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G0Gs_ndrR0?si=Gg-pa0NKH_J9O7bf
<11:35초 이후부터 33:40초까지 수계명 설명이 이어집니다.>
* 불기 2568년 담마와나선원 수계식 - 수계명 설명
여러분들 은사 수계 계사 스님은 빤냐와로(Paññāvaro)입니다.
복창해 주십시오. 빤냐와로.
(수계자 일동 : 빤냐와로)
그리고 한 사람씩 이름을 얘기하겠습니다.
김문정님은 '삿담마'는 이미 부산에서 쓰고 있는 이름이기 때문에 쓸 수 없고, 그래서 두 번째로 원하는 이름이 '요니소 마나시까라' 였기 때문에, 그래서 "요니소 마나시까라(Yoniso manasikāra)"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죠? (네)
'요니소'가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수계자 : 지혜로와야 됩니다.)
선한 마음이 일어나야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선한 마음이 일어나는 게 우선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 '마나시까라'가 따르는 거기 때문에, 선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는 그 선한 마음으로 인해서 내가 수행이면 수행 대상에서 잘 알아차려야 되는 거고, 내가 선한 마음으로 인해서 공덕을 지을 것 같으면 공덕하는 것들을 행해야 되는 것이지, 선한 마음만 일어났다 해가지고 끝나 버리면은 그냥 '요니소'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요니소 마나시까라라고 하는 것은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수행이면 수행 대상, 공덕이면 공덕을 직접 실천하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서 요니소 마나시까라이기 때문에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본인 이름을 한번 이야기해보십시오. 요니소마나시까라. (수계자 : 요니소 마나시까라)
계사스님은? (수계자 : 빤냐와로 스님입니다.)
기억을 하십시오.
그다음에 엄진아님. 어? 엄진아님은 두 번째인데? 바꿔. 자리 바꿔. 엄진아님은 75년생이잖아. 이서현님은 77년생. 본인도 잘 모르네.
엄진아님은 믿음에 대한 것들을 조금 했으면 싶다고 적어 가지고, '삿다'는 너무 평범하고, 그래서 그거 말고 삿다(saddhā)보다도 의미가 더 명확하고 믿음을 가짐으로 인해서 명료해지고 기쁨이 일어나지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빠사다(pasāda)'라고 하는 단어인데, 빠사다의 여성형으로 해가지고 '빠사다니'가 됩니다. "빠사다니(Pasādanī)"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뭔가를 실천함으로 인해가지고 나에게선 기쁨과 행복이 자꾸 일어나도록 하는 의미"가 이 빠사다, 빠사다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본인도 "어떠한 것을 행하더라도 그 행하는 것으로 인해서 조금 더 믿음이 깊어지고, 그로 인해서 하는 일들이 명료해지고 기쁨이 일어나지고 그리고 밝아지고 하는 것들이 더불어 따르는 그런 자가 되도록 하라" 라는 의미로서 빠사다니라고 했습니다.
따라 해보십시오. 빠사다니. (수계자 : 빠사다니)
계사스님 이름은? (수계자 : 빤냐와로)
본인 이름은? (수계자 : 빠사다니)
기억하십시오.
그다음에 이서현님은 법을 따르는 자가 되고 싶고 법을 잘 준수하고 지키는 자가 되고 싶다고 해가지고 '담맛타'라고 했습니다. 이름이 "담맛타(Dhammaṭṭhā)"라고 지었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법명이기 때문에 그대로 했습니다. 그 대신에 Ṭ에 밑에 점이 있습니다. ṭṭha 해서 그래서 담맛타가 됩니다. 법은 내가 따르고 싶어서 따르는 게 아닙니다. 법을 실천할 때 그 법이 나를 따라오게 돼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법을 지키고 법을 잘 따르게 되면은 법이 내 곁에 그냥 머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계속 따라다닌다, 꼭 사람이 걸어가면 그림자가 따라오듯이 법이 나를 따라온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 이 담맛타라는 의미가. 그래서 "법을 잘 지키는 자가 돼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담맛타 입니다.
따라해보십시요. 담맛타. (수계자 : 담맛타)
계사 스님 이름은? (수계자 : 빤냐와로 스님입니다.)
본인은? (수계자 : 담맛타입니다.)
그다음에 유현주님. '자나'라는 게 뭔지 알아요? (수계자 : 분명한 앎) '삼', sam이 붙으면은 분명하게 아는 것들을 좀 더 명확하게 확증한다는 것으로서 '삼빠자나'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자나'가 붙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내가 알아차려야 돼.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앞에 '삼'이 붙고 또 하나 더 '빠'가 하나 더 붙어. '빠'는 좀 더 강조하는 겁니다. 이끌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위로. 완전하게 위로 이끌어가는 걸 완전하게 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것은 '삼빠자나'라는 의미는 뭐냐면 "사띠를 했으면 사띠가 계속 이어져서 그 이어진 것으로 인해서 무상한 성품이나 고나 무아를 안다"는 의미입니다. "분명하게 완전하게 안다"는 의미로서 그래서 이름이 '삼빠자나' 입니다.
본인도 꼭 수행이 아니라도 일상 생활을 하더라도 분명한 앎을 지니고, 알려고 하는 것, 분명한 앎을 지니면 어떠한 경우든지 선한 마음이 일어나야 됩니다. 사띠가 돼야 삼빠자나가 됩니다. 사띠는 어떠한 경우인지 선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뭘 하든지 항상 선한 마음이 일어나서 그것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아는 마음들을 지니게 될 때, 그때는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평화로워집니다.
그런 의미로 본인이 원하고자 했던 "삼빠자나(Sampajānā)" 입니다.
'잔나'가 아닙니다 이. '삼빠잔나'라고 해도 되긴 되는데, 그거는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는 이름입니다. '분명한 앎'이라고 하는 것에서 딱 끝나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삼빠자나라는 이름이 됩니다. '자'가 장음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분명하게 앎을 지닌 자"가 됩니다. 여성형으로 되기 때문에 "삼빠자나"라고 지었습니다.
본인 이름 삼빠자나. (수계자 : 삼빠자나)
계사 스님은? (수계자 : 빤냐와로 스님이십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그다음에 손범준님. 손범준님은 지금 교법사하고 있죠? (예) 그리고 여러 가지 뭐 몸을 쓰는 것들도 잘하고 있고, 저번에 또 수행 와가지고 집중 수행하는 거 보니까 열심히는 할려고 하대. 공부가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그 마음이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려고 하는 것들이 많이 보였어요. 그래서 이름이 "빠리얏띠(Pariyatti)"입니다. 빠리얏띠. 빠리얏띠에서 '빠리'라고 하는 것은 '빠리닙바나(parinibbāna)' 할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널리 분명하게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얏띠'라고 하는 것은 '그것들을 갖다가 널리 분명하게 모든 것들을 안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세 가지로 나눕니다.
빠리얏띠(pariyatti), 빠띠빠다(paṭipadā), 빠띠웨다(paṭivedha) 그렇게 세 가지로.
처음에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그다음에 실천하고, 그것으로 인해 가지고 내가 증득한다, 도와 과에 이르른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게 '빠리얏띠' 입니다. "잘 배우고, 그리고 그 잘 배운 것들을 남에게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하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스님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이 빠리얏띠 입니다. 처음에 스님도 그 수행을 시작할 때 가르침이 뭔지를 모르고 막 시작을 해가지고 많이 헷갈렸거든. 그래서 그마만큼 가르침을 분명하게 이해했을 때는 수행하기도 수월하고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을 쓰는데 굉장히 이롭습니다. 그래서 "배움을 가지더라도 부처님 가르침에 맞게끔 배우고 가르칠 수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들을 마음에 두고 그것을 따르는 것은 시간 낭비다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름 빠리얏띠 입니다. 이름 뭐라고요? (수계자 : 빠리얏띠 입니다)
계사 스님은요? (수계자 : 빤냐와로 스님이십니다.)
기억하도록 하십시오.
그다음에 김정원님. 뒤늦게 수계 받는다고, 그리고 뭐 여기 선원에 자주 왔다면서? (수계자 : 몇 번 왔는데 나중에 일하느라 못 왔습니다.) 음. 그러면 넌 수계 못 받는데. 어쨌든 본인이 잘 해왔다고 하니까, 그리고 살아온 이력을 보니까 뭐 농약이나 살충제를 만드는 그런 것들을 하면 동물을 죽이기 때문에 그걸 걸 안 하고 지금 다른 걸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기특해가지고 그래서 계를 주는 겁니다. 왜 그러냐면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 자신이 생계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부처님 가르침에 맞지 않다 해가지고 버려 버리고 다른 걸 택한다는 거는 굉장한 결심이 아니면 안됩니다.
스리랑카 같은 경우에는 바닷가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그 싱할라족이 아니고 타밀족이나 다른 민족들입니다. 왜 그런지 알아요? 부처님 가르침에 살생하는 것들을 금하기 때문에 본인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이기 때문에 그걸 못 잡는 거라. 먹기는 해야 되겠는데 잡기는 싫고. 그래서 잡는 거는 다른 사람 시키고, 먹는 거는 지가 먹고. 죽어 있는 걸 먹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는 거 생선회 같은 거 이런 거 먹는 습관들을 가지면 안됩니다. 그거는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특히 살아 있는 것에는 그것을 죽임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그 독소나 나쁜 기운들은 여러분들한테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래도 몸을 위해서 먹는다 할 것 같으면 적당량을 갖다가 죽어 있는 것들을 갖다가 먹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괜히 그게 맛있다 해가지고 뭐 생대구탕 이런 것들, 자꾸 생(生) 자 들어가는 거 먹으려고 하면 안돼.
그런 의미에서 김정원님은 살아가는 모습이 기특해가지고 계를 주는 거니까 잘 지키도록 하십시오.
그에 맞게끔 이름도 "실라완따(Sīlavanta)" 입니다. 실라완따. '실라(sīla)'는 계입니다. 우리 스님 중에서도 '완따' 들어가는 스님이 있죠? (빤냐완따) 빤냐완따 스님. 스님 이름은 뭐라고? (빤냐와로 스님)
'완따(vanta)'나 '와로(varo)'나 똑같은 의미입니다. ... 완따는 '잘 지키고 잘 따른다'는 의미이고, 와로는 '그렇게 잘 따르는 사람 중에서 우두머리다' 하는 의미가 와로라. 그래서 사실은 '와라(vara)'라고 하는 똑같은 의미로서 쓰입니다. 그래서 빤냐완따라는 것은, 실라완따라고 하는 것은 "계를 잘 지키고 잘 따르는 자가 되도록 하라." 계가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그다음 단계로 못 넘어가집니다.
그래서 계가 자연스럽게 될 때 마음에서는 항상 자·비·희·사라고 하는 것이 나온다는 걸 잊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내 마음에서는 언제든지 대상을 보고 이 네 가지 중에 하나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 네 가지는, 계는 지키려고 하는 건데, 이거는 나누어주는 것들이라. 마음에서 나누어 주는 것들이기 때문에 본인이 충족되면 나눠 줄 수 있는 그런 자가 될 수 있도록 이렇게 하라는 의미에서 실라완따라고 지었습니다.
이름이 뭐라고요? (수계자 : 실라완따 입니다.)
계사 스님은요? (수계자 : 빤냐와로 스님입니다.)
다 자기 법명하고 계사 스님 이름 기억을 하겠죠? (예)
[Ajarn Jinyong Paññāvaro Mahā Thero]
그러면 다음 시작을 하십시오.
~~ 삼귀의 팔계 게송 독송~~
이제부터는 그 여러분들은 불교, 부처님의 제자, 재가 제자가 됩니다. 그래서 청정범행을 행하는 자들이 돼야 되는 것으로 브라흐마짜리(brahmacari)의 영역에 속하게 됩니다.
사원 안에서 거주를 하든, 아니면 집에서 거주를 하든, 또는 포살일 날 법회를 와서 수행을 하든, 법문을 듣고 하더라도 어쨌든 청정범행을 지니는 자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행하고 생활하고 하는 것들이 항상 깨끗하고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자꾸 노력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고 계를 어기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겠지만, 그건 여러분들이 지은 거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받아야 되는 과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후회하는 마음이 생겨나면 또 하나의 과보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퍼뜩 정신 차려서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다음에는 바로 선한 마음을 두 개 더 내라는 거라. 그 선한 마음이 더 많아지면은 악한 행위를 한 것들은 영향을 일으키지 않게끔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자가 브라흐마짜리(brahmacāri)라고 하는 청정범행자다 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계를 받은 것에 대해서 축하를 드리고, 스님이 그걸 인증하는 게송을 독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세 사람씩 해야 되기 때문에 뒤에 세 사람은 편하게 앉으십시오.
앞에 세 사람은 힘들지? (아니요.) 괜찮아? (예)
독송하겠습니다.
Suṇātu me bhante saṅgho.
~~~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25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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