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아차림은 ... 프린트물 법문(20250517)
알아차림은 의식으로 뚜렷하게 느낄 수 있으며, 가볍고 명료하고 활동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에 반해 생각은 무겁다, 둔하다, 선택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한 번 알아차린다고 해서 순간적으로 해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을 '일상생활 속에서' 작동시켜야 한다. 이것은 또 다른 과정이다. 또한 알아차린 상태를 '지속'시켜야 한다. 이것도 또다른 과정이다. 알아차림의 실천은 즐거운 일이다.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알아차림은 위빳사나의 목표이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알아차림이 일단 마음의 장애물을 몰아내고 나면, 마음에 선이 퍼져나갈 것이다. 미움은 자비로 바뀌고, 욕심은 무집착으로 바뀐다. 이 교체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도 알아차림이다.
명상에서는 두 가지 다른 성질, '알아차림(마음챙김)과 집중력'을 기른다.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되어 함께 협력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집중력은 강압적인 작용으로 힘을 준다. 반면, 알아차림은 섬세하고 예민한 작용이다.
집중력은 '도구'라고 생각해야 된다. 칼과 마찬가지로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제대로 사용하면 마음을 해방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자아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알아차림은 힘으로 키울 수도 없고, 자아의 방향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알아차림은 자아가 없는 주의력이다. 순수한 알아차림에는 '나'라는 것이 없다.
알아차림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받아들인다. 알아차림을 키우고 싶다면 '인내'하고, '수용'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알아차림은 지속적인 알아차림을 계속하는 것, 그저 알아차리고 노력하는 것, 즉 인내를 통해서만 자란다.
마음을 키울 때, 그 초기 단계에서 너무 강하게 알아차림에 집중하면 집중력이 잘 자라지 않는다. 알아차리는 대상이 너무 많아서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명상의 초기 단계에서는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알아차림과 집중력에서는 역시 알아 차림이 더 중요하다.
먼저 원숭이 마음을 어느 정도 진정시켜야 한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정신이 날뛰고 있을 때는 집중에 중점을 두고, 마음이 가라앉아 졸음이 올 때는 알아차림에 중점을 둔다. 전체적으로 알아차림에 중점을 두도록 한다.
어떤 야구 선수라도 스윙 연습을 한다. 앉아서 하는 명상은 명상의 기본을 '연습하는 장소'이다. '실전'은 실생활이며, 이때 사용하는 도구는 자신의 감각기관이다. 숙련된 명상 수행자들도 좌선 명상을 계속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승부에 필요한 기본 정신의 기술을 조정하고 연마하기 위해서다.
앉아서 하는 명상 자체는 '기본을 연습하는 곳'이지 승부의 장이 아님을 잊지 말자. 실전은 '실생활'이다. 일상생활에 적용되지 않는 명상은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며, 충분하지도 않다.
위빳사나 명상의 목적은 자신의 감각과 인식의 전체를 근본적, 영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생의 경험 전체를 개혁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습관'을 조금씩 마음에 심어주기 위해 일정 시간 동안 앉아서 명상을 실천한다. 앉아서 명상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감지하고 이해하는 법을 익힌다.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에 대처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감정에 대응하는 방법을 기르는 것이다. 이 새로운 마음가짐은 일상의 다른 측면에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상과 일상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위빳사나 명상을 오래 하다 보면 일상에서 아주 평범한 일을 할 때 위빳사나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것은 가장 인상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오랫동안 주의 깊게 길러온 알아차림이 '자동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앉아서 하는 명상이 끝나고 방석에서 벗어날 때다. 명상이 끝났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훌 털고 일어설 수도 있고, 알아차림을 일상생활에서 작동시켜 활용할 수도 있다.
위빳사나 명상은 특별한 방법으로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이 아니다. 알아차림을 '키우는 것'이고, 키운 알아차림을 '사용하는 것'이다.
'알아차림의 습관'을 전면적으로 키우기 위해 간단한 행위를 천천히 슬로우 모션으로 수행한다. 어떤 작은 행위라도 충분히 알아차리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생각, 말, 행동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춤으로써 생각, 말, 행동의 더 깊은 곳까지 통찰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처음 인식하는 것부터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까지 하루 종일 모든 행위와 인식에 대해 알아차리도록 노력하라.
앉아서 하는 명상과 일상 생활 사이에 가능한 한 많은 차이가 생기지 않도록 일상 활동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일상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항상 관찰해야 할 움직임이 있다. 적어도 호흡은 있다. 마음이 통일되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머리가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진지하게 명상을 한다면 알아차림의 대상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음이 항상 깨어있는 상태라면 사람은 언제든 깨어날 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아주 사소한 것, 평범한 감각도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음의 조건만 갖추어져 있다면 지금 당장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자아는 본질적으로 '분리감'이며, 우리가 보통 '나'라고 부르는 것과 '타자'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거리감을 말한다. 만약 자아가 끊임없이 작동한다면 이 거리감이 마음을 지배한다.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마치 돋보기로 신문 사진을 보는 것처럼 자신을 보는 것이다. 돋보기로 보면 그 사진은 수많은 미세한 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리한 알아차림으로 자신을 응시할 때 '나'나 '내가 있다'와 같은 '나라는 감각'은 그 개별성을 잃고 분해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지혜 명상의 세 가지 핵심인 세 가지 특징(무상, 괴로움, 무아)이 있는 그대로의 집(마음과 몸의 집합체)에 나타나는 것이다. 무상, 고, 무아를 너무나 실감나게 체험하기 때문에 욕심, 집착, 분노 등이 허망하고 전혀 무익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의 순간, 의식은 변화한다. 고정된 나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남는 것은 서로 관계하는 실체 없는 무수한 현상들뿐이다.
'앗티수카(Atthi Sukha)'... 직역하면 「바르게 얻은 재물이 있는 것을 즐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삶이야말로 행복 그 자체라는 것이다.
'보가 수카(Bhoga Sukha)'... '바르게 얻은 재물을 사용하여 즐긴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아껴서 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지금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즐겨야 한다.
'아나나 수카(Anana Sukha)'... '나에게는 빚이라는 것이 없다'.
'아나왓자 수카(Anavajja Sukha)'... '내 인생에서 잘못한 것이 없다'는 순수한 마음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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