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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티나 나무(Ton kaṭhin) - 2025년 까티나가사 축제 법문(20251101)

담마마-마까 2025. 11. 2. 10:00

* 까티나 나무(Ton kaṭhin) - 2025년 까티나가사 축제 법문(20251101)

https://youtu.be/KsjJ9AdjMmo?si=9ibN8Qqtlzhju1s0

<법문은 영상 40:00 ~ 1:02:18초까지 설해집니다.>

 

프린트물이 「까티나 나무」라고 돼있죠. 많이 봤을 거라. 생소하고, 좀 많이 봤을 건데, 스리랑카나 태국, 미얀마 이런 데 까티나 행사 가면 나뭇가지에다가 돈 주렁주렁 걸어 놓은 거 봤어요? (예) 그게 까티나 나무입니다.

그래서 태국에서는 '똔 까틴(Ton kaṭhin)' 그렇게 얘기를 하고, 미얀마에서는 '빠데타삔(Padaetharpin(padesabin))' 그렇게 얘기를 하도, 스리랑카에서는 '깝빠룩까Kapparukka(Kapruka)'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틀리는데, 이 세 이름의 공통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성한 것, 신성한 나무'라는 뜻이 있고, 그다음에 '소원을 이루어주는 나무'라는 뜻도 있고, 또 하나는 '생명의 나무'라는 뜻, 이게 공통적인 것들입니다.

 

태국에나 뭐 동남아시아에는 반얀나무 그다음에 코코넛나무, 그다음에 보리수나무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이 수종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까티나 철이 되고 하면은 사원이 없는 곳에서는 이 나무들에게 천을 이렇게 둘러주는 의식을 했어요. 그게 인제 점점 발달해가 지금 스리랑카나 태국, 미얀마 이런 데는 까티나 때 뭐 하냐면 불탑이 있죠? 불탑에 천을 이렇게 한바퀴 둘러주는 의식을 합니다. 그러니까 까티나 나무에서 유래한 겁니다.

 

그게 이제 1년에 딱 1차례 그렇게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까티나 가사를 줄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딱 1차례밖에 없죠. 그것도 한 사원에서는 딱 1번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마만큼 특별한 나무라는 뜻인데, 그걸 인제 '깔라다나(Kāladāna)'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딱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인제 불탑에 천을 두르는 습관들을 지금도 이렇게 많이 합니다.

 

마찬가지로 까티나가 되면 그 나무들을 상징하는 형태들을 취한 것들을 구조물을 만듭니다 인공적으로. 그래서 거기에다가 각각의 물품을 이렇게 걸게 됩니다.

가사부터 해가지고 기본적으로는 가사, 그다음에 치약 칫솔이 걸리기도 하고, 그다음에 이제 각각의 돈들을 거기다가 걸고 그리합니다. 그래서 태국 같은 데는 그 끄트머리에 항상 보면 보리수 잎을 이렇게 상징하는 것들을 해놓은 게 있어요. 쉽게 말하면 이렇게 하는 게 옛날에는 보리수나무나 이런 데 까티나 가사를 올리는 의식에서 출발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안거가 끝나고 나면 까티나 계절이 됐다 하는 걸 언제 알 수 있냐면, 각각의 시내에 가보면 이 똔 까틴 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가장 중심에다가 이 똔 까틴 그 구조물을 갖다 설치해 놔요.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시하고 싶으면 그렇게들 다 보시를 하고 하거든. 그래서 그걸 가지고 사원으로 들어오면 그날은 이제 까티나 의식이 시작이 됩니다.

물론 가난한 곳들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원은 많고 하면 추첨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똔 까틴을 이번에 올해는 어느 사원에 들이자, 그다음에 내년에는 또 어떤 사원에 들이자 하는 걸 갖다 추첨을 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올해 추첨 당첨된 곳들은 그다음에는 못하고 이렇게 규정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합니다. 그마만큼 이 똔 까틴이라는 의식을 함으로 인해서 사원 경제에도 상당히 도움을 받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동남아 국가에는 다 이 의식들을 하거든. 그런데 왜 우리는 안 할까?

한국도 어차피 테라와다 불교인데 정착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차차 할 기회가 되면은 하도록 하고, 그런데 스님은 개인적으로는 별로 이런 거 안 좋아합니다. 그거 하는 걸 그냥 간소하게 하는 게 가장 좋다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석서에는 그게 분명하게 규정이 돼 있습니다.

이렇게 까티나에 하는 의식을 보통 네 부류로 얘기를 해놓았어요.

 

첫 번째가 뭐냐면, 까티나 때 하는 거는 뭘 하죠? 스님들한테 공양 올리는 거죠. 뭘 올려야 되겠어요? (가사) 가사 올리는 게 첫 번째. 그중 가사는 특히, 가사 올리는 게 찌와라 뿌자라고 하는데 그게 첫 번째고.

 

그다음에 두 번째 하는 게 뭐가 있겠어요? 가사 말고 뭐 올려요? (필수품) 8가지 필수품이라고 하는 것. 그러니까 출가할 때도 필요한 것이고, 출가한 스님들은 반드시 필요한 "8가지 필수품"이 있습니다. 뭐 뭐죠? '가사 3벌 삼의', 그다음에 '바리때' 4번째, 그다음에 또 뭐 있어요? '실과 바늘', 옷 꿰매 입어야 될 거 아니라. 실과 바늘 다섯 번째, 그다음에 여섯 번째는 '물거름망', 왜 그러냐 하면 물을 그냥 함부로 먹으면 거기에 생명체가 있기 때문에 그걸 죽이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간접 살생에 해당이 되기 때문에 그걸 거르는 거름망을 이렇게 합니다.

그다음에 또 뭐가 있어요? (면도기) '면도기', 그렇지. 어쨌든 면도 해야 되거든. 머리도 깍아야 되고 그게 일곱 번째, 여덟 번째 '허리띠' 입니다. 허리띠. 이거는 옷이 보면 그냥 천이거든. 천을 기워놓은 거기 때문에 허리띠가 없으면 잘못하면 쭉쭉 흘러버립니다.

그래서 여덟 가지 필수품 입니다. '앗타빠릭카라 뿌자(atthaparikkhara pūjā)'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여덟 가지 필수품은 반드시 까티나 행사 때 한다 하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앗타를 빼버리고 나면 빠리까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빠릭카라 뿌자(parikkhara pūjā)'라고 하는 것이 세 번째입니다. 그거는 뭘까? 스님들께 그 외 공양물을 올리는 것.

 

그런데 까티나 때는 어떤 거라고 했어요? '상기까 다나(Saṅghikadāna)'라고 하는 것, 상가 전체에 공양을 올리는 것. 공양물을 올릴 때도 상가 전체 스님한테 올리는 것이지, 내가 이 스님만 좋아가지고 이 스님한테만 탁 올려주고 하는 것은 까티나 의식에는 잘 안 맞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스님에게 개별적으로 다 공양을 올리는 형태로써, 거기에는 뭐 어떨 때는 휴지도 들어갈 수도 있고, 스님이 받은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면 물주전자를 받았어요. 옛날에는 만행 가고 할 때 물 끓여 먹어야 되니까. 그런데 요즘은 물주전자를 받는 게 아니고 보온 물병 뭐 이런 것들을 주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것들을 개별적으로 다 공양보시를 합니다. 그게 이제 세 번째에 해당이 되는 거고.

 

그다음에 네 번째 '깝빠루까 뿌자(Kapparukka pūjā)'라 해가지고 쉽게 말하면 그 까티나 나무에 각각의 것들을 다 보시를 합니다. 이거는 어디다 두죠? 아까 깝빠루까 까티나 나무는 어디 기증한다고 했어요? 사원에다 줍니다. 스님들한테 주는 게 아니고. 그 사원에게 주는 것은 그 깝빠루까 뿌자라 해서 그 나무, 까티나 나무에다가 다 겁니다.

그래서 돈이 될 수도 있고 또 뭐 어떤 데는 냉장고를 갖다가 거기다가, 냉장고 달 수는 없겠지. 그럼 냉장고 영수증을 걸든지 이렇게들 합니다. 어떨 때는 큰 대형 솥을 바친다는 그런 문서를 갖다가 걸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들 합니다. 그래서 그걸 가져와서 사원에 기증합니다.

 

쉽게 말하면 까티나 가사 때는 이 네 가지는 반드시 한다 하는 것입니다.

가사, 스님들한테 가사 공양 올리는 거, 그다음에 8가지 필수품 공양물 올리는 것, 그다음에 그 외 기타 물품들을 개별적으로 스님들한테 공양 올리는 것, 그다음에 까티나 나무에서 사원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거, 요 네 가지는 사실은 어느 나라든 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 네 번째는 못해봤죠? 언젠가는 한번 할 수 있도록 그렇게 ...

 

까티나 나무는 왜 이 까티나 의식 때 하게 됐을까?

원래 까티나 나무는 설화에 따르면은 그 메루산이라고 하는 산이지. 세계의 중심이라고 있잖아요. 메루산. 메루산의 북쪽에 있는 나무다 하고 기록에 나오는데, 그 나무에는 여러 가지가 달려 있다고 그럽니다. 쌀도 있을 수가 있고 뭐도 있을 수가 있고 하는데, 그 설화에는 그 나무에서 뭔가를 내가 원하는 걸 갖다 하나를 취하거든. 만약에 배가 고프다 그러면 쌀을 가져가서 밥을 해 먹고 싶으면 쌀을 잡으면은 쌀을 가져갈 수 있게끔 한다는 거라.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한 사람이 하루에 딱 한 번밖에 못 해. 여러 개를 가져갈 수가 없는 거라. 쌀을 가져갔으면 돈을 가져갈 수는 없어. 그게 인제 규정이라고 그럽니다.

 

그런 나무가 옛날엔 있었는데, 사람 욕심이 안 그렇잖아요. 하나가 아니라 두 개 가져가고 싶고, 또 다른 사람들은 저놈 저거 하나만 가져가나 두 개 가져가나 감시를 하기도 합니다. 이게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개를 가져가기도 하고 사람들이 서로 질투를 해서 싸움을 하기도 하고 하므로 인해가지고 까티나 나무가 결국은 사라져 버리게 됐다는 거라. 뭐 때문에 그랬겠어요? 인간의 욕심 때문에 그런 거지. 그냥 순서대로 그냥 하나씩 하나씩 가져가면 아무 일 없었을 건데 욕심부리다가 그렇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어느 때부터 까티나 의식 때, 기록에는 태국 같은 기록에는 왕조 이전부터 이 까티나 나무를 까티나 의식을 도입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 수코타이 왕조나 란나타이 왕조의 훨씬 이전, 왕조가 건립되기 이전부터 그러니까 11세기, 12세기 이전부터 그런 게 있었다 하는 그런 기록도 있습니다. 미얀마 같은 경우에는 가장 대표적인 게 민돈왕 때 이걸 아주 크게 했다고 그럽니다. 그 까티나 나무가 얼마나 컸느냐 하면 우리로 치면 3층 높이가 되게끔 그렇게 크게 했다고 합니다.

민돈왕이 불교사에서도 세계 제5차 불교도대회 때 개최했던 왕입니다.
그래서 석판에다가 빨리어 경전들을 다 기록했던 그런 왕입니다. 미얀마 같은 경우에 그렇게 해가지고 만달레이라고 하는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게 부처님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 만달레이를 사실은 만든 겁니다. 그렇게 크게 했던 기록도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까티나 나무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까티나 나무가 원래 없어졌잖아. 그 대용품으로서 인제 구조물을 만들어 가지고 까티나 나무를 해놓은 건데,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해요? 까티나 나무에서 지가 재물을 가져가는 게 아니고 까티나 나무에 재물을 걸어 두거든. 참 아이러니하죠.

쉽게 말하면 우리가 욕심부리고 그리고 서로 질투하고 싸움박질하는 것들도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우리가 바치겠습니다, 공양물을 올리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욕심부리지 않고 베푸는 삶을 살겠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이웃이나 여러 가지 공동체들은 어울려서 살겠다, 그리고 까티나 때 모든 스님들께 이러한 공양물들이 해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 하는 그 다짐이, 쉽게 말하면 이 까티나 나무라고 하는 상징물이 됩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중요한 나무기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그걸 나쁘게만 보지 말고 세월이 바뀌면서 여러 가지들도 바뀝니다. 까티나 나무에 걸리는 것들이.

옛날에는 돈이 그렇게 많이 걸린 것 같지는 않아요. 돈을 이렇게 꽂지는 않았는데, 진짜 휴지 같은 거 달리기도 하고 뭐 이런 것들을 참 많이 봤는데, 요즘은 아예 그런 게 안 달립니다. 그마만큼 물질 문명화되다 보니까 돈 주고 사라는 거지 그걸. 그래서 그냥 그 돈들을 전부 꽂기도 합니다. 그래서 태국 같은 경우에는 까티나 나무라고 안 하고 보통 그 스님들끼리는 '돈나무', 돈나무 그렇게 얘기합니다. 돈이 달려가지고 오는 나무니까.

 

어찌 보면은 그걸 욕심을 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에게 베풀기 위해서 하는 건데 조금 악용되는 부분도 적잖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사원에 재정적인 도움이 되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사원에 있는 스님들을 또 교육을 시키기도 하고, 또 스승이나 어른 스님들이 상좌나 제자들을 갖다 가르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꼭 그렇게 나쁘게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그런 것들이 까티나 나무라는 것들을 잘 이해를 하고, 거기에 맞는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게 이 똔 까틴이라고 하는 까티나 나무다 하는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 4페이지에 보면은 "똔 까틴 의식은 불교 공동체로서의 상가와 재가 신도 사이의 상호 관계를 상징하는 소중한 전통입니다. 똔 까틴 의식은 다음과 같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고 적어 놓은 게 있습니다.

 

첫째는 자비와 보시. 어떠한 경우든지 항상 선한 마음들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고 남의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같이 측은한 마음을 일으켜서 그 고통들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주려는 마음들을 가지게끔 하는 것, 그래서 이러한 보시와 측은한 마음들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사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것이 이 까티나 나무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선업 쌓기. 상가에 도움을 주고 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은 내가 쌓은 것은 내 공덕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 공덕이 되는 게 아닙니다.

특히 이 까티나는 특별한 행사고, 특별한 날에만 할 수 있는 거고, 시시때때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까티나 때 쌓는 공덕들은 그래서 '까틴'이라고 그럽니다.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그 공덕은 부서지지 않는다' 하는 뜻입니다. 그마만큼 그 공덕은 다른 공덕들하고는 틀리게 내가 그 공덕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선한 결과들을 반드시 결과를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이 되기 때문에 공덕 쌓기에는 그마만큼 좋은 것이 없다하는 뜻으로서 두 번째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공동체 참여. 여러분들도 까티나 나무를 비롯해서 까티나에 참여

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것인데도 같이 모여서 모든 일들을 행합니다. 공양하는 것부터 해서 청소하는 거, 여러 가지 행사 준비하는 거, 그리고 불편함을 참으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 이런 것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렇게 참여하는 이유는 뭐 때문에 그래요?

스님들한테 그것을 회향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까티나 가사를 받고 나면 반드시 스님들이 아누모다나(anumodana)라고 하는 회향게송들을 반드시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은 공덕들은 끊임없이 이어져서 건강하고 행복하고 좋은 일이 있기를 하는 그런 회향게송들을 하게 됩니다.

그게 공동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모든 스님들이 해당이 되고, 모든 스님들이 가사를 받는 것이고, 모든 스님들이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이고, 그리고 모든 스님들이 그 회향을 아누모다나라는 회향을 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 회향을 재가자들이 받아서 그것으로 인해서 공덕들이 반드시 나타나는 결과들이 있게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게 이 까티나 나무라고 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까티나 다른 것들은 거의 스님이 설명을 안 한 부분이 없는데, 까티나 나무는 스님이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오늘 날을 잡아서 까티나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은 이제는 스님들이 축복게송을 독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상가스님들께서 축복게송 독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