃띠(sallahukavutti) 검소한 생활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11) 산띤뜨리요-(santindriyo) 침착한 예의 범절,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고,
걸을 때, 앉을 때, 이야기할 때, 식사할 때 등의 매일 하고 있는 일상의 행위를 침착하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할 수가 있으면 마음은 침착해집니다.
눈, 귀, 코 등도 확실하게 제어해야 합니다.
(12) 니빠꼬-(nipako) 현명한 것,
사물을 이해하는, 판단하는 능력이 있으면 홀로 독립할 수 있습니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것도 필요한 성격입니다.
(13) 압빠갑보-(appagabbho) 안팎이 다르지 않은 것
가슴속에 무언가 숨겨두고 다르게 연기하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생활에 겉과 속이 너무도 차이가 있으면 어렵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인격자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 경우는 매우 편합니다.
(14) 꿀레-수 아나누깃도-(kulesu ananugiddho) 재가자에게 애착하지 않는다.
이것도 출가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가 보시자의 가족에게 집착하고 있다면 그 가족이 불행하게 되면 자신의 마음도 불행하게 되고, 풍부하게 되면 자신의 기분도 좋아지고, 혹은 그 가족이 다른 출가자에게 보시를 하면 속이 메스꺼워지고 여러 가지로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재가자에게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가자도 집착은 위험합니다. 자신의 가족에게 너무 집착하면 가족의 행복이 망가져 버립니다.
가족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족의 정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가족이라고 해도 모두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각각이 독립된 생명입니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방식대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가족이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너무도 집착하여 불필요하게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하게 관리하면 자유가 없어져 싸움이 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재가자들도 가족에게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15) 나 짜 쿳당 사마-짜레- 낀찌, 예-나 윈뉴- 빠레- 우빠와데이융.
(Na ca khuddaṁ samācare kiñci, yena viññū pare upavadeyyuṁ.)
현명한 사람의 비판이 되는 사소한 잘못도 범하지 않고,
이때도 현명한 사람이 대상입니다. 현명한 사람들이 「이것은 안 좋은 것이다」 라고 말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현명한 사람에게 비판되지 않게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가짐과 성격의 항목은 이 15가지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마음에 문제없이 살고 싶다면 이 15가지의 성격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명확하게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에는 비밀스러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실천하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제 「모든 생명이 행복하고 평온하기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안락하기를!」 이라는 말로 명상합니다.
모든 생명이 행복하고, 평온하고, 안락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sukhino vā khemino hontu sabbesattā bhavantu sukhitattā.
(수키노- 와- 케-미노- 혼-뚜, 삽베-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것입니다.
3. 실천의 대상이 되는 생명의 분석
먼저 모든 생명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ye keci pāṇabhūtatthi(예- 께-찌 빠-나부-땃티) 존재하는 어떠한 생명도,
「모두 행복하게 지냅시다」 라고 하면 그 「모두」란 무엇을 말합니까?
① tasā(따사-) 유연해서 요동하는 생명이건 (두려움에 떠는 범부 중생들)
② thāvarā(타-와라-) 안정되어 요동하지 않는 생명이건 (두려움에 떨지 않는 아라한들)
③ anavasesā(아나와세-사-) 그 외의 생명도 예외 없이
④ dīghā(디-가-) 신체가 길건(뱀과 같이. 인간의 신체도 상당히 길 것입니다)
⑤ mahantā(마한따-) 거대한 몸이건(코끼리, 고래와 같이)
⑥ majjhimā(맛지마-) 중간치건
⑦ rassakā(랏사까-) 짧다랗건
⑧ anukā(아누까-) 미세하건
⑨ thūlā(툴-라-) 굵은 몸의 생명이건
(⑤의 커다란 몸과는 다릅니다. 코끼리는 살쪄있지 않지요? 두터운 걸 말합니다.)
⑩ Diṭṭhā(딧타-) 본 적이 있건
⑪ adiṭṭhā(아딧타-) 본 적이 없건
⑫ dūre(두-레-) 멀리 사는 것이건
⑬ avidūre(아위두-레-) 근처에 사는 것이건
⑭ bhūtā(부-따-) 이미 태어난 것이건,
생을 완성하고 있는 것. 예를 들면, 올챙이는 아직 완성하고 있지 않지요? 그리고 개구리는 완성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태어났으면 bhūtā(부-따-)이고, 모태에 있으면 sambhavesī(삼바웨-시-) 입니다.
⑮ sambhavesī(삼바웨-시-) 태어나게 될 것이건
우리 인간이 모태에 있을 때는 ⑮입니다. 거기서 신체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리나 손이 움직이고 있는지 체크하고 예행연습도 합니다. 부지런히 운동도 합니다.
그래서 태어난 순간부터 ⑭입니다. 그렇게 생명이 순서를 밟아 성장합니다.
알로 태어나는 생명도 모두 그렇습니다. 알 안에서 계속 성장합니다. 그래서 제 몫을 하게 되면 껍질을 찢어 밖으로 나옵니다.
개구리는 밟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생명의 분석은 끝났습니다.
이런(①~⑮) 모든 생명에 대해서 「sabbesattā bhavantu sukhitattā(삽베-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안락하기를!」 이 프레이즈로 자비의 기분을 만듭니다. 그래서 스스로 선언을 합니다. 행복하기를!
여기서 보이는 요점은 생명인 것은 어느 것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그것도 불교의 특색입니다.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보면 다른 종교는 인간에만 영혼이 있어서, 신이 인간만을 만든 것이라는 인간 특권 주의입니다.
불교는 과학적인 생명론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에게만 특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이기 때문에 지구의 생명으로 여러 가지의 형태를 취하고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세포를 보면 대부분 같습니다.
부처님은 생명을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비교합니다. 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 따라 차별합니다.
불교의 세계는 차별하는 것을 단연코 금지합니다. 「생명」이라는 것으로 보면 좋습니다.
4. 구체적인 명상, 실천 방법
Na paro paraṁ nikubbetha(나 빠로- 빠랑 니꿉베-타)
생명이 다른 생명을 속이지 않기를!
nātimaññetha katthaci naṁ kañci(나-띠만녜-타 깟타찌낭 깐찌)
생명이 다른 생명을 경멸하지 않기를!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생명은 모두 평등하게 봐야 한다는 훈계가 자신에게 생깁니다.
byārosanā paṭīghasaññā(브야-로-사나- 빠띠가산냐-)
분노를 가지지 않기를! 싫어하는 것이 없기를!
다른 생명에 대해서 분노의 마음을 절대로 가지지 않고, 악한 생각으로 싫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nāññamaññassa dukkhamiccheyya(난-냐만냣사 둑카밋체이야)
생명이 다른 생명의 괴로움이 지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를!
이것은 모두가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그 사람이 지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이 좋다고 간혹 생각합니다.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Mātā yathā niyaṁ puttaṁ, āyusā ekaputtamanurakkhe,
(마-따- 야타- 니양 뿟땅- 아-유사 에-까뿟따마누락케-)
evam pi sabbabhūtesū, mānasaṁ bhāvaye aparimāṇaṁ.
(에-왐 삐 삽바부-떼-수-, 마-나삼 바-와예- 아빠리마-낭-)
마치 어머니가 하나뿐인 자기 아이를 결사적으로 지키듯이,
그러한 무량의 자애마음을 모든 생명에 대해서 가지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1명 밖에 없는 어머니는 아이에 대해서 한계를 정하지 않습니다.
「병이 들면 100만원까지만 괜찮다. 110만원이면 지불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애정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어쨌든 아이를 지키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생명에 대해서 한계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네가 좀 더 사랑스러웠으면 자애의 명상을 할 수 있었을텐데...」그런 따위의 조건부는 안 됩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자애를 실천합니다. 필요한 것은 그 마음입니다. 모든 생명에 무량의 자애를 넓힙니다. 무량하다는 것은 조건 없이 하는 것입니다.
조건뿐만 아니라 생명에의 차별도 없어야 합니다. 15가지로 생명을 구별은 하고 있지만, 그것은 생명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물속에서 생활하는 생명이 행복하기를! 땅 위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도 행복하기를! 하늘에 살고 있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구별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자비의 요점은 생명에 한계를 두어 잘라서는 안 됩니다.
선별은 안됩니다. 조건을 붙여도 안 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다면 천국을 보증해준다는 식은 안됩니다. 조건은 금지입니다. 그래서 「무량」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식은 무조건 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구별을 합니다.
; 앉아서 명상을 할 때는 머리로부터 위의 생명이 행복하기를! 아래의 생명이... 주위의 생명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때도 한계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생명 모두에게 원한이 없는, 적의가 없는 마음을 기릅니다.
; 서 있을 때와 걷고 있을 때와 누워 있을 때도 자애의 생각을 따릅니다.
이렇게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자애마음 가지어서 확고하게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확고한 자애 마음 바탕 아래 모든 행위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든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자애의 생각을 따르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범천의 숭고한 삶의 방법이다」 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조건이 있다고 한다면 단 1가지 모친의 마음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다」면 어머니의 마음으로, 무량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접합니다. 그 삶의 방법보다 뛰어난 삶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어느 사람이 항상 어떠한 생명에 대해서도 어머니와 같이 무조건적으로 자애의 마음을 자기고 있다면 얼마나 훌륭할까요?
그래서 부처님은 그것이 궁극적인 높은 삶의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삶의 방법이 범천의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범천이라는 말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기 전부터 있던 종교로부터 빌린 단어입니다. 부처님의 시대에 브라흐마라고 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있었습니다.
그 신이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범천이라고 하는 신이 생명을 보살펴준다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봤을 때 이치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범천이라고 하는 신이 인간을 걱정한다면 무엇 때문에 인도에 카스트 제도라는 신분제도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카스트가 낮은 사람이 시험에 합격해서 대학에 들어오면 폭동을 일으킵니다. 그 녀석과 함께 앉아서 공부할 수 없다, 카스트가 다르기에 내쫓으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신이 한량없이 자비롭고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다고 부처님은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것을 개량합니다. 인간을 범천이라는 신으로 키웁니다. 「당신이 모든 생명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에게 신과 같은 성격을 몸에 걸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되돌려 그래서 부처님이 취한 태도는 신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자애를 당신의 마음속에 만들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무제한적으로, 무량하게.
그렇게 한다면 그야말로 신의 삶의 방법입니다.
신이 창조했다고 하는 것은 잘라버립니다. 신은 한없는 자비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채용합니다.
그렇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과 같이 살아보라고 하셨습니다.
brahmametaṁ vihāraṁ idhamāhu.(브라흐마메-땅 위하-랑 이다마-후)
「여기 이런 것을 브라흐마(범천)의 삶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경전의 결론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삶의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살면서 천국과 같은 삶의 방법을 보입니다. 강력하게 미신이나 신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해서 인간에게 훌륭한 삶의 방법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1시간만이라도 이 지구상의 생명이 자애의 마음으로 있다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 순간에 세계가 천국으로 바뀌겠지요? 이것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고 만들 수 있습니다.
5. 결과
● Diṭṭhiñ ca anupagamma,(딧틴 짜 아누빠감마) 사악한 견해를 갖지 않는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에고, 유신견, 자아의 착각이라는 것을 넘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한없이 자애의 마음으로 있다면 자아가 있을 리도 없을 것입니다. 「나」 라고 생각할 수가 없게 됩니다.
● sīlavā(실-라와-) 완전한 도덕적인 삶을 산다.
도덕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비의 실천 그 자체가 도덕입니다. 생명을 사랑한다면 그것으로 완벽한 도덕입니다.
불교에는 계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5계를 지키고 있다, 나는 6계, 나는 8계 등 항목을 세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비를 실천하면 계율은 완벽하게 지키고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생명에 거짓말을 한다? 그럴 수 없습니다. 거짓말하고 다른 생명을 속이는 그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것, 경멸하는 것입니다.
살생을 하지 않는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등도 자비만 실천하면 계율은 걱정하지 않아도 정말로 훌륭한 도덕적인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 dassanena sampanno,(닷사네-나 삼빤노-) 통찰력이 생겨 진리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확립됩니다.
나쁜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 재가자가 최소한 5계를 지켜서 좋은 습관을 만들고, 이러한 선한 습관이 마음을 제어하기 위한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림과 자애의 힘이 바탕이 되어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고 망상과 무지를 몰아냅니다.
● kāmesu vineyya gedhaṁ,(까-메-수 위네이야 게-당) 여러 가지 욕구에 대한 집착이 없어집니다.
기쁨과 자극을 받아, 먹고 놀고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다른 인간이 됩니다.
예를 들면,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청소나 시중드느라고 괴로움이 많지만, 이것들을 즐겁게 행합니다. 마음이 즐겁기에 보람을 느낍니다. 나의 수고로움으로 그분들이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놀고 있는 사람들은 즐거운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괴롭습니다. 허세나 욕구 등으로 괴롭습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은 육체적으로는 괴롭지만 굉장히 기쁨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애가 끼어들어 오면 밥을 먹어 노는 것, 술을 마시며 노는 것, 오락이나 노는 것들이 없어집니다.
자애의 마음이 되어지면 욕구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 대신에 한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 na hi jātu gabbhaseyyaṁ punaretī ti.(나 히 자-뚜 갑바세이양 뿌나레-띠- 띠) 실로 두 번 다시 윤회하는 태중에는 들지 않습니다.
이 자비의 명상으로 자신의 탐욕을 극복하고 도덕적이며 더 이상 나쁜 견해가 없음을 분명히 압니다. 그래서 anāgāmī(아나-가-미-) 불환과라고 하는 제3번째의 깨달음에 이릅니다.
이상으로 (Karaṇīya)Metta Sutta(까라니-야멧따 숫따)는 끝났습니다.
그런데 뒤따라 소개하지 않으면 안되는 다른 경전이 있습니다.
mettā ceta vimutti(멧따- 쩨-또- 위뭇띠) 자애에 의한 마음의 해탈입니다.
자애를 실천하고 증장시키고, 반복해서 수행하여, 자신을 근거로 하는 마음에 정착시키면 11가지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애를 실천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이 자애에 의해 해탈합니다.
생명은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 미생물로부터 거대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료이기에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라고 뇌의 프로그램을 바꾸어 넣어버립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익을 얻습니다.
① sukhaṁsupati(수캉수빠띠) 손쉽게 숙면합니다. 온화하게 잘 수 있습니다.
② sukhaṁpavibujjhati(수캉빠위붓자띠) 기분 좋게 눈을 뜹니다.
③ na pāpakaṁsupinaṁ passati(나 빠-빠깡수삐낭 빳사띠) 악몽은 꾸지 않습니다.
꿈을 꾸어도 생명을 사랑하는 꿈뿐입니다.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꿈뿐으로 즐거운 꿈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꾸는 꿈은 곰에 습격당하고 있는 것, 벼랑으로부터 떨어지는 것, 돈으로 속박되는 것 등 최악입니다.
④ manussānaṁ piyo hoti(마눗사-낭 삐요- 호-띠) 인간에게 사랑받습니다.
자신을 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⑤ amanussānaṁ piyo hoti(아마눗사-낭 삐요- 호-띠) 인간이 아닌 생명들에게 사랑받습니다.
누구로부터도 자신을 동료라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산책하러 가면 벌레, 도마뱀 등이 신체에 붙어옵니다. 마음대로 방에도 들어옵니다. 나가지 않습니다.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매우 즐겁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게 됩니다.
인간보다는 차원이 낮아 피해를 끼치며 괴로움을 주는 존재이지만, 그러한 생명마저도 자애로운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⑥ devatā rakkhanti(데-와따- 락칸띠) 신들이 지켜줍니다.
그 사람에게는 방해를 하지 않고 지켜줍니다.
⑦ nāssa aggi vā visaṁ vāsatthaṁ vā kamati(낫-사 악기 와- 위상 와-삿탕 와- 까마띠) 불, 독, 칼날의 공격은 받지 않습니다.
인간 사이에서 싸움, 분쟁이 있어도 자애의 사람은 지켜질 수 있습니다.
⑧ tuvaṭaṁ cittaṁ samādhiyati(뚜와땅 찟땅 사마-디야띠) 아주 손쉽게 선정 상태를 이릅니다.
명상을 몇 년하며 노력해도 좀처럼 선정에 드는데 성공하지 않으면 초조할 것입니다. 자비를 실천하면 아주 간단하게 마음은 초월해 버립니다.
⑨ mukhavaṇṇo paṣīdati(무카완노- 빠시-다띠) 안색이 아름다워집니다.
⑩ asammūḷho kāḷaṇkaroti(아삼물-호 까-랑까로-띠) 죽을 때에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이 없습니다.
갑자기 위독해져서 의식 없이 죽는 일은 없습니다. 침착하고 의식이 확실히 있는 상태에서 죽습니다. 흐트러질 것은 없습니다.
⑪ uttarimappaṭivijjhanto braḥmalokaṁ pago hoti(웃따리맙빠띠윗잔또- 브라흐마로-깡 빠고- 호-띠) 해탈에 이를 수가 없어도 범천에 태어납니다.
자비의 명상을 하면 불환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해탈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경우는 범천으로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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