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LCBc4E2ra6Q?si=33Y4iSa6f6wQDwOP
* 수행하기 싫은 마음에 대한 대처법(20260321)
오늘 프린트물, 여러분 우선 순위가 뭐라?
(수행자 대답...) 돈 버는 거? 음. 또? (수행자 대답...)
예를 들어 볼게요. 태국하고 캄보디아 국경분쟁 한창 일어났을 때,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캄보디아 난민들 대부분은 그 시사켓 그리고 수린 이런 쪽에 있는 태국에 넘어오게 됩니다. 전쟁을 피해 가지고. 지금도 안 가고 있어. 그러니까 보통 한 사원에 한 몇백 명씩은 기거를 하고 있거든. 난민촌에는 아무래도 협소하고 활동하는 것도 제약이 있고 한데, 선원 사찰 같은 경우에는 먹는 것도 좀 자유롭게 먹고 마음대로 좀 다닐 수 있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들 많이 합니다.
그전까지는 이 선원에 내 수행하고 그리고 예불드리고 그리고 포살일 때는 법문 듣고 이런 게 주였는데, 난민들이 탁 오면서 이제 이게 바뀌어 버리는 거라. 수행은 뒷전이 돼 버리고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데 급급한 거라. 그리고 사원인데도 저녁 되면 음식 냄새로 진동을 하는 거라. 그게 사원에 사람들이 많으면은 그 몇백명 되는 거 하는 것도 뭐 그렇게 일이 아닐 건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면 내내 그거 밥 해먹이기 바쁜 거라. 그러니까 수행은 뒷전이 돼 버리는 거라.
그래서 그런 사원에 이렇게 있다 보면은 스님들이 다 성이 나 있어. 자기 할 일을 못 하고, 그 사람들 왔는데 그렇다고 내쫓지도 못하는 거고, 그러니까 할 일들을 해야 되니까 거기에 내 매달리다 보니까 제대로 수행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난민들도 다 있고 스님들도 다 있고 할 때, “여긴 어쨌든 사원이고 수행처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머물러야 되는 곳인데 일반인들도 와서 머무르게 되고 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근데 우선 순위를 정하자. 우선 순위를 정하자! 하루에 적어도 아침 일찍 한 시간 반, 저녁에 저녁 공양 끝나고 나서 저녁 예불 후에 한 시간 반, 이거는 어느 누구를 가리지 않고 전부 다 동참해라.” 그렇게 이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순위를 딱 정하고 나면은 그러고 나서,
두 번째 스님이 얘기한 게 “그 우선 순위 동안에는 핑계 대지 말아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무조건 수행만 해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른 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생각하고 아예 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이게 좀 체계가 잡히는 거 같애.
그전에는 스님들도 물어보면, “왜 수행 안 해?” 그러면 힘들어서 못 하겠대. 힘들어서. 거기 온 난민들도 수행처인데 수행할 생각 안 하고 오히려 자기 먹고 자기 바쁘고 자기 개인 할 일 하기 바빠요.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세 시간씩은 꼬박하고 강제적으로 시키니까 그뒤부터는 이 사원이 번잡스러운 게 탁 줄어들어 버리더라고.
그러고 나서 그 스님들이 모였을 때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재가자들은 모르겠지만 일단 출가한 사람들은 불필요한 것들을 하지 않는 게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다.”
왜 그럴까? 불필요한 일들을 출가한 스님들은 대부분 안 하고 살 것 같지만 실제로 안 그렇거든. 사원에 있으면 뭐 일이 있으면 일을 해야 되고, 또 먹는 것도 마음에 안 들면 지가 밥을 해가지고 먹으려고 그러고, 실제로는 보면 다 불필요한 것들이라.
그런데도 거기에 마음을 뺏기다 보면 에너지가 다 소비가 되기 때문에 수행하려고 하는 마음 자체가 안 일어나게 되는 거라. 그래서 수행하기가 싫어. 감각적인 욕망으로 인해가지고 수행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으로만 생각을 했겠지만 실제로는 보면 출가한 스님들이 무슨 감각적인 게 뭐가 그렇게 있겠어? 그런데도 불필요한 일들을 하다 보니까 수행하기 싫은 마음이 탁 일어나는 거라. 몸이 힘들다고 생각을 하는 거라.
그런데 수행 시간을 딱 주어지고 나니까 어쨌든 강제적으로 그거는 해야 되니까, 그 에너지는 놔두고 나머지 일들을 하게끔 되는 거라. 밥을 하는 거라든지 청소하는 거라든지 적당하게 분배를 하게끔 되는 거라. 그래서 수행 하려는 마음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는 것들이 보여요. ‘아, 이제는 어느 정도는 내가 여기를 떠나가도 되겠다’ 싶어서 다른 사찰로 간 적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스님 없을 때 수행 좀 많이 했습니까? 왜 대답들을 안 해? 남한테 보이기 위해서 수행하는 게 아니잖아. 근데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아?
그냥 이대로 쭉 살아도 문제가 없어? 근데 왜 안 해?
수행하려는 것들은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싫어하는 마음이 대상이고 싫어하는 마음이 법입니다. 법은 항상 여러분 앞에 ‘나 여기 법 있어. 이거 와서 봐. 무상 고 무아의 성품으로 봐 봐.’ 하고 보여 주는 것들이라. 부처님께서는 이리 와서 보라고 했고, 그것을 네 스스로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그게 법이라. 근데 법이 나타났는데 왜 법인 줄을 모르냐는 거라.
깨달을 수 있는 법이고 수행이 훨씬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는데 그것들을 법으로써 보지를 않는 거라.
수행에서는 갖가지 장애들이 있다 그랬죠. 보통 다섯 가지 장애를 얘기합니다. 감각적인 욕망, 또 악의를 가지는 것. 그다음에 나태와 게으름이 일어나는 것, 들뜨고 불안하고 하는 것들, 의심이 드는 것들, 이게 개별적으로 하나씩 올 것 같죠?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게 한 번에 오기도 하고 여러 개가 같이 오기도 하고 또 개별적으로 오기도 하고 각양각색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애들도 뭐라고? 그 장애들이 일어나면 그게 대상이 되죠. 그게 법이라.
그게 부처님이 내보이신 법이라는 거라.
부처님 법을 어떻게 여러분들은 다루어야 돼요? 그냥 받들고 있으면 돼? 소중하게? 법이 내 것이 되도록 만들어야 되는 거라. 내 속에서 법이 살아 있도록 만들어야 되는 거라. 그러려면 법을 그냥 법으로서 봐야 되는 거라. 그것을 싫은 마음이 일어났다 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도 하지 말고, 맛있는 것들 먹는다 해가지고 좋아한다고 집착하지도 말고, 그냥 그대로 봐야 되는 거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야 되는 거라.
법은 어떠한 경우든지 있는 그대로 보게 될 때 법은 드러나지게 됩니다.
그러면은 수행하기 싫어하는 마음들은 어떻게 다스려 나갈까?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수행하기 싫다해가지고 그대로 그냥 계속 살 수는 없잖아.
4페이지 한번 보십시오. 중간 정도에 보면
"수행이 하기 싫을 때는 하기 싫은 것이 사띠할 법이다." 하고 나와있습니다.
나타난 대상, 그것은 부처님의 법이라는 거라. 싫어하는 게 일어났으면은 가장 먼저 뭘 해야 돼? ‘어, 내가 싫어하네’ 하고 알아차려야 될 거 아니라. ‘싫어하네’하고 알아차리지 않으면은 싫어하는 마음이 더욱더 증폭돼 버립니다. 그리고 그 싫어하는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게 되는 거라. 그거 계속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가지고 어떡하려고?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싫어하는 것이 생겨났으면 생겨난 줄을 분명히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이 돼야 되는 거라.
왜? 그게 부처님이 나타내 보이신 법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라.
‘어, 내가 또 수행 싫어하려고 하네’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싫어한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나면은, 뭐로 알아차리는 거라? 여러분들 마음으로 내가 싫어한다는 걸 알아차리는 거라.
그럼 그다음에 해야 될 것은 싫어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해야 되는 거라.
싫어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싫어하는 마음이 사라졌으면 사라진 줄을 알아차려야 되는 거라.
여기까지만 할 줄 알면은 사라진 줄을 알면은 수행은 상당히 증장됩니다.
그러고 나면은 그 싫어하는 마음이 사라진 줄 알고 나면 그다음에는 마음이 어디로 가야 돼요? 다시 수행 대상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호흡이면 호흡, 경행을 하고 서 있었으면 서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거고, 그게 기본적인 루틴이라. 근데 가장 중요한 게 내가 싫어하는 줄을 모른다는 거라.
수행할 때 다리를 꼬고 있으면 불편하죠. 오래도록 있으면 싫어하는 마음이 탁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 좀 편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이 탁 일어나는 거라. 여러분들이 수행하기 싫어하는 거는, 그런 마음들은 없어요? 수행해가지고 금방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거 아니라도 나는 마음으로 충분히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다른 할 일들이 많다는 거라. 그럼 그걸 추구하는 게 바쁜 거라.
근데 그렇게 해가지고 지금 일평생 살아왔는데 이대로 그냥 계속 또 갈 거라? 왜 자꾸 편한 것만,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려고 그러냐는 거라.
수행은 힘들어도 내가 노력해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라. 그거는 의무라. 부처님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가려면 그걸 안 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라. 부처님 제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라. 편안하게 하고 어려운 거 피하려고 하는 그런 것들을 하지 않도록 자꾸 해야됩니다.
뭐가 탁 나타났으면 이것은 그냥 그대로 부처님 법이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거라. 경전만 달달달 외우는 그게 법이 아니라. 나타난 현상 자체가 법이라. 그러면 그거 그냥 알아차리라는 거라. 그거 사띠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고 할 의무라는 거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빨리어에 그런 단어가 있습니다. "전면에 알아차림을 기울여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요 뭐 코끝 전면을 얘기하는지 아세요?
'보고 있다' 그러면 보는 것에 전심 전력하라는 거라. 보는 것에 전심전력해서 사띠하라는 뜻입니다. 최우선으로 해야 되는 것은 사띠인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거라. 현재 일어난 대상 자체를 사띠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게 "전면"이라는 용어로서 나타나는 거라. 가장 여러분들이 우선적으로 최우선으로 해야 되는 것이 바로 '사띠'라는 뜻입니다. 법이 나타났는데 그걸 사띠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법을 갖다 통찰을 해 나갈 거라?
최우선으로 해야 될 것들이 지금 현재 나타난 법이라고 했습니다. 다리를 아까 같이 꼬고 있으면 뭐가 나타나요?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통증이 일어납니다. 그럼 지금 최우선으로 해야 되는 게 뭐라요? 호흡이라? 아니라. 최우선으로 사띠해야 될 것은 통증입니다. 그게 전면에 알아차림을 기울여라는 뜻입니다.
지금 현재 최우선으로 해야 되는 것은 통증이 되는 것이고, 통증이 사라지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호흡이 최우선이 되는 거고, 그래서 순간순간에 온 마음을 기울여서 그것들을 사띠하라는 거라.
그런 의미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수행은 단순히 그냥 슬그머니 해가지고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온 마음을 기울여서 그거 외에는 다른 것들은 일절 없이 사띠를 기울여나가야 되는 겁니다.
변하는 속성들은 그렇게 온 마음을 기울여서 그것을 사띠해 나갈 때 변하는 것들이 보이게끔 되는 겁니다. 그냥 여러분들한테 개념적으로 ‘무상하네’ ‘들이쉬는 숨하고 내쉬는 숨이 틀리네’ 그것으로 무상함을 알 것 같으면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것들이 변하는 속성이 탁 보이기 시작하면은 그때서야 비로소 ‘아, 무상하네’ 하고 알게끔 되는 거라. 어떤 대상이든 다섯 가지 장애의 대상이든 아니면 내 호흡의 대상이든 걸어가는 대상이든 어떤 대상이든 그 대상은 변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대상은 없다는 거라. 그럼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더 빨리 변하는 것은 마음이라. 마음이 대상이 될 때는 더 빨리 막 변하는 게 보여. 그리고 그런 마음의 대상으로 인해서 또 물질적인 느낌들도 빠르게 변하는 것이 보인다는 거라.
싫어하는 것들을 알아차렸다. 그러면 싫어하는 마음을 관찰을 하면 싫어하는 마음은 살그머니 또 사라지게 돼 있어요. 그럼 그 싫어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몸에는 영향을 안 미쳤어요? 몸도 틀림없이 뻐근하든지 답답하든지 하는 느낌들이 있게끔 되는 거라. 그것도 느낌대로 관찰하면 돼. 그리고 그 느낌들이 탁 사라지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대상이 없어져 버려. 그때가 바로 사라짐을 보는 단계라는 거라.
그럼 사라짐은 마음으로 사라진 것들을 봤을 때는 그 뒤에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안 보이는 때가 있다는 거라. 그러면 ‘아, 내가 사라짐을 봤구나’ 하고 알고, 빨리 호흡이든지 걸어가는 대상이든지 큰 대상을 찾아야 되는 거라.
사띠가 탁 끊어지는 순간 탁 망상이 일어납니다. 수행에서 경계해야 되는 것은 게을러지고 싫어하는 마음들도 경계를 해야 되지만, 망상이 일어나는 것들은 더더욱 경계를 해야 됩니다. 대부분은 수행이 연속이 안 되는 것은 그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넘어갈 때 망상이나 사고하는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수행이 탁 끊어지는 거라.
사라지는 마음을 보지 못했어. 근데 아무것도 없어. 그럼 나는 ‘아, 사라졌구나’ 하고 알고 빨리 호흡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라. ‘어, 마음이 어디 갔지?’ 왜 그런 망상을 하고 있느냐는 거라.
대상은 여러분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드러내 놓습니다. 법으로서 탁 드러나진다는 거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자꾸 사띠하고 그것들이 끊어지지 않도록 자꾸 할 때 수행은 무르익어 간다 하는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 우선 순위로 해야 되는 것이 뭔가 하는 것들을 잘 판단을 해야 됩니다. 아까 물어봤을 때 돈 버는 거, 물론 좋아. 식구들 밥해 먹이는 거, 그것도 물론 좋아. 잘하는 일이라.
그런데 그게 우선 순위가 되면 안 되는 거라. 돈을 벌더라도 밥을 해먹이더라도 나에게 수행할 시간은 충분히 있게끔 해야 되는 거라. 그럼 우선 순위가 수행할 시간은 딱 빼놔놓고 나머지들을 하라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밸런스가 안 맞아져요. 불필요한 것들을 계속적으로 일을 만들게끔 되는 거라. 태국에 있는 그 스님들도 실제로는 수행할 시간을 만들 수가 있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수행을 안 하는 거라. 불필요한 걸 계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거라.
물론 마음은 고귀하지.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게 잘 먹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데서 그런 걸 하기 위해서 자금들을 모을 수 있을까?’ 수행은 뒷전이 돼 버리는 거라.
여러분들도 법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은 딱 내가 작정하고 그 법들을 갖다가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을 수행하게 될 때 드러나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25~2026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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