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5~2026 일상수행법문

인생의 장애물(20260502)

담마마-마까 2026. 5. 2. 20:16

https://youtu.be/rJIG8oAtJJ4?si=wT5h4mgy979H87Rs

 

* 인생의 장애물(20260502)

 

오늘은 「인생의 장애물」이란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이 간단한 구절을 원래 부처님이 설한 목적은 "이 여섯 가지 안하면 돈 많이 번다"하는 그런 경입니다. 부와 재물이 쌓이게 하기 위해서, 지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여섯 가지는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나와 있는 경입니다. 이게 수행하고 밀접하게 관계있기 때문에, 수행하고 관계있는 것으로 풀어서 쓴 거니까 그렇게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간단합니다.

 

앞에 보면 '게으름과 방일함'이 비슷한 묶음이죠. 그래서 스님이 일부러 거기다다 컴마(,)를 해놨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돈 많이 벌겠지. 그다음에 '무기력'하고 '감각기관 제어하지 못하는 거'. 놀기 좋아하고 농땡이 잘 치고 할 것 같으면 당연히 그거는 재물이 있는 것도 다 빠져나가게 되는 상황이 돼버립니다. 그다음에 뒤에 두 가지는 '졸림'하고 지루해야 하는 것'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을 피해서 할 것 같으면 적어도 부와 재물이 지속할 수가 있다하는 그런 뜻으로 부처님이 설한 것인데, 이제 5월달 됐죠?

 

수행할 때 언제 가장 많이 졸려요? 5월달입니다. 5월, 6월, 인도나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는 지금 굉장히 덥습니다. 가장 더울 때죠. 그때 보통 수행하는 분들은 방안에서 수행 못해. 힘들어가지고 너무 더우니까. 우리 같이 뭐 에어컨이 잘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 나무 아래에서 수행 많이 합니다. 나무 아래는 가면 그래도 밖이니까 바람이 불기 때문에 조금 덜 덥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나무 아래에 가 있으면은 조금 시원하긴 한데 잘 조분다는 거라. 잘 잡니다. 그래서 이때 보면 대부분 스님들은 공양을 12시 전에 끝내고 나면 보통 취침을 합니다. 한참 더울 때는. 그래서 보통 한 한 시간 정도 이렇게 자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이제 습관이 들면 그렇게 안 더운데도 밥 먹고 나면 무조건 자. 지금은 보면 동남아 스님들이 밥 먹고 나면 다 고요합니다. 수행한다고 고요한 게 아니라 잔다고. 그런 습관들이 이렇게 들어버리게 됩니다.

 

실제로는 수행은 공양을 하고 나면 졸음이 오고 하품이 일어나는 거는 틀림없는 사실인데, 그럴 때는 좌선을 먼저 하라는 게 아니고 경행을 먼저 하라고 그러죠. 그래서 경행을 해서 지금이 잘 시간인지 아닌지를 구분을 해야 됩니다. 어차피 밤 되면 잘 거 아니라. 그런데 등을 대고 누워서 잔다는 거는, 잠자는 시간이 아닌데 잠을 자는 거는, 부처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오침하는 거는 피해야 되는 건데, 자꾸 이게 하다 보면은 습관이 돼버립니다. 나쁜 습관 중의 하나가 들게 돼버리는데.

어쨌든 여러분들도 수행할 때 이 포지션을 언제 어느 때 취해야 맞는지 하는 걸 잘 판별을 해야 됩니다. 많이 몸이 피곤하고 할 때, 또 공양으로 인해서 배부름이 오고 할 때, 이럴 때는 당연히 경행을 먼저 해야 됩니다. 경행을 1시간 정도 하고 나면은 배도 꺼질 뿐 아니라 잠도 몰아내지고, 그러면 좌선을 해도 그렇게 망상에 시달리지 않고 수행을 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섯 가지는 꼭 재물을 지속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수행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기 위한 경계하고 피해야 될 수단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수행하다 보면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문제에 부딪힌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앞에 2개 해놨죠. '게으름과 방일함', '알랏상(Alassaṁ)' 하고 '빠마도(Pamādo)'라고 빨리어로 돼 있습니다.
차이가 뭘까? 방일한 것도 게으름을 피우는 거고, 게으름도 게으름피우는 겁니다. 차이가 뭐냐면 알랏상이라고 하는 거는 뭘 할려고 안 하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오늘 지금 내가 뭔가 할 일이 있는데, 그거 안 하는 거라. 그리고 자꾸 뒤로 미루는 거라. 그렇다고 해서 그 해야 될 일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언젠가는 해야 되는데 그걸 자꾸 안 하고 미루게 되는 것들이라. 여러분들 수행해야 되는데 수행 안 하고 자꾸 미루죠? ‘내일 하지 뭐’

게으름은 나쁜 마음이 일어나는 성질은 아닌데, 그렇다고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해야 할 일들을 안 할 것 같으면은 그건 어찌 보면 죽은 시간과 같게 됩니다.

 

경전에는 이 알랏상을 할 때, 알랏상이 내가 ‘아, 게을러질려고 한다’ 이럴 것 같으면 2가지를 먼저 하라 하고 주석서에는 보통 얘기합니다.

일의 순번을 정하라. 어떤 걸 먼저 해야 되고 어떤 걸 뒤에 해야 되는 걸 먼저 정하라는 거라.

그리고 일의 순번을 정하고 나면,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되겠죠. 열심히 노력하는데 어떻게 노력하느냐면, 시작하는 것과 끝맺음이 완전히 되도록 해라. 뭔가 하나 시작했으면 그걸 일단 끝내라는 거라. 하다가 또 다른 걸 하고 중단하고 이렇게 하지 말고 무조건 끝내라는 거라.

그 2가지를 주석서에서는 보통 제시를 합니다.

 

수행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게으름이 일어났으면?

대상을 알아차릴 때 '시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끝나는 것까지' 끝까지 볼려고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숨을 들이쉬었으면 들이쉬는 시작부터 해가지고 완전히 들이쉬는 게 끝나는 데까지 딱 마음이 그대로 따라가라는 거라.

끝나는 게 끝났다고 분명히 알고 나면, 다시 내쉴 때 내쉬는 거 시작부터 해서 내쉬는 것이 끝나는 것까지 따라가라는 거라. 이렇게만 적어도 한 10번만 계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면은 게으름은 물러나가게 됩니다. 그게 이제 쉽게 말하면 알랏상(Alassaṁ)이라고 하는 건데,

 

뒤에 빠마도(Pamādo), 빠마다(pamāda), 빠맛따(pamatta)라고 하는 거는 이 알랏상하고는 좀 틀립니다. 게으름 부리는 건 틀림없는데, 예를 들어봅시다.

오늘 계를 지켜야 되는 날이다. 그럼 당연히 계를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안 일어나는 거라. 그리고 오늘 탁발 공양 올리고 보시 올리는 날이다. 근데도 뭐 억지로는 하겠지만은 보시 올리고자 하는 마음이 완전하게 일어나서 그것으로 인해서 기쁨이나 평온함이나 행복한 것들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게 안 일어나고 그냥 일상적으로 하게 되는 거라.

쉽게 말하면 예를 들어서 누가 오늘 ‘술먹자’ 이럴 것 같으면 수행 그만두고 그냥 술 먹으러 가버린다는 겁니다. 그게 이제 빠마다라고 하는 것인데, 알랏상하고는 차이가 납니다. 쉽게 말하면 나쁜 행위를 즐길 가능성이 훨씬 커지고, 실제 그것들이 행동으로 일어나지는 것들입니다.

 

앞에 게으름이라고 하는 알랏상은 그냥 마음의 작용과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싫어’ 안 하면 나중에 뭔 일이 생길지라도 지금 현재는 그것으로 인해서 뭐 나쁜 결과들을 얻는 것들은 아닌데, 빠마도라고 하는 것은 그거하고는 틀립니다. 당장 나에게 나쁜 결과들이 나타나는 형태로서 일어나는 것들을 얘기할 때 빠마도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알랏상이라는 용어보다는 빠마도란 용어들을 많이 썼습니다.

왜 그럴까? 수행 안 하는 것도 빠마도이기 때문에.

 

수행 안 하면 어떻게 돼? 마음에 선한 마음이 많이 일어나겠어요요? 악한 마음이 많이 일어나겠어요요? 자명하잖아. 그래서 "수행 안 하고 사띠를 놓치는 것도 전부 빠마도에 해당된다" 하고 주석서에서는 얘기를 합니다. 그마만큼 수행한다는 거는 업의 결과를 받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겁니다.

수행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만 수행이 아니죠. 예비 수행도 다 수행에 해당이 됩니다. 쉽게 말하면 자애의 마음을 항상 지닐려고 한다. 그럼 자애의 마음을 계속적으로 할 것 같으면은 적어도 그때는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끔 됩니다. 그게 수행이라는 거라.

내가 걸어가고 있다. 그럼 걸음걸음을 갖다가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걸어가는 거라. 그럼 적어도 걸어가면서 뭔가 보이는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현혹되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게 인제 빠마도라는 그런 뜻입니다.

이게 앞에, 쉽게 말하면 게으름의 항목을 2가지를 얘기를 해놔놓은 겁니다.

 

주석서에서는 이 두 가지를 얘기할 때 보통, 스님은 여기 글에서는 차에 비유를 해놔놨습니다. 차에 브레이크가 있고 제동장치가 있고 그다음에 가속페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차가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데 가속페달을 안 밟으면 차가 순조롭게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이 앞에 두 항목은 가속 페달을 안 밟는 상태라. 그냥 쭈욱 가는 거라.

수행에서 어떤 때 나타날까? 대상이 굉장히 길어져. 숨을 들이쉬는데도 쭈우욱 늘어나게 되고, 숨을 내쉴 때도 쭈우우욱 늘어나는 거라. 실제로는 호흡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어. 근데 지 마음이 쭈우우욱 그걸 잡고 늘어뜨리는 겁니다.

 

또 하나는 좌선만 할려고 그러지 경행을 안 할려고 그럽니다. 쉽게 말하면 몸으로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이 게으름의 항목과 방일함의 항목에 포함이 돼 있는 상태인데도 그걸 놓쳐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안 움직이려고 그러는 거라. 좌선만 할려고 하고.

호흡은 계속적으로 쭈우욱 늘어나면서 호흡이 없는 것처럼 자꾸 느껴지고 좋거든. 편안하거든. 그러면 경행 안해. 그냥 그 상태로 그냥,

무상한 성품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들로 인해가지고 ‘아, 불만족스럽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라고 하는 것이 툭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냥 그대로 그냥 쭈우욱 갑니다.

몸으로는 아까 움직이기 싫어한다고 그랬죠?

마음은 어떻게 돼? 실제 대상을 놓친다는 거라. 실제 호흡은 요렇게 하고 있는데, 지 마음은 다른 데 가있는 거라. 사띠를, 대상을 놓쳐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뭐가 있어요? 대상 자체가 잘못된 대상이라.

대상은 이미 요렇게 움직이고 있는데, 지 마음은 다른 데 가있는 거라. 대상이 잘못된 거라. 성냄이 많이 일어났다. 성냄이 일어난 것을 알고 성냄을 관찰을 해야 됩니다. 그럼 ‘성냄’하고 알아차리면 금방 성냄이 툭 사라져 버리는데, 안 사라지고 계속적으로 성냄이 있거든. 그럼 본인은 그게 대상인 줄 알고 그걸 계속 관찰하고 있어요. 실제로는 마음은 어디 가있어요? 성냄에 가 있는 게 아니고, ‘성냄을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거라. 그거 버리고 싶지도 않거든.

 

그런데 그 마음을 갖다 관찰해야 되는데, ‘어? 내가 성냄에 집착하고 있네’,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났네’ 하고 그것들이 대상이 되는 거라. 대상이 잘못된 거라. 성냄이라는 관념에 매여가지고 그냥 거기에 가있는 거라. 그래서 이렇게 보면 됩니다.

"내가 지금 게으름에 빠졌나, 안 빠졌나" 하는 거는 두 가지를 보면 구분이 됩니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지, 마음으로 대상을 분명하게 파악을 하고 사띠를 하고 있는지, 마음으로 하는 사띠 대상이 잘못된 대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걸 가지고 이제 판단을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니까 어떻게 돼요? 위리야(viriya)라고 하는 노력하는 마음이 안 일어나는 거라. 이걸 노력하는 마음이 탁 일어날 것 같으면 그것이 싹 사라지는데, 그게 안 일어나는 거라. 그렇게 될 경우에는 수행에 계속적으로 이 게으름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아까 그럴 때 어떻게 하라고?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볼려고 하라. 하나가 일어났으면 하나가 끝나는 것까지 딱 따라가라는 거라. 마음을 강하게 내고 그것들을 갖다가 쭉 볼려고 할 것 같으면은 그게 보입니다.

 

대처 방법 다시 한번 얘기하겠습니다.

수행은 편안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경행을 해야 되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좌선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수행시간은 자기가 정했으면 반드시 그 시간을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편하게 자꾸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대상이 보이면 그 대상을 싫어하면 그걸 피하려고 그럽니다. 대상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려운 대상이라도 그것은 대상일 뿐이라고 보고 그것들을 관찰해야 되는 것이지. 그거 피하고 다른 것들을 한다 해가지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특히 힘들고 고통스럽고 악한 마음들이 일어나는 거 자꾸 피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좋은 것들이 일어났을 때 집착하지 마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든 것들이 일어나면 그것도 대상으로 그냥 보고 밀어내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것들을 관찰 대상으로 하라는 거라.

이걸 먼저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수행을 해야만이 게으름에 빠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면 될까?

먼저 게으름이 일어났으면 정직하게 인정해야 됩니다.

‘어, 게으름이 일어났네’ 게으름이 일어난 건데도 게으름이라고 생각 안 하고, 그냥 나는 ‘편안하다’고 계속 그걸 하고 있을 것 같으면은 그건 수행에 진척이 없는 거라.

‘아, 내가 또 게으르네’ 그러고 나서, 그 게으르다는 사실은 그냥 놔둬, 그냥.

그러고 나서는 대상을 이제 찾으려고 해야 됩니다.

 

보통 게으름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마음들이 생길까?

게으름이 일어났으면 게으름이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걸 좋아하고 있다는 거라. 대상이 안 바뀌고 계속 하면서 호흡은 계속적으로 길어지는 느낌이 있다 그러면, ‘어, 내가 또 게으름이 일어났구나’ 하고 마음먹고, 그때 마음을 한번 딱 보라는 거라.

좋아하는 마음이 탁 보입니다. 그걸 붙잡으려고 하는 마음이 보인다는 거라. ‘또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났네’

‘수행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떠나야 되는데 또 좋아하고 있네’ 하고 딱 마음을 먹어보라는 거라.

 

그러고 나서 그 좋아하는 마음이 탁 보이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그 좋아하는 마음도 그냥 놔둬버려야 됩니다.

놔주면은 그때 호흡은 그 전에 호흡하고는 틀리게 보여집니다.

실제로는 호흡은 게으름이 일어났을 때나 게으름이 안 일어났을 때나 호흡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제는 보이는 호흡의 길이가 틀립니다. 탁 호흡을 보면 호흡이 정상적으로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게 보여. 그럼 그냥 그대로 호흡을 따라가면 되는 거라.

 

또 하나의 방법은 뭐냐면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걸 탁 알아차리고 나면은 그때의 느낌을 보라고. 가슴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좋아하는 마음을 관찰했을 때와 관찰하지 않고 게으름에 계속 빠져 있을 때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틀립니다. ‘아, 이게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거라.

쉽게 말하면 호흡의 길이도 틀려질 뿐 아니라 느낌도 틀려진다는 것들을 분명히 알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게으름에 빠지는 것이 조금 덜해지고, 크게 영향을 안 받게 됩니다. 경전에서는, 경전 주석서입니다.

주석서에서는 게으름의 항목에 들어가는 걸 갖다가 보통 뭐라고 비유했냐면 "쇠에 녹슬어 있는 녹과 같다" 하고 얘기합니다. 녹을 제거해야만이 그 쇠를 적당한 데 쓸 수가 있습니다. 게으름이 일어났으면 반드시 게으름은 제거를 해야 됩니다. 게으름이 있는 상태에서 그걸 쓰면은 그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다음에 뒤에,

그게 만약에 예를 들어서 게으른 것들이 잘 안된다 할 것 같으면, 여기도 적어놨지만 보시 자꾸 하고, 자애의 마음을 지닐려고 하고, 계율 지킬려고 하고, 그리고 짬짬이 수행 자꾸 할려고 하는 마음, 이 4가지만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그래도 게으름으로부터는 조금은 탈피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왜 그런지는 스님이 많이 설명을 해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잘 이해를 할 거라고 봅니다. 선행을 하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선한 행위들을. 악한 행위를 하려는 마음들이 일어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거 적어놨습니다. "빠마도의 대중적인 버전" 3페이지에 보면 적어놨습니다.

이건 경전에 있는 내용들을 옮긴 겁니다. 7단계로서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는 7가지 길'이라는 걸 적어놓은 건데, '인간과 가족관계'에 대한 것', 그다음에 '사회와의 관계', 그다음에 '인격 향상' 이렇게 3부류로 스님이 요약을 해놓은 겁니다. 한번 여러분들이 읽어보면 될 겁니다.

쉽게 말하면 '가족관계'라고 하는 거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부모님한테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부모님은 뭐와 같다고 그랬어요? 범천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범천을 모시고 사는데, 그걸 잘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래서 부모님한테 최대한 자식으로써 해야 될 일들을 최대한 잘하고,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스승에 대한 것도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자기가 다 하는 것, 그런 것들이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번째 단계이고.

 

두 번째가 '사회와의 관계' 이거는 다른 말로 할 것 같으면 보시하라는 거라. 베풀어라는 거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귀중한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아낌없이 나눌려고 하고, 법이 있으면 법도 나눠야 되는 거고, 그래서 자꾸 나눌려고 하는 마음들을 자꾸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인격 항상'은 다른 말로 할 것 같으면 수행하라는 얘기죠.

그런데 경전에는 '부드러운 말을 하라. 화내지 않도록 하라' 하는 것 2가지를 얘기합니다. 부드러운 말, 화내지 않는 거, 그거 알아차리지 못하면은 할 수가 없습니다. 인격 항상은 수행으로 인해서 인격 항상이 되도록 해서, 수행은 사띠가 있을 것 같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허투루 말을 안 하게 되는 거고, 화가 일어나고 욕심이 일어나면 그것도 분명히 알아차려서 그것들을 제거하게 됩니다.

그게 이제 경전에 써져있는 압빠마도라고 하는 불방일의 일곱 가지 대중적인 버전이다 하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네 번째 '빈둥거리고 노는 것(anṭṭhānaṁ)',

그다음에 '감각기관 제어하지 못하는 것(Asaṁyamo)',

그게 이제 4페이지하고 5페이지에 적어놨습니다.

감각기관은 언제 많이 영향을 받습니까? 다른 말로 할 것 같으면 계율을 안 지키려고 할 것 같으면 감각기관을 놓쳐버립니다. 계를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면은 감각기관이 있더라도 크게 영향을 안 받아. 그런데 계를 지킬려는 마음이 적어지니까 그것들이 자꾸 나에게 크게 다가와지게 되는 거라. 그리고 빈둥빈둥거리고 하는 것들 그런 것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이제 보통 4가지 노력을 하면 이것들을 없앨 수 있다 하고 얘기합니다.

계를 지키는 건 당연한 거고, 그건 기본 바탕인 거고, 그게 인제 노력의 4가지 방법으로 얘기를 해놨습니다. 그게 5페이지 중간에 보면 "분발에는 4가지 종류가 있다." 하는 '경계, 제거, 수행, 보호'라고 적어놨습니다.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수행할 때 강하게, 갑자기 강하게 힘을 줘서 노력하려는 마음이 강해지면은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요? 상기가 팍 일어납니다. 그러면 갑자기 강하게 노력하는 마음을 탁 내는 것도 수행에서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노력하는 힘이 일정하게 쭈욱 유지가 돼야 되는 것이지, 강하게 착 낸다 해가지고 그것이 수행 잘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노력의 네 가지는, 기본 바탕은 기본적으로 노력하는 힘들이 쭈욱 유지가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게 이제 기본 밑바탕이고,

 

첫 번째가 '경계'라고 얘기했습니다. 악한 마음이 일어난 것들을 그대로 알아차려서 없애버리는 것. 그걸 ‘경계한다’하고 얘기합니다.

악한 마음이 일어나면 어떻게 알아차리죠? 성냄이 있다, ‘성냄이 일어났네’ 하고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걸 가장 먼저 해야 됩니다.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 탐진치가 일어났다, 그럼 탐진치를 알아차려야 됩니다. 탐·진·치가 일어났으면, 성냄이 일어나면 ‘성냄이 일어났네’ 하고 성냄을 알아차리고, 성냄이 탁 사라질 때까지 그것들을 대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걸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것 같으면 그게 오래 가버립니다. 그러면 그게 대상이 되지 않게(않으면) 되지만, 또 성냄이 변하는 것들이 보인다 할 것 같으면 끝까지 그 성냄을 관찰을 해야 됩니다. 노력하는 힘이 있으면 그 성냄은 언젠가는, 언젠가는도 아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소로록 사라지는 게 보입니다. 그걸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현재 일어나는 탐·진·치라고 하는 것은 그게 대상이 되도록 해야 되고,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라는 뜻입니다. 그게 노력의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제거'하라. 뭘 제거해? 성냄은 아까 이미 현재 일어난 거기 때문에 그거는 경계 부분에 해당이 되는 거고, 제거하라는 거는 아직 안 일어난 겁니다. 아직 안 일어난 것,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성향들, 그리고 악한 것들을 일어나지 못하게끔 하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안 일어나질까? 하나의 대상만 알아차리면 됩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호흡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어봐봐. 성냄이 일어날 사이가 없습니다. 탐욕이 일어날 근거가 없어집니다. 하나의 대상을 쭈우욱 하는 습관들을 자꾸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수행하다 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 일어났는데도 자꾸 마음이 거기 갑니다. ‘생각이 일어났네?’ ‘어, 아픔이 일어났네’ 사실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건데도 자꾸 마음이 그런 쪽으로 휩쓸리는 거라. 하나의 대상에 있지 못하고.

그럼 하나의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도 산만해가지고 그거 알아차릴 때도 자꾸 마음이 딴 데로 가. 그런 습관들은 수행을 오래 지속하기는 힘이 듭니다.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면은 그냥 냅둬 버려.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지가 스스로 왔다가 스스로 가게끔 되는 거라.

예를 들어서 하나의 대상, 호흡이면 호흡을 지속적으로 관찰을 하라는 거라. 경행을 할 것 같으면 발바닥에다 그냥 온 마음을 두라는 거라. 하나의 대상에 자꾸 사띠를 지속하는 훈련을 할 것 같으면 악한 것들이 일어날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걸 얘기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수행'이라고 하는 것. 당연히 수행을 해야 되겠지.

어떻게 수행을 해야 돼? 이거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것들을 자꾸 일으키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자애를 지니는 것도 수행이고, 법문들을 때도 수행이 되고, 그리고 실제적으로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도 수행입니다. 이런 것들을 자꾸 하라는 거라. 법문 들으면 환희심이 일어날 거 아니라. 그럼 선한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거고, 자애를 지닐 것 같으면 행복해질 거 아니라. 그럼 선한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거라.

수행하면서 대상을 분명하게 보니까 아, 무상한 성품들을 보니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니까 너무 좋거든. 그리고 그런 것, 악한 것들로부터 벗어났다는 것들도 알게 되고, 그러니까 선한 마음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거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것들은 자꾸 일으켜야 만이, 꼭 수행해서 깨달음에 이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좋은 과보들을 받을 수가 있다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은 수행이라는 항목으로 정리를 해놓은 겁니다.

경을 보는 것, 법문을 듣는 것, 그다음에 자애를 지니는 것, 수행의 대상을 놓치지 않고 자꾸 알아차리는 것, 이런 것들은 선한 것을 자꾸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된다하는 것들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보호', 보호는 뭐냐면 지금 현재 일어나는 선한 마음들을 얘기합니다. 사띠가 지속하고 있으면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거죠.

어떻게 해서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런 사띠가 가능할까? 그게 뭐냐면 '오력'이라고 하는 겁니다. '신심과 사띠와 노력과 믿음과 지혜'라고 하는 것들이 균형이 맞을 때, 오력은 균형을 유지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그게 더 커지게 됩니다.

수행은 그런 역할들을 해줍니다. 그래서 수행이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나에게는 노력하는 힘들도 커지고, 사띠하는 힘들도 커지고, 삼보에 대한 믿음도 커지고, 지혜도 점점 더 단계를 올라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게 보호라는 명목으로 해놓은 겁니다. 다섯 가지 힘, 다섯 가지 뿌리라는 것, 오근·오력이라고 하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자꾸 개발하려는 마음들을 가지도록 그렇게 하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리하면 그냥 빈둥빈둥 놀려고 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감각기관을 제어하는 것들도 점점 제거하는 것들이 힘을 얻을 수 있게끔 됩니다.

 

그다음 뒤에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닛다(Niddā)', '딴디(Tandī)'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닛다는 그냥 졸린다는 거고, 딴디는 그냥 피곤하고 나른하다는 그런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졸음의 비슷한 형태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수행에서 졸음이 오면은 대상을 그냥 놓쳐버립니다 쉽게 말하면.

그러면 그 대상을 관찰하는 마음도 자꾸 적어지고 지루해지게 됩니다 대상을. 그러니까 1시간 좌선해야 되는데 지루하고 힘드니깐 1시간 못 채우고 그냥 경행하러 가는 거라. 그렇다고 경행을 또 열심히 잘하는 것도 아니라.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되면 안 된다는 거라. 그런 거는 다 지루한 것과 졸음이라고 하는 영역에 속한다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려고 해야 됩니다.

 

가장 좋은 게 뭘까? 어떻게 좀 안 졸고 할 수 있을까? 지금 같이 이렇게 졸음이 많은 시기에? 의도를 보려고 하면 돼. 의도를.

수행에서 시작과 끝을 보면은, 그다음에 보이는 게 뭐라? 멈추는 게 보입니다. 멈추는 게 보이면 그다음에는 마음이 뭔가를 하려는 의도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의도가 보이는 거라.

의도를 보면 졸음은 별 영향을 안 미칩니다. 오히려 그 의도가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이 보이기 때문에, 실제 행위는 없고 계속 의도만 보이는 것들만 연결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밤에 잠 안 자. 계속 그거 본다고.

그럼 그다음날 되면 실제로는 몸은 필요한 양의 휴식 시간이 있어야 되는데 그걸 안 했으니까 어떻게 돼? 그다음 날은 죽겠는 거라. 그래서 잠을 자야 될 때는 일정한 시간은 잠을 자긴 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잠에 빠지지는 않도록 해야 되는 거고, 졸음 부분은 의도를 보려는 노력들을 자꾸 해보십시오. 자꾸 졸음에 빠진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할까? 자꾸 졸리고 또 피곤하고 뭐 이런 성향들이 있으면은 '결정심'을 자꾸 내도록 해야 됩니다. ‘아, 내가 1시간 수행한다. 1시간 동안은 반드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관찰하겠다.’ 하는 마음을 내고, ‘1시간 동안 좌선하고 있을 때는 다리가 아무리 아파도 다리를 펴지 않겠다.’ ‘경행 1시간 할 때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거 신경을 안 쓰고, 경행 1시간 하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라는 거라.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하게끔 됩니다.

노력하는 힘이 있어야만이 대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끝나는 게 보여야만이 멈추는 게 보이고, 멈추는 게 보여야만이 의도가 보인다는 거라. 그 의도를 보기 위해서는 무조건 정해진 시간을 채워주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정해진 시간에 결정심과 더불어 노력하려는 마음들을 자꾸 일으켜야 됩니다. 아까 4가지 노력하는 거 얘기했죠. 자꾸 일으키라는 거라.

보호할 건 보호하고, 수행할 건 수행하고, 경계해야 될 건 경계하고 하면서, 그것들이 자꾸 선한 마음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노력하는 마음들이 계속적으로 커지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것이 대상은 어떻게 보라고? 무상, 고, 무아로 봐야 됩니다.

무상, 고, 무아로 보이지 않으면 일단 스톱!

그리고 다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나서,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든지 대상을 알아차리든지 하라는 거라.

그러면 그 대상이 변하는 게 보여.

대상이 지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대상에 대해서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 될수록 떨어져 나가는 번뇌가 생겨나는 거라. 쉽게 말하면 그 집착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나에게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는 거라.

번뇌는 떨어뜨려야 되는 것이지, 번뇌를 지닌 채 대상을 계속적으로 보면은 그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럴려면 대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무상, 고, 무아로 볼려고 해야 됩니다.

변하는 속성, 그 변화를 자꾸 보려고 해야 됩니다. 그걸 빨리어로 위망사(vīmaṁsā)라고 그럽니다. 변화를 봐라. 무상한 것, 불만족스러운 것, 내가 할 수 있는 나라고 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나, 나의 견해라고 하는 것들이 없는 것, 이런 것들을 자꾸 이해하고, 이것들을 떨어트릴려고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졸음이 오면 가장 좋은 게 좀 어느 정도 수행이 된 사람들은 졸음이 탁 온다. 졸음은 육체적으로 졸음이 오든 뭘 하든 '졸음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적인 현상'입니다. 정신적인 현상이지 육체하고는 관계없습니다. 정신적으로 내가 졸린다고 알게 됩니다.

그 ‘졸린다’고 알게 될 때 뭘 먼저 알게 될까? 졸린다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그러면 그 졸음이 올 것 같으면 졸음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느낌들이 탁 있습니다. 그 느낌들을 탁 관찰하게 되는 거라. 그럼 그 느낌이 변하고 있거든. 그럼 그 변하는 것들을 또 싹 따라가면서 알게 되는 거라.

그런데 그것도 가만히 있지 않고, 사라지고 나서 또 다른 느낌들이 일어나게 되고, 또 다른 강도로 일어나게 되고, 다른 현상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냥 그대로 그냥 계속 따라가면 됩니다. 쉽게 말하면 졸음의 길들을 쭈욱 따라가게 되는 거라.

그게 수행을 잘하는 사람들이 가능한 방법입니다.

 

그건 쉽게 말하면 마음의 영역이라고 하는 수·상·행·식이라고 하는 것들을 낱낱이 분해해가지고 보는 힘이 생겼다 하는 뜻입니다. 느낌이 있으면 느낌을 알아차리고, 졸음이 있으면 졸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고, 그리고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할 것 같으면 무거워지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게 보여야 되는 거고. 쉴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쉴려는 의도가 보이는 거고, 그렇게 구분이 되지는 거라.

그러면 졸음은 싹 달아나집니다.

 

가장 좋은 게 그런 것들인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앞에 것들은 자꾸 하려고 해야 됩니다. 졸음은 가장 좋은 건 의도를 보면 됩니다. 의도가 보이도록 자꾸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려고 하라는 거라. 쉽게 말하면 그 변화들을 보려고 하라는 거라.

변화가 보이면, 이번에는 졸음이 왔을 때 한 3~4초간 계속적으로 졸음이 왔었는데, 그다음에는 졸음이 오면 한 2~3초 만에 딱 끝난다. 그게 보이는 거라. 길이도 보이게 되고, 강도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다른 졸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변화가 보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거는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졸음이 탁 사라졌다, 그러면 아주 시원하겠지. 그러면 어떻게 해요?

시원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냥 거기에 또 묶여져 버리면 졸음이 또 와서 아까 오던 졸음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그냥 한꺼번에 푹 떨어져버립니다. 왜 그럴까?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졸음을 이겼다고 졸음에 대해서 시원하다는 마음이, 좋아하는 마음에 탁 묶여버리면 사실은 졸음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닌데, 어떤 조건이든 다른 조건으로 인해서 졸음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돼 있는데, 그냥 좋아하는 마음에 탁 묶여버리면 졸음이 탁 그냥 와버리는 거라. 거기에 묶이면 또 안 되는 거라.

졸음이 오면 졸음이 오는 것도 분명하게 보고,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졸음이 싹 사라지고 났다 시원하다 할 것 같으면, 그다음 해야 되는 거는 대상을 찾아야 돼. 대상. 호흡이면 호흡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이지, 거기에 좋아하는 마음 ‘아, 좋다’ 왜 쓸데없는 것들을 하고 있느냐는 거라. 대상에 묶이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대상은 언제든지 변하고 있고, 대상은 시도 때도 없이 지금 즉시 뭔가가 나타납니다. 그럼 그 나타난 것들을 볼려고 해야 돼.

 

마음이 가볍게 되어 있지 않으면 대상을 못본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게 이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졸리고 나른한 것들을 갖다가 몰아내는 그런 길이다 하는 걸 갖다가 명심하도록 해야 됩니다.

 

졸음은, 졸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방법?

대상에 사띠(sati)가 있느냐? 그리고 그 사띠하는 것들이 지속하고 있느냐? 쉽게 말해서 삼빠자나(sampajāna)가 있느냐? 그 사띠하고 삼빠자나가 있으면 졸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없으면 내가 게으름 피우든지 졸음에 휩싸여 있든지 아니면 그냥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든지 그런 종류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이 6가지를 세 묶음으로 이렇게 나눠서 설명을 했는데,

가장 좋은 것은, 일상생활에서 일하는 버릇 좀 하지마. 일 만들려고 하는 것, 필요한 것만 해. 필요한 것만. 쓸데없는 걸 자꾸 간섭하고 자기가 그걸 할려고 해. 그냥 그거는 그 사람 몫, 다른 것으로 놔둬 버리고 지가 해야 될 일들만 하라는 거라. 단순하게 자꾸 하라는 거라.

그리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많이 하는 사람치고 사띠 돼있는 사람 없어. 줄여야 돼. 말하는 것들도. 그게 사띠의 도구로 생각을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들을 해야 되는 것이지, 말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 입을 놀리면 안 된다는 뜻이라.

그다음에 잠자는 버릇, 잠 시간이 아니면 눕지마. 눕지 말고 정 허리가 아프고 한 사람들은 기대라는 거라. 의자라든지 뭐 이런 데 기대가지고 허리를 조금 쉬는 게 있어도, 자꾸 눕는 버릇을 할 것 같으면 잠자는 습관들도...

그래서 이 3가지는 기본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은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장애들을 갖다가 모른 척하고 놔두기에는 우리 수행에 장애로서 너무 크게 다가와진다는 거라. 그것들은 반드시 제거하는 습관들을 자꾸 가지도록 해서, 사띠가 이어지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