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일상수행법문 녹취/2025 일상수행법문

사띠를 실천하며 사는 삶_재가자 포살법회(20250810. 담마와나선원)

담마마-마까 2025. 8. 10. 19:00

* 사띠를 실천하며 사는 삶_재가자 포살법회(20250810. 담마와나선원)

https://youtu.be/H1Zz-i0sJpw?si=5oNPjYkNYd_G_-lO

<14:05초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오늘 팔계는 오랜만에 받죠? 아마 담마와나 선원에서는 몇년 만에 한번 받은 것 같은데. (수행자 : 안거 때 받습니다.) 안거 때는 되도록이면 받도록 그렇게 하십시요. 일주일마다 포살 팔계를 받는 게 좋기는 합니다.

 

원래 재가 포살은 일반적인 재가포살이 있고, 특별한 재가포살이 있고 그렇거든요.

'특별한 재가포살'이란 보통 한 5개월을 잡습니다. 안거 한 달 전부터 해서, 안 거 끝나고 나서 한 달 후까지, 그렇게 하면 5개월이 되죠. 5개월인데, 5개월 다 못 지킬 때는 안거 앞에 한 달, 또는 안거 석 달, 아니면은 안거 끝나고 나서 한 달, 그 세 부류 중에서 특별한 날을 지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특별한 재가 포살일이다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외에는 나머지는 전부 그냥 일반적으로 여러분들이 지키게 되는 포살일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포살일이 다가온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왜 포살을 지키라고 할까? 포살일이 되면 보통 뭘 해요?

계를 지키기 위해서 계를 받기도 하고, 그다음에 법문이 있으면 법문을 듣기도 하고, 또 스님들을 친견하기도 하고, 그리고 또 수행을 하기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이익들이 있죠. 그래서 그런 것들로 인해서 마음이 좀 더 청정해지고, 나쁜 마음보다는 좋은 마음이 더 많이 일어나게끔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그런 날은 보통 하루 밤낮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날은 적어도 여러분들 좋은 일을 좀 많이 하게끔, 그리고 마음도 좀 선한 마음을 일으키게끔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날 천상 세계에 있는 사천왕이 딱 여러분들을 보고 천상으로 올라간다고 그럽니다. 기록하기로는. 수담마라고 하는 모임홀에서 그것을 일일이 다 토론을 하고 기록을 하고 해서 다음 생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도록 한다 하고 경전에는 기록이 돼 있어요.

물론 사천왕이 직접 내려오는 때도 있고 아들이 내려오는 때도 있고 그다음에 사천왕 신하들이 내려오는 날도 있고, 이렇게 따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거는 여러분들이 뭐 알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일주일에 한 번씩은 포살일을 자꾸 지키려고 하는 습관들을 들일려고 해야 됩니다.

 

그게 지금 현대화가 되면서 음력을 잘 안 쓰기 때문에 양력을 기준으로 해서 이렇게 일요일을 기준으로 해서 담마와나 같은 경우 일요일이 아마 될 것 같은데, 일요일날은 포살일을 지키려고 하는 습관들을 자꾸 들이고 하면 적어도 그것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이익이 굉장히 많습니다.

 

얼마 전에 이제 그런 일이 있었어요. 계속 인터넷으로 법문을 듣다가 그날도 그 법문을 들었던 모양이라.

듣다가 몸에서 환희심이 확 일어나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경행을 하게 됐다는 거라. 수행을 하게 됐다는 거라. 근데 그전에는 걷는 게 불편해가지고 잘 걷지를 못했는데 그날은 환희심이 일어나니까 경행을 하는데 1시간 동안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이 그냥 그대로 알아차려지더라는 거라. 그걸 알아차림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보고를 했는데 참 잘했더라고. 무상한 성품들도 보고 하는 것들이 잘했더라고. 그래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이런 포살일 때 여러분들이 얻어질 수 있는 이익들입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걸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사천왕이 내려와서 그걸 기록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은 그건 차후의 일이고, 지금 당장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포살일을 지킬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알겠죠? (예)

 

오늘은 "사띠를 실천하며 사는 삶"이란 제목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사띠 안하는 시간이 더 많죠? 포살일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지켜야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잘 안 지켜지는 거하고 꼭 마찬가지입니다. 그마만큼 그냥 마음은 그대로 두면은 지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지금 당장 표가 나는 것도 아닌데 그거 하려고 안 합니다. 누가 당장 100원을 준다 할 것 같으면 내한테 100원의 이익이 눈앞에 보이지만, 바라밀을 행하고 계를 지키고 하는 것이 포함된 바라밀을 행하고 수행을 하고 하는 것은 당장 눈앞에 드러나지는 것이 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래서 대승불교 스님들이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거든요.

아주 나이 많이 들고 나서 ‘참 내가 헛살았다. 올바로 공부하는 법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끔 그렇게 살다 보니까 깨달음이라는 거는 저 멀리 가버리고 그냥 세속이나 마찬가지로 그냥 절 운영하기 바빠가지고 그 길을 따라 세월 다 보내서 죽음이 왔구나’ 하고 이제 후회하는 경우들이 보입니다.

재가자들은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냥 그대로 놔두면은 나중에는 좋은 법을 만나고 해도 그 법을 실제 체험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내가 좀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한 생을 마칠 수가 있습니다. 그냥 마음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지가 하고 싶은 대로 놔줘 가지고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계를 지키는 것도 꼭 장소나 이런 것들은 어디서 해도 관계는 없는데, 본인이 그날만큼은 팔계를 지키면서 청정하게 살려고 하고, 그리고 그날만큼은 적어도 탐진치를 일으키지 말고 마음에서 자애의 마음들을 자꾸 일으키면서 뭔가를 할려고 하는 마음들을 가지고, 또 모든 것들을 행하고 말하고 할 때 사띠를 지닌 채 하려고 하고, 그렇게 자꾸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을 강제로라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도록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자기중심적으로만 가는 거라. 그리고 자기가 하고 있던 것들을 자꾸 합리화시킵니다.

 

일상생활 바쁘죠? 일상생활을 하는 행위보다 망상하는 숫자가 훨씬 많으면 어떡할 거 같애? 그거는 좀 줄여야 안 될까? 망상하는 거. 망상하는 걸 줄이지 않으면은 그 망상이 자기 자신을 잡아먹습니다.

 

망상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거가 있어요?

사띠입니다. 그거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사띠하라."

그러면 불현듯이 망상은 불쑥불쑥 또 튀어나올 겁니다. 튀어나오더라도 그것도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아, 또 망상하고 있네’ 하고 사띠하라는 거라. 아마 망상을 잡으려는 생각보다 사띠한다는 생각을 먼저 해버리면은 망상은 끊임없이 나올려고 아마 몸부림을 칠 거라. 처음에는 그게 너무나 자주 나와서 오히려 사띠를 안 할 때보다 더 힘들다 하는 말들을 합니다. 그래도 해야 돼. 해야만이 그런 망상하는 습관들을 안 가지게 되지,

 

어제 밤부터 밑에는 비가 좀 많이 왔거든요. 아침에 이제 기차를 타고 가려고 나오는데 비가 많이 와요. 그냥 차를 타고 가면 문제는 없는데, 비가 오니까 그냥 일으키는 생각이 ‘어, 비 오네. 우산 가지고 가야 되겠네’ 하고 우산을 챙겼어요. 그거 뿐이라.

근데 망상하는 사람들은 ‘어, 이거 서울 비 안 온다던데 이거 필요 없겠네’ 생각을 합니다. 또는 ‘아, 왜 이렇게 법회 있고 하는 날 비가 와갖고 이렇게 또 힘들게 해’하고 탐진치를 일으킨다는 거라. 그냥 비가 오니깐 비를 안 맞기 위해서 우산을 가지고 나오는 거 그것만 하면 딱 되는데, 그 이상을 갖다 자꾸 만들려고 사람들은 한다는 거라.

 

망상이 그런 것들입니다. 쓸데없는 것들이 일어나는 것들이 망상의 영역에 속합니다. 아무 이익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생각 일으킨다 해가지고 그게 하늘에 닿아가지고 하늘이 비를 그쳐주는 것도 아니잖아. 자기 마음만 오히려 탐진치에 물들고 나쁜 업을 짓게끔 되는 것밖에 없는데, 왜 그러고 있냐는 거라.

보이면 보인다고만 분명히 알아차리고 ‘비가 오네’ 하고 봤어. 그러면 ‘우산이 필요하겠네’ 하고 생각을 일으켰으면, 우산을 가지고 가면 돼. 거기서 딱 끝나버리면 되는 거라. 그 이상의 것은 필요가 없는 거라.

 

예를 들어서, 누군가를 봤다. 그러면 봤다고만 알아차리면 되는 거라. 그러고 나서 저장하면 돼. 근데 그걸 그 사람으로 인해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낼 필요도 없고,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마음을 탐진치를 일으킬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게 다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탐진치를 일으키라고 얘기하지도 않았고, 과거를 끄집어내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누가 한 거라? 내가 한 거라.

 

본인이 사띠하지 못함으로 인해 가지고 본인의 마음에서는 계속적으로 탐진치가 일어나고, 그러면서 자기 일을 합리화시킵니다.

마음은 사띠를 하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든지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니가 나에게 돈을 빌려 갔으니까 돈을 안 갚았기 때문에 난 너를 보면 미운 마음이 든다.’ 저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자기에요. 자기의 마음이.

마음은 항상 본인에게 저장되어 있는 것, 본인의 습관에 의해서 길러진 것들을 가지고 망상을 계속적으로 일으키게 되는 거라.

 

그래서 육근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을 그냥 그 단계에서만 보면 보는 대로, 느끼면 느끼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거기서만 알고 끝내도록 자꾸 하는 훈련들이 돼야 됩니다. 그게 사띠하는 습관입니다.

망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 이후에 일어나는 것이지, 그 이전에는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밑에 보면, "사띠를 통해서 지혜를 얻고 그 지혜로 인해 생명을 올바르게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돼있습니다.

사띠를 하면 지혜는 일어나집니다. 어떤 지혜일까? 집착하는 것들이 조금씩 없어집니다.

내가 아무리 저 사람하고 옛날에 원수 관계에 있고 채무 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전에는 저 사람을 봤을 때는 분노가 일어났는데 사띠를 하고 있으면은 저 사람으로 인해서 분노를 일으키질 않는 거라.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거라. 어떨 때는 ‘아, 그래. 아직 내가 그것들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 사람이 언젠가는 갚겠지’ 하는 마음을 또 일으킬 수가 있는 거라.

 

여름철이니까 대표적인 게 그럴 겁니다. 특히 이제 우리 선원 같은 경우는 땅이기 때문에 벌레들이 참 방으로 많이 들어와요. 자다 보면 탁 물고 그래요. 근데 이제 그러고 나서 그걸 발견했거든.

바퀴벌레다 그러면 요놈하고는 같이 살 수는 없는데, 요놈을 어떻게 몰아내느냐 하는 거라.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할 거 같애요? 아마 그거 몰아내려고 난리를 피울 겁니다. 쫓아다니든지 뭐 쓰레받기든지 이런 거 가져와서 떠가지고 죽이면 안 된다니까 안 죽이려고 막 애를 쓰면서 보낼 거라. 근데 하루는 그놈하고 얼굴을 마주쳤어요. 그래서 “어떡할래? 같이 못 사는데 내가 나갈까?” 혼자 말을 그렇게 해봤어요.

 

마음에는 자애의 마음을 지닌 채, 나도 살고 니도 살고 하는 방식을 택하려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니까 가만히 있어요. 바퀴벌레가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파장은 전해지거든. 나를 해치려고 하는 파장이 아니라 그냥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들은 동물들도 압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놔 주니까 사르르 나가는 거라.

 

어떤 방법이 맞을까?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그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맞아요? 아니면은 탁 죽이는 게 맞아요? 아니면은 죽이지는 않고 계율에 얽매여서 그거 지키려고 막 발버둥 치면서 사띠는 다 놓쳐버리고 하는 것이 맞아요?

그냥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숲이 많고 우리 선원 같은 경우에도 나무들이 많기 때문에 뱀이 많습니다. 한 번도 뱀이 나를 보고 다가와서 물은 적이 없어요. 숱하게 하루에도 몇 번씩 보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그냥 스르르 지나가요. 마음에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동물들도 자기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자기를 해치지 않으면 사람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거라.

 

자애의 마음, 특히 사무량심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걸 지닐 수 있는 것은 사띠 입니다.

사띠로 인해서 자애의 마음을 지니게끔 되고, 사띠로 인해서 까루나의 마음을 지니고, 다른 마음들을 지닐 수 있는 겁니다. 사띠 없이 자애의 게송을 할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그마만큼 사띠는 더불어 살기 위해서 사무량심을 향상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2페이지에 보면, "만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있습니다.

경전에 보면 "산뚯티빠라망 다낭(santuṭṭhiparamaṃ dhanaṃ)"이라고 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만족이 가장 큰 재산이다." 하고 담마빠다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만족하고 살까? 지금 있는 것으로서 그냥 ‘나는 이거면 충분해’ 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고 있을까?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동 패턴이 달라집니다. 있는 것들을 오히려 누릴 줄을 압니다. 그래서 설혹 내가 다른 사람보다도 가진 것이 적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으로 만족을 합니다. ‘내가 생활하는 데는 이것만 해도 충분해’ 오히려 내보다 못한 사람이 눈에 보이면은 그분에게 그걸 나눠줄 줄 압니다. ‘내가 빚이 없는 게 어디야. 그러면 됐지 뭐.’ 그런 마음들을 가지게 됩니다.

 

일상생활 하면서 행복이라는 것은 멀리서 자꾸 찾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산뚯티(santuṭṭhi), 만족이라고 하는 부분이 형성이 되면 행복은 찾아오게끔 됩니다. 근데 그걸 모르면은 점점 자신은 재산이면 재산, 어떤 것이면 어떤 것, 그거 채우기에 급급하게 살아갑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알아요?

 

마음은 자기가 관리하지 않으면 숨을려고 합니다. 자꾸 합리화를 해냅니다. 그 합리화를 위해서 거짓말까지 불사합니다. 그리고 남을 미워하고 하는 것까지도 불사하게 됩니다. 마음이 숨을 장소를 만들어 줘버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정직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마음이 정직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떠한 경우든지 왜곡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지금 스스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만족하는 삶들을 자꾸 살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밑에, "행복이 이르는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들을 적어 놓았고,

그 위에는 "얻을 수 없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다" 하는 것을 적어놓았습니다.

그렇게 많이 필요하질 않습니다, 사는데. 그래서 "행복에 이르는 삶의 방식, 네 가지 수카 부분", 행복에 대한 것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뒤에,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자비희사의 사무량심" 부분입니다.

아까 바퀴벌레 얘기를 했죠. 사무량심이라는 것은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 세상은 혼자서 독립해서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되고 누군가를 도와줘야 되는 구조입니다.

그러면 더불어서 그냥 잘 살 수 있는 것들을 택하는 것이 맞다는 거라.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이 자·비·희·사라고 하는 사무량심입니다.

 

가끔 스님이 그런 얘기를 하죠. "자애를 지니지 않은 채는 어떠한 경우든지 말도 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아라." 자애를 지니지 않으면은 내가 하는 말들은 바른 말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말인데도, 남하고 다툴 수 있는 말인데도, 자기는 합리화시킵니다. 이건 법에 맞는 거니까. 아무리 법에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라.

차라리 그럴 바에야 법은 그냥 내가 드러내든 안 드러내든 있는 그대로 있는 겁니다. 내가 차라리 자애를 지니고 있는 게 훨씬 더 이익이라는 거라. 적어도 다른 사람과 다투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다툼이 많고, 또는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항상 사무량심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뭔가를 지금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게 뭐가 중요한 것이냐 하는 겁니다.

그것보다는 스스로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그것이 퍼지면 행하고자 하는 것들은 이루어지게끔 된다는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 밑에 5페이지 보면, "나쁜 마음은 설령 농담이라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이제 아이들에게 착한 거짓말이라고 핑계 대고 하는 것, 그것들 안 돼. 어떠한 경우든지 착한 건 착한 거고,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그걸 합리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그게 자꾸 습관이 되면은 자기뿐 아니라 아이도 그대로 본받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탐진치를 일으켜서 그것을 습관화 만들 수 있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그걸 행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잊지 않도록 하고.

 

밑에, "밤낮으로 사띠를 실천하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싶다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사띠하며 닙바나를 향해 나아가라." 하는 담마빠다 게송을 인용해 놓았습니다.

 

사띠하는 습관들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사띠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시간이고 죽은 생활이다' 하고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경우든지 지금 일어나는 현상들을 갖다가 사띠할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아마 사띠하는 습관이 조금만 몸에 익으면 망상하는 거는 많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생각이 앞서가지를 않습니다. 지금 현재 일어난 것들만 그냥 그대로 해결해 나가려고 하지, 저 멀리 일들을 갖다가 생각하면서 그것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받지는 않게끔 된다는 뜻입니다.

사띠하는 습관들을 자꾸 가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