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 빤냐와로 스님 수행법문 녹취/칠각지, 칠청정 법문

우뻭카(upekkhā)를 개발하는 방법(20140724)

담마마-마까 2021. 7. 22. 08:45

https://youtu.be/XQg5Swn878Y

* 우뻭카(upekkhā)를 개발하는 방법(20140724)

 

누가 양초 가져왔나? (수행자 대답)

어쨌든 선원에 초가 필요하겠다 판단해서 사온 건데, 오늘은 여성 수행자들이 한 열 명 넘어 되는데 탁발할 때 음식 탁발한 분 세 분밖에 없더라. 그것 갖고 다 갈라 먹을 수 있겠어? (수행자 대답 : 충분합니다.)

충분해? 충분하다면 됐고. 목요일 날은 봉투 넣는 것보다 음식 만드는 게 훨씬 여러분들한테 공덕이 됩니다. 스님이 여기서 음식 넣는 사람에겐 "이당메 다낭 닙바낫사 빳자요 호뚜" 그러고, 봉투 넣는 사람에겐 "이당메 다낭 수키 혼뚜" 합니다. "행복하시오" 하는 것하고 "깨달음에 이르시오" 하는 건 많이 다르지. 차별하려해서 차별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음식을 만들 때 그마만한 공덕들이 충분히 있습니다. 만들 때 기쁘고, 이것을 스님이 잡숫고 좋은 법을 설해준다는 생각 때문에 기쁘고, 또 남는 음식들 도반들하고 나눠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기쁘고, 그 기쁨들은 오히려 봉투에 넣어오는 것보다 훨씬 좋으니까 봉투 넣을 생각들 하지 말고 음식들 만들어 오십시요. 좀 맛있는거 먹어보자. 농담이고.

 

오늘은 우뻭카삼보장가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우뻭카가 뭡니까? 예? '평온함' '우빠 익카띠(upa-ikkhati)'를 줄인 명사형이죠! '우빠(upa)'라고 하는 거는 '따라간다'는 그런 의미도 있고, '익카띠(ikkhati)' 라고 하는 것은 '관찰한다' 하는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뻭카'라고 하는 것은 '우빠익카띠'의 명사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빠익카띠'라고 할 것 같으면 '계속 따라가면서 관찰해서 거기에 동요되지 않는 상태'를 얘기할 때 '우빠익카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우뻭카'라고 해서 '항상 고요함을 유지하고 또 균형 잡혀있는 것들을 유지해있는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Upa 라는 접두어는 '침착하게, 포괄적으로'라는 의미가 있는데, 거기에 ikkhati 라는 '보다, 관찰하다'가 합쳐진 동사 upekkhati의 명사형이 upekkha 이므로, '침착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수행할 때 이걸 내가 조금 더 노력을 해야 될 것인지, 아니면 삼매를 개발해야 될 것인지, 아니면 믿음을 조금 더 강하게 해줘야 될 건지, 이렇게 균형 잡아주는 추가 뭐라? 어떤 게 균형을 잡아줄 것 같애요? 그게 우뻭카라고 하는 겁니다. 우뻭카가 개발이 안 되면 이 균형을 잡기 힘듭니다.

 

쉽게 얘기하면 삼매에 푹 빠진다, 그러면은 삼매에서 그것을 대상으로 해야될 때가 있고 대상으로 하지 말아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한 니밋따가 생기면 아, 니밋따가 생겼다 하는 것만 알고 놓아버리고, 그냥 호흡으로 돌아와야 되는 거고. 그리고 니밋따가 아주 강하게 되고 변하지 않는 상태가 될 것 같으면 인제는 호흡에서 그 니밋따로 대상을 해야 되는 거고, 또 수행에서 삼매에 들어가서 대상이 없을 때는 빨리 마음을 바꿔서 열반을 대상으로 한다든지 이렇게 전환을 시켜줘야 되는데, 대부분 집중력이 강한 사람들, 집중력만 강한 사람들은 그걸 균형을 못 맞춰.

그럼 대부분 보면 니밋따 생기면 좋다고 쫓아댕기다가 홀라당 시간 다 가버리고, 또는 수행에서 고요해지면은 호흡조차도 사라져버린 상태가 되면 뭘 대상으로 해야 될지 몰라서 방황하다가 홀딱 깨어나버리기도 하고 이렇게 됩니다.

 

그런 집중력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우리가 부처님을 보면 그냥 덤덤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어떨 때는 부처님 보고 아, 참 좋은 분이란 생각 때문에 눈물 주르르 흐르기도 하고 합니다. 그런 콘트롤을 해서 그걸 믿음이 강한 쪽으로 해서 쭉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들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에 휩싸여버리게 됩니다.

부처님 하면 이해가 잘 안 돼죠? 어느 스님 좋다 그러면 '아, 그 스님 법문 잘한다. 그 스님 수행지도 잘한다' 하면 홀라당 빠져갖고 고마 허부적허부적 쌌다가, 한참 있다가 또 '에이' 하고 돌아섰다가, 또 다른 데 가서 또 허부허부적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걸 어떤 식으로든 균형을 맞춰주고 잡아줘야 되는데 그게 우뻭카가 없으면 안 되는 거라.

 

그래서 단순히 우뻭카라고 하는 것이 마음의 고요함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균형을 잡도록 해주는 역할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밖에 대상들이 일어났을 때 그 대상에 대해서 내가 알아차림을 육근에 둘 것 같으면 밖의 영향을 안 받습니다. 그러면 고요하게 그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밖에서 무슨 장난을 하든 간에. 근데 고요함은 유지될지는 몰라도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균형감이 생겨서 그 대상으로 인해가지고 내가 더욱더 한 단계 탁 뛰어넘을 수 있는 역할들을 해주지는 못한다 할 것 같으면, 아직은 우뻭카를 완전히 개발하지 못했다 하고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우뻭카를 개발하는 방법에 대한 것들을 먼저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말을 잘 다루는 사람들은 말한테 채찍질도 하지 않을 뿐아니라 말 고삐를 잡는 것도 거의 말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끔 합니다. 그러면 말이 지가 잘 가요. 그게 사실은 가장 유능한 마부인 겁니다. 말은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자기가 알맞은 속도로 또 가야 될 곳으로 정확하게 갑니다. 그래서 피해야 될 곳들은 피하게 되고. 그런데 인제 그걸 못하는 사람들은 말고삐도 잡아야 되고 말도 채찍질도 해야 되는 거고 그렇게 되는 것들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TV에서 그런 거 본 적 있어요? 동남아시아에 가면 무거운 물건을 양쪽에 얹어서 휘청거리는 대나무를 어깨에다 걸쳐 갖고 요렇게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올라가는 거 혹시 본 적이 있어요? (수행자 대답)

그 무게만 해도 굉장히 무겁습니다. 우리는 들라고 해도 잘 들지도 못해. 그런데 그 사람들은 가볍게 드는데 이렇게 올라가면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반동을 넣어서 스무스 하게 가는 것들이 보입니다. 별로 그렇게 힘들지 않게끔 갑니다.

처음 시작할 때 발자국을 한번 세어보십시오. 한 열 발자국 열다섯 발자국 내에 그 반동이 생깁니다. 그 열 발자국 열다섯 발자국 할 때에는 균형만 맞춰줍니다.

 

양쪽으로 균형만 맞춰서 그렇게 움직이다가 발의 발란스 하고 무게의 발란스 하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반동이 생겨서 이렇게 산길을 올라갑니다. 그러면 크게 무게감도 들이지 않고 그 길을 올라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게 저 사람들이 수행에서 우뻭카를 모를지는 몰라도 현실적인 우뻭카들은 참 잘하고 있구나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균형을 맞춰서 어떻게 하면 힘들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을 요령은 터득한 사람들이라.

 

그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수행에서 그게 안되면 실제 생활에서는 그거는 돼야 될 거 아니라. 그렇죠?

실제 생활에서 균형이 잡혀있는 우뻭카가 개발이 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표가 납니다. 그 물건을 지고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기야 여기 주부들이 있으니까 칼질하는 거 보면 아주 스무스 하게 잘 무리 없이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썩둑썩둑썩둑 하고 그러다가 지 손을 베이기도 하고 그러는데, 칼을 내릴 때 하고 그다음에 손을 움직일 때의 균형들이 딱 맞으니까 빠르게 하는데도 자연스럽게 칼질을 해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아, 저 사람이 우뻭카가 실제 생활에서 좀 잡혀있나 안 잡혀있나 하는 것이 표가 납니다. 여기 한번 볼까?

우선 좋은 옷 입은 사람, 그 사람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우뻭카가 실제 생활에서도 안 되고 있는 겁니다. 우뻭카가 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는 것이 없고 밀쳐내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근데 아래위로 뭐 때깔 맞춘다고 그러나? 때깔 맞출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지금 내 상태에 맞게끔 거기에 맞게 좋은 옷들을 입었고 좋은 신발을 신을려고 한다고 할 거 같으면 그 사람은 실제 생활에서도 우뻭카는 개발을 못시키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 우뻭카를 개발하기 위한 방법

 

우뻭카는 쉽게 말하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게 점점 더 강해지고, 그런데 그 우뻭카는 한번 일어났다 하면 바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런데 그걸 지속시켜주는 힘들이 생겨났을 때 그때는 균형을 맞추는 역할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됩니다 우뻭카를.

어떠한 경우에도 처음에 우뻭카를 할 때는 대상에 대해서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흔들림이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 첫 번째 무생물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이 없도록 만들어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그다음에 집 옷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크게 집착하는 것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첫 번째라는 그런 뜻입니다.

얼마 전에 테라와다 스님 한 분이 오셔가지고 양말을 하나 달래. 그래서 양말을 나는 여기 꽂아두는 데가 있거든. 저기 꽂아놓은 데가 보이지 않느냐. 보인다고 그러더라고. 거기 가서 필요한 거 가져가 그러니까 가져가더라고. 근데 그 앞에서 한참 동안 이렇게 골라. 어떤 게 예쁜가. 지금 여름이니까 물론 가벼운 것들을 신어야 되는데 그걸 골라가지고 나한테 오는 거라.

오면서 나한테 씨익 웃어. 쟤가 왜 웃지 하고 보니까, 그 스님은 그중에서 가장 지가 생각할 때에 예쁘다고 생각한 거를 골라가지고 간 거라. 나는 그걸 몰랐어. 나중에 그 스님이 그러는데 아, 스님 그걸 고를려고 한 게 아니고 다른 거를 고르려고 했는데 그게 자꾸 눈에 가가지고 만져보니까 예뻐서 그걸 가져갔대. 그래서 그냥 씩 웃고 말았는데, 가져갔으면 가져간 거지 뭐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스님들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마음이 혹하게 됩니다.

 

근데 여러분들에게 물건을 사러 갔을 때 요렇게 요렇게 있는데 예쁜 거 예쁘지 않은 거 구분 안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값어치 따져보고 아, 이것이 가격대비 질이 낮다 뭐 어떻고 하면 돈을 조금 더 줘가지고 요것도 사고, 어떤 경우에는 사량분별을 해가지고 요걸 사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거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렇게 해가지고 사온 거 스님도 솔직히 보면 누가 이렇게 주고 어떨 때는 내가 가서 사기도 한 것들을 여기 이렇게 양말이고 이렇게 놔두는데 어떤 것이 비싼 거고 어떤 것이 싼 건지 어떤 것이 좋은 건지 몰라. 보이는 대로 그냥 신게 되는 거지. 실제로 나중에는 별 의미가 없는 건데 괜히 그때는 그거 하고 있는 거라. 그러고 나서 자기는 잘 샀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거고.

 

그렇지는 않다는 거라. 오히려 그렇게 할 동안에 마음에는 계속 더 번뇌들만 키워주는 역할들을 한다는 거라.

물건을 하나 산다고 하더라도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남이 가져간다? 아깝지 않게 생각할 사람이 또 누가 있느냐는 거라. 그런데 실제 아까운 거 아니거든. 여러 개 있는 양말 중에 하나 빼간 거 별 의미 없는 것들이라. 그런데 의미를 자꾸 부여하다 보면 '아, 짜식이 그거 하고 많은 것 중에 똑 그거 예쁘고 좋은 거 가져갔네' 이래 버린다는 거라. 그거 없어도 얼마든지 다른 양말들 신을 수가 있는데.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는 것들도 없어야 되는 거고, 새로운 것들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어야 되는 거라. 그래야만이 무생물들에 대해서 어떠한 경우든지 평온한 마음들을 유지해나갈 수가 있다는 거라.

 

양말 하나 예로 들었지만 무생물이 그게 양말 하나만 해당이 됩니까? 모든 것들이 다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거 별 의미 없다는 거 압니다. 그거 다 변하는 것들이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거고, 그리고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들을 알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그걸 못하고 있는 거라.

실제 생활에서 자꾸 그걸 만들어야 됩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되는 거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마음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첫 번째 부분입니다.

그걸 할 줄 알면 적어도 양쪽 막대기에 무거운 짐을 지고 갈 때 무겁지 않게끔 올라가는 법은 터득하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인제는 무생물이 아니고 생명체.

자신의 가족의 예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가족에 대해서 과연 내 생각과 다를 때 과연 그 사람들을 얼마만큼 이해해주고 또 그 사람들을 얼마만큼 고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자신의 가족에게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그게 가능하겠어요? 생명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든지 우뻭카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설혹 그것이 견해가 다르고 또 그것이 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내 마음이 흔들리도록 하면 안됩니다.

 

전에 언젠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 스승님이 애들이 떠들고 있으니까 애들한테 “조용히 해라” 또 한참 있다가 또 똑같은 톤으로 “조용히 해라” 계속적으로 일정한 텀이 지나고 또 와서 하고.

 

멧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해서 “조용히 해라”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리해도 한 시간이 지나도 똑같이 떠들고 있다 할 것 같으면 멧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어떤 것이 이로운가 하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가 수행을 중단하고 내려가서 저 애들을 데리고 저쪽으로 가서 “야들아, 이리 오너라” 해서 또 저쪽으로 데리고 가서 애들이 거기 가서 놀게끔 해줍니다. 그러면 적어도 여기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 소리에 영향을 안 받고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우뻭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똑같은 일인데도 그 행동을 안 합니다. 자기 수행을 중단하는 손해는 보지 않는 거라. 자기 수행 그대로 하면서 마음을 뭐로 먹느냐 하면 지금 내가 해야 될 거는 지속적으로 애들한테 “조용히 해라”하면서 조용히 해라 말하는 걸 내가 스스로 알아차리고 있는 것, 단지 내가 할 일은 그것 뿐이라는 거라.

애들은 애들의 업으로 그렇게 조용히 해라 계속해도 거기서 잘 놀고 있는 거고, 또 안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도 지 업이 그렇게 돼있으니까 그 소리는 어쩔 수 없이 들으면서 영향을 받으면서 수행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라.

 

한편으로는 멧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현명한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뻭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가장 현명한 것들이 뭔가 하는 것을 판단을 하는 거라. 지금 현재 내가 이 수행을 그만두고 가서 멧따를 가지고 이 애들을 옮겨주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애들을 옮기든 안 옮기든 그냥 내가 할 일은 애들한테 “조용히 해라”하고 얘기를 하는 것, 그 자애의 마음을 가지고. 그런데 실제로는 그것이 훨씬 훌륭한 일이라는 거라.

 

내가 지금 그럴 시간에 깨달음을 이룰지 안 이룰지 어떻게 알아? 지금 중요한 게 뭔지를 잊어버리지는 않는다는 거라. 이 고요한 상태 이 평온한 상태 우뻭카가 개발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바로 그다음에는 지혜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근데 이 우뻭카를 중단을 하고 멧따의 마음을 가지고 애들을 데리고 간다? 그거는 다른 말로 할 것 같으면 사선정에 올라갔다가도 다시 또 일선정 이선정으로 내려오는 거하고 마찬가집니다. 의도적으로.

 

생명체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들입니다. 단지 내가 할 일들은 분명하게 하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나아가고 지금 해야 될 일들이 뭔지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 오늘 같은 날은 조금 귀찮은 일이라도 탁발법회면 오늘 내가 할 일은 공양물 올리는 것이다 할 것 같으면 공양물 올리는 것 그것이 맞습니다. 그 기본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거라.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 내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것, 우선해야 될 것과 우선하지 않아야 될 것, 이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거라. 거기에는 어떤 집착도 없고 어떠한 미워하는 마음이나 밀쳐내는 마음들도 없어야 된다는 거라.

 

대상은 점점 더 확대돼 나갑니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그러다가 자기 애들에게, 그러다가 조금 더 넓혀서 선원 식구들에게,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점점 더 넓혀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도 똑같은 마음들을 가지게 됩니다. 이게 생명체에 대해서 우뻭카를 실천하는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우뻭카를 실천하는 것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가까이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화요일날 망갈라 숫따를 하고 있는데 망갈라숫따의 맨 첫 번째 게송이 '아세와나 짜 발라낭' 그렇게 얘기합니다. '나쁜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지 말아라.'

간단하게 설명을 할게요. 나중에 망갈라 숫따 할 때 그걸 전부 풀어서 해줄 겁니다.

 

나쁜 친구는 네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첫 번째 '안냐다투하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가지고 도망을 가는 것.

내 것들이 자꾸 없어지게끔 만드는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자기 손해 볼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거라. 친구에게는 잘해주는 것처럼 하면서 말로만 하지 실제로는 도움을 주는 일이 없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나쁜 친구의 두 번째가 '와찌빠라망' 이라 하는 겁니다. 수다 떠는 것. 아무런 이익이 없는 얘기들을 계속적으로 하게끔 만들고 또 하는 사람들. 대부분 여러분들 친구들은 아마 여기에 해당이 될 거라.

 

별 의미 없는 것들인데 그게 뭔 이익이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얼마 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상가 스님들 중에 무슨 문제가 있어가지고 그걸 스님이 문제 당사자를 만나서 문제해결을 해서 더 이상이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말아라 하고 분명하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상가에서 이것은 조치를 취해서 해결을 하겠다. 그래서 상가에서 조치를 취해서 해결을 했고,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분명히 그렇게 선언을 했고, 그런데도 계속적으로 그 소리가 들리는 거라. 뭔 의미가 있다고.

상가 스님들을 믿었을 거 같으면 딱 믿어야 되는 것이고, 또 상가에서 조치 내린 것에 대해서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상가 스님들도 더 이상의 재론이 없어야 되는데, 상가 스님들은 상가 스님들대로 뭐 어쩌고저쩌고, 재가자들은 재가자들대로 어쩌고저쩌고. 어떨 때는 ‘아이고, 이거 오래 하다 내가 내 명에 못살겠다.’ 의미 없는 것들, 쓸데없는 얘기들로 시간을 보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수행하고 부처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뭐 하러 그래. 안 아까워 그 시간들?

 

그다음에 세 번째 '아누삐야 바니'라고 그럽니다. 나를 나쁜 것 하도록 꼬드기는 것들. “어디 술 먹으러 가자.” “뭐 어쩌자.” 아니면 뭐 “증권 있으니까 요거 사자.” 사실 거 도박입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할 생각 안 하고. 아니면 “저기 좋은 땅 있으니까 저거 사두자.” 그런 것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거 그렇게 해가지고 땅 사두었다, 또는 어떤 복권 사가지고 일등이 됐다, 뭐 할 건데 그거? 그것으로 오는 피해는 생각 안 하고? 자기가 피땀 흘려서 모은 것이 아니면은 그마만한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오히려 더 큰 과보들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왜 잊어버리느냐는 거라.

 

그다음에 '아빠야 사하야'라고 그럽니다.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 나를 점점 더 힘들게 만드는 것들, 나를 윤회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들, 그런 친구들은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우뻭카를 개발하기 위해서 세 번째 길이 그런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말아라 하고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얘기하는 것이 그대신에 자기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들, 선한 사람들을 가까이하도록 하라. 여기서 선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엄밀하게 얘기하면 부처님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 어떤 스승들보다도 아니면 또 다른 영향을 미치는 스승들보다도 부처님이 우선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안 계시니까 그것을 대신해 줄 스님이라든지 아니면 좋은 도반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가까이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좋은 도반은

여러분들에게 뭔가를 자꾸 나눠주는 것. 법을 설해주든 아니면 여러분들에게 이익되는 것을 갖다가 자꾸 만들어주는 것이든 힘들고 하더라도 자꾸 어디 수행하는 데 있다, 어디 법문하는 데 있다 할 것 같으면 끌고 가는 사람들, 여러분들에게 자꾸 나누어주는 친구들을 자꾸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웨이야 와짜'라고 그럽니다. 항상 소중한 말, 사랑스러운 말, 나를 존중해 주는 말, 친절한 말들로써 인도해주는 사람들. 어떠한 경우든지 화를 내고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경우든지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서 하는 말들을 해주는 사람들. 또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세 번째 '앗타짜리야'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는 것.

도움이 되는 일이 뭔가? 우리 선원에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이 뭔가? 또 이 선원에서 필요한 것이 뭔가? 그걸 생각할 줄 아니까 초도 사오고 다른 사람들에게 좌복도 먼저 내가 깔아주고 그렇게 한다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가 '사만냐따야' 라고 그럽니다. 자기와 동일하다고 항상 생각을 하는 것.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을 해줍니다. 이런 친구들을 가까이하도록 자꾸 하라 하고 얘기합니다.

이것까지는 쉽죠? 우뻭카를 만들기.

 

그다음에 우뻭카를 만들기 위한 다섯 번째 조건이 있습니다. 진리와 함께 사는 버릇을 들여라. 그것이 내가 행동하고 말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법답지 못하면 아예 하지 말아라. 법답지 못하면.

화내는 거 법답지 못하죠? 욕심부리는 것도 마찬가지고. 또 내가 나쁜 행위 하는 것도 법답지 못합니다. '아, 이게 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할 것 같으면 즉시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중단하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진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첫째 조건들을 뭐라고 하느냐면 계··혜의 토대가 되는 행위들을 자꾸 하라. 계정혜의 토대가 되는 것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하는 열 가지 선한 일들입니다. 그것들을 자꾸 하라는 거라. 그리고 바라밀을 쌓는 것들도 거기에 해당이 되는 것이고.

 

그다음에 두 번째가 알아차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라. 어떠한 경우든지 그 대상을 알아차리면 우리는 이미 그 대상을 사량분별해서 알게 됩니다. 그리하더라도 '아, 그것이 일어났다' 하고 알게 됐을 때와 모를 때는 차이가 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의 귀에다가 마음을 두고 있을 거 같으면 여러분들은 지금 현재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귀에서 들리는 소리만 분명하게 압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귀에다가 마음을 두지 않을 거 같으면 오만 것이 다 보입니다. 오만소리 딴소리들이 다 들립니다. 알아차림이 있어야 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있는 거라. 그럼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알아차림을 두어야 됩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지금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호흡에다가 딱 두면 호흡을 압니다. 그런데 거기 안 두고 있으니까 호흡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꼭 그와 같습니다. 소리는 들리는데, 소리 들리는 데다가 마음을 두지 않을 거 같으면 그 소리가 들리는 줄 실제로는 모르는 거와 꼭 마찬가집니다. 실제로는 많은 소리가 들리고 많은 것들이 보이고 하는데 마음을 거기 두지 않으니까 그런 거라.

 

마음을 먼저 두라는 거라. 알아차림을 먼저 두는 훈련들을 자꾸 하라는 거라. 그래야 법답게 살 수 있는 단초를 만든다는 거라. 그럼 알아차림을 두면 그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가 돼요? 반드시 도망가버립니다. 그러면 고놈을 다시 끄잡고 와가지고 거기에다 다시 또 넣어야 되는 거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까도 얘기했지만 말을 채찍질 가하지도 않고 고삐를 끌어당기지 않아도 저절로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게 자연스럽게 사띠가 계속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되는 거라. 알아차림이 자연스럽게 거기에 머물러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자꾸 훈련을 해야 됩니다. 도망가면 잡아오고 도망가면 잡아오고 지속적으로 계속 해야 됩니다.

진리와 함께 살려고 하면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는 걸 어떡할 거라. 그래야만이 내가 소리가 들리더라도 이미 귀에 가 있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해나가기 때문에 밖에서 하는 소리들에 영향을 안 받게 되는 거라. 항상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계속적으로 유지해나가게 됩니다. 균형을 딱 잡게 됩니다.

 

알아차림이 지속되지 않으면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뻭카를 개발할려면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놓쳐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대상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대상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실제 현재 일어나는 것들은 모든 것들이 대상이다 라고 생각해서 그 대상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 일어난 것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 알아차림이 지속돼 나가도록 자꾸 할 것 같으면 딱 균형이 잡혀버립니다.

지금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삼매에 들어가야 될 때인지 아니면 지금 조금 더 이 알아차리는 것들을 더 강하게 해나가야 될 때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자! 이렇게 해나가면 적어도 우뻭카를 개발해 나갈 수가 있고 우뻭카가 여러분들 몸에 딱 달라붙어서 변함이 없게끔 됩니다.

적어도 우뻭카의 상태가 돼야만이 인제는 그 뒤에는 진리의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됩니다. 그 뒤가 바로 '고뜨라부(gotrabhū)'라 해서 부처님의 가족이 되는 일원이 되는 상태가 됩니다. 항상 우뻭카의 마음들을 개발하고 그것들이 벗어나지 않도록 자꾸 만들 수 있게 해야 됩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