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l5aUvyY4ZoQ?si=8e5oaR7vmvRgZw2x
* 붓다의 길따라 선원 안거해제 및 재가자 수계법회 (20251004)
자, 편하게 앉아봐요.
조금 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은 멀리서 왔는데 계는 받고 가야지.
전체적인 오늘 이름이 멧따(mettā)하고 브라흐마짜라라고 하는 사범주에 대한 것들이 몇 개가 있습니다. 그런 게 있고, 그다음에 수행에서 탐진치를 소멸하는 것에 대한 것들이 쉽게 말하면 지혜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에 대한 것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중에 혹시 부족할지 모르니까 간단하게 법문부터 잠깐 하고 수계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전 자따까(jātaka)나 이런 데 보면 전생 이야기들 이렇게 하면서 감각적인 쾌락 때문에 출가를 했다가 일곱 번이나 환속했던 그런 분이 있습니다. 왜 환속을 하게 될까? 수행하는데 재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다시 환속해서 감각적인 쾌락을 즐기다 보니까 그것도 또 재미가 없거든. 그럼 다시 또 출가를 하게 되고, 그렇게 일곱 번을 한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출가를 일곱 번째 다시 하게 되는 때는 그렇게 예쁘고 했던 자기 부인이 실제로 보니까 어쨌든 굉장히 추한 것이고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이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자기가 집착했던 감각적인 쾌락의 무상함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즐거운 것도 그거 좋아서 막 쫓다가 보면 결국에는 그 즐거운 것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변하고 사라지게 돼있다는 거라.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무상한 성품을 봄으로 인해서 수다원에 이르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부처님 앞에 가가지고 “마지막 출가하겠습니다” 하고 고하고,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출가를 해서 이내 아라한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잘 한번 보십시요. 왜 그렇게 일곱번을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게 될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왜 도와 과에 이르지 못하고 지혜를 개발하지 못하게 될까?
첫 번째가 뭐냐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그렇다 하는 겁니다. "아나왓티따 찟땃사(Anavasṭṭhitacittassa)" 그럽니다.
마음이 대상에 차분하게 안정되어 있으면 그 대상을 보면 변하는 성품이 보일 건데, 그거 안정돼 있지 못하면 보기는 보는데 금방 또 다른 데로 가버린다고. 그래서 수행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근데 무상한 것들을 보기 시작을 하고 하면은 그 뒤부터는 마음이 들뜨고 하는 것은 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잘 안정되게끔 되는데 대부분 안정돼 있지 못하는 거는 무상한 것들을 봤기는 봤는데 그걸 완전하게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돼있는 거라. 그러니까 안정돼 있지 못하니까 아까 그 스님 같이 자꾸 출가하고 또 환속하고, 출가하고 환속하고 하게 되는 거라.
여러분들도 일정한 시간을 들여가지고 그 시간은 수행하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을 건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는, 물론 핑계는 댈 수 있습니다. 뭐 ‘다른 일들이 생겨서’ 뭐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거라.
그거는 뭐냐면 마음이 수행 대상을 사띠할려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라. 안정돼 있지 못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라.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일상생활을 할 때도 마음이 자꾸 안정돼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마음이 가만히 안정돼서 그 하는 일들을 끝까지 다 하도록 하는 습관들을 자꾸 들여야 돼지, 마음이 자꾸 왔다갔다 하면서 바뀌어 버리면 안됩니다. 중간에. 그러면 목표도 달성을 못 하게 되고 하는 일들도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하면 "아위자나또 삿담망(avijānato saddhammaṁ)" 그럽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기는 접하는데 이게 어떤 게 참된 부처님 가르침이고 어떤 게 참되지 않은 가르침인지를 구분하지를 못한다는 거라. 여기서 이 소리하면 “어, 그래. 그것도 맞아.” 저기서 이 소리하면 “어, 그것도 맞아.” 그래서 부처님은 사람이 죽고 나면 바로 다음생을 받는다고 얘기했는데, 그거는 이해를 하고 알고 있는데 나는 사십구재를 지내야 되는 거라.
바른 가르침이라는 것은 이렇게 보면 됩니다. 내가 그 가르침으로 인해가지고 탐욕이 생기거나, 성냄이 생기거나, 게으름이 생긴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바른 가르침이 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어떤 경우든지 탐·진·치를 떠나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무상한 것들을 보기 때문에 욕심을 안 부리게 되는 거고 그것으로부터 떠나게 되는 거고, 무상한 성품을 보기 때문에 변하는 것들을 봤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이 안 생기고 성내는 것도 금방 사그라들게 만드는 거라.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할 때 조금 더 열심히 할려는 마음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라. 그게 바른 가르침이라는 거라.
삼법인이 그속에 드러나야 되는 거고, 그속에 사성제의 진리가 드러나야 되는 거라. 그래서 내가 가는 길이 팔정도의 길을 걸어가야 되는 것인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버리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바른 가르침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라.
그래서 그것들을 여러분들은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인데, 자꾸 그렇게 바른 가르침을 알면서도 그것을 따르지 못하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는 거라. 차라리 그 바른 가르침이 뭔지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은 거기에라도 그냥 열중할 수가 있지, 그게 잘못되었더라도.
그다음에 세 번째, "빠리쁠라와 빠사닷사(Pariplavapasādass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믿음이 흔들린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뭔가에 대해서 내가 그 가르침을 따르고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확신이 들 때, 그것을 계속 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걸 자꾸 세속적인 잣대로써 구분을 할려고 그럽니다. 설혹 어떤 스님들이 수행이 좀 무르익지 못하고 어떤 스님들이 교학적으로 좀 못났으면 어때? 여러분들이 가져야 되는 것은 교학이 뒤떨어지든 수행력이 뒤떨어지든 하는 것이 아니라 출가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하는 계율을 청정히 지키는 그 스님이 존경의 대상이 되고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라. 저 스님을 우리 스님하고 비교하니까 많이 뒤떨어져. 그럼 배제해버리는 거라. 뭘 기준으로 잡느냐는 거라.
기준으로 잡아야 될 것이 있고 잡지 말아야 될 것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지식이나 세속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면 부처님 가르침이 설 자리가 없어져버립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믿음이 확립돼 있어야 됩니다.
불·법·승에 대한 믿음이 확립돼 있어야 되는 거고, 그래서 이 불·법·승에 대한 것들이 확립이 돼있으면 내 스스로 그것들을 실천하고 존경할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갈려고 하게 되는 거라. 그러면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알게 되기 때문에 믿음이 확립이 되게 되는 거라.
그게 불교적으로 따라가야 되는 믿음의 방법인 것이지, 세속적인 잣대로써 판단하면 안 되는 거라. 그러면 여러분들의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거 같으면 박사는 존경 받아야 되는 거고, 고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들은 그냥 존경받지도 말아야 되는 거라?
믿음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여러분들이 이해가 돼야 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가, "빤냐나 빠리뿌라띠(Paññā na paripūrati)"라고 해서 지혜가 생기기도 하기도 하는데, 지혜가 아직은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계속 수행 안 하면 다시 또 밑으로 내려가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돼요. 또 일정한 부분에서 할 것 같으면 또 다시 떨어져 버리는 거라.
수행을 했으면 다시는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상태에까지는 도달을 할려고 해야 되는 거고, 또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서 따라서 믿음을 확립했으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까지 돼야 되는 거고, 바라밀을 행했으면 그 바라밀로 인해서 더 나쁜 상태에까지는 떨어지지 않는 바라밀을 행해야 되는 것들이라.
그래서 지혜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끊임없이 노력해서 떨어지더라도 금방 올라설 수 있는 상태의 지혜까지는 도달하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마음이 흔들려버리면 지혜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모를 때도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부족할 때도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거라.
https://alfl6843.tistory.com/2231
지혜가 열리는 조건 - 프린트물 법문 (붓다의길따라선원 포살법회. 20250906)
지혜가 열리는 조건 AnavaṭṭhitacittassaSaddhammaṁ avijānatoPariplavapasādassaPaññā na paripūrati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바른 담마를 알지 못하며,믿음이 흔들린다면,깨달음의 지혜는 완전하지 않다. Anav
alfl6843.tistory.com
지혜에 이르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이 필요한 거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반드시 그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안거가 끝났다 해서 등한시하고, 계를 지키는 것도 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수행하는 것도 등한시해버리면 안된다 하는 뜻입니다.
내가 부처님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되도록 자꾸 해야 됩니다.
오늘 계 받는 사람 중에 부미라고 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부미가 그냥 땅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빠타위(pathavī)로서는 부미(bhūmi)가 땅의 요소지만, 수행적인 요소에서는 마음의 요소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정한 상태가 되고 마음이 일정한 상태에 딱 도달해서 고뜨라부(gotrabhū)의 상태에 도달한 거를 갖다가 그걸 부미(bhūmi)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성인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자, 시간이 없으니까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 하고, 수계식 하겠습니다.
수계 받을 사람 먼저 앞으로 세 사람 앞으로 오고, 그다음 세 사람 앉으십시요.
박은영, 그다음에 김상훈, 이은주 세 사람입니다. 세 사람은 잘 들으십시요.
스님 법명은 빤냐와로 입니다. 여러분들은 반드시 여러분 스승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박은영님은 이때까지 부르던 이름 그대로 '멧따부-미(Mettabūmi)'입니다.
근데 부-미에 부bū를 장음으로 썼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찟따우빠다'라고 해서 마음이 생겨난 것들을 얘기할 때 부-미의 부-를 장음으로 쓰게 됩니다.
마음은 일어나고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생겨났으면 그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돼있습니다. 그 대신에 마음이 생겨날 때 반드시 멧따와 함께 마음이 생기도록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멧따와 함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들은 내 이름에 걸맞지 않다고 자꾸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멧따부-미에 부-를 장음을 쓸 수 있는 것은 성자의 자격을 갖춘 자에게 사실은 쓸 수가 있는 용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성자의 담마를 갖춘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또 극복해야 될 요소들을 극복한 자, 쉽게 말하면 사마타 수행을 했으면 일선정에는 도달을 했던 자, '일선정에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자'. 그럴려면은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를 해야 됩니다. 잠재워두어야 됩니다.
또 위빳사나 수행을 했을 때는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를 하고, 열 가지 일어나는 여러 가지 좋은 현상들도 인제는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돼있을 때 그때 고뜨라부(gotrabhū) 할 때의 부, 부-미가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극복해야 될 요소들을 잘 극복했을 때 이 멧따부-미라고 하는 이름을 붙인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냥 마하부따빠타위(mahabhūta)에서 쓰는 빠타위(pathavī) 땅의 요소로서의 부미가 아닌 걸 분명하게 이해를 하고 마음을 대상에 잘 기울여지도록 해야 됩니다. 지혜가 없는 것은 사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띠는 어떠한 경우든지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김상훈님은 본인이 담마고-빠까 받고 싶다고 얘기해서 '담마고-빠까(Dhammagopaka)' 그대로 합니다.
'담마를 지키고 보호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담마는 손상될 수가 없고, 담마는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손상을 누가 시킵니까? 그것을 이용하는 자들입니다. 담마는 이용할 대상이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담마는 담마대로 그냥 청정하게 있는 겁니다.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은 세월이 지나도 그 진리는 그대로입니다. 근데 그것들을 자꾸 이용을 할려고 하면은 반드시 그것을 지키는 자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맞지 않다." "이것은 담마에 어긋나는 행위다"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그것들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담마는 변형할 수도 없고, 더 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내가 잘 지키고, 잘 따르고, 잘 실천하게 될 때, 담마를 내가 지키는 자가 된다 하는 것들을 생각을 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 담마를 지키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잘잘못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담마를 실천하게 됐을 때 스스로 담마를 지키는 자가 된다, 담마를 보호하는 자가 된다 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담마고-빠까라는 이름입니다.
그다음에 이은주님은 '우빠라마-(Uparamā)' 입니다. 이름이.
우빠라마, 마mā 마지막 아ā가 장음입니다. '우빠'라고 하는 것은 '더 높은'의 뜻입니다. ‘일반적인 것보다도 더 높은’ 이라는 뜻입니다. '라마(rama)'라고 하는 것은 '행복한, 행복하고 즐겁고' 하는, 쉽게 말하면 글자 그대로 하면 '더 높은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행복을 가져오는 것들 대부분 감각적인 것들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오는 감각적인 것들입니다. 근데 그 행복보다도 더 높은 행복이 있다는 거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 행복을 성취할려면 버려야 될 것은 버려버리고 끊어야 될 것은 끊어내야 됩니다. 감각적인 쾌락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들을 버려버려야 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래야 더 높은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빠라마-라고 하는 뜻 자체가 '제거한다, 절제한다 '하는 그런 의미들을 가지게 됩니다. 탐 진 치를 제거했을 때 우빠라마-가 됩니다. 그래서 본인이 좀 더 높은 행복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또 하나는 '우'에다가 '빠라마'가 됩니다. 빠라미(pāramī) 바라밀을 갖다가 '더 높은 바라밀을 갖다가 성취하도록 해야 된다' 하는 뜻입니다. 바라밀은 세 가지 종류가 있는 거 아시죠? 그래서 삼십바라밀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하나를 하더라도 내가 온 몸과 마음을 다바쳐 그 바라밀을 행하게 될 때 '우빠라밀'이 됩니다. 그래서 바라밀을 하나를 성취하더라도 완전하게 성취할 수 있도록 더 노력을 해라 하는 그런 뜻도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이은주님은 '우빠라마-'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다음에 이동건님은 '찟따-사띠(Cittāsati)' 입니다.
찟따라고 하는 마음과 사띠는 알아차림의 사띠가 아닙니다. '이사띠(īsati)'입니다. 이사띠가 합해진 겁니다. 그래서 찟따의 따가 장음이 돼버립니다. '원래 찟따 이사띠' 입니다. '이사띠(īsati)는 지배자, 주인’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마음의 주인, 마음의 지배자'라는 뜻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그건 참 어리석은 일이라. 쉽게 말하면 '탐진치로부터 마음이 해방된 자'라는 뜻입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의 주인이고, 마음의 지배자이기 때문에 마음을 내가 잘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탐심이 일어날 때 내가 마음의 주인이기 때문에 ‘어, 그거 일어나면 안 돼’, 성냄이 일어나더라도 ‘어, 그거 하면 안 돼’, 게을러지려 할 때도 ‘어, 내가 이러면 안 돼’ 하고 내가 내 스스로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있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탐진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고 조우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름이 '찟따-사띠'입니다.
그다음에 박서은님은 이름이 '멧따야-니-(Mettayānī)' 입니다.
오늘은 멧따 이름이 두 사람입니다. 앞에 멧따부-미가 있고, 박서은님은 멧따야-니-입니다.
야-니-yānī)라고 하는 것은 야-yā, 니-nī 다 장음입니다. '마하야나(Mahāyāna)' 할 때 '야나(yāna)' 알죠? 야나 하고 같은 의미가 일부가 포함이 됩니다. '멧따라는 수레를 운반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멧따(mettā)로 인해서 행동하고 말하고 하도록 하라 하는 그런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야-니-yānī에 아-ā, 이-ī가 장음이 돼버리면은 '어떤 존재하는 것들도 그 까마(kāma) 감각적인 것들로부터 그것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수정하는 자격을 갖춘 자'라는 그런 뜻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 몸과 마음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몸과 마음밖에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도 생기고, 번뇌가 일어나는 욕구도 생기고, 갈망하는 욕구도 생기고, 감각적인 욕구들도 생겨납니다. 그런 것들을 갖다가 잘 조절해서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자가 되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게 야-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야-니-를 할 수 있는 게 뭐냐면 멧따로서 가능하다는 겁니다. 멧따가 있을 때는 그것을 조절하고 없앨 수 있고 수정하고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가 있는데 멧따가 없으면 그게 가능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멧따야-니-'입니다.
그다음에 홍은경님은 이름이 '브라흐마짜-리니-(Brahmacāriṇī)' 입니다.
사범주라고 하는 자비희사라고 하는 것들을 브리흐마짜라(Brahmacār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브라흐마짜라를 몸에 지닌 여성분을 얘기할 때 브라흐마짜리니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천신이 성내는 거 봤어요? 천신이 남을 해꼬지 하는 거 봤어요? 천신이 누구를 편애하는 거 봤어요? 그런 거 없다는 거라. 그래서 자비희사를 지닌 자를 범천과 같다 하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본인은 어떠한 경우든지 자비희사가 몸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렇게 자꾸 노력을 하라는 뜻으로 본인이 원하는 이름인 브라흐마짜리니를 그대로 지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여섯 분입니다.
자, 여섯 분들 다같이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스승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수계자들 함께 : 빤냐와로 입니다.)
한 사람씩 본인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멧따부-미입니다.)
(담마고-빠까입니다.)
(우빠라마-입니다.)
(찟따-사띠입니다.)
(멧따야-니-입니다.)
(브라흐마짜-리니-입니다.)
자, 수계식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
'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 > 2025 일상수행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불기2568년 사)한국 테라와다불교 담마와나선원 까티나 법요식 (20251019) (1) | 2025.10.19 |
|---|---|
| 졸음에 대처하기 (20251018) (0) | 2025.10.18 |
| 지혜가 열리는 조건 - 붓다의길따라선원 포살법회 법문. 20250906 (0) | 2025.09.07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평온함에 이르는 길이다. (20250816) (6) | 2025.08.17 |
| 사띠를 실천하며 사는 삶_재가자 포살법회(20250810. 담마와나선원) (5) | 2025.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